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에 경기도교육청 직원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진도 팽목항과 안산 단원고로 향했다. 이들은 팽목항에서 희생자 유가족을 돕고 생존자 구조를 지원했다. 단원고에서는 남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불안하지 않게 행정처리 등을 도맡았다. 이후 도교육청은 세월호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2021년 1월 4.16민주시민교육원을 설립했다. 경기신문은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을 지켰던 직원들의 생생한 증언과 10년이 지난 지금 경기도교육청 직속기관 4.16민주시민교육원의 역할을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 “‘우리 아이들’이기에 해야 할 일이었다” 정민석(가명) 주무관 정민석 주무관은 참사 당시 도교육청 제2부교육감 관할기관의 비상 대비업무와 진도 현장지원단 근무조 편성 등 행정업무를 지원했다. 정 주무관은 참사 당일 진도로 출발 후 2주 동안 비상업무 시스템을 구축하고 도교육청 복귀 후에도 세월호 현장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가 참사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희생자 가족들과 목포 병원에 다녀온 순간이었다. 정 주무관은 2014년 4월 18일 새벽 2시쯤 팽목항에서 수습된 희생자가 목포 병원에 안치됐지만 가족들이 차편이 없어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소식을 듣고 근무조가 아니었음에도 희생자 가족 5명을 태우고 곧바로 목포에 있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당시 ‘가족들을 그토록 찾던 자식에게 빨리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속까지 불사하며 병원에 도착했지만 정작 시신은 해당 가족들의 자녀가 아니었다. 정 주무관은 “다시 ‘내 아이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가족들과 진도 팽목항으로 돌아가는 길, 그들의 간절함과 절망감이 희망으로 바뀌어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기억난다”며 “오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희생된 학생들이 ‘우리 아이들’이기에 도교육청이 당연히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자녀를 잃은 유가족이 욕을 하면 들어주는 역할도 서스럼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 주무관은 당시 함께 일한 도교육청 직원들에 대해서도 고마움 마음을 드러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불만 없이 근무 명령에 따라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잊히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며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 위한 노력들이 지속됐으면”, 김동원(가명) 사무관 김동원 사무관은 2014년 4월 16일 도교육청 북부청사 총무과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참사 소식을 듣고 신속하게 당시 제2부교육감을 포함한 비상 근무자들과 함께 진도 팽목항으로 출발해 현장 사고수습반을 편성했다. 또 유가족들의 아픔을 달래고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서 도교육청 지원 부스를 설치하고 유가족 지원, 학생구조, 신원확인 등을 진행했다. 김 사무관은 그때를 회상하며 “현장을 처음 수습할 때는 너무 어처구니없을 만큼 거대한 재난을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한 명의 유해가 수습될 때마다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구나. 실제상황이구나’라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 김 사무관은 당일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을 마주하면서 그들의 슬픔과 아픔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학생들이 무사히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전국의 언론, 내외신 기자, 유가족, 중앙·지방 행정기관 비상근무자, 자원봉사자 등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진도로 모여 도교육청 비상근무자들이 지낼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순간이다. 당시 도교육청 비상근무자들은 직원 숙소와 진도체육관 간 이동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그들은 진도체육관과 가까운 ‘진도예술영재교육원’ 건물 회의실 바닥에 스티로폼과 돗자리를 깔고 장기간 숙박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김 사무관은 “다들 화장실에서 샤워와 세면 등을 해결하느라 불편했을 테지만 숙연하게 맡은 바 지원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려 했다”며 동료들에 대한 존중을 드러냈다. 그는 참사 이후 학생 안전, 교육가족 안전, 국민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사회 각 분야가 안전이라는 단어를 늘 새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아울러 재난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 의사결정을 신속히 내릴 수 있는 ‘컨트롤타워의 작동’이라고 강조했다. 구조 역량이 있어도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기에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세월호 영상이 화면에 나오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김 사무관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오랫동안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유일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는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우리의 아픈 역사”라며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모두의 작은 노력들이 지속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 기억과 공감으로 ‘안전사회’ 만드는 ‘4.16 민주시민교육원’ 세월호 참사 약 8년 후인 2021년 1월, 경기도교육청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생명존중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기 위해 4.16민주시민교육원(이하 교육원)을 설립했다. 