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두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의인(義人)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이다. 그는 ‘인간은 신과 악마 사이에서 부유(浮遊)한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을 놓고 아는 만큼만 평가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서는 선악의 개념도 아적(我敵)의 가름에 종속된 지 오래다. 지독한 진영논리에 중독된 가치관들이 세상인심을 곧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남기고 간 숙제가 무겁고 또 무겁다. 13일 공개된 생전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충격적이다. 그 기간이 무려 4년 동안이었다는 점도 그렇거니와 언어로, 문자로, 때로는 물리적으로 지속해온 추행의 양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이 나라 최고의 명성을 지닌 인권변호사요 시민운동가가 아니었다면,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이라고 불리는, 지도교수의 성추행 사건을 만천하에 드러낸 선각자가 아니었다면 충격이 좀 덜했을까. 일방적 주장이긴 하지만, 박 시장은 피해자를 수시로 집무실 또는 휴게실 침대로 불러 “셀카 찍자”, “안아달라”고 하며 신체 접촉을 꾀했고, 다리에 든 멍 자국을 보며 “호-해 주겠다”며
100세 백선엽 장군아 타계했다. 장군의 장남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이나 대전이나 다 대한민국 땅이고 둘 다 현충원”이라며 “아버지가 지난해 건강했을 때 이미 대전에 안장되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고 전했다. 백선엽 장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워커 중장은 1950년 8월 1일 ‘워커라인’이라는 낙동강방어선을 설치했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고 못 박았다. ‘Stand or Die!’ 비장한 명령을 내렸다. 낙동강전선을 죽음으로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인 것이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시 낙동강방어선에서 다부동을 사수하여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6·25전쟁 영웅이다. 백선엽 장군을 대전현충원에 모셨다. 다부동 참전용사 4명과 육군 장병 4명이 칠곡 다부동 등 백 장군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8곳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고 한다. 의미있는 일이다. 백 장군은 생전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유지와 함께 다부동,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등 이른바 8대 격전지의 지도를 그려 전쟁기념관 관계자 등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모든 이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사명이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강제구 소령은 훈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민심의 질타를 받는 중인 정부·여당이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잇달아 나오는 두더지 잡기식 정책들을 빗대어 ‘사지도, 팔지도, 살지도 말라더니 이젠 물려주지도 말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불거진다. 부동산 정책이 온통 ‘강남’만을 조급하게 시비하는 쪽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강남의 장점을 여러 곳으로 분산해 다수의 명품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귀가 솔깃해진다. 정부는 7·10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취득세율을 현행 주택가격의 1~4%에서 8~12%로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내년 6월부터는 2년 미만 단기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이 현행 40~42%에서 60~70%로 높아지고, 다주택자에 대한 10~20%의 양도세 중과세율도 20~30%로 올라간다. 다주택자 투기의 ‘우회로’로 거론되는 증여에 대해서도 증여 취득세 상향 조정 등을 통해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불로소득’인 부동산 시세차익에 대해 관용은 없다는 기조와 다주택을 이용해 소득을 추구하는 일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재확인일 것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4일 “지금의 주
그동안 공동주택 경비 노동자에 대한 일부 입주민의 심각한 ‘갑질’ 행위가 잇따라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에 경기도는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개정안을 최종 결정했다고 14일 발표했다. 경기도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은 2000년 경기도가 만든 공동주택 관리 또는 사용 기준 안으로써 각 아파트는 이 관리규약 준칙을 참조해 자체 관리규약을 만들고 있다. 경기도의 이번 개정안은 경비원, 미화원 등 공동주택 관리노동자에 대한 폭언·폭행 등 갑질 행위 금지를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명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 제14조 업무방해 금지 등에 ‘관리주체, 입주자대표회의, 입주자 등은 공동주택 내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경비원, 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 등 근로자에게 폭언, 폭행,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라는 문구를 추가한 것이다. 개정된 준칙은 공동주택 단지에서 활용하며, 전체 입주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관리규약을 개정하게 된다. 최근 경비노동자들의 갑질 피해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데 이 준칙 개정안이 어떤 효과를 거둘지 알 수는 없다. 그나마 이제라도 바람직한 공동주택문화의 합리적 기준이 마련됐다는
“그게, 솔직히 모르는 것도 많고 도움 요청드릴 일이 많다 보니 괜히 폐가 될 것 같아서요.” 얼마 전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조카가 필자에게 경험담을 얘기한다. 줄곧 회계업무만 보다가 단독으로 기획일이 맡겨지니 뭐가 뭔지 몰라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 끙끙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직장과 사회의 현장에서의 변화와 혁신은 실행력을 담보하지만, 실행력은 현장에서의 질문과 요청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즉,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면서 함께 알아가고 그것을 실행시켜가고, 그것이 곧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힘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질문이나 요청하는 것을 여전히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큼은 스스로가 해내는 주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은 주도적이라는 의미를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를 하는 것일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과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기억하자. 진정 부끄러운 것은 알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화분 연대기 /안명옥 화분 하나 오래 놓였던 자리 자국이 남아 있다 새 화분을 들이고 한 구석으로 밀려났던 화분 내버려둔 시간 동안 저 홀로 견디며 큰 잎사귀에 가려져 그늘을 품고 산 화분 이제 때가 된 거야 음악처럼 중얼거리며 들어보니 화분이 가벼워졌다 힘들던 시간 네가 없었더라면 집은 사막과 같았을 거야 누군가를 기다리던 뒷모습을 닮은 한 존재가 그렇게 떠나갔다 꽃 피우던 시절을 기억하는 한 우린 늙지 않는 것 자꾸 베란다가 허전해 서성거린다 지는 잎들이 바닥에 흥건하다 ■ 안명옥 1964년 화성 출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시와시학’ 제1회 전국 신춘문예, 시집으로 ‘칼’과 ‘뜨거운 자작나무숲’ ‘콤한 호흡’ 출간. 서사시집 ‘소서노召西奴’, 장편 서사시집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창작동화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 ‘금방울전’, ‘파한집과 보한집’, 역사동화 ‘고려사’ 등이 있고 성균문학상, 바움문학상, 만해시인상, 김구용문학상 등 수상.
