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5회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11일 끝났다.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라며 자괴감을 곱씹어야 했다. 동아일보가 8월 14일 전현직 잼버리 준비와 운영에 참가한 전현직 책임자 11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보도했다. 이 가운데 본인이나 소속 기관에 책임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일을 하다 잘못될 수 있다. 개인이나 국가나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면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반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할 때는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과도한 질타를 받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솟게 한다. 누가 봐도 이번 잼버리는 국제 망신이다. 근래 우리 사회엔 그릇된 풍조가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국민의 찬사를 받을 만..
11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폐영식이 열렸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세계적 행사지만 안타깝게도 잼버리 역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잼버리 대회의 무능한 개최로 대한민국 국격이 추락”하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국제 행사라는 불명예를 자초했다”고 비난했다. 사전 점검, 일정 관리, 사후 조치 부분에 대한 국가 시스템이 붕괴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들이 많다. 실제로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각종 논란과 의혹이 터져 나왔다. 부실한 행사 준비, 관련 공무원들의 외유성 해외출장, 참가자들 간 성범죄 의혹까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폭염에 대원들이 쓰러져 실려 나갔다. 그늘이 있는 휴식공간이 부족했다. 곰팡이 달걀이 배급됐고 행사장에 입점한 편의점은 바가지를..
전쟁이 끝나자 경북 성주에서 대도시 대구 변두리로 이주한 우리 집에는 70년대가 되자 손님맞이가 잦았다. 성주의 일가친척들이 대구 나들이를 할라치면 대부분 우리 집에 들러 숙식을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해방전후 좌익활동 여파로 고향을 등져야 했던 아버지는 그 시절 찾아오는 고향 손님치레로 큰집 맏아들 역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엄마와 자식들은 찢어지는 살림에 주린 배를 더 졸라매어야 했다. 자식들은 갱죽조차 배불리 못먹어도 혹여 손님이 올세라 쌀 한되박은 고이고이 모셔두어야 했고, 우리는 윗묵에 둔 걸레가 꽝꽝 얼어붙는 방에서 자다가도 손님이 오면 아랫묵이 절절 끓도록 군불을 넣고는 인근 이모댁으로 피신해야 했으니.. 그래야 손님에게 할 도리를 다한 것이라 여긴 살림살이에 간난신고가 오죽했겠는가? 우리 집만 그런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원래 그랬다. 국민 생존권보다도 손님맞이가 우선이었던 때, 88올림픽 때는 미관상 서울의 판자촌까지 깡거리 밀어버렸다. 나는 심지어 87년 민주화투쟁과 직선제 쟁취 조차도 ‘88올림픽 성공개최’라는 명분이 적잖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불과 7년전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군사정권이 87년이라고 무력으로 진압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허나 그랬다간 다음해 올림픽에 국제적인 보이콧 운동이 일어날게 틀림없었다. 지금에 빗대면 미얀마의 쿠데타정권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꼴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한 측면으론 손님맞이가 민주화까지 앞당긴 셈이다. 그런 전통 때문에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등 무수한 국제행사를 유치했고, 좀 과하다 싶을만치 손님맞이에 진심인 덕분에 겉으론 번듯하게 치루어내지 못한게 없었다. 그런 대한민국이 물이 흥건한, 그늘하나 없는 땡볕 매립지에 4만3000명의 손님을 재우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손님들이 먼저 보따리를 쌌다. 단군이래 처음이다. 지금까지 국민은 개돼지로 취급하더라도 손님들에게 이런 적은 없었다. 왜 이 지경이 벌어졌을까? 난 두 가지가 의심스럽다. 첫째, 정권 전체가 잼버리에 관심이 없었다. 뭘 한다니 한번 들러서 사진만 찍고 홍보하면 그만인 행사였다. 왜 그렇게 무관심했을까? 잼버리가 수도권이나 대구경북 권에서 열렸다면 과연 똑같이 대응했을지 나는 궁금하다. 둘째, 시작부터 의도가 불순했다. 생명의 보고인 새만금 해창갯벌을 메워 잼버리 영지로 만들었다. 잼버리를 디딤돌로 새만금을 개발하고자 하는 목적이 앞섰다. 대충 행사 치른 후 개발에만 목을 매다는 사람들이 야영지 정비에 뭐 그리 애착이 있었을까? 이는 중앙정부의 무능과 지방정부의 불순한 의도가 어우러진 역대급 재난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으면 염불조차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달이 나면 부끄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문제가 터진 후 보여주는 추태에는 참담함을 넘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집권한지 15개월이나 지난 정권이 전 정권 탓만 하면 도데체 당신들은 언제쯤 되어야 자신들이 집행하는 사안에 책임을 질 작정인가? 그렇게 책임지기 싫으면 아예 자리를 맡지를 말던가.. 왜 늘 부끄러움은 국민들의 몫이던가? 권한이 많은 자의 무능조차 죄악일진데 무능보다 나쁜 것은 염치가 없는 파렴치함이다. 우리는 언제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의 진심어린 사죄를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들이 하나 남은 수라갯벌을 메워 공항을 짓겠단다. 국민 해먹기 환장할 노릇이다.
