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전, 그는 당나라의 2대 황제(598-649)였다. 후대로부터 중국 5천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통치기간은 627년부터 649년까지. 24년간이었다. 당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당시 세계최강의 제국이었다. 그의 치세(治世)를 역사가들은 ‘정관지치’(貞觀之治)라고 칭송했다. ‘세상을 올바르게 본다’는 뜻의 ‘정관’(貞觀)은 태종의 연호다. 그는 공자를 존경하고 따르면서도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무위지치(無爲之治)가 최고의 정치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했다. 도교(道敎)를 국교로 삼은 것이 그 증거다. 불교를 공부한 후에 역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지체없이 유불도 삼교정립(儒佛道 三敎鼎立)을 국가의 사상적 정체성으로 정립(定立)시켰다. “철학자가 군주가 되거나, 군주는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에 합당한 인물이다. 그의 위대한 리더십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노장공맹(老壯孔孟), 그 2천년 스승들의 핵심사상이 체화된 품격정치의 바이블이다. 아래의 인용문들은 ‘정관정요’에 나와 있는 태종의 사람됨과 그의 정치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켰다. 그들과 언제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듣기에 불편할만큼 혹독한 충고도 허용했으며,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즉시 자신의 문제점을 바로잡았다.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하여 백성들을 아꼈으며, 형법을 신중하게 사용하였다. 문화를 중히 여겼다. 백성들이 전쟁이나 토목사업에 동원되어 농사철을 놓치지 않도록 했다. 군주와 신하가 항상 서로 거울이 되어 선행을 하려고 애썼다. 근면검소했다.” “관리들은 대부분 스스로 청렴하게 생활하고 근신했다. 왕자들과 왕후나 왕비들, 공주들의 시댁들, 권문세가, 간사한 무리들을 통제했다. 이들은 모두 국법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행실을 삼갔다. 감히 일반백성들을 침범하거나 억누르지 못했다. 상인이나 여행객이 벽지에서 투숙하더라도 강도를 만나지 않았고, 좋은 정치 덕분에 감옥이 텅텅 비었다. 외출하는 사람들은 몇 개월씩 문을 닫아걸지 않았다. 나그네는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없더라도 모두 오고가는 길에서 해결되었다. 이러한 다스림은 모두 옛날에는 없었던 것이다.” 순수한 청년 정치지망생이 꿈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재했던 역사다. 어느 날, 태종과 동양사 최고의 신하로 역사에 남은 위징(魏徵. 580-643)과의 대화다. “군주된 자가 백성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면, 마치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소. 몸이 곧으면 그림자도 곧은 법이오. 윗사람이 훌륭하게 다스리려고 노력하는데, 아랫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경우는 없소. 무슨 일에서든 탐욕이 재앙을 부른다고 생각하오. 만일 군주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면, 백성들은 그 때문에 사분오열할 것이고, 변심하여 원한을 품고, 모반하는 이가 생겨날 것이오. 나는 항상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고, 감히 나 자신의 욕망에 따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소.” “옛날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들은 모두 가깝게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 행동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라 안의 온갖 사물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고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그것이 최선입니다. 군주의 품행이 단정한데,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위징은 '실제로 목이 달아나더라도 할 말은 하라'는 뜻이 담긴 간의대부(諫議大夫)라는 직책이었다. 위의 응답도 죽음을 각오한 신하의 간언(諫言)이다. 태종처럼 위대한 지도자도 위징의 충간(忠諫)을 듣고 칼을 뺐다가 도로 집어넣은 것이 300회가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참고 끝까지 경청한 날은 언제나 마음 편하게 단잠을 잘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 정치는 혁명의 대상이다.
