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의 최대 현안은 교착상태에 빠진 미국과의 관세협상이다. 외환보유고 80%에 해당하는 3500억 달러(487조원) 대미투자 협상이 최대 난관이다.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 중인 이재명 대통령도 전액 현금 출자를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을 바꾸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만나 "최근 미일 간 대미 투자 패키지 합의가 있었지만 한국은 경제 규모, 외환시장 및 인프라 등 측면에서 일본과 크게 다르다"며 "이런 측면도 고려해 협상이 잘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베선트 장관은 "이 대통령님의 말씀을 충분히 경청했고 내부적으로도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교착상태에 빠졌던 관세협상의 최대분수령을 만든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진행될 한미정상회담에서 관세협상을 최종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때도 타결을 못한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위기와 마주서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관세 피해는 이미 발생하고 있고, 점점 확대되고 있다. 24일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와 부품에 부과중인 품목관세를 15%로 하향조정 했다. 일본은 이미 지난 16일부터 15%를 적용받고 있다. 주요 경쟁국에 비해 10%의 관세를 더 내야 하는 우리 자동차 산업의 피해는 막대하다. 이처럼 경제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이 때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민주당의 최근 행태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3대 특검이 만들어지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구속된지 언제인데 아직도 민주당은 내란 말고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미 특검이 활동중이고 재판도 진행되는 상황이라 수사권이나 재판권도 없는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내란에 대한 단죄는 민주당 주도로 만든 특검 등의 시스템에 맡기고 집권여당으로서 관세 등 민생현안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은 질문한다. 민주당은 이제와서 왜 혼자 다 하려고 하는가. 윤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은 정의를 바라는 국민들이 가장 큰 동력이었고, 헌법재판소와 특검이라는 국가시스템이 결정했다. 내란행위를 막은 것이 민주당 혼자 한 일이 아닌데 이제와서 민심을 살피지 않고 독주하는 듯한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특히 법사위를 비롯한 국회상임위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하는 강성발언이나 돌출행동에 대해 상당수의 중도층이 우려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회 법사위 영상을 본 국민들은 모두가 혀를 찬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 일부는 마치 완장이라도 찬 듯 고성만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국회 모두를 가진 거대여당이 국민의힘 의원들과 서로 삿대질하며 말싸움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인데 청문회 증인들을 마치 죄인다루듯 답변도 막고 호통만 치는 장면은 참담하다. 증인 신문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이 그토록 혐오하는 검찰의 강압수사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실시안을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 지도부도 모르는 사이에 처리됐다. 12.3비상계엄 전후에 보여진 조희대 대법관의 행태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확증도 없는 상태에서 사법부 수장을 청문회에 세우고, 탄핵까지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민주당 김영진 의원조차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개최가 결정된 데 대해 “대단히 무거운 주제이고 중요한 사안”이라며 “약간 급발진하지 않았나”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윤석열 전 대통령에서 보여지듯이 민심은 누적되는 것이고, 누적된 민심이 인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권력은 허물어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거대여당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왠지 초조해 보인다. 급해 보인다. ‘전언(傳言)에 기댄 폭로정치’는 소수 야당이나 하는 정치다. 국민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민심은 말하고 있다. “민주당, 이제 재정비 할 시간이다.”
