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색깔이다. 씩씩함이 강요된 시퍼런 제복, 성공을 다짐하듯 꾹꾹 눌러쓴 각진 모자, 두리번거리는 깊은 눈망울들…. 수완나 품 공항 A6출구에 흩어져 눕거나 웅크린 채 출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은 미얀마라는 영문자 나라이름을 등허리에 붙이고 있었다. 낯익은 한글이 써진 크고 노란 패찰,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젊은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운 나라 조국을 떠나 춥고 낯선 대한민국으로의 첫발을 내딛는 그들을 나는 별이라 생각했다. 별은 어둠 속에서 빛이 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일수록 더 빛이 나는 별. 한 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낯선 나라로 떠나고 또 떠났던 우리들의 별을 생각해보았다. 가난한 조국을 위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줄줄이 떠났던 별들의 길은 또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을지 나는 짐작할 수도 없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다시 마주한 그 나이어린 이국의 젊은이들은 줄을 지어 안내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린 그 별들이 부디 그들의 앞날을 환하게 비추어주길 바라며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유타야 유적지의 토막 난 석상들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본 아유타야 유적지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수백 년 방치된 도시의 실체.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지낸 세월은 즐겁고 행복했다.” 사십여 년의 교직생활을 그렇게 요약하곤 한다. 아이들의 눈! 그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교원의 특권이므로 그들이 부르면 열 일 제쳐놓고 몸을 돌려 그 눈을 바라보라는 뜻으로 전 교직원에게 회전의자를 선물하고 학교를 나왔다. 회전의자! 그게 그 세월로써 도출한 ‘교육의 결론’이 된 것이다. 세상에서 속일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이 아이들의 눈이라는 걸 발견했다. 저것들이 뭘 알겠나 싶지만 그 눈은 우리가 그들을 형식적으로 대하는지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지 당장 간파해낸다. 교육을 내세우면서도 그들을 대하는 실제적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봉급을 받으려는 것이 가장 우세하고 합당할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은 우리에게서 오직 사랑을 찾고 확인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희한한 것은, 그들은 그 뚜렷한 이유에 대해 매우 너그러워서 우리의 미흡함을 끝까지 참아주고, 따지지 않고, 무조건 용서해주고, 한없이 기다린다. 심지어 사랑이나 교육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온갖 불편한 행위들에 대해 속아주기도 한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한다. 만날 때마다 하는 인사부터 우리는 형식적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전날 배운 내용을 다음날 학우들이 앞에서 책을 덮거나 등지고 앉은채로 줄줄 외우는 배강(背講)이 필수였다. 그러나 이를 못하면 목침 위에 서서 훈장으로부터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다. 소위 달초(撻楚)라 부르는 체벌이다. 요즘으로 치면 ‘사랑의 매’라고나 할까. 이 같은 체벌은 성균관에도 있었다.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했을 경우 이외에 졸거나 산만한 학생에게도 똑같이 내려졌다. 과거시험에서 쓰이던 ‘삼십절초(三十折楚)’, ‘오십절초(五十折楚)’의 문장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30자루나 50자루의 회초리가 꺾이도록 종아리를 맞고서야 뛰어난 글을 얻는다는 뜻이다. 율곡이 쓴 학교모범(學校模範) 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잘못을 처음 저지른 학생에게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린다. 두 번 잘못을 하면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꾸짖고 세 번 잘못을 범했을 땐 출세에 영향을 주는 원부에 기록한다. 