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베이비부머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부터 1965년 사이, 일본은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역동적인 현대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10·26, 12·12, 5·18을 겪었다. 6월 항쟁, IMF 외환위기도 맞이했다. 그 와중에도 부모와 자식,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베이비부머들은 이제 대부분 은퇴했지만 아직도 쉴 수는 없다. 청춘을 다 바쳐 부모 봉양과 자식 양육을 하느라 자신을 위한 노후준비가 안된 탓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은 우울과 불안을 불러오고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독사’다. 최근 5년간 발생한 고독..
일제는 1차적으로 독도를 강점했다. 이어 한반도를 강점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서 패전하며 한반도 전체를 우리에게 반환했다.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다(김학준, 2020). 변함없는 역사다. 서슬이 퍼렇던 군사독재정권 박정희 정부(1962~1979), 전두환 정부(1981~1988), 노태우 정부(1988~1993) 시절에도 변치 않은 진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 이후 주요 포털의 몇몇 블로그, 게시판은 그간 숨어 있었던 토착 친일파들의 글로 더럽혀졌다. 한국을 혐오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자들의 모습들이 거리낌 없이 드러났다. “한일관계 개선을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라는 글도 보였다. 또 “일제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우리..
지난주 한일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박진외교부장관이 언급한 일본의 ‘물컵 절반 채우기’가 기대와 너무 다르다는 실망감에 강제동원피해자나 시민단체, 그리고 야당이 총체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정부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었고 당장은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지켜보아 달라고 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정부의 이번 결단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서 반성은 저들의 몫으로 남기고, 도덕적 우위를 갖고 대승적으로 포용하면서 미래를 위한 길을 가겠다는 의지는 평가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정부의 방침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릴 수가 있는가에 있다. 이번 정부의 행보 이면에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다. 미중갈등상황이 깊어지면서 미국의 동북아 전략 중 가장 중요한 대중 한미일 공동전선 강화를 위한 미국의 전략에 우리가 조종당한다는 생각이다. 근래 미국반도체법의 내용(미국 지원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 신규투자제한 등)이나, 정부 방침 발표에 곧 이은 미국의 윤석렬대통령 국빈 방문 발표, 그리고 일본정부의 초청에 의한 한일 정상회담 등 일련의 사안들은 이번 정부의 결단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지난해부터 지속되어 온 북한의 미사일발사시험에 대한 대처로 미국의 확장억지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한미 군사동맹, 나아가 한미일 군사적 공조체제 강화를 도모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대중 대결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최근 중국정부가 발표하는 예민한 반응을 우리는 잘 해석해야 한다. 쿼드플러스가입이나 한미일 MD체제 구축 참여, 나아가 한반도 사드 추가 배치 등 우리 국익에 심대한 위해가 올 수도 있는 결정이 졸속으로 이루어질까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전략에 편승되어 한반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남북관계를 수렁에 빠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사실 윤석열정부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대승적 차원에서 남북관계 재개’를 위한 노력이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북한이 느끼는 심각한 안보불안이 핵미사일 개발을 하게 했다는 사실, 즉 한미의 연합군사훈련이 자신들을 붕괴시키기 위한 훈련이라는 오해가 핵개발로 인도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문제 해결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이나 2018년의 싱가포르 북미회담 모두가 한미연합훈련의 중단, 즉 대북적대시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사를 북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 전략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한미일 군사 협조체제의 구축이 북중러의 대결전선을 강화해 신 냉전이 오게 되고 한반도가 그 첨예한 대결의 장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 생각한다. 평화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과거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이 생각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K-웰니스 관광산업 육성법’을 발의했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치유와 힐링을 목적으로 한 새로운 산업 트렌드이자,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코로나 혹한기를 겪었던 여행업이 전 세계적으로 재개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20만명으로 2021년 96만여 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관광산업은 코로나 직전인 2019년 세계 GDP 기여도가 10.4%에 이른다. 관광산업은 굴뚝없는 하이테크 산업으로 미래 일자리 창출의 산실로 촉망받고 있다. 제조업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최소 2배 이상 높다고 알려져 있다. 또 청년층 취업 비중이 다른 분야보다 두 배나 높은 것으로 평가된..
