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성공은 언론과의 관계에 달렸다. 언론과 적대적 관계를 맺어선 정부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자유 보장은 민주주의 근간. 권력의 견제는 언론의 역할이다. 3권 분립 원리상, 입법부와 사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지만, 한계가 있다. ‘공직이라는 한 울타리’… 까닭에, 정부에 대한 진정한 견제는 언론자유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11일~16일)에 MBC 취재진을 전용기에 탑승시키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언론계 5단체(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는 정부와 전면전을 불사키로 했다. 정부와 언론이 긴장 태세에 있다. 현 정부의 복합위기가 증폭되는 분위기다. 작년에, 국경 없는 기자회는 ‘2021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세계..
근래에 많이 발생하고 있는 주요 사건 사고들을 보면 일상 생활안전에 관련된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사고를 보면 크고 작은 행사라도 세심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에 충분하다. 필자가 최근에 활동한 안전관련 사고들을 보면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에서 발생한 붕괴사고 (10명 사망), 2014년 10월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16명 사망) 등이 있다. 이러한 사고들은 우리 주변의 시설 및 생활반경과 밀접한 관계성을 갖고 있어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도심속에서의 사건을 최소화하고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그 방지 방법을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필자는 다양한 행사 및 관련 매뉴얼을 살펴 보고 교훈을 얻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의 재난을..
진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에 나선 어린 학생들 300여명과 일반인 승객, 승무원들이 타고 있었다. 누구 한사람 이 큰 배가 침몰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은 갖지 않았다. 배가 좌초돼 기울었을 때도 승객들은 곧 구출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해경 헬기도 뜨고 경비정도 사고 해역 주변으로 몰려오는 모습은 승객들에게 곧 자신들을 구해주리라는 마음을 갖게 했을 터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선장의 명령에 따라 가라앉기 시작한 배 안에서조차 혹시 구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당국에 상황을 전하였다. 그러나 구조대는 오지 않았고 살아야 했던 생때같은 목숨들은 배와 함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온 국민이 이 끔찍한 수장 장면을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생생히 목격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와 똑같은 죽음이 당국의 무대책과 무대응으로 이번에도 되풀이되었다. 단지 참사현장이 먼바다가 아니라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 사이의 중간쯤인 1.5km 지점, 우리나라에서 가장 치안이 철통같다는 곳이다. 대통령실과 관저 경비에 무려 1100명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어서 경찰 출동도 마음만 먹으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는 곳이다. 10만여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 참사를 빚었던 현장에서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신고가 쇄도했으나 경찰관 30여명만이 나왔을 뿐이다. 대통령의 이동에 불편을 끼친다는 이유로 도로 통제도 하지 않아 인파는 꾸역꾸역 참사가 예고된 좁은 골목으로만 몰렸다. 참사 당시 구조대원조차 제대로 접근을 할 수 없었던 좁디좁은 곳에서 무려 156명의 젊은 목숨이 깔려죽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대형 압사사고의 위험을 예감하고 참사 4시간 전부터 112 신고가 무려 10여 차례나 접수됐음에도 1시간 여 동안 누구도 참사 현장으로 달려오지 않았던 것이 사고를 키운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전의 역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한다. 이후 ‘안전한 나라’는 국가적 의제가 되었고 긴급 재난 발생에 대비해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을 만들고 1조5000억원을 들여 국가재난통합관리체계도 구축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대형 참사가 어찌 이 땅에서 반복되는가? 이는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그 원인과 진실이 감춰진 채 묻혔기 때문이 아닌가?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니 관련자에 대한 처벌도 할 수 없고 그래서 국가적 대참사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 있는 누구도 지금껏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부작위와 미필적 고의의 중범죄자들임을 방증한다. 최소한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용산구청장 등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능력과 자격이 없음이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은 석고대죄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벌도 그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최근 북한이 핵 무력의 사용을 법제화하고 무력시위의 수위를 높이자 그 대응책으로서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 나토식 핵 공유, 핵 개발 등의 논의가 재점화하고 있다. 핵 개발 주장은 아직 소수 의견에 불과하나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 또는 나토식 핵 공유 주장은 이전보다 높은 강도로 제기되고 있다.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 또는 나토식 핵 공유는 실현 가능한가, 현재의 확장억제보다 더 큰 효과를 보장하는가, 대안은 없는가?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 내내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한 오바마 행정부의 핵비확산 정책을 계승하고 있기에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와 이를 전제로 하는 나토식 핵 공유에 부정적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정확도가 향상되었으므로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는 군사적 효용 가치가 거의 없고 현재의..