역사책을 살피면,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이 심화하는 시기마다 미신과 초자연적 신앙이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여겨지곤 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는 이해할 수 있으나 비합리적 믿음이 국가 운영과 정치적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그 결과는 대개 국가의 붕괴나 사회적 혼란으로 귀결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난 사례들은 미신적 사고가 정치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며 현대 사회에서 이를 배제해야 할 필요를 시사한다. 미신적 신앙은 예언서나 도참서를 통해 특정 인물이나 사건이 도래할 것을 암시하며 통치자와 민중에게 미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후한 말기 중국에서는 도참 신앙에 힘입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이는 후한의 몰락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조선 후기에도 민중 사이에서 정감록에 대한 믿음이 퍼지며 왕조에 대한 불안을 부추겼다. 이처럼 비이성적 신앙은 단기적으로 사회적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일종의 진통제와 같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혼란을 심화시키고 통치의 정당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신에 의존한 통치의 문제점은 명확하다. 비합리적 믿음은 과학적 검증이나 논리적 근거 없이 상징적 해석과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통치자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맞추어 왜곡하거나 남용할 위험이 있다. 러시아 제국 말기, 요승 라스푸틴은 황실과 결탁하여 개인적 신비주의를 앞세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황제와 황후는 그의 초자연적 능력을 맹신하며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현실적 개혁을 외면했고, 결국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초자연적 신앙은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할 수 있지만 통치 과정에 개입되면 민중의 비판적 사고를 억제하고 비이성적 사고를 조장해 시민의 자율적 판단을 약화하고 의존적 사고를 강화한다. 오늘날에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은 확실성을 갈망해 음모론이나 미신적 믿음에 의존하곤 한다. 하지만 현대 민주 사회에서 통치는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판단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과학, 비합리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경우,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고 장기적으로 정치적 불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합리적 토대 위에서 구성되는 대의민주주의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신용, 이성, 진보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냉철한 분석과 합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위기 상황에서, 초자연적 신앙에 의존하면 현실적 대응이 아닌 근거 없는 믿음에 따라 잘못된 판단과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막대한 시간과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소모될 가능성을 높이며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민주적 절차와 법치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약화하고 사회적 통합을 저해한다. 역사적 사례들은 비이성적 믿음이 국가의 몰락과 자주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경향은 미신 의존적 통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초자연적 신앙은 민간 신앙의 차원에서는 존중될 수 있지만 공적 통치 영역에서는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 공자도 이 사실을 이미 춘추시대에 통찰하여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았다. 이성을 중시하며 초자연적 요소가 인간의 판단과 통치에 개입하는 것을 경계하는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지난 3일은 24절기 중 첫 번째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었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라곤 하지만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강추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이없는 계엄령 선포 이후 더욱 냉각된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 사회 분위기 등이 날씨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연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처럼 혹한이 지속되면서 질병청은 저체온증과 동상·동창 등 한랭질환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특히 저체온증의 경우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심각한 한랭질환이다. 대부분의 한랭질환의 84.5%가 저체온증이라고 한다. 매년 300~400명의 한랭질환 환자가 발생하는데 지난해 12월 1일부터 올해 2월 2일까지 한랭질환자는 233명으로 집계됐다. 대표적인 저체온증 고위험군은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 저소득층 노인 등이다. 이들은 음식섭취나 의복 난방 등 보온이 충분하지 않아 건강상태가 우려되는 사람들이다. 한파는 이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다. 