지역 여행을 하다 보면 온천 사우나의 지역민 입장료가 외지인 입장료보다 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혜택인가 보다. 경기도 가평을 소개하는 한 TV 여행 프로그램을 보니, 관광객들이 일제히 안내소로 들어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QR코드를 찍는 게 아닌가. ‘디지털관광주민증’이라는 이것을 등록하면 그 지역의 숙박, 식음료, 관람, 쇼핑 등 업체로부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2022년 말 평창과 옥천 두 지역에서 시작한 이 사업은 매년 대상 지역을 확대하여 지금은 44개 지역의 1천여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넘어가던 2022년 말, 관광공사는 국내 관광산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초자치단체 226개 중 지방소멸 위험지역에 해당하는 곳이 절반에 이르렀다. 저출산으로 인구의 노령화가 가속화되고, 일자리를 찾는 청년층은 계속 수도권으로 모이고 있어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은 국가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관광산업에서도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워케이션을 비롯하여 시골로 휴가를 가는 촌캉스, 일주일 살기, 한달 살기 등 지역 체류형 관광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때 같이 등장한 것이 ‘디지털관광주민증’이다. 여행 가는 지역의 명예 주민이 되어 편의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것은 지역 방문과 관광 소비를 유도하는 실제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관광 외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정책과 방안들이 시행되어 왔을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발행(ICO)을 전면 허용하는 ‘디지털자산 혁신법’이 이달 3일 발의되었다. 이는 2018년에 몇몇 지자체에서 자기네 지역을 블록체인 육성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제주가 그것을 강력히 요청했는데, 그 이유는 관광과 서비스에 국한되어 왔던 제주의 산업구조를 새롭게 개편할 수 있는 핵심 사업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더 만들려는 노력은 우리나라에서만 전개되는 일이 아니다. 농림업이 주력이었고, 2000년대 이후 젊은 층 유출이 증가하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리치몬드카운티가 지역에 아마존 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 아마존은 거기에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지난 6월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이제 그 지역에 수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스마트 모빌리티 기술 테스트베드를 후지산 기슭에 개발하여, 그곳에 2,000명 이상이 이주하게 되었다. 이 사례는 민간주도형 지방소멸 해결 방안으로 주목받았다. 북유럽의 한 작은 국가 에스토니아는 2014년 전자영주권제도를 도입하여 외국인에게도 디지털 여권을 지급하고 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2025년 기준으로 전세계 180여 개국 12만 5천명 이상이 에스토니아 전자영주권을 보유하고 3만 6천개 이상의 기업을 설립하여 글로벌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세수의 증대 효과를 누리고 있다.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그의 저서 '인구는 내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2024)에서 인구는 미래를 준비할 때 활용하기 아주 좋은 도구라고 말한다. 인구변동이 ‘정해진 미래’라고 하는 것은 인구의 미래가 정해져 있어, 인구 변화로 사회변화를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는 뜻이다.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인구 집중 등은 모두 인구문제가 아닌 인구 현상이며, 추세의 반전 가능성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지방으로 인구를 분산시키는 방법 보다 서울 부산 간 이동시간을 더 줄여 국토 범위를 좁히게 되면 수도권에 모여 살면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인구학은 많은 학문과 융합할수록 그 활용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역개발정책이 인구변동에 대한 균형된 분석과 예측에서 출발하길 바란다.
1990년대 후반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K-드라마와 K-팝 열풍은 한류(韓流)의 출발을 알렸다. 당시만 해도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이 고조됐다. 그러나 그 현상은 특정 장르와 지역에 국한된 제한적 유행에 불과했다. 2025년 현재 한류는 전혀 다른 위상에 서 있다. K-팝, 드라마, 영화, 뷰티, 음식, IT, 한국어를 넘어 웹툰, 게임, 애니메이션, 패션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문화 생태계로 성장했다.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자산으로 부상한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류 진화의 상징적 사례다. 단순히 한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을 넘어 K-팝과 한국적 세계관, 현지 청년 세대의 호기심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서울 출신의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감각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한류가 특정 장르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 브랜드로 확장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글로벌 플랫폼의 파급력은 전통적 문화외교나 정부 홍보를 훌쩍 넘어섰고, 팬덤과 커뮤니티의 결합은 한국 문화에 대한 자발적 학습과 소비로 이어졌다. 