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극장에 나타났다가 겉치레로 상영을 하는 둥 마는 둥 사라진 영화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애당초 목표가 부가형 서비스 윈도우(VOD나 케이블TV, OTT)였을 것이다.
이제는 극장 상영작이 아닌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저어하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됐다. 극장이든 비극장이든, 결국엔 어떻게든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 다는 것 정도 알고 있는 것은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물론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매우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 VOD나 OTT로 보기에, 그렇게 시간 때우기용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떨어지는 작품도 아니다. 영화는 종종 재미로, 쉬기 위해, 그래서 일상의 활력을 얻기 위해 보는 것이다.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그렇게 머리를 쉬고, 리프레시(refresh) 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우리말 제목의 느낌대로 할리우드, 곧 LA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한 사립 탐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립 탐정은 뉴욕 같은 동부보다 LA, 캘리포니아가 많다. 미국의 동쪽은 춥고 서쪽은 따뜻하며 사람들이 친절하고 '루스'하다. 특히 할리우드는 돈과 욕망이 넘쳐 난다. 이런 곳에 불륜이 많은 이유이다.
당연히 치정에 얽힌 사건, 심지어 살인사건까지도 많은 지역이다. 남녀 간의 문제는 공식적으로 경찰력이나 검찰권이 관계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립탐정 이야기가 LA, 할리우드에 집중되는 것에는 다 까닭이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주인공 찰리 왈도(찰리 허냄)가 꼭 사립 탐정이란 얘기는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경찰이다. 왈도는 원래 LAPD, 곧 로스앤젤레스 경찰이었다. 오래전 자신이 잡아넣었던 범인이 진범이 아니었고 형무소에서 복역 중 살해당하자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경찰복을 벗은 인물이다. 그는 현재 LA와 어바인 사이의 작은 산골 마을인 아이딜 와일드(Idyllwild)에 은둔해 살아간다.
수염을 잔뜩 길렀으며 매일 아침 트레일러 너머로 뜨는 해를 마주 앉은 채 요가와 명상을 한다. 그는 은둔 생활에서 소지품을 딱 100개만 유지하려 애쓴다. 그런데 그 소지품에는 라디오가 있고 태블릿 PC가 있으며(그는 이걸로 책을 읽는다.) 꺼놓은 스마트폰도 서랍 속에 가지고 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최소한이라도 유지시킨 것이 그나마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로레나(모레나 바카린)가 찾아와 엘리스테어 핀치 사건을 의뢰했을 때 단박에 알아들은 이유이다. 핀치(멜 깁슨)는 유명 배우이고 특히 그가 오랫동안 출연 중인 리얼리티 쇼 '조니의 재판'은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텐츠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스타 연예인이 늘 그렇듯이 막무가내에 난폭하기까지 하다. 그는 점심시간이 지나서까지 촬영이 이어지면 막내 스태프를 패기까지 한다. 이 습성을 알고 있는 제작자는 현장에 스턴트맨을 배치해 '맞는' 역할을 하게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내인 모니카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건 당연해 보인다. 911을 부르고 경찰에 문을 열어 준 당사자임에도 아내가 둔기로 살해당하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당연히 고주망태로 취해 곯아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단박에 살인 용의자로 몰렸고, 결국 구속됐으며, 2천만 달러라는 거금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이다.
자, 찰리 왈도 전 형사, 현 사립탐정은 스타 배우 핀치가 진짜 살인자인지 아니면 진범은 따로 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정의와 진실은 무엇인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런 살인사건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명심해야 할 것은 수수께끼의 본체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거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하겠지만 2시간 가까운 동안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파놓은 함정이 하도 여러 가지인지라 본 사건에 매달리지 않고 다른 요소에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종의 맥거핀 효과 때문이다. 맥거핀은 쉽게 말해서 눈속임 장치이다. 본래 벌어진 사건이 있는데 극을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앞이나 옆, 뒤로 잔뜩 다른 사건까지 늘어놓고 겹쳐 놓는다.
이제 사건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세 개가 되고 심지어 그 모든 것이 다 연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똑똑한 관객들이라면 그 곁가지 사건들을 다 걷어낼 줄 알아야 하며 그래서 진범을 관객 스스로가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근데 그럴려면 이런 류의 영화를 한 천 편쯤은 봐야 한다.
영화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마치 1940년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이자 사립탐정인 필립 말로우의 이미지를 따라가는 척 사실은 현대 작가 마이클 코넬리가 창조한 해리 보슈 형사 시리즈의 얘기와 분위기를 차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차이가 있다면 해리 보슈는 비교적 잘 싸웠지만 이 영화의 왈도 전 형사는 매일 얻어터진다는 점이다. 과거의 형사 동료들에게든, 아니면 지역의 깡패들에게든 매일 같이 쥐어 맞는다는 면에서는 1940년대의 탐정 필립 말로우을 닮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클래식 영화와 요즘의 TV 시리즈 캐릭터를 이리저리 합치고 꿰매어 만든 헝겊 인형 같은 느낌을 준다는 얘기다. 구차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오마주’가 귀엽게 느껴진다.
핀치 살인 사건은 곧 로레나 실종사건으로 확대된다. 조용히 살아가겠다며 로레나의 사건 의뢰를 거절했던 왈도가 탐정으로 나선 이유는 자신을 만난 후 로레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 동료이자 상관인 LA 경찰에 따르면 로레나는 살해됐고, 시체가 불탄 채 발견된 것으로 추후 알려진다. 찰리 왈도는 광분한다. 로레나의 살인에는 펠리세이즈라는 이름의 갱단이 개입된 것으로 보이고 워렌 고메즈라는 미스터리한 인물, 다리우스 잠시디라는 할리우드 미디어 업계의 거물도 여기에 뭔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핀치는 살해된 아내와의 사이에 어린 딸을 두고 있고 주인공 왈도는 죽은 여자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었다는 점을 고려해 그녀까지 탐문하기에 이른다. 자 여기에 맥거핀은 무엇이고 또 몇 개나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주지시키지만 모든 살인사건 영화에서 사건은 단 하나, 핵심은 단 하나이다.
다른 것은 눈속임이다. 심지어 거짓말이기도 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로레나가 왈도에게 사건을 의뢰한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가 이미 한물간 형사여서가 아니었을까. 곧 그건 사건의 진실을 찾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추고, 덮고, 왜곡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핀치는 자신이 결코 아내를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 죽인 것은 아닐까. 죽였는데 술이 너무 취해서 기억을 못 하는 것 정도만이 아닐까.
이 영화의 원제는 ‘라스트 룩스(Last Looks)’이다. 마지막 목격자가 아니라 목격자들, 복수이다. 아내가 죽을 때를 본 사람은, (곤드레가 됐든 아니든) 핀치 혼자였을까. 그때 그 집안에 있었던 사람은 또 누가 있었을까. 영화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원제에 치중하면 비교적 쉽게 범인을 찾을 수 있다.
이 글 도입부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들 하시는가. 할리우드, LA, 캘리포니아에는 사립탐정이 많다. 근데 그게 왜라고? 거기는 불륜과 치정의 도시이다. 이 영화는 결국 치정 살인극이다. 치정의 대상,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 여자를 찾아 내시라. 그리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머리를 한번 식혀 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