이에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강추위에 취약한 쪽방촌 주민들에게 밤 추위 대피소 이용권을 지급하고 있다. ‘동행목욕탕’은 동네 목욕탕을 활용한 사업이다. 난방이 충분하지 않거나 수도 동파, 보일러 고장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쪽방촌 주민들이 따듯한 물로 몸을 씻고 추위에 떨지 않고 밤새 쉴 수 있는 밤추위 대피소다. 지난해 총 3만96541929명이 이용하는 등 성과가 좋아 이용 기간을 60일에서 90일로 확대했다. 쪽방 주민과 사업주가 상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업이다. 문제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다. 쪽방주민들은 그나마 몸을 뉠 거처라도 있다지만 노숙인들은 강추위와 배고픔에 속수무책이다. 많은 지방정부들이 노숙인쉼터를 마련하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노숙인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긴 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자발적인 노숙도 정부와 지방정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관계기관에서는 이들에게 쉼터 입소를 권유하지만 많은 노숙인들은 이를 거부한 채 거리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노숙인이 된 이유는 다양하다. 이들은 한때 남부럽지 않은 사업체를 운영했다가 실패한 전직 사장님도 있고, 사기꾼에게 걸려 전 재산을 날린 직장인, 회사에서 내몰린 실직자,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온 가장 등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경기신문은 ‘살을 에는 추위에 떠는 취약층 바람막이 돼줄 관심지원 절실’(6일자 7면)르포 기사를 통해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열악한 환경의 노숙인들의 상황을 보도했다. “미리 챙겨둔 옷들을 껴입어도 춥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한다” “여름에는 괜찮지만 겨울에는 자다가 동사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춥다” 기자는 기온이 최대 영하 11도까지 내려간 지난 4일 수원역 인근에서 만난 노숙인들의 말을 전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털모자와 목도리, 두꺼운 옷을 껴입었지만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코와 볼은 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다’면서 ‘추운 날씨에 입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말을 더듬었으며 몸을 떨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숙인들은 수원역 내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민원 때문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사에 노숙인들이 모여 있으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목욕과 세탁이 용이하지 않은 탓에 위생과 외관적인 문제가 있고 술에 취한 노숙인이 시민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원시와 다시서기노숙인지원센터 등이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있지만 ‘종속되기 싫다’ ‘술을 마실 수 없다’ ‘전과나 채무 등 신상 정보가 드러날까 봐’ 도움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봉사단체,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꾸준히 적극적으로 재활 방안을 모색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겸손한 인품과 성실한 생활태도를 가치덕목으로 삼고 살던 시대는 나의 스승과 함께 가버린 것 같다. 오늘날은 바람의 오염과 세상의 소음이 이명(耳鳴) 증상 같이 두뇌를 울리고 있다. 하여 고하(古河) 선생의 '시조로 본 풍류 24경'을 꺼내어 보니 '청정한 소나무여, 솔바람 소리여'가 펼쳐진다. "산골짜기에 가까운 집 오는 사람 드물어/ 홀로 국화꽃 따 들고 돌밭에 앉아 있네." (幽居近壑人來少유거근학 인래소 ⭑ 獨採黃花坐石田독채황화 좌석전). 성수종(成守琮1495-1533)의 칠언절구를 만나게 된다. 그런가하면 ‘누워서 듣는 맑은 퉁소 같은 바람 소리 파도처럼 흩어지는 솔바람 소리 (臥聽晴賴散松濤 와청청뢰산송도)라고도 했다. 수필가 윤오영은 소나무를 들어 ‘공기를 청신하게 하고 폐를 깨끗하게 해주는 점에서 다른 나무들이 당할 수 없다,’고 했고, 솔바람 소리는 ‘청아한 냄새가 신선한 향기를 퍼뜨린다.’했다. 십여 년 전 남편을 잃은 친구 부인과 부인의 시댁 당숙뻘 되는 내 친구와 그의 자동차로 모악산이 멀지 않은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은 뒤, 친구 부인이 차를 대접하겠다고 하여 간 곳이 ‘대바람 소리’라는 찻집이었다. 부인의 시댁 당숙은 나이 차이는 있어도 남편의 손 위였다. 차를 마시면서 두 사람의 집안 이야기는 본격화되었다. 부인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형과 재산관계로 형에게 고소를 당해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형 또한 불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당숙에게 들려주는 내용이었다. 꽤나 지루한 시간이었다. 솔바람 소리는커녕 우리나라 정치꾼들의 다툼 못지않은 패악스런 행동에 가슴이 메스꺼웠다. 두 사람이 대화하도록 하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솔바람 소리로 가슴을 가라앉히고 찻집으로 다시 들어서는데,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는 작은 액자에 눈길이 멎었다. 