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바삐 출근길 차에 오를 때 나는 말했다. ‘오늘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딸에게 새 아침 희망적이고 활기찬 언어적 에너지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서재로 돌아와 벽면 해돋이 사진을 본다. 2000년 새 아침은 지리산에서 맞이했다. 아침이라서 새로운 영혼으로 천 년의 새 아침 빛을 가슴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아침 기도를 하고 촬영하기 좋은 산봉우리 바위 곁에서 니콘 카메라를 목에 걸고 서서 해 뜨는 순간을 기다렸다. 운해 속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카메라 앵글 속으로 찰칵찰칵! 끌어들였다. 셔터 동작소리가 아침 산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의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진 아래 검은 부분은 산이요. 중심과 위로는 붉은빛이다. 산 능선의 중간 조금 낮은 중심에는 계란 노른자 빛 태양이 똥그랗게 떠 있다. 해는 멀리서 길을 내고 온 듯 연한 빛이 강물의 곡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을 챙겨보고 새로운 구실과 각오를 다짐하는 순간, 맑아 눈부신 세상에 서 있으면 내 가슴도 맑아져 하얘지는 것 같았다. 순백이 주는 순수한 영혼의 피가 도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새아침 환한 흰 빛으로서의 고요, 맑음, 그 깊이, 무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 성경의 한 구절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이 구절을 떠올리며 2024년을 새롭게 다짐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새해 첫날이 무척 설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찬 새해를 함께 꿈꾸어보자는 요청을 드리고 싶다. 1월 1일은 새해의 시작. 이는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es César)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인들은 이날을 야누스 신에게 바쳤다. 양면의 얼굴을 한 야누스. 하나는 과거, 다른 하나는 미래를 상징했다. 그러나 새해의 첫날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카페왕조 시절에는 부활절이, 샤를마뉴 시절에는 크리스마스가 새해의 첫날이었다. 그러나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가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다시 설정했다. 이는 종교 축제 일정을 단순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새해를 똑 같이 시작하는 건 아니다. 세상은 스물 네 개의 시간대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나라별로 자정 시간이 다르다. 새해 일출을 가장 먼저 보는 곳은 뉴질랜드, 마지막으로 보는 곳은 하와이와 프랑스령 폴리
정확히는 미디어에 바라는게 아니다. 미디어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바라는거다. 돌아보면 ‘23년, 미디어 정책이 없었다. 한거라곤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지상파방송사 사장 경질과 내사람 임용, 그를 위한 KBS수신료 통합징수조치 해제가 다였다. 적어도 미디어 정책이란 면에선 전두환 정부 이래 가장 저급하고 철학적으로 빈곤한게 윤석열 정부다. 같은 보수정부라 해도 박근혜 정부는 소위 미래 먹거리라 할 수 있는 창조경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IT기술과 미디어, 콘텐츠의 융합을 도모하는 시도를 하였다. 맞는 방향이다. 2024년에는 더도 말고 딱 3가지만 바란다. 첫째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채널(PP)의 심의완화다. 넷플릭스 등 OTT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 시청자는 지상파나 TVN이나 넷플릭스나 모두 방송미디어로 인식한다. 콘텐츠를 내보내는 통로로 역할도 같다.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다. 통로에 따라 지상파 방송이라는 이유로 점잖아야하고 이거 안되고 저거 안되는데 넷플릭스는 그냥 모든게 된다. 다같이 기준을 맞춰 완화하자.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시청자도 변하는데 의사결정권자나 시청자단체, 학부모단체의 생각과 눈만 안바뀐다. 스스로 시청자 보호를 위해 큰 역할을 한다고
