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도취돼 오로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서 국민의 참사마저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한 말이다. 이 언급으로 김 대표는 국회 윤리위에 제소당했다. 민주당의 말들도 만만치 않다. “X를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명예교수를 두고 ‘돌팔이 과학자’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석학이,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에 의해 한순간에 돌팔이가 된 것이다. 정치권은 지금 누가 막말을 잘하나를 두고 경쟁에 돌입한 듯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정치권이 막말 경쟁에 돌입하면, 무당층의 수는 늘어나게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무당층의 지지를 받기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이런 것을 모를 리 없는 정치권은 도대체 왜 이런 막말 경쟁에 돌입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무당층이 늘어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론조사가 있다. 지난 7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7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3.8%, 표본오차는 95% 신회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안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무당층이 30%에 달했다. 지난 6개월간 한국갤럽 정례 조사에서의 무당층 평균 비율은 27.4%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30%를 돌파했음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막말 경쟁”을 그만둘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양당 지지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힘이 33%, 더불어민주당이 3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일단 두 정당 모두 지지율이 높은 편이 아니다. 또한, 두 정당 간의 지지율 격차도 거의 없다. 이런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어떤 정당도 승리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도층의 지지 확보보다는, 자신들을 “격하게”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확실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고 각 정당은 생각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극적인” 표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하지만 강한 자극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수단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막말은 강성 지지층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겠지만, 이런 막말에 익숙해진 강성 지지층은 더 강한 막말을 원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막말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적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그것이다. 정치적 상대방을 증오하게 되면, 정치는 사라진다. 정치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가능해지는 존재인데, 상대를 증오한다는 것은,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미 실종됐다. 이제는 국민이 나서 실종된 정치를 찾아야 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것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제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전문가와 국민을 대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발전 방향 수립을 위해 의견을 수렴하였다. 내년으로 다가온 노인 인구 1000만 시대를 목전에 둔 정부는 인구 구조가 고령화됨에 따라 점점 높아지고 있는 노후 안정화 욕구와 가족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해 2012년부터 5년마다 장기요양 기본계획을 수립해 오고 있다. 기본계획(안)은 ‘초고령사회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장기요양보험’이라는 비전 아래 노인들이 각자 살던 곳에서 충분하고 다양한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장기요양시설을 내 집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한 방안들을 담고 있다. 노인복지와 노인돌봄의 핵심축인 ‘재가요양’과 ‘시설요양’ 서비스의 선진화를 위해서 노후의 생활을 든든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장기요양보험의 보장성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보험제도와 노인 정책 개선과 함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시설(요양원, 요양병원)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관리 방안 마련 또한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역 내 노인의 건강한 삶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요양종사자를 격려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시설요양 체계의 선순환적 발전을 위해서는 시설 운영자의 사회적기업가정신이 요구되며 이는 요양종사자들에게도 필요한 것으로 이를 통해 균형 잡힌 경제적가치와 사회적가치 창출이 가능해진다. 사회적기업가정신은 사회적가치를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 기업가적 원칙과 관행을 이해하고 활용함을 말한다. 사회서비스 제도와 정책을 기반으로 운영자의 지나친 이윤 추구를 지양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요양종사자의 열악한 근무조건 개선과 존엄케어 역량 강화가 더해질 때 정부 정책과 기업 그리고 종사자 모두가 잘 어우러지는 질 좋은 사회서비스가 완성될 것이다. 시설 운영자는 시설 본연의 수익창출과 지속 성장이라는 목표 달성 노력과 함께 문제(존엄케어, 요양서비스 질 저하 이슈 등) 해결을 위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자의 기업가정신 및 역량이다. 당면한 사회서비스 문제에 대한 이해와 조정능력, 시설 운영을 통해 어떤 영향력을 사회서비스 이용자에게 주고자 하는지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재가 요양과 시설 요양 모든 영역에서 요양종사자들의 역할과 책임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운영자가 스마트한 요양종사자 양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을 동행자로 여길 때, 요양종사자들은 시설 운영과 연관된 문제들을 공유하게 되고 운영자와 머리를 맞대고 솔루션들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재가요양 서비스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가정과 주야간 보호시설을 연계한 재가요양 체계 보완과 함께 방문 의료체계 구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의료가 배제된 채로 진행되어온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사업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시군구에서 지역 자율형 통합돌봄 모형으로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케어 사업이 절름발이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의료와 돌봄체계가 잘 융합되도록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합돌봄 사업에서 의료 역할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정부뿐만 아니라 핵심 이해당사자인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주거·의료·요양·돌봄서비스 체계가 공고히 구축될 것이라 기대한다.