리어카 한쪽 울긋불긋한 꽃 깃발처럼 꽂고 다니는 시든 사내 왜 조화(造花 )를 꽂고 다니냐 물으면 시들지 않아서라 한다 오늘 물어보았을 때 죽지 않아서라 했다 다음에는 버리기 아까워서라 하겠지 언제나 세 가지를 맴도는 대답의 시들기 싫은 사내는 버리지 않은 자신을 아까워 밀고 왔다 죽지 않는 그 사내 날마다 거리에 활짝 꽂혀 있다
중간선거가 끝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남북간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 2∼5일 고강도 도발에 이어 나흘 만에 다시 미사일 발사에 나서는 등 위험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1월 당 대회에서 핵무력 강화 노선을 천명한 이후 ‘핵 보유국’을 인정받기 위한 7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예견되고 있다. 북한이 2017년 이후 5년 만에 핵실험을 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일각에서 제기돼온 한국의 핵무장론 목소리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이는 등 안보 환경이 급변의 기류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가운데 한국과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3일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갖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미 전략자산을 상시 배치 수준으로 한반도에 전개하고, 북한 핵공격을 상정한 ‘핵우산..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일그러진 생각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와 지자체의 직무유기에 따른 인재인데도 젊은이들이 놀러가서 생긴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의 의무인 안전은 오간데 없다. 사회 일각에서 왜 이런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축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한다. 이태원 핼로윈 축제를 의미 없는 유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은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 차 있다. "축제라기보다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인식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에 대한 국가 지원을 반대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일주일 만에 목표치인 5만 명을 달성한 것은 그 정점에 해당한다. 이런 인식은 한국에서 자발적 축제문화가 강릉 단오제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끊긴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의 조선총독부와 박정희 군사정권 등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축제를 미신으로 프레임 씌웠다. 90년 대 이후 축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지자체 주최의 지역 축제나 상업적 축제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1996년 412개였던 지역 축제는 2018년에 886개로 증가했다. 그러나 척박한 축제 풍토에서 이태원 핼로윈 축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번에 주최 측이 없다는 것이 큰 논란이 되었는데 이는 바로 축제의 본질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축제는 자발적 참여로 공연자와 관람자 경계가 없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하위징아는 『호모루덴스』1장에서 놀이를 여섯 가지 정도로 정리하는데 그 첫 번째로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또는 몰입 행위"로 정의한다. 그래야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축제라 할 수 있는 것이 충족된 만큼 이태원 핼로윈 축제에 등장한 가면과 코스튬, 즉흥 공연, 음악 등은 축제의 본질에 가닿게 한다. 참가자들을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일상에서 다양한 연유로 짓눌려 있다. 살인적 양극화나 성 불평등, 실업, 후진적 정치 등 현실 문제부터 필멸에 따른 운명이나 불가해한 세계 등 인간의 한계까지 고통의 요인은 차고 넘친다. 류정아의『축제인류학』에 프로이트의 축제론도 소개돼 있는데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프로이트는 축제를 공정성과 즉흥성, 디오니소스적인 부정과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의 폐기, 해방을 향한 문화로 본다. 즉 그에게 있어서 축제는 '금기의 위반, 과도함과 난장트기'이다." 이는 자신들의 속박을 풀 수 있는 통로가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왜 이태원에 갔는지 알게 해주는 유용한 힌트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태원 핼로윈 축제는 과정에 있다. 모든 자발적 축제가 그렇듯이 축제에는 세월이 필요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규모로 열린 이번 축제는 달라진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타깝다. 안전장치가 마련된 토대에서 이태원 핼로윈 축제가 젊은이들의 대표 축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참사로 숨진 이들의 명복을 빈다. 축제를 즐겼던 당신들은 멋진 사람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지난 4일 열린 경기도의회 2022년도 행정사무감사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황대호(민주‧수원3) 부위원장은 경기문화재단 소속 박물관·미술관 수장고 포화율을 지적했다.