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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칼럼] ‘헤쳐모여당’을 ‘제3지대’라 부르는 한국 언론

 

“한국정치의 최대 걸림돌은 언론입니다. 언론이 바뀌면 한국 민주주의가 50년 앞서 나갈 것입니다.” 유학에서 돌아와 강단에 선 필자가 자주 하던 말이다. 그 언젠가부터 기성언론이 앞장서 ‘운동권 기득권’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기득권은 어떠한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난공불락 아니던가.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 대통령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은근 슬쩍 여론 편에 다가와 탄핵에 앞장서기도 한다. 그야말로 양면의 얼굴 야누스다.

 

4.10 총선도 그들이 좌지우지 할듯하다. 그들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한동훈의 말을 대서특필하기에 급급하다. 한 위원장은 운동권 대 전문가 프레임으로 총선의 포문을 열었다. 임종석 대 윤희숙, 정청래 대 김경률... 하지만 그의 말은 틀렸다. 이들 중 누가 더 정치 전문가인가? 임종석, 정청래 등은 필시 운동권 출신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찍 정치권에 들어가 정치를 경험한 정치 전문가다. 반면에 윤희숙, 김경률은 정치권에 발을 디딘지 얼마 안 되는 정치 초년생이다. 그런데 진위를 따져보지 않고 한 위원장의 말을 표제어로 덜컥 뽑는 저의는 무엇인가. 총선 정국을 정책선거가 아닌 빈탕선거로 또 몰아가겠다는 것인가?

 

필자는 중립을 표방한다. 따라서 그 누구의 편에도 설 생각이 없다. 단지 잘 못된 것을 잘 못 됐다고 누군가가 지적해 주길 원하는 데 그런 사람이 없기에 나선 것뿐이다. 그러니 필자를 민주당으로 엮어 이 글을 왜곡시킬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언론이 ‘제3지대’니 ‘빅텐트’니 하는 단어를 써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에서 누가 이 용어를 맨 먼저 사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신생정치단체(개혁신당,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선택...)를 제3지대라 부르는 건 양심 없는 일이다. 이들은 대의명분 없이 이 정당 저 정당과 불협화음을 내고 떨어져 나온 사람들에 불과하다.

 

제3지대란 본래 ‘여당과 야당에 대항하는 정치 세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개혁신당,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선택... 이들 중 누가 도대체 대항세력이란 말인가? 제3지대하면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가 생각난다. 2014년 5월 등장한 이 정당은 “우리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분노를 정치적 변화로 전환하기”를 기치로 내걸었다. 기성 정당과 달리 분열을 넘어 기권자, 특히 젊은이들을 다시 결집시키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엘리트 부패와의 싸움, 에너지 주권, 긴축 정책 거부, 자유 언론 수호, 디지털 민주주의 및 세속주의 등. 굵직한 이슈를 선거에서 쟁점화 시켰다. 그렇담 소위 제3지대인 개혁신당의 선거 쟁점은 무엇인가? 노인 무임승차권 폐지? 고작 또 갈라치기란 말인가?

 

서구 정치의 알맹이 대신 표피만 가져와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한국 정치판의 관행을 불식시키려면 언론이 바로 서야 한다. 오피니언 리더이자 제4의 권력인 언론이 본분을 망각한 채 아무거나 마구 써댄다면 이는 필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고 말 것이다. 정치인이 시답지 않은 프레임으로 선거를 혼탁 시키려 들면 그걸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1980년대 초 프랑스 극우 정당 르펜이 등장했을 때 프랑스의 메이저 언론은 그에게 절대 마이크를 주지 않았다. 언론의 이러한 조치는 르펜의 부상에 큰 걸림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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