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에 대한 성추행 및 성희롱 의혹을 받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관련한 경찰 수사가 벽에 부닥쳤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돌아본 우리 사회 ‘미투 피해자’들의 현실은 2차 가해 등 고통이 깊어지고 있으나 마땅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몰지각한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 대책과 함께 ‘미투 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진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시청의 비협조까지 겹쳐 경찰의 진상조사가 가로막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 비위 의혹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피해자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박 전 시장 사건 진상조사가 공소권 여부와 상관없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여론이 60%를 넘어서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그 사이 피해자 A씨에 대한 2차 가해는 거듭되고 있다. 프리랜서 방송인 박지희 씨는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피해자 A씨를 향해 “4년 동안 그러면 대체 뭐를 하다가 이제 와서…”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YTN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이동형 작가도 자신의 유튜브에서 “피고소인(박원순)은 인생이 끝이 났는데 숨어서 뭐 하는 것인가”라고 힐난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팟캐스트 방송에서 안희정 전 지사 사건 피해자인…
오늘은 야간진료다. 누군가 화사하게 인사한다. “원장님 계속 치료 많이 받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늦게 끝나고 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속 못왔어요”.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잘 지내요 호호호.”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이쁘다. 문득 그녀가 처음 내원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힘들게 약속을 몇 번이나 바꿔가며 진료실에서 만나 연변 사투리로 꺼내놓는 증상들이 심상치 않다. 자신의 몸에서 고름 냄새가 나고 직장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욕하고 수군거리고 쳐다보고 또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온다고 하였다. 검사가 필요해 대기실에 기다리라고 하는 사이 하필이면 그때 불시에 방문한 타업체의 남자직원이 방문하였다. 그녀는 저 사람이 자신을 쫓아왔다고 말하며 다음에 오겠다고 부리나케 나가버렸다. 나는 소개한 분의 염려를 떠올리며 그녀에게 세심한 관심과 치료가 필요함을 전화로 알렸고 이어 연결되어 딸의 상황을 들은 그녀의 엄마는 자신이 잘 챙기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 일을 잊어버릴 때 쯤 그녀는 엄마와 함께 내원하였다. 처음 내원시 증상과 함께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불면, 통증 등 증상이 한보따리다. 화병과 중증도의 우울과 불안을 보인다.화병은 대게
가슴기 살균제 피해 규모가 당초 발표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소식에 충격에 휩싸인 하루였다. 뉴스를 듣는 순간 가슴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던 그때 나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었다. 가습기는 쓰고 있었으나 다행히 살균제를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무실이나 공공공간에서 가습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나 또한 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몇 년 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는 사람은 필자 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재난이 너무나 자주 우리 삶에 찾아오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나날인데 홍수 피해나 가습기 살균제 소식은 어느 때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는 상품들은 즐비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자 만든 장치와 물건들이 오히려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늘은 손때 묻은 할머니의 장롱과 같이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작품 두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조혜진의 개인전 ‘한 겹 Blurry layer’은 올해 초 통인보안여관에서 열렸다. 그는 자개농의 문짝을…
지금 어떤 음악을 듣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대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인의 취향이 매우 확고하여 한 장르의 음악만 고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고, 또 누군가는 조금 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유연하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몇 해 전까지는 힙합 음악이 그리고 요즘처럼 트로트 음악이 사정없이 울릴 때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당시 유행하는 음악을 저항 없이 듣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 본다. 몇 해 전 무한도전의 ‘토토가’ 열풍이 불었다. 연일 그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의 링크와 시청 소감 그리고 추억담을 이야기하느라, 사람들의 SNS 타임라인은 꽤 분주했다. 한 세대 전의 음악이 전국의 거리에 흘러나왔고, 나이로 볼 때, 그 당시의 문화를 향유하지 못했을 법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그 노래들을 흥얼거렸다. 이 현상은 프로그램의 기획력과 파급력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강력했으며, 드라마나 가요의 복고 혹은 레트로의 열풍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 예견했던 당시의 분위기에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얼마 전 음원 발매와 함께 차트를 점령한 ‘싹쓰리’ 역시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토토가’의 킬링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모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가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권한을 대폭 조정하는 권력기관 개편안을 내놓았다. 개혁안은 검찰의 수사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경찰의 역할과 권한을 크게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공룡 수사기관’으로 탈바꿈될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중립성 담보를 위한 제대로 된 장치도 안 보이고, 역량에 대한 의심도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검사의 1차 직접수사 개시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 등 6대 범죄로 축소된다. 공직자 수사의 경우도 5급 이하는 경찰이, 3급 이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맡게 돼 검찰은 사실상 4급만 수사하게 된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도 폐지된다. 축소된 권한들은 모두 경찰로 이관된다. 수사 개시 및 종결권을 갖게 되는 경찰은 명실공히 수사·정보·보안업무를 총망라하는 슈퍼 수사기관이 된다는 얘기다. 