그래 새우잠을 잘지라도 큰 고래를 잡겠다는 꿈이 있어야겠지.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불어오는 밤/ 잠의 문전에 기대어 생각한다./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꿈을 꾸었던 사람을…’ 빌리 콜린스의 '첫 꿈'의 시작 부분이다. 우리의 가슴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꿈! 그 꿈을 누가 제일 먼저 꾸었을까? 돌고래는 수컷 두 마리씩 짝패를 만들어 한 마리의 암컷을 놓고 양 측에서 방향을 제어하며 쫓아간다고 한다. 몇 시간 지나서 암컷이 도망가기를 포기하면 둘 중 한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다시 새로운 암컷을 찾아 나서는데 그때는 조금 전에 사랑을 못한 수컷의 차례다. ‘아까는 네 차례고 이번에는 내 차례야’라는 그런 계약이 딱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얌체같이 먹고 튀는 놈도 있다는 것, 그놈은 팀에는 끼워주지만 결정적 순간 탁 쳐내버린다고 한다. 동물들의 도덕적인 추구는 멈추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만 사회적 평판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돌고래의 꿈이 등장했는지 몰라도. 쇠똥구리는 몸길이 1.8cm, 몸 빛깔은 검고 광택이 난다. 여름철에 짐승의 똥을 둥글게 뭉쳐 굴리어 흙 속에 묻고 그 속에 알을 낳는다. 쇠똥구리는 밤톨만한 크기로 둥글게 경단(瓊團)을 만들어 굴리는데 자기 몸의 15배를 직선의 길로 암컷 수컷 한 쌍이 사이좋게 굴린다고 한다. 경단은 애벌레의 식량으로써 애벌레는 식량 안에서 영양을 섭취한 지 5일이면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매일 아침은 내가 부활하는 시간이다. 마음 다잡고 서재에서 신석정 선생의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와 고하(古河) 선생님의 ‘난연기(蘭緣記)’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아서 글줄을 읽어 내린다. 그리고 녹차를 우려 마시며 차의 향을 음미하면서 속된 고래의 꿈을 밀쳐내고 솔바람 소리, 댓바람 소리, 문풍지 우는 소리를 소환해 내 마음의 풀기를 세운다. 사는 게 뭐 별것인가. 겸손한 인품과 성실한 태도의 가치 덕목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거지! 하고서 내가 나를 껴안아 달래며 내 길을 가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끝까지 헤어지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된다는 것, 부모와 자식이 되고 친구가 된다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기적 같은 만남을 이루고도 많은 사람들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해야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며칠 전 짜장면을 먹었다. 나무젓가락을 쫘악 자르면서 이번에는 힘조절이 잘되어 나무젓가락이 똑같이 이등분으로 잘라졌구나 하면서 그 시시한 만족을 느끼다가 문득 젓가락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듣고야 말았다. 나무젓가락의 입장에서 만들어지고 쓸모있게 사용된 후 버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니 거기에 진리가 있었다. 한몸으로 붙어있던 젓가락은 본디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 뿔뿔이 가지가 갈라져도 서로를 놓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젓가락으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나무의 몸이 깎일 때 젓가락 두짝은 똑같은 이름으로 태어나기 위해 생사이별의 위기마다 잡은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완성된 젓가락은 하얀 종이 옷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쫘악 하고 뼈를 껶는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그렇게 나누어진 후에도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라 가까이 곁에 서서 가지런한 키로 숨결을 고르고 서로 협력하여 음식을 집어 사람의 입으로 가져가는 하나의 소명을 이룬다. 어느 하나가 삐죽 올라선다면 제대로 음식을 집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는 젓가락의 키를 맞춘다. 그렇게 음식을 집어나르는 자신의 일을 마쳐야 사람에게 펄럭이는 포만감을 줄 수 있고 그 다음에는 버려진대도 후회가 없다. 꼭 나무젓가락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철젓가락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개의 젓가락 중에서 길이가 맞는 젓가락을 찾아 짝을 맞춘다는 것은 참 의미가 깊은 것이다. 결국 사람의 일들도 그렇다. 특히 부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마치 두개의 젓가락이 한쌍이 되어 서로 마음을 맞추어 하나의 음식을 집어 나르듯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우월하거나 잘난 게 아니다. 서로가 존중하고 힘을 배분하여 협력할 때 만사가 형통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키우고 적재적소에서 살아가도록 힘을 모으셨던 것이다. 어느 한쪽이 방심하면 음식을 흘리듯이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소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 한민족은 손과 눈, 그리고 두뇌의 협업으로 재주가 많고 섬세하다. 