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수천 명이 사망하는 등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가 여전하지만 이에 대한 안전 활동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고 예방을 위한 정책적 노력조차 진전되지 않는 등 불감증이 만성화돼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다수 교통사고가 ‘안전의무 위반’인 현실을 감안하면 안전 홍보 강화, 안전교육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줄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날마다 발생하고, 시시각각 죽고 다치는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복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8202명으로, 같은 기간의 산업재해 사망자 6319명과 자연재난 사망자 91명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또 지난해 발생한 전국 교통사고 19만 6249건(사망자 전국 2521명, 경기도 472명) 중 55%는 ‘안전운전의무 위반’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 주의를 좀 더 기울였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매년 2500명을 넘기고 있음에도 국가나 지자체의 관심에서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자연·산업재해는 매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며 피해 예방을 위해 중앙·지방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이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교통사고는 중대 재난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 등 대책이 무디기 짝이 없다. 사실상 안전 논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경기남부본부가 지난달 말 ‘2025년 하반기 언론 간담회’에서 공개한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경기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5만 2175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경기도의 화물차 교통사고는 25%, 고령보행자 사고는 19%나 증가하며 일부 취약 분야에서 사고 위험이 급격히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물차 관련 사고는 총 88건으로서, 이 가운데 41%는 후미추돌 사고로 생긴 인명 피해였다. 고령 보행자 교통사고는 전년 대비 19%, 연평균 기준으로도 13.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총 81명으로, 이 가운데 31명(38%)은 무단횡단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 증가도 문제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전국의 교통사고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지난해 4만 2369건으로 36%나 증가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고령 운전자에 의해 교통사고 사망 비율이 2019년 23.0%에서 2023년 29.2%로 늘어났다. 2023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 2551명 가운데 48.6%가 65세 이상이다. 고령층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사고가 나면 부상에 그치지 않고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 유형에서는 보행자 사고가 44.4%로 절반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교통사고의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부족하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폭염·폭우 등 자연 재난 피해에 적용하는 재난안전문자 시스템에 비하면 교통사고 예방조치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물론 전국에서 상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관리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교통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실시간 정보 문자를 보내는 시스템, 주의력을 높이기 위한 사고 위험 통보 등은 도입이 얼마든지 가능한 영역이다. “교통사고 대부분은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교육·홍보 등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한국교통안전공단 경기남부본부 관계자의 견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와 지자체 등이 교통사고 문제에 관심을 높여 대책 마련에 앞장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통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바로 나와 내 가족의 문제다.
아침 7시, 집 근처 마트 앞에서 열명 남짓이 버스에 올랐다. 으리으리한 어느 대형 건물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서둘러 내린 후 잰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바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물류센터의 풍경이다. 출근 체크를 하고 사물함에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를 넣었다. 스마트워치조차 허용되지 않은 그 곳에선 모두가 일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잃는다. 나는 출고 작업 중 하나인 포장 업무에 투입됐다. 고객이 주문한 물품들이 바구니에 담겨 오면 일일이 포장해 컨베이어벨트에 실어 보내는 단순 반복작업이었다. 처음엔 재밌었다. 고민도, 갈등도 없는 노동환경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마엔 땀이 흐르고 갈증은 멈추지 않았다. 얼음물을 계속 마셔도 이상하게 목이 자꾸 말랐다. 에어컨은 없었다. 그 사이 바구니는 끊임없이 나를 압박하며 밀려왔고 컨베이어벨트로 물건을 올리는 손은 점점 바빠졌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실수도 늘었다. 정신없이 박스를 보낸 후 시간을 보면 고작 5분이 지나 있었다. 시간은 더뎠고 다리는 아파왔다. 점심시간이 됐다. 아픈 다리를 끌고 구내 식당으로 향하니 입구의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아이스바가 잔뜩 들어있었다. 직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복지 중 하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직원들이 너도나도 아이스바를 하나씩 입에 문다. 밥보다 시원한 얼음 한 조각이 간절했던 나도 입에 문 채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의욕적으로 밥을 먹던 나는 갑자기 음식을 넘기기 힘들어져 절반 이상을 버렸다. 더 먹으면 속이 울렁거릴 것만 같았다. 