작년 겨울 유난히 추운 주말 야간근무 날이었다. 아이가 고열이 나면서, 경련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현장에 출동했다. 일반 출동의 경우 대개 구급대원들은 출동하면서 환자의 과거력을 파악하며 가상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나 소아 출동의 경우 인근 소아청소년과 진료 가능한 응급실 병상을 확인하는 과정이 더해진다. 이전에는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응급실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대기하는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날도 경련 중인 아이를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느라 한참이 걸렸다. 주변 응급실에 문의했는데 10분 거리에 있는 응급실들은 소아청소년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안 된다고 답했다. 인근에 있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전화해보니 진료는 가능하지만 2~3시간 대기해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지난 6월 중순 모 중앙일간지의 단독보도로 널리 회자된 국정원의 인사파동은 찜찜함과 윤 정부 내내 국정원이 제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져주었다. 윤 정부 출범 초기 새로운 국정원 지도부가 잡은 방향은 대체로 맞았다. 올해 연말로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고유기능이자 국가 수호의 근간인 대공수사에 박차를 가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고 방향잡기였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을 되살린 것도 가상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향설정이 구체화되고 조직에 내재화되기 위해서는 3급 이상 간부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 출범 초기 인사철학과 인사 방향이 대단히 긴요했지만, 기조실장이 조기에 낙마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데 이어 또다시 인사문제가 불거진..
경기도에 있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이 고객사로부터 ESG(기업의 사회·환경적 활동까지 고려하여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업성과지표) 또는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 관련 요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도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지구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RE100 이행은 서둘러야 할 최우선 과제다. 경기도는 물론 각 기초자치단체의 행정력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1월 19일~2월 28일 경기도 소재 RE100 관련 기업 44곳(대기업 28, 중소기업 16)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이 넘는 52.3%(23곳)가 고객사로부터 ESG 또는 RE100 요구를 받았고, 절대다수(98%)가 RE100 이행과 관련한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중소·중견기업의 81.3%가 RE100에 대해 준비 부족(10개)이거나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3개)고 답했다. 대기업도 64%(18개)가 준비 부족이라고 밝혔다. 가장 시급한 사항으로 재생에너지 물량 확보(23.5%), 재생에너지 투자 및 구매를 위한 추가 재원 확보(21.2%), RE100 이행 수단에 대한 정보(17.6%) 등을 언급했다. 유럽연합(EU)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2019년 기준 15.3%, 서유럽 국가로 한정하면 40%에 육박한다. 2021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6.7%에 불과하다. 경기도의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은 도내 소재 글로벌 RE100 기업 58곳 전력 소비량의 12.8%에 그치는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 캠페인인 RE100은 가입 후 1년 안에 이행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성과를 점검받는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60%, 2040년 90%로 올려야 자격이 유지된다. 한국 기업의 가입은 2020년 6곳에서 2년 만에 21곳으로 증가했다. 2022년 들어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KT, LG이노텍 등이 합류했다. 올해 말 RE100 가입을 검토 중인 삼성전자도 해외 사업장부터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의 RE100 가입이 더딘 이유는 국내 재생에너지의 발전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기업들이 지자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재생에너지 부지발굴과 공급’을 꼽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경기연구원 조사 참여 기업의 79.5%는 RE100을 위한 기업과 지자체 간 협의체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중앙정부의 기조와는 상관없이 경기도와 기초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성은 뚜렷하다. RE100은 이제 거부하면 세계 산업시장에서 도태를 각오해야 하는 절대조건으로 이미 등장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모두 집중해야만 한다. ‘재생에너지 부지발굴과 공급’에 목말라하는 관내 기업들의 여망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는 최선을 다해 부응해야 한다. “이게 뭐지?”하고 눈만 껌벅거리고 어물어물할 때가 아니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2년 전쯤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무대는 세르비아의 군용 무기 고물상이다. ‘니콜라 막수라’라는 한 예술가가, 매주 이곳을 방문해 예술 재료를 찾는다. 고물 무기더미에서 예술재료? 그것도, 가급적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무기들, 또 가급적 전장의 핏자국이 얼룩진(물론 은유다. 살상무기를 선호한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무기들을 고른다. 그 섬뜩한 살인무기들은 이 예술가의 손을 통해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M70소총과 군용 헬멧으로 만든 기타, 바주카포와 군용 가스통으로 만든 첼로, 탱크로 만든 타악기.......등이다. 막수라의 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참전용사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하고 싶습니다.” ‘처치 못해 쌓여있는 무기 고물더미’는 세르비아의 상흔을 말해준다. 그 ‘상흔’이란 유고슬라비아 분열 과정..