젓가락으로 콩을 집는 그 행위는 놀랍고도 아름답다. 그러나 젓가락질은 둘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에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편리하게 포크로 콱 찍을 수도 있지만 서로 반목의 관계에 있는 모든 이들은 아름다운 균형의 미학을 가진 젓가락을 사용하면서 젓가락 같은 포용과 협력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길 바란다. 비록 짜장면을 먹다 발견한 사소한 것이지만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산 기피 풍조가 불러온 인구소멸 위기에 맞서 정부와 지자체가 기울여온 총력대응의 결과로 그 효과가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경기도가 임신 전·임신 중·출산 후 시기별 지원정책을 차별화하는 등 대응책을 강화한다. ‘국가소멸’ 초래라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대재앙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 경기도의 적극적인 정책적 대응이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작은 긍정적인 조짐에 함부로 긴장을 허물 때가 아니다. 경기도는 올해부터 모든 20~49세 남녀를 대상으로 필수 가임력 검사 비용 13만 원(여성), 5만 원(남성)을 최대 3회 지원한다. 또 가임기 여성과 임산부에게 철분제와 엽산제를 지원하고 모유 수유 교육 등 임신·출산·육아 관련 건강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신 중 정책으로는 난임부부와 임산부를 대상으로 인구보건복지협회 경기도지회 또는 동국대일산병원에서 전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부터 동국대일산병원에서는 경기도 임신출산교실을 운영해 부부 동반으로 임신·출산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4월부터 분만취약지역(연천·가평·양평·안성·포천·여주) 거주 임산부에게는 카드 포인트 형태로 교통비 최대 100만 원을 지원한다. 또 19대 고위험 임신 질환 진단을 받은 임산부 등에게 적정 치료·관리에 필요한 급여 전액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진료비 90%를 1인당 300만 원까지 지원한다. 19세 이하 청소년 산모를 대상으로는 임신·출산 의료비, 약제·치료 재료 구입비를 임신 1회당 120만 원까지 지원한다. 지난해 1월 1일 이후 출산한 산모 또는 신청일 기준 임신부를 대상으로 1인당 40만 원(자부담 8만 원 포함)까지 유기농수산물·무농약농산물 등 친환경농산물 구입을 지원한다. 이 밖에도 도내 출산가정에 산모 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 비용, 출생아 1인당 산후조리비 50만 원도 지원한다. 지난해부터 소득 기준 관계없이 도내 모든 출산가정을 대상으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신생아 양육 교육, 가사 활동 지원 서비스를 지원한다. 산후조리비는 지역화폐로 형태로 지급되며 지역과 매출액 제한 없이 사용 가능하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등록)자 수는 24만 2,334명으로 2023년(23만 5039명)보다 7,295명(+3.10%) 늘어 9년 만에 증가로 돌아섰다. 남아(12만 3,923명)의 출생등록이 여아(11만 8411명)보다 5,512명 더 많았다. 자연적 요인(출생-사망)에 의한 주민등록 인구 감소(11만 8423명)는 지속되고 있으나, 그 폭은 2023년(11만 8881명)보다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출산 절벽으로 인한 소멸 위기라는 암울한 골짜기에 희미한 빛이 비쳐 들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연구자들을 포함하여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는 아직 찾아보기가 어렵다. 영국의 인구학자 폴 몰랜드(Paul Morland)가 ‘No One Left(아무도 안 남는다)’라는 충격적인 표현을 앞세워 내놓은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두 세대 후 한국 인구의 85%는 사라질 것”이라는 끔찍한 전망치를 내놓은 바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경제성장 둔화, 복지 부담 증가, 사회 구조 변화, 국제질서 재편 등 다층적 영향을 초래하며, 한국은 이미 이 문제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전국 최대의 지자체인 경기도의 인구 절멸 대응책의 성패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국가사회는 유의미한 반전의 모멘텀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층 더 세밀하게 다듬어진 경기도의 임신출산정책이 큰 호응을 받아 빛나는 성과로 이어지기를 고대해 마지않는다. 육아와 교육 부담 모두를 공동체가 전면 책임져주는 사회로 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금 탄핵정국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12.14)하고 체포, 구속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저항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7년 3월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파시즘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파시즘은 강력한 국가주의를 강조하며 권위주의적 통치가 특징이다. 이러한 파시스트 운동은 대중의 불만을 이용하여 지지를 확보하고, 선전과 선동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며 때로는 폭력을 사용하려 한다.