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권한대행이 국회 몫으로 선출된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늑장 임명하면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 두 명을 지명했다.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끼워넣기·알박기 인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중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임기만료로 퇴임했을 때,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 임명을 검토했으나 법조계의 다수의견을 받아들여 포기한 바 있다. 아직도 황당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극우인사인 황교안 전 총리도 하지 않았던 위헌적인 일을 수십년 경력의 관료출신인 한덕수 총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상 제한적인 통수권을 행사해야 하는 일시적인 지위에 불과하다. 3달 전 한 대행 스스로 주장했던 입장이다. 당시 한 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3명(마은혁·정계선·조한창) 임명을 거부하며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정신”이라고 밝혔다.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면서 형식적인 임명권까지 거부하던 한 대행이 불과 3개월만에 입장을 뒤집고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을 행사하겠다고 하니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한 대행은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다. 한 권한대행의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권한대행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정족수는 150명 이라고 판시했다. 200명이 필요한 대통령의 지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권한대행에 불과한 총리가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는 것은 위헌이다. 헌법학회의 다수 견해도 권한대행은 소극적·현상유지적 권한만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나 대법원장이 지명한 후보자들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것은 소극적 권한 행사로 이해되지만 대통령 몫의 후보자 지명은 적극적 권한 행사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월권이라는 것이 법조계 다수설이다. 법률적 절차적 논란도 심각하지만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이완규 법제처장을 임명한 것은 더 황당하고 더 심각하다. 이 처장이 누구인가. 윤석열 처가 의혹 관련 소송 대리인으로도 활동했던 윤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내란사건 수사대상이다. 12.3 계엄선포 다음 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과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인물이다. 회동 직후에 휴대폰도 교체했다. 공수처에 고발되어 조만간 내란 공범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헌법재판소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배반했다’고 규정했다. 윤 전 대통령이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해 탄핵된지 나흘 만에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을 더구나 공수처 조사가 예정되어 있는 사람을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한 것은 ‘국민을 배반’한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 대행은 "사심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했다"며 "제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나 총리는 책임질 능력이 없는 신분이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책임질 수도 없는 권한 밖의 일을 벌이면서 책임지겠다는 것은 믿을 국민은 없다. 헌법기구의 구성은 6·3 대선에서 선출될 차기 대통령 임명을 통해 완성하는 게 법리와 순리에 맞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국정은 수습되기 보다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민심은 스스로 안정을 되찾고 있으나, 오히려 한 권한대행 등 국무위원들이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부족한 권한대행 체제가 대통령 놀이에 빠져 있어서야 되겠는가. 한 대행은 헌법재판관 지명을 철회하고 국정안정에만 몰두하길 바란다. 한 권한대행 체제의 남은 임무는 두 가지다. 6.3 대통령선거의 안정적 관리와 경제안정이다. 특히 미국발 관세폭탄으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극도로 불안하고, 실물경제 또한 극심한 내수위축으로 모든 경제상황이 풍전등화다.