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신 곳은 어떠십니까. 제가 머무는 산기슭에는 비가 내립니다. 빗소리는 그윽합니다. 라디오 볼륨을 높여도 빗소리는 멀어지지 않습니다. 음악과 빗소리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안과 밖에서 차분합니다. 아침상을 물리고 길을 나섭니다.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산길을 걷습니다. 가려지는 것보다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습니다. 가리고 싶어도 끝내 가릴 수 없는 것들, 아랫배에 그어진 수술자국 같은 것들, 지금은 잊어버리고 없는 흑백사진 속 아버지의 눈물 같은 것들, 빗길을 걸어 숲에 들면 가려질 수 있을까요. 잣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걷습니다. 여전히 가려지는 것보다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숲길을 따라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뤘습니다. 군데군데 산딸기가 익어갑니다. 숲에서 익어가는 산딸기는 달콤 쌉싸름합니다. 세상살이의 맛도 이러할까요. 어쩌면 나무(木)가 숲(林)을 이루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릅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삼림’(森林)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살림’이 떠오릅니다. 살림살이는 죽임이 아니라 살림입니다. 살림살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입니다. 생명 가득한 삼림처럼, 우리네 세상살이도 그
대학생 박성민이 청와대 청년비서관이 되었다고 해서 잠시 소란이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고려대 재학생이 개설했다는 박탈감닷컴 따위를 보면, 대학 졸업도 않고 취업 노력도 없는데 9급 공무원 시험이나 행정고시 등 공정한 경쟁도 치르지 않고 단박에 1급 공무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시기와 불만이 대부분이다. 각설하고, 일각의 대학 졸업 운운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기로 한다. 11년 전 한 학생이 대학을 그만둔다며 자퇴를 했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은 2010년 3월 10일 고려대 정문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둡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다. 김예슬은 고등학생이던 2005년부터 대학생나눔문화에서 고전을 배우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는 현장을 익히고, 농촌활동을 하며 세상을 알아갔다. 학이시습의 과정에서 훌쩍 커버린 김예슬이 경험한 대학은 죽은 대학이었다. 김예슬은 현재 박노해 시인이 설립한 시민단체 나눔문화의 사무처장이다. 박성민 비서관은 이미 정치인이다. 박성민은 공개 오디션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민주당 청년대변인이 되
사막을 건너 멕시코 장벽을 넘으려던 여자의 심장이 멈췄다 맨발은 더 이상 모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선인장이 가시를 견디고 있다 독수리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견디고 있다 뒤늦게 도착한 국경수비대가 흩어진 소지품을 챙긴다 발을 떠난 신발이 국경을 바라보며 저만치 엎어져 있다 인적이 드문 밀입국로, 성공하기 제일 어려운 루트, 사막과 더위와 가난과 희망, 어느 것이 더 무모했을까 국경수비대는 흐트러진 몸을 담요로 덮어주고 옷깃을 여민다 경고문이 적힌 소용없는 팻말들,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진 말들, 그녀의 마지막 길에 거수경례를 한다 국경을 넘으려는 자동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없는 트렁크 속의 마리화나, 없는 고가의 물건들,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지은 죄가 없어도 액자 속에서 얼어버린 파도 소리가 들린다 심장의 파도 소리가 들린다 새들, 중앙선을 넘고 국경을 넘어 날아간다 공중에서 죽음을 맞는다 국경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약력 ▶서정시학(2006) 신인상 등단. ▶시집 『이혼을 결심하는 저녁에는』
학기가 끝나고 성적을 입력하면서 젊은 친구들에 대한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임시 교편’ 과정에서 좋은 학생들을 만났다. 한 번도 출석에 빠지지들 않았고 과제를 거른 적도 없으며 비대면 수업이지만 학습 태도들도 좋았다. 모두들 훌륭한 점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과제 명은 ‘올리버 스톤의 영화로 본 미국 현대사 1954~1974’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변방의 한국에서 자신의 영화가 역사 공부에 쓰이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영화감독으로서 나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영화 중 ‘플래툰’과 ‘7월 4일생’ 그리고 ‘하늘과 땅’은 베트남전쟁사와 그와 연관된 미국 국내사를 들여다보는 데 있어 최적의 텍스트다. 특히 ‘플래툰’은 미군에 의한 미라이양민학살사건을 그리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 국내에서 반전 운동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거기에 CBS TV 기자이자 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 3부작’은 통킹만 사건에서부터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반정부 게릴라가 연합한 구정 大공세, 치열했던 다낭 전투 등 전쟁 전사(全史)를 복기하며 그려…
실의란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나 세계의 어떤 삶 속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정신 상태를 가리킨다. 실의와 분노 속에 있으면서 그러한 정신상태에 도취하거나, 심지어는 그것을 자랑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태우고 산을 달려 내려가는 말의 고삐를 놓치고도 여전히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이고 모든 사람이 나쁘게 여겨지고, 아무한테나 욕을 퍼부으며 심술을 부리고 싶어질 때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때는 자신을 주정꾼을 보듯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런 상태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상태에 있을 때는 가능한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빨리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은 바로 주정꾼이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말짱해지는 것과 같다. 