심리학자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는 사람들은 ‘제3의 공간’을 원한다고 주장했는데, ‘제3의 공간’이란 사람들에게 삶의 균형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학교와 직장이라면, 사람들은 두 공간을 벗어나 제3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캠핑을 떠나고 멋진 카페와 공간을 찾아가는 이유가 바로 아름다운 풍경과 매력적인 공간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고 배우며 일상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이다. 크리스티안 미쿤다는 ‘제3의 공간’이라는 책에서 제3의 공간을 이루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첫째, ‘랜드마크(land mark)’로 건축물이나 공간이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한다. 둘째, ‘몰링(malling)’으로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 ‘콘셉트 라인(concept line)’이다. 공간이 전체적으로 일관된 느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넷째, ‘코어 어트랙션(core attraction)’이다. 사람들 눈길을 확 사로잡는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기업들은 제3의 공간을 마케팅 전략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뉴욕의 나이키타운, 코엑스 별마당도서관 등이다. 공공건축물인 공공도서관도 제3의 공간으로서 지역사회에 문화적 영향력을 주고 있다. 영미권, 유럽 등 선진국들은 도서관 측면에서도 앞서간다. 네덜란드의 DOK중앙도서관, 로테르담도서관, 일본의 다케오시립도서관, 프랑스 오스카 니마이어 도서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도서관 등은 아름다운 건축미뿐만 아니라 제3의 공간으로서 시민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한다. 이들 도서관은 문화적 영향력으로 낯선 이방인들까지 관심을 갖게 하는 관광지가 됐다. 우리나라는 도서관법에 따라 광역대표도서관을 두게 되어 있다. 경기도의 대표도서관인 경기도서관은 광교신도시 경기융합타운에 연면적 2만7775㎡, 지하 4층, 지상 5층 규모로 짓고 있다. 현재 공정률은 20% 정도이며 2024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경기도의 인구가 1400만 명에 이르고, 2022년 기준 도내 31개 시군의 공공도서관은 309개로 타 광역보다 가장 많다. 경기도가 도서관 정책 측면에서도 리더십이 필요하다. 도시의 문화와 시대정신을 가장 신속하게 반영하고 보여주는 문화적 거울의 요체는 도서관이다. 경기도서관이 매력적인 제3의 공간으로서 앞에서 이야기한 네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베이스캠프’로 놀이와 배움이 있는 도서관, 시민의 삶이 성장하도록 돕는 도서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의 샘’이 되길 기대한다. 또한 미국의 실리콘밸리도서관시스템처럼 경기도의 31개 시군의 도서관을 연결하고 협력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경기도서관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문제에도 적극 대응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5대 사회난제인 인구위기극복, 기후변화대응, 지역활성화, 사회적약자배려, 정보격차해소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도서관이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도서관이 되길 희망한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미래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을 선보여야 할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연일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4만 여명의 참가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실망도 아픈 대목이지만, 이들이 전 세계에 전송하고 있는 sns상의 부정적 이미지들은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역대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왔던 국제행사가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격을 실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파행의 원인은 정치적인 문제도 예산상의 문제도 아니다. 순전히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다. 문제가 됐던 폭염과 태풍, 해충은 갑작스러운 일도 불가항력적인 일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새만금의 8월 습하고 무더운 날씨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주무부처..
