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발걸음 놓기를 꺼려하는 몇 군데가 있다. 예를 들면 경찰서, 검찰청, 법원 등인데 병원도 그런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무병장수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건강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필자도 얼마 전 수술을 받게 되었다.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술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내키지 않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병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검사를 위한 대기 시간과 돈을 내기 위한 대기 시간도 만만치 않다. 특히나 종합병원에서 의사를 만나 소견을 듣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2-3분을 만나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 이토록 지난한 사전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입원을 허락받고 필요한 치료를 받는다. 겪어보니, 수술과 회복과정이 힘들고 힘들다. 그런데 수술 결과와 회복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지 않다. 회진을 도는 담당 의사는 “잘 되었습니다. 아프면 진통제 달라고 하시구요” 이러고는 가버린다. 물론 의사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입원실에 누워 있으면서 내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생각한다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지난해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에 의해 촉발됐던 김포–서울편입 이슈가 잦아든 모양새다. 서울 인근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사는 곳이 서울로 편입되면 좋은지?” 필자의 우문이었다. 인간은 사익의 동물임을 간과해서다. 사유재산에 관심이 높은 건 당연한데 말이다. 질문 받은 대개는 서울 편입을 적극·강력 찬성했다. 서울로 편입되면 보유 부동산의 가격 상승 등 기타 편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 개인 입장에서 보면, 완전 남 얘기다. 문제는 집권세력에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자, 수도권 민심 전환을 위해 김포-서울편입 공약(公約)을 띄웠던 것.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해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정치집단의 삐뚤어진 이기심 자체였다. 욕구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화폐에 대한 욕구가 발동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음을 꿰뚫은 전술이다. 하지만 계산이 잘못됐다. 김포 민심을 잡으려다 김포가 아닌 수도권 다른 도시 민심을 놓칠 수 있다. 수도권을 잡으려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등을 잃을 수 있다. 그렇다고 서울 민심을 잡는 것도 아니다. 김포-서울편입이 서울시민 개인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플러스 되는 건 없어 보인
우리 주변을 조그만 돌아보면 우리는 혼돈과 무질서의 어딘가에서 허우적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웅장한 생명의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중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분자는 이전에 누구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였고, 또 앞으로도 누군가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을 결코 소멸하지 않고, 지구 상의 생명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다시 어딘가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분자 단위만이 아니라, 내 몸을 꾸려가는 기본 원리도 살아 있는 세상의 모든 나머지와 함께 같은 원리로 돌아가며 함께 호흡한다. 우리는 진정 우주에 속한 존재이며, 이 귀속감을 깨닫는 일은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그 깊이를 더해준다. (프리초프 카프라) 예수가 당면했던 사회 분위기와 부처가 출현하신 시대, 혹은 당면했던 사회 분위기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형식에 치우친 종교적 관행이라든가, 지식층인 성직자 계급이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욕구를 악용하고 왜곡시키는 작태는 엇비슷했지요.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 모든 걸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러’ 오셨고, 광명과 해방의 길이 모든 인간에게…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책 기사의 중요성이 커진다. 유권자가 정책 내용을 기준 삼아 투표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 선거가 되려면 일차적으로 후보와 정당이 유권자의 삶에 밀접한 정책을 제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권자의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정책일수록 좋다. 표심을 끌어당기기에 이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저출생’ 대책 공약을 발표했다. 덕분에 언론은 양당의 저출생 대책 공약을 비교 보도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은 부총리급의 ‘인구부’를, 민주당은 가칭 ‘인구위기대응부’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여야 모두 저출생 정책 총괄 부서를 둔다는 점에선 비슷한 부분이 보인다. 그런데 각론에 들어가 보면 차이가 제법 있다. 여당은 저출생 문제가 부부간 육아 부담 격차, 대‧중소기업의 격차 해소와 연관돼있다고 보았다. 아빠 휴가의 1개월 의무화, 육아 휴직 급여 확대, 유급 자녀 돌봄 휴가 신설 등을 공약으로 냈다. 육아 휴직으로 대책 인력을 고용할 때 지원금을 인상하고 고용보험 미가입자에게도 일‧가정 양립제도를 적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야당은 자산과 소득의 불평
실종(失踪)이라고 하지요.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틀림없이 있기는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찬찬이 들여다보면 실종된 사람 참 많습니다. 절대로 없어져선 안 될 사람이 사라졌을 때는 눈앞이 깜깜합니다. 이를테면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거나, 생각만 해도 존경심이 솟구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동네든 직장이든 그 어디든, 그런 사람 하나쯤 있다는 것을요. 어쩌면 우리사회가 실종되지 않는 까닭도 그런 사람이 있어줘서일 겁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동네에도 있고 직장에도 있는 그런 사람이 왜 거기에는 없는 걸까요. 그 무리와 그 집단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까요. 혹여, 노안(老眼)으로 돋보기안경을 쓰게 된 뒤부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요. 주소도 이름도 필요 없었습니다. 편지 겉봉에 ‘런던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라고만 쓰면 배달이 되었습니다. 바로 윈스턴 처칠입니다. 그는 B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부러움은 처칠이 아니라 그를 대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합니다.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존경할 대