100년 전, 일제 치하, 경상도 진주에 국채보상운동, 3.1 만세 운동, 학교설립, 백정 해방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젊고 의로운 인물이 있었다. 백촌 강상호(1887년생) 선생이다. 국채보상운동 경남 책임을 맡았을 때, 스물 한 살이었다. 진주공립보통학교(진주초)의 학무위원이 된 건 스물 아홉. 그 무렵, 긴 가뭄과 대홍수가 지역사회를 초토화시켰다. 이웃들은 쌀독이 비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백촌은 양친과 함께 곳간을 열었다. 그리고 동네의 가가호호에 부과되는 호세ㅡ주민세와 유사한ㅡ10년치를 대신 냈다. 거금이었다. 서른 살이었다. 4-50대 중견인사들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나 할 수 있는 일들을 그 나이에 농부들 벼 베듯 해낸 거다. 훗날 주민들이 백촌의 자당을 기려서 시덕불망비(施德不忘碑)를 세웠다. '베풀어주신 은혜 잊지 않겠다'는 착하고 아름다운 합창이다. "부족한 곳 누추한 마을 복전을 돌보아 농사짓게 해주시고, 천금을 바르게 쓰시어 많은 집이 돈을 얻으니 그 혜택이 산과 바다와 같으매 은덕이 높고 넓음을 돌에 새겨 잊지 않고 백세에 전하리라 1917년 가좌리 주민 일동" *복전(福田:복을 거두는 밭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가난한 사람들, 또는 그들의 밭을 가리킴)" 질풍노도의 10대 소년에게 스승은 이 훌륭한 부모였다. 그 덕에 상호는 조선팔도에서 보기드문 품격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삶을 이미 100년 전에 온몸 온맘으로 실천한 지행일치의 선각자가 된 것이다. 3.1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들불처럼 번질 때도 당연히 주도하였고 지독한 옥고를 치렀다. 석방되자마자 일신학교 설립과 동아일보 창간에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신간회에도 핵심으로 관여했다. 그는 이 특별한 이력들의 연장선에서 일생일대의 혁명적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인권운동사의 굵은 획을 그었다. 이름하여, '형평사 운동'이다. '저울(衡)처럼 평등하고 공평한(平) 세상(社)'의 창립을 주도했다. 선생은 어느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마을청년들이 백정의 아들에게 개를 잡으라고 시켰는데, 이를 완강하게 거부한 그 젊은이를 때려죽인 것이다. 백촌은 그 사건을 계기로 백정해방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분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겉으로는 모두 평등해졌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저 맞아죽은 청년이 증거 아닌가. 1923년 4월 25일. 형평사 창립일. 금년이 100주년이다. 해방후 이승만이 아니라, 품위있는 정치세력이 건국의 주체가 되었다면, 세계 인권운동사에 길이 빛날 이 날은 국경일이 되었을 것이다. 백촌은 이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에 가슴, 머리, 시간, 관계, 재산을 다 던졌다. 단기간에 40만 명의 백정들이 뭉쳤다. 이에 가족을 비롯하여 그간 다정하게 지내던 지인들 대부분이 백촌을 공격했다. 심지어 부친도 반대했다. 가까운 지인들조차 백촌에게 '新백정'이라며 대들었다.혁명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렵고 편치 않은 것이다. 역사는 그 저항을 뚫고 나가는 소수에 의하여 진보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0년만에 창업정신에서 너무나 흉하게 벗어났다. 일제가 혁명을 돈싸움으로 배후조정한 것이다. 그는 손을 뗐다. 백촌의 재산은 마침내 작은 오두막집 하나뿐이었다. 그는 부총리였던 인촌 김성수에게 "산속에 들어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다"고 썼다.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둘이 만났을 때는 인촌도 시한부 생명이었다. 백촌이 세상 떴을 때(1957년 11월 12일. 71세), 미망인은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끼니꺼리도 남겨놓지 않고 먼저 죽으면 우리 새끼들하고 어떻게 살란 말입니꺼?", 원망하며 땅을 치고 통곡했다. 피울음이었다. 장남이 중학은 간신히 마쳤으나 고교진학은 형편이 안되어 포기하고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진주농고를 다닌 것은 실로 다행이었다. 구국영웅의 후손들은 왜 이렇게 예외 없이 남루한가. 법칙처럼... 백촌은 '진주에서 역대 가장 큰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비석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훗날 익명의 독지가가 비석을 세워주었다. 논개사당과 함께 진주의 자부심인 형평탑은 시민사회가 모금하여 세워졌다. 가장 큰 후원자는 역시 '어른 김장하' 선생이셨다. 나는 과연 그 품격인생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살아낼 수 있을까. 그게 내 삶의 목표다. 아무쪼록, 형평운동의 21세기 버전ㅡ남녀ㆍ빈부ㆍ학력ㆍ지역ㆍ외국인 노동자ㆍ성소수자 차별 등의 극복을 위한 다양한 운동ㅡ이 100년 전 그 위대한 정신을 뿌리 삼아 역사에 남는 성과를 내기 바란다. 그날이 진짜 해방절이다.