부모도 처음부터 부모는 아니었다. 누구의 아들이고 딸이었다. 아들로 딸로 살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깊이가 신뢰감을 만들고, 그 사랑이 오롯이 내 아이들에게 전해져 세상에서 질서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덴마크계 독일인으로 미국 최초의 소아정신분석가인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 1902~1994)은 생애초기, 즉 0~2세까지를 신뢰감의 형성의시기라고 했다. 신뢰감이 만들어지는시기에 아이에게 먹는거, 자는 것, 싸는 것 등 기본적인 생명과 관련있는 욕구가 주양육자인 부모로부터 충족되지 않으면 불신감이 생겨서 세상을 믿지 못하고 세상속에서 무질서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어떠한가? 자식의 자존감을 낮추게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전철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안지키는 아이를 나무라면 "내 아이 내가 혼낼테니까 그러지마세요"라고 아이 앞에서 아이를 감싸며 대꾸도 없이 휙~ 돌아서서 간다. 못났다. 요즘 부모교육을 할 때 나는 이렇게 부모들에게 얘기한다. 사랑할수록 아이를 20%부족하게 키우라고. 20%는 아이 스스로 발버둥치며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통해 채워가는 거라고. 하지만 엄마들은 20%가 아닌 120%를 채워서 아이가 상처받고 실패하지 않고 꽃길만 걷기를 바란다. 아이의 삶을 망치는 지름길인줄도 모르고. 솔직히 말해서 실패와 좌절없는 꽃길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단단하게 키워야 한다. 요즘 사회가 시끄럽다. 부모의 갑질사태, 교사의 극단적 선택, 교사들의 분노 등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교육계의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교육자의 한사람으로 이번 사태를 보며 이제는 더 이상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부터는 부모로 부터 아들과 딸로 살면서 세상을 믿고 신뢰하고 질서를 지키는 생활을 배우지 못했다면 교육을 통해서 다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제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학교로 보내서 공부를 시키기전에 부모부터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모 학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부모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야만 한다. 부모가 배워 아이들에게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부모양육코칭'이다.
지난 4일 발표된 한국갤럽(8월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여론조사, 응답률 13.7%,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정당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힘 32%, 더불어민주당 31%, 무당(無黨)층 32%였다. 일각에서는 무당층이 이렇게 증가한 적은 없다며 그만큼 양당 정치의 폐해가 크다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하기 힘들다. 이 정도 규모의 무당층은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240여 일 앞둔 시점이었던 2015년 8월 1주 조사(한국갤럽)에서 나타난 무당층은 34%였다. 여기서 20대 총선 240여 일 이전 조사를 언급한 이유는, 21대 총선은 일반적인 선거였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은, 탄핵이라는 대한민국 정치사 초유의 사태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치러진 선거였을 뿐 아니라, 코로나19가 엄습해 국기 결집 효과가 극대화되던 시점에서 치러진 선거였다. 일반 선거이론으로 21대 총선을 분석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인데, 오히려 2015년 8월 1주 당시가 지금보다 무당층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무당층이 급증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양당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무당층이 된다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무당층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무당층은 이른바 '참여형 무당층'이었다. 양당에 실망해 선호 정당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투표일이 되면 투표장에 가는 '무당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무당층은 다르다. 양당을 싫어해 무당층이 됐다는 점은 과거와 유사하지만, 요새 무당층은 “정치 혐오 집단”으로 남는 성향이 강하다. 이런 성격의 무당층은 선거 때 투표하러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여기서 주목할 측면이 있다. 신당과 무당층의 관계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무당층이 많아지면, 신당의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참여형 무당층'일 경우에는 이런 주장이 맞겠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 혐오형 무당층이 다수라면, 이들이 신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즉, 무당층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신당이 성공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거대 양당의 지지층을 잠식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기 때문에 진영 논리가 강해질수록 신당이 성공하기는 어려워진다. 더구나 신당이 추구하는 목적이 뚜렷하다면, 선거 즈음해서 창당하기보다는 선거 훨씬 이전에 창당해야 논리적 타당성을 갖지만, 현재 언급되는 신당중에는 그런 당을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용 정당으로 비쳐지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이래서는 기존 정당의 지지층을 잠식하기 어렵다. 현재 신당 중 몇 개가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지난 2021년 대구에서 이른바 ‘청년 간병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중병을 앓아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장기간 홀로 돌봐오던 20대 청년은 징역형을 받았다. 생활고에 시달려 온 청년은 뇌출혈로 입원치료를 받아 온 아버지를 간병해왔지만 병원비를 부담하기 어려워지자 퇴원시켰다. 퇴원 후 방치상태였던 아버지는 사망했다. 이 청년에 대한 비난이 일었지만 동시에 요양병원 간병비 지급을 제도화하지 않는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했다.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의료정의실천연대, 장애인건강권연구소,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는 24일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요양병원간병비 행정입법 부작위 헌법소원심판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청년이 “병원비로 월세와 공과금이..