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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금의 시선]평안도 나박김치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피천득은 쓰고 있다. 연한 살결에 비취가락지를 하고 기다리는 신부와 같은 오월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어 가정의 달이다. 자식과 부모와 스승이 모두 있는 사람에게 오월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꽃을 준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고르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남쪽에서의 오월은 분주하다.

 

고향 이북에는 피천득의 오월에 대한 아름다운 수필도 이벤트도 없다. 그러나 오월에 만들어 먹는 평안도 나박김치가 특별히 맛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남쪽보다는 훨씬 겨울이 긴 탓에 함경도 지역은 오월이면 마지막 겨울 김치를 먹고 있을 때 서해안에 위치한 평안도는 조금 따듯하니 새싹이 돋아나는 무를 움에서 꺼내 나박김치를 담근다. 물맛이 좋아 물김치를 많이 담그는가보다. 나박김치는 늘 해먹던 음식이라고 평안도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말한다.

 

봄에 담그는 나박김치는 생기를 얻고자 싹이 돋아난 것으로 골라서 담근다. 바로 먹어야 하기에 얄팍하게 네모지게 나박나박 썰어서 고춧가루를 비벼 색깔을 낸다. 주변의 밭이랑에서 봄기운에 자라는 달래를 한 옹큼 캐서 넣고 미나리도 넣고 마늘과 생강을 넣고 소금물을 슴슴히 가득히 부어 익혀 먹는다. 입맛을 잃고 저승의 문턱에 갔던 처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준 나박김치를 먹고 살아났다는 설화도 있다. 그러니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을 가진 오월은 아니라도 사람을 살린다는 기막히게 맛있는 음식이 오월의 평안도 나박김치가 아닐 가 생각해 본다.

 

가정의 달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이 자식과 부모, 스승이 있음으로 원숙한 길로 나갈 수 있는 신록의 오월이다. 맑고 순결한 오월에 어떤 사람은 축하를 받느라 분주할 것이고 또 누구는 보내줄 선물과 아름다운 문장을 찾느라 애쓸 것이다. 연한 잎이 더욱 푸르러지고 부귀한 모란이라도 시들면 갈 봄 없이 다가온 여름에 자식과 부모, 스승이 없어서 눈물 흘릴 평안도 아지미도 있다. 그리고 오월의 어느날 평안도 아지미가 평안도 나박김치를 먹으며 성숙한 여름의 여인으로 태어날지 뉘 알리

 

연하고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피천득의 오월은 거칠고 메마른 비여서 채워질 수 없는 정서의 빈곤에 짙은 향기를 실어온다. 스승을 만나고자 하여도 만날 수 없는, 부모가 되고자 하여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오월은 망각하고 싶어지는 달이기도 하다. 내안에 상처의 무게가 커다란데 부모님에게도 전하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단어를 난발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찬물로 금방 세수한 스물한살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리고 봄에 죽은 입맛을 살린다는 평안도 나박김치의 조선시대 설화를 믿고 싶어졌는지도. 어찌 되었든 평안도 나박김치는 물맛 때문인지 기막히게 맛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평안도 나박김치는 봄, 여름 없이 무만 있으면 쉽고 빠르게 담그어 먹을 수 있는 김치이다. 받을 곳도 보낼 곳도 없는 사람들에게 나박김치를 만들어 나누고 싶어지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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