세계인의 귀신(?), 드라큘라의 나라, 루마니아에 ’마녀‘라는 직업이 있는 것을 아시는지. 우리나라의 역술인처럼 ’주술, 점술을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긴다지만, 루마니아의 미신숭배는 유난하다. 국가적으로 대통령 주재하에 ’악령 쫓는 행위‘를 벌인 적도 있다. 독재자 니콜라 차우셰스쿠(1989년 민중혁명으로 처형) 부부가 개인 마녀를 두고 미래를 점치곤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루마니아의 직업 ’마녀‘가 별난 것은 ’마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중세기 기독교 박해 당시 수많은 여성이 억울하게 마녀 재판대에 올려져 끔찍한 고문 후 화형 당했다. 1563년 제정, 173년간 시행된 ’마녀법‘으로 6만~10만명 가까운 여성들이 처형되었다. 마녀로 몰린 여성들은, 실상, 고아로 컸거나 장애가 있는 등, 주변의 보호와 변호를 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지배층은 마녀사냥을 종교전쟁과 페스트 등의 전염병 창궐, 기근 등으로 인해 분개한 민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정치쇼로도 썼다. 이 인권지옥의 역사가 ’마녀‘란 단어를 오염시켰는데, 실상 마녀의 영어단어 ’Witch’는 기독교가 퍼지기 전에는 나쁘게만 쓰이지 않았다. 고대부터 존재한 마녀는, 남녀 성별 없이 요술을 부리는 이들을 넓게 지칭한 단어였다. 마녀들 중에는 오늘날의 상담사처럼 마음의 치유자도 많았다. 오늘날 루마니아의 직업, ‘마녀’는 국민들에게 중세 이전처럼 처우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녀들이, 10여년 전, 분기탱천해 다뉴브 강가에 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루마니아 정부가 그들에게도 세금을 걷겠다고 공포한 다음이다. 미신행위 직종은 노동자 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었는데, 재정난 극복을 위해 소득세 부과를 결정한 것이다. 다뉴브 강가에서 마녀들은 소리 높여 ‘정부에 집단저주를 내리겠다’고 경고하고 저주의 구체적 내용도 밝혔다. 다뉴브 강에 고양이 똥과 죽은 개, 독초 등을 풀어 정부 관리들에게 사악한 기운이 내리는 마법을 걸겠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보고 ‘나의 다뉴브 강’ 이 역류했다. ‘나의 다뉴브 강’은 어떤 곳이었던가. 청춘의 절정기이던 20대, 노래방 애창곡 중 하나가 ‘사의 찬미‘였다. 사랑도 일도, 되는 일 하나 없어 술로 자해하던 한 때, 그 노래가 지혈을 해주었다. ’사의 찬미‘ 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성악가였던 윤심덕(1897-1926)이 노랫말을 짓고(확실하지 않은 설이다) 불러 대히트를 친 곡이다. 인기의 배경에는 윤심덕이 유부남이었던 극작가 김우진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 현해탄에 동반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그 노래가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월드뮤직에 빠지면서 원곡이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1845-1902)의 ’다뉴브강의 잔물결(Waves of The Danube Waltz)‘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보지 않았던 다뉴브강에 대한 동경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마녀가 루마니아에서 과세 대상인, 어엿한 노동자라지만, ’마녀들의 다뉴브 강가 집단저주 해프닝‘은 청춘의 추억, 선망 일렁이는 ’나의 다뉴브 강‘의 순결한 환상에 금을 내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누구나 별을 꿈꿉니다. 별 하나, 가슴에 보듬고 삽니다. 당신과 나도 그렇습니다. 보듬은 별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사랑이든 성공이든 명예든 온전히 자유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제각각 다른 별을 소망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소망과 자유는 낮과 밤 같아서, 같은 하늘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없어서, 꿈꾸는 별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표류하기 일쑵니다. 당신과 나의 별 역시 그럴 것입니다. 돈이 뜰수록 별이 지는 세상입니다. 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에게 소망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지는 별을 가슴에 보듬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머무는 별무리는 늘 촉촉합니다. 축축함을 닮은 말이지만 녹물처럼 얼룩지진 않습니다. 다가가기에도 아찔한 별이라서 젖을 겨를이 없습니다. 손 잡아주지 않아도 배회할 골목길이 당신과 나에겐 없습니다. 누구나 별을 소망합니다. 별 하나, 숨결 가득 머금고 삽니다. 당신과 나도 그렇습니다. 머금은 별빛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바름이든 옳음이든 평등이든 온전히 자유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제각각 다른 별을 꿈꿀 수 있는 세상 말입니다. 꿈과 세상은 물과 불 같아서 같은 상자에 담을 수 없습니다. 없어서, 꿈꾸는 세상은 만들어지지 못하고 무너지기 일쑵니다. 당신과 내가 머금은 별빛 역시 그럴 것입니다. 돈이 장악한 세상에는 별이 뜰 하늘이 없습니다. 계산이 빠를수록 별빛은 순식간에 멀어집니다. 나눔이 멀어지고 돌봄이 사라집니다. 땀의 의미는 옅어지고 일의 가치는 무색합니다. 우리는 없고 개인만 살아 꿈틀거리는 세상. 그렇게 길들여진 세상에는 사람이 필요 없습니다. 돈이 장악한 세상에서 사람은 비용일 뿐입니다. 사람의 노동은 빠른 이윤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빠름 앞에서, 당신과 나는 석기시대 돌도끼로 전락합니다. 누구나 별을 우러릅니다. 별 하나, 텃밭 삼아 살아갑니다. 당신과 나도 그렇습니다. 일구려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술이든 학문이든 기술이든 온전히 자유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제각각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선택과 기회는 출신성분이 달라서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습니다. 없어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은 박탈당하기 일쑵니다. 당신과 내가 일구려는 텃밭 역시 그럴 것입니다. 돈이 만능일수록 일자리는 줄어듭니다. 일해야 버는 세상은 옛말입니다. 돈놀이로 버는 돈이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습니다. 잘 모르지만,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넘어섰다는 게 그런 말인가 봅니다. 자본은 사람을 꺼립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사람의 노동을 싫어합니다. 사람의 노동 때문에 생겨난 근로기준법을 혐오합니다. 자본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근로기준법 밖에 있습니다. 1년 365일, 안 먹고 안 쉬고 안 자며 일만 하는 로봇과 AI 세상이 그것입니다. 별은 지고, 돈 버는 기계만 남은 세상입니다.
