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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금의 시선] 고향에도 봄은 오는 가(1)

 

4월 5일은 청명(寒食)으로 고향 북쪽에서는 공휴일이다. 산에 산에 꽃이 피는 시기이다. 남쪽에서는 벚꽃이 한창이다. 이 시기 북쪽 고향에서는 조상의 묘부터 살핀다. 묘소 주변을 정돈하거나 혹은 묏자리가 좋지 않거나 먼 거리 오가기가 불편하면 청명날에 맞추어 이장(移葬)을 한다. 떡이며 부침이며 과일 같은 구하기 힘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서 산으로 오른다. 이러한 제례의식에 참여 못하는 사람들은 산에 갈 이유가 없는, 조상의 묘가 없는 사람들이다. 

 

북쪽 고향집도 조상묘가 없어 청명날이면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제상을 차려놓고 집안에서 제사를 한다. 할아버지는 중국 장춘 어디에 묻혔고, 기일(忌日)도 모르는 장손인 아버지는 막연하게 비슷한 날을 추정했다. 생전에 좋아했다는 담배를 상위에 놓으면 신기하게도 사람이 흡인하는 것처럼 반짝이며 타들어갔다. 어머니는 제상 차리는 것을 거들면서도 못마땅해했다. 사진도 없는 제상에서 부모님들은 눈물을 보였다. 나에게는 고향이지만 부모님에게는 타향이고 두만강 건너 정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슬픈 것도 딱히 기쁜 것도 몰랐던 청명(寒食)을 기억하게 해주는 사건이 있다. 1990년대 봄, 그 시기의 봄은 봄이 아니다. 굶주림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도 하늘이 그렇게 푸르고 맑을 수가 없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의 숫자만큼이나 무덤도 많아졌다. 산 중턱을 차지했던 잔디도 입지 못한 시뻘건 묘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차라리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면 덜 억울하다. 무덤을 청소해야 할 일이 많아져 어느 집이라 할 것 없이 청명날에는 산으로 갈 준비를 했다. 나에게도 억울한 영혼을 달래야 하는 일이 생겼다. 회오리바람처럼 불어온 불행이 가정을 뿌리 채 흔들고 결국 1998년 청명날을 마지막으로 어머니 묘소를 돌아보고 정들었던 고향집을 떠났다.

 

청명이 되면 북쪽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의 묘소와 가족의 안부가 무척 그립다. 어머니 기일은 알고 있지만, 아버지와 오빠, 언니의 생사는 알길 없다. 먹고자 살고자 고향을 떠났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음에도 행복할 수가 없다. 잊고자 하니 생각나는 한식과 추석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족이 있는 곳이 고향이라 한다면 가족을 잃은 곳을 무엇이라 할까. 그 시기에 겪었던 일들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고, 먹는 행위가 없으므로 죽어갔던,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1990년대의 봄은 봄이 아니다. 먹지 못하고 죽은, 죽어가는 자들의 봄이다.

 

봄은 또한 산자들의 축제이다. 벚꽃이 개화하고. 진달래가 피어나고, 창가에 목련이 봄을 알리고 있는데 아니 즐기고 살 수는 없다. 새싹들을 탐하여 식탁에 올리고 봄 축제에 참가한다. 코로나19로 힘들기는 하지만 봄을 즐기면서 어떻게든지 버티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시기를 기억할 것이다. 산자들의 축제인 봄, 북녘의 고향에도 봄은 오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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