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도 섬에도 진달래꽃 천지다.
붉은 꽃 한 아름, 가슴에 묻은 딸이 아비의 묘비를 찾는다. 저것이 내 아비의 이름인가. 눈으로 더듬고 손으로 불러도, 묘비에 박힌 아비의 이름은 아득하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라서 허망한 것일까. 일흔이 넘은 딸이 아비의 묘비 앞에 술을 따른다.
드세요, 아버지. 일흔이면 어떻고 아흔이면 또 어떠한가. 아비라는 단어는 나이와 상관없는 울음인 것을. 참으면 참을수록 화르르 타오르고 마는 설움인 것을. 일흔도 넘은 딸이 아비의 묘비 앞에 담배를 태워 놓는다. 드세요, 아버지. 불러도 대답은 없고, 담배 연기만 묘비 너머로 종종걸음친다.
진달래가 지고 나면 봄이 오던가.
야속할 노릇이다. 기억은 남겨진 자의 몫이어서, 봄조차 되살릴 수 없음을 떠올리게 할 뿐. 계절은 되돌릴 수 있어도 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올 수 없음을. 그렇게 누구는 가고 누구는 남는 게 세상살이인 것을. 돌아본들 무엇하겠는가. 뭍에도 개나리꽃 머금었는지. 밥풀 같은 노란 꽃 흩어지면, 그 너머로 하얀 저고리에 핏물 적시며 목련꽃 쓰러지는지. 섬에서는 없어진 지 오래잖는가.
사내란 사내는 죄다 무너지고, 서 있는 거라곤 뭉그러진 돌하르방뿐이라. 뭍에서는 돌과 바람과 여자뿐인 섬이라고 부른다지. 잎이 돋기도 전에 꽃부터 지고 마는 진달래꽃인 걸 모른다지. 하긴, 그런다고 해서 또 어쩌겠어. 견디는 것들이 모여 산으로 우뚝 솟구친 게 섬의 운명인 것을.
포구에도 바다에도 봄 햇살 천지다.
파도 소리 한 묶음, 가슴에 묻은 아비가 딸의 교복을 펼친다. 이것이 내 새끼 이름인가. 입김 불어 호호 닦아도, 명찰에 새겨진 딸의 이름은 아득하다. 꿈에서조차 대답 없는 이름이라서 먹먹한 걸까. 교복을 품에 안은 아비가 딸이 누운 바다에 밥을 먹인다.
배고팠지, 내 새끼. 자식 앞세운 죄인은 물만 마셔도 창자가 끊어져. 딸이 살던 방문을 열면 손발부터 오그라들어. 딸과 찍었던 사진을 보면 숨이 턱 막혀. 교복을 품에 안은 아비가 딸이 누운 바다에 옷을 입힌다. 추웠지, 내 새끼. 만져도 대답은 없고, 차가운 온기만 파도 너머로 달음박질친다.
진달래가 떨어지면 봄이라던가.
환장할 노릇이다. 기억은 남겨진 자의 몫이라서, 봄조차 되살릴 수 없음을 떠올리게 할 뿐. 계절은 되돌릴 수 있어도 한 번 떠난 세월은 돌아올 수 없음을. 왜 그래야만 했을까. 섬으로 가야 할 배가 숨을 멈추고 가라앉는데도, 스피커에선 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하였을까.
아비는 아직도 기가 막혀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해. 너를 태운 배는 어느 섬을 향해 흘러가고 있을지. 너와 보낸 세월은 배냇저고리와 교복 사이의 항로만 하염없이 떠돌고 있어. 지도를 펼쳐도 네가 도착할 항구는 보이지 않아. 남은 거라곤 이름 세 글자 새겨진 교복뿐이라서. 아비는 오늘도 딸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바다에 선다.
저기, 진달래꽃 닮은 배 하나 섬으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