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이 두 가지의 임무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사회 현안과 중장기적 국가과제는 6월 4일 들어서는 새 정부에 맡겨야 할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으로 시작된 혼란은 2025년4월4일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 인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가 탈북민 사회에 남긴 문제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하나의 사건을 동시에 경험했어도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차이는 다르다.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는 언어와 선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보기 어려웠다. 탄핵정국에서 바라본 탈북민 사회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열의 축소판 같았다. 대통령을 지킨다고 태극기를 들고 매일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탈북민으로 갈라졌다. 각자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국회 연단에 서기도 했다. 자신의 소신을 탈북민 커뮤니티에 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 침묵했다. 침묵의 의미는 탄핵 찬반에서 중립이거나 파면에 동의한다. 파면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주장과 맞붙어 정신력을 소모할만큼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 있다 하더라도 탄핵에 찬성하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침묵한다. 탄핵 반대는 국민의 힘, 즉 보수를 지지하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주장에 힘을 싣는 이유는, 보수 정당인 국민의 힘에서 탈북민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주었고, 진보정당인 민주당은 탈북민에 관심이 없기에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이 외에도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탈북민은 당연히 보수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국회처럼 탈북민 사회도 날카로운 언어로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있다. 탈북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 ‘빨갱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는 단어를 사용해 갈등을 불러온다. 탈북민 존재 의미가 마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증명하는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는 이념으로 분단되었고 아직 치유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고향을 떠난 탈북민 역시 전쟁에 비교될 만큼 이산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 고향이라고 하지만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다시 태어나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자 한다. 그러나 분단사회에서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기란 어렵다. 대통령의 탄핵과 같은 혼란이 있을 때마다 소용돌이 정치에 탈북민이 있었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탈북민의 주장처럼 정말로 민주당은 탈북민을 소홀히 하는가. 그리고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한 국민의 힘은 정말로 탈북민에 관심이 많은가. 지금이야말로 탈북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문학은 나를 돌아보고, 세상을 보게 한다. 문학은 나의 존재와 가치를 알게 한다.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이 글을 쓴다. 북에서나 남에서나 결핍이 없었던 사람, 경험과 능력도 없으면서 리더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찌 슬픔을 알겠는가. 문학은 글로써 나를 증명하고 스스로 사회의 필요성을 만들어간다. 그것은 불러서 꽃이 되기보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탈북민 사회에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탈북문학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저조하다. 불과 몇 명을 선정하는 탈북민 문학공모가 정직한 심사를 거쳐 훌륭한 문인을 배출하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으로 혼란한 정치판에 분열과 갈등보다 지적인 대화로 소통할 수 있는 탈북문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비상계엄이란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지난 4일까지 123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 상식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탄핵 이슈는 뉴스 블랙홀이었다. 지난해 12월 29일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도 31명의 사망자를 내고 서울 면적의 80% 정도를 불태운 역대 최악의 영남 산불도 잠시 계엄 뉴스를 뒤로 밀어냈을 뿐이다. 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시할 여유까지 앗아갔다. 