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은 내가 30년 철도기관사생활을 끝내고 마지막 열차를 운행하는 날이었다. 이제 연말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유급휴일이다. 퇴근하며 주변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데 후배인 모팀장이 잔뜩 미안한 얼굴로 말을 건넨다. “형님, 저.. 내일 혹시 승무가능하십니까?” 사연인즉 며칠전 사무소에 코로나환자가 5명이나 발생하여 인력이 태부족이란다. “아무리 짜내도 탈 사람이 형님밖에 없습니다” 애원하는 후배의 말에 차라리 웃으며 답했다. “그래, 퇴직하면 실컷 놀건데 뭐..”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저녁, 나는 부산신항만으로 출근해 33량 컨테이너열차를 경부선으로 끌고 나갔다. 등뒤에서 쿵쿵거리는 디젤기관차의 엔진소리가 정겹다. 기관차위에서 흰머리소년이 될 때까지 보낸 지난 세월처럼 남성현터널 주변에는 흰 눈이 쌓여있다.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역사만큼 철도도 격변의 시기였다. 124년의 철도역사를 거슬러 100년 동안 바뀐 것보다 최근 20년 동안 바뀐게 더 크다고 할 정도였으니..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한 달에 온전한 휴일 하루를 구경하기 힘들었다. 군대막사 같은 곳에서 잠시 눈 붙이고 근무 나가기 일쑤였던 처지에서 지금은 매월 8~10일의 휴일이 보장된다. 고속철도가 씽씽 달리고 낡은 선로도 새 노선으로 바뀌었으니 천지개벽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런 철도를 등지고 나오는 마음이 천근이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철도구조조정 공세가 드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내내 철도민영화에 맞서 싸우다 나가는데 다시 차기 철도공사 사장에 분할민영화론의 선두주자나 전임 경찰청장출신까지 거론된다고 한다. 후배들은 또 얼마나 길바닥 위에서 외쳐야할 것인지 짐작마저 아득하다. 인사가 실제 그리된다면 정부는 철도노동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진배없다. 그래서 더욱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정부는 화물연대파업을 진압하면서 노동자들과 전쟁을 치르면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계산법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디 철도뿐이랴? 국회 앞에서는 이 엄동설한에 노동법2조,3조 개정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단식이 27일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이 파업을 주도한 하청노동자 5명에 제기한 손배청구액수 470억원은 시급1만원 남짓인 하청노동자 약1900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노동법2조 개정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함이고 3조 개정은 쟁의행위로 인한 손배청구를 제한하기 위한 방편이다. 윤석열정부는 한사코 이 법의 개정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들은 법인세 신고 대상 90만 개중 상위 0.01%에 해당하는 103개 법인의 법인세를 3% 깎아주는데는 진심인 반면 대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제압해야 지지율이 오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울한 세밑이다. 한해 내내 대한민국은 정부가 나서서 계급계층간 갈등을 부추겨왔다. 검찰공화국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북한 때리기와 노동자 때리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내년에도 갈등은 이어질 것이다. 희망은 한 가지 뿐이다. 12월 북극한파와 기록적 폭설이 한반도를 휩쓸지만 광화문을 위시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행진이 주말마다 이어진다. 이태원역에는 추모집회가 불을 밝힌다.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고 토머스제퍼슨이 말했듯이 거리의 저항이 얼마나 확대되는가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좌우될 것이다. 시간 많은 퇴직백수 주말마다 할 일이 생겼다.
경기도 내 공공기관의 부정채용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는 채용실태 특별감사에서는 매년 상당수의 사례가 계속 적발되는 상황이다. 민관을 불문하고 채용은 철저하게 공평무사(公平無私)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채용은 더욱 엄정해야 마땅하다. 수년래 이 나라가 입시부정, 채용 비리 문제로 얼마나 시끄러웠나. 공공기관의 부정채용은 철저한 관리와 감시 감독을 통해 일소하는 게 옳다. 경기도가 지난 7월 18일~8월 말까지 경기연구원 등 도내 20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채용실태 특정감사를 벌인 결과 19개 기관에서 총 25건의 부정행위를 적발했다. 기관경고 1건을 포함해 행정상 처분 25건, 7건 13명에 대해 신분상 처분이 이뤄졌다. 도의 채용실태 특별감사는 지난 2017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는데 최근 현..
