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포퓰리즘병이 재현되고 있다. 최근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 특별법과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이 각각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됐다. 이 법안들은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등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여야가 나눠갖기에 담합한 셈이다. 나아가 국회는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앞으로 선심성 포퓰리즘 사업이 난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국민의힘이 ‘1000원 아침밥’ 사업을 전 대학으로 늘리자 더불어민주당은 그 대상을 청년 산단 근로자로 확대하는 계획을 내놨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사사건건 평행선을 달려온 여야지만 총선이 다가오자 예산 풀기에는 한통속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정 악화를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치열한 정쟁으로 치닫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기초연금 인상, 전국민 최대 1000만원 ‘기본대출’ 등 여야가 경쟁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067조원으로 처음으로 1천조원을 넘어섰고, 향후 4년간 국가채무 이자만 10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음이 켜져있다. 고물가·고금리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답답하다. 그런데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던져 논란이 일고 있는 ‘국회의원 정수 30명 감축’은 더욱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의원 축소는 국민 모두가 박수칠 일이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증원안이 제시됐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없었던 일로 할 때까지 일언반구없다가 뒤늦게 의원 정수 축소안을 빼든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줄 수 있을까. 여당은 진심을 몰라준다고 억울해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 차원에서 먼저 당론으로 의결하는 게 순서였다. 민주당도 ‘국면전환용’ ‘인기영합주의’라고만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동안 민주당은 다수 의석으로 대부분의 법안 처리를 민의로 내세우며 밀어붙였다. 민주당이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당임을 자처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의원수 줄이기에 머리를 맞대야 마땅하다. 혹시라도 집권여당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내년 선거를 치르려 한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에 치러진 16대 총선(2000년)에서 의원수를 26명 줄인 전례가 있다. 얼마전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방출 대응 차원에서 일본을 다녀왔지만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비판이 일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몸 동작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자기혁신과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정부 여당이 최근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보류한 것도 포퓰리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지금 세계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모든 것을 걸어도 모자랄 판에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돼선 안된다. 내년 총선에서 정치권의 제1의 임무는 제대로 된 공천과 국익과 민생을 챙기는 지속 가능한 정책 발굴이다. 임기 내내 구태를 보이다가 선거 임박해서 혈세로 표를 달라하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다.
한국 정치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정치개혁을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외치는 정치개혁이 국민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이유는 언행일치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편, 정치 기득권 타파, 거대양당 체제 극복 등 정치개혁 아젠다를 내놓았지만 국회의원삼선제한, 국회의원국민소환제,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 정치문화를 개혁하는 법과 제도 개선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득권이 기득권 체제를 스스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검사, 판사 등 법조인, 고위공무원, 중앙 언론인, 교수, 대기업 CEO 등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왔던 사람들이 서로 밀어주면서 그들만의 정치를 해 온 결과가 지금 한국 정치문화의 부끄러운 현주소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는 자기 행위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기 행위의 탓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은 없고 정쟁만 난무하는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서 국민의 삶은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밥 한 공기 다 비우기”를 정책이라고 내놓는 것을 보면서 정치인의 철학과 진정성을 생각한다. 국회는 4월 10일부터 나흘간 전원위원회를 개최하여 토론회를 열고 있다. 국민이 뽑은 대표들이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토론을 한다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첫날 토론회를 본 소감은 실망이 너무 컸다. 정치인들의 유체이탈 화법, 남탓하기, 정쟁의 연속이었다. 정치후진국인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선거제도 개혁을 맡기는 것이 옳은가. 선거제도 개혁의 주체는 당연히 국민이 되어야 하고 국민이 주도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읽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문화에 사상이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위대한 정치인은 위대한 사상가였다. 19세기 사상가였던 존 스튜어트 밀과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밀과 토크빌의 정치사상을 비교 분석한 책 《위대한 정치》를 보면 밀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토크빌은 새로운 자유주의를 지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다는 것, 즉 사상적 지향점과 일관된 삶을 살았다. 둘째, 글쓰기를 통해서 공부하고 정치적 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다. 셋째, 현실정치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자 사상가였던 밀과 토크빌을 읽으면서 한국의 정치문화에 사상가로서 정치인이 존재하는지 묻게 된다. 정치권은 여의도정치, 현실정치라는 말을 한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현실적이지 않고 여의도에만 갇힌 정치가 계속된다면 희망이 없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가치 앞에서 국민이 주인인 위대한 정치를 바라는 것은 너무 과분한 소망인 것일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이란 새어나가게 마련이니 그만큼 말조심하라는 뜻이겠다. 늘 이놈의 새나 쥐가 골치였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무슨 일을 처리할 때 아예 “쥐도 새도 모르게”하라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쥐나 새가 우글거리는 동네에 살면서 모르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인데.. 애초 미군기지 바로 옆으로 대통령실을 옮길 때 야당에서 보안관련 우려를 제기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알다시피 미국은 도청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전력이 화려하다. 2013년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전직 미국 국가안보국(NSA) 계약요원 스노든의 기밀자료 폭로사건이 있었다. NSA와 영국의 GCHQ 등 정보기관들이 전 세계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 사찰해온 사실을 드러낸 것이었다. 스노든 사건으로 전 세계에서 비..
