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이맘때쯤이면 해마다 언론 미디어에서는 올해의 사건 사고 등을 간추려 한해를 정리하는 기사가 나온다. 그중에는 올해의 단어, 신조어,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통해 한해를 되돌아 본다. 직장과 사회, 국제 관계에서 지난 한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해를 반추하는 MZ세대들의 말을 한번 살펴보자. 중꺽마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을 세 글자로 줄여서 말한 것이다. 중꺽마,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알쏭달쏭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뜻을 알고 나니 아하 느끼는 순간, ‘올해의 단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말줄임 언어생활이 보편화되었다. 소셜미디어 사용이 확산하고 대중화하면서 짧게 줄여서 말하는 언어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결과다. 우리 대한민국팀은 카타르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태극전사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좋은 경기를 축구 팬들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2골만 잃어도 사기가 꺽일 만하고, 전반전에서는 무려 네 골을 내준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포기하고 소극적일 수 있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러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니까. 졌잘싸 “졌지만 정말로 잘 싸웠다”는 말이다. 이기고 지는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 팀이 이기기를 응원한다. 그런데 결과는 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겨야 한다는 결과 성과주의의 강박관념에서 내용과 과정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들의 가치관 이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팬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맨십이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정말로 ‘졌잘싸’였다. 알빠임 “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말을 역시 줄였다. 월드컵에서 통산 다섯 번의 우승을 한 브라질팀이 최강팀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과 축구 팬들에게 그건 ‘알빠임’이었다. 이른바 스펙 전쟁의 시대이다. 취업전선에서 지원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 조건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학점, 외국어 특히 영어, 국내외 인턴·봉사 경력, 비교과 활동 등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스펙 준비의 부담이 상당한 편이다. 취업은 어려워지고 국내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사정에 처해있는 ‘N포세대’들의 알빠임 태도는 긍정적이다. 상황이 얼마나 어렵든,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나는 그가 얼마나 강하든 상황이 악조건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다’는 태도는 응원할만하다. 언어는 한 개인과 집단의 정신과 가치관을 드러낸다. 언론 언어에서 줄임말을 쓰고 장려할 일은 아니다. 중꺽마, 알빠임, 졌잘싸. 한해를 보내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중꺽마를 응원한다.
지난 8일 소속 정당이 다른 수원·용인·성남·화성시 등 경기 남부권 4개 지방정부 시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상일 용인시장과 신상진 성남시장은 국민의힘 소속이고, 이재준 수원시장과 정명근 화성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이날 이들은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장 추진을 위해 공동 협력키로 합의했다. 당적을 떠나 협치와 상생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전에도 성남·수원·용인 3개시는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하는 것을 목표로 3호선 연장을 위해 사전 타당성 공동용역을 실시하고 실무협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차량기지 부지 확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사업 추진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사업이 난관에 부딪히자 용인시는 공동 협력이 어렵다고 판단, 계획안에 대한 해법이 나오지 않을 경우 처인구 원삼 일대에 차량기지를 마련..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는 이런 서예 글귀가 써 있는 큰 액자가 병동 복도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누가 쓴 것인지 낙관은 없으나 다소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병든 사람들의 마음에 꽂히는 느낌을 준다. 이렇게 써 있다. “세상 모든 근심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수는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은 없게 하리라.”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병원의 간호 서비스는 나름 친절하고 세심한 편이다. 서러운 마음을 어루만지라고 평소에 철저한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병들어 아프면 흔히들 인생 뭐 별거 없다느니, 이제 모든 걸 다 내려놓으라느니, 앞으로는 몸만 생각하고 건강만 염려하며 살라느니, 일은 다 그만두라느니 하는 소리를 한다. 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마음속으로 알고 있다. 그게 다 빈 말이라는 것을. 영어로 얘기하면 ‘bullshit’, 한 마디로 개소리라는 것을. 