“어떻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현자는 대답했다. “해를 보는데 과연 등불이 필요할까?” (아라비아 잠언) 신을 알고 있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들이다. 오만한 사람과 어설프게 현명한 사람들만이 신을 모른다. (파스칼) 아무리 신을 믿고 있어도, 가끔 그 존재를 의심하는 순간에 부딪히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의 순간은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를 신에 대한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이해로 이끌어준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신은 완전히 진부해져버려서, 이젠 신을 믿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을 믿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때뿐이며, 신은 우리가 온 마음으로 구하면 그 새로운 모습을 우리에게 계..
이달 1일 대구에서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때려 입술 등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힌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런데 이 남성의 정체는 음주 폭력행위자(주폭)를 담당하는 경찰 간부였다. 주폭을 다루는 형사 역시 취중에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술집 영업시간과 인원 제한이 풀리면서 주춤했던 음주 범죄가 증가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폭행이나 협박, 상해, 갈취, 업무방해 등의 불법 행위가 빈발하고 있다. 심지어는 출동한 경찰과 119구급대원 등 공권력을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강력범죄(살인·강도·폭행·강간)의 30%는 음주상태에서 발생한다는 경찰과 검찰의 자료도 있다. 대검찰청의 연도별 범죄분석 통계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분석했는데 2..
현 정부의 만행에 가까운 국정 운영은 한반도 전쟁 위기 고조에 노동 탄압과 국보법 수색에 야당 대표 기획 수사나 삼권 분립 무시는 기본이고, 굴욕 조공 대일 외교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을 거론하기에도 숨 가쁠 정도다. 그 어느 하나 우리사회를 퇴행시키지 않는 것이 없지만, 무엇보다 69시간 노동 제시에 대한 거센 반발에 주 64시간 등 고육지책을 제시하고 대통령도 주 60시간을 상한선으로 거론하는 등 진화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60시간이란 숫자는 대통령 개인 생각이며, 국민 의견 수렴을 전제로 주 60시간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적대적 노조 정책과 함께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사고방식은 여러 희생 속에 압축 경제성장을 하던 시절로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일인당 국민소득을 거론할 것도 없이 K-pop과 네플릭스 작품 등 한국 문화의 국제적 파급력은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했고, 국제 사회에서도 이미 선진국으로 인정되고 있다. 분명 소득 증가를 위해 일개미처럼 일하는 것만이 곧 선진국의 모습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되어 차별 없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한다. 결국 노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선진 서구사회에서 짧은 노동 시간과 긴 휴가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진정한 가치인 양 포장하는 정부의 세뇌 공작에 길들여지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주입식 가치를 체화시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좀비의 삶이다. 열심히 일한 자는 열심히 놀 권리가 있다. 놀기 위해 최소한의 일을 하는 문화가 필요하고, 게으르게 살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하게 하는 것은 권력을 쥔 자들의 의도이자 망상일 뿐이다. 노는 삶을 위한 여유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충분조건이라면, 현 정부의 노동 시간 관련 인식이 얼마나 군사독재 시절의 경제개발 발상과 닮았는지 알 수 있다. 이미 1인당 국민총소득 3만5천 달러를 넘은 사회다. 일 적게 하되, 집중해서 일하면서 남은 시간을 삶의 여유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한편, 개인 삶의 여유란 사적인 부분에 대한 사회적 존중을 전제한다. 이에 더해 사람 사는 성숙한 사회를 위해 추가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공사 구분이 확실한 사회문화다. 삶의 여유란 개인의 사적 시간에 대한 존중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공사 구분이 혼재되어 개인 생활 부분까지도 공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를 본다. 주어진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다면 사적 부분에 대해서는 대중의 호기심을 멀리하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로 만드는 길이다. 일을 적게 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며 개인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문화, 무엇보다 우리 후속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런 문화를 확보하는 것은 우리들의 책무일 수 있다.
