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회제도의 가장 큰 원인은 그릇된 신앙이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자기 속의 불합리한 것을 합리적인 것으로 이끌어가는 데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생활의 불합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외면하지 말 것. 둘째, 다가올 미래 사회의 합리성에 대해 지극히 순수한 이념을 가질 것. 사회제도는 불합리와 거기서 생길 수밖에 없는 비참함을 생각할 때, 그것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는 반면, 합리적인 생활의 가능성을 뚜렷이 의식할 때는, 자연히 그것을 향해 정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불합리에서 생기는 병폐를 숨기지 말고 합리적인 생활의 행복을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모든 인류의 스승이 해야 할 임무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신중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항상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바꿀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선입견을 버리고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사물을 판단해야 한다. 바람의 방향도 살피지 않고 언제나 똑같이 돛을 올리는 사공은 절대로 목적한 항구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헨리 조지)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떠
언론은 민심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당위가 흔들리고 있다. 민심을 반영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느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심을 억지스럽게 끌고 가려는 시도까지 서슴지 않는다. 시민들은 언론이 민심을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따랐다. 언론이란 거울에 성에가 두텁게 끼더니, 이젠 거울이 깨질 조짐마저 보인다. 그래서인지 뉴스를 회피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우리 언론은 여론을 반영해야 하는 1차 의무를 등한시한 채, 여론형성(프레임)이라는 힘을 과시하는데 과도하게 집착한다. 그러니 무리수가 따르고 신뢰는 추락한다.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건물 높이만 올리는 꼴이다. 그 사례들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기사만 점검해도 확연하다. 이번 설 민심을 전하는 기사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지난 24일 오후 1시 40분. 《“윤석열 정부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실망”···광주 전남 민심, 단단히 뿔난 이유》라는 제목의 디지털타임스 기사가 포털사이트 다음의 뉴스화면에 올랐다. 광주 4명, 전남 2명 등 6명의 국회의원이 전하는 내용만으로 기사화했다. 이 기사는 하루 동안 댓글 4466개가 달렸다. 클릭수 대박 조짐이 보였
2023년엔 몇가지 글로벌 환경 도전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중국발 변수다. 1979년 미중 수교이후 세계의 성장엔진이 돼온 중국 경제가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점이다. 중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3% 증가에 그쳤다. 중국의 당초 성장률 목표치(5.5%)에 크게 못미치는 것으로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2.2%)을 제외하면 문화대혁명 말기 1976년(-1.6%) 이후 50여년 만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GDP의 미국 추월 시기와 그 가능성 여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특히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2010년까지 10% 안팎의 초고속 성장을 질주하던 중국이 이후 지속적인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코로나 기저효과가 사라진 지난해 3%, 올해도 4%대의 낮은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거대인구‧저임금’이 주도한 중국의 고속성장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서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인구학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61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85만명이 줄었다. 생산가능인구(16~59세)는 지난 10년간 4000만명이 줄었다.
겨울이 지나가는듯하다가 동장군의 역습을 받았다. 근자에 체감한 추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코로나19와 마스크 전쟁을 치르다가 퍼펙트 스톰(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의 공격을 받는 와중이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역습으로 LNG도시가스 요금이 30~40%대 인상됐다. 여야가 “상대방 탓”이라고 설전 중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정치권과 정부, 모두의 탓이다. 코로나19와 맞닥쳐 싸울 때, 우리나라는 다른 OECD 선진국보다 재난지원금 규모가 제일 작았다. 서민 주머니 사정을 살필 수밖에 없는 전 정부 입장에선 재난지원금을 충분히 지급하지 못하고 있으니, 도시가스 요금을 비롯해 공공요금만이라도 인상을 자제했을 것이다. 그때 재난지원금 지원을 반대했던 당시의 야당은 지금의 여당이다. 대선 기간 중엔 여야가 서로 표를 얻으려고 공공요금 인상을 미뤄왔다. 누구의 책임인가. 정권이 바뀌고 난 후엔 점진적으로 러-우 전쟁 여파에 따른 가스 요금 인상분을 적절하게 안분했어야 했다. 한꺼번에 인상하다 보니 사단이 났다. 지금의 야당 탓인가. 지금의 여당 탓인가. 인상된 전기·가스요금 고지서로 인한 유럽의 주변국가 압력은 러-우 전쟁이 곧 끝나게 할 수…