7월 8일부터 16일까지는 경기도가 정한 ‘2023년 경기바다 여행주간’이다. 경기도는 김포·시흥·안산·화성·평택시 일대에 260.12㎞ 길이의 해안선을 품고 있다. 따라서 해수욕장과 섬, 문화유적, 자연 풍경 등 볼 것이 많고 먹을 것,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거리가 가까우니 시간과 경비도 그만큼 적게 든다. 버스나 전철, 여객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여름 휴가철이 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사실상 종료되면서 해외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향하는 한국여행객의 수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로 하락한 엔저 현상까지 덮치면서 일본 관련 여행상품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항공권과 여행 패키지 상품 등을 취급하는 인터파크와 트리플에 따르면 지난 5월 27일부터 6월 26일까지 한 달간 결제된 일본 투어&액티비티 상품 총 판매량이 전월 비 53% 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면서 국내 여행수지 적자폭은 커지고 있다. 여행수지 적자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소비보다 한국인이 해외에서 사용한 금액이 더 커지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분기(1~3월) 여행수지 적자 폭은 32억3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9년 3분기 이후 3년 반 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 4월의 적자폭은 5억 달러나 됐다. 그렇다고 해외여행을 자제하라고 국민들에게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력 있는 국내여행지를 발굴하고 지속 홍보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경기도 바다여행은 매력이 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김포 애기봉, 대명항과 함상공원에서 시작해서 요트 성지인 화성 전곡항, 제부도해상케이블카, 바다처럼 넓고 호수처럼 고요한 평택호관광단지와 인근의 수상 레포츠 시설, 동화에 나오는 듯한 시흥 오이도의 랜드마크 빨강등대와 낙조, 오이도 선사유적공원, 안산 대부도의 방아머리 해변이 대표적이다. 잡힐 듯 보이는 섬 여행도 좋다. 그 중에서 경기관광공사가 섬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청정 자연의 아름다운 섬을 6월의 여행지로 추천한 바 있다. 서해바다의 수려한 풍경을 감상하는 제부도, 숲속 둘레길과 해안 데크길을 걸으며 힐링하는 국화도, 태고의 신비 간직한 기암괴석 홍암(紅岩)을 만날 수 있는 입파도, 사진가들이 인정하는 야생화의 낙원 풍도, 소박한 섬사람들의 이야기와 일몰이 아름다운 육도가 그곳이다. ‘2023년 경기바다 여행주간’에 이런 곳들에 가면 혜택이 있다. 음악회가 열리며,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7월 1일부터 여행 플랫폼 ‘야놀자’와 연계, ‘경기바다 여행주간 숙박&레저 특별 기획전’을 개최한다. 5개 시 숙박 667개소와 레저 35개소의 상품 등을 최대 5만 원까지 할인 제공한다. 시흥 웨이브 파크, 화성 선셋 요트투어, 제부도 케이블카, 김포 현대유람선’등이다. 8일부터는 이무진, 소유, 렌. 양지은, 김태연 둥이 출연하는 경기바다 힐링 음악회, 경기둘레길 갯길 구간 힐링 걷기 등 다양한 행사와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니 큰 부담 없이 훌쩍 떠나 경기바다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래 전의 일이다. 분당에서 책모임 할 때 당시 대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이른바 운동권 선배들을 좌파 꼰대로 지칭했다. 그들에게는 좌파나 우파나 한물 간 ‘올드 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시각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운동 세대라는 자부심이 무너져 내리면서 아리고 쓰라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긍하게 되었다. 몇 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80년대의 획일주의와는 정반대의 다원주의 사회가 들어섰다. 둘째, 어떤 현상이든 종합적으로 봐야하는 사회가 되었다. 민주주의나 정의 등 굵직한 개념도 사안별로 들여다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지난 시절의 지식은 달라진 시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과학도 많이 깊어지거나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물리학 등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런데도 이른바 민주화 운동 시대의 산물인 586 정치인은 변화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실용주의 시대에 걸 맞는 어젠다 설정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살인적 양극화에 따른 불평등 해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케케묵은 민주 대 반민주 논리로만 일관한 것이다. 독재 시대가 끝 난지 오래된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에 유령을 붙들고 퍼포먼스만 해대니 누가 이들에게서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걸겠는가? 더욱이 586의 최고 무기인 도덕성도 땅에 떨어졌다. 부패하고 노회한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숱한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다 수사 대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두둔하기까지 한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 탄압이 아니라는 건 팩트다. 대장동 사기사건 등 대부분의 수사는 문재인 정부의 박범계 법무장관 때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게다가 상당 부분 이 대표 개인의 범법 행위이기도 하다. 급기야 민주당 당 대표 선거 돈 봉투 사건이 터지면서 586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닌가 한다. 