끝없는 불행은 좀처럼 없는 법이다. 절망은 희망 이상으로 사람을 기만한다. (보브나르그) 인간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불행하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이다. /주요 출처 :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고개 들어 3층 학원을 바라본다. 둘째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원이다. 학원의 불빛이 아직은 밝다. 아들이 학원을 마치고 내려오려면 10분쯤 남았다. 나는 항상 10분 정도는 여유 있게 도착한다. 학원 끝나고 아들이 내려오면 바로 픽업해서 집에 데려가려는 셈이다. 피곤한 아들을 단 1분이라도 빨리 집에 데려가 쉬게 하고 싶은 욕심이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김윤아의 ‘길’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노래 가사가 요즘 나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즐겨 듣는 노래가 되었다. 그때 신호를 받고 탑차가 들어온다. 아마도 생선이나 야채를 배달하는 것 같은 냉동 탑차다. 익숙하고 묘한 동질감을 갖게 만드는 차다. 그동안 관찰해보니 탑차의 주인은 나와 같은 학부모였다. 학원에서 나오는 그 딸의 교복이 아들과 같았다. 어쩌면 아들과 같은 반인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 보았다. 탑차는 내 차를 지나쳐서 학원 앞에 바짝 차를 붙인다. 그때 딸이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탑차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타서 아빠에게 하이파이브를 한다. 보이지 않아도 그 아빠의 으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머리 위에 은발(銀髮) 늘어가니 은의 무게만큼 나 고개를 숙이리. ▶약력 ▶1962년 현대문학 으로 등단 ▶시집 『얼음과 불꽃 투명에 대하여』 외 등 ▶수상 목월문학상 등 ▶현재 성신여대 명예교수
《조국의 시간》이 출간 4주 만에 40만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현재 출판 시장 여건을 고려할 때 경이로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조국 뉘우스’(전상훈)에 따르면 지난 2019년 8월 조국교수가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던 무렵부터 약 4주간 신문과 방송에서 내보낸 조국관련 ‘의혹기사’는 무려 130만 건이 넘었다. 《조국의 시간》을 읽으면서, 사나운 사냥개로 전락한 한국 언론의 실상에 새삼 몸서리쳤다. 검찰이 정보를 흘리면 대다수 언론이 거국적으로 ‘단독’보를 양산하고, 야당이 메가톤급 확성기가 되어 소음을 굉음으로 키운다. 의도한대로 여론이 형성되면 검찰은 수사를 확대하고 정보를 또 언론에 흘린다. 이것이 검찰-언론-국힘당 삼각편대의 진보인사 죽이기 알고리즘이다. 핵심 고리가 언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석열사태’ 전까지만 해도 국내 언론사를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과 한경('한겨레' '경향')같은 진보언론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옛날이야기다. 이제 중앙 일간지와 종편채널, 공민영 지상파방송과 같은 주류언론의 경우, 적어도 뉴스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무한경쟁 환경이 그들을 추락시킨 면이 있지만 환경 탓만은 아니다. 스스로 기득권세력에 편입했다. 그들
아동폭력, 병영폭력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어능력이 전무한 어린 목숨들, 정당방위 불가의 젊은 군인들이 희생된다. 가해자들은 놀랍게도 부모와 상관들이다. 천인공노할 일이다. 가해자들에게 사면이나 감형이 없는 종신형이 국민의 법감정인데 국회는 완행이다. 뿐만 아니다. 산재는 중대재해법을 비웃듯 점점 더 늘고 있다. 2020년 기준, 산재사망자는 총 2062명이며, 이중 882명은 사고사다. 하루 평균 5.6명이 여러 종류의 산재로, 2.4명이 사고로 죽는다. 국회는 전체 노동자의 35%가 일하는 5인 미만사업장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 사고가 가장 잦은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관련법 적용을 3년이나 유예했다. 5인 이상 50인 미만 범주에서 45%의 노동자가 일한다. 김용균군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연초 이 '엉터리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한달 동안 단식투쟁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사람을 살리자는 건데 왜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방해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이 나라 국회다. 씨알들은 이 저열하고 야비한 여야 야합의 3류정치를 지켜보면서, 특히 여당을 손볼 수 있는 방도가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경부 보궐선거' 참패에…
우리 주변을 조그만 돌아보면 우리는 혼돈과 무질서의 어딘가에서 허우적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웅장한 생명의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중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분자는 이전에 누구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였고, 또 앞으로도 누군가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을 결코 소멸하지 않고, 지구 상의 생명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다시 어딘가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분자 단위만이 아니라, 내 몸을 꾸려가는 기본 원리도 살아 있는 세상의 모든 나머지와 함께 같은 원리로 돌아가며 함께 호흡한다. 우리는 진정 우주에 속한 존재이며, 이 귀속감을 깨닫는 일은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그 깊이를 더해준다. (프리초프 카프라) 예수가 당면했던 사회 분위기와 부처가 출현하신 시대, 혹은 당면했던 사회 분위기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형식에 치우친 종교적 관행이라든가, 지식층인 성직자 계급이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욕구를 악용하고 왜곡시키는 작태는 엇비슷했지요.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 모든 걸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러’ 오셨고, 광명과 해방의 길이 모든 인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