“드론은 안돼요. 중국 때문에” “아니, 인도 땅 위에 드론을 띄우겠다는데 왜 중국 눈치를 봐야 됩니까?” “우리가 눈치 보는 게 아니라 인도가 눈치 보고 있어서요” 무슨 이야기인가. 내년 여름, 히말라야 사막 퍼포먼스를 앞두고 예술가와 여행사 대표가 주고받은 이야기다. 동양화가, 대북주자, 현대무용가, 피아니스트 등 열 명 가까운 예술가들이 히말라야 여행을 가기로 했다. 2주간의 여행경로 중, 히말라야가 품은 사막이 포함된 것을 알고 예술가들은 흥분했다. 사막을 주제로 즉석 작품을 펼쳐보겠다는 것이다. 동양화가가 대북연주에 맞춰 먹 드로잉 쇼를 펼치면 현대무용가가 이를 춤으로 표현한다는 식. 상상만으로 흥이 넘친 대북주자가 공연 장면을 드론으로 촬영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붕 떴던 분위기가 동력 잃은 드론처럼 내려 앉은 것은 그 지점이다. 여행사 대표가 일언지하에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의 60년 분쟁사를 모르면 이해 못할 상황이었다. 중국과 인도의 싸움은 국경선 때문이다. 국경문제가 왜 생겼는가. 맥마흔 라인 때문이다. 맥마흔이 뭔가? 영국의 외교관 이름이다. 1914년, (인도를 식민지로 갖고 있던)영국과 (중화민국에서 독립상태이던)티베트,…
대학에서 민법학 강의를 들어 본 분들은 라틴어 법 격언인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인(私人) 사이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민사법의 대원칙인 이 말은 사실 법 이전에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상식이라 생각된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 규범을 어김으로 인해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실을 우리는 늘 경험한다. 국제사회에서도 국가간 신뢰의 기초도 약속을 지킴에 있고, 이는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 확신한다. 6.25전쟁이후 남북이 피차간 정전협정위반을 했다고 고발하는 수많은 도발사태에 대한 중립국감독위원회에의 결론은 도긴 개긴, 특히 60-70년대 남북간 휴전협정 위반 회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측 잘못이 더 많다고 중감위에서 판정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아는 우리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18년 꿈같던 남북간 밀월시대 이후 남북이 서로 약속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의 냉랭하고 불안한 상황을 초래한 몇몇 사례를 평가 반성 성찰하면서 새로운 남북관계 복원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다. 사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 북의 주장을…
함흥-흥남은 북한 최대의 보건의료 중심지이다. 함흥에는 고려약학대학과 함흥의학대학, 함흥의학대학병원, 산업의학연구소, 임상의학연구소, 구강병예방원 등 있다. 흥남에는 북한 최대합성의약품 생산기지인 흥남제약공장이 있다. 평양에 이보다 더 많은 의료 시설이 있다. 그럼에도 함흥을 보건의료 중심지라고 하는 것은 최초라는 의미와 최대 규모, 의료기술에 있다. 함흥은 이제마 사상의학이 발원한 전통적 도시이다. 동의학(한의학)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이제마의 사상의학이 함흥이라는 전통적 도시에 영향을 주었다. 해방 후에도 동의학 의술이 이어져 경락이라는 독특한 의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1968년 최초로 생겨난 함흥약학대학은 1990년 함흥고려약학대학으로 개칭했다. ‘고려’에는 동의학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동서의학을 결합한 약학부분 전문가를 양성한다. 함흥의학대학과 함흥의학대학병원은 1946년 생겨난 북한 최초 보건의료인 양성기지이다. 의학전문학교를 개편하여 생겨난 의학대학과 대학병원은 함흥시 회상구역에 있다. 주·야간을 겸하고, 동의학과 신의학을 공부한다. 대학생 임상실습기지로 함흥의학대학병원이 있다. 말단기관인 진료소를 거쳐 각 시,군에서 치료가 어
정치는 아무나 하나 내년은 22대 국회를 새로 구성하는 선거의 해다. 여의도 입성을 꿈꾸는 이들의 한판 승부가 곧 펼쳐진다. 여기 저기서 자신의 정치 비전을 담은 출판기념회를 많이 열고 있다. 많은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각 지역구의 출마 예상 후보들에 대한 언론 보도도 무성하다. 그런데 정치를 꿈꾸는 수많은 예비 정치인들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무작정 정치에 뛰어든다고 다 되는 것일까. 정치는 아무나 막 해도 되는 것일까. 정치에 전혀 경험이 없는 정치 초보 아니 왕초보들의 등장은 우리 사회를 얼마나 잘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요즘 한국 정치 현실에서 보는 풍경이다. 위민과 여민 PQ. 정치지수(political quotient)를 말한다.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IQ(지능지수)가 있고, 최근에는 공감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EQ(감성지수)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치지능은 글로벌 세계 시장과 국내 정치 환경에서 정부와 기업, 시민, 사회 제 분야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 능력이다. 