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는 권역별 해양 특색에 맞는 해양레저관광 인프라 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다. 전국을 7개 권역으로 나눠 누구나 집에서 2시간 내의 거리에서 다양한 해양레저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도내 시흥시를 포함한 5개 지방정부를 사업시행자로 선정했다. 시흥시에는 2024년까지 총 90선석의 계류시설과 3층 규모의 클럽하우스를 갖춘 마리나항만이 시화호 거북섬에 들어선다. 여기에 드는 전체 사업비 336억 원 가운데 절반인 168억 원을 해수부가 지원하며 도비 51억 원, 시비 117억 원이 투입된다. 시흥시는 이 사업이 완료되면 인근의 아쿠아펫랜드, 해양생태과학관, 거북섬 복합리조트, 스트리트몰2 등의 관광자원과 함께 지역 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해양레저관광 집적지(클러스터)가 조성된다면..
인간은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는 존재이다. 처해있는 상황이 제각기 다른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발생한 사건은 부풀리거나 축소되는 등 각색되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 라쇼몽 효과라고 하는데 일본의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 유래했다. 『라쇼몽』은 무사(사무라이) 부부가 산길을 가다 산적에게 붙잡혀 벌어진 일을 저마다 다르게 진술하는 단순한 영화다. 그러나 사실이 미궁에 빠져 인식에 어떤 까닭이 있어선 지를 묻는 심오한 영화이기도 하다. 산적은 당당하게 결투를 벌여 무사를 죽였다고 진술한다. 반면 무사 아내는 산적에게 겁탈 당한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남편을 죽였다고 말한다, 죽임 당한 무사는 무당의 말을 통해 (수치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무사의 죽음만이 팩트인 것이다. 라쇼몽은 팩트를 주관적으로 비트는 인간의 심리를 잘 포착해 낸 영화다. 하지만 우리는 라쇼몽을 비웃기라도 하듯 없는 사실을 마치 있는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팩트 가공' 시대에 살고 있다. 우스꽝스런 이 가공은 비이성 그 자체이지만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아 가히 주술적이다.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는 팩트 가공과 관련해 상징적 사건이다. 사회학·심리학·언론학적으로 많은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사건은 간단하다. 첼리스트가 동거하는 남자친구와 통화를 한다. 자신이 새벽 3시에 청담동 술집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김앤장 소속 변호사 30여 명이 술을 마셨다. 윤 대통령이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불렀고 자신이 첼로 반주를 넣었다. 통화 내용을 녹취한 남자 친구는 신생 뉴스 유튜브에 제보했고 육성 녹취가 그대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기자는 현장에 있었다는 첼리스트와 통화조차 한 적 없었다. 기사의 구성 요소인 육하원칙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그야말로 팩트 제로인 상태에서 청담동 술자리는 사실로 둔갑되었다. 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을 비롯 정치권부터 지식인, 시민에 이르기까지 영락없는 사실로 받아들였다. 포털 사이트 관련 기사에는 사실을 확신하는 댓글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첼리스트가 서울 서초경찰서에 출두해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고 진술해 사건은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녹취록의 주인공이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담동 술자리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경찰의 협박 때문에 첼리스트가 어쩔 수 없이 거짓 진술을 했다고 확신한다. 이쯤이면 주술 말고는 그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라쇼몽 효과나 확증편향도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검찰이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하듯이 언론이 팩트를 제시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제 아무리 개연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팩트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작금 팩트를 거리낌 없이 가공해 내고, 그것을 의심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믿기까지 한다. 실로 주술 사회가 깊어지고 고착화 하지 않을까 두렵다.
조선시대 사색당파를 적폐로만 보는 시각은 ‘식민사관’의 악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어요. 선조에서 영조까지 180년간의 당파 간 논의를 정리한 이건창의 ‘당의통략(黨議通略)’엔 순수하게 당쟁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은 79명뿐이라고 적고도 있죠. 그러나 걸핏하면 상대 당파 유력자의 죄목을 들어 “목을 끊어야 한다”고 악악대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은 참으로 짜증 나는 장면들이죠.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안을 놓고 잡음이 커지고 있네요. 현재 9명(MBC)·11명(KBS)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1인 규모의 운영위원회로 개편하고, 100명 정수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한 대목이 눈에 띄네요.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요.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임명 제청할 후..