계엄이 선포되자 언론이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유력 언론들이 스카이데일리와 아시아투데이라는 소위 듣보잡 언론을 방조하거나 유사한 보도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스카이데일리는 탄핵 국면에서 "12·3 불법 계엄 당시 계엄군이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했다"고 했다. 의도적 오보이거나 거짓 보도였다. 이 언론의 조정진 사장은 국민의힘 은평갑 당원 200여 명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5·18은 김대중 세력과 북이 주도한 내란'이라고도 했다. 그는 세계일보 기자 출신이다. 아시아투데이는 12·3 내란 직후부터 비상계엄을 옹호했다. 다음 날 사설에서 ‘나라를 지키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야당의 하야와 탄핵 시도에 부화뇌동하거나 대통령을 막다른 골목에 내모는 패륜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국민의힘은 탄핵이 인용될 때까지 충실히 이 신문의 주문을 따랐다. 지난해 12월 5일자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물랐다’는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칼럼은 내란 초기 보도를 대변했다. 전통 언론 대부분의 논조도 이와 비슷했다. 그러던 조선일보가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탄핵 반대 세력에 동조하는 논조로 급변했다. 스카이데일리급은 아니었지만 아시아투데이에 버금갈 정도의 수준을 유지했다. 김건희 여사가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을 걸었다‘는 음성이 공개된 후에도 논지 변화는 없었다. 한국일보 이준희 전 사장이 탄핵 심판일인 4일 칼럼에서 정치 갈등 원인을 ’훈련받은 대규모 취재 인력을 보유한 전통 언론보다는 유튜버 탓’으로 돌렸다. 이 진단이 공감을 받으려면 전통 언론이 저널리즘 원칙을 벗어난 보도를 검증해 준다는 전제가 따라야 한다. 정치적 편향성이 농후한 학자들을 전문가로 둔갑시켜 탄핵 각하와 기각을 예측하는 지면을 할애하는 행태가 지속되는 한 극우 유튜브와 다를 바 없다. 자칫 더 정교한 여론 왜곡을 낳을 수도 있다. KBS, 연합뉴스TV, YTN은 형식적 균형주의에 매몰된 보도로 일관했다. 전국민이 TV로 생중계되는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윤 전 대통령 측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했다. ‘호수 위의 달 그림자’ 운운할 때는 국민 모두를 실소케 했다. 기계적 균형보도나 검증 없는 단순 중계보도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중앙일보가 탄핵인용 후 ‘尹의 1060일’을 싣고 있다. 윤 대통령이 파멸의 길로 치닫고 있음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어떤 참모도 직언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부분이 언론이 맡았어야 할 영역이었다. 사후약방문격의 이런 시리즈를 우리는 ‘하이애나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3층짜리 빈집 일부가 무너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민 10여 명이 임시 숙박시설로 대피해야했다. 전남 광주 에서도 지난해 호우 때 빈집의 담장과 지붕 일부가 무너졌으며 순천에서도 노후화된 기와지붕이 폭우로 붕괴된 일이 일어났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된 빈집이 수두룩하게 많다. 빈집은 붕괴와 화재 등 안전사고는 물론이고 범죄 발생, 쓰레기 무단 투기 장소로 악용된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탓에 경관을 훼손시키는 흉물이 되어 마을 미관을 해친다. 우리나라의 빈집은 13만 2052채(2022년 기준)나 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에 더해 앞으로 저출생·도심집중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빈집은 계속 늘어나 2040년엔 전체 주택의 9.1%(239만 채)가 빈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경기신문은 지난해 9월 19일자 사설(‘도시 빈집세도 도입해야’)에서 농촌지역의 빈집의 60%는 금세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빈집세’ 도입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여론을 전하기도 했다. 빈집은 대부분이 사유지여서 철거와 정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유주와의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재산세 문제도 흉물로 방치된 빈집 정비사업의 발목을 잡는 제도다. 현행 지방세법은 빈집을 철거해 나대지가 되면 재산세가 인상된다. 즉 마을 쉼터 등 공공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빈집을 철거할 경우 오히려 세금이 늘어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도는 2021년부터 빈집 철거 비용을 지원, 마을쉼터나 공용주차장, 돌봄센터 등 공공용도로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빈집을 철거할 경우 빈집 터만 남는데 현재 지방세법상 이 토지의 재산세는 주택이었을 때의 1.5배 수준이다. 그러니 어떤 소유주가 집을 철거해 세금을 더 내려고 하겠는가. 빈집을 철거, 공익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데도 토지주의 재산세 부담이 증가하는 모순은 해결돼야 하는 것이다. 