이 PQ를 체화하기 위해서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공부가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그런데 위민(爲民)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잡음의 대부분은 총선이라는 결선 전에 치러야 하는 각 당 내부의 공천 경쟁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는 내부의 권력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 외부의 적에 대한 응전의 과정이었다. 반복되는 역사는 현대 사회에서도 동일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주지하듯이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선거만큼이나 중요하다. 국가의 막대한 예산권에 대한 결정, 정부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검증, 국가기관의 예산 사용에 대한 감사 등, 국회의원의 업무는 중요하고 더 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후보들의 역량과 품성은 범인보다는 조금 더 출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회자되는 각 지역의 국회의원 후보들을 보면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활동했던 경력들은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한 인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단하다. 현직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근무 이력에, 정부 부처의 장관, 차관 출신, 검찰이나 경찰의 고위직도 쉽게 눈에 보인다. 그러나 개인의 경력이 대단하다고…
내년 4월10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들은 저마다 명분과 당위성을 내세우며 공천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만큼 공천 과정에서 잡음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고 있고 유권자 역시 공천 갈등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투표장을 외면하기까지 합니다. 오산시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공천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시장과 국회의원 간 힘겨루기는 고착화 된지 오래입니다. ‘기득권’이라는 패권의식으로 초래된 갈등은 ‘자격논란’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불륜 의혹’으로 오산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 인물도 내년 총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친명(친 이재명)을 자처하며 지난 10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다가오는 22대 총선에서 기꺼이 창과 방패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승리가 절실하다고 말한 그는 한 가정을 파탄으로 이끈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가 그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정치인에게 도덕성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런데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운 추문에 휩싸였던 당사자는 ‘이
이젠 TV시청률이 프로그램 선호도 및 방송채널 접촉율을 온전히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아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와 VOD의 보편적 시청으로 반쪽자리 데이터로 전락했다. 그래도 채널별 전체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동시에 비교할수 있는 유일한 자료임에는 분명하다. ‘17년 대비 ‘23년 지상파를 비롯한 TV총시청율은 68%다. 대략 1/3이 줄었다. (A.C. Nielsen 시청률기준) 매년 감소추세다. 넷플릭스 등 OTT가 생활속에 자리잡아 이추세는 더 가속화될거다. 연간 시청률평균이 지상파는 51%, 종편 72%, CJ계열 채널이 79%로 줄었다. TV시청량 축소의 직격탄을 지상파방송이 대부분 받고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지상파방송 이탈이 두드러진다. 교양 프로그램은 몇년째 변화가 없다.지상파가 주로 방송한다. 2022년과 똑같이 인간극장, 한국인의밥상, 생활의달인, 동네한바퀴, 6시내고향 등이 상위 10위권안에 있다. 순위와 프로그램 포맷등 변화가 없는 장르다. 시청율은 인간극장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1위지만 이보다 세대별 간극이 큰 프로그램도 없다. 세대별 시청률을 보면 M세대 15위, Z세대 23위다. 그럼에도 시청률 1위라는 것은 베이비부머 세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