1964년,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절해의 고도 로벤섬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은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으며, 변기로 사용되는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만이 감방 구석에 있었을 뿐이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 번 허락되었고 교도관들은 그의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강제노역 그리고 고문을 가하는 등 폭력은 일상적으로 가해졌다. 사회에서 변호사로서 받았던 인간의 품격은 상실된 지 오래되었다. 그가 감옥에 갇히자 가족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지역으로 쫓겨났다. 수감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장례식 참석은 허락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결혼한 큰딸이 자신의 아기를 데리고 면회를 와서 아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다. 그때 그가 손자에게 지어준 이름이 ‘아즈위(Azwie)’였다. ‘희망’이라는 글자였다. 로벤섬에서의 27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희망없이 살아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들에게 희망이 무엇인지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며 공포에 떨던 백인들에게도 오히려 흑인과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의 이름을 ‘마디바 만델라(Madiba Mandela)’라고 불렀다. 존경하는 어른 만델라라는 의미이다. 그리스 신화에 최초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판도라는 지혜와 미모를 가진 남부럽지 않은 존재였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는 그녀에게 절대로 열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상자 하나를 주었다. 어느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고 말았다. 그 순간 상자 안에 있었던 온갖 욕심, 질투, 시기, 각종 질병 등이 쏟아져 나와 세상에 퍼졌다. 깜짝 놀란 판도라는 급히 상자를 닫았으나 이미 전부 빠져나온 뒤였다. 평화롭던 세상은 금세 험악해지고 갈등투성이로 변했다. 그러나 상자 안에는 ‘희망’이 빠져나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세상의 온갖 악에 괴롭힘을 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만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2022년도 마무리되어 간다. 어느 해치고 힘들지 않은 해가 없었다지만 올해는 유난히 힘이 많이 들었다. 희망적이기보다는 실망스러운 한 해였다. 연일 오르는 물가와 연료비 인상, 수출 부진 등 경제난 소식에 연말의 강추위 압박이 더욱더 거세다. 가장 힘든 일은 아무래도 정치의 부재로 인한 결과였다.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갈라진 틈새를 메우고 화합시켜 통합을 이루는 것이 정치이건만 모두의 고개를 가로젓게 했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할 이유는 2023년이 오기 때문이다. 신년은 나아질 것이라는, 국가 사회도, 내 생활도 좋게 나아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정치가 복원되어 역할을 다하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말이다.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위대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아즈위’를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미네소타주가 영하 48도라는 뉴스가 전해진다.. 미네소타라면 미시간 5대호 옆에 붙어 있는 미국 최북단 도시이다. 워낙 추운 곳이긴 해도 영하 48도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 ‘투모로우’가 현실화됐다는 얘기다. 물론 ‘투모로우’가 기후변화에 의한 재난을 그린 내용만은 아니다. 내 기억엔 이 영화는 부상(父性)의 가치,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메릴랜드 워싱턴D.C. 밑으로 밑으로 피난을 가려할 때 아버지 잭(데니스 퀘이드)은 아들 샘(제니크 질렌할)을 구하기 위해 뉴욕주의 뉴욕인지(컬럼비아 대학이었는지) 매사츄세츠의 보스턴인지(보스턴 대학이었는지)로, 그러니까 북으로 북으로 향한다는 이야기이다. 잭의 아내인 의사 루시(셀라 워드)는 그의 북상이 죽으러 가는 길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남편을 떠나보낸다. 아들을 꼭 구해 올 것을 믿는다면서. (가서 우리 아들 구해와!, 하는 것 같았다.) 