현재 교육원에서는 도내 학생, 교직원, 학부모 및 시민을 대상으로 4.16 참사에 대한 기억과 아픔을 공감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안전교육과 체험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또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4.16기억저장소’와 2021년 4월 협약을 맺어 4.16 기억교실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4.16 기억교실은 세월호 희생자인 교사와 학생들이 사용했던 교실과 교무실을 그대로 복원한 장소로, 365일 개방돼 시민들은 언제나 참사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해설요원으로 활동해 방문객들은 그들의 해설로 더욱 높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교육원은 앞으로도 안전교육과 4.16기억교실 운영 등에 박차를 가해 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아울러 도내 청소년들이 높은 우울감을 보인다는 경기교육연구원 조사에 따라 생명안전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올해 안에 ‘4.16 생명안전교육원’으로 명칭을 변경할 계획이다. 교육원 관계자는 “4.16 민주시민교육원은 세월호 참사가 민주시민의 삶과 연결될 수 있도록 공감을 이끌어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경기도교육청 협찬으로 진행함. [ 경기신문 = 이보현 기자 ]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다가오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16 민주시민교육원이 ‘4.16 생명안전교육원’으로 발돋음할 것이라 강조했다. 15일 임 교육감은 4.16 민주시민교육원을 방문해 4.16기억교실에 비치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책상에 일일이 헌화하면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참사의 의미를 기억하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이날 생일을 맞은 2학년 8반 한 학생의 기억노트에 ‘슬픔의 기억을 넘어, 생명과 안전의 교육터로 이곳은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적었다. 이와 함께 임 교육감은 ‘4.16 민주시민교육원’을 ‘4.16 생명안전교육원’으로 변경해 추모와 함께 교육적 기능 강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는 “4.16 생명안전교육원은 4.16 민주시민교육원의 중심 가치를 이어받아 앞으로도 진정한 추모의 공간으로 자리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재난·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지역사회를 위해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날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이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생명·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환경 조성을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유가족인 김종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바뀌어야 된다고 외치고 안전사회를 염원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안전하길 바라는 것은 마땅한 요구다. 하지만 이러한 국민의 요구를 국가는 외면했고 그 결과는 159명의 젊은 생명이 억울하게 떠난 이태원 참사, 평범하게 출근하던 국민이 지하차도에서 희생당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나타났다”고 역설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왜 구하지 않았는지, 왜 (배가) 침몰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밝히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단 한명도 처벌받지 않은 지휘책임자들을 처벌해야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려면 잊지 말고,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10년이 앞으로의 10년으로 힘차게 행동해 나갈 수 있게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선희 경기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10년 전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진 참사는 우리 사회와 모두의 삶에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생명과 안전에 대해 사회는 요원하기만 하다”며 “재난과 참사는 빈번하게 일상을 두드리고 우리는 평온하게 지나간 오늘 하루를 안도하며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전 사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정부, 기업, 이윤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 가로막혀 있다”며 “‘가만 있으라’는 외침은 10년 전 세월호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우리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매순간, 모든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재난·참사 예방과 대응은 관 주도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 참여와 인권보장이 기본이 돼야 한다”며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며 생명과 안전의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오는 24일 경기도의회 중회의실2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우리 사회는 안전한가’라는 주제의 포럼을 진행한다. 이후 포럼에서 도출된 사항을 토대로 도내 재난 시 보편적 인권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 활동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 경기신문 = 이근 기자 ]