이에 경기도가 빈집 정비 시 소유주 부담이 증가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빈집 해소 3법’ 개정(안)을 마련해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빈집 해소를 위해 재산세, 양도소득세, 부동산종합소득세를 완화하는 내용이다. ‘빈집정비사업으로 철거 후 빈집 터를 공공 활용하는 경우 철거 전 재산세(주택)에 따라 세부담을 동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는 또 ‘세컨드 홈’ 혜택을 인구감소지역뿐 아니라 인구감소관심지역 빈집까지 확대해 달라는 내용의 제도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세컨드 홈은 기존 1주택자가 인구감소지역에 있는 공시가격 4억 원 이하 주택 1채를 추가 취득하면 1주택자에 준하는 재산세, 종부세, 양도세 특례를 적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세컨드 홈’ 특례를 경기도내 인구감소지역인 연천군에 이어 3월부터 가평군도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도는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관심지역인 동두천시, 포천시의 빈집까지 세컨드 홈 혜택을 부여해 달라고 건의했다. 도가 이처럼 도가 세컨드 홈 확대를 요구하는 까닭은 ‘인구감소지역 등의 생활 활력증진’과 ‘빈집정비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이 인구감소지역의 빈집을 세컨드 홈으로 취득하게 되면 빈집정비사업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거주·생활인구가 늘어나게 된다. 뿐 만 아니라 흉물로 방치되던 빈집이 마을쉼터, 공용주차장 등 공용시설로 활용되는 등 지역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도는 ‘빈집 해소 3법’이 법제화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마을의 경관을 해치고 위생을 위협하며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는 빈집문제 해결을 위한 경기도의 ‘빈집 해소 3법’을 국회와 정부가 적극 수용하기 바란다.
2024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법 개정 사항 등에 대한 국회 토론회가 금년 1월에 개최되었다. 돌봄통합지원법은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6년 3월 27일부터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됨으로써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과 장애인 등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보건의료・요양・주거・생활지원 등의 돌봄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 이로써 지자체는 요양 돌봄서비스의 통합 제공 등에 대한 책무를 지고 정부는 이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게 되며, 통합지원협의체 운영, 전담조직 설치·운영, 통합지원정보시스템 구축·운영, 전문인력 양성, 전문기관 지정 등이 수반된다. 돌봄 통합지원법에는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 ‘계속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 ‘살던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등의 핵심 가치가 담겨 있다. 복지부는 2024년부터 2년에 걸쳐 의료·요양·돌봄서비스 연계를 통해 통합지원 기본모델을 정립과 지역 자원 연계 인프라 구축 및 틈새 서비스 발굴을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며, 일부 지자체를 대상으로 표준모델 제공과 서비스 방향성 제시를 위한 시범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2019년 6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진행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이 2026년 ‘돌봄통합지원법’으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케어, 홈케어 서비스 기반 조성을 위한 역량 구축이 필요하다. 돌봄과 의료가 결합되는 다학제 주치팀 운영, 의료 필요도가 높은 대상자들에게 방문 의사 주치의제 시행과 함께 통합돌봄 종사자 육성 및 재가돌봄 조직 설치·운영 등의 분야에서 민·관 협력을 더욱 강화해 감으로써 체계적인 돌봄 지원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고령인구를 위한 돌봄서비스와 디지털 기술(에이지테크; Age Tech)을 융합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연평균 20% 이상의 고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2033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352조 원을 뛰어넘는 블루오션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개인맞춤형 헬스케어, AI 조언시스템, 예측 의학,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이 헬스케어의 미래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며, 고령자 자립 생활기술의 발전으로 돌봄서비스의 양적·질적 성장이 기대된다. 낙상·안전사고 예방 장치 설치 등을 지원하는 안전홈케어, 사물인터넷(IoT) 기반 독거노인의 안부와 건강을 실시간 확인하는 스마트 돌봄, 가정 내 건강 및 의료(간호) 모니터링을 위한 생활밀착 돌봄서비스, 낙상·수면무호흡 감지 및 대처를 위한 생활안전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돌봄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고품질의 돌봄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이이다. 