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정치가 주는 스트레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의 질과 양으로 따지자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고 고문받던 군사독재시절이 백만 배는 더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요즘의 정치를 애교로 봐 줄만도 하건만 웬걸? 그게 쉽지 않다. 사실 그때는 당하는 사람 말고는 다들 눈감고 귀막고 살았으니 일반 국민들이야 지체 높은 고관대작들 악행이나 망발을 접할 일도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만 뜨면 손바닥 안에서 온갖 뉴스와 별별 비화를 접하게 되니 외려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피할래야 피할 도리가 없다. 스트레스의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기본 인권이 짓밟히거나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상상초월의 부정부패 때문에 느끼는 참담함이 주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정치지도자를 자임하는 사람들의 밑천이 드러남으로써 느끼는..
최근 우리나라가 유엔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증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G7에 공식 초청받은 사실로 보나, BTS열풍으로 보나, 도쿄올림픽 메달종목을 보나 우리나라는 틀림없는 선진국이다. 그렇지만 모든 분야가 골고루 선진국 스탠더드에 도달한 건 아니다. 공무원세계도 그중 하나다. 내가 주목하는 문제는 공무원이 철 밥통을 누리고 있다는 게 아니고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해법이 비교적 단순한데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처 공무원은 극소수 별정직이나 개방직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반경력직이다. 이들은 직급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동일조직 내부에서 정기적으로 자리를 옮기며 때가 되면 승진한다. 그러다 ‘관’자가 붙는 중견직급으로 올라가면 기안과 품의 업무를 면제받는다. 과장급 이상은 직접 문서를 작성하지 않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 사전훈련 개시일인 10일 담화를 통해 우리나라와 미국을 싸잡아 비판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군은 끝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 군사연습을 개시했다”며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매듭을 도무지 풀어내기 어려운 북한 비핵화라는 난제 앞에서 우리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이에 ‘북한’이라는 변수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혜롭고 실용적인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스스로 절박한 처지를 감추지 않는 등 예전과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장기 봉쇄, 함경남도 폭우피해까지 겹치며 내부..
돌아보면 이번 올림픽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사상 최악의, 불안한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예견되곤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회가 1년 미뤄졌고,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선량이 안정한 정도에 이르렀는지 의혹과 우려가 무성했다. 어쨌거나 17일간의 모든 겨루기를 마무리하고 나니 ‘세계인의 축제’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슴 뜨겁게 느껴진다. 한국은 20개의 값진 메달을 얻었다. 33개 종목 중 29개 종목에 참가했다. 한국 대표팀이 출전한 경기 중에 한국-브라질의 여자배구 4강전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세계 4위 터키를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한 여자배구의 선전에 응원이 쏟아졌다. 비록 전 경기 무관중으로 치렀지만 올림픽 중계방송은 더 감각적으로 상황을 보여줬고 극적인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남자..
"과거는 과오의 시간!" 요즘 기준으로 시골 면장쯤 되는 자리로 승진 전보된 하급관리가 부임 후 80일이 되었을 때다. 부하가 "상부에서 감찰 나온다 하니 의관을 정제하고 영접해야 한다. 그렇게 안하면, 머지않아 반드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한다."고 귀뜸한다. 미관말직으로 간신히 쌀독을 채우며 살던 그 관리는 그 말에 크게 모욕을 느꼈다. 잠시 후 결연히 외친다. "我豈能爲五斗米折腰於鄕里小兒" "내 어찌 쌀 다섯 말에 그 어린 촌놈에게 허리를 굽히겠나." 폭탄선언이었다. 1600년 전, 중국 동진시대의 큰 시인 도연명(365ㅡ427)이 마흔 살 때다. 그렇게 직장을 때려치고 귀향하여 그가 남긴 시가 우리 모두 감동했던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이 시만 보면 시인은 별문제 없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여생을 보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를 흠숭했던 당나라 시인..
비현실적이다, 미국 빌보드에서 올해 최장기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버터(Butter) 이야기다. 100년 가까운 빌보드 역사는 대개 영미팝음악의 잔치였다. 빌보드 신기록을 향해 달리고 있는 녹지 않는 ‘버터’의 인기에 우리뿐 아니라 세계도 놀라고 있다. 50년 전인 1965년, 빌보드에 고개를 내민 월드뮤직 한 곡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앨범차트 2위, 싱글차트 5위까지 오른 브라질 노래 ‘걸 프롬 이파네마(Girl From Ipanema)’. 브라질의 걸출한 작곡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io Carlos Jobim, 1927-1994)은 브라질 전통 음악 삼바에 모던재즈를 섞은 이 노래로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새로운 음악장르를 탄생시켰다.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였기에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 보사노바는 포르투..
최근 일본 혼다자동차가 직원 2000명을 조기 퇴직시키기로 했다. 전기차 전환을 위한 것으로 상근 직원의 5%에 해당한다. 혼다는 내연기관차 생산을 점차 줄이고 2040년부터는 전기차만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구조조정이다. 미국 GM은 2035년부터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이다. 2025년까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350억 달러(약 40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14일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2035년부터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정책 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를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30년부터는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행정명령에 지난 5일 서명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탄소중립과 함께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처럼 이제 “전기차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내연기관 퇴출·전..