겨우 속을 달랜 후 오후일을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오후에는 이상하게 땀이 더 많이 흘렀다. 박스 한 개를 포장할 때마다 육즙처럼 흐르는 땀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마도 점점 뜨거워지는 듯했다. 오후 3시쯤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후, 여기 왜 이렇게 더운 거야!”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 얼굴도 더 뜨거워졌고, 땀은 멈추지 않았다. 반대로 시간은 거의 멈춘 것 같았다.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겨우 3분, 5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일당이고 뭐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추가 수당 프로모션의 달콤한 유혹 때문에 이를 악물었다. 불현듯 ‘물류센터는 현대판 탄광’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에어컨도, 햇빛도 없는 곳에서 오직 조명과 먼지와 선풍기 바람만이 온몸을 끈적하게 휘감고 있었다. 3분씩, 5분씩 보낸 시간은 어느새 퇴근시간 한 시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한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희망으로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저녁 6시, 드디어 일이 끝났다. 하지만 두통은 더 심해졌고 뜨거워진 얼굴도 식을 줄 몰랐다. 아이스바를 입에 물고 퇴근 셔틀버스에 겨우 몸을 실었다. 집에 오자마자 두통약을 입에 털어넣은 후 씻고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두 번 다시 가지 않겠다고. 밤새 끙끙 앓았고,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피곤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열사병 초기 증상’이 연관검색어로 나왔다. 한여름 폭염 속 택배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마흔 넘은 우리 같은 사람은 일할 수 있는 곳이 여기 뿐이라….” 현장에서 들은 누군가의 말도 계속 맴돌았다.
통일부의 명칭 변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통일부는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출발해 1990년 ‘통일원’으로, 1998년 이후에는 현재의 ‘통일부’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통일부’ 명칭을 바꾸어 보자는 논의는 없었다. 하지만 2025년 7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명칭 변경은 여야가 함께 논의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며 ‘한반도부’ 같은 명칭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사실 통일부라는 이름은 우리 국민에게 오랫동안 익숙한 것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속에서 통일부는 국가조직의 자연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독일의 사례를 보면, 명칭 변경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남북관계를 실용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독은 1951년 ‘전독일문제부’(BMGF)를 설치해 동서독 문제를 다뤘다. 이것은 독일연방헌법 제23조를 근거로, 분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독의 국가성을 부인하고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교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환점은 1969년 빌리 브란트 총리(1969.10-1974.5)가 등장하면서 부터 였다. 그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면서 부처명을 ‘내독일관계부’(BMIB)로 바꿨다. 이는 헌법에 근거하면서 분단상황을 부정하지 아니하고 동독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동서독 교류를 실용적으로 추진한 정책 전환이었다. 그 결과 1972년 ‘통행협정’(Transit Agreement) 체결과 함께 동서독 간 가족방문이 급증했고, 1972년에는 기본조약이 체결되었으며, 1973년에는 양국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서독은 외형적으로는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면서도, 내적으로는 독일 내부 문제로 접근했다. 실용적인 정책을 조직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내독일관계부’였다.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동서독 관계 개선을 추진하였지만, 그 정책을 조직적으로 뒷받침한 것은 ‘내독일관계부’였다. 그 결과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통일을 이루었다. 독일의 예에서 특별한 것은 동서독간 합의사항 즉, 통행협정(1971), 기본조약(1972) 등을 연방의회에서 인준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동서독 합의사항은 정권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중단없이 효력을 발휘하여 통일에 이르게 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북한은 2023년 12월 민족개념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남한을 적으로 규정했다. 남북관계는 극도로 경색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라는 표현은 북한에 ‘흡수통일’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제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하여 냉철하고 실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남북이 분단된지 80년, 매우 긴 시간이 흐르고 있다. 통일이라는 이상을 지키되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접근은 유연하고 실질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일부를 ‘남북관계부’로 바꾸기를 제안한다. 이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용적 접근의 출발점이자,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운영의 선결 과제이다. 남북 교류협력의 새로운 문빗장을 열고 머지않아 다가올 통일의 시대를 크게 열어보자.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경기도 더불어민주당이 ‘기강 해이’ 논란에 빠졌다.