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휘휘 돌아칠 때마다 살짝 얼었다 다시 녹아내리기를 반복하며 단내 폴폴 만들어내다 보면 기어이 하얀 분을 뒤집어쓰고 먹음직스럽게 제 모양 뽐내곤 하는 곶감이 있다. 처마 밑에 정갈하게 매달린 채 이제 막 하얀 분 뒤집어쓰기 시작하는 곶감. 밤늦게 학교숙제 하다말고 마루건너 잠 쫓으러 나갔다가 한 알 빼먹고, 마당에서 문득 올려다 본 그 달빛에 취해 또 하나 빼먹고, 아무도 없는 집이 심심해서 또 하나 빼먹다가 기어이 두 알 남은 곶감걸이를 보고 “오늘은 내 기어이 이 곶감귀신을 잡아야겠지?” 라며 찡긋 윙크를 날리시던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그 곶감. 곶감이 가지런히 담겨져 있다. 설날 선물이라며 전해온 박스 안에 마치, 추억처럼 한 알 한 알 말갛게 웃는 있는 그 곶감들의 미소로 인하여 환하게 피어오르는 지난 이야기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이 텁텁해지도록 떫고 불편한 맛의 땡감나무만 있었던 어린 날의 우리 집. 간식이 따로 없었던 그 시절, 왜 우리 집엔 단감나무가 없냐고 불만을 털어놓을 때마다 특단의 조치로 엄마는 삭힌 감을 만들어주셨다. 떫은 땡감을 따서 소금물로 하루정도 삭히고 나면 아삭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그 어떤 단감보다도 맛있는 삭힌 감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 소국이 어우러진 푸짐한 꽃바구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뭐지?’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뜬금없이 우리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이. 친구를 반기듯 꽃바구니를 집안으로 들여 차근차근 들여다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짙은 향이 나는 잘디잔 소국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군데군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눈송이 같은 꽃봉오리가 여리디여린 미소를 띠고. 날개처럼 울타리를 치고 있는 초록의 잎사귀들. 알록달록한 소국의 꽃망울은 빨갛고 작은 장미를 품은 채 잔잔한 위로를 보내오듯 끊임없이 재잘재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소국 좋아하는 나를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친구의 마음처럼, 촉촉한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들처럼 말이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아주 특별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서히 익어가는 인생처럼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또 다시 잘 이어가다가도 각자의 풍파에 조난을 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옛말에 ‘사이좋은 벗끼리 마음을 합치면 단단한 쇠도 자를 수 있고, 우정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와 같다’라고 했는데 그 사이좋은 친구란 참으로 갖기 어
영월 동강을 끼고 걷다 올려다 본 깎아지른 바위의 민낯이 영락없는 도깨비 얼굴이다. 도깨비 뿔 삐딱하게 박은 채 우글쭈글하게 인상을 찡그린 모습이 마치 강줄기를 호령하듯 쩌렁쩌렁 호탕한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도 보여 엉겁결에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말았다. ‘비록 코로나19의 기세에 눌려 도망쳐왔지만 어쨌든 힘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제발 살맛나게 해주세요.’라며 빌고 또 빌어본다. 도깨비를 떠올린 순간 나는 왜 겁부터 났을까, 아니 왜 무언가를 빌어볼 생각을 했을까. 그건 아마도 어린 날의 경험과도 관계가 있을 듯 보인다. 억지떼라도 쓰는 날이면 어른들은 여지없이 ‘도깨비가 잡아간다.’라며 겁을 주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도깨비 목소리는 늘 무섭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들려주었으니 도깨비라는 존재가 무서웠을 수밖에. 또한 동화 속 도깨비는 말만 잘하면 도깨비방망이로 대궐 같은 집도 지어주고 보물도 만들어주고 부자도 되게 해주고 나쁜 사람 벌까지 줄 수 있었으니, 나에게 도깨비는 어쩌면 두려우면서도 큰 힘을 가져 신비스러운 이중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신의 것도 아니고 인간의 것도 아
