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후 강제 종결 표결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만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 반복되자, 필리버스터 신청 정당의 출석을 일정 수준 의무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민주당 의원은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 표결 방식을 현행 무기명 투표에서 전자투표로 바꾸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표결 소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인 이유는, 의견이 다른 상대를 설득하고 양보를 이끌어 내며, 동시에 자신도 일정 부분 양보하는 협상의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단순한 효율성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진 중인 필리버스터 관련 개정안은 결국 절차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본래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점을 간과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정당에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부과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서 시민단체의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떠올리면 역설적이다. 정부 출범 100일이 넘었지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정부의 혁신과 운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시민사회 내부의 요인이다. 4월 4일 윤석열 퇴진을 주도한 ‘윤석열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4월 17일 국회에서 사회대개혁을 위한 정책대안을 발표한 뒤, 6월 10일 자진 해산을 결의했다. 사회대개혁의 후속 노력이 이어지지 못한 채 해산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월 23일, 각계 시민단체들이 다시 모여 ‘국민주권사회대개혁전국시국회의(전국시국회의)’로 통합을 결의하며 새로운 도약의 뜻을 밝혔다.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사회대개혁”을 다짐한 이 결의는 늦기는 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음으로는 국회 중심의 개혁 드라이브가 한 요인이다. 국회는 내란·김건희·채상병 등 이른바 3대 특검을 중심으로 적폐 청산과 개혁 작업을 주도해 왔다. 지난 9월 26일 국회는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하였다. 이제 정부는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출구
'두 번째 커리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정년이 사라지고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무너진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40대 중반 이후의 중장년층에게는 이 변화가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구조조정, 조기퇴직, 산업 재편 등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퇴장'하게 되는 순간, 이들은 다시 한 번 노동시장 문턱에 서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청년 일자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청년 세대를 위한 고용 확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중장년층 역시 대한민국의 경제를 떠받쳐온 주역이다. 지금의 4050 세대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숱한 위기를 온몸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돌아볼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일자리 박람회나 일시적 재취업 프로그램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장년층을 위한 고용정책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
오늘의 한국사회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국내 정치권은 끝없는 진영싸움에 빠져 있고,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으며, 언론은 진실보다 이익을 좇는다.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국민은 분노와 불신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해외로는 대미 관세 분쟁, 북한과의 불안한 신뢰, 한국 기술자의 해외 구금 사건 등이 이어진다. 이 모든 난제의 밑바탕에는 ‘진실의 부재’가 있다. 거짓과 왜곡이 자리할 때 사회는 분열되고, 국가는 갈등에 휘말린다. 그 해답은 이미 100년 전 도산 안창호가 외쳤던 ‘무실역행(務實力行)’, “참을 힘써 실천하라”는 가르침 속에 있다. 도산이 말한 ‘무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거짓 없는 진실, 말과 행동이 하나 되는 성실, 삶 속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행동 철학이다. 그는 “진실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실천하지 않을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거짓말, 허황된 약속, 무책임한 행동이 민족을 병들게 한다는 경고였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불신과 갈등의 뿌리 역시 이 ‘무실정신’을 버린 데 있다. 오늘 한국은 문화·기술·경제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성취 뒤에는 ‘진정성 상
최근 학교 현장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특정 앱을 사용하면 AI가 학생의 학습 수준을 분석하고, 부족한 부분의 맞춤형 문제를 제시한다. 교사는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의 약점을 파악하고,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제시한다. AI가 만들어주는 학습 보고서는 정교하고, 학생 별 진단은 섬세하다. 예전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일이 이제 몇 초 만에 가능해졌다. 교사로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감탄의 순간은 길지 않고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지? 교실에서 학습 관리와 평가, 피드백을 AI가 대신한다면, 교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기술의 도움은 분명 편리하지만, 편리함이 교사의 존재 이유를 희미하게 만들 때가 있다. 척척박사인 AI를 보고 있으면, 교사가 AI로 대체될 확률이 낮은 직업에 속하는 게 맞을까 싶다. 완벽해 보이는 AI는 뭘 못 할까.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 입력된 정보와 패턴 안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낸다. 교실은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 그 이유는 수십 가지일 수 있다.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친구 관계의 갈