경기도가 올해도 사회복지시설(법인)의 불법행위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은 올해 사회복지시설(법인)의 수익사업 수익금 불법 사용 여부를 비롯, 이후 아동·장애인 복지시설 보조금 목적 외 사용, 사회복지시설 기능보강 보조금 목적 외 사용, 사회복지시설 허위 종사자 인건비 보조금, 사회복지시설의 토요 운영 보조금(급식비, 프로그램비) 목적 외 사용, 기부식품 등 제공사업장(푸드뱅크) 불법 운영 단속 등 1월부터 12월까지 연중 수사 일정을 밝혔다. ‘사회복지사업법’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는 사회복지시설 보조금이 그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될 수 없도록 못박아놓았다. 기본재산도 법인이 사회복지사업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만큼 매도‧임대 등 처분 시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도 특사경은 매년 사회복지시설(법인)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 횡령, 허가 없이 기본재산을 임대해 수익을 챙기는 등 불법 행위는 근절되지 않는다. 지난해에도 사리사욕을 채우다 도 특사경에 적발돼 검찰에 넘겨진 대표자 및 종사자가 적지 않았다. 한 지역아동센터 시설장은 건물공사비, 센터 운영비로 사용
얼마 전 북한무인기 침투 관련한 TV토론을 본 적이 있다.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논쟁을 보면서 아쉬움을 크게 느꼈었다. 한편은 우리의 송골매 무인기 북한 침투는 비례성의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조치이고 나아가 UN헌장 상의 자위권까지 언급하며 북한의 무모한 도발행위를 비판하였다. 다른 한편은 우리의 지나친 대응과 북한의 또 다른 도발, 우리의 맞대응, 한반도 불안이 가속화되는 상황을 염려한다. 특히 대통령의 백배 천배의 보복 등 강성 발언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라는 지적 등 나름의 평가를 내놓았다. 그런데 왜 북한이 그런 무모한 행동을 자행했는가에 대한 분석, 특히 지난해의 수십 회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이어 우리 영역에 직접 무인기를 침투시킨 근본 이유에 대한 토론은 전무했다. 또한 정부 일각에서는 나타난 현상만을 가지고 북한의 행태를 비난하며 2018년 9·19 군사합의를 정지시켜야 한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명의(名醫)는 병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 특히 원인 제거를 위한 대처방안을 강조한다. 2020년 6월의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지속적으로 대남 강경 모드를 이끌어 가는 북한의 행태에 대한 근본 처방이 시급한…
‘우리’는 모호합니다. 꼼꼼히 따져볼수록 복잡합니다. ‘나’와 ‘너’처럼 절대적일 수 없어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수학교과서에 등장하는 집합 같다고나 할까요. 교집합이거나 합집합일 수 있는, 그러니까 ‘A∩B’ 혹은 ‘A∪B’인 것이 ‘우리’입니다. 겹쳐진 두 개의 동그라미에 표시된 빗금일 수도 있고, 중괄호 속에 나열된 원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숫자나 기호로 표시된 ‘우리’는 생명이 없어서 어떻게 묶여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정작 쓰리고 아린 ‘우리’는 사람 사는 영역에 있습니다. SKY이든 강남이든 연봉이든 무엇이든, 끼리끼리 교집합으로 묶인 ‘우리’ 속에서 차별과 박탈의 상처가 자라납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통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호령하던 ‘우리’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패거리였습니다. 하늘의 별을 따서 계급장에 붙일 수도 있는 그들에게 불가능이란 없었습니다. 남진이 부른 노래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복집을’ 짓는 사건도 저질렀습니다. 시절은 바뀌었지만 세상을 주무르는 ‘우리’는 여전합니다. 여전한 힘과 권력의 ‘우리’는 여의도와 SKY에만 있지 않습니다. 눈에 도
프랑스 낭만파 음악의 거장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사랑에 눈이 멀어 살인자가 될 뻔했다. 약혼녀 마리 모케(Marie Moke)와 피아노 제조업자 카미유 플레옐의 염문설이 돌자 이들을 죽이려 했다. 꿈에 그리던 로마상. 다섯 번의 도전 끝에 결국 쟁취했다. 로마의 빌라 메디시스에 도착한 그. 낯선 곳에서 마리-모케의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안달이 난 베를리오즈. 그때 마침 장모가 될 ‘하마’로부터 편지가 왔다. 마리와의 파혼을 알리며 그녀가 피아노 회사 플레엘의 후계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절망에 빠진 베를리오즈. 곧 분노로 치달아 살인극을 꿈꿨다. 1803년 12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라코트생탕드레(La Cote-Saint-Andre)에서 태어난 그. 아버지 루이 베를리오즈는 프랑스에서 내놓으라하는 의사였다. 루이는 아들이 자기와 같은 길을 가길 바랐다. 엑토르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채 파리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실습 도중 냅다 창문을 뛰어넘어 도망쳤다. 수술실 한 귀퉁이서 쥐들이 모여 사람 척수를 정신없이 갉아먹고 있는 장면을 보고 구역질이 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