미래 헬스케어 산업에서 AI와 빅데이터의 비중은 날로 높아져, 풍부한 실증 데이터를 수집·분석함으로써 더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고 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효과적인 돌봄시스템의 활용은 건강관리와 질병예방 차원의 예방의학, 조기진단 등으로 증가하는 의료비와 사회적 노인 돌봄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노인 환자를 위한 의료·요양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해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 또한 크게 줄여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히 살고 싶어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는 불로초를 먹고 영생을 꿈꾸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애석하게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가 만약 현세를 살았다면 백세를 넘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백세시대는 결코 허상이 아니다. 20세기에 100세 이상 인구는 9만 2000명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62만 1000명으로 증가했고, 2050년에는 370만 명이 될 전망이다. 122세로 사망한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나 116세까지 살았던 일본 남성 기무라 지로에몬, 118세까지 살다간 프랑스 여성 뤼실 랑동, 그리고 117세까지 살다간 미국 여성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는 100세 보다 훨씬 더 살았다. 현재 세계에서 최고령은 116세인 브라질의 수녀 이나 카나바로 루카스이며, 그 뒤를 영국 남성 에델 캐터햄과 일본 여성 오카기 하야시가 115세로, 독일 여성 샤를로테 크레치만과 프랑스 여성 마리-로즈 테시에가 114세로 쫓고 있다. 이들처럼 건강히 110세를 넘긴 사람을 슈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이라고 부른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 기대 수명은 71세이다. 그렇다면 이들 슈퍼센티네리언은 평균 수명보다 무려 40년을 더 사는 셈이다. 이들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바르셀로나대학의 유전학자 마넬 에스텔러와 그의 연구팀은 가장 최근까지 생존한 모레라 할머니의 케이스를 실험 분석하였다. 이 할머니는 스페인 카탈루냐로 돌아와 간호사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었고, 1918년 스페인 독감과 2019년 코로나19를 겪었지만 별 탈 없이 잘 이겨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소화 시스템, 더 정확하게는 위와 장의 벽에 서식하는 장내 미생물총이 좋았다. 그녀의 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이 소화뿐만 아니라 면역과 정신 건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모레라 할머니의 미생물 군집 구성은 또래가 아닌 유아의 미생물 군집과 더 유사하였다. 또한 이 할머니는 부모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그녀의 생물학적 나이는 또래의 그것보다 17세 더 젊었다. 이는 심혈관 질환, 치매 및 노화와 관련된 기타 장애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보다 중요한 건 그녀가 일상을 잘 관리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으로 걸으며 신선하고 제철인 다양한 과일과 채소, 통곡물 시리얼, 콩류, 견과류, 씨앗류, 올리브 오일, 생선과 해산물을 규칙적으로 섭취하고 붉은 육류나 유제품은 거의 섭취하지 않았다. 특히 3명의 자녀와 20여명의 손자와 증손자 등 대가족과 함께 풍요로운 사회생활을 유지한 것도 비결로 파악되었다. 이 분석 결과는 모렐라 할머니가 타계하기 직전인 2023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 생존자로 인정받았을 때 자신의 장수 비결로 꼽았던 요인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무병장수 비결로 ‘질서, 평온함, 가족 및 친구들과의 좋은 관계, 자연과의 접촉, 정서적 안정, 걱정 없음, 후회 없음, 큰 긍정성, 독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들었고 무엇보다 ‘행운과 좋은 유전적 요인’을 들었다. 장수는 단순히 운의 문제가 아니다. 유전학, 식단, 미생물, 생활습관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분도 슈퍼센티네리언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이 점을 잘 살피고 실천하시기 바란다.
지난해 6월 중국인들이 부산에서 드론으로 미국 항공모함을 촬영하다가 붙잡힌 사건에 이어 수원에 있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 부근에서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한 중국인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일전에는 중국의 한 인플루언서가 한국 국립고궁박물관을 방문한 후 “한국이 중국 문화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다. 재한 중국인들의 범죄·일탈 증가에 더해 경계해야 할 말썽들이 자꾸 일고 있어 이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감독이 시급하다는 여론이다. 