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함께 몰래 훔친 담배를 피우러 숲속에 간 소년은 마피아 변호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마피아 변호사로부터 상원의원의 살해 사실을 우연히 듣게 된 소년은 자신을 죽이려는 마피아 조직과 그 사건을 해결하려는 정치 검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소년이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년은 전 재산인 단돈 1달러에 여성 변호사를 고용한다. 여성 변호사는 의심에 가득 찬 소년을 진심으로 대한다. 결국 소년의 마음을 열게 만든 그녀는 증거를 확보한 다음 정치 검사와 협상하여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가동하게 만든다. 소년은 모든 신분을 위장하고 그녀가 마련해 준 편안한 보호처로 떠난다.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레샴의 소설을 영화화한 ‘의뢰인(The Client)’의 내용이다. 이 영화는 소년을 지키려는 여자 변호사의 증인보호 프로그램 신청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990년 서울동부지법 건너편 길에서 증언을 마치고 나오던 임모씨가 보복폭행을 당해 그 자리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들을 조직폭력배로 지목한 데 대한 앙심으로 임씨를 살해한 것이었다. 이보다 앞선 1980년에는 서울 남부지법에서 구속된 피고가 법정…
NGO 활동이 활발한 도시의 경우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NGO가 서로 연대를 통해 한목소리를 낸다. 오죽했으면 NGO를 입법, 사법, 행정, 언론에 이은 권력의 5부라고 했을까. 그러나 보수적인 정서가 강한 시골은 사정이 다르다. NGO가 적은데다 활동 환경마저 극히 열악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독립운동 하는 심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7일 여주시 북내면사무소에서 열린 천연가스발전소 환경영향평가 공청회에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항진(50)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SK E&S(주) 측을 상대로 주민피해 방지대책을 요구하던 중이었다. 이때 한 주민이 발언권을 얻었다. “(중략)이 위원장은 여주시에 살지도 않는 분이….” 순간 주변이 술렁였다. 이 위원장은 “저희 집에 한번 모시겠다”고 농을 던져 웅성거림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주민의 발언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 위원장은 29살 때부터 현재까지 여주시 강천면 이호리에서 살고 있어 이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위원장에 대한 지역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
송나라 학자인 익겸(益兼)은 첫째는 정부의 이해와 국경에 관한 말을 하지 말라. 둘째 지방 관리들의 장단점과 득실을 말하지 않으며, 셋째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에 허물과 악행을 부풀려 말하지 않으며, 넷째는 관리들이 시대를 따르고 권세에 기웃거림을 말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재물과 이익에 얼마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를 말하지 아니한다. 덧붙여 타인이 부탁한 서류를 펼쳐보는 것도 안 되며 타인과 같이 앉아 남의 사사로운 일에 빠져도 안 된다. 또한, 남의 부귀한 것을 보고 부러워하고 비방하는 것도 안 되니 여러 가지 일에 침범함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 씀이 어질지 못하다 하였으니 한마디 말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나라의 중대한 일에 사사롭게 입을 열어 공익을 해치거나 나라의 존립까지도 흔들리게 한 이들이 꾀나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공과 사를 구별해 국가의 안위에 어떤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된다. /근당 梁澤東(한국서예박물관장)
민심의 과학화가 여론조사다. 하지만 과학을 동반한 여론조사도 늘 공정성에 도전을 받는다. 누가 질문을 하는지, 어떻게 대상자를 모집했는지, 어떤 단어를 선택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193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루스벨트와 공화당의 랜던 후보가 맞붙었다. 선거를 앞두고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가 무려 1천만명에게 설문지를 보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유권자 4.5명 중 1명꼴이라 오차가 거의 없을 것으로 확신하며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조사에선 랜던이 57%의 지지율로 이긴다는 예상이 나왔으나 뚜껑을 열자 루스벨트가 62%를 득표해 당선됐다. 선거사상 최대 표차라는 기록도 세웠다. 부유계층만을 참여시킨 잘못된 여론조사 표본 추출이 이유였다. 여론조사는 통계학이 빚어낸 과학적 산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처럼 통계에 숨어있는 허점 또한 극명하게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생명인 정치판에서 여론조사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항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 깊이 간여하며 거의 모든 선거에서 위력을 떨친다. 후보자를 선정하고, 선거 전략을 수정하기도 한다. 선거전 판세를 읽는 데도 절
4월을 일컬어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말이 전에 없이 실감케 하는 날씨다. 한 주간에 봄에서 여름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날씨에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입고 춥다고 야단이다. 갑자기 내린 진눈깨비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던 이웃집 목련이 나무에 달린 채 얼어 죽었다. 눈으로 부르면 향기로 대답하던 고결한 자태는 간 곳이 없고 흙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몰골로 비를 맞는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도 못했다. 봄 가뭄에 비를 기다리기는 했지만 간간이 소리를 내며 내리다 밤이 되면서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진눈깨비까지 몰아치고 날이 밝자 산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하얀 능선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춥다고 옷을 껴입고 있는 사이에 맨살에 눈을 맞으며 비명도 못 지르고 죽어간 봄꽃이 떠오른다. 개동백, 진달래, 꽃다지, 냉이, 개나리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마음이 쓰였다. 꽃이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다 때가 있는데 꽃구경 한다고 들떠 요동치는 날씨는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갔다. 이상기온도 사람이 저지른 과욕과 무분별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어떤 준비도 할 수 없고 아무 죄도 없는 연약한 꽃이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감당