생이 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작은 실수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 한 번의 실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 아무 잘못 없이도 오명을 뒤집어쓸 때 사람은 자신에게서 등 돌린 세상을 견디지 못해 자신이 세상을 등지려 한다. 합리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친구와 가족이라는 이름은 무의미하다. 수렁에 빠진 친구를 돕다 자신까지 빠져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 이 시대의 미덕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은 타인이고,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가져가려 하는 적일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은 고립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지로 내몰린다. 각박한 세상이 견딜 수 없어진다면 세상을 떠나자. 가볍게 짐을 꾸리고 표를 끊자. 비행기든 버스든 현실에서 가장 먼 곳, 지금까지 가본 적이 없는 곳을 향해 무거운 몸을 싣자. 그리고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나자. 홀로 훌훌 떠난 여행길에도 사람은 있다. 여행길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새로운 곳일수록 가게와 화장실의 위치를 모르고, 종종 길을 잃는다. 가끔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주길 바라고, 소지품을 떨어뜨리고도 모르기 일쑤다. 여행이 길어지면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에도 가고 싶고, 지금 저 사람이 마시는 음료가
북측은 한반도에서 통일이나 동족 개념을 지우기로 했다. 지난 1월 15일 있었던 최고 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 등의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등의 표현 역시 헌법 조문에서 삭제할 것을 분명히 했다. 통일, 화해, 동족 개념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도 철거할 것을 언급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유훈의 기존 기조를 전면 부정한 김정은 위원장 나름의 새로운 북조선 구상이다. 한반도 내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분명히 했고, 북은 사회주의 전략국가, 대한민국은 제1적대국이 되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쟁마저 거론된 김정은의 강력한 표현과 강경 방침에 남한 사회는, 특히 통일을 생각해 온 진보 단체들은 충격 그 자체다. 남측에서는 18일 한미일 3국 북핵수석대표들이 모여 북의 행보를 ‘북한판 쇄국정책’으로 비난하면서도 북러 군사 밀착 대응 공조 등, 앞뒤 맞지 않는 혼란스런 모습을 보였다. 미국, UN, 남한에 의한 대북 3중 제재로 북의 쇄국을 강요한 것도 한미일이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북한과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한 것도 미국이요, 북측을 주적으로 몰아
대체로 돈은 인간의 삶에서 4가지 역할을 한다. 그것이 곧 가치수단, 교환수단, 지불수단 그리고 가치 저장 수단이다. 물건과 상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서비스 또한 제공받을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돈 앞에 장사(壯士)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다’라는 우스갯말에서도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머잖아 호모 사피엔스가 그토록 좋아하는 현금이 디지털 화폐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가까운 미래에 현금의 종말을 이끌어갈 주체는 스마트폰도, 신용카드도 아닌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개발하는 중앙은행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현금이 종말을 고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화폐 경쟁에 뛰어들며,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시대가 도래된다는 의미이다. 디지털 화폐는 디지털 방식으로 사용하는 화폐로 금전적 형태로 저장해 거래할 수 있는 통화를 가리킨다. 디지털 화폐에는 전자화폐, 암호화폐,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등이 포함된다. 이것들은 블록
오는 4월 10일은 제22대 총선이 실시된다. 여당은 어떻게든 여소야대의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야당은 다수당을 사수하기 위해 선거전략을 짜기에 여념이 없다. 그동안의 총선과정을 보면 정당의 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하여 지지를 받기보다는, 상대 후보의 약점과 비리를 폭로하든가 모함하는 네거티브전이 횡행했다. 선거는 정책과 능력을 중심으로 대결하여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것이 정당 정치의 기본이다. 그러나 선거철이 다가오면 지역구 공천과정에서 자기편 사람만을 추천하며, 여기서 탈락된 사람들은 다른 당으로 옮겨가는 행태가 반복되어 왔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정치는 정책중심으로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고 지지자에 둘러싸여 독선과 아집으로 이전투구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학연·혈연·지연과 이념에 따라 갈등과 대립으로 귀결되는 파당(派黨)정치로 볼 수 있다. 이 파당정치는 조선시대 당쟁(黨爭)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쟁은 사림정치가 전개되면서 선조 때에 동서분당이 생겼고, 동인에서 다시 나누어진 남인과 북인이 있고, 숙종 때에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이것이 사색당파(四色黨派)인 것이다, 이러한 파당의 초기에는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부패를 방지하는…
영화가 다양하다는 건 영국 켄 로치가 만든 ‘나의 올드 오크’처럼 사회주의적 이상을 지향하는 작품도 있고 ‘위시’같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도 있으며 핀란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로맨틱 코미디같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 ‘사랑은 낙엽을 타고’같은 것도 있는데 한쪽에서는 ‘길위에 김대중’같은 다큐멘터리가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대형 상업영화 작품인 ‘서울의 봄’이나 ‘노량 : 죽음의 바다’가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이런 모양새가 바야흐로 다양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대중의 취향이 어느 쪽으로 쏠릴 것인 가하는, 소비와 수용형태의 문제와는 별개로 일단 판 자체는 아주 잘 깔아 놓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시장이 다양해져야 대중들의 취향도 다양해진다. 그때서야 드디어 한 두 편의 영화가 전체 관객의 거의 전부를 가지고 가는 편중 독점의 현상이 줄어들게 된다. 모든 영화들이 비교적 골고루 관객을 나눠 가지게 된다. 바야흐로 시장이 안정될 수 있는 모토이다. 요즘 들어 벼라 별 정당이 다 속출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제3지대가 만들어질 모양이며 정치도 영화가 추구하는 것 마냥 다양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다들 비슷비슷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