이는 곧 ‘한국을 이야기로 소비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세계인이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함께 향유하고, 한국을 방문하며 상품을 적극 소비하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를 국가적 자산과 글로벌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냉정한 분석과 체계적 전략이 필요하다. 한류가 일시적 붐을 넘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되기 위해 다음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민간 창작 생태계의 활성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실험과 실패를 허용하는 창작 환경 덕분이었다. 최근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적 경험을 소재로 한 문학이 세계 독자의 보편적 감수성을 울렸다는 사실은 한류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중소·독립 창작자의 해외 진출을 위한 투자와 배급망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창작물이 세계로 뻗어나갈 때 한류의 지속적 동력이 확보된다. 둘째, 한류 글로벌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K-팝,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등은 단순 수출 품목이 아니라 국가 브랜드를 형성하는 전략 자산이다. 정부는 관련 부처 역할을 분담하고, 현지 제도 장벽 해소, 저작권 보호, 플랫폼 인프라 구축에 협력해야 한다. 안정적 예산과 전문 인력을 투입해 장기적 통합 전략을 마련할 때, 한류의 지속 가능성과 글로벌 영향력이 확보될 수 있다. 셋째, 첨단 산업과의 융합이다. 한류는 단순 콘텐츠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반도체, AI, 메타버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기술과 결합할 때 새로운 성장 동력이 창출된다. K-팝과 AI 기반 팬 경험, 게임과 VR 기술의 결합은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제공한다. ‘한류=첨단산업’이라는 인식을 확립하고, 연구개발 투자와 인프라 구축, 산업-문화 연계 정책을 병행할 때, 한류는 단순한 문화 수출을 넘어 국가 전략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넷째, 학계와 교육기관의 뒷받침이다. 한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축적된 문화 자산과 인재의 산물이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K-컬처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해 세계적 담론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동시에 한류 교육 프로그램 확대, 한류 전공 학과와 대학원 설립 등을 통해 해외 청년들이 한국 유학을 선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재외동포 사회와의 협력이다. 전 세계 동포 사회는 한류 확산의 중요한 전초기지다. 재외공관, 한인회, 문화원, 한글학교, 세종학당 등이 현지에서 공연과 축제를 열고 있다. 정부가 풀뿌리 활동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면 동포 사회는 한국과 현지를 잇는 글로벌 ‘한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특히 2세, 3세 동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섯째,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지금까지 한류가 대중문화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태극기·한복·한지·판소리·종묘제례악·훈민정음·독도 등 한국의 100대 문화상징(2006)을 현대 기술과 접목해 전 세계에 자연스럽게 알려야 한다. 대중문화의 유행성과 전통문화의 지속성이 결합할 때 비로소 한류는 견고한 기반을 갖춘다. 이러한 전략을 실현하려면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으로 추진 중인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기존 위원회 조직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법적 구속력과 독립성, 전문성, 책임성을 확보해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며,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민간의 창의적 역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전략 본부가 돼야 한다. 지금 세계의 이목은 한국과 한국 문화에 쏠려 있다. 문제는 이 관심을 순간적인 흥밋거리로 소모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 세대의 글로벌 경쟁력과 이미지를 높이는 동력으로 전환할 것인지다. 최근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류는 전통문화와 첨단산업이 융합될 때에야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나아가 인류 보편의 ‘세계인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때,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도 함께 도약할 것이다.