“학습됐을 법도 한데, 그게 쉽지 않네요.” 날카로운 폭발음과 함께 4층 콘크리트 건물이 힘없이 내려앉았다. 2018년 세계인의 주목과 기대 속에 진행됐던 4·27 판문점 선언과 그 상징으로 여겨졌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년여 만에 파국을 맞는 모양새다. 잊힐만하면 반복되는 남북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접경 지역주민들이다. 일상생활 제한으로 겪는 불편함을 넘어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준전시 상황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와 염려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간단한 이삿짐을 머리맡에 두고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 동향에 가슴 졸이는 이들에게 정상적인 삶터로의 복귀는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사건 직후, 경기도는 경기 북부 접경 지역 5개 시군을 대상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위한 관계자 출입은 물론 관련 물품의 준비, 운반, 살포, 사용 등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더불어 이를 어길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달린다. 경기도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41조를 강조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배치된다는 전문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결국 실제 형사
장마철이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비 오는 날 창밖 풍경도 그전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도로가 저벅저벅 잠기면 세상은 물그림자를 머금은 채 매끈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카미유 피사로가 그렸던 풍경화의 감성이 절로 떠오른다. 당시 피사로는 파리의 숙소에 머물며 창밖에서 바라본 거리와 광장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시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어 실내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완성된 작품들이 차분하고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슬기롭지만 어쩔 수 없는 집콕 생활을 해야 하는 요즘 우리들의 사정에도 잘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오페라 거리, 몽마르트 언덕, 튈르리 광장 등의 풍경은 시간대별로 그리고 계절별로 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작품에 펼쳐지는 시간과 계절의 변화가 어찌나 섬세하고 탁월한지 감성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중에서도 1898년에 완성된 ‘비 오는 날의 오페라 거리’는 안개 낀 하늘과 흠뻑 젖은 도로의 표현이 일품이다. 비 오는 날 차분한 감성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이 작품을 찾아서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하지만 피사로가 감성적인 표현을 추구한 화가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집이다. 비어 있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처마 밑으로 앙증맞은 집 한 채가 눈에 보였다. 이럴 수가, 요즘 보기 드물다는 제비 가족이, 어머니 떠나시고 홀로 남아있던 그 집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빈 집 가득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로 채우며 제비 한 쌍 연거푸 드나들고 있었다. 문지방에 앉아 왁자한 제비가족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온 가족이 다시 모인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요즘은 제비가 살기 힘든 세상이라 했다. 처마가 있는 집도 잘 없거니와 먹이사냥이 용이한 논을 끼고 집을 마련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라니. 요즘같이 험난한 세상에, 남향 그것도 낮은 처마에 어미 아비 비상 대기 할 전깃줄까지 나란히 준비된 집을 턱하니 구하다니. 기특한 고 녀석들, 쉼 없이 먹이를 잡아다 차례차례 새끼 제비에게 먹이는가 하면 새끼가 엉덩이를 쳐들 때마다 하얀 똥 하나씩 받아 물고 나가기도 했다. 바쁜 어미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 아비 들 때마다 입만 벌리고 밥 달라 졸라대는 새끼제비 보다말고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새끼일 때는 도무지 모를 일이다. 나도 새끼일 때는 몰랐었다. 어미 아비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 오는지, 집안은 왜
1960년대에는 ‘오정 싸이렌’이 있었다. 오전 12시에 소리를 내는 기계를 수동으로 돌려서 소리를 내주는 것이다. 벽채에 매달린 기계속에는 여러개의 기어가 있어서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여러겹의 기어가 연결되어서 마지막 기계속에서는 동그라미 부품이 아주 빠르게 돌아가면서 웽~하고 참매미 소리를 내준다. 이 소리는 근동 4~5㎞밖에까지 들렸다. 그래서 밭에서 논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12시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전이나 이 싸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들판의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배꼽시계’와 하늘의 해를 바라보고 오전과 오후를 가늠해야 했다. 600g을 다는 저울도 귀했다. 1978년 면사무소에서 상공담당을 했다. 정육점, 채소가게 등에서 쓰는 저울을 검사하는 업무를 도왔다. 당시에는 계량기술이 약했다. 전통시장 이전 재래시장, 5일장에서는 막대에 눈금을 박은 저울로 무게를 달았다. 저울대에 3.75㎏ 무게의 무쇠추를 올리고 나무저울대와 무게를 맞춘 것으로 보이는 동그란 접시 위에 고기, 농산물 등을 올려서 수평이 되면 1관이라 했다. 이른바 저울을 통일을 하는데도 긴 세월이 걸렸다. 지금은 소고기 한근에 600g이라 하지 않고 아예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