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대중을 조종한다. 역사학자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은 다른 정치 전통에서는 볼 수 없는 파시즘만의 특징이다”(<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 장현정 역, 2023)라고 하였다. 거짓 선전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은 무솔리니, 히틀러가 그랬고 윤석열 또한 그러하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국회에 통보(헌법 제77조 제4항)하지도 않은 채, ‘체제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킨다고 하면서 불법으로 국회에 침입했다. 여소야대 국회를 체제 전복세력이라고 한 것은 거짓선동이다. 그리고 계엄군을 동원하여 ‘부정선거’라는 미명하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침탈하였다. 2024년 4월 10일 치루어진 제22대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것이다.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재임 중에 이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중에 치루어진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1% 미만의 차이로 앞서며 당선됐다. 이제까지 수사 결과 부정선거에 대한 증거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자기 재임중에 실시한 총선 결과를 의심하고 선관위를 공격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윤석열은 내란수괴 혐의로 체포되어 구속 중에도 “지지자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독려하고, 지지자들은 사주를 받아 ‘국민저항권’이라고 하면서 법원을 공격했다.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침탈을 당한 것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항권이란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국가·정부 권력에 의하여 극도로 침해되었을 때,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국민의 권리를 말한다. 친위쿠데타를 범한 윤석열과 그 지지자들에게 저항권이라는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 내란범의 수괴가 국헌을 문란하게 했다면 마땅히 구속되고 처벌받아야 한다. 내란범을 지지하는 것은 저항권이 아니라 공범을 자처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당원 제1호인 윤석열을 신속히 제명해야 한다. 탄핵정국은 거짓과 선동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심의하고 있지만 어떠한 판결이 나더라도 파시즘 현상은 쉽게 종식되지 않을 기세이다. 이번에 파시즘 요인들을 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백년 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 도산 안창호는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하면서 망국의 백성들에게 절규하였다. 이제 우리는 탄핵을 넘어서 창궐하는 파시즘을 파기하고 진실과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당면한 탄핵정국을 넘어 우리는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로 곧추세우기 위한 대로를 열어야 한다.
선물처럼 주어진 9일간의 황금휴가를 보내고 일상에 복귀했다. 그 긴 시간 내내 한 일은 주변 사람들과 서로 안부를 전한 것 뿐이다. 우리에겐 저마다 삶의 무게가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쉴새 없이 일해야 한다. 가정이 있다면 가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노후와 만약을 대비한 적당한 자산도 모아야 한다.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로 미뤄선 안 된다’는 욜로(YOLO) 정신은 언감생심 눈꼽만큼도 허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설 연휴의 첫 날, 몇 년 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친구는 노안이 왔다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 쓰고 있던 안경을 이마 위에 걸쳐올렸다. 다른 친구는 염색을 미루다 얼마 전 마트에서 ‘할머니’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건강이 최고다, 최대한 회사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월급만 따박따박 나와도 행복하다, 경력단절이 길어져 애가 더 크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소연을 하다 부디 아프지만 말자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새해 인사를 나눈 지인들도 저마다 사연을 하나씩 풀어놨다. 50대 초반 여성 A는 작년까지 다니던 계약직에서 기간만료로 퇴사했고 현재 실업급여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실업급여를 받지만 이후엔 어떻게서든 일자리를 다시 구해야 한다며 막막해했다. 또 다른 50대 초반 여성 B는 올해 중반쯤 직장과의 계약이 끝난다. 운좋게 대기업 계약직에 채용됐으나 2년이라는 기간은 눈 깜빡할 새 지나간다고 했다. 