자본주의에서는 아프다는 것도 매우 계급적인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플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일에서 은퇴해서, 건강만 생각하며 말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아플 시간이 없다. 노동을 멈출 수가 없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가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지신이 밥벌이를 위해 일을 나가야 한다. 아프면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그 ‘아프면 소용없는 일’이 진정으로 ‘소용없어지려면’ 바로 돈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아플 자격이 없다. 병에 걸려서는 안된다. 일산에 있는 병원의 저 글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적인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한국은 비교적 의료서비스, 건강보험이 잘 돼있는 나라이고 그래서 늘 병원에서 퇴원을 하거나 진료를 받고 나올 때마다 진료비, 입원비의 총액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우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종종 MRI나 초음파의 건강보험 급여 체계를 조정한다느니 해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 같고 아니면 아예 공공 병원의 민영화 여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의 여론은 지금의 건강보험 서비스를 보다 더 확대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니냐는 쪽일 것이다. 한번 앞으로 간 것을 뒤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고스톱 용어로 ‘낙장불입’, 윷놀이 용어로 ‘빽도 불가’이다. 그러다가 망한 나라가 대처 시절의 영국이다. 오죽했으면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의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 환호성을 질렀을까. 지금의 윤석열 정부가 세상 모든 근심을 다 없애 주지는 못해도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이라도 달래 줄 수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서러운 마음을 달래 주기는커녕 세상 근심을 더욱더 많고 크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최근 벌어진 화물연대 파업 사태와 대통령과 정부의 업무 복귀 명령, 그에 따른 파업 철회에도 불구하고 핵심 주동자에 대한 엄정한 법 적용 원칙을 천명하는 모양새를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은 정치를 하려 하지 않는구나, 오로지 통치를 하겠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만든다. 다소 간교한 한 우파 평론가는 윤석열 정부의 법과 공정의 정신을 보여 준 사례여서 지지율이 올랐다고 자평했지만, 그 원한의 함성이 언젠가 부메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무시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힘으로 누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좌에서 우로 전향했다고 내세우고 다니는 한 의원도 방송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 대처처럼 대처를 잘했다며 낄낄댄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러운 마음이 더욱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려고 다들 이렇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의 얼굴을 잃어 갈 때 그 사회에서는 파국이 벌어지는 법이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가 이런 문제를 더욱 노골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장연은 지하철 정거장 지연 점거 농성을 이어 갈 것이고 서울시는 그런 구역은 무정차 통과를 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시민들의 불편이 이어질 것이다. 서울시나 정부가 머리를 싸매고 해결할 생각보다는, 장애인과 시민의 대립으로 프레임을 짜려고 하는 얄팍한 정치적 술수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노-노 갈등을 유발시키는 셈이다. 전장연의 시위는 결국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이고 이에 대한 예산 문제이니만큼 해결의 실마리는 있을 것이다. 정부 권력을 쥔 자들이 ‘내 밑으로 다 숙이고 들어 오라’는 식의 태도를 일관해서는 민란을 유도하는 일밖에는 되지 않는다. 정치가 이렇게 돼서는 안될 일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영화 중에 ‘와즈다’란 작품이 있다. 2012년 영화이다. 10살 된 어린 소녀가 동네 친구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하자 엄마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고 아이를 그러지 못하게 하려는 내용의 영화다. 10년 전 사우디에서는 여성들이 이동권이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됐든 자전거가 됐든 직접 이동의 물체를 운전할 수가 없다. 남자가 해주는 것을 타야 했다. 강고한 회교 율법인 ‘와하비즘’때문이었다. 지금의 한국이 10년 전 와하비즘의 나라인가. 이동권 문제 하나 해결 못하는가. 사람들이 대통령을 뽑은 것은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통치가 아니라. 통치는 김정일의 북한이나 시진핑의 중국, 푸틴의 러시아 같은 곳에서 쓰여지는 단어다.