3월 2일 대통령이 재외동포청 신설 내용이 담긴 ‘정부조직법’ 공포안에 서명했다. 3개월 내 출범을 앞두고 인천광역시를 비롯한 여러 지방정부들이 유치전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해외동포들도 희망지역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미주,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의 해외동포들은 인천과 서울을 주로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신문(14일자 인천판 1면)은 전체 재외동포의 38%(2020년 12월 기준 263만여 명)가 살고 있는 최다 거주국인 미국 한인사회에서 재외동포청 인천 유치를 잇따라 지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미주 한인의 정착과 지위향상, 고유문화 보존 및 주류사회 진출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미주한인회총연합회가 지난 10일 인천시에 ‘재외동포청 인천 유치 지지선언문’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연합회는 재외동포를..
효과적인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는 지자체가 강제성 없는 ‘행정지도’만 할 수 있다 보니 시간 낭비는 물론 즉각적으로 시정돼야 할 불공정 비리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피해를 키우는 일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권한을 광역시·도가 공유함으로써 감시·단속과 시정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모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맹점 6곳이 분쟁조정신청을 접수한 경기도기 분쟁 해결에 나섰지만, 프랜차이즈 본사가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조정은 결렬됐다. 도는 가맹점주‧본사 조사, 현장 방문, 대표이사 면담 등 3개월간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강제 권한이..
‘도시재생’이란 쇠퇴하는 도시에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기능 부여로 도시를 사회적·경제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을 말한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어떤 도시를 원했고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현 정부 들어 도시재생 사업이 크게 수정되고 사업 규모가 축소되는 모양새이다. 작년 7월, 도시재생사업이 전면 개편되어 경제거점 조성과 지역특화 재생이 강조되며 기존 5개 사업유형이 대폭 간소화되고 효율적인 공공지원을 위해 지역 기반의 주민 체감도가 높은 사업에 집중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 1호 마을인 서울 종로구의 창신동 마을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도시재생을 연장할지 도시재개발을 시작할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주민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 보존되고 삶의 질 또한 개선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도시재생사업은 2017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추진되면서 하드웨어 중심의 주거복지 사업 중심에서 주민이 주도하는 사람 중심의 사람복지사업으로 진화하였다. 도시재생사업 지원 기간 내에 주민 역량강화 사업이나 주민공모 사업 등으로 주민 참여형 비즈니스모델 기획과 사업화를 잘 이루어낸 마을들의 경우, 지원 기간 이후에도 주민 주도형 사업으로 전환을 이루어내고 지속가능성 확보는 물론 우수한 사업성과를 거둔 사례들을 보여준다. 인구감소와 일자리 축소, 사업체 감소 등으로 나타나는 지방소멸 위기 해소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지역의 정체성과는 동떨어지고 기능적으로 필요한 시설만을 반영한 도시 건설은 지양되어야 한다. 살 맛 나는 지방시대 목표달성을 위해 도시재생사업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재생 측면과 생활기반을 재생하여 지역 주민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마을은 생명체와 같이 변화하며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며 유기적으로 살아 숨 쉬는 공동체다. 저성장시대에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노쇠해 가는 도시와 마을을 정비하는 새로운 재생 방법이 필요하다. 지역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그에 해당하는 기능들의 재정립이 필요하며 똑같이 복제되는 마을이 아니라 지역의 특색이 살아있는 정비, 쇠퇴 되어 가는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나오는 창의성과 다양성으로 도시를 구성하고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주민역량을 확보하고 강화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 ‘지역다움’이야말로 대체할 수 없는 콘텐츠이며 역동적인 힘으로 도시재생의 새로운 물결이 일어야 한다. 지역 자원 발굴과 지역 문제해결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되고 명실공히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으로 탈바꿈되어야 한다. 새로운 이웃으로 청년들이 마을에 유입될 수 있도록 정주 여건이 개선되고, 청년 창업지원, 청년문화 조성, 청년과 원주민들이 함께 하는 공동 사업 개발 등을 통해 원주민과 새로운 이웃들이 함께하는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는 대상지가 늘고 있다. 국비지원이 끝났다고 해서 주민조직이 와해되고 마을사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주민주도형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사회적경제 정책이 잘 연계되어 지원되길 바란다.