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끔찍한 취재 기자 폭행에 이어 도의원의 뇌물 수수 의혹 등 파장이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경기도당이 조직적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출범 60일도 채 안 된 새 정부의 공직 윤리와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민심을 진정으로 천심으로 여긴다면 세간의 비판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달 이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평택시을) 지역사무실에서 취재를 하던 경기신문 기자가 이 의원의 측근으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언론 자유 침해사건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 경기도당은 사건에 대해 ‘입장이 없다’며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오후 경기신문 박희범 부국장(평택 담당)은 평택항 부지 특혜 의혹과 관련한 취재를 위해 이병진 의원의 지역사무실을 방문하던 중 봉변을 당했다. 박 부국장은 정치권의 개입 여부를 알아보려고 이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진 A씨를 만났다. 대화 도중 A씨는 갑자기 문을 잠그고 거친 욕설과 함께 기자를 폭행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박 부국장이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A씨는 화분을 들어 머리를 가격하기까지 했다. 박 부국장은 머리와 눈 등 온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고 어금니까지 깨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의원 측은 A씨가 일반 당원일 뿐이며, 이 의원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며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지역사무실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의원의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경기신문은 즉각 강력한 수사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전국언론노조 경기신문지부와 인천경기기자협회 경기신문지회도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가해자의 공개 사과와 더불어민주당 차원의 진상조사, 국회 차원의 언론인 안전 보장 및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정치권의 비판도 나왔다. 이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언론 자유를 짓밟은 전례 없는 사건”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수사당국은 이권 사건과 폭행 사건을 엄중히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의 오불관언(吾不關焉) 태도는 심각한 문제다. 박민준 도당 홍보부장은 “이병진 의원 개인 문제”라며 책임 회피에 나섰고, 김승원 도당 위원장 또한 별다른 입장이나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경기도에서 불거지고 있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비리 혐의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의원 4명과 전 성남시의원이 지능형 교통체계(ITS) 사업 관련 이권 개입과 뇌물 수수, 권력 남용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기자 폭행, 이권 개입, 그리고 여당 지도부의 침묵이라는 3중 악재는 과거 민주당이 야당 시절 전 윤석열 정부를 향해 맹폭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프레임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어서 ‘내로남불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취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현장에서 기자를 개 패듯 두들겨 패고, 소속 정치인들의 이권 개입과 뇌물 수수, 권력 남용 의혹을 ‘내 일 아니다’ 하고 조직적으로 입을 닫아버리는 현상은 과거 무질서가 판을 치던 시절에도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던 안하무인의 살풍경이다. 이 나라 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의 위상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난맥상이 펼쳐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 아직 모든 게 제자리를 잡은 상태가 아닌 시점에 이런 오만방자한 이미지가 집권당에 덧씌워진다면 결코 좋을 리가 없다. 민심에 대해 한없이 겸손한 여당 정치가 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철옹성도 쥐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격언을 엄중히 되새겨야 할 때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멍하니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등굣길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고, 쉬는 시간엔 친구와 대화하거나 학원 숙제를 한다. 하교 후에도 곧장 학원으로 이동하고, 저녁 시간은 다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앞에서 마무리된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없다. 아이들의 하루는 온통 자극으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다. 평소 활발하고 산만한 친구라 그런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 “무슨 생각해?”라고 묻자,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그냥 하늘 보다가 잠깐 눈 감았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그런 시간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뇌가 발달하는 시기의 아이들이 끊임없는 자극 속에 노출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멍때리는 시간, 즉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가 활성화되는 시간은 창의력, 기억력, 자기 성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네트워크는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하지 않을 때 주로 작동하며, 그동안 경험한 정보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고를 생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노출된 아이들은 이러한 멍때리기 시간이 부족하다. 한 연구에선 하루 평균 4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은 인지 기능에서 낮은 수준을 보였고, 특히 집중력 유지 시간이 짧았다. 이는 단순히 학업 성취와 연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기 통제력, 감정 조절 능력, 사회적 관계 형성 등 모든 측면에서 영향을 준다. 교실에서도 이와 관련된 현상이 자주 관찰된다. 예전 같으면 잠시 멍하니 있다가도 금세 활동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짧은 집중 후 곧장 “다 했어요”, “심심해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정적인 활동보다 시각 자극이 강한 콘텐츠에 익숙해진 결과다. 조용한 독서 시간조차 집중하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기만 하는 경우가 늘었다. 