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모처럼 막내 동생 내외와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중 동생은 자연스레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졸업을 앞둔 큰아들 얘기를 꺼냈다. 물론 취업걱정이었다. 지난 일요일인 6일 취업시험을 치렀고 그 시험 이외에도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제출해 놓은 상황을 이야기하며 털어놓은 걱정이었다. 그중에는 아들이 받는 중압감에 대한 것도 포함돼 있었다. 잘 될 것이라는 위안의 말로 화답했지만, 취업이 ‘고시’나 다름없는 요즘이어서 동생 내외의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아 매우 안쓰러웠다. 이렇듯 대졸 구직자들에게는 10월이 기회의 달이기도 하지만 좌절과 고통의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10월을 잔인한 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소한 취업희망자들과 가족에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올해도 10월 초 어김없이 대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을 모집했다. 2월과 8월 졸업생, 그리고 내년 2월 졸업예정자, 거기에 취업재수생까지 수십만명이 시험을 치렀다. 삼성그룹에 13만여명, 현대차그룹에 10만여명이 몰렸다. 덕분에 이들을 포함 4대 재벌그룹의 입사경쟁률도 평균 8.3대1로 지난해 6.1대1보다 크게 높아졌다. 삼성은 SSAT 시험을 보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최대 숫자다
가을의 심장이 지나가고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의도와 상관없이 읊조리는 시가 있다. 낸시 우드의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주책이다. 내용은 이렇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모든 생명체가 나와 조화를 이루고/모든 소리가 내 안에서 합창을 하고/모든 아름다움이 내 눈 속에서 녹아들고/모든 잡념이 내게서 멀어졌으니/오늘은 죽기 좋은 날/…/웃음이 가득한 나의 집/그리고 내 곁에 둘러앉은 자식들/그렇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떠나겠는가.’ 가장 아름다운 날, 세상을 접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 같은 범부(凡夫)에게는 더구나,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스콧 니어링처럼 100세나 넘긴다면 스스로 곡기를 끊을까? 쉽지 않을 터다. 여기 암(癌)과 공생 또는 투병에 들어간 사내가 있다. 소설가 윤대녕의 표현처럼 ‘천지간(天地間) 사람 하나 들고 나는데 무슨 자취가 있을까’만 그의 투병 소식이 내 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비단 대학시절 맺은 인연 때문은 아니리라. 다큐멘터리 감독, 이성규가 그다. ‘오래된 인력거’와 ‘시바, 인생을 던져’가 대표작이다. IMF 이후 호흡이 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
김성기 가평군수가 결국 14일 구속됐다. 지난 4·24 보궐선거를 앞두고 유력한 상대후보였던 K씨에게 수천만원을 주고 후보를 사퇴하게 한 혐의다. 향후 재판에서 김 군수의 유무죄가 밝혀지겠지만, 당선 6개월 만에 수감되는 군수를 보는 심정은 허탈하기 짝이 없다. 지난 보궐선거 당시 김 군수는 “부조리와 청탁으로 얼룩진 가평을 깨끗하고 바르게 사는 ‘청렴한 가평’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취임 100일 인터뷰에서는 “사람의 따뜻함과 진심이 그대로 전달되는 감동이 있는 군정을 펼쳐 나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김 군수만이 아니라 전임 이진용 군수도 뇌물수수 혐의로 직을 잃었고, 그 전임 양재수 군수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했으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다. 전전임 군수가 벌금형이 확정되어 군수직을 잃은 게 2007년이다. 또한 전임 군수는 2010년 재선 이후 구속-보석-법정구속-집행유예의 파란을 겪었다. 거의 7년째 가평군정의 파행이 군수들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정 가평’의 이미지가 군수들로 인해 더럽혀진 격이어서 안타깝다. 가평은 군세가 약한 지역이지만 단체장 선거는 어느 곳보다 치열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선거과정에서 후보가 난립하
개인이나 지자체, 국가를 막론하고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났을 경우엔 파산을 하게 된다. 개인의 경우 파산 선고를 받게 되면 후견인, 친족회원, 유언집행자, 수탁자, 공무원,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이 될 수 없다. 또한 신원증명서에 파산사실이 기재되며, 금융기관에서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 계좌개설을 할 수 없게 되는 등 법적 활동과 경제적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파산을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앙정부에 손 벌리면 도와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자체 파산이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호화 청사를 짓거나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은 전시성·선심성 대규모 사업과 행사에 예산을 흥청망청 쓰는 곳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도내 지자체가 사업성도 없는 경전철을 건설해 빚더미에 오른 용인시다. 당연히 용인시는 전국 지자체 부채증가액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기초·광역 전체로도 전국 2위다. 13일 국회 안전행정위 소속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안행부에서 제출받은 ‘2010~2012년 지자체별 부채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속상한 일은 또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인천시는 최근 3년간 전국 광역·기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얼마 전 지나갔다. 추석 때마다 뉴스를 통해 새로운 명절 풍속도가 들려오곤 하는데 지난해까지 제사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대세였다면, 올해는 제사 자체를 대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지나면서 문화도 변화해야 하지만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지켜갈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추석에 송편을 빚고 성묘를 하는 것과 같이 명절에 주기적으로 되풀이되어 행해지는 의례와 놀이를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농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농경의례라고도 하는데, 곡식을 바치며 풍요를 기원하거나 농사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잔치를 벌였다. 세시풍속은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적 기능과 더불어 공동체 삶을 강조하는 사회적 기능, 휴식과 자연의 재생을 통한 생산적 기능, 전통예술 전승 측면에서의 예술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런데 양력 사용이 보편화되고, 생활주기가 일주일 단위로 바뀌면서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있던 전통사회의 명절은 슬그머니 밀려나고, 현대사회의 생활문화를 반영한 새로운 풍속이 생겨나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상업적 마케팅에서 비롯된 밸런타인데이를 비롯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등이 그것이다. 정월대보름