‘한국 남자 레슬링 최중량급 간판’ 김민석(수원시청)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김민석은 16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2024 세계레슬링연맹(UWW) 아시아선수권대회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급 결승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아민 미르자자데와 접전을 펼쳤으나 아쉽게 0-5로 패했다. 준준결승에서 간졸부 부얀토크(몽골)를 5-1로 꺾은 김민석은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멍링저(중국)와 치열한 승부 끝에 1-1로 비긴 뒤 후취점 우선 원칙에 따라 결승에 진출했다. 김민석은 결승에서 미르자자데와 팽팽한 승부를 펼쳤지만 아쉽게 득점에 실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했다. 한국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최중량급 에이스인 김민석은 201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최중량급 동메달을 따며 파란을 일으켰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석은 2020년과 2022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모두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꾸준한 성적을 냈지만 2024 파리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한다. 지난 해 12월 오른쪽 발바닥 근막염 부상으로 1차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지난 2월에 열린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선 이승찬(강원도체육회)에게 밀리며 파리 올림픽 아시아쿼터 대회 출전권을 획득에 실패했다. [ 경기신문 = 정민수 기자 ]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경기도의회는 세월호의 기억이 세월의 바람에 흐려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염 의장은 이날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성명을 발표하고 “세월호가 영원의 바다로 침몰한 지 꼬박 10년이 되는 날”이라며 “가슴 아린 10년을 견뎌낸 유가족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를 언급하며 “그날의 수학여행이 무탈했다면 아이들은 서른을 바라보는 어엿한 청년이 돼 우리 곁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 뒤 “지키지 못했던 미안함의 크기는 여전히, 조금도 줄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염 의장은 “그 고통의 봄날 이후 우리는 생명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게 됐고 안전을 지킬 국가와 지방정부, 사회의 역할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소회를 내비쳤다 염 의장은 “잊지 않겠다며 굳게 다짐했던 약속은 아직 다 지켜지지 못했으나 우리 사회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다”며 “(지난 10여 년간 도의회는) 각종 재난 참사로부터 경기도민을 지켜낼 입법정책 활동에 노력해 왔다”고 전했다. 아울러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라는 한 철학가의 말처럼 슬픔의 무게가 무겁다고 해 기억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나아갈 수 없다”고 전한 뒤 “도의회는 세월호의 기억이 세월의 바람에 흐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미래 예견치 못한 슬픔을 막을 책임의 의정을 실천하겠다. 다시금 10년이 흘렀을 때 지금의 다짐이 부끄럽지 않은 경기도를 소원한다”며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에 대한 바람을 잊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의회는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의 날 지정 조례’와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심리치료비 지원 조례’ 등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유족을 위한 조례안을 제정한 바 있다. [ 경기신문 = 나규항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4·10 총선 입장을 밝힌다. 당초 여러 방식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별도의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 없이 모두발언으로 대체할 전망이다. 15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생중계 모두발언을 통해 총선 이후의 구체적 국정 쇄신 방향과 제22대 국회와의 협력 구상 등을 설명할 계획이다. 제21대 국회에 이어 제22대 국회에서도 여소야대 구조가 확정된 만큼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특히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수석급 이상 참모진이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향후 인선에 대한 구상을 언급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윤 대통령은 총선 다음 날(11일)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
종합격투기를 수련하며 다른 조직과 경쟁하고 유흥업주를 상대로 갈취를 일삼은 20~30대 젊은 ‘MZ 조폭’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기동대는 15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단체 등 구성‧활동) 혐의로 평택 일대에서 활동한 A 폭력조직의 행동대장 30대 B씨 등 12명을 구속하고 4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행동강령, 연락 체계, 회합, 탈퇴 조직원에 대한 보복 등 통솔체계를 갖추고, 경쟁 조직과의 대치 및 폭력을 수반한 이권 개입 등 조직범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2020년 12월 13일 부하 조직원 일부가 경기도 남부권 최대 폭력조직과 시비가 붙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직원 20여 명을 비상 소집해 조직 간 마찰에 대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구속된 40대 C씨는 2022년 6월 3일 보도방 이권을 따내고자 경쟁..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를 기억하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경기도교육청 주도로 2021년 1월 설립된 4.16민주시민교육원. 참사의 고통을 디딤돌 삼아 학생들의 안전한 학교생활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이곳에는 세월호 희생자 고(故) 김도언 양의 유가족 이지성 사무관이 근무 중이다. 이 사무관은 2016년 4.16기억저장소 소장으로 활동하다 2021년 3월부터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 운영실장을 맡아 기억관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경기신문은 4.16기억교실을 지키는 수호자 이 사무관을 만나 경기교육이 참사를 딛고 걸어온 발차취와 나아갈 길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10년이 지나도 다 기억이 납니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똑같은 거예요.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할 것 같습니다.” 