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는 지난 17일 ‘재난·안전 분야 책임성과 역량 제고를 위한 조직·인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재난·안전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분야임에도 열악한 업무 여건, 상시적인 인력 부족 문제 등을 겪고 있다. 따라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추진이 어렵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재난·안전 분야 수당을 확대하고 승진 혜택을 강화한다. 재난관리 분야 정부포상 규모를 대폭 늘리고 재난·안전 공무원에 대한 적극행정위원회 면책 특례도 신설하기로 했다. 관련 조직 위상과 역량 강화를 위해 지방정부의 조직도 재설계할 방침이다. 재난·안전 분야만 인력부족문제를 겪는 것이 아니다. 국민 안전과 사회복지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소방·복지 공무원 증원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소방공무원은 매일 매일 이태원 참사에 준하는 재난상태에서 근무하는 분들”이라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26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 의원은 “트라우마 등으로 인해 도저히 업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대체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있는 인원으로도 너무 빠듯해서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빠지지도 못하고 그냥 버티고 견디는 소방공무원들의 현실을 전하며 증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근본적으로 소방공무원 정원은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소방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조속한 시일 내에 소방공무원 증원 계획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이태원이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활동한 소방·경찰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정신적 충격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도 피해자에 준하는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법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회복지 공무원 증원도 필요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노인 복지나 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업무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공무원이 담당, 과부하 상태에 처해 있다. 현장 사회복지공무원 증원이 시급하다. 재난·안전, 소방·복지 분야 공무원 증원만 필요한 게 아니다. 공무원 1인당 주민 수가 지역별로 큰 격차가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전북 익산시을)이 21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2024년 말 기준 지방공무원 정원 자료’에 따르면, 경기·서울·인천 등 수도권 지역의 공무원 1인당 주민 수가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경기도는 공무원 1인당 주민 수가 887명이나 됐다. 이어 서울(509명), 경남(468명), 인천(416)이 공무원 1인당 업무 부담이 가장 큰 지역군에 포함됐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2일자 인천판 1면, ‘수도권 공무원 업무부담 전국 최고…최대 8배 격차’) 그러나 제주(108명), 세종(153명), 강원(220명), 전남(269명) 등은 상대적으로 공무원 1인당 주민 수가 적었다. 이처럼 지역별로 공무원 1명이 담당하는 주민 수는 최대 8.2배에 달한다. 인천시 서구의 경우 최근 3년간 검단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구가 7만 8684명이나 늘었다. 하지만, 공무원 증원은 72명밖에 되지 않았다. 서구 공무원 1인당 주민수는 449명으로 전국 광역시 자치구 평균(281명)보다 168명이나 많다. 서구는 현재 전국 기초지방정부 중 공무원 1인당 주민 수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공무원 1명이 담당하는 주민 수가 적을수록 보다 여유 있는 행정 여건을 갖게 된다. 반대의 경우 공공행정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무원들의 업무 과부하도 우려된다. 한병도 의원은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는 국민이 체감하는 행정서비스의 질과 직결되며, 행정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라고 말한다. 따라서 한 의원의 말처럼 고령화율, 복지 수요, 도시 밀도, 생활권 특성 등을 반영한 정밀한 기준 마련과 탄력적인 인력 배치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에 적용되면서 시간 정보와 공간 정보가 아주 편하게 들어온다. 교통편을 알아보는 일만 해도, 어디에 가서 얼마 동안을 기다리면 무슨 차를 타고 얼마나 걸려서 어디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금방 알려 준다. 옛날처럼 막연하게 기다리는 일은 일상에서 없어졌다. 현상이 없으면 그 현상을 나타내는 언어도 사라지는 법이다. 기다리는 일이 없어지면, ‘기다린다’라는 말도 사라질 건가. ‘기다린다’는 말 대신에 ‘대기한다’는 말이 흔하게 쓰인다. ‘기다린다’와 ‘대기한다’가 특별히 다를 게 뭐가 있느냐.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아도 큰 차이가 없다. ‘기다리다’는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다’로 풀이하였고, ‘대기하다’는 ‘때나 기회를 기다리다’로 풀이하면서 두 말이 비슷한 말임을 표시해 두었다. 