아이들 집중력이 약해진 걸 교실에서 체감한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수업 마무리쯤에 의도적으로 ‘멍때리는 시간’을 넣기 시작했다. 활동이 끝난 후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눈을 감고 있어 보자”는 식의 안내를 하고, 1~2분간 교실 전체를 멈춘다. 처음에는 킥킥 웃거나 실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던 아이들도, 차츰 멈춰있는 상황에 적응하게 되었다. 이러한 짧은 멍때리기 시간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숨 고르기 역할을 한다. 감정이 과도하게 고조된 상황을 진정시키고, 활동 간의 전환을 부드럽게 해주는 기능도 한다. 특히 체육 시간처럼 과도하게 승부욕이 올라오는 상황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조금 전까지 씩씩거리던 아이들도 눈을 감고 있으면 단숨에 차분해진다. 멍하니 있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뇌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힘을 기른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학습이 아니라 더 건강한 집중이다. 그 출발점은 어쩌면, 그냥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그날을 ‘광복절’이라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가? ‘광복(光復)’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 다시 말해 온전한 주권의 회복을 뜻한다. 그러나 8.15는 해방이었을 뿐, 진정한 자주 ‘독립’은 아니었다.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재정립하여야 한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일본의 땅은 분단되지 않았다. 반면 전쟁의 책임이 없는 한반도는 강대국의 이해 속에 너무나 억울하게 남북으로 갈라졌다.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나눴고, 남한은 미군정(美軍政)의 통치를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넘어갔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군사 주권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 과연 우리는 ‘광복’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실 우리는 해방되었지만, 곧바로 다른 강대국의 힘과 질서 속에 종속되었다. 진정한 ‘독립’은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기득권 세력과 친일세력이 ‘광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였고, 국민들은 그 왜곡된 내용에 80년 가까이 속아왔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해방=광복’이라는 말에 길들어 졌다, ‘광복’은 마치 모든 것이 회복된 듯한 착각 속의 축제가 되었고, 수많은 국민들은 그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광복절’ 기념일에 쉽게 안주하였다. 이 와중에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으며, 일제(日帝)에 부역하였던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하였다. 나아가 우리의 전시작전권도 미국에 맡겨 놓은 상태에 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린 것은 진짜 ‘광복’이 아니라 반쪽짜리 ‘독립’이었다. 국제질서가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분쟁, 미중 무역전쟁, 미국의 관세정책 등은 자국 이익을 위해 군사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우리는 냉정하게 과거와 현실을 성찰하여야 한다. 8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독립국인가?”, “진짜 광복은 언제 오는가?” 8.15는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이제 진짜 ‘광복’을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역사를 바로 보자. ‘해방’과 ‘광복’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왜곡된 사실의 내용을 바로잡아야 한다. ‘친일 · 분단 · 미군정’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왜곡없이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둘째, 주권을 되찾자.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문화에서 진정한 자립을 추구해야 한다. 미국에 넘겨준 전시작전권을 환수하여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되 우리 스스로 자주 국가임을 천명해야 한다. 셋째, 깨어 있는 시민이 되자. 진정한 독립은 깨어 있는 국민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늘의 8.15는 경축하는 기념이 아니라 ‘각성’의 날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광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깨어나 역사를 바꾸고 다시 써야 한다. 더 이상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과거를 감추지 않고, 국민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나라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참된 광복’은 오지 않는다.
해병대에서 전역한지 62년 만에 특등사수 명예를 되찾은 노병이 화제가 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도 뒤로 한 채 18세에 해병대에 자진 입대한 수원 시민 유영유 씨(82)가 최근 열린 해병대 1319기 수료식 행사에서 동행한 아들과 수원시 베테랑공무원, 해병대 교육훈련단과 후배 해병들의 축하 속 패용증을 수여 받은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일자 6면, ‘조국 위해 해병 입대한 18세 청년, 62년 만에 되찾은 특등 사수 명예’) 유 씨는 1963년 4월 11일 당시 해병대에 복무 중이던 당시 특등 사수가 됐다. 확인증도 받았다. 그러나 특등 사수에게 주어지는 명예의 상징인 패용증과 휘장은 전역할 때까지 받지 못했다. 지갑 속에 간직돼 있던 “아버지의 자존심 같은 기록”인 확인증을 발견한 아들 유우식 씨(55)는 아버지의 낡은 확인증을 들고 수원시를 방문해 지금이라도 패용증과 휘장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문의했다. 이에 수원시 베테랑공무원들이 나섰다. 이성희·김경숙·허준 팀장과 홍승화 민원협력관은 해병대 포항 교육훈련단에 공문을 보내 유영유 씨의 사연을 상세히 설명했다. 공문을 통해 사연을 알게 된 해병대 교육훈련단장도 흔쾌하게 응답, 패용증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는 80살이 넘은 한 청년의 잃어버릴 뻔했던 명예가 수원시 베테랑공무원과 해병대 교육훈련단의 노력으로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아들 유우식 씨는 눈물이 날만큼 감격했다고 밝혔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시청 베테랑 공무원들과 해병대 덕분에 잊혀 질 수 있었던 아버지의 명예가 다시금 빛날 수 있었다”며 “국가를 위한 아버지의 노력이 60년 만에 인정을 받아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수원시 베테랑 공무원들이 업무 경계가 모호한 민원, 담당 부서가 명확하지 않은 복합민원을 사업부서와 소통하며 처리해 주는 행정의 달인들이다. 