분수가 흐르고 계단 위에 한 사람이 정갈히 손을 포개고 앉아 있다. 우리의 소녀상을 흡사 닮았다. 단지 이 주인공은 콧수염을 가진 사나이다. 슈바이처 박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주가 그를 기리기 위해 생 토마 광장에 만든 청동상이다. 알베르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행동하는 인간이자 인도적 지원의 파이오니아였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다 끝내 그곳에 묻혔다. 그는 ‘생명에 대한 외경(Respect de la vie)’을 중시했고 이 윤리를 잊으면 인류문화는 안녕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살았다. 이를 높이 평가한 스톡홀름은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거룩한 휴머니스트는 1875년 1월 프랑스 동부 카이제르베르(Kaysersberg)에서 태어났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6개월 된 그를 안고 발령지인 뮌스테르의 귄스바흐(Gunsbach)로 갔다. 거기서 세 명의 누나,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이 선물을 슈바이처는 자연스런 권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스러워했다. 조숙하고 사려 깊었던 꼬맹이 슈바이처. 또래 아이들과 많이 달랐다. 그의 감성은 남과 다른 특별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자연은 그의 우주였고 이는 그의 전 인생을 지배했다. 그의 소심함과 단호함은 어머니를 닮았고 활기 넘침은 아버지를 닮았다. 슈바이처의 꿈은 음악가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의사를 꿈꾸지 않았다.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 이런 그에게 아버지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가르쳤다. 어느 날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가 사고로 부재하자 그가 대타로 연주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슈바이처의 나이 아홉 살이었다. 그가 피아노와 파이프 오르간을 정식으로 교육받은 건 열네 살 때. 외젠 뮌흐(Eugène Munch)의 사사를 받으면서부터다. 2년 후 그는 스승을 대신해 종교행사의 연주자가 됐고 열일곱 살 때는 첫 콘서트를 열어 브람스의 레퀴엠을 연주했다. 슈바이처가 음악을 사랑하고 낙천적 비전을 갖는데 큰 영향을 미친 건 그의 삼촌 루이와 숙모 소피, 스승 뮌흐였다. 그는 성장하면서 의심의 여지없이 음악, 신학, 철학을 함께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알자스 지방인 귄스바흐와 밀루즈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이러한 꿈을 꾸준히 키워 나갔다. 그러던 중 잠시 집을 떠나 외지인 파리에 갔다. 거기서 그는 진정한 음악세계를 발견했다. 스트라스부르로 다시 돌아와 그는 목가적인 음악을 공부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알자스-로렌은 리히치 독일로 합병됐다. 슈바이처는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프랑스 고전 책들을 소장한 방대한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 슈바이처는 열심히 책을 읽고 독일과 프랑스 양쪽 문화를 모두 익혔다. 그 덕분에 그는 스물네 살 때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가 됐고, 곧이어 신학박사까지 됐다. 생 니콜라(St Nicolas)를 설파하는 신학자로 활동하면서 오르가니스트이자 바흐 작품을 전문으로 연주하고 가르치는 매우 존경받는 음악학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거의 완벽한 삶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문했다. 서른 살에 인생의 반전을 맞은 슈바이처 분명 그는 다른 삶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바치고자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었다. 어느 날 집에 도착한 그는 탁자위에서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아프리카 가봉에 의사로 갈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눈이 뻔쩍 뜨였다. 인생의 미션을 바야흐로 찾게 된 것이다. 서른 살인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들어가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인턴과정을 마치고 열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와 베를린에서 몇 개월간 머물렀다. 이때 가봉에 병원을 만들기 위해 5000달러를 모금했다. 이 돈은 아프리카에서 2년간 병원활동을 하기에 충분했다. 함께 떠나기 위해 엘렌느 브레슬로(Hélène Bresslau)와 결혼도 했다. 1913년 성금요일, 서른여덟 살의 슈바이처는 귄스바흐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보르도로 떠나 가봉행 배를 탔다. 오고우에(Ogooué) 강을 타고 마침내 랑바레네(Lambaréné)에 도착한 그는 부랴부랴 병원을 짓고 수많은 나병환자를 치료했다. 생명에 대한 외경을 손수 실천하였고 결국 그곳에서 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슈바이처가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자 그의 유년의 고향 귄스바흐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프랑스 알자스 오랭(Haut-Rhin: 라인강 위쪽) 지역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은 1278년 탄생했다. ‘귄스바흐’의 의미는 명확치 않다. 늪지의 개울 혹은 귀노(Guno)라는 사람의 개울이라는 설이 있다. 13세기 프픽스부르(Pflixbourg) 성이 있는 왕국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9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뮌스테르 계곡에 펼쳐져 조용하고 평화롭고 녹색의 자연 경치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콜마르(colmar) 마을 역시 너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즐겨 온다. 슈바이처가 태어난 카이제르베르 역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의 문화예술 고장으로 2017년 프랑스 최고의 도시로 선정됐다. 슈바이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뮌스테르와 귄스바흐를 방문하고 이곳 일대를 돌아보면 환상의 여행코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귄스바흐. 슈바이처 마을답게 그를 추억케 하는 것이 수없이 많다. 슈바이처 메종과 기념관, 슈바이처 오솔길, 아프리카 박물관, 물의 산책 등등. 슈바이처가 유년에 살았던 집은 지금 대중에게 오픈되고 있고, 그 옆에 슈바이처의 부모님과 그의 동생이 잠들어 있다.
