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진실과 허위의 경계는 한층 더 허물어졌다. BBC는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아동 성착취물의 증가로 인해 실제 위험에 빠진 아동을 구하는 데 쓰여야 할 시간이 낭비되고 있는 현실을 보도했다. 관련 기관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아동이 혹여나 진짜 사람일까 우려하며 확인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실제 위험에 처한 아동을 ‘가짜’라고 잘못 판단하여 구조에 나서지 않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성착취물에는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허위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성착취물이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생존의 기회를 앗아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성착취물을 또 다른 인공지능으로 식별해내면 되는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주장한다. 기술 잡는 기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기술의 문제를 다른 기술로 막고, 이를 우회하는 다른 기술이 등장하며, 서로의 꽁무니를 쫓는 추격전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단연 기업과 이용자 모두의 기술 윤리 회복이다. 표현의 자유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주지하는 것 말이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여를 우리 국민을 잠 못 이루게 하는 윤석열 정권은 마침내 끝이 났다. 박근혜 정권과 윤석열 정권, 시퍼렇게 살아있는 두 권력을 촛불과 응원봉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갈아치웠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실제로 보면 민주 시민들의 불의에 대한 단호한 의분과 민주제도에 대한 실천적 의지로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정권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 정부가 탄생했고 많은 시민의 환호와 희망 안에서 출범했다. 그동안 답답한 여러 사안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정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추천하거나 정책 제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제안하도록 국민을 독려하고 있다. 정말 상쾌한 분위기로 새 정부가 출범하여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한쪽에서 통합정치를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수의 가장 유명한 말씀 중의 하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어떤 이들은 이러한 논리로 그동안 “상대 당의 주요 인물들을 박해한 자들을 용서하고 통합적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물론 겸연쩍은 표정으로 해야 할 말을 너무도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나처럼 몰랐을까. 몰라서, 신神은 죽었다고 말했을까. 어떤 사람은, 그의 말을 선언이 아니라 절규라고 해석했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목격한 자의 고백이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신은 사랑이고 정의이며 자비라고 했다. 그런 해석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정말 신은 그 해석대로인가. 그러하다면, 신의 이름 아래 벌어지고 있는 온갖 죄악은 무엇인가. 전쟁과 차별과 혐오는 무엇인가. 그것도 사랑인가. 사랑이라면, 피난민의 천막을 조준하는 총구는 정의이고, 어린 학생의 교실을 관통하는 미사일은 자비인가.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은 끝없이 신을 부르짖으며 살아가는데, 정작 인간의 부름에 답하는 신을 나는 아직껏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묻는다. 내 안의 나에게 내가 묻는다. 신은 존재하는가. 거룩하게 살아서 임하는가. 거룩하게 임한다면, 왜 말이 없는가. 도대체 왜, 사랑은 보이지 않고 정의는 부러지고 자비는 도망치는가. 도대체 어느 구석 어떤 경계에 존재하기에 빌고 또 빌어도 대답이 없는가. 혹시, 신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게 아닐까. ‘of our own making.’ 그렇게 태어난 게 종교
운전면허를 갓 취득한 초보 운전자 사이에서 불법 ‘사설 방문 운전 연수’가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정규학원에서 사용하는 자동차와 달리 조수석 연수 강사가 응급 시 사용할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도 없는 자동차로 운행하는 것 자체가 위태롭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일부 비용 절감을 위해 저지르는 위험천만한 행동은 강력하게 제어돼야 한다. 제대로 된 근절·차단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도로교통법상 등록된 운전학원 외 장소에서 유상으로 운전 교육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SNS나 오픈채팅방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이 같은 불법 연수가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온라인에 ‘운전 연수’를 키워드로 오픈 채팅방을 검색하면 ‘장롱 탈출 운전 연수’, ‘드라이빙’ 등 수십 개의 대화방이 나타난다. 이들 중 다수는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통해 연수를 예약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자차 보유 여부, 희망 일정 등을 입력하면 즉시 연수가 연결되는 방식이다. 특히 방학 시즌을 맞아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사이에 운전 연수 수요가 급증하면서 비용과 시간 부담이 적은 사설 연수로 눈을…