난 그 옛날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 장면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당시 2004년은 9·11 테러 여파가 심했을 때였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이 '얼척(어처구니)없는' 상업재난영화를 통해 놀랍게도 '아들을 구하는 아버지=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지도자(대통령)'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진짜 아버지. 진짜 지도자란 어때야 하는 가를. 한 마디로 부시 대통령을 ‘돌려 까기’로 비판한 셈이다. 우리가 주로 할리우드 영화만을 편향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 때(지금은 넷플릭스 같은 OTT 때문에 아이슬란드 영화, 남아공 영화, 베트남 영화, 아르헨티나 영화 등등을 그들의 자국어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에조차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정치적 올바름을 지닌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이래저래 문제가 많은 대형 자본주의 국가이긴 해도(예컨대 트럼프 같은 인물을 배출한 나라이긴 해도) 미국이 200년 넘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숙성시켜 온 나라인 만큼 자본만 우대하는 내용의 영화보다는 그 자본이 낮은 계급에게도 나뉘어질 수 있는 사회에 대해서도 그리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 온 덕이다. 당연히 지배계급, 지배층의 도덕성과 그 ‘지배계급 다움’에 대해 얘기하는, 곧 우파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것이야 말로 바로 할리우드의 진짜 힘이다. 랜달 월레스 감독이 만든 2002년 영화 ‘위 워 솔저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미군이 최초로 남베트남에 지상군을 파견, 첫 전투를 치르는 이야기다. 1965년 북베트남 정규군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 남측 게릴라(흔히 베트콩이라 불리는)와 벌어진 전투였고(아이드랑 계곡 전투) 미국이 서서히 베트남 전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 미군은 할 무어 중령(멜 깁슨)까지 395명, 베트콩은 2천명에 육박했지만 서로의 일전을 제대로 겨룬 전투였다. 영화에서도 할 무어와 베트콩의 지휘관은 서로의 전투 실력, 병력 운영 및 전술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한다. 서로는 서로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깨달으며 이 전쟁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닫는다. 영화는 양측 지휘관에 대한 그 톤앤매너가 특출한 작품이었다. 국가 간 전쟁에서든 삶의 전반적 영역에서든 ‘아버지 같은 지휘관=지도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역시 당시의 부시 대통령을 ‘돌려 까기’하고 있음을 드러낸 영화였다. 할 무어 중령이 전투에 투입되기 직전 연병장에 병사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하는 대목은 이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국민의 힘 유승민 의원이 지난 대선 경선 때 써먹어서 어떤 이들은 속으로 ‘기특하다’고까지 생각했었다고 한다. 보좌관이 나쁘지 않군, 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할 무어는 연설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여러분보다 전장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딜 것이고 여러분 보다 전장에서 가장 나중에 발을 뗄 것이다.” 지도자의 연설은 이쯤이 돼야 한다. 육화(肉化)된, 체화된 이념과 정신이 있어야 꽤나 감동스러운 어휘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가 있는 법이다. 이런 영화들을 생각하면 작금의 한국은 기가 막힌 일이 한둘이 아니다. 이태원에서 애들이 안타깝게 참사를 당한 걸 가지고도 ‘애들 시체팔이 해서 돈벌려고 한다’는 극우 파시스트들의 난동에 가까운 시위가 이어진다. 게다가 그들을 은근히 지원하는 지도층, 지도자 부부가 득실거린다. 미국이 현재 실제로 영하 48도이긴 해도 한국은 체감 영하 48도인 곳이라는 얘기다. 그게 더 춥다. 시쳇말로 피타고라스의 명언이 그런 게 있다는 것처럼 현재 한국은 답이 없는 나라가 됐다. 할 무어처럼 잘나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할 무어처럼 하바드 석사 출신의 지적인 지휘관이나 지도자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이다” 같은 말은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흔히들 보그체(패션잡지 보그의 기사가 영어가 뒤섞여 쓰일 때가 많아 생긴 신조어)라고 하는데 신세대들은 아예 ‘보그병신체’라 부르는 모양이다. 일국의 지도자가 이런 비아냥을 들으면 되겠는가. 아 춥다. 정말 추운 나라이다. 차라리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되는 것이 낫겠다. 웬 ‘보그병신체’ 같은 글이란 말인가.