베테랑 팀장들은 사업부서와 소통하며 민원을 처리하는 ‘원스톱서비스’와 민원 안내 직원이 담당 공원을 호출해 민원인과 연결해 주는 ‘바로민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민원인은 부서를 헤매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른바 ‘핑퐁민원’이라고 하는 부서 간 떠넘기기가 사라지고 있다. 수원시는 2023년 4월 공모를 통해 20년 이상 경력의 팀장 이상급 행정에 익숙한 팀장급 공무원 9명을 민원실에 배치했다. 사회복지직, 환경직, 토목직, 건축직, 행정직 등 직렬도 다양하다. 이들은 업무 경계가 모호한 민원, 담당 부서가 명확하지 않은 복합민원을 경청한 뒤 사업부서와 소통하며 매끄럽게 처리해주고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행정 처리를 조언하는 컨설턴트 역할도 해준다. 사후 만족까지 확인하기 때문에 민원인들의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62년 만에 되찾은 특등 사수 명예를 되찾은 사례 외에도 베테랑공무원들이 해결한 민원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공유재산 사용료 납부 관행을 개선하고, 전기차 급속충전시설 설치 걸림돌을 해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4월 수원시 호매실장애인종합복지관 앞 장애인콜택시 승강장을 다시 설치한 것도 이들이 노력한 결과다. 지난해 9월 발생한 ‘탑동 화재’로 중상을 입은 주민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 시민안전보험금과 KT&G 기부청원제의 도움으로 치료비를 후원받기도 했다. 시냅스이미징㈜, 이노크린㈜, ㈜드레인필터 등 기업들 애로사항도 앞장서 해결해줬다. ‘복합민원 해결사’라고 불리는 수원시 베테랑공무원제도를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수원시를 방문하는 정부 부처, 지방정부, 기관 관계자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행안부는 공직사회 내 적극행정 문화 확산·정착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별 적극행정 활성화 실적을 점검, 우수 지자체를 선정해오고 있다. 수원시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적극행정 종합평가에서 기초지방정부 중 1위를 차지하며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수원시 베테랑공무원은 타 지방에서도 도입할만한 제도다.
세계 곳곳에서 의료 시스템이 압박을 받고 있다. 고령화 인구, 과부하된 응급실, 제한된 재정 자원, 의사 부족 문제 등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해결의 방안 중 하나로 원격 의료가 부상하고 있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현재 이 나라의 1차 진료 10% 이상이 원격으로 진행된다. 원격 진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도 프랑스 보다 2년이 앞선 2016년부터 적용되고 있다. 이처럼 스웨덴은 원격 의료의 선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94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스웨덴의 21개 지역이 일반적으로 관할하는 원격진료율과 보험금 지급 조건을 설정하는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이에 정부가 발 벗고 나서 전국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민간의 협조가 필요 하였다. 마침 크리(KRY)가 원격 의료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웨덴 정부의 야심 찬 지원에 크리는 20명의 팀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하였다. 2015년 스웨덴 일부 지역에서 원격 진료 시범 사업을 시작한 크리는 2016년까지 약 100만 건을 달성하였다. 당시 스웨덴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의료 불모지로 전락하던 중이었다. GDP의 10%를 의료비에 지출하는 스웨덴이지만 의료 접근성 면에서는 여전히 뒤처져 있었다. 이때 스웨덴 지도자들은 거시경제적 계산을 통해 현재의 의료 시스템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대안으로 원격 의료를 활성화하고자 하였다. 크리는 스톡홀름 중심부에 위치한 세련되고 편안한 공간에서 고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35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400명의 의사를 채용했다. 이들은 앱을 통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병원이나 의료 센터에서 일한다. 총 7900만 유로(약 1282억)의 모금을 통해 크리는 국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2016년에는 오슬로, 2018년에는 파리와 런던에 진출하였고, 그 다음에는 독일에 도착하였다. 크리의 한 영업 이사는 “많은 정부가 원격 의료와 저희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회사 매출은 2016년 150만 유로(약 24억)에서 2017년 1,000만 유로(약 162억), 2018년 2,000만 유로(약 324억)로 계속 증가하였다. 사업 확장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기 때문에 크리의 현재 수익성은 크지 않다. 이 기업의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할 것입니다.”라고 확장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크리처럼 Telemedicine Clinic, Doktor.se, My Doctor 등 많은 스타트업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원격 의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신규 업체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환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화상 진료에 매우 회의적인 의사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크리의 한 운영자에 따르면 “어떤 의사들은 경쟁을 두려워했고, 원격 진료를 하는 의사들에게 주치의를 뺏길까 봐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원격 진료의 유연성에 매료되어 갔다. 도시든 시골이든 원하는 곳에 살면서 환자를 더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원격 진료. 이 의료 서비스 방식은 혁명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이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통 큰 용기가 필요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명언이 생각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문을 활짝 여십시오!” 편견을 버리고 변화와 부딪칠 때 우리는 바야흐로 새 길의 걸을 수 있다.