어느 토요일, 한 환자 분이 “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라고 인사를 한다. 좋아졌고 편해졌다는 말은 한의사로써 언제 들어도 반갑고 기쁘다. 실제로 자율신경검사 (Heart rate variability;HRV)결과도 개선되었다. 이분은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이나 튀긴 밀가루 음식 혹은 맥주와 같은 찬음식을 먹으면 더부룩하게 소화가 안되거나 설사를 자주 해서 내원하였다. 항상 음식을 먹을때는 소화가 되지 않을까 설사를 하지 않을까 긴장하고 염려하였다고 했다. 한약을 복용하면서 한약의 멀티타겟의 효과로 인해 대변과 소화기능, 그리고 60대가 넘어가면서 쉬 피로해지는 컨디션이 같이 좋아졌다. 한의사의 한약처방은 단일성분이 아닌 복합성분으로 이루어진다. 일부단일성분을 추출하거나 화학적 합성한 성분이 아닌 자연물인 식물 혹은 동물성 약재를 사용한다. 그리고 대개는 더욱 효과적이기에 단일약재보다 여러 종류의 약재를 복합적으로 조합하여 처방한다. 한약처방의 의도는 기계적인 관점으로 국소적 메커니즘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 시스템론적인 전인적인 관점에서 인체라는 복잡계의 에너지시스템의 항상성을 조절해주는데 이 과정에서 멀티타겟, 즉, 다양한 증상군에 효과를 나타낸다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지난해 12월 20일 평택당진항국제여객터미널이 신축 개장했다. 화물과 여객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2007년 전국무역항 항만기본계획 수정계획에 평택당진항국제여객터미널 신설 계획이 포함됐고 이를 바탕으로 2010년 설계, 2015년 착수, 2018년 건축설계 공모 및 실시설계 용역을 거쳐 2022년 7월 착공해 지난해 10월 30일 준공을 마치고 12월 20일 운영을 시작했다. 평택시 포승읍 하만호길 155-40번지 1만 9000여㎡ 일원에 지상 3층 규모(연면적 2만 2051.37㎡)로 건축됐다. 새로 건립된 국제여객터미널 1층에는 입국장·편의시설, 2층에는 출국장·면세점, 3층에는 운영사·선사 사무실 등 다양한 부대시설도 갖췄다. 이전까지는 지난 2001년 준공과 함께 운영된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을 23년 동안 사용해왔다. 이 곳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2022년까지 중국 5개 도시를 연결하는 5개 국제여객선 항로가 운항됐다. 2019년 한 해 동안만 62만 명이 평택항을 이용할 정도로 이용객은 점점 늘어났다. 이에 따라 구 국제여객터미널은 대기실과 주차장 공간이 매우 부족해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게다가 시설의 노후화까
지금 한국 사회는 감정과 이념의 과잉 속에 균형을 잃고 있다. 여론은 순간적인 정서에 휘둘리고, 정책은 단기 대응에 치우치며 방향성을 잃는다. 논쟁은 많지만, 사회적 합의는 좀처럼 결집되지 않는다. 조급한 공론과 감정적 정치가 반복되면서 국가의 장기 전략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감정은 인간 본연의 속성이다. 그러나 이성과 공동체 정신, 더 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이 함께하지 않으면 감정은 편향으로 흐르기 쉽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사회적 혼란의 근저에는 이러한 균형의 붕괴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감정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성과 함께, 공동체와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을 지닌 존재다. 감정, 이성, 통찰이 조화를 이룰 때, 개인은 자기 삶을 넘어 국가와 사회를 책임지는 성숙한 주체로 발전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것도 바로 이 균형 감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사심(史心)’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설계하는 집단 지성이자 시대정신이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방향은 달라진다. 시류에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공과(功過)를 냉정하게 따져 후손을 위
언론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는 분들에게 긴히 청한다. 사람을 하늘처럼 받들겠다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반(反)민주적인 이 퇴영적(退嬰的) 언어로 (나를 비롯한) 숱한 ‘인간’들이 통칭될 줄은 몰랐다. 누구라고 기분 개운할까?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관한 몇 언론의 글들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관형사’가 떠억 그 명칭(총리) 앞에 또 붙었더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집합(개념)인 만인은 그 일인(대통령)의 아래(一人之下)이면서 동시에 총리의 아래(萬人之上)라는 직설적 언어다. 임금 말고는 모두가 그의 아래라는, 왕조(王朝)시대 영의정의 위상을 표현하던 말이다. 대통령이나 그의 대변인, 또는 총리 후보가 그런 말이나 연상(聯想)작용을 부를 개념을 썼을 리는 없다고 본다. 벼락 떨어질 것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대통령의 입’ 강유정 대변인은, ‘어공’이지만, 언사(言事) 계통의 ‘국대급 선수’로 글 계통에서 눈길을 많이 받던 세련된 문필가다. 한국어의 구조, 작동의 원리를 꿴 듯한 평이(平易)하면서 명료한 문체가 특징이다. ‘기자들의 글’도 아는 인사다. 현실적으로는 논란도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과 총리가 사람 또는 (유권자이면서 납세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