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1789년 7월 11일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영우원(永祐園)을 수원의 읍치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3일에는 수원의 새읍치를 팔달산 밑으로 정했고, 10월 5일에 영우원을 수원의 옛읍치로 옮기고는 이름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정조가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여러 가지 규정을 담은 '원행정례(園行定例)'의 편찬을 명한 것은 9월 18일이다. 이때 한강을 건너는 방법으로 배다리(舟橋)의 건설도 결정했다. 정조는 1790년부터 사망하는 1800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현륭원 참배를 실천했다. 임금의 행차는 늘 경호 문제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대규모일 수밖에 없고, 한강처럼 큰 강을 신속하게 건너는데 배를 타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도 있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무덤을 영우원에서 현륭원으로 옮길 때 뚝섬나루에서 뜬다리(浮橋)를 임시로 만들어 건넜다. 전쟁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몇천, 몇만, 몇십만의 군대가 뜬다리 또는 배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넌 사례를 세계 여기저기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는 매년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배다리를 그때그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나루를 선택하여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면 됐다. 그런데 서울 도성의 남쪽에는 한강을 건너는 나루가 아주 많았다. 유명한 것만 따져도 서쪽부터 양화나루(楊花渡), 서강나루(西江津), 삼개나루(麻浦津), 용산나루(龍山津), 노들나루(露梁津), 동재기나루(銅雀津), 서빙고나루(西氷庫津), 한강나루(漢江津), 두뭇개나루(豆毛浦津), 뚝섬나루(纛島津), 삼밭나루(三田渡), 송파나루(松坡津), 광나루(廣津) 등이 있었다. 이중 서울-수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이용한 최단코스의 길에 있는 나루는 동재기나루였는데, 왜 정조는 한강을 건너는 배다리(舟橋) 건설의 최적 장소로 노들나루를 선택한 것일까? 배다리 건설 관련 내용을 체계적으로 담은 정조의 '주교지남(舟橋指南)'은 두뭇개나루(東湖), 서빙고나루(氷湖)의 장단점을 제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두뭇개나루는 물의 흐름이 잔잔하고 양쪽의 강가가 모두 높은 장점이 있지만 강폭이 넓고 너무 우회하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서빙고나루는 강폭이 좁은 장점이 있지만 남쪽의 강가가 낮은 모래사장이어서 밀물 때나 큰비에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 강폭이 넓어져 배다리를 연장해서 놓거나 부두(船槍)를 새로 증축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노들나루는 물의 흐름이 잔잔하고 깊으며 양쪽으로 언덕이 마주 대하고 있어 물이 갑자기 불어나 강폭이 넓어질 일이 없고, 강폭도 뚝섬이나 서빙고나루에 비해 ⅓밖에 안 되어 건설비용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는 이점까지 있다고 기록했다. 최단코스의 동재기나루에 비해 돌아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두뭇개나루에 비하면 우회하는 거리가 짧다. 신기하게도 서울의 도성에서 현륭원을 오가는 최단코스의 동재기나루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왜일까?. 동재기나루는 국립서울현충원의 한강가에 있었는데, 북쪽의 물가는 엄청 넓은 모래사장이어서 밀물 때나 큰비가 내려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 강폭이 넓어지는 문제가 서빙고나루보다도 더 크게 발생한다. 그래서 '주교지남'에서는 비교의 대상으로도 넣지 않았다.
25년 전 영국에서 유학할 때였다. 지도교수에게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인으로 영국 땅에 와서 교수가 되었고, 지적재산권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프로페서가 되었기에 그가 어떤 학위논문을 썼는지 궁금했다. 그는 런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제목이 “센티멘털리즘에 대하여”였다.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파이낸스와 법 대학원의 교수가 되었다는 점도 그렇고, 센티멘털리즘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고서 지적 재산권 분야 저명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당시 나로서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인공지능이 만능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AI를 투영하지 않은 분야는 없는 듯하다. AI리터러시, AI와 학문, AI와 사회복지, AI저널리즘, AI시대의 창작, AI기반 광고전략, AI로 PR하기, AI와 디자이너의 변화, AI시대 소통의 기술, AI시대의 번역, AI와 철학의 전환 등 출간된 책 제목들을 보아도 세상의 창은 AI가 되었다. 그 뿐 아니다. ‘AI윤리에 대한 모든 것’,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AI는 차별을 인간에게서 배운다’, ‘4차 산업혁명시대 AI와 일자리 경쟁 그리고 공존’ 등 인공지능 시대를 진단하며 AI로 인해 도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고자 하는 책들도 앞 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AI가 우리 삶에 밀착되면서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에서 뭔가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배우는 학문으로 일컬어지는 리버럴 아츠는 원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자유시민을 위한 학문이었다. 