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에서, 여러 특수학교에서의 자원봉사는 나의 인식을 일깨워주는 심오한 경험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오전에 한해서 특수교육의 보조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것이 훌쩍 넘어서는 도전이었음을 금방 깨달았다. 생소한 특수교육의 현장에서 야외 학습과 수업을 도와주면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그리고 더욱 가혹한 시각을 가지게 됐다. 다양한 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그 곳에서, 특수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존경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단지 몇 시간 동안의 시간을 장애 학생들과 보내는 것조차 어려움이었다. 그런 어려움이 큼으로써, 오후에 회사로 가기보다는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필요하게 느껴졌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한 역할은 그저 보조일 뿐이었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 그 대가로 드는 책임과 노력은 특수교사들이 안고 있었다. 그 학교에는 다양한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모였다. 몸이 불편해 독립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학생부터, 일반 학생보다 지적 능력이 뒤떨어지는 학생들까지 그 범위는 다양했다. 일반적인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 국어, 미술, 음악 등의 과목도 가르치지만, 그 수업이 모든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각 학생의 수준에 맞추어 수업을 구성하고 진행했지만, 아쉽게도 많은 시간이 성과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그런 상황을 좌절로 여기지 않고, 차근차근, 한 단계씩 학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했다. 그들의 끈질긴 정성에도 불구하고, 특수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의 교육 과정에서 부모님들의 지속적인 협조가 부족한 상황에 종종 직면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투자한 노력과 열정이 가정 교육과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다 보니, 학교에서의 노력이 항상 성과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때로, 선생님들의 교육과 훈육에 비하여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은 선생님들에게 큰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었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과 돌봄을 제공했다. 그들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학생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소속 특수교사인 배재희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교사들이 학생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소개하고 있다. 강남 일원동의 밀알학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나 또한 교사들이 매일 흘리는 노력과 애정을 목격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참을성을 지키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들의 아름다운 헌신은 그 자체로 희망의 메시지였다. 또한, 밀알학교에서는 인라인스케이팅을 가르치는 중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스스로 힘으로 스케이트를 타며 뛰어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웃음과 즐거움, 그리고 자신감은 마치 '모세의 기적'을 연상케 했다. 아마도 그 순간이 바로 교사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특수교사들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사명감과 헌신으로 가장 힘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헌신은 영웅적인 행위를 넘어선 무언가를 표현하며, 이를 통해 그들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장애 학생의 부모가 교사를 비난하고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방 속의 녹음기는 교사의 헌신과 노력을 무시하고, 그들의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교사는 갑작스럽게 범죄자로 몰리며 사회적인 비난을 받았다. 나 자신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내 짧은 자원봉사 경험에도 불구하고 고소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을 제지하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다. 특히, 강력한 힘을 가진 학생들을 제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을 물리적으로 제약하거나 훈계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편향적으로 기록한다면, 아동학대 혐의로 인해 고소될 수도 있다. 가끔은 뉴스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접하곤 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그런 선택을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학교의 교사들은 이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며, 이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그들의 노력은 이 나라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이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게 될 재판부, 검사, 그리고 판사들에게 나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하루라도 특수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해보는 것. 그럼 그들이 매일 천사처럼 감내하는 힘든 일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러나 동시에 가장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는 8월 15일 한국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 ‘오펜하이머’가 상영될 예정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루면서 핵무기를 꺼내들고 위협하고 있고,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쏟고 있는데다, 중국이 핵능력 확충과 더불어 첨단기술 탈취에 혈안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영화 개봉은 여러 함의를 던져준다. 오펜하이머는 유태계 독일 출신 물리학자로서 2차 대전 막바지 미국과 영국이 추진한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원자탄 개발을 주도한 인물로서, 1942년 나치 보다 먼저 원자탄을 개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에서 함께 일하던 과학자들을 불러 모았고, 이 중 12명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