OECD에서 주관하는 공기업 개혁을 위한 제22차 작업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파리에 왔다. 한국에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시 개발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돌출하고 있어 도시의 관점에서 파리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도 갖고 있다. 역사 의미가 현실에 살아있는 도시 파리와 서울을 비교하면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파리는 역사가 현실에 살아있는 도시라는 느낌이다. 현대의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기보다는 1800년대, 1900년대 건설된 건물 가운데를 걸어서 지나도록 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물건은 중고품이 되어 값이 떨어지지만, 100년이 지난 물건은 골동품이 되어 고가가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멀리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즐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콩코드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2차 세계대전 중에 처칠 수상이 이야기한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는 어록과 함께 처칠 동상이 서 있다. 성공한 역사와 함께 전쟁 패배의 상흔도 간직하고 있다. 도시는 새로운 건축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 도시는 자신의 색깔을 가지게 된다.…
하얀 축복 속을 달리다 /박노빈 3월의 눈 그 긴 삼동의 아픔 온몸을 추워 떨게 하던 피 흘린 상처가 축복처럼 나를 휩싸고 수많은 베르누이의 흰 꽃이 오로지 나를 위해 휘날린다 비상을 위한 모든 상처들의 저돌 ‘눈’은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이다. 김수영의 시 <눈>에서 눈은 ‘참되고 순결한 생명’을 상징했고,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서 눈은 ‘사랑과 화해’를 상징했다. 이밖에도 눈은 여러 문학작품에서 주된 소재로 등장했는데, 이 시에서 눈은 ‘비상을 위한 상처’를 표상한다. 시간적으로 지난 3월은 겨울과 봄의 경계이다. 봄의 기운에 겨울은 곧 사라지고 말 테지만 막바지로 내리는 눈이 시적 자아를 휘감는다. 이 눈은 곧 지상에 추락하고 녹아내리게 될 테지만 시적 자아는 또 다른 비상을 꿈꾼다. 꿈꾸는 자는 늙지 않는다. 비상을 시도하다 생긴 상처는 아름다운 것이다. /박병두 시인·수원영화예술협회장
교차로 한 모퉁이에 붙어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 특별조사 실시” 어느 주민자치센터에서 붙였다. ‘무한 돌봄 콜센터 ○○○○-○○○○’이란 전화번호까지 들어있다. 지금 우리의 화두는 복지다.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도움이 필요하나 지원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향이 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단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불행한 사례를 접하면 심리적으로 멍한 상태로 빨려 들어간다. 지자체에서 발 벗고 나선 것은 좀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참으로 다행이다. 이 어려운 고비를 넘어가는 우리 보통사람들도 그늘진 곳에서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가득하다. 각 지자체에서는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복지소외계층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며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잘 하는 일이다. 행정기관들이 솔선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늘 있어 왔다. 그런데 용어선택이 다소 어색하다. ‘복지사각지
봄이 창창(蒼蒼)이다. 거리마다 희거나 분홍의 여신들이 처처화신(處處化身)하셨다. 하여, 시 한 수 드린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落花)/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이형기, ‘낙화’ 全文) 모든 것이 그렇듯 필 때보다 질 때, 태어날 때보다 죽을 때, 다가올 때보다 떠나갈 때가 중요하다. 그래서 시인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칭송했는지도 모른다. 한 세상 살다가 가볍게 떠나는 법, 그 중요함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다른 것이어서 떠남에 대한 두려움과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이 필부(匹夫)의 본능이겠다. 일찍이 법정 스님은 자신의 글 모음 ‘무소유’에서 소유와 집착의 어리석음을 이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끊임없는 광음(光陰)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曠野)라는 시다. 시인 이육사는 이외에 ‘청포도’ ‘절정’ 등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웬만한 사람이면 그의 시 한두 구절을 외우지 못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우리와 친숙하다. 또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일관한 삶을 산 그의 인생 궤적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110년 전인 1904년 오늘(4월4일)은 그가 태어난 날이다. 그리고 올해는 그가 숨진 지 꼭 70년이 되는 해이다. 1944년 1월16일 만 40세의 나이로 중국 베이징 주재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기 때문이다. 육사의 40년 평생 일제에 의해 모두 17차례 투옥되었고 이국의 옥중에서 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