문법과 변증법, 수사학, 산술, 음악, 천문, 기하학의 일곱 과목이 있었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여 고정관념이나 생각의 틀을 깨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늘날 리버럴 아츠를 교육하는 학부과정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도 가르치며, 다양한 전공으로 학문적 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방대한 지식을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있게 된 지금, 왜 사람들은 리버럴 아츠에 관심을 갖는 것인가? 각 분야마다 AI와의 융합을 모색할수록 AI의 미래와 실체는 더 모호해지고,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닌지.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철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넥서스」(2024)에서 인류 역사를 정보 네트워크로 분석함으로써 AI의 실체에 대해 탐색해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우리가 과연 호모 사피엔스인지 질문하며, 왜 우리는 정보와 힘을 축적하는 데는 뛰어나면서 지혜를 얻는 데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해 온 것은 우리가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nexux)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AI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유기적 정보 네트워크에서 비유기적 정보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은 인간의 뇌에 의존해 정보를 처리해왔지만, 실리콘 기반의 컴퓨터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난 3월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강연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AI는 인간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며, AI는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역사는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AI시대를 열어가는 지금, 리버럴 아츠를 통한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 감수성과 창의력이 어떻게, 왜 중요한지 공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검찰은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자택과 은신처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검찰은 현금 5만 원권 3천 300매, 1억 6500만 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그런데 이 중 5000만 원 뭉치가 검찰의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전액 신권이었고 비닐로 포장돼 있었는데, 포장 겉면에는 한국은행 표기와 함께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일련번호, 비코드가 찍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또한 포장일시도 ‘2022-5-13 14:05:59’로 찍혀 있었다. 이 날은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식이 있은지 3일째 되는 날이다. 한국은행 발권정보 스티커가 붙은 신권 뭉치는 ‘관봉 신권’이라고 해서 일반인은 구경도 할 수 없다. 한국은행이 일반 은행에 현금을 줄 때만 사용된다. 한국은행도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 질의에 "해당 포장 상태는 금융기관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전 씨는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고, 일부는 검찰이 수사 중이다. 그러나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 소유는 부정한 자금 수수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반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를 무속인 전씨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고, 권력기관 과의 관계를 배제하고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누가 언제 어떤 사유로 전씨에게 5000만 원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을 전달했는지 조속히 밝혀햐 할 것이다. 또한 검찰은 전 씨가 통일교 전직 간부 윤 모씨로부터 거액의 부정한 자금을 수수하고,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해 달라며 건낸 6000만 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수령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전 씨는 윤 씨로부터 대통령 부부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고 한다. 윤 씨가 2022년 3월 윤 전 대통령 당선인을 1시간 독대했다고 공개한 적이 있는데, 전 씨가 이를 주선했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목걸이 수수는 그 이후 시점이다.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김 여사가 6000만 원대 목걸이를 착용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이 “빌린 것”이라고 했는데, 윤 씨가 전 씨에게 “빌리지 마시라”며 목걸이를 전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 씨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은 것은 인정하고 있으나, 잃어버렸다는 황당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의 목걸이를 분실했는데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았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전 씨는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도 언제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버티고 있다. 