다음엔 어디서 일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50대 초반 남성 C는 지난달까지 회사를 다니고 설 명절과 함께 권고사직했다. 그 역시 약간의 위로금과 실업급여로 한 동안 생활이 가능하지만,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마냥 쉴 수만은 없다고 했다. 40대 중반 D는 30대에 다니던 소규모 업체가 폐업하면서 현재는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이번 설 명절이 길어지면서 평소보다 높아진 배달 수수료를 버느라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연휴가 끝난 후에는 수수료가 다시 낮아져 일할 맛이 안난다고 했다. 나는 9일이라는 황금 연휴를 보내면서 주변에 있는 대한민국 중년들의 자화상을 하나씩 관찰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소감을 씁쓸하다거나 슬프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우리의 하루하루이며, 새로 시작한 올해에도 변함없이 이어질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은 절기상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무색하리 만큼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친 날이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진 않나 생각해본다. 따스한 희망이 존재하지만 막상 눈앞엔 차디찬 벽만 가득해보이는 모습과 닮아 있어서다. 그렇다면 우린 이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틀림없이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대범하게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경제적으로 더 힘든 한해가 될 거라고 한다. 그로 인해 정신은 피폐해지고 우울감은 더해질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꽃이 만발하는 따뜻한 날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봄은 오고야 말테니까. 우리 삶의 엔딩은 봄날일 거라 믿고 싶다.
전통시장 활성화와 소비 촉진을 위한 온누리상품권 할인행사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혜택이 디지털 상품권에 집중돼 사용이 미숙한 계층이 소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부정 유통 가능성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디지털 상품권의 할인율을 대폭 늘렸다. 결국 디지털 마인드가 취약한 지류 상품권 사용계층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소외계층이 차별받는 쪽으로 정책이 설계됐다면, 이는 시급히 보완 개선되는 게 옳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온누리상품권 발행량은 5조 5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중 지류 상품권은 부정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여전히 1조3000억 원에 달한다. 온누리상품권은 지류형과 디지털형(카드·모바일)으로 나뉜다. 카드형은 온누리상품권 앱 설치 후 기존 카드를 등록, 금액을 충전해 사용한다. 모바일형은 앱에서 모바일상품권을 구매해 가맹점의 QR코드를 찍고 금액을 전송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온누리상품권 할인 행사가 이뤄지는 전통시장 등 매장의 상인·소비자 중 고연령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은 지류 상품권이 아닌 디지털형 온누리상품권 결제 방식에 미숙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10일 정부가 진행한 온누리상품권 할인행사 첫날 접속자가 몰리면서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이 한때 마비됐다. 할인행사 첫날 기록된 접속 트래픽은 최대 972만 건으로 시간당 평균 135만 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추석 특판 당시 최대 트래픽인 96만 건의 10배, 시간당 평균 접속량 33만 건의 4배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서버 정상화 이후에도 구매자가 몰리면서 수천 명의 대기 인원이 발생했다. 이같이 많은 사람이 몰린 건 전례 없는 할인율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온누리상품권 할인율이 15% 선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디지털 상품권 구매할인(15%), 환급행사(15%)와 더불어 온라인전통시장관에서 할인쿠폰(5%)까지 모두 적용받는다면 최대 35% 할인 혜택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설맞이 행사 기간(1월 10일~2월 10일) 기존 5%에 그치는 지류 상품권 사용자들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결국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 등은 단지 디지털 상품권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심각한 차별을 당하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설 대목 상가에서 상품권을 사용하는 계층은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었다. 디지털 상품권에 익숙하지 못한 상인들은 환급 절차가 복잡해서 처리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을 토로한다. 