찬바람 휘휘 돌아치는 겨울이 오면 문득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따뜻해지는 단어가 있다. 따끈따끈한 온기에 언 손 살살 녹아내리는 그 순간의 포근함 같은 ‘아랫목’이라는 단어. 요즘은 보다 발달한 다양한 형태의 난방으로 딱히 아랫목 윗목을 구분하진 않지만 그 옛날 온돌방의 ‘아랫목’이란 아궁이 가까운 쪽의 방바닥을 이르는 말이다. 연탄을 때는 아궁이든 군불 때는 재래식 아궁이든 아궁이 가까운 쪽의 방바닥이 가장 먼저 따뜻해지고 오래도록 식지 않아 추운 겨울이면 가족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겨울이면 더더욱 비중이 높아지는 아랫목의 역할은 참으로 다양했던 것 같다. 밤늦게 귀가하시는 아버지 고봉밥을 담요에 돌돌 말아 이불 밑에 묻어 둔다거나, 감기로 콜록대는 막내 동생 담요 깔아 눕히고 병간호할 때는 특급 병실로 쓰인다거나, 명절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혜를 만들기 위해 고두밥에 엿기름 섞어 몇 시간이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묻어 발효시키는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등등. 그 밖에도 수많은 아랫목의 역할 중에 가장 큰 역할은 가족들의 사랑을 거듭 확인하는 ‘사랑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이 많았던 우리 집은 겨울이면 특히 한 방에서 옹기종기 잠을 잘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저 물건들. 도대체 얼마나 내 집에서 기거한 물건들인지 하나같이 몰골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수십 년 모아두었던 다이어리, 아이들 유치원에서 받은 미술상에 그 작품까지, 더하여 삐뚤빼뚤 써 둔 일기, 태권도 도복에 에어컨 실외기까지. 언젠가 쓸 것 같아 칸칸이 채워 두었던 지금은 쓰레기로 남겨진 물건, 물건, 물건들의 배출. 며칠 째 옷이며 책이며 가구 나부랭이들이 들려 나가고 있는 이곳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거실 한 쪽 벽을 가득 메운 책들이 가장 먼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주객이 전도된 이 현상. 처음엔 사람이 주인이었던 이 집이 서서히 물건들의 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니. 이건 이래서 필요하고 저건 저래서 필요하고 갖가지 이유를 달며 사들이거나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마침내 몰아낼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온 가족이 동원된 버리는 작업은 어쩌면 설렘이었다. 마치 비밀의 상자처럼 쌓아두었던 박스가 하나하나씩 열릴 때마다 우르르 쏟아지는 추억들. 하나같이 사연을 달고 나오는 물건들의 중요도에 따라 남길 물건과 버려야할 물건을 분류하다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
“얘들아~ 오지마라.” “코로나 끝나거든 온나. 사랑한다” 며칠 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본 가슴 저릿한 어르신들의 영상이 있다. 코로나 19로 고향 못 오는 자녀들의 불편한 마음을 보듬어 주고자 의성군에서 홀로 계신 어르신들이 찍은 ‘귀향 자재’ 동영상 편지였다. 이는 생활지원사들이 각자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휴대폰으로 찍었다고 했다. 미리 준비한 원고도 없고 촬영 장소도 어르신들이 생활하고 있는 집 안방이나 마루, 마당 등으로 고향 냄새가 풀풀 나는 영상이었다. 무료한 일과 속에서 명절만 기다리던 어르신들께는 보고 싶은 자식 안 보기로 한 건 여간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의 재 확산으로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를 거쳐야 했던 수도권의 경우만 보더라도 마땅한 조치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왠지 죄송하고 머쓱한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가려해도 불안하고 안 가려해도 죄스러운 2020년 현실 속 한가위가 어르신들께는 한없이 적막할 듯 보인다. 현실과 달리 홈쇼핑 화면 속 한가위는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화려하다. ‘한가위는 가족과 함께 하세요’ ‘못 가는 한가위 선물로 하세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지글지글 구워대는 맛
가만히 실눈을 뜨고 보았다. 이른 새벽, 그 녀석이 얼핏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녀석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다 나오는 것 같았다. 주방에 들러 물을 먹는가 싶더니 설거지 해 둔 빈 그릇 하나하나 냄새를 맡아 보는가 하더니 화장실에 들러 앙증맞은 자세로 소변을 보았다. 곧이어 안방 침대로 올라 배를 뒤집고 한참을 뒹굴 거리다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이제는 공을 물고 소파 계단으로 올라가서는 굴리고 물어오고 굴리고 물어오는 행위를 연거푸 해댔다.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났는지 중간 중간 기합을 넣기도 하며 엉덩이를 쳐든 그 자세를 보다말고 나도 모르게 푸하하,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우리 집 강아지는 그렇게 혼자놀이를 이미 신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나는 도무지 혼자놀이에 재미를 붙일 수가 없었다. 그저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힐 뿐,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통만 터질 뿐이다. 연이어 쏘아대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순번이 찍힌 안전 안내 문자가 마치 총알처럼 쩌릿쩌릿 와 박혔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돌입으로 출근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지금의 현실이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 아닐까도 싶