지난 대선 때부터 알려진 것처럼 전씨는 김 여사의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 직함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무속비선’ 논란이 불거져 조직이 해체됐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캠프의 한 본부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실세로 불려지기도 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 힘 내부에서는 건진법사가 정권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간 전 씨는 친윤 핵심 의원들에게 인사와 공천 청탁을 한 정황이 잇따라 확인됐을 뿐 아니라 그의 휴대전화엔 대통령실 행정관은 물론 공공기관 임원·검찰·경찰 인사 청탁 문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전 씨는 윤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와 10차례 통화했는데, 12·3 비상계엄 이후에도 47분 간 통화한 기록이 확인되는 등 이른바 ‘법사폰’을 검찰이 복원한 뒤 터져 나오는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속 비선’ 건진법사의 행적이 드러날수록 지난 3년간 도대체 누가 국정을 운영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검찰은 현재 드러나고 있는 수 많은 건진법사 의혹들이 권력형 범죄에 해당한다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 바닥까지 떨어진 검찰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관련자들을 엄벌하길 기대한다.
지난주 우리 대학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미국 뉴욕의 데모크라시 프렙 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대학을 방문하여 시설도 탐방하고 한국의 식문화도 체험한 후, 학부 학생들과 함께 언어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특히 두 학교의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서울 시내 특별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일정한 시간 동안 한국어를 사용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과제를 완성하는 한국어 몰입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 뜻깊은 교류의 장이 되었다. 참가자들 모두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하게 될 것 같다며 이런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소감을 남겼다. 한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오고 싶은 꿈이 생겼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 작은 만남이 이 자리의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미래의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될 작은 씨앗 하나 심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석 달 동안 미국의 선생님과 연락하며 행사를 준비한 필자 입장에서도 보람과 기쁨을 느낀 시간이었다. 데모크라시 프렙 고등학교(Democracy Prep High School)는 뉴욕 맨해튼 북부 지역에 위치한 공립형 차터 스쿨로, 전교생이 3년간 한국어를 필수로 이수해야 하며 졸업 시 뉴욕주에서 시행하는 한국어 졸업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매년 학년별로 글로벌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어 교육과정 마지막 학년인 11학년은 1주일간 한국을 방문한다. 이 프로그램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우수한 학업 성적뿐 아니라 모범적인 태도와 성실함, 활발한 봉사활동 등 전인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한국 방문은 인기가 많고 선발되기도 쉽지 않다. 청소년기에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삶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이 평생의 언어 학습으로 연계되고 해당 국가로의 유학과 취업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에 대한 해외 각국의 관심은 해당 국가 청소년들의 자발적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것이 정교한 정책과 연계된다면 언어문화 교류의 지속적인 확산과 발전은 물론 국가 간 상호협력의 든든한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교육 현황을 살펴보면, 2023년 기준 47개국 2,154개교에 한국어반이 운영되고 있고 20만 명이 넘는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는 국가가 24개국이고 대입시험에 채택하고 있는 국가도 10개국에 이른다. 2014년만 해도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학교 수가 1,111개교, 제2외국어 채택 국가가 11개국, 대입 과목 채택 국가가 4개국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정부의 해외 현지 초‧중‧고등학교 한국어반 개설 지원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9년 미국 대상 사업이 처음이었고, 이후 2004년부터 호주와 캐나다 등지로 지원이 확대되었다. 2011년에는 태국 내 학교에 한국어 교원이 최초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2017년부터는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파견 대상 국가가 확대 시행되고 있다. 체계적인 한국어교육을 위해 2021년 해외 초‧중등학교 한국어 교육과정 및 교재 개발 보급 사업이 추진되었고, 2024년 기준 총 30개국에 48만 권의 초‧중등 교재가 보급되었다. 