세계사의 3대 거짓말을 꼽으라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빵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죠!’, ‘노예해방을 위해 시작한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말을 들고 싶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18세기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바레티의 창작물에 나온 부분이지 갈릴레이가 실제 한 말이 아니며, ‘빵 없으면 케이크를.....’도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나온 글로 앙트와네트의 무개념을 드러내기 위해 누군가 지어 퍼뜨린 말이다. 미 남북전쟁은 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에 대한 응징에서 시작된, ‘미연방수호’가 목적이었던 전쟁이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남부를 이기기 위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노예제도를 뒤흔들기 위한 것이었다. 링컨이 노예해방론자이긴 했지만 그것이 그의 전 생애의 주제는 아니었다. ‘노예 해방’을 위해 생을 던진 이는 따로 있다. 미 육군 대령이었던 존 브라운( John Brown 1800-1859)이 대표적이다. 1856년, 브라운은 캔자스 동부의 포타와타미에의 고립된 오두막에서 다섯 명의 노예제도 찬성론자를 살해해 지명수배자가 된다.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브라운은 공공연히 ‘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남부인들과의 평화적 협상은 불가능하다. 노예제도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폭력혁명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노예해방론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투신하게 된 브라운은 자식들도 투사로 만들었다. 두 번 결혼해 스무 명의 자식들을 두었는데(첫 번째 부인으로부터 7명, 둘째 부인으로부터 13명) 아들들 대부분이 아버지를 따랐다. 포타와타미에 오두막 살인사건으로 지명 수배를 받던 브라운은 본격적인 노예해방 운동을 결심한다. 노예 등 지지자, 약 5000명을 무장투쟁전사로 만들기로 결심, 이에 필요한 무기를 연방정부의 하퍼스 페이 무기고에서 탈취하려한다. 그러나 1859년 10월 결행된 그의 거사는 곧바로 달려온 지역 농장주들과 민병대, 연방군에 의해 좌초된다. 그 자리에서 생포된 브라운은 버지니아 주정부에서 반역죄, 포타와타미 오두막에서의 살인죄, 노예반란 선동죄 등으로 재판받은 끝에 교수형으로 처형된다. 미국인들은 존 브라운의 노예해방운동과 처형이, 1861년에 일어나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 남북전쟁의 단초였다고 생각한다. 남북 전쟁 중 북군의 진군가로 불리웠던 노래가 있다. 제목하여 ‘ 존 브라운의 시체(John Brown’s body)’ 존 브라운의 몸은 무덤에 누워 썩어가지만/ 그의 영은 진군하고 있다네/ 하늘의 별들은 따뜻하게 죽어간 존 브라운의 무덤을 비추고 있네/ 영광 영광 헬레루야.....후략......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며 단박에 알 것이다. 학교 교가로, 찬송가로 익히 귀에 익은 리듬이다. 이 진군가는 전쟁 후, 가사가 바뀌어 미국 개신교의 찬성가로 불렸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이 그들이 세운 학교의 교가로 쓰면서 퍼져나갔다. 대의와 타인의 존엄을 위해 생을 바친 존 브라운의 삶을 떠올리면서, 존 바에즈와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어보시길.
빼돌린 정보로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리들은 탈세에도 능하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고액·상습체납자는 56,085명으로 총 체납액수는 51조1천억 원에 달한다. 2019년을 기준한 자료인 만큼, 상습체납자의 실제 규모와 체납액은 훨씬 많을 것이다. 지난 3월, 국세청은 암호화폐에 재산을 은닉한 상습 고액체납자 2,416명을 적발하고 체납세금 366억 원을 징수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고의로 세금을 체납한 사람들에 대해 국세청이 강제 징수한 것일 뿐, 들키지 않고 자행되는 불법탈세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여전하다. 페이퍼컴퍼니, 해외재산은닉, 역외탈세, 편법증여, 차명계좌, 다운계약서 등 수법 또한 다양한데, 최근에는 죽은 사람과 거래한 것처럼 속여 돈을 빼돌리는 신종수법까지 등장하였다. 대다수 국민들의 세금은 근로소득을 통해 원천징수한다. 그런 만큼..
국회 차원에서 부동산 하락 등에 따른 관련 세부담 완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가운데 2013∼2019년 주택 가격이 100% 상승할 때 출생아 수가 0.1∼0.29명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지방 이전 공공기관 종사자 3004명을 상대로 해당 기간 평균 출산율과 실제 출생아 수, 주택 소유 여부 등의 변수를 놓고 주택가격 상승률을 가정해 분석한 내용이다. 특히 무주택자의 경우 같은 기간 출생아 수 감소 폭이 0.15∼0.45명으로 더욱 컸다. 모집단이 지방이전 특정 직군으로 한정돼 있고,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주는 직간접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 조사 결과를 전 국민으로 일반화하는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또 한국의 집값상승이 인구감소(결혼‧출산율 하락)와 관련돼 있다는 지적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
모든 일에 때가 있음을 알고 행함은 지혜의 근본이라 할 것이다.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이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할 때라 생각한다. 딸을 대동하고 ICBM 발사장에 나타난 김정은 위원장의 행태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지만, 내 생각엔 ‘자신들의 핵미사일개발 보유 목적이 자신들과 후계세대들의 생존을 위해 절박한 선택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보인다. 당신들도 자식들을 위해 더 이상 적대행위를 하지 말라. 피차 강 대 강의 대결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멸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간절한 절규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30년 세월에 걸쳐 완성한 핵미사일을 제재가 무서워서 포기할 북한이 아님은 북한체제를 조금만 이해해도 잘 알 수가 있다. 핵포기를 전제로 한‘담대한 구상’을 얘기하는 남한정부가 북한의 입장에선 한심..