그러나 이 두 말이 실제로 사용되는 화용(話用)의 맥락에서 보면 미묘한 의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차이는 중요하다. ‘기다리다’는 동사이지만, 이 말에는 그리움 등 마음의 지향이 녹아 있어서, 형용사 같은 느낌도 든다. ‘기다리다’는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행위인데, 그것이 어떤 조건도 없이 지속된다는 데에 이 말의 묘미가 있다. 즉 그 기다림이 기한을 정해 두지 않고 지속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물론 현실에서 “오늘 하루만 기다린다.”, “돈을 주면 내가 기다리지.” 등과 같이 조건을 붙여서 기다리는 경우를 보지만, 이는 ‘기다리다’라는 말이 원래 생겨났던 생태에서 보면, ‘기다리다’의 원형질 의미로 봐주기 어렵다. 요컨대 ‘기다리다’는 막막하고 막연한 기다림, 기약 없는 기다림이, 그 의미의 원형을 차지하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서 ‘대기하다’는 구체적인 목적, 상황, 근거, 시간, 공간, 결과 등이 비교적 드러나는 기다림이다. “면접하실 분은 여기서 대기하고 계십시오”라든지 “식당이 혼잡하니 지금 오신 분은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등의 용례에서 보듯이 ‘대기하다’에는 막막함이나 기약 없음은 애초에 없다. 현대 문명 시스템에 맞추어진 기다림의 조건이 분명하다. 그래서 ‘대기하다’는 의미의 동력을 확장해 간다. 사전은 ‘대기하다’를 ‘부대가 전투 준비를 마치고 출동 명령을 기다리다’라는 뜻의 군사용어로 설명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막막하게 기다리는 일은 피해야 하는가. 무조건 기다리기는 내다 버릴 것인가. ‘기다리다’가 위축되어 가는 자리를 ‘대기하다’가 점령해 버리는 세상이 되었는가. 정말 그런가. ‘기다리다’는 ‘대기하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생론적 의미를 지닌 웅혼한 동사이다. ‘기다리다’는 인간 존재의 보편성을 심원하게 일깨우는 마음의 동사이다. 인류의 위대한 서사나 예술 작품들은 ‘기다리다’의 모티프, 즉 기다리는 주인공들이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하였다. 춘향의 일편단심 기다림, 오디세우스의 10년 귀향의 역정을 버티게 하는 기다림, 솔베이지의 순애보에 얽힌 무한정의 러시아 혁명과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인간적 사랑의 감동을 향하는 ‘닥터 지바고’의 기다림 등이 ‘기디리다’의 인간적 진정성을 웅변으로 말한다. 베케트의 명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생이 막막한 기다림의 연속임을, 아니 그 자체임을 말한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불빛을 발견했다. 그 빛은 나그네에게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전설은 다른 전개를 펼친다. 그 집에는 백 년 묵은 여우가 살았다고도 하고, 홀린 듯 이끌려 들어간 곳은 귀신의 집이었다고도 했다. 위로가 되었던 불빛은 도리어 공포의 순간을 마주하게 했다. 밤의 불빛은 오래전부터 이중적인 상징을 지녔다. 길 잃은 이를 이끄는 등불이자, 동시에 사람을 홀리는 불빛이었다. 서양 민담 속에서도 불빛은 요정의 장난이자 유령의 신호로 등장하곤 한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불빛은 환영과 두려움, 희망과 불안이 함께 깃들어 있다. 얼마 전, 내가 머무는 레지던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출했다가 늦은 밤 돌아온 어느 작가는 어둠을 헤치고 마당에 들어섰을 때, 내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았다고 했다. 사방이 으슥한데,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오히려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불빛은 분명 누군가 있다는 증거였는데, 어쩐지 낯설고 두려웠다고 한다.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마당을 재빠르게 지나쳐 가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불도 켜보지 못한 채 잠들었다고 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던 나조차도 그에게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음날 그 작가는 내게 말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발견한 외딴집이 떠올랐다고. 어둠 속에서 불빛을 보고 느낀 공포는 어쩌면 앎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속 불빛이 여우의 집이었다는 전설을 알고 있기에, 그 작가는 불안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학습되지 않았다면 불빛은 아무런 의심 없이 위로와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 작은 에피소드에서 요즘 우리가 겪는 불안과도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한다. 끝없이 쏟아지는 뉴스와 정보는 사건을 전하는 동시에 불안을 실시간으로 주입한다. 오늘날 우리의 불안도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소식으로 전해지는 순간에 시작된다. 앎이 현실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오래된 전설은 두려움을 함께 나누게 했지만, 지금은 혼자만의 불안 속에 개인을 가둔다. 가까운 이조차 때로는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둠 속에 보이는 불빛마저 의심해야 하고 두려움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 방의 불빛을 바라보며 느꼈을 그 작가의 기묘하고 낯설었던 기분을 상상해 본다. 