예부터 체벌을 교육의 기본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체벌은 가정에서도 자녀의 잘잘못을 일깨워 주는 교육적인 기능으로 존재해 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유대인만큼 아이들 교육에 체벌을 적극 활용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봄길 /강세환 겨울은 속절없이 가고 봄은 참 싱겁게 오고 있더라 마치 열매 없는 꽃처럼 맥빠지게 봄은 오고 있더라 마침내 깃발을 흔들거나 구호를 외치며 오지도 않더라 그 멀고 혹독한 겨울의 끝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상의 끝에서 봄은 결코 그렇게 소리치며 오질 않더라 봄을 기다리는 가슴에다 김을 빼듯이 사람들의 입에다 물을 멕이며 오더라 싱겁게 다가오는 봄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나는 절망한다 봄이 오는 들판에 누워 겨울 내내 숨죽이고 기다리던 그 가슴에다 못을 박는다 봄은 저렇게 설치고 오는데 나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가 낡은 깃발을 흔들고 있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시작하기에는 무거운 시선이다. 글만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혹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인이나 작가의 본업이 문학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빛을 띠고 살아가지만 외형적으로 보이는 얼굴을 통해 글을 쓰고 읽어간다. 시인이라는 직업은 유독 고독을 안고 산다. 시인이나 작가가 세상일에 나서게 되면 상처가 된다. 그러나 시인을 세상으로 끌어들이게 만든 사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지금 주변에 살고 있는 일들이 그렇다. 사람을 뽑는 시기가 왔다. 여기저기서 선거의 바람들이 일어나고
본보 21일자 19면과 18면에는 외면하고 싶은 기사들이 살려있다. 하나는 요즘 식사를 하다가 이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게 만드는 초등학생 시신 훼손 냉동보관사건이고, 하나는 재산 때문에 늙은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아들과 손자 이야기이다. 먼저 떠올리기조차 싫은 사건이지만 부천 초등생 사망사건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아버지란 사람이 지난 2012년 11월 7일 저녁 안방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아들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엎드리게 한 뒤 얼굴을 발로 차는 등 2시간여 동안 폭행했다. 이로 인해 아들은 사망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부모란 이들이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뒤 사체 일부는 변기에 버리고 일부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처리했다는 것이다. 머리 부분은 범행의 노출을 우려해 3년2개월 동안 계속 냉장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아내 또한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었다. 아들이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할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이가 숨진 뒤에는 딸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가 다음날인 9일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아들의 시신을 훼손·유기하기도 했다. 더 끔찍한 것은 부부가 함께 치킨을 시켜먹
경기북부지역의 취약계층보호를 위해서 경찰활동 강화가 절실하다. 타 지역에 비해서 여성폭력문제가 심히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은 경찰의 적극적인 보호 속에 폭력으로부터 안전성을 유지해 주어야 된다. 경기도는 올해 북부지역을 여성 폭력 안전지대로 만들고자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북부지역 취약여성에 대한 폭력안전성 보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이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 이해와 사랑을 통해서 신뢰사회를 이뤄갈 때에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최근에 동두천 성폭력상담소가 국비 지원기관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여성폭력 상담과 피해자 보호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올해 북한이탈 여성 인권의식 향상 사업을 확대하고 전문 강사를 양성해간다. 당국은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가야한다. 경기도는 탈북 여성의 性과 가정폭력 피해는 남한 여성의 8배에 이르고 자살률은 3배나 많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교육과 새로운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 경기지역에 거주하는 탈북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7천753명으로, 전국 2만6천634명중 29.1%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 도는 올해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여성폭력 예방