국회에서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20년 만의 일이다. 이라크 파병 기간 연장을 놓고 전원회의가 개최된 이후 처음인 것이다. 이번 전원회의의 주제는 선거제 개편 문제다. 그런데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난데없이 국회의원 정수를 30명 줄이자는 제안을 들고나왔다. 이런 제안을 하게 된 이유는, 국민 대다수가 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의 “실언 시리즈”가 여론의 주목을 받고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런 제안을 들고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국민의 수는 17만 명이어서, OECD 국가들의 지역 대표성 평균을 두 배 넘게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원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 국민들이 무조건 국회의원 증원을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권을 가진 이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국회의원 증원안을 들고나온 것과 현재 국민의힘의 감원 주장을 비교할 때, 얼핏 반대 방향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쪽은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고 하고, 다른 한쪽은 줄이겠다고 주장하지만, 자신들의 특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 공통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야 모두 국회의원 수를 둘러싼 “숫자놀이”를 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특권을 먼저 포기하겠다고 하고, 국회의원 수를 논하면 국민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런 제안들을 고민하겠지만, 특권 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고, 그저 국회의원 수만을 가지고 말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반감만 높아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정말 문제다. 절대 액수로만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월급)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GDP 대비로 따져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높은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의원들 월급을 반으로 깎아야 한다. 그 이외에도, 국회의원 보좌진을 국회 사무처 소속으로 돌리고, 입법 활동 시 필요한 경우에 국한해서 지원받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의원들의 운전기사의 경우, 국회 사무처 소속으로 만들고 “의전상” 필요하다면 국회 사무처에 신고하고 차량 운행의 도움을 받게 만들어야 한다. 의원들의 출퇴근까지 국민 세금이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의원들이 외국에 나갈 때,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거나 세금으로 비즈니스석 등을 이용하는 관례도, 전면 금지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특권 폐지는 개헌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이는 의원들 자신들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국회의원이 먼저 특권을 포기하면, 국민들은 의원 정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는 의원들의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왕의 나라 조선의 역사에서 정도전은 신권국가(臣權國家)를 꿈꾼 발칙한 혁명가였죠. 태종 이방원에게 되치기당해 뜻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당시 정도전의 이상에 동조한 여론이 있었다는 것은 무소불위 왕권국가(王權國家)에 대한 민심의 저항이 만만찮았다는 정황을 반증해요. 조선의 역사를 아예 ‘신하의 나라’로 보는 해석도 있어요. 마음에 안 드는 왕들은 독살로 명을 끊곤 했었다는 끔찍한 주장까지 나와 있죠. 현대정치에서 테크노크랫(technocrat 기술관료) 세력이 권력의 핵으로 등장한 것은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에요. 인구가 늘고,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칼 잘 쓰는 무사들 둘러 세우는 일로만 리더 십이 발휘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테크노크랫이 직접 권력자가 되는 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됐어요. 젊은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망(羨望)해 온 역사는 깊어요. 5급 행정·외무·사법고시라는 현대판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집단을 이뤄 공부하는 신림동 녹두거리가 가장 먼저 생겨났죠. 그리고 21세기 들어 9급, 7급 공무원 열풍이 일면서 공시생들이 즐비한 노량진까지 고시촌이 늘어났지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 1위가 공무원이었다는 통계청 조사도 있어요. 그런데 며칠 전 우리 공무원 중 절반가량이 ‘기회가 있다면 이직하겠다’고 밝혔다는 한국행정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네요. 중앙 및 광역자치단체 공무원 중 45.2%가 이직 의향을 표명했어요. 조사에 처음 포함된 기초단체 공무원 중 이직 의향 공무원은 46.8%로 중앙·광역보다 1.6% 포인트 높게 나타났군요. 지난 2017년에는 28.0% 수준이었으니 불과 5년 새에 두 배 가까이 치솟았군요. ‘철밥통’이라고 불리던 공무원직의 인기가 시들해진 건 요 몇 년간의 추세였어요. 작년 6월 국가공무원 7급 공채 시험 경쟁률이 42.7대1을 기록하자 ‘43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는 호들갑 기사들이 떴었죠. 인재들이 첨단기업이 아닌 공직에 몰려드는 것은 ‘후진적’ 현상이라던 전문가들의 맹비판이 기억나네요. 드디어 ‘철밥통’ 깨지는 소리가 시작됐나요? 이제 바람직한 직업의식이 자리 잡나요? 미안하지만 대답은 “NO”예요.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일 거예요. ‘철밥통’으로 인식됐던 그동안의 공시 열풍 원인을 다 소각하고도 남을 만큼 아이들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공직 진출 기피, 이직 바람은 ‘박봉(薄俸)’과 ‘격무(激務)’탓이라는군요. 그동안의 열풍을 테크노크랫 출세욕이나 애국심 발로로 해석할 수 없듯이, 조건이 열악한 직업이라면 ‘무조건 싫다’는 풍조 때문이라는 거죠. 왕도 권신도 아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시대에 공무원의 의식은 이제 어디로 가나요? ‘철밥통’ 깨지는 소리는 좋다고 쳐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괜찮은 걸까요?