고전에 이런 글이 있다. 어느 곳이건 어진 사람, 호걸, 똑똑한 인물, 박식한 자가 없는 마을은 없다. 반대로 어느 곳이나 남의 잘못을 들춰내기 좋아하고 남의 착한 일은 덮어 두고자 하는 자도 없는 곳이 없다. 그러니 그곳에 가거든 반드시 어진 이에게 물어 스스로 찾아가고, 박식한 자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또 남의 잘못을 들춰내기를 좋아하는 자, 남의 善(선)을 덮어 두고자 하는 자는 잘 보아 관찰해야 한다. 소문만 듣고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무릇 듣는다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느니만 못하고, 눈으로 보는 것은 발로 직접 밟아보는 것만 못하며, 발로 밟아보는 것은 손으로 변별해 보는 것만 못한 법이다. 사람이 처음 벼슬길에 나서는 것은 마치 캄캄한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한참을 지나야 방안의 물건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어떤 단체나 직장 또는 가정에서 주위를 어지럽히고 심지어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일들을 보게 된다. 모두가 사회생활의 기본적 예의가 갖춰지지 않고 고전을 통한 자기 수양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다. 교양이라는 것은 힘들게 익혀야만 담겨지는 것이기에 집에는 가훈이 있고, 학교에는 교훈이, 직장에는 사훈이 있지 않을까. /근당 梁澤東(
아이들이 아프다. 청소년 자살률이 10년 동안 57%나 증가했다는 조사결과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축 쳐진 어깨로 눈 비비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얼굴만 보더라도 그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입시위주로 빈틈없이 짜인 교육과 그것으로 스트레스 받은 아이들은 학교폭력과 자살 등으로 폭주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1만6천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하니 지금의 아이들은 아파도 많이 아프다. 오랜 서민경제 위축과 맞벌이 가정의 증가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는 아이들의 능력 수준은 대학진학을 눈앞에 두고서는 선진국 아이들과 격차가 크게 벌어져버린다고 한다. 정말 똑똑한 머리를 가진 우리 민족성이 혹여 잘못된 교육과 환경으로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걱정스럽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을 손질한다고 해왔지만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한때 청소년들의 탈선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을 통해서 우리는 방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60~70년대 청소년들의 탈선과 임신 비율이 치솟으면서 미국사회에는 비상이 걸렸다. 덩
손학규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기념세미나에 안철수 의원이 참석했다. 이를 두고 손학규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 간에 연대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거기다 민주당은 다시금 야권연대를 부르짖고 있다. 한마디로 손-안 연대냐, 야권연대냐가 지금 정치권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확률상으로 보면 손-안 연대가 성사될 가능성이 야권연대의 성사 가능성보다 낮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먼저 손 전 대표의 입장에선 실체도 없는 안철수 의원과 연대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손 전 대표 측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창립기념일에 안 의원이 온다고 해서 이를 말릴 수 없었을 뿐, 연대를 염두에 두고 초대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안 의원의 세력과 인기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 의원의 언급은 신문 3면이나 4면에 하단기사로 처리되기 일쑤다. 반면 손학규 전 대표의 경우는, 독일에 있을 때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문 정치면에서 비중 있는 기사로 다뤄졌다. 언론에서 특정 정치인의 발언 혹은 행보가 어떻게
우리나라 교사의 위상은 어느 정도이며, 학생들은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극과 극이다. 글로벌 교육기관 바르키 GEMS 재단이 지난 5일 교사의 연봉, 사회적 평가 등을 종합해 ‘2013 교사 위상 지수(Teacher Status Index 2013)’를 발표했다. 미국, 영국, 중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1개국에서 직업·성별·연령 등에 따른 1천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다. 조사결과 우리나라 교사들의 위상은 대상국 중 네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존경심은 조사에 포함된 국가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렀다.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는가’란 설문에 “그렇다”란 응답은 고작 11%에 불과했던 것이다. 21개국 중 꼴찌였다. 중국(75%)이나 터키(52%), 싱가포르(47%)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뿐만 아니라 교육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또한 19위였고, ‘교사의 학업수행에 대한 신뢰도’에서도 평균이 6.3점인데 한국은 낙제점인 5.4점이었다. 교사의 위상은 높은데 존경받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듯 학교 현장에서 학생·학부모에 의해 교권이 침해받는 사례가 지난 4년간 4배…
이천시 소재 한 복지시설이 가정폭력을 피해 입소한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노동력까지 착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본보 14일자 8면). 특히 이 시설은 입소자 수를 부풀려 보조금을 과다하게 지급받는가 하면 후원 금품마저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직 관계기관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속단하긴 어려우나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가정폭력은 여성에게 있어서 지옥이나 다름없다.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해자를 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성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정도로 피해가 심각해 사회적 범죄로 분류된다.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이천의 복지시설은 이 같은 피해 여성들이 머물고 있는 보호시설이다. 때문에 이들을 보듬고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치료하도록 도와주는 등 쉼터 역할을 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보도를 보면 이천의 복지시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입소자들을 마치 소장 개인의 도우미 취급은 물론 비인간적인 대우와 인격적인 모독 등 범죄자 취급을 일삼은 모양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하고, 전기 및 생리대 숫자를 제한했다는 입소자들의 분노 어린 진술도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입소자에게 각종 명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