1910년 청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에서 시작된 대만의 105년 역사상 첫 여성 총통이 탄생했다. 마침 필자는 지난해 12월26일 타이베이 대만정치대 한국문화교육센터 창립학술대회에 참석하고 27일에는 민진당의 근거지인 대만의 제2도시 가오슝(高雄)을 방문했기 때문에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에 대한 대만 사람들의 기대를 목도한 바 있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 여성 지도자인 대만의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해왔는데, 향후 대만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 전공자도 한국어문학 전공자도 아닌 필자가 학술행사에 초청된 것은 의외였다. 대만정치대가 한국정부)가 지원하는 한국학 중핵대학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한국문화콘텐츠를 주요 연구과제로 설정했기 때문에 필자가 포함된 것이었다. 어떤 주제로 한국문화콘텐츠를 소개할 것인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재생과 문화콘텐츠’의 주제를 선택했다. 필자가 도시재생을 생각한 것은 한류의 확산과 함께 새롭게 변화를 맞고 있는 해외의 코리아타운 축제가 타운 내 한인과 지역민이 함께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스토리축제의 필요성을 강조하
식생활이 서양화되면서 궤양성 대장염 발병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그 이유와 관련해 궤양성 대장염의 증상과 진단, 치료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궤양성 대장염이란 무엇일까. 궤양성 대장염이란 원인이 불분명한 만성 염증성 장질환으로 대장 점막 또는 점막하층에 염증이 있는 상태이다. 궤양성 대장염의 원인은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북미 지역과 북유럽에서 호발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발병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궤양성 대장염의 증상으로는 복통,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는 혈액이 섞인 설사, 대변 절박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증상들은 대체로 수주일에서 수개월 동안 나타난다. 이런 대표적인 임상 증상은 궤양성 대장염의 침범범위와 중증도에 따라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궤양성 대장염의 진단을 위해서는 의료진이 위에서 설명한 증상이 발생한 시점과 환자의 전신상태, 맥박수, 체온, 혈압, 키, 체중, 복부 검진(팽만, 압통), 직장 수지 검사, 외음부 시진, 구강 내부 시진, 눈, 피부, 관절 침범 등을 조사해야 한다. 또한 최근 감염 장염의 병력, 음식 불내성, 여행력,…
그리스 아테네 남동쪽에 휘메토스(Hymettus)라는 산이 있다. 예부터 유럽에선 여기서 나는 벌꿀을 최고로 쳤다. 지금도 다양한 음식과 식품 재료로 쓰이면서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휘메토스 꿀은 철학자 플라톤이 갓난아기 시절 이 산에 버려졌을 때 벌들이 매일 그의 입에 이 꿀을 넣어주며 성장시켰다는 전설도 갖고 있다. 이를 두고 음유시인 호메로스는 “플라톤의 혀에서 흐르는 벌꿀보다 더 달콤한 연설은 그때 이미 완성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들의 식량이라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꿀을 만드는 벌은 인간이 살기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상에 살았다. 호박에 박혀 있는 가장 오래된 벌 화석은 8000만 년 전 것이라고 하니 놀랍다. 이집트 고분 무덤에는 벌을 제어하기 위해 연기를 피우고 꿀 과자를 만드는 벽화도 있다. 피라미드에서는 약 3천 년 전 꿀단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벌은 벌통에서 약 5㎞를 날아다니며 하루 1만개의 꽃송이를 방문한다. 1초에 200번 날개를 팔락이며 동료에게 채취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정교한 춤도 춘다. 이를 벌들의 언어라 부른다. 벌꿀은 일생 5주간 찻숟갈 반쯤 되는 7g의 꿀을 모은다. 그래서 1kg
추억 /최향란 뜨거워야 사는 복수초 얼음 아래 숨었는데 눈은 잔인하게 밤새워 내렸어 세상은 처음부터 온통 하얬어 라고 그래서 눈보라 치는 어둠 헤치고 오목 안테나 꽃술을 뻗었어 어차피 다른 길 쉽지 않기에 심장 밖으로 툭 불거져 나온 꽃술이야 이게 생의 마지막이라고 털어 놓으니 불안하기만 했던 봄 두렵지만은 않은데, 모르겠어 샛노란 이 꽃잎의 시작 앞에 훤히 드러나는 그리움 사이의 거리 - 계간 아라문학 가을호에서 세상은 항상 존재와 존재 사이에 경계를 둔다. 그 사이에 벽이 존재하기도 한다. 나와 타자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어떤 열매도 자신과 세상 사이에 껍질이라는 경계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 경계는 온도 차이에서 오는 심각한 상처를 최소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뜨거운 사랑이나 뜨거운 그리움도 일정한 경계 밖으로는 얼음짱 같은 차가움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실은 그래서 더 뜨겁기도 하다. 차가운 얼음짱을 뚫고 뜨거운 그리움을 향해 손을 내민다. 경계 밖이 차가울수록 그리움을 향한 염원은 더 뜨거워진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