따뜻함보다 공포스러웠다고 했던 그 말이 조금 서운했다. 그가 나에 대한 감정을 토로한 게 아니라, 그 순간의 느낌을 얘기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누군가에게 잠깐이나마 그렇게 낯설고 기이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가 기대는 것은 불빛 그 자체가 아니라 불빛을 밝히고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믿음이다. 그 빛이 결국 누군가 있다는 증거였듯, 우리가 서로를 향해 있었으면 좋겠다. 여우가 사라지고, 요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알림뿐이다. 전설의 빈자리를 우리는 정보로 채우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서늘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빛을 바라본다. 그 불빛이 낯설든 다정하든, 결국 거기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서다. 백 년 묵은 여우가 사는 곳에서는 사람도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식과 정보가 아닌 진짜 이야기가 남아 있는 세계라면 우리는 서로를 보고 더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불안 없이 한 번쯤 홀려도 되는 밤이 있다면.
모바일 상품권 구매와 교통카드 충전 등의 소액결제를 유도해 편취한 혐의를 받는 중국교포들이 체포돼 구속됐다. 이들은 불법 소형 기지국 장비를 승합차에 싣고 다니며 수도권 특정 지역 KT 이용자들의 휴대전화를 해킹하는 기상천외한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털어놓은 ‘중국에 있는 윗선’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급선무다. 철저한 수사로 사건전모를 밝혀내어 여죄를 찾아 밝히고 추가 범죄를 차단해내야 할 것이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정진우 영장 전담 부장판사)은 KT 소액결제 피해 사건 피의자로 체포된 중국 국적 남성 2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열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가 밝힌 영장 발부 사유는 ‘도망 염려’였다. 이들 중 한 사람은 지난 8월 말쯤부터 9월 초까지 불법 소형 기지국 장비를 승합차에 싣고 다니며 수도권 특정 지역 KT 이용자들의 휴대전화를 해킹해 모바일 상품권 구매와 교통카드 충전 등의 소액결제를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해당 소액결제 건을 현금화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 16일 인천국제공항과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이들을 각각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광명시 소하동 일대 거주 피해자들로부터 “지난 8월 27~31일 새벽 시간대 모르는 사이 휴대전화에서 소액결제로 수십만 원이 빠져나갔다”는 신고를 여러 차례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 4일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광명과 인접한 서울 금천, 인천 부평, 경기 부천과 과천 등에서도 비슷한 피해 신고가 이어졌다. 경찰이 집계한 피해 규모는 지난 15일을 기준으로 200건에 피해금은 약 1억 2000만 원이지만, KT가 자체 파악한 규모는 278건에 약 1억 7000만 원에 육박하는 차이를 보여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중국에 있는 윗선 모 씨의 지시를 받고 범행했다”면서 “‘아파트가 많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실제 주범이 중국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구속된 이들이 지목한 윗선의 소재와 구체적인 범행 수법, 범죄 수익을 가로챈 경로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구속된 피의자들이 자신의 진짜 이름과 나이, 국적 등의 신원을 밝혔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더욱이 이들이 조직화·체계화한 거대 범죄 집단에 속한 하부 조직원에 불과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찰의 수사로 범행 전모를 밝히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범죄 유형·범행 수법·피해 규모 등으로 비춰볼 때 상식적으로 단독 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관련 전공자도 하기 어려운 첨단 범죄를 통신사 근무 이력은 물론이거니와 전화·인터넷 가입이나 설치 등의 업무 경험조차 없는, 국내에서 주로 일용직 근로에 종사해 온 피의자가 주도했을 리는 없을 것으로 유추된다. 실제로 주범이 중국에 있다면 신원을 특정한다고 해도 검거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소액결제 범죄는 타인의 휴대전화를 몰래 개통하거나, 개인정보를 악용해 소액결제를 진행해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신종 범죄다. 문제는 이 범죄로 인한 피해자가 대개 취약계층이라는 점이다. 주요 범죄 유형은 노인·장애인 대상 소액결제깡, 대리점 직원·해킹, 스미싱·악성앱 감염 등이다. 이번처럼 차량에 소형 기지국을 싣고 다니면서 마구잡이로 저지르는 소액결제 범죄는 강력히 차단돼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규명하여 밝히고 발본색원해야 한다. 무고한 국민, 특히 취약계층의 다수 일반인이 막대한 피해를 입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 지금 호미로 막아내지 못한다면, 가래로도 못 막는 대형 범죄로 번질지도 모른다.