화면 가득 낯선 땅이 채워집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땅입니다. 버려진 계곡과 능선과 봉우리가 그 땅 위로 누웠습니다. 저런 것도 산이랄 수 있을까요. 숲은커녕 변변한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을 덮은 먹구름 그늘 밑에서, 누렇게 드러누운 산이 기지개를 켭니다. 흙먼지를 거죽 삼아 모로 누운 산의 모양새는 살쾡이를 닮았습니다. 산의 거죽을 뚫고 삐져나온 바위가 서로 부대끼며 기둥처럼 섰습니다. 샘물은, 돌의 기둥과 기둥이 부딪치고 갈라선 틈에서 솟구칩니다. 쏟아지지 못하고 찔끔거리는 꼴이, 꼭 살쾡이가 지리는 오줌발 같습니다. 그래도 샘물이랍시고, 자갈 틈을 비집고 흘러 실개천을 이룹니다. 산길은, 실개천을 따라 흐릅니다. 오름이든 내림이든, 나란히 흘러간다는 점에서 산길과 실개천은 서로 닮았습니다. 사내가 산을 오릅니다. 덥수룩한 수염으로 나이를 가린 사내입니다. 삽을 쥐고 배낭을 등에 업은 사내가 실개천 따라 산을 오릅니다. 등에 업은 배낭 주둥아리로 밀려 나온 곡괭이 자루가 보입니다. 산을 오르던 사내가 살쾡이 같은 능선을 가리키며 읊조립니다. 사내가 읊조리는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런 말을 아랍어(Arabic)라고 하던가요. 사내의 말이, 그러니까 내게는 모르는 말이, 실개천을 따라 둥둥 떠내려갑니다. 말을 떠나보낸 사내는 실개천을 거스르며 산을 오릅니다. 사내의 발길이 멈춘 곳은 산의 허리와 등이 교차하는 어디쯤입니다. 멈춘 발길 저편으로 1인용 작은 텐트가 보입니다. 산에서 눈비를 만났을 때, 피할 용도로 쓰는 텐트입니다. 사내의 발기척에 텐트 안에서 지퍼가 열립니다. 여인이 고개를 내밉니다.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입니다. 가렸어도 경계심까지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사내와 여인이 무어라 말을 주고받습니다. 여전히 내게는 모를 말입니다. 화면 밑으로 흐르는 자막 또한 까막눈입니다. 텐트의 지퍼가 완전히 열리고 세 명의 아이가 걸어 나옵니다. 열 살, 일곱 살, 세 살쯤 되었을까요. 여인의 치마 뒤로 얼굴을 감추지만, 영락없는 여인의 아들과 딸입니다. 사내를 따라 여인과 아이들이 산길을 오릅니다. 살림이라고 해야 이불 보따리 하나에 냄비 두어 개가 전부입니다. 사내가 여인의 가족을 인솔한 곳은 높은 바위 밑입니다. 비와 바람을 피하기 좋아설까요. 사내는 넓은 바위를 지붕 삼아 그 밑에 돌로 집을 짓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고 괭이와 망치로 돌과 나무를 다듬습니다. 집이라기엔 어설픕니다. 커다란 바위 밑에 돌로 벽을 두른 피난처랄까요. 여인과 아이들이 사내의 일손을 거듭니다. 돌과 나무를 주워 나르고, 삽으로 퍼낸 흙에 물을 붓습니다. 사내는 흙 반죽에 지푸라기를 섞어 돌벽 위에 바릅니다. 틈을 메꿔 습기와 바람을 막고, 불을 지필 아궁이도 뚝딱 만듭니다. 얼기설기 엮은 방문을 문틀에 달자 여인이 양탄자를 흙바닥에 깝니다. 장판을 대신하는 용도입니다. 세 아이가 양탄자 위에서 다리를 뻗습니다. 그러자, 사내가 카메라를 향해 말합니다. 여전히 모를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아랍어 자막 밑에 영어 자막도 함께 보입니다. “집이 없어서 산을 떠도는 이 가족에게 음식과 옷을 부탁합니다.” 사내는 오늘도, 집을 잃고 떠도는 가족의 피신처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도시에 있지 않고 버려진 땅에 있습니다.