이 사무관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회사에 출근해 근무 중이었는데 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학여행을 간 도언이가 타고 있는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가 떴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무관은 즉시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도언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감은 높아져만 갔고 연락을 기다리지 못해 안산 단원고로 달려갔다. 학교에 도착한 이 사무관은 구조자 명단이 오는 것을 계속 지켜봤다. 하지만 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고 비슷한 이름들만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이 사무관은 다급한 마음에 구조현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고, 혹시나 구조된 딸이 추울까봐 집에 들려 옷가지를 챙기는 도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딸인 도연이와 같은 반 친구의 전화였다. 이 사무관은 도연이의 안부를 물었고, 친구는 ‘도언이가 구조돼 어느 섬으로 가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안도한 이 사무관은 급히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구조됐다는 딸의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이 사무관은 딸을 위해 가져간 담요를 덮고 팽목항에서 이틀간 밤을 지세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무관은 ‘유가족’이 아닌 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학부모였다. 하지만 딸 도언이는 참사 10일 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이 사무관은 망연자실했다. ◇“기록은 추억이자 기억”…4.16기억교실 “사람들은 흔히 ‘10년 됐잖아’, ‘자식을 좀 가슴에 묻어라’,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조금 더 나가면 ‘지겹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다녀간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4.16기억저장소’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 교사 11명, 일반인 희생자 43명의 삶을 기억‧기록한 비영리 민간기록 기관이다. 저장소에는 당시 단원고 2학년 교실과 교무실을 공간기록으로 보존한 4.16기억교실이 마련돼 있다. 세월호 참사 기억과 기록을 미래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일반인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더 이상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안전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경각심을 주고 있다. 이 사무관은 4.16민주시민교육원에서 4.16기억교실 등 기억관 운영을 총괄하는 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지겹다는 사람들에게 “100번의 말보다 4.16기억교실에 직접 와보라”고 했다. 이 사무관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수업을 했던 이 공간은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숨결이 놓인 곳이고 꿈을 키웠던 공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알아야 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진실이 왜곡되면 역사도 왜곡되고 기록도 사라진다”며 4.16기억교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기록은 조작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록이 조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기록이 있어야 기억을 할 수 있다. 이곳의 기록은 추억이자 기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세월호 참사 전문가, 시민 등이 자발적으로 기억저장소를 만들어 기록을 모았겠느냐”며 “그 이유는 기록을 통해 참사를 잊지 않으려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래를 고민하는 공간’…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 이 사무관은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은 새로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희생자와 방문객의 관계가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음성‧사진‧문서, 생존자 증언 등 그날의 기록들이 모여있다. 이 기록들을 통해 방문객들은 희생자를 기억‧추모하고 방명록을 남기며 ‘새로운 관계’로 형성된다고 이 사무관은 설명한다. 그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인권을 넘어 인생을 배우고 성장하며 돌아간다”며 “그래서 4.16기억교실은 ‘살아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 오면 누구나 생각이 달라진다”면서 “미래 세대를 책임질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등은 이곳에 꼭 한번 와서 미래를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들도 이 공간을 통해 참사가 발생한 이유와 진상 규명을 위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게 된다”며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현재 4.16기억교실은 대한민국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돼 있다. 이에 4.16기억교실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 사무관은 “4.16기억교실은 국가지정기록물로 흔들리지 않겠지만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100년, 1000년이 지나도 훼손되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공간이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되고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에 더해 한평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이보현·박민정 기자 ]