연거푸 ‘전국 장맛비 계속’이라는 기상예보가 이어졌다. 눅눅한 공간은 때로 마음을 녹녹하게 만들 때가 있다. 동이 트자 잠시 하늘이 개는 것 같아 장마철 틈새 공략으로 강아지 ‘해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촉촉하게 비를 머금은 골목에선 연거푸 쌉싸름한 냄새가 배어나왔다. 누군가의 손길이 오갔을 풀, 꽃, 나무, 오래된 건물마다의 냄새들로 채워진 길. 드문드문 그 길을 따라 걸어 다니는 사람들, 마치 흑백사진 속 풍경처럼 정갈하게 보였다. 한참을 걸어 아파트를 끼고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아니, 이렇게 예쁘단 말이야!’ 새로 돋은 줄기마다 풍성한 잎을 매달고 싱싱하게 웃고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봄이 채 시작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공원의 조경수들을 가지치기 하던 때가 말이다. 과감한 가지치기로 하나같이 헐벗은 모습에 ‘저렇게까지 잘라야 하나’ 하며 안쓰럽기까지 했었는데. 잘려나간 생체기 위로 풋풋한 새순을 내밀고 또 다른 얼굴들을 선보이다니. 다닥다닥 엉켜있는 명자나무 무리는 참새 가족을 품었는지 작은 참새들이 연신 들락거렸다. 저 나무들에게는 서로 햇살을 더 받겠다며 뒤엉켜 자란 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낸 것이 어쩌면 다시 한 번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집이다. 비어 있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처마 밑으로 앙증맞은 집 한 채가 눈에 보였다. 이럴 수가, 요즘 보기 드물다는 제비 가족이, 어머니 떠나시고 홀로 남아있던 그 집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빈 집 가득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로 채우며 제비 한 쌍 연거푸 드나들고 있었다. 문지방에 앉아 왁자한 제비가족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온 가족이 다시 모인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요즘은 제비가 살기 힘든 세상이라 했다. 처마가 있는 집도 잘 없거니와 먹이사냥이 용이한 논을 끼고 집을 마련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라니. 요즘같이 험난한 세상에, 남향 그것도 낮은 처마에 어미 아비 비상 대기 할 전깃줄까지 나란히 준비된 집을 턱하니 구하다니. 기특한 고 녀석들, 쉼 없이 먹이를 잡아다 차례차례 새끼 제비에게 먹이는가 하면 새끼가 엉덩이를 쳐들 때마다 하얀 똥 하나씩 받아 물고 나가기도 했다. 바쁜 어미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 아비 들 때마다 입만 벌리고 밥 달라 졸라대는 새끼제비 보다말고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새끼일 때는 도무지 모를 일이다. 나도 새끼일 때는 몰랐었다. 어미 아비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 오는지, 집안은 왜
오늘은 잔뜩 흐린 잿빛 하늘이다. 모처럼 여유 있는 일요일 아침. 딸아이가 서둘러 햄, 어묵, 우엉, 시금치, 계란 지단까지 붙여 내더니, 하얀 밥을 큼지막한 볼에 퍼 담고 참기름, 볶은 깨, 소금, 식초 몇 방울로 간을 한다. 웬일이냐는 내 말에 딸아이는 “잿빛 하늘의 주말이면 종종 소환하시는 엄마 표 김밥 파티!” 하며 깔깔깔 웃어젖힌다. 곧이어 가족 모두가 식탁에 앉아 각자의 김밥을 말며, 먹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묵은 김치를 넣은 김밥, 아들은 깻잎과 참치가 들어간 김밥, 딸아이는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 걸 좋아했다. 남편은 심심하고 깔끔해서 기본 김밥이 좋다고 했다. 각자의 김밥이 최고라며 서로 먹어보라 떠들며 품평회를 하다 보면 영락없이 과식을 하게 된다. 김밥을 싸는 일은 어쩌면 나에게 추억을 소환해내는 어떤 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이 그리운 날, 느닷없이 허전한 날, 엄마, 어머니가 보고 싶은 날도 김밥을 싸곤 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첫 소풍을 가던 날, 어머니께서 싸 주신 그 김밥의 첫 맛은 지금도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간간하게 간을 한 하얀 밥에 빨갛게 볶은 멸치를 한 줄 넉넉하게 넣고 돌돌 말아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