수원시의회가 지난 20일 열린 제372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3조 508억원 규모의 내년도 본예산을 의결했다. 시가 제출한 원안에서 212억원이 삭감된 것이다. 삭감 내용은 주민참여 예산 48억여원 중 41억원, 지역화폐 발행 지원 예산 216억원 중 40억원, 군공항 이전을 위한 연구용역비와 소음피해 및 주민건강 영향 실태조사비도 전액이다. 손바닥 정원 프로젝트 예산도 13억 3500만원 중 70% 상당을 삭감했다. 이 가운데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킴으로써 지방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예산 사용에 대한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주민은 누구나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사항을 해소하거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사업을 제안할 수 있다. 예산 편성과정에서 주민의 참여를 법적·제..
TV시청률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특히 2022년은 더 줄었다. (시청률은 닐슨 자료이며 기간은 1/1 – 12/10까지의 년간 집계치임) TV 가구시청률의 합이 2017년 40% 에서 5년 후인 2022년 32% 로 줄었다. 동기간 지상파는 16.9% 에서 10.7%로 대폭 줄었지만 종편, CJ계열 채널 등 비지상파는 23.2%에서 21.3%로 약간 감소되었다. 지상파방송의 세대별 시청률을 보면 이런 현상의 원인이 뭐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22년 현재 개인시청률 기준 베이비부머 세대는 7.3%, X세대 4.6%, M세대 1.9%, Z세대는 0.86% 다. 베이비부모 세대가 M세대의 3.5 배 이상 Z세대의 8.5 배의 시청량을 보이고 있다. TV는 특히 지상파는 중장년 세대의 놀이터다. 신문은 말할 것 없고 TV도 잘 안 보는 M, Z세대가 성장한 10년 후 미디어 업계의 모습..
1980년대 한국.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낭만과 인정은 살아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갈망으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이들을 저지하는 경찰 기동대는 살벌했다. 사이렌이 울리고 돌과 화염병이 날아가고... 모진 풍파 속에서도 대한민국 청년들은 꿋꿋하게 그들의 젊음을 만끽했다. 대학가요제가 열리고 청바지에 통기타를 맨 선수들이 출전해 멋들어진 노래를 하고, 수상작들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이런 여유 덕에 우리는 그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것이 아닐까. 그 추억 속에 ‘모모’가 있다. 가수 김만준 씨가 불러 대히트한 곡.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수 없다는(...)” ‘모모’는 모하메드의 애칭 발랄하고 경쾌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우리는 그저 흥얼거렸다.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결코 간단치 않다. ‘모모(Momo)’. 모하메드의 애칭이다. 열 네 살의 알제리계 소년. 그는 파리 20구 벨빌(Belleville)에 있는 로자 아줌마네 집 7층에 산다. 이 아줌마는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해 매춘부 생활을 했다. 그녀는 젊은 동료가 버린 모모를 애정으로 돌봐준다. 죽을병이 들었지만 병원 가길 거부한다. 영리하고 예의바른 모모는 그녀를 열심히 간호한다. 소설 ‘자기앞의 생(La vie devant soi)’의 줄거리다. 작가 에밀 아자르(Emile Ajar)는 노후와 죽음의 공포를 사랑의 공동체가 유쾌하게 격퇴하는 훈훈한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1975년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 공쿠르상을 받은 ‘자기앞의 생.’ 프랑스 아카데미는 그해 이 상의 주인공 에밀 아자르를 호명했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는 술렁였다. 무슨 일이지? 에밀 아자르는 도대체 누구지? 나흘째 되던 날, 수상자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상을 받지 않겠다는 통보만 했다. 아카데미 위원회는 “공쿠르는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상이다. 만약 이 상을 원치 않는다면 아자르씨가 상금을 다른 작품에 줄 자유가 있다”라고 반박했다. 