30년 전쯤 고향 시골 마을에 살던 때 일이다. 제15대 국회의원선거를 눈앞에 둔 1996년 4월 즈음, 이웃 과수원집 아주머니가 선거에 출마한 자신의 친척으로부터 유권자인 동네 사람들에게 ‘투표수고비’ 명목으로 돈봉투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실제 돈봉투를 돌린 일이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선거에는 비교적 최근인 90년대까지만 해도 돈으로 투표권을 사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곤 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사법당국의 지속적인 금권선거 척결 노력과 유권자의 민주시민 의식이 고양됨에 따라 ‘돈 선거’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요즘도 선거 때마다 후보자나 그 관계자 등의 유권자에 대한 금품제공이 문제가 되어 심심찮게 언론을 통해 보도되곤 한다. 공직선거법(이하 공선법)에서는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자(입후보예정자 포함)와 같은 정치인 등이 선거구민(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사람이나 기관·단체 포함)이나 선거구 내 행사 등에 금전·물품 등 기타 재산상 이익을 제공·약속하는 행위를 ‘기부행위’로 규정하고, 의례적 행위나 구호·자선적 행위 등 일부 예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허용하되 원칙적으로 상시 제한하고 있다. 공선법이 ‘기부행위’를 제한기간 없이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주된 이유를 꼽자면, 기부행위를 허용하면 유권자에 대한 매수행위와 결부될 가능성이 높아 선거 자체가 후보자의 인물이나 공약을 평가하는 기회가 되기보다는 그들의 자금력을 겨루는 과정으로 타락할 위험성이 있어 이를 금지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한편, 공선법은 기부행위 금지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인 등이 금품 등을 제공한 경우는 물론이고, 유권자가 이를 제공받는 행위 역시 처벌하고 있다. 제공받은 금액 또는 물품 가액이 1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형벌(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그 이하인 경우에는 제공받은 금액·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추석 연휴가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맞이하게 되는 추석 연휴라 여느 때보다 입후보예정자 등의 기부행위가 암암리에 발생할 우려가 많지만, 우리 모두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부행위의 근절을 통해 공명선거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란다. [ 경기신문 = 나규항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그리고 윤석열의 장모 최은순의 내연남이라고 알려진 김충식, 이렇게 네 사람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부적절한 만남을 가졌고 이 만남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사건은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제보를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과 서영교 의원이 유력한 인사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물론 아직 이 만남에 대한 제보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 만남이 사실이라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정치에 개입한 희대의 사법 쿠데타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만남의 당사자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 만남 직후 대법원이 갑자기 이재명 사건을 소부에서 전원합의체로 변경한 것과 이례적으로 6만 여쪽의 재판기록도 판사들이 읽어 볼 시간도 없이 단 9일 만에 파기환송 선고를 한 것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의지가 개입된 것이라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몇몇 현직 판사들도 이례적으로 초고속 파기환송 선고는 정치적으로 편향됐고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이는 반드시 수사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할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당사자인 조희대 대법원장의 답변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한덕수 전 총리와는 물론이고 누구와도 논의한 바가 없다”라고만 했다. 대법원장은 삼권분립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정상급에 있는 주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의심스러운 의혹을 받았다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라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좀 더 ‘적극적’으로 사실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저 그런 논의한 바 없다, 거론된 사람들과 만남을 가진 적 없다고 아주 초라하고 궁색한 답변만 하고 침묵했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침묵의 근원적 이유는 “두려움”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조희대 대법원장은 겁.