수원에 있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 부근에서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한 중국인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혐의로 10대 후반의 중국인 2명을 형사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오후 3시 30분쯤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 주둔한 수원 공군기지 부근에서 DSLR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이용해 이·착륙 중인 전투기를 무단으로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이 적발된 중국 고교생 2명이 중국 공안 자녀인 것으로 확인돼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들이 소지한 DSLR 카메라와 휴대전화에서는 비행 중인 전투기 사진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보고, 대공 용의점 여부 등을 비롯한 수사 중이다. 형사 입건과 더불어 출국 정지 조치하고,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수원 공군기지 외에 다른 군사시설이나 공항이나 항만 등 국가중요시설에서도 범행한 사실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6월 25일, 한미일 군사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 행사장을 중국인 유학생 3명이 인근 야산에서 5분 정도 드론으로 촬영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과 정보 당국이 이들의 디지털 기기를 포렌식한 결과 최소 2년에 걸쳐 다른 군사시설도 촬영한 상황이 포착됐다. 이들은 30대에서 40대로 부산 소재의 한 국립대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인이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또 올 1월에는 국가 중요 시설 최고 등급인 가급인 제주국제공항을 드론으로 찍은 중국인이 검거되기도 했다. 30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죽구인 인플루언서이자 마술사 가오위텐의 행태는 더욱 기괴하다. 그는 한국의 박물관을 방문한 후 SNS에 올린 영상에서 한국 국립고궁박물관 내 전시물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중국의 자수를 훔쳤고, 혼천의 등도 중국 것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전시된 금속활자를 보면서 인쇄술은 중국 당나라에서 기원했다며 금속활자 역시 중국 인쇄술을 따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중국의 역사 왜곡, 침탈행위는 날로 더욱 기승을 부리는 추세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는 이들의 억지 주장을 잘 이용해 오히려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더 잘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쉬울 것 같지는 않다는 예감이다. 국내에서 중국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도 심각하다. 경기남부경찰청 외국인 범죄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23년 3만 2737건의 외국인 강력범죄 중 중국인 범죄가 1만 5533명으로서 47.4%을 차지한다. 군사시설을 불법 촬영하다가 적발된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믿을 만한 변명으로 들어주기에는 사건 적발이 너무 잦다. 국가적으로 뭔가 특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은 외국인의 간첩죄를 사형 등 엄벌에 처한다는데, 최소한 선의에 기대어 방심에 빠져있을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지금처럼 방치하다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곤경에 처할 수도 있음을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이다.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는 퇴계 이황(1502-1571)과 성리학자로 쌍벽을 이루는 학자였다. 게다가 조선최고의 행정가이고 '언론가'였다. 천재였다.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은 그의 별명이다. 각종 과거시험에서 아홉 차례나 장원을 했기 때문이다. 13세 나이에 진사 초시에 1등으로 합격했다. 29세에 공직을 시작했다. 그 후 49세에 세상뜨기 전까지 그의 업적들은 하나같이 위대하다. 조선을 개혁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제안했다. 대동법실시, 10만 양병설 등을 주장하며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에 직을 걸고 일했다. 명종 때(1545-1567) 정계입문했지만, 주로 선조 때(1567-1608) 큰일을 많이 했다. 임금에게 9차례나 사표를 던졌다. 자신의 몸을 갈아넣어 만든 개혁안을 선조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로로 몸이 상하여 요양을 반복해야 했다. 그는 호조(재무), 이조(인사), 병조(병역) 등 세 차례의 판서를 역임했고, 판서가 되기 전에는 대사헌(감사원장) 우찬성(국정상황실장에 가까운 직책) 등 최고 요직을 두루 거쳤다. 율곡은 어느 자리에 가든 개혁정치가로서 임금에게 거침없는 발언을 하며, 나라의 안위와 민생의 수준을 높이는 일에 헌신했다. 공직생활 동안 59회나 상소(上疏)를 했다. 