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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유교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공맹(孔孟)의 혼'

④조선시대-용인향교~석성산 봉수~양지향교 걷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당시 용인현과 양지현 중심지의 향교와 방어시설을 통해 국가 운영의 기틀을 확인할 수 있는 코스다. 용인향교(도 문화유산자료)~석성산 봉수(사적)~양지향교(도 문화유산자료)다. 일단, 눈으로 걸어가 보자.

 

◇용인향교

 

조선시대에 많은 인재를 길러냈던 요람으로 조선시대 지방에 세운 국립 교육기관이다. 용인향교는 현유(賢儒,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정종 2년(1400년)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인향교는 마북리 구교동에 있었는데, 구교동은 향교가 있었던 동네라는 뜻이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위치가 이동돼 임진왜란 때 소실되기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고종 31년(1894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19세기 중반 ‘용인읍지’에 따르면, 용인향교는 여러 갈래를 거쳐 교육 관련 건물을 앞에 배치하고, 제사 관련 건물을 뒤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이다.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인데, 일반적인 향교 건축과 달리 정면이 아니라 배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명륜당은 좌우측으로 방이 있고 6칸에는 대청마루를 설치했으며 마루 뒤편으로 판장문을 달았다. 맞배지붕인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기둥 위에 물익공 양식의 공포를 올리고 단청을 칠해 위엄을 더했다.

 

주춧돌은 넓고 평평한 사각형 초석이고 기둥은 원형 기둥을 세웠다.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은 각각 3칸의 솟을삼문 형식이며 단청을 칠해 향교 공간으로서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의 기둥 위에는 익공을 올렸고 상인방과 도리 사이에 소로를 끼우는 소로수장을 통해 격식을 높였다.

 

향교는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교육하는 기능을 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교육 기능은 중단하고 문묘의 향사만 받들고 있다.

 

그런데 용인향교는 근대 시기에 명륜학교와 보통학교로 사용됐고, 현재에도 부설 명륜대학, 충효 교육 및 현대문학 강의 등을 통해 시민들의 전통문화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석성산 봉수 유적

 

조선시대 봉수노선의 중추역할을 했던 봉수는 석성산 정상인 471m에 조성된 유적이다.

 

석성산은 경기남부에서 광주와 성남, 하남, 송파로 이어지는 교통로로 진입하기 위한 교통의 중심지로 주변 지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주요 교통로와 관문을 감제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석성산 봉수에 대한 운영시기와 폐봉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가 1곳인데 석성(石城)이다. 현 동쪽에 있다. 동쪽으로 죽산의 건지산(巾之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광주 천천산(穿川山)에 응한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봉수제가 정립된 세종대부터 사용됐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또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르면 석성산 봉수가 화성 흥천산 봉수와 응하고 있다고 기록돼 있어 18세기 신설된 봉수 체계에 석성산 봉수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성산 봉수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지난 2017년부터 이뤄졌다. 지난 2017~2018년까지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봉수대 보호시설인 방호벽, 연기와 불빛으로 국경의 위급상황을 알리는 신호 시설인 5기의 연조, 창고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이곳에서 확인된 연조1은 암반을 굴착, 조성했는데 내지봉수에서는 최초의 사례다. 연조 2·3·5 역시 국내 최초로 거화시설이 확인돼 특수성과 희소가치가 매우 큰 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봉수터 중앙에서 방형의 석렬유구가 확인됐는데, 이곳에서 출토된 백자잔, 향로 등의 제기를 통해 이곳에서 중요한 제의 행위가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난 2019~2020년까지는 봉수의 남동쪽으로 약 50m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부속시설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돼 평탄지를 조성한 축대와 건물지 3동, 우물 2기가 확인됐다. 건물지에서 출토된 기와와 자기의 제작 시기는 15세기부터 조선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봉수는 조선 세종대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5거제 봉수 노선 가운데 제2거 노선에 해당하는데, 삼남지방의 봉수가 안성 망이산 봉수에서 결집한 후 용인 건지산 봉수(원삼면 소재)-용인 석성산 봉수-성남 천림산 봉수를 거쳐 한양 목멱산 봉수(경봉수)로 이어지는 봉수 노선의 중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18세기에는 화성 흥천산 봉수와도 응하고 있어 화성 봉돈 축성 이후의 봉수 체계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용인이 전란을 대비하는 중요 도시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양지향교

 

양지향교(陽智鄕校)는 처인구 양지읍에 세워진 조선시대 향교다. 공자와 여러 성현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중종 18년(1523년)에 처음 지어진 후 숙종 23년(1697년) 대성전을 중수하고 정조 16년(1792년) 명륜당을 중건하는 등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수리됐다.

 

용인향교처럼 앞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에는 내삼문 안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뒤로 갈수록 경사가 높아지는데 이는 제사 공간의 위계를 교육 공간보다 더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부분의 향교가 대성전·내삼문·명륜당·외삼문이 일직선상에 위치하는데 양지향교의 명륜당은 대성전의 중심축에서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내삼문의 축도 대성전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으로 돼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분인 공포(기둥 윗부분에서 부재를 가로 세로로 짜 맞춰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부분)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짜 맞춘 익공(공포의 한 종류로 새의 날개, 혹은 부리 형태로 만들어짐) 양식이다.

 

대성전은 공포의 형태나 가구 수법으로 보아 17세기 건물로 판단된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과 우리나라 유학자 1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정면 3칸·측면 2칸이던 것을 1971년 정면 5칸·측면 2칸의 규모로 증축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좌우의 4칸은 방이고 중앙의 6칸은 마루의 형태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 전사청, 공사청 등 여러 부속건물이 존재했지만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1987년에 신축한 외삼문과 최근 건립한 부속채 2채가 있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솟을삼문 형식이며, 부속채는 공사청과 동재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발견된 자리를 조사해 2014년에 새로 복원했다.

 

향교는 나라에서 지원해준 토지와 노비, 책 등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였지만, 현재는 교육 기능이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아쉬운 지점이다.

 

양지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만을 갖춘 작은 향교임에도 불구하고 향교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 공간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시민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가르치는 등 향교 본래의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 경기신문 = 최정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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