북한은 지난 7·27 남북통신선 복원 합의에 이어 8.1 김여정 부부장 담화를 통해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합동군사훈련 실시는 남북 간 신뢰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 바라는 남북정상 의지를 심히 훼손시키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측에 희망이냐 절망이냐의 선택을 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내부에서는 실시 여부에 대한 논쟁과 미국과의 공조문제 우려, 훈련 실시 후 북한 도발에 대한 우려 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1949년 미군 철수 이후 군사력을 통한 ‘남조선 혁명’을 위해 6·25 전쟁을 도발하였다. 미국 주도의 유엔군 즉각적인 참전으로 북한은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밀려 패퇴의 위기를 맞이 하였으나, 중공군의 참전과 지원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점령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전국에서 강화됐음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는 멈출 줄 모른다. 신규 확진자 수가 좀처럼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최근 정례브리핑에서 ▲지역사회의 숨은 감염자 ▲높아진 이동량 ▲델타 변이 바이러스 유행 등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보 취재진이 지난 2일과 3일 밤 수원시 영통구 영통1동 번화가의 반달공원과 광교호수공원에서 현장점검을 한 결과 음주를 하는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공원 내 음주 금지’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는데도 아랑곳없었다. 수도권 내 공원에서는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진행되던 지난달 12일부터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실 수 없..
인류의 미래가 희망적인지 비관적인지를 놓고 벌인 석학들의 토론(이 무슨 쓰잘 데 없는 짓인가,라고 처음엔 생각하기 쉽다.)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됐다. 이 토론은 ‘사피엔스의 미래(전병근 譯, 모던아카이브刊)’라는 책으로 엮여서 시중에 나왔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알랭 드 보통, 그리고 말콤 글래드웰이다. 이들은 캐나다의 유명 토크 쇼인 ‘멍크 디베이트’에 참가했다. 이 토론회에는 3000명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캐나다 공영방송 CPAC. 그리고 미국의 C-SPAN을 통해 북미 전역에 방송된다. ‘멍크 디베이트’는 캐나다 금광재벌인 피터 멍크가 만든 세계 석학들의 대담, 토론 프로그램이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우주여행을 개인적으로 할 생각을 하지만 어떤 사람, 특히 멍크 부부 같은 사람들은 인류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까를 고민한다. 이 책의 토론자 넷이 다 어떤 사람들인지 지면 관계상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지적인 측면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알랭 드 보통은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이다. 하바드 출신이다.(적어도 하바드 출신이라면 이 정도의 깊이와 겸손함,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갖춰야 한다. 요즘 국내 정치권에도 하바드 출신이 적지 않다.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앞의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한다. 뒤의 두 사람은 비관론자이다. 토론 배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 무슨 소모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미래는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면 모든 지적 시스템은 붕괴할 수 있다. 토론 그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가 인류의 삶을 진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스티븐 핑커가 낙관론의 예시로 내건 10가지 범례 즉, 인간의 수명과 건강 / 교육 / 물질적 풍요 / 평화 / 안전 / 자유 / 지능 / 인권 / 양성평등의 지수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 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다 좋아졌다. 반면에 이를 반박하는 말콤 글래드웰은 핵무기가 80% 감소했다고 해서 그 위협과 위험의 수위가 낮아진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글래드웰은 ‘우리는 위험의 감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재구성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비관론을 ‘비관적 현실주의’라는 말고 교정한다. 인류의 전망은 어둡지만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하며, 해결책의 일부는 찾아 나설 수 있다고 보는 실용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비관적 현실주의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들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기후변화의 문제가 경제(학)의 문제냐 아니냐를 놓고 벌어진 핑커와 글래드웰의 설전이다. 핑커는 여러 예 중 하나로 원자력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원자력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압니다. 하지만 문제는 감축 규모에요.” 원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고(화석연료를 줄이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비용을 감당하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어떤 유인책을 써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정치의 영역을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네 사람의 논쟁 중에는 리처드 이스털린이나 앵거스 디턴이 얘기했던 ‘상대적 빈곤’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더 이상 소득 증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앵거스 디턴은 이를 연봉 7만 달러 수준으로 규정한 바 있다. 연 8000만원 정도를 버는 사람은 연봉이 1억이나 1억 2000이 된다 해도 더 이상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모든 논쟁을 지면으로 지켜보면서 윤석열이라는 대권 주자가 후쿠시마 원전 얘기를 하기 전에,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 얘기를 하기 전에 이 책 ‘사피엔스의 미래’를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읽지 않겠지만. 그리고 읽어도 뭔 소리인 줄 모르겠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읽고 나서도 의도적으로 안 읽은 척, 딴 소리만 하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격렬한 토론을 벌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중간에 상대의 말을 끊고 들어가는 일은 다반사다. 상대에 대해 비아냥 거리고(말콤 글래드웰은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를 폴리아나 부부로 부른다. 소설 ‘폴리아나’에 나오는 어리석을 정도록 낙천적인 여성에 비유한 것이다.) 외모에 대한 비하 발언(대머리, 곱슬머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 대한 예의만큼은 잃지 않는다. 선은 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의 후보 경선 토론 주자들이 이 ‘멍크 디베이트’를 눈여겨봤으면 싶다. 후보 경선이 격이 떨어지고 천박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좀 지적이거나 그렇게 돼 가야 한다. 지성적이 되는 게 먹고사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얘기하는 건 1·4 후퇴 때, 흥남부두 철수 시절에나 하는 얘기다. 젊은 세대들도 자각해야 한다. 유재석은 좋은 친구지만 ‘유퀴즈 온 더 블록’ 같은 버라이어티 TV 프로그램만이 다는 아닌 것이다. 역사를 정면으로 배울 생각을 해야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배울 일은 아니다. 지적 관심의 증대가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진화시킬 것이다.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렇다. 책 ‘사피엔스의 미래’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