그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그가 쉰 살 되기 전에 작고한 것은 나쁜 임금을 모시며 피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와 과로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임철순(전 한국일보 주필)의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이라는 책을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장관이든 총리든 고위관료들이 최고수반 앞에서 예의바르고 점잖고 과묵한 것이 결코 미덕일 수 없겠다는, 실은 악덕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임금이든 대통령이든 사실상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크고 작은 결점과 약점이 있는 자들인데, 그들의 최종 의사결정은 나라의 존망과 씨알들의 삶의 질은 물론 생사의 문제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준다. 율곡의 정론직필(正論直筆)은 구국안민(救國安民)이 목적이었다. 윤석열은 비민주 전근대 반문명적 인간이다. 생각은 더럽고 흉포했다. 무능 무책임 무도한 자로서, 악마의 리더십을 총칼처럼 휘두르다가 파면되었다. 선조를 많이 닮았다. 그렇게 저열한 왕초 밑에서 뛰는 조폭들은 '곤조'가 비범한 어린 중고생 1진들에게 수시로 코피 터지고 갈비뼈 나가기 일쑤다. 당장, 현직 경제부총리가 돈벌이로 미국국채에 투자하고, 검찰총장은 딸을 좋은 공직에 불법취업시킨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데도 태연하다. 둘만이 아니다. 새 정부의 요직에 앉게 될 사람들은 임금에게 직을 걸고 목숨 걸어 직언했던 율곡의 반의 반이라도 할 수 있기 바란다. 장관된 걸 큰 은혜로 여겨 '깍두기'처럼 굴지 말라. 율곡이 임진왜란 10여년 전 올린 상소문의 한 문장이다. 시공을 초월한 교훈이다. "백성들은 이미 원기(元氣)를 잃었고, 10년 안에 화란(禍亂.재앙)이 일어나면 더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선조의 무능과 무책임, 무방비를 이렇게 직격했다. 율곡은 사표를 던지고 나가서는 대장간을 운영해서 쌀독을 간신히 유지했다. 움막집도 절친 성리학자 성혼(成渾.1535-1598)이 보내준 건자재로 어렵게 지었다. 공직자는 국민세금으로 평생을 호의호식한다. 그 이상 뭣이 더 필요한가. 내가 너무나 순진한가.
한국어 공적 문서는 오랫동안 문체적 관습을 반복했다. 과도한 한자어, 지나치게 긴 복문은 정보의 전달보다 형식의 유지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독자의 이해보다 문서의 권위를, 관계 맺기보다 절차적 안정감을 우선시하는 구조 안에서 글쓰기는 일방적인 통보의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글은 말하는 주체가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형식이다. 글의 구조와 문체, 어휘의 선택과 판단의 방식은 그 자체로 세계에 대한 태도이며 공공 글쓰기가 작동하는 윤리적 기반이다. 2024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문은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문도 법률 문서로서의 완성도는 높다. 정제된 논리, 조문과 사실의 정확한 병렬,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강조는 공적 판단의 문서가 지녀야 할 미덕을 충실히 수행한다. 다만 ‘말을 건다’기보다 ‘정리’한다. 문장은 독자를 향해 다가가기보다 정보를 가지런히 배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관계를 열어두기보다는 서술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말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을 것인지에 대한 고찰보다는 판단을 오류 없이 나열할 책임이 앞선다. 이와 달리 2024년 선고문은 문장 하나하나가 관계를 전제하여 어휘의 강도와 문장 내부의 균형이 조율되어 있다. “피청구인은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어야 합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법리 해석이 아니다. 정치적 태도, 헌법 질서에 대한 해석,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한 문장 안에서 겹쳐 흐르며 어느 하나도 다른 층위를 침범하지 않는다. 복잡한 판단을 한 문장 안에서 정리하면서도 독자의 사고를 통제하지 않는 이 같은 구조는, 글이 참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공 언어의 이상에 다가선다. 전문 용어의 사용 역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법률 문서에서 개념어와 조항 인용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문장의 온도와 태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6년 선고문은 많은 조문과 증거 사실을 나열하며 정보의 양 자체로 판단을 구성한다. 반면 2024년 선고문의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국정 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을 보면, 개념어를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논점이 문장 속에서 흩어지지 않는다. 말이 정확하되 과시하지 않고 전문성을 유지하되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선고문에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지점이 존재한다. 바로 결론을 끝으로 미루는 미괄식 구성이다. 이 방식은 정보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사유의 주도권을 글쓴이에게 남긴다. 공공의 판단이 중요한 문서일수록 글의 방향과 핵심 내용을 문장 앞부분에 제시하는 구성이 독자의 이해와 신뢰를 높인다. 두괄식은 문체의 선택이 아니라 독자가 판단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구성의 윤리다. 독자가 글 앞부분에서 논점과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면 글과 판단 모두에 대한 신뢰는 더욱 강화된다. 