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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 핸들과 바퀴

 

소사역 앞이 분주합니다. 성모병원 쪽으로 뚫린 굴은 삼 번 출구입니다. 장례식장도 가톨릭대학도 그쪽에 있습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재개발 공사가 한창입니다. 집은 뜯기고 땅은 파였습니다. 재개발 공사로부터 자유로운 건물은 성당뿐입니다. 그래설까요. 그쪽을 향해 굴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에는 늦가을이 만연합니다. 아니, 설익은 초겨울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까요.

 

일 번 출구 역시 붐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소사지구대 방향인데, 길을 건너면 오십 층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나이 지긋한 동네를 헐어내고 새롭게 지은 젊은 아파트 단지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걸 도시재생이라고 부릅니다. 주거재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당신과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새것이 대접받습니다. 번뜩이고 아찔한 신상일수록 귀한 몸값을 받습니다. 집도 옷도 차도 신상이라야 값을 쳐줍니다. 패션도 기술도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묵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게 나와 당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신상이 아닌데도 대접받는 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뿐입니다. 골동품이거나 보석이거나 주식이거나 땅문서가 아니고선 내밀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나섰으니까, 열 시쯤 됐을까요. 도로에 그려진 횡단보도 표시를 보며 길을 건넜습니다. 일 번 출구를 나와 소사지구대 맞은편 방향으로요. 오십 층 아파트가 서 있는 그쪽 말입니다. 깜짝 추위에 머플러로 목을 감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였겠지요. 마주치는 사람들도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맞은편 도로에 서 있는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서 있었는데 신호가 바뀔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글쎄요. “말 좀 물읍시다.”라고 했는지, “길 좀 물읍시다.”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나는 건 내 앞을 가로막은 할아버지의 자전거 앞바퀴뿐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여든도 넘어 보였습니다. 끌고 서 있는 자전거 역시 지긋하게 나이를 먹었고요. 어찌 가야 하느냐고 물은 곳은 전철로 삼십 분쯤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두 정거장 가서 환승도 해야 했고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자전거 타고 갈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하면서요. 너무 멀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어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알려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알려드리긴 했지만 발길을 돌리기 힘들었습니다. 덜그럭거리며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무르팍이 내 아버지의 흑백사진 같아서, 기우뚱거리며 나아가는 바퀴 두 개가 추레한 나의 어제와 내일 같아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감추고 멀뚱멀뚱 서 있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자전거가 눈에 밟혔습니다. 생각할수록 사람과 자전거는 닮았습니다. 사람이든 자전거든, 넘어지지 않으려면 쉼 없이 발을 굴러야 합니다. 방향을 정하는 건 핸들이지만 나아가는 힘은 바퀴에서 나오는 것도 같습니다. 결정은 머리가 하지만 몸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바퀴 두 개가 서로를 밀고 당기듯이 사람 또한 누군가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무언가에 기대서 살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어제를 밀어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신뢰에서 나옵니다.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든 개의치 않고 기댈 수 있음 또한 그래서일 겁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까. 나는 멈춤 앞에 서서 건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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