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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윤석열의 전제

 

 

1. 2009년 11월에 단행된 북한 화폐개혁은 처참한 실패로 끝난다. 경제 난국을 타결하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0년 한 해에 두 차례나 중국 방문에 나선다. 후진타오 주석에게 경제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후진타오는 김정일에게 13억 인민도 먹여 살리는데, 고작 2천만을 굶기냐며 질타했다고 한다. 원조는커녕 욕만 푸짐하게 얻어먹고 돌아오는 김정일 가슴엔 원한이 사무쳤겠지만, 북한 인민을 고난의 행군으로 몰아넣은 것은 중국이 아니라 김일성과 김정일이었다. 같은 한민족이지만, 그런 모욕을 들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2. 삼성이 세계 12위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자산만 131조 원에 달한다니, 어지간한 국가 자산보다도 많지 않은가. 그런 삼성 총수는 지금 영국에 있는데,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엔 초청받지 못한 모양이다. 삼성을 세운 이병철은 사카린 밀수사건, 반도체 신화를 쓴 이건희는 뇌물과 조세 포탈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나 경영 일선에서 한동안 물러났다. 이재용은 그룹 승계 과정에서 뇌물과 횡령죄를 저질러 끝내 감옥에 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에 무슨 범죄의 피라도 흐르는 것일까. 결국 가석방과 대통령 사면을 거쳐 복귀한 이재용이 마이너스의 손이란 별명과 달리 삼성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을까? 장례식 입장권도 받지 못하는 실력으론 어렵지 않을까?

 

3. 수모를 당한 김정일과 북한 경제의 총체적 파탄, 총수의 구속 수감이란 결과를 받은 삼성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전제가 있었다. 소위 백두혈통이라는 김일성 일가의 세습, 이병철 직계의 경영권 세습이 그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왕조 세습이 가당키나 하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재용을 그룹 총수 자리에 앉혀야겠다는 삼성의 집념 역시 북한의 고집과 놀랍게 닮았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포기할 수 없는 전제는 현실을 왜곡하고 정의를 배신하고 만다.

 

4. 살면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우리는 인간성을 포기하면 안 되고,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지켜야 하며, 국가 안보와 공동체의 번영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전제는 정말 옳은가. 설령 그 전제가 옳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옳은가. 우리의 대리인들은 바르게 처신하고 있으며, 우리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결국 자기가 옳은가를 의심하지 않는 모든 전제는 파국을 맞는다. 우리의 제1 전제는 언제나 내가 제대로 의심하고 있는가이어야 할 것이다.

 

5. 이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전제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사명감은 갖추고 있는가. 일국의 지도자답게 자기 말에 책임을 지고 뚝심 있게 추진하고 있는가. 품격있고 유능하며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펼치고 있는가. 영빈관 짓겠다고 900억이나 되는 청구서를 디밀었다가, 여론이 안 좋아지자 어마 뜨거라 하면서 하루 만에 철회하는 꼴을 보면서, 총리조차 영빈관 계획을 몰랐다는 답변을 들으면서 기가 막힌다. 혹시 그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전제가 영부인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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