교사는 자기 교실을 챙겨야 해서 다른 교사의 수업을 보거나 들을 기회가 자주 있는 편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 1년에 몇 번 정도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하는 걸 보고 소감을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시정표를 조정해서 전체 교원의 수업을 모두가 보게 짜여 있는데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런 방식의 수업 공개는 수업의 흐름 중 1시간만 보여주면 끝이라서 단편적인 수업 내용을 보게 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을 달랠 기회가 있었다. 얼마 전에 고양시 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지역 연계 프로젝트 수업 사례 나눔 콘퍼런스가 있었다. 지역 연계 프로젝트는 고양시 교육청이 고양시와 MOU를 맺어서 따온 시 교육 예산 중의 일부를 수업을 재구성하고 싶은 교사들의 신청을 받아서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학급, 학년 단위에서 수업 계획서를 작성해서 예산을 신청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 예산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업 예산을 사용하면서 지켜야 할 점이 고양시 지역 내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뿐인 것도 또 다른 장점이다. 1년 동안 우리 학년에서 진행해 온 넷볼, 풋살, 등산, 배드민턴 등이 모두 지역 연계 프로젝트 안에서 이루어졌다. 예산을 배부한 지 1년이 지나고 수업을 진행한 교사들의 사례 나눔이 ‘지역 연계 프로젝트 콘퍼런스’였다. 30개의 수업 사례 중에 원하는 4가지 사례를 골라서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우리 학년 선생님은 사례 발표자이자 청중으로 참석했다. 수업이 끝나고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시작 시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빈자리가 안 보였다. 일단 비어 있는 곳에 가서 앉았는데 덕양중학교의 사례 발표를 듣는 자리였다. 처음 콘퍼런스 시간표를 봤을 때부터 덕양중이 눈에 띄어서 궁금하던 참이었다. 덕양중은 특이하게 교사가 아니라 주무관님이 사례 발표를 한다고 적혀있었다. 행정실에서 회계 관련 교육 행정 업무를 도맡아 하는 그 주무관님이 분명했다. 행정실은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교육 실무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은 터라 우연히 앉은 자리에서 궁금증을 해결할 좋은 기회였다. 덕양중 주무관님의 발표는 ppt 140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다른 학교에서 30~40장 내외의 ppt로 사례 나눔을 진행한 데 반해, 양에서부터 압도적이었다. 내용 또한 밀도와 의미, 둘 다 있었다. 덕양중의 프로젝트는 경의선 화전역 근방의 마을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이었다. 다른 고양시 지역이 개발되고 있는 것에 반해 화전역 부근은 날이 갈수록 쇠락해가고 있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마을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어 보였다. 마을 주변을 탐방하며 지도를 만들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만나고, 아카이빙 전문가에게 작업 방법을 듣고, 결과물을 책자와 그림책으로 만드는, 6개 교과가 재구성된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다. 과정 하나하나 속에서 아이들이 웃으며 몰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무관님은 아이들의 전반적인 수업 활동 모습을 촬영하는 것과 더불어 아이들에게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수업해주셨다고 했다. 1학년 전체 교사와 다른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례를 듣는 내내 내년에 마을 아카이빙 수업을 꼭 해봐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콘퍼런스가 모두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데 다들 비슷하게 이야기 했다. “수업을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들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고,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지역 연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예산이 내년에도 유지되어서 학교에서 멋진 수업들이 이루어지고 연말에 사례를 듣는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12월 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전체 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이 단독으로 정보통신방송 소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다. 국민의힘은 해당 법 개정안들을 소위에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것처럼, 전체 회의에서도 민주당이 다수결로 해당 안건을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요청한 것이다. 현행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는 6명으로 꾸려지고 제1당이 3명, 나머지는 “제1교섭 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3명으로 구성된다. 이는 이견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하라는 안건조정위원회의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국회법 제57조의 2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