설 명절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를 진행한 수원시의 관계자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이 같은 디지털 소외계층의 혜택 격차에 대한 지적은 지난해 발표된 국회입법조사처의 ‘온누리상품권 사업 효과와 개선과제’ 보고서에도 나왔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10% 할인 지류 상품권을 발행하지 않는 것은 지류 상품권 주 구매층으로 예측되는 저소득 노령층을 비롯한 모바일 약자를 상대적으로 차별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입법조사처는 상품권 종류별 할인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구체적으로 지류형과 카드·모바일형 할인율 차이를 기존 5%p에서 2%p로 축소·재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연령은 반비례한다. 연령대가 높으면 어떻게 앱을 깔고 어떻게 휴대전화에 카드를 등록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금 현품 없는 사회는 가야 할 길이긴 하다. 그러나 디지털 문맹까지 전체를 포용하는 형태에 관한 연구와 노력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알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국가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공평하고 따뜻한 정책이 추구돼야 한다.
어린 시절 동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 방법을 만들어냈다. 놀이기구 하나에서 놀 수 있는 수십 가지 놀이가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미끄럼틀에 원숭이처럼 매달려서 땅에 발이 닿지 않고 술래잡기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렇게 놀다가 질리면 미끄럼틀 손잡이에 구슬을 굴리는 구슬치기를 하거나, 미끄럼틀 지붕 아래에 잡동사니를 모아 집을 짓고 놀았다. 원하는 놀잇감이 없으면 상상으로라도 만들어서 하루를 재밌게 보냈다. 포유류의 공통적 특징 중에는 자유놀이가 있다. 어른의 개입 없이 아이들이 심판이 되어 규칙을 만들고 플레이어도 되는 놀이를 뜻한다. 다양한 동물들이 꼬마 시절에 아무렇게나 노는 것 같지만 자유놀이를 하며 사회화되어 간다. 놀면서 타이밍에 맞게 대화를 하거나,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기술을 익힌다.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어린이에게 자유놀이 시간이 부족해지면 말 그대로 사회성이 부족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요즘은 놀이터에 정글짐이나 높이가 긴 놀이기구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매달려서 놀다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낙상을 막기 위해 놀이터 바닥이 모래에서 우레탄 재질의 탄성 고무로 바뀌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다칠 위험이 있는 놀이기구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대신에 엄청나게 안전하고 놀이 규칙이 정해져 있는, 상상력을 덜 자극하는 기구들이 놀이터에 남았다.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어른들의 마음이 무균실에 가까운 놀이터를 만드는 중이다. 상황이 더 나쁜 건 무균실에 가까운 놀이터마저도 이용할 시간이 없다는 거다. 대신에 자유놀이를 경험하지 못한 채로 스마트폰 가상 세계에 빠진다. 놀이터의 모래와 위험한 기구를 치우는데 열중했던 어른들은 가상 세계의 번지점프대나 낭떠러지 같은 놀이기구들은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현실 세계의 아이가 얌전히 앉아서 액정 화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어른의 뇌가 감당하기에도 벅찬 내용들이 많다. 자유놀이가 대신 가상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나쁘기만 할까. 가상 세계에서 친구들 간의 우정이나 대화법 같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나온다. 2010년 스마트폰 사용이 확대된 이후로 아이들의 정신건강 지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0대의 우울증 비율이 2010년 이후 10년 동안 여자아이 145%, 남자아이 161%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국에서는 2022년도에 처음 소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7% 정도의 아이들이 도움이 시급한 정신건강의 문제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7년에 다시 조사하는 시기에는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비율이 더 늘어있을 확률이 높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과 밀접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에게는 현실에서 경험하는 놀이가 필요하다. 어른들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규칙을 만들고, 갈등을 일으키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놀면서 무릎, 팔꿈치 등에 각종 상처를 얻는 것도 좋다. 그래야 통증에 둔감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빠진 채 성장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인류 전체에게 비극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