이달 22일 치러지는 국민의힘 당권레이스가 시작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그리고 국민에 대한 사과는커녕 특검 조사마저 거부하고 있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치러지는 전당대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에도 큰 위기를 맞았지만 민심을 따라 쇄신 노력을 한 탓에 어렵게 기사회생 했고, 5년 만에 재집권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반성도 없고 쇄신도 없다. 민심과 싸우려고 작정한 듯 난폭한 역주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에게는 이번 전당대회가 마지막 승부처다. 여당 시절 윤 전대통령이 저지른 내란에 대해서 진솔히 사과하고, 이른바 ‘찐윤’ 지도부가 만들었던 탄핵반대 당론도 폐기해서 민심을 따라 궤멸직전의 보수 정치를 살려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쇄신, 혁신이란 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윤어게인’ ‘전한길’ ‘찬탄VS반탄’ ‘신천지’ ‘극우유튜버’가 국민의 힘 전당대회를 삼켜버렸다. 당연히 민심은 더 싸늘해지고 있다. 지난 달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10%대로 떨어졌다. 7월 2주차 갤럽조사에서는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에 밀렸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보수정치의 맥을 이어온 정당인데 민심이반의 속도과 깊이가 너무 가파르다. 국민의 힘 스스로 날개를 꺽어버린 탓이다. 젊은 이미지를 통해 쇄신의 모습을 보이려고 임명된 30대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당내 친윤들의 공격만 받다가 쫒겨났고, 안철수 의원은 혁신위원장으로 발표되자마자 사임했다. 다음에 등장한 윤희숙 혁신위원회는 혁신안을 내놨지만 당내 ‘윤어게인’ 세력들로부터 ‘다구리’만 당한 채 좌절했다. 대선 이후 국민의힘이 보여 준 이런 모습들이 보수 텃받인 TK에서조차 외면받는 이유다. 전당대회 당권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더 가관이다. 혁신 경쟁은 온데간데 없고 극우 성향 전한국사 강사 전한길씨 논란이 전당대회 판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씨는 부정선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극우인사로 탄핵 반대는 물론 ‘윤어게인’을 외치는 유튜버다. 그는 국민의힘 전당해회와 관련해서 “당권 주자들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 여부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당권주자들을 사상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과 조경태 의원은 ‘응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주요 당권주자인 김문수 전 장관과 장동혁 의원은 전씨 질의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한동훈 전 대표는 전씨가 “진극(진짜 극우) 감별사”라며 “(그에게) 줄 서면서 우리 당에 ‘극우가 없다’고 하는 건 국민과 당원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천지 논란’도 점입가경이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신천지 신도 10만여명이 책임당원으로 가입해서 경선 결과가 뒤집혔다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의혹 제기에 장동혁 의원은 “어떤 종교든, 어떤 생각을 가진 분들이든 국민의힘 당원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홍 전 시장은 본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정당이 일부 종교집단 교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그건 정당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집단에 불과하다"라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면서 "신천지에 놀아나고, 전광훈에 놀아나고, 통일교에 놀아나고, 틀튜버(극우 정치 유튜버)에 놀아나고 내가 30년 봉직한 그 당이 이 지경이 되다니 분하고 원통하다"고 했다. 비단 홍 전 시장 뿐 아니라 한국에서 보수정치를 해왔던 대다수 정치원로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를 맞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론에 대해 당 내부에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민주정당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 내부의 논란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다. 부디 이제라도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고 반성과 혁신 논쟁이 주가 되는 전당대회를 치르기를 권고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보수적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