지속 가능한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지역 기반의 혁신, 안정, 전문 역량을 갖추고 사회혁신을 주도하는 인재양성과 사회적기업가정신의 소셜벤처 창업가 육성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함께 성장하는 사회적경제 기업과 조직을 육성하여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가들이 지역사회의 균형성장의 주체자가 됨으로써 보다 나은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지금까지 공공 주도의 사회적경제기업 육성정책이 추진되어 오면서 사회적경제 조직의 수, 매출 규모, 진출 분야, 수익모델에서의 다양성 증대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친화적 생태계가 조성되어 왔다. 양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경제 이지만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와 공헌의 가시화가 필요하며 사회적경제조직 네트워크 활성화, 사회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통합지원체계 마련..
예기치 못한 이태원 대형참사로 시민 안전에 관한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경기도 내 주유소 등 ‘위험물 제조소’의 안전의식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1회 이상 위험시설 정기 점검을 실행해 결과를 소방서에 제출하게 돼 있으나 지난 10월까지 제출한 사업장은 전체의 65.3%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번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 피해가 우려되는 위험물 제조소의 안전의식 제고가 시급하다. 고질적인 무사안일 의식을 끊어낼 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도내 의약품이나 화학물질·유류 탱크·주유소 등 위험물 제조소 보유 사업장 정기 점검 대상 1만1521개소를 파악한 결과, 지난 10월 말까지 관할 소방서에 점검 결과를 제출한 곳은 7531개소로서 접수율이 65.3%에 그쳤다. 미제출 사업장 비율이 3곳 중 1곳꼴인 34.7%에 달한다는..
홈쇼핑으로 충동구매한 후 물건 받아보고 반품한 경험들 있을 것이다. 대통령도 반품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반품이 가능하면 진보든 보수든 각 당들이 결사적으로 후보를 엄선할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 정치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검찰 정치다.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의 내용이다.소득주도성장을 폐기했다. 탈원전정책을 폐기했다. 한미동맹을 재건했다. 지난 정부의 일은 다 없애고 정상화시켰다는 내용뿐이다. 중요한 건 100일간의 국정경험을 통하여 앞으로 5년간의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는 국정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검사는 직업 특성상 과거 단죄에 익숙하다. 평생 범죄수사와 법적용을 고민하다가 국가미래를 설계하는 게 쉽지 않다. 검사와 정치인은 지향점이 과거와 미래로 다르다. 또 법치가 능사는 아니다. 법 집행자로서 법치를 지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검사하면 된다. 검사 출신 홍준표 시장은 “11년간 검사하다가 정치권에 들어왔는데 그 곤조 빼는데 8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범죄수사만을 하던 검사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게 참 어렵다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검사 말곤 해본 적이 없는 초보 정치인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내용처럼(2022.8.16) 어쩌다 대통령 된 사람이다. 현 정부의 인사는 가히 놀랍다. 추천, 자료조사, 검증 모두 검찰 출신이 한다. 검찰 인사편중 지적에 대해 윤 대통령은 6/7일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 했다. 검사만 해서 인력풀이 좁고 같이 일해본 사람이 검사뿐이라 유능한 사람도 검사일 거다. 6/8일 “과거엔 민변 출신이 도배하지 않았나?”라 말했다. 철수가 숙제 안 했다고 선생님이 야단치자 영희도 지난주 숙제 안 했어요 하는 것과 같다. 검찰은 법적용과 죄의 유무만을 따지지만 정치는 사회와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의 미래비전을 제공해야 한다. 동남아 순방 시 MBC기자 탑승거부는 치졸함의 극치다. 검사 때는 누구도 뭐라 안 했는데 대통령인 자신을 공격하고 비판하니 도저히 참지 못한 것이다. 우스개 같은 표현으로 검사 때는 개떡같이 말해도 조직이 찰떡처럼 알아듣지만 이제 대통령의 말은 언론을 통해 전 국민이 듣는다. 찰떡으로 알아듣지 않는다. 지난 선거 때 반은 비지지층이다. 그들에겐 그냥 개떡일 뿐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자리다. 국민은 내 부하가 아니고 비지지자여도 그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빨리 대통령이라는 직분에 적응해야 한다. 정치는 내편이 아닌 남의 편과의 대화와 타협이다. 법률에 의해 범죄의 유무를 가르는 작업이 아니다. 정치언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얼마 전 종북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면서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 했다. 협치의 대상이 민주당인데 졸지에 종북주사파 될 뻔했다. 그들을 뽑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한겨레신문 성한용 기자는 “네 죄는 네가 알렸다 같은 원님재판 어법”이라 지적했다. 취임 후 교육부 업무보고 시 5세 취학을 강구하라 지시해놓고 문제가 커지자 박순애 장관을 사임시켰다. 권성동 원내대표 휴대폰에 윤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가 카메라에 잡히자 문자 보낸 사람이 아니라 문자 받은 사람이 사과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반 학생끼리 싸움하고 맞은 친구가 선생님에게 맞아서 죄송합니다라고 한 것과 진배없다. 화법과 언어의 미숙은 정치인으로서 훈련 미비에 따른 결과로 후보 시절부터 예상되어온 문제다. 홍준표 시장의 말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문 전 대통령에 실망하는데 3년이 걸렸다. 윤 대통령에게는 100일이 채 안 걸렸다. 신선해 보인다고 풋과일 골랐더니 맛이 덜 들어 시기만 하다. 한입 베물어 반품도 안되는데.