“며칠이면 끝나겠지, 몇 달이면 끝나겠지 했던 게 10년이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지난 6일 경기신문이 찾은 전남 진도군 진도항(전 팽목항) 앞에는 여객선터미널이 자리 잡았다. 주차 공간은 승객들 차량으로 붐볐다. 차들은 세월호 기억관이 있는 공간까지 넘어왔다. ‘팽목성당’은 해풍을 맞아 작고 녹슨 컨테이너에 조성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뭍으로 올라오는 단원고 학생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임시안치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희생자 유해 임시안치소였던 장소는 성당이 되었다. 손인성·김영례씨 부부는 10년 간 팽목성당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우리 위로의 방식은…그 자리에서 그들 곁에 있는 것 참사 직후 작은 컨테이너 한 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유가족을 위로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팽목성당과 기억관·식당 등이 남았다. 손 씨 부부는 “임시천막이 컨테이너가 되고, 성당이기 전에 아이들이 올라오면 씻기고 분장해서 예쁘게 부모를 처음 만나게 해주는 장소였다”며 “참사가 터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유가족들을 위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10년 간 자리를 지켜야만 했던 이유는 그 날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라서다. 김 씨는 “마음이 가난해서 슬픈 사람들이 매일 수십 명 수백 명씩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느냐”며 “유가족의 울부짖는 모습을 봤는데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당 내부 벽에는 실종자와 사망자 수가 적혀있는 칠판이 걸려있다. 손 씨 부부는 매일 단원고 학생들의 죽음이 며칠 째인지를 기록한다. 공간 지킴이가 날짜를 기억해 줘야 하는 건 당연하다며 칠판 앞에 서서 묵묵히 날짜를 바꾼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날짜만 바뀌고 사망자 실종자 수는 그대로 있다. 팽목항은 아이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처음 가족과 만난 곳”이라며 “이 공간을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칠판에는 ‘4월 6일 3643일’이라고 적혀있다. 김 씨는 참사 당시를 떠올리며 “참사 직후 동네 성당에서 기도하러 가자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슬펐다. 현장은 우울과 침묵 그 자체였다”며 “며칠이면 끝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현장을 계속 찾아갔고 며칠이 몇 달이 되고 지금 10년이 되었다”고 말했다. 손 씨도 “도로에 차와 인파로 가득 차서 가만히 서있어도 밀려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당시 인터뷰를 할 정도의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봉사자들은 땅만 보고 울고만 있었다”고 회상했다. ◇ 위기의 기억관…진도항 여객터미널 공사 컨테이너에 팽목성당 글귀를 적으면서 공간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어났다. 부부는 개인 사비를 들여 커피와 식사를 대접했다.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손씨 부부가 지불했다. 방문객이 주는 음료수도 일절 받지 않는다. 그들은 기도 봉사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했다. 김 씨는 “팽목성당이 총 다섯 번 공간 이전을 했다. 숲 속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박해같이 느껴졌다. 공간이 이전될때마다 더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은 선물이라도 절대 받지 않고 있다. 그래야 공간이 유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참사 8주년이 됐을 때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2022년 2월 15일 진도군은 진도항 여객선터미널 공사를 이유로 팽목성당 철거를 요청했다. 개발사업 부지에 성당 컨테이너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당시 공사 책임자였던 진도군청 관계자는 경기신문과 통화에서 “19년도부터 유가족들이 공간을 무단점유하고 있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며 “여객선 터미널을 짓고 주차장도 지어야 하는데 컨테이너가 있어서 진행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어 “해양수산부에 호소문과 건의서를 올렸지만 변화된 게 없었다”며 “그날의 기억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후 지난 2022년도 8월 진도항 여객선터미널은 준공됐고 팽목성당과 기억관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작지만 가장 넓은 성당…국적을 떠나 공감하는 공간 인터뷰 내내 성당 앞에는 여객선을 타기 위한 승객들 차량이 주차를 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 손 씨 부부는 성당을 찾는 사람일까 열려있는 문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성당에서는 매일 오후 2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김 씨는 “지금도 잊지 않고 하루에 한두 명씩 성당을 찾는다. 주말에는 꽤 많은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 한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서 버틸 수 있고 유가족들은 우리가 공간을 지키고 있어서 든든해 한다”고 했다. 손 씨 부부는 “언제까지 저희 부부가 여기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힘이 닿는 데까지 팽목성당을 지키고 싶다”며 “지금도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유가족들은 진도항에 방문한다. 그때 성당에 불이 켜져 있고 열려 있는 거 자체가 힘이 된다면 있을 때 까지 공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세상에 이렇게 작은 성당이 어디 있는가. 작아보여도 아주 큰 성당이라고 생각한다. 참사 이후 많이 사람들이 공간에 찾아왔다”며 “국적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공감했다. 크고 깊은 성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임혜림 기자 ]
‘과연 될까’ 반신반의했던 뉴홍콩시티 프로젝트가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1호 공약인 뉴홍콩시티 프로젝트가 (가칭)글로벌톱텐시티로 명칭을 변경하고 다음 달 종합계획을 발표한다. 글로벌 금융 중심지가 뼈대였던 뉴홍콩시티 대신 또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사실상 공약 파기다. 15일 황효진 인천시 글로벌도시정무부시장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뉴홍콩시티의 시작은 홍콩의 국제금융을 이전시키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이전이 쉽지 않아 새롭게 인천을 글로벌도시로 만드는 그림을 그렸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 10대 도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도시 한계를 뛰어넘어 인천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첨단산업을 유치할 공간을 새로 설정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