오늘날 한국어 글쓰기는 문장의 형식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사실, 그리고 글의 구조 자체가 하나의 태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공 문서의 문장이 권위로 말하지 않고 책임으로 말할 때 독자는, 시민은 참여할 수 있다. 2024헌나8 선고문은 공적 글쓰기가 정제된 형식을 지니면서도 사려 깊고 정직하게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민주주의는 말과 글의 나눔이다. 한국어 글쓰기는 이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받아들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으로 시작된 ‘장미 대선’ 정국 속에서 개헌론 바람이 거세다. 맨 앞에서 개헌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치인은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우 의장은 조기 대선에서의 동시투표를 제안했다. 개헌을 통한 낡은 87체제 극복은 이 나라의 해묵은 과제다. 우 의장의 뜻대로 6월 대선 동시투표 실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일단 ‘개헌’은 이제 더 미뤄서는 안 될 국가적 현안이다. 어떻게든 가시화할 필요성이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6일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통령 임기 초에는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까 주저하고, 임기 후반에는 레임덕으로 추진 동력이 사라진다. 이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물꼬를 터야 한다”며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개헌 성사를 위해 국회 각 정당에 개헌투표를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과 ‘국회 헌법개정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이어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재외국민 투표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며 “촉박하지만, 이미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이번에 반드시 개헌하자는 의지만 있으면 시한을 넘기지 않을 수 있고, 논의를 서둘러줄 것을 각 정당에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에선 대선 후보 경선 출마가 예상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김두관 전 의원이 우 의장 제안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당내 정청래, 이인영 의원 등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그동안 관련 언급을 피하던 이재명 대표도 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면서 우 의장의 제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다만 이 대표는 “각 대선 후보들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대선이 끝난 후에 최대한 신속하게 개헌을 그 공약대로 하면 될 것 같다”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우리가 ‘개헌보다 헌정 파괴 심판이 우선’이라고 할 경우 자칫 ‘반개헌 세력’으로 내몰리고, 헌정 파괴 세력이 오히려 적극 개헌 세력이 되는 것”이라며 마냥 반대하기도 만만치 않은 복잡한 사정을 시사했다. 지난 2월 당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꾸리며 개헌론에 불을 지펴온 국민의힘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에 동참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우리 당 인원은 원내대표가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없는 극한대결 정치와 정치 양극화의 질곡이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헌법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대두돼왔다. 지금 체제에는 국가적 위기를 부를 위험이 상존하는 게 사실이다. 권력 구조 개편, 양당 구도를 고착화한 소선거구제는 물론이고 개헌절차법 개정, 경제·사회적 국민 기본권 확대 등 개헌과 입법 과제는 충분히 도출돼 있다. 의지만 모을 수 있다면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이 무리가 아니라는 견해도 상당하다.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적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해 정치적 유불리 때문에 시끌벅적 요란만 떨다가 무한정 미뤄온 세월이 대체 얼마인가. 개헌 논의만큼은 소아병적인 당리당략의 마수를 멀리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거시적인 안목과 시각으로 철저한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 합의를 창출해내야 한다. 공복들에게는 무엇인가를 해서 짓는 해악보다도, 제때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짓는 죄가 더 큰 경우가 있다. 지금 개헌이 딱 그 지점이다. 설사 우 의장의 제안대로 6월 대선에서 동시투표가 가능하지 않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최소한 개헌 단행의 시점을 정하여 합의된 공약으로 명토 박는 게 옳다. 지금처럼 소리(小利)에 취하여 나라를 망치는 극한대결의 정치를 미래세대에 또 넘겨줄 참인가. 부뚜막에 놓은 아무리 좋은 소금도 제때에 음식에 집어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