인구 감소에 따른 학령인구 급감 여파로 경기도에서도 대학교들이 통폐합을 통해 몸집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이 같은 추세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단 통폐합으로 구조를 조정하는 대응이 불가피하지만, 잉여시설과 남아도는 지식자원에 대한 중장기적 활용 대책은 범국가적인 과제다. 평생교육의 수요에 맞춰서 국민의 교육 욕구를 충족시키는 자원으로의 선용 등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성 한경대학교와 평택 한국복지대학교는 2023년 3월부터 ‘한경국립대학교’로 새 문패를 단다. 교육부는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두 대학을 통합하고 학생·교직원의 소속 변경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경국립대는 기존 한경대 건물을 안성 캠퍼스로 활..
12월 2일 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대표팀이 포르투갈과 맞붙는 시간을 앞두고 저녁반주에 얼콰해진 나는 고민했다. 축구를 볼 것인가? 잘 것인가? 당일로 예정된 철도노조의 파업은 잠정합의가 나와 철회되었다. 고로 내일 새벽 예정된 기관차승무를 위해 출근해야 한다. 잘 시간도 문제지만 더 큰 고민은 지금껏 대한민국 축구가 중요한 경기에서 내가 중계를 지켜볼 때 이겨본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 축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끊기 힘든 응원유혹이지만 차라리 안보는게 우국충정이니 이 징크스를 익히 아는 지인은 술먹고 일찍 자란다. 그래,. 애국하는 심정으로 잤다. 현실은 늘 드라마보다 극적이라더니 새벽에 일어나서 “내가 대한민국을 또 한번 구한게야”라는 뿌듯함을 얻었다. 그날 새벽부터 지금까지 뉴스는 태반을 붉은악마들의 기적이 차지했다. 마치 월드컵경기 없을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냈나 싶을만치. “그래, 월드컵이니깐..”하면서도 지나친 들뜸을 스스로 경계하게 되는 것은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미안함 때문이다. 솔직히 파업철회 소식에 내 가슴은 물먹은 솜마냥 무거웠다. 파업현장에 고립된 채 홀로 십자포화를 견뎌야 할 화물연대조합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검토한다, 화주들의 손배소송을 대행한다”등 정부와 집권여당의 살벌한 말들이 언론에 도배된다. 심지어 용산에서 스승으로 모신다는 천공이라는 도사는 “노동자 없애면 데모가 없어진다. 대한민국은 노동자를 없애야 한다”고 일갈했단다. 아..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단 말인가? 파업을 좋아서 하는 노동자는 없다. 파업은 전쟁과 같아서 치명적인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파업도 정치도 국민들의 지지가 좌우하는 것, 월드컵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지금 길거리 화물연대조합원들의 막막한 가슴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전국이 “대~한민국!!”이란 함성에 뒤덮힌 가운데 법원은 서훈 전국가안보실장에게 서해공무원 사망사고 관련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손흥민이 질주하기 몇시간 전,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우리가 월드컵으로 들썩일 때 그렇게 많이 해먹었다는 대장동 도적들은 모두 풀려났고, 풀려난 자들은 하나같이 검찰과 입을 맞춘 듯이 "이랬다 하더라", "저랬다고 들었다"는 말들로 야당대표를 겨냥했다. 그리고 그들이 비우고 나온 구치소의 빈자리를 이재명의 사람들이 메꾸었다. 검찰이 청구하면 법원이 발부하는 속칭 ‘구속영장 자판기시스템’은 또 누구를 겨냥할 것인가? 검찰왕국이라 불리우는 정권은 검찰권을 지렛대로 화물연대파업 강경대응과 전정권 수사, 이재명대표 수사를 디딤돌로 지지율 반전을 노린다. 지지율이 확보되면 민주당내의 호응세력과 더불어 정계개편까지 밀어붙일지도 모른다. 이 과정들이 월드컵의 열광을 등에 업고 탄력을 붙이고 있다면 내가 너무 민감한 탓일까? 땅거미 내리는 황혼녁, 언덕 위에서 다가오는 동물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날 물어뜯을 늑대인지 분간이 어려운 때를 일러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일컬었다. 월드컵의 눈부신 열정이 사그라들고 나서야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이 개의 시간이었는지 늑대의 시간이었는지를.. 그렇다고 매사에 진지충이 되어 월드컵을 보지말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이처럼 무도한 시대에 그나마 월드컵이라도 보며 위안을 얻어야 할게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볼 때 보더라도 매 순간 깨어있는 정신으로 보자. 겁박에 내몰린 화물연대노동자가 눈물을 삼키며 다시 운전대에 오르듯이, 이태원 유족들이 피눈물을 뿌리며 길거리를 떠돌듯이 누군가는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는 시간임을 잊어먹지만 말고 보자. 