“일만 명의 병졸을 얻기 쉬워도 한 명의 장수를 구하긴 어렵다.” ‘맹자’의 말이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 수많은 별이 반짝인다 해도 외로이 비추는 달 하나만 못하고, 높은 탑에 층층이 불을 밝힌다 해도 어두운 곳에 등불 하나 건 만큼 밝지 못한 바와 같다고 하겠다. 민선 8기 ‘동네 일꾼’으로 위상 확보 지방분권 시대다. 지방시대를 이끌어가는 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지역정치를 책임지는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 크고 무겁다. 1991년 지방의회·1995년 단체장 직선제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도래했다. 민선 지방자치 30년이다. 우리 지방자치는 다수단체장들의 위민행정 실천과 함께 지방의원들이 입법 활동·예산 심의·행정사무 감사 등에 힘써 ‘동네 일꾼’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예컨대 민선 8기 지방자치를 책임지고 있는 시·도 지사와 교육감, 시·군·구청장, 각급 지방의원 등은 풀뿌리민주주의를 현장에서 성실하게 착근시키고 있다. 3년 전 주민이 제대로 된 인물을 선택한 곳은 해당 지역의 발전을 가져왔다.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고 생활환경이 쾌적해졌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단체장이 독직(瀆職) 사건으로 구
이어령 선생이 지병으로 타계한 지 벌써 3년 7개월이 지났다. 향년 88세.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필자는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면서 선생을 처음 만났고, 선생의 문학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썼으며,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는 선생을 고문으로 모셨다. 선생과의 만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3년 4월 '문학수첩' 편집위원으로서 ‘대중문화 인물탐방’ 시리즈 첫 순서로 선생과 함께 한 장장 3시간의 대담이었다. 많은 이들이 선생에 대해 ‘세태를 앞서 읽는 눈과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선언’이 전매특허라고 말한다. 1960년대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출발한 선생의 시대 선언 장정(長征)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역설하면서 서막을 열었다. 1970년대의 ‘신바람 문화’는 군사독재 시대에 민족의 열정을 깨우는 목소리로, 1980년대의 ‘벽을 넘어서’는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초대형 국가 이벤트를 이끌며 지구촌의 화합을, 그리고 1990년대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IT강국을 기반으로 한국이 글로벌 정보화 사회의 리더가 되는 길을 제시했다. 2000년대의 ‘디지로그 선언’은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은 ‘청년의 날’이다. 2020년 2월 제정된 '청년기본법'에 근거해 “청년발전 및 청년지원을 도모하고 청년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날”로,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았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청년과 시민이 함께한다. 올해도 청년의 날에 참여하며 자연스레 청년 정책의 의미와 방향을 돌아보게 되었다. 청년 정책은 중앙정부의 '청년기본법'과 지자체의 '청년기본조례'에 근거해, 청년이 겪는 문제 해결을 위한 다섯 가지 영역―일자리, 주거, 교육, 복지·문화, 참여·권리―으로 구성된다. 청년 정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당사자 참여’라 할 수 있다. 청년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반복되는 이직, 세입자로서 마주하는 불평등한 임대차 관행, 곳곳에 남아 있는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등-를 겪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며 새로운 제도를 제안하고 변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진로 탐색과 준비에 집중할 시간을 보장한 ‘청년수당’, 기존 주거급여의 공백을 메운 ‘청년월세지원사업’은 그러한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청년 참여로 만들어진
나는 요즘 그리운 사람이 생겼다. 살면서 난감한 지경에 처했을 때 찰진 욕설로 우리의 맘을 속 시원히 뚫어주던 욕쟁이 할매 고 김수미 배우다. 그녀가 감정을 끓어 올려 구수한 욕을 한마디 뱉으면 울컥하던 속이 가라앉고 그 억센 목소리에서는 시원한 감정의 해소를 넘어 묘한 따뜻함과 위안을 얻었으며 독설 같지만 위선 없는 솔직한 그 말들에 우리는 크게 웃었다. 고 김수미 배우의 ‘맛깔난 욕’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그렇다면 욕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아마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께 했을 것이다.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는 상하관계를 무너뜨리는 욕이 옛날부터 엄격히 통제 되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신을 모욕하는 욕이 금기시 되었다. 오늘날 세상은 스마트하게 발전해 가며 우리에게 더욱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와 점잖은 척 하는 매너를 요구하고 우리는 대부분은 그럴싸한 언어로 포장된 일상을 보낸다. 욕은 감정을 억제하고만 살 수 없는 인간에게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저마다 그럴싸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순간을 산다. 친구의 배신, 부당한 대우, 억울한 누명,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골목에서 인간은 울거나 욕이라도 해야 할 때 욕도 못하면 우울은 속으로…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에는 출입문이 셋이다. 임금이 가마를 타고 드나드는 가운데의 큰 문과, 고관대작을 비롯하여 창덕궁에 볼 일 있는 사람들의 출입문인 양쪽의 작은 문 2개다. 임금이 창덕궁 밖으로 행차하는 일은 드물기에 가운데의 큰 문은 보통 굳게 닫혀 있다. 그러니 돈화문 큰 문틀 속의 풍경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는 ‘죽은 풍경’이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신비로운 역사 풍경이라 해도 일상적으로 볼 수 없으면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화문 앞쪽 진입로 끝의 계단 아래 양 옆에 서서 바라보면 양쪽의 작은 문틀 속에도 북한산 보현봉의 웅장하고 거대한 화강암 정상이 쏙 담겨 있다. 가운데의 큰 문틀보다 작기는 하지만 그 또한 엄청 아름답고 신비롭다. 게다가 보통은 가운데의 큰 문이 잠겨 있어 작은 문틀 속의 풍경은 더욱 빛났고, 그 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은 그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무성한 나무가 보현봉을 많이 가리니 아쉽다. 아무리 아까워도 옮겨심기를 바란다. 하늘 아래 우뚝한 북한산의 보현봉은 하늘의 명을 받아 조선을 다스리는 임금을 상징하고, 그래서 돈화문 문틀 속의 풍경은 임금의 풍경이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이제 진짜 출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