대표주자 격인 송영길은 극구 부인하지만 민주당 내에서조차 위기의식이 대단한 걸 보면 상황이 결코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 송영길의 대응을 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정치 탄압으로 몰아 독재 대 민주의 논리로 치환하면서 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끌어 들여 “지금 한가하게 책방이나 할 때가 아니다”라는 상황인식 착오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기동민, 김영춘 등 586 정치인들이 업자에게 돈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드문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져 국민의힘당과 무엇이 다른지 많은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덕성 면에서 국힘당이 낫다는 여러 여론 조사 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그런데도 586 정치인들은 뼈 깎는 반성은커녕 무엇이 잘못됐느냐고 항변한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무능과 부패에 눈 감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는다. 이는 586이 구제불능임을 뜻한다. 고쳐 쓸 수 없는. 4·19 세대인 김광규 시인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를 통해 어느덧 기성세대가 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들은 부패하지 않았다. 정치 권력화도 없었다. 소시민이 된 그들의 타락은 그만큼 순수했던 것이다. 스스로 종말을 맞은 저 586 정치인들에 비한다면.
지난 5월 말부터 6월 초에는 여자야구 아시안컵 대회가 있었다. 아시아 12개 나라가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국 야구 여자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덕분에 월드컵 그룹 예선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남자 프로야구의 엄청난 인기를 생각하면, 야구 국가대표 대항전이라 꽤 화제가 될 법했다. 예상 외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여자야구 아시안컵 1위는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인 일본이었다. 세계 랭킹 1위의 벽은 높았다. 일본의 야구 수준이 한국보다 높은 걸로 정평이 나 있으니 이 정도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아쉬웠다. 언젠가부터 일본은 야구를 포함해서 다른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모든 종목에서 말이다. 축구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을 목표로 할 때, 일본은 16강은 기본이고 8강을 목표로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남자배구는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일본은 올림픽 8강에 진출했다. 많은 종목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량 차이가 보인다. 우리는 옆 나라와 이렇게까지 차이 나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 일본은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이 잘 구성되어 있다. 일본 중학생의 64%가, 고등학생의 42%가 운동부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운동부를 지원하며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취미로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일본 고등학교 야구 대회인 고시엔의 명 경기는 바다 건너 한국에까지 가끔 회자되곤 한다. 일본에서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다 재능이 보이면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 무대를 뛰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학창 시절에 재밌게 운동하다가 나중에 그 종목을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더라도,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주력 운동 하나쯤은 갖게 된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만 프로 무대를 뛸 수 있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학생 때부터 시작하는 풀뿌리 체육은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일까. 한 달 전이었던 6월 초에 학교 스포츠클럽 풋살 종목 대회에 지원단으로 다녀왔다. 초등, 중등, 고등으로 나뉜 리그에서 여자 친구들이 열심히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뭉클했다. 함께 지원단으로 있던 분들과 우리 어린 시절에도 이런 활동들이 있었으면 지금보다는 더 건강한 어른이 되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도 큰 부상자 없이 대회가 진행되어 다행이었다. 교육청에서 주관한 대회라서 메달이나 트로피 수여 같은 시상식이 계획에 따로 없었다. 깜짝 이벤트처럼 심판과 경기 감독관을 맡아주신 고양축구협회에서 어마어마한 시상식을 준비해오셨다. 1~3위 팀 전원 메달 수여, 우승컵과 MVP상, 감독상까지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아이들은 트로피를 들며 우승 세레머니를 하고, 메달을 깨무는 사진을 찍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길에 내년에 대회를 또 나오자고 결의를 다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아이들이 더운 여름 날 풋살장에서 뛰는 게 풀뿌리 체육활동이 아닐까 싶다. 클럽 소속이거나 선수 출신은 스포츠클럽 대회에 등록할 수 없었기에 왕초보였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날 대회에서 뛰었던 친구 중에 축구에 흥미를 느낀 아이가 있었고, 그 친구가 제 2의 지소연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스포츠클럽 대회가 훗날 고시엔 같은 대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