그래야 늑대의 시간을 견딜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가을은 진홍빛 와인 색깔로 다가온다고 한다. 하지만 가을도 깊어지면 첫눈을 기다리게 된다. 첫눈은 첫사랑의 가슴 같은 설렘과 그리움의 해갈 같은 기쁨을 안고 온다. 산중에 살다 간 법정은 1 미터 가까이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가기에 엄두가 나지 않고 들짐승들도 얼씬하지 않을 때는 ‘글은 곧 사람이란 말이 있지만 글씨 또한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마음으로 다산(茶山) 선생의 복사된 글씨를 압핀으로 빈 벽에 붙여 놓고 보면 방안이 한결 고풍스런 품격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흰 눈이 펄펄 내리면 종남산 아래 눈 덮인 들길을 걸어 산속 어느 집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 삶의 주변과 국가의 역사적 참사를 보면 한가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시인이란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앓아 주는 환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의 위원장 임기가 12월 9일 종료되고 정부는 새로운 위원장 후보로 극우적 인사로 지명했다. 진화위는 과거 국가폭력으로 억울한 피해를 본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국가의 손·배상과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출범한 단체이다. 이를 위해 진화위는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권위주의 통치 시에 일어났던 다양한 인권침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등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설립된 독립적인 조사기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신생 국가들 대부분이 수많은 국가폭력과 인권탄압에 많은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우리나라 역시 그 피해사례로 따지면 만만치 않다. 해방 이후 냉전과 분단 그리고 이념대립으로 그리고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우리의 진화위와 비슷한 기구로 대표적인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이다. 300년 동안 흑백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실시한 남아공의 국가폭력은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1994년 국민투표로 집권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아픈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한 전담 위원회를 설치하고, 과거사의 진실을 밝혀 화해를 위한 방법으로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 유가족의 용서를 꾀했다. 세계가 찬양한 남아공의 과거사 정리는 이렇게 완성될 수 있었다. 우리도 진실과 화해를 기다리는 제주도 4.3항쟁과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발생한 보도연맹 등 민간인 학살, 인혁당 사건처럼 사법부를 이용한 살인행위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변까지 그 사례들이 일일이 열거하기도 부족하다. 지금껏 진화위는 화성시 선감학원의 인권탄압 사례를 발굴하는 등 실적이 많았지만, 아직도 남은 과제가 1만 8천여 건이다. 시급히 조직을 보강하고 조사요원의 증원이 필요하지만, 위원회 활동 시한은 겨우 1년 5개월 남았다. 문제는 차기 위원장 후보이다. 뉴라이트 운동을 앞장섰던 그는 아픈 우리의 과거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자이다. 이미 독재자로 판정이 난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고, 제주 4.3항쟁을 ‘반한·반미·반유엔·친공투쟁’이라는 막말과 희생자들은 제주도민 유격대에 의해서 발생하였고, 친일청산이 안된 것은 공산세력 때문이라는 등 도저히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는 자이다. 이런 지명은 민주화운동 전체에 대한 모욕이고 폭거이다. 그동안 각종 위원회에서 위원장의 행태에 따라 위원회의 구성과 노선이 결정되어 파행을 겪은 일을 숱하게 보아온 입장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다른 기구의 장은 자신의 코드에 맞는 자를 임명하더라도 진화위의 위원장만은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왜 지켜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으로 임명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아픈 과거사를 정리하는 이유는 그 시대가 우상의 숭배가 아닌 이성적 사람들이 살았다는 역사적 기록 때문이다. 후세가 어떻게 기록할지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