진작부터 전문가들의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단일 규모의 최대 조직(약 12만 명)인 거대 경찰조직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단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한다. 마땅한 통제장치가 없는 권력기관이 확장되는 것은 치명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오는 17일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실시된다. 정부는 예년보다 대폭 축소된 규모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축소 이유는 미국 본토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대규모 미군병력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전반기 한미연합훈련도 연기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기도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취소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코로나19 확산방지와 남북관계 신뢰회복을 위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취소돼야 한다며 통일부에 건의문을 보냈다. 코로나19 방역은 정부의 제1국정과제이자, 경기도의 최우선순위 도정 과제인데 한미연합군사훈련으로 인해 코로나19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도의 주장은 근거가 있다. 지난 7월 30일까지 평택시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 환자가 총 146명인데 이 가운데 71.9%가 주한 미군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주한미군 확진자 121명이 발생했는데 이 중 107명이 경기도에 주둔 중인 미군과 가족 등 관련자들이었다.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미국 현지에서 의심 증상이 확인됐는데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한 미국 측의 무책임한 자세다. 따라서 이 평화부지사는 “미군의 대응을 신뢰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어 삶아먹는다”는 말이다.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필자의 눈길을 끄는 글이 올라왔다. “포천파출소에 사는 왕방이·왕순이를 지켜주세요.” 포천시의 포천파출소에서 약 3년 전부터 키우던 강아지 왕방이·왕순이를 필요할 때는 계급장까지 달아주며 홍보하더니 이제는 파출소측이 이 강아지들을 파양한다는 내용이며, 심지어 입양당시 ‘동물등록’을 편의상 파출소가 아닌 이웃주민 명의로 했기에 소유권 자체도 부인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파출소측은 길 잃은 유기견을 돌봐주고 양육함으로 어렵고 힘든 시민을 돌봐주고 도와준다는 경찰에 대한 ‘이미지 제고’와 별반 다른 파출소와 차이점이 없는 시골 파출소에 ‘신규 홍보컨텐츠 창출’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소위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어떠한가? 말 그대로 토사구팽으로 파출소 입장에서는 안하니만 못한 격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다. 그렇기에 유발하라리의 초 베스트 소설 ‘사피엔스(Sapiens)’를 보면, 인간은 인간의 이기심을 채우고 죄책감을 덜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인간을 제외한
중학교 때 특별 활동반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인공 역은 남학생이었다. 그 상대편 역으로 필자가 뽑혀서 발표회를 앞두고 몇 주를 맹연습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인 남자애가 뜨거운 눈빛을 내게 보내는 것이었다. 연극을 하면서도 나는 그 상대편의 남자 주인공 애를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길을 피하며 연극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그 애가 이상하게 나에게 관심 두고 행동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딴청을 피우던 일이 생각난다. 그즈음 나는 국어 선생님을 몹시 짝사랑하였다. 아주 젊으신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왜 그렇게 마음이 설렜는지 모른다. 특히나 글짓기 시간이면 잘 보이려고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러면 그 선생님께서 잘 썼다고 칭찬해 주실 때 얼마나 기뻤던지, 그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과 눈을 맞추려고 애를 썼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을 바라볼 때의 내 눈빛은 어떠했을까?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호감 어린 촉촉한 눈빛이었으리라.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검찰 고위직에 있는 두 사람이 압수수색 문제를 놓고 멱살을 잡고 드잡이판을 벌여 사무실 바닥에 구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치가 사법기관에 깊숙이 개입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치욕스러운 사건이다. 따로 줄을 선 검찰총장 패와 서울중앙지검장 패가 벌이는 패싸움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날로 고달파지는 국민 정서는 안중에도 없는 검찰의 추태는 하루빨리 종결돼야 할 것이다. 전 채널A 이동재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공모했다는 소위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수사팀장을 맡은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29일 오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사무실에서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USIM·가입자 식별 모듈)칩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한 검사장은 “공권력을 이용한 독직 폭행”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물리적 방해 행위로 인한 폭행”이라고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 검사장 측의 주장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정 부장검사의 동의하에 변호인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려고 하자 정 부장검사가 소파 맞은편에서 몸을 날려 한 검사장을 쓰러뜨린 뒤 몸에 올라타 얼굴을 눌렀다고 주장한다. 한 검사장은 “공
강원도 속초 인근에서부터 한눈에 보이는 울산바위는 거대한 바윗덩이다. 조물주가 천하에 으뜸가는 경승을 하나 만들고 싶어 온 산의 봉우리들을 금강산으로 불러들여 심사했다고 한다. 둘레가 4km쯤 되는 울산바위는 울산을 출발하여 금강산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덩치가 커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금강산의 일원이 되지 못하였다. 울산바위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생각하고 지금의 자리에 눌러 앉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설악산을 방문한 울산부사가 이 울산바위의 전설을 듣고 신흥사를 찾아가 주지스님에게 “울산바위가 너희가 관장하는 사찰림에 와 있는데 땅세를 물지 않으니 괘씸하기 그지없다. 땅세를 내놓아라” 하였다. 그래서 매년 세를 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에 신흥사의 동자승이 나섰다. “이제 세금을 내지 못하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 땅으로 가져가시오.” 이에 울산부사가 “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주면 가져가겠다”라고 하였다. 재로 새끼를 꼴 수 없으니 계속해서 산세를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동자승이 사람들을 모아서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 지금의 속초 시가지가 자리한 땅에 많이 자라던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맨 뒤에 그 새끼를 불로 태워 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