지난 3월말, 3박 4일이란 짧은 일정으로 일본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를 다녀왔다. 도쿄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나머지 유수한 도시들은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 지인들과 다녀오게 되었다. 마침 윤석렬 대통령의 전격적인 일본방문으로 문재인 정부시절 경색되었던 한일관계에 새로운 물줄기가 형성되고 있었기에 가고픈 열망이 솟구쳤다. 소설 같은 상상일 수 있겠지만, 일본 저변에 흐르는 한국에 대한 감정도 느끼고 싶은 것도 전격적인 투어의 요인이기도 했다. ‘나라’는 고대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곳인데다 경주처럼 일본 고도의 흔적이 상당부분 남아 있어 인상적이었고, 오사카의 대표적 명물인 오사카성은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히데요시를 대하는 일본인의 시각을 간접적으로 웅변해주고 있었다. 오사카성 입구에 히데요시를 배향한 ‘豊國神社(풍국신사)’가 자리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사카 중심가를 비롯한 그 어느 곳에서도 반한 감정이나 물결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으나, 적어도 외양만은 그랬다. 오사카 중심가에서는 한국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명동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도 불러 일으켰다. 350여석에 달하는 귀국 비행기는 한국인만으로도 만석이었다. 이 상황을 며칠 간 지켜보면서 윤 대통령의 방일로 불거진 ‘반일 논란’이 오버랩 되었다. 우리 지도자들은 역사를 지나치게 정치 무기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가의 백년대계보다 정파의 이익에 매몰되어 국가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가?, 반일팔이는 언제쯤 멈출 것인가? 등 새롭지도 않으면서 반복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역사가 웅변해주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힘이 약한 국가는 언제든 종속되고 망할 수 있다는 진실이다. 고대에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삼척동자도 알듯이 노예로 전락했다. 그러나 현대판 노예는 첨단 기술 보유여부가 가른다. 반도체가 상징하는 첨단기술 개발에 뒤져 선진/첨단기술에 종속되면 ‘현대판 기술노예’로 전락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일본을 이기고 있지 않나. 물론 소/부/장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반도체는 일본을 추월했고, 자동차는 나란히 어깨를 견주고 있으며, 일본이 자랑하는 벚꽃도 우리가 한 수 위다. 교토 호센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이스 병력 360여명과 기시다군이 벌인 실내전투에서 생긴 血天井(혈천정)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피 흘린 흔적은 영원히 잊지 않되, 그 설움과 한을 승화시켜 보다 대승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정치인들의 ’반일 팔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각지를 여행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한일 관계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했다. 일본 어디를 가도 도시의 청결은 최고이고 몸에 베인 겸손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이다. 귀국 행 비행기에서 일본 전국시대를 사실상 평정한 오다 노부나가와 에도 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존경한 전쟁의 신으로 불린 다케다 신겐의 잠언을 떠올렸다. 풍·림·화·산 이란 네 글자다. “산처럼 인내하고, 숲처럼 고요히 생각하며, 바람과 불같이 전광석화처럼 행동하라.” 역사의 아픈 교훈은 길이 새기되, 나무보다 숲을 보며 불처럼 행동할 때 그 언젠가 우리가 일본을 ‘현대판 노예’로 전락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도 가져 보았다.
19년 만에 개최된 국회의원 전원위원회 회의에 대한 국민 관심이 뜨겁다. 전원위가 논의를 시작한 주제들은 국회의원 정수 문제와 연계된 정치개혁의 핵심 요소들을 포괄한다. 무엇보다도 기득권과 당리당략에 휩싸여 개혁 과제를 소아병적으로 인식하는 소탐대실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국회 혁신’을 소원하는 국민 여망에 부응하여 이번엔 반드시 감동적인 ‘정치개혁’의 변곡점을 만들어내길 신신당부한다. 전원위는 토론에 앞서 지난달 30일 첫 회의를 열고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와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그리고 ‘소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3가지 안건을 상정했다. 이 안건들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마련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