막힌 꽃길은 없다. 축제의 계절이 왔다. 긴 겨울을 보낸 이들은 남쪽에서부터 들려오는 봄꽃 소식에 쫑긋 귀를 세운다. 애타게 기다리던 봄은 느릿느릿 움직이다 3월 말부터 화사하게 피어난다. 한국의 남쪽 끝에서부터 들려오는 봄꽃 소식에, 길을 걷다 문득 느낀 봄 내음에, 겨우내 굳었던 나무와 땅이 물러진 몸으로 내보인 말간 새싹에 사람들의 가슴도 부드러워진다. 봄은 세상을 색색으로 물들인다. 첫걸음은 유채꽃과 매화다. 제주도 산방산과 성산일출봉 앞의 노란 융단, 광양 매화마을의 하얗게 뒤덮인 언덕 사진이 sns와 각종 매체를 장식할 때, 서울에선 봉은사와 창덕궁의 매화 몇 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린다. 3월 중순, 생활 속으로 파고든 봄은 차츰차츰 색을 퍼뜨린다. 출근길 따라 와글와글 피어난 개나리에 눈길이 가고, 밤을 밝히는 하얀 목련에 마음을 빼앗긴다. 발밑에선 작은 야생화들이, 산기슭에선 진달래가 고운 꽃잎으로 인사를 건넨다. 봄이 퐁퐁 터뜨리는 꽃망울에 가슴이 간질거리는 시기다. 그리움이 깊어지는 4월, 봄은 마침내 세상을 화사하게 뒤덮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활짝 피어난 벚꽃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들여 환호성을 일으킨다. 벚꽃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도 벚꽃만큼 화사해진다. 4월 말에서 5월 초엔 세상의 모든 색을 담은 듯한 튤립이, 꽃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가 무르익은 봄을 한껏 뽐낸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가 몽글몽글한 꽃망울을 흔들고, 황매화와 철쭉은 짙은 노랑, 분홍, 주홍빛으로 봄을 수놓는다. 남북으로 긴 한국에서 겨울부터 인기 있는 개화 지도에 의하면 올해는 개화 시기가 3~11일 정도 빨라 서울에선 진달래 3월 20일, 개나리와 유채꽃 3월 22일, 벚꽃 3월 28일에 꽃이 피며, 인천에선 진달래 3월 22일, 개나리 3월 27일, 벚꽃 4월 3일에 꽃이 핀다. 개화 시기로부터 일주일,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이면 색색으로 물든 봄을 마주할 수 있다. 길고 긴 코로나 기간을 견딘 후 마침내 재개하는 봄꽃 축제 소식도 가득하다. 봄꽃 축제의 서막 광양매화축제는 3월 10일부터 19일, ‘4년 만의 재회’를 주제로 축제를 펼쳐 역대 최고의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벚꽃축제의 상징인 진해군항제와 여의도벚꽃축제(영등포여의도봄꽃축제)를 비롯해 원미산진달래축제, 군포철쭉축제, 태안세계튤립축제와 곡성세계장미축제 등 전국 곳곳의 봄꽃 축제들도 빗장을 연다. 작년까지 가로막혔던 꽃길은 이제 각종 공연과 행사와 먹거리를 갖추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거대한 규모의 축제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열리는 소소한 축제들도 이어진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봄처럼, 봄꽃 축제 역시 멀리 가지 않아도 누구나 만끽할 수 있다. 봄은 찾아왔고, 축제는 시작됐다. 마스크 없는 화려한 이 봄, 어떤 색으로 물들어 볼까./자연형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