작가들의 로망, 공쿠르상을 거절한 에밀 아자르 왜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일까? 에밀 아자르는 다름 아닌 로맹 가리(Romain Gary)였기 때문이다. 1956년 ‘하늘의 뿌리(Les Racines du Ciel)’로 이미 공쿠르상을 받은 가리. 이 상은 한 번 타면 더 이상 탈 수 없는 규칙을 깨고 가명으로 또 다시 응모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프랑스 아카데미는 공쿠르상을 그에게 수여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자 가리는 그만 당황했다.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것을 밝히면 얼마나 큰 비난이 쏟아질 것인가? 여변호사 지젤 알리미는 가리가 언론의 신랄한 비판을 피하고 조용히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 상을 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가리는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사촌동생 폴 파블로비치를 에밀 아자르로 분장시켜 언론과 인터뷰를 시켰다. 기발하고 파격적인 로맹 가리. 일주일에 60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쓴 천재 작가였다. 그가 공쿠르상을 받은 두 작품 모두 1주일 만에 쓴 것이다. 신이 인도해 글을 썼다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는 작가 외에 비행사, 레지스탕스, 외교관, 엽색가였고 드라마 작가에 영화감독까지 다재다능했다. 영화촬영 중 당시 최고의 미국배우 진 세버그(Jean Seberg)와 결혼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늙는 게 싫어 1980년 12월 권총자살을 함으로써 또 한 번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그의 삶은 불가사의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로맹 가리는 프랑스 이방인 프랑스를 쥐락펴락했건 가리. 그는 리투아니아 태생이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이 소년은 러시아 소극단 배우였던 어머니 손을 잡고 1927년 프랑스 니스(Nice)에 도착했다. 이들은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을 피해 폴란드로 이주했지만, 그곳의 유대인 박해가 극에 달하자 이곳으로 피난 왔다. 이 모자(母子)는 니스의 셰익스피어 거리에 있는 메르몽 여관에 한 동안 머물다 소나무 숲 해안가 마을 로크부륀(Roquebrune)에 정착했다. 어머니 미나는 로맹을 매우 좋아했고 그를 위해 뭐든 했다. 그녀는 네그레스코(Negresco) 호텔 매점에서 향수, 라이타 등 잡동사니를 팔았다. 미나는 아들에게 프랑스 문화를 열심히 가르쳤다. 로맹은 매년 열리는 니스의 카니발을 좋아했다. 이러한 소년기를 로맹은 그의 자전적 소설 ‘동틀녘 약속(La promesse de l'Aube)’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욕망과 가난이 어우러지고 어머니와 아들의 진한 사랑이 그려져 있다. 니스, 로맹 가리의 오아시스 ‘하얀 개’에서 그는 “나의 사랑하는 도시 니스는 내 고향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을 했다. 로맹은 이곳에서 초·중학교를 다녔고 프랑스 국적을 받았다. 그 후 엑상프로방스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파리로 떠나 아카데미 회원이 됐고 프랑스 대사가 됐다. 그는 “나는 프랑스 피가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내 예술적 영감에는 항상 프랑스가 있다”라는 말을 했다. 프랑스 중에서도 로맹이 예술적 영감을 가장 많이 받은 니스. 그는 이곳을 잊지 못하고 자주 찾았다. ‘자기앞의 생’에서 그는 니스를 숲으로 둘러싸인 바닷가의 오아시스로 표현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우정에 눈뜨고 사춘기를 겪으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곳, 이곳이 바로 지중해 곁 니스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최고의 친구는 지중해였고, 죽으면 화장해 지중해에 뿌려 달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런 로맹 가리를 니스 시도 사랑했다. 가리 산책로를 만들어 로맹 가리에게 헌정했고, 니스의 전통 도서관 이름을 로맹 가리로 바꿨다. 