쟁.이. 쫄.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악이 드러날까 봐 벌벌 떨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삶에서 두려워할 것은 1도 없다. 그 어떤 두려움(혹은 걱정거리)의 대상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시하면 그 대상은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서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혹은 나 자신이 해결할 수 없다면 어차피 맞닥뜨려야 하니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두려움 없이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인생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죽음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없어지는 것에 대해 본능적 두려움이 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죄를 지었을 때’이다. 내 죄가 세상에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수의 복음 선포 내용 중 “두려워하지 마라”는 그래서 복음(기쁜소식)의 가장 기본적 가르침인 것이다. “사랑하라”에 앞선다. 내 안에 두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이 평화롭고 기쁠 수 있는가? 조희대, 지귀연, 김건희, 윤석열, 최은순, 김충식, 한덕수, 정진석, 심우정, 최상목, 조태용, 추경호, 김태효, 전광훈, 손현보, 한학자 등은 현재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당신들 떨고 있나?
나도 이제 나이가 든 모양이다. 한평생 잘 살다 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우니 말이다. 과거에는 명성이 높거나 돈을 많이 벌어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더러 선망했다. 요즘은 시류에 물들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 더 멋져 보인다.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위대한 개츠비’, ‘아웃 오브 아프리카’, ‘흐르는 강물처럼’ 등, 숱한 히트작으로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아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스타로서의 화려함보다 가치 있고 보람된 자신 만의 삶을 추구했다. 그런 그가 지난 16일 미국 유타주 선댄스 자택에서 영면했다. 89세로 마감한 그의 인생은 ‘칼로스 카가토스(καλὸς κἀγαθός)’ 그 자체였다. 즉, 아름다움과 지성을 겸비한 숭고한 삶이었다. 그는 배우로서 신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감독으로서 관대하고 진취적이며 낭만적인 영화를 제작했다. 그의 영화 대부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그 정체성을 바꾸고,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며, 유토피아를 찾고자 열망했다. 1936년 8월 18일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난 레드포드는 청소년기 학교를 결석하기도, 술을 마시기도 해 퇴학을 당한 적도 있다. 전후 미국 쁘띠부르주아 사회에 불편함을 느낀 그는 웨스트코스트 재즈를 듣고 그림을 그리며 방랑을 즐겼다. 그런 그가 정치적 양심을 키우게 된 것은 스무 살 때 파리에 머물며 미술 공부를 하면서였다. “수에즈 사건 다음 날이었어요. 국제 정세에 대해 성찰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라고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훗날 밝혔다. 화가로서 한계를 느낀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연극 디자이너?’ 수줍음이 많고 과시적인 삶을 싫어한 그는 배우가 될 생각을 꿈속에서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연기의 길로 이끈 건 그의 애인 롤라였다. 배우 인생 초기 그는 젊은이의 눈부신 모습을 투영했다. 하지만 점차 일관된 도덕적 인물로, 자유와 창조적 독립을 수호하는 예술가로, 그리고 시민으로 변모해 갔다. 1963년 그는 선댄스의 작은 땅을 매입해 태양열 주택을 짓고 말을 키웠다. 확고한 민주주의자이자 환경운동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옹호자인 그는 1980년 젊은 영화인을 육성하기 위해 선댄스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창작 센터로 성장해 선댄스 영화제로 우뚝 섰다. 이렇게 자기만의 길을 열어 나가며 레드포드는 할리우드 스타와 거리를 두었다. 친환경적 예술 공동체 구축을 위한 그의 노력은 선댄스를 아름답고 평온하고 순수함이 머무는 유토피아로 만들었다. 1989년, 그는 이곳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 소련과 미국의 지도자들을 초대해 지구 온난화에 관한 첫 삽을 떴다. 그때 그는 “정치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대중의 압력뿐 이예요. 그러나 대중은 문제 자체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흐르는 강물처럼’과 ‘말 속삭이는 자’는 대중을 깨우치기 위해 그가 의도적으로 만든 환경 영화다. 한 번뿐인 인생을 의롭고 정의로운 쪽에 걸었던 레드포드, 그는 정녕 이 시대 보기 드문 큰 바위 얼굴이었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의 말처럼 그는 ‘신화 그 이상의 존재’이자 ‘헌신과 투쟁’의 화신이었다. ‘칼로스 카가토스!’ 당신이 있어 위안과 기쁨을 얻었고 행복했습니다. 편히 잠 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