(본보 7일자 3면) 황 부위원장은 수장고 부족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온 것이라면서 수장고가 협소해 보관은 물론 분류조차 힘든 상태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문화체육관광국은 관련 예산조차 편성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예산 확보와 신규 수장고 신설 등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유물과 미술작품의 수집·보존·전시를 담당하는 시설이다. 일반인들은 전시 기능을 제일 먼저 떠 올리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장 기능이다. 이 기능을 담당하는 수장고는 까다로운 관리 조건을 갖춰야 한다. 보존에 적합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습기를 막을 수 있..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20세기를 빛낸 찬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울림이 있는 색상과 심플한 형태로 자기만의 화법을 개척했다. “예술가는 본능과 직감에 의해 이끌려야 한다”는 명제로 예술을 새롭게 창조한 마티스. 그가 태어난 곳은 프랑스 북부 카토 캄브레시스의 외할아버지 댁이었다. 하지만 유년기를 보낸 건 외가에서 15킬로 떨어진 보엥 앙 베르망드아의 부모님 집이었다. 부친은 곡물과 그림을 파는 가게를 했고 모친은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가 자란 곳은 베틀을 짜는 직물염색공업이 발달했다. 마티스의 색감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마티스는 청년기까지 전혀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법률보조인으로 일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일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스무 살 되던 해 그는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고 한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그 때 어머니는 그에게 화구상자를 주었다. 이는 정녕 신의 한수였다.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마티스는 인생의 재미를 느꼈다. 결국 직장을 접고 미술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학창시절 마티스는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낀 채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그에게 친구들은 ‘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티스의 운명을 바꾼 건 귀스타브 모로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이 선생 덕에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 나갔다. 물론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고갱, 세잔, 고흐 등 후기인상파 화가들이었다. 또한 그의 스페인, 모로코, 러시아, 타이티 여행도 크게 한몫했다. 세계 여기저기를 돈 마티스. 그가 최종 닻을 내린 곳은 프랑스남부 방스(Vence)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폭격의 위험에 처한 니스를 떠나 이곳에 왔다. 방스는 마티스에게 니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게 했다. 니스에서 1시간 남짓 떨어졌지만 타이티를 연상시켰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소녀들, 여인들,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달리는 남자들은 시장이 개장될 때의 타이티를 생각나게 했다. 이런 방스는 마티스의 말년을 살찌웠다. 영혼의 안식처인 이곳에 그는 로제르(Rosaire) 소성당을 지었다. 일명 마티스성당인 이곳은 방스의 찬란한 햇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부는 검소하지만 하양파랑 기와와 초승달과 불꽃모양의 13미터 철조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마티스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난 오로지 성실하게 일만했다. 이 성당은 내 모든 화가생활의 총결산이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이 성당은 내 최고의 걸작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여든네 살까지 장수한 마티스. 수 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고향과 코르시카 등 여러 곳에 미술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마티스를 한눈에 보려면 방스가 최고다. 마티스성당은 그를 총망라한다. 더구나 방스는 모두의 로망인 프로방스가 아닌가!
직업병의 대물림이라는 비극적인 태아 산재 보상에 대한 시행령 개정안이 2022년 10월 17일 드디어 입법예고 되었다. 더불어 2017년 직업성 암의 추정의 원칙 도입 이슈 등과 같은 업무상 질병에 있어서 산업재해 적용의 확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터의 위험으로부터 손상된 자녀의 건강도 산재보호 받는다 2023년 1월부터 뱃속의 태아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임산부 근로자의 업무 환경 탓에 선천적으로 건강 손상을 입고 태어난 자녀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에는 태아의 건강이 업무상 재해로 인해 손상받더라도 근로자 당사자가 아닌 태아는 청구권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산재법상 보험급여 청구자는 수급자와 동일해야 하는데, 근로자 뱃속의 태아는 근로자 당사자가 아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