그리고 자유로운 프랑스의 영웅, 외교관, 사랑스런 인간, 작가 등 최고의 이름들을 붙여줬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자기앞의 생’의 훈훈한 관계를 다시 한 번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니스는 파가니니, 마티스, 니체 등 수 많은 인물이 머물다 간 곳이기도 하다. 예술가, 철학자들이 사랑한 이곳, 프랑스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코트 다쥐르(Cote d'Azur: 지중해 연안)에 펼쳐져 일 년 내내 햇빛이 반짝인다. 따뜻한 기온과 포물선의 도시 니스는 해수욕장이 너무 아름다워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하지만 이 광경이 니스의 전부는 아니다. 언덕을 굽이굽이 넘어 계속되는 영국인 산책로. 니스 한 가운데의 파이옹 산책로(Promenade du Paillon)에서 몽 알방(Mont Alban)까지 이어지는 42킬로 해안길. 거기서 만나는 지중해의 희귀한 군락지들. 대장관이다. 콜린 뒤 샤토(Colline du Château)에서 바라본 파노라마와 도시 중앙의 녹색정원은 어떠한가. 푸른 지중해를 제압하여 독특한 장면들을 연출하지 않던가. 서쪽 해안가에 있는 투르 벨랑다(Tour Bellanda). 연인들이 누워 석양을 바라보기에 최상이다. 거기에 기암괴석들이 만드는 풍경, 19세기의 고전적 별장들, 코코비치(Coco Beach)의 경이로운 해안선.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송곳니로 물어뜯었다. 아니, 송곳니를 깊숙이 박고 나머지 이빨로 물어뜯었다는 게 적확한 표현이다. 물어뜯는 이빨의 무작스러움은 악다문 턱뼈와 흔들어대는 모가지 근육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으르렁거릴 때마다 까뒤집어진 잇몸 사이로 침이 번들거렸다. 번들거리는 침에서 개 사료 냄새가 났다. 비릿한 동물성 사료 냄새에 비위가 뒤틀렸다. 도사견과 세퍼드의 잡종쯤일까. 대가리를 흔들며 물어뜯을 때마다 덩치 큰 개의 살집이 덩달아 출렁거렸다. 개는 두 개의 눈을 송곳니처럼 내 얼굴에 박고 놓아주지 않았다. 타깃이 된 나의 얼굴이 개의 눈동자에 고스란히 비쳤다.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땅끝 마을에는 드문 눈이다. 삼년 만에 내리는 함박눈이라고 했다. 첫눈치고는 소복하여서 해남 천지가 함박꽃이다. 눈꽃을 만끽하려 나섰다가 개를 만났다. 딸기농사..
분단 이후 최초로 3·1절 행사를 남북 민간단체에서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2003년 3월 1일 북측대표단 105명이 방한하여 워커힐 제이드가든에서 역사적인 3.1민족대회가 열렸었다. 이때 있었던 재미있고 의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회담, 공동행사 등이 자주 열렸다. 이때 남북간 만남의 장에는 항상 통일부와 국정원, 북에서는 통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행사의 지원을 위해 참석하였다.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 함께 적용되는 남북관계의 법질서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국방백서에 ‘주적’을 넣는다. 만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첫날의 3·1민족대회 행사도 의미 있었고, 이튿날 일요일에는 북한종교인들이 우리의 종교시설에서 남북이 함께 종교의식을 치렀다. 불교는 봉은사, 천주교는..
올 한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혹한기 속에서 모두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침체의 경계선에 서 있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언급처럼 내년에도 전망은 밝지 않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오는 2027년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목표로, 내년에 과감한 규제 혁신 등을 통한 수출‧투자 드라이브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연금‧노동‧교육을 포함 금융, 서비스 등 5대 개혁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전환 시대에 특히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우리 미래의 사활이 걸린 발등의 불이다. 최근 정부는 각 부문별로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시기 등에서 긴장의 끈을 더 바짝 조여야 한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연금개혁안을 내년 10월 확정해 현 정부 임기말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