필자 역시 인도 중고등학교 한국어교재 개발 사업에 3년간 참여하여 해외 청소년 대상 한국어교육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해외 현지 정규 교육기관 대상 한국어 보급 사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한국의 교육기관과 언어문화 교류 확대를 희망하는 해외 현지 학교들은 많은 것에 비해 국내외 교육기관 간 네트워크가 부족하여 내실 있는 프로그램 운영이 부족하다는 점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지 한국어반 개설은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데 비해 현지 초‧중등학교 한국어 교사가 부족하다는 점, 교재 개발 보급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지역별, 언어권별, 학습자별 특수성과 여건을 고려한 차별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이 부족하다는 점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제9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해외 초‧중등학교 한국어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어교육이 한국과 상대국의 교육‧문화 교류에 기여한다는 전제 하에 해외 한국어 위상 제고 및 글로벌 親한‧知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몇 가지 추진 과제를 선포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당면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지 학계와 교육 현장,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4월이 가고 있다. 봄은 천지에 완연해지고 꽃은 누리에 화사하다. 봄과 꽃, 이 둘은 서로 어떤 인과로 이어지는가. 봄이 되어서 꽃이 피는가. 꽃이 피어서 봄인가. “그게 그거지, 아무튼 봄은 봄이다,”하고 말 것인가. 하지만 자분자분 짚어 보면 좀 다르다. 꽃을 지각(知覺)하는 우리 마음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서 꽃이 피는 건’ 자연의 법칙에 해당하는 것이고, ‘꽃이 피어서 봄을 느끼는 것’은 심리적 지각에 가깝다.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감흥이다. 감흥이란 아름다움을 느끼는 즐거움의 일종이어서, 누구나 그 감흥을 더 확장하고 싶을 것이다. 세상 꽃을 다 내게로 당겨오고 싶을 것이다. SNS에 사진 콘텐츠들이 왕성하게 소통되면서 봄이 되면 휴대전화 안에도 꽃이 그득하다. 산과 들의 꽃들, 골목과 갓길의 꽃들, 옆집 담 너머의 꽃들, 정원과 마당의 온갖 꽃들,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의 꽃들, 그리고 실내 탁자 화병에 담아 둔 꽃까지, 꽃은 도처에 있다. 이런저런 꽃의 표정과 자태가 휴대전화 안에서 요란하게 오간다. 먼 산의 꽃은 넉넉한 울타리처럼 바라볼 수 있어 좋다. 들녘에 하늘거리는 꽃은 멀리서도 고운 눈길 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그걸로 성이 차지 않는다. 자꾸만 꽃을 내 몸 가까이 두고 싶다. 꽃사랑에 대한 자기 애착도 깊어진다. 아파트 베란다에도 화분 사서 채우고, 방안에는 꽃꽂이와 꽃다발이 들어오고, 꺾어서 자른 꽃들은 식탁 화병에 꽂혀 얼굴을 맞댄다. 이렇듯 꽃도 소유의 대상이 되는 지점, 꽃사랑이 꽃 자랑과 꽃 호사로 넘어가는 어떤 지점에서 꽃의 ‘미적 의미’는 밀려나고 ‘욕망의 기호’로 변전한다. 우리는 꽃을 얼마나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자연의 섭리 속에서 꽃도 그 존재가 자유롭고, 우리 인간의 시선도 자유로울 수 있는 거리는 어떤 거리인가. 거리를 두고 대상을 본다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집착과 욕심은, 거리를 몰아내고 무조건 가까우려고만 한다. 거리는 그 자체에 어떤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그걸 ‘미적 거리(Aesthetic Distance)’라고 말한다. 이는 물론 심리적 거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꽃을 바라볼 때, 얼마나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은가. 천재 시인 소월(素月)은 그의 시 ‘산유화(山有花)’에서 이런 구절을 던져 준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저만치’라는 거리는 먼 거리인가 가까운 거리인가. 한국 사람들이 ‘저만치’라고 했을 때는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상당히 떨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저만치’는 심리적으로는 꼭 그렇지는 않다. ‘저만치’는 참으로 오묘한 거리이다. 한국인의 심리적 거리로 ‘저만치’는 아름다워서 넉넉한 거리, 넉넉해서 아름다운 거리일 수 있다. 소월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을 사랑하라(바라보라)고 한다. 꽃을 사랑하되(바라보되) 저만치 혼자 있게 하라 한다. ‘저만치’는 어떤 거리인가. 꽃으로 표상되는,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를 향하는 마음의 거리이다. 너그럽게 바라다보고 오래 마음의 상으로 남길 수 있으려면 ‘저만치’의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저만치’는 집착을 털어내는 거리이고, 동시에 내 마음 안에 어떤 영원성을 심는 거리라 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의 정책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청년 해외진출기지 지원사업(이하 청진기 사업)’이다. 지난 2023년 시작된 이 사업은 해외 창업의 꿈을 가진 인천지역 청년들의 외국 시장 진출을 적극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의 꿈과 역량이 있지만 제품개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 창업가들이 성장 잠재력이 높은 다른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인천은 전국에서 청년창업자 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성공률은 낮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0명의 청년 창업가 중 약 7명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다고 한다. 이에 인천시는 청년 창업 발굴과 확대가 필요함을 절감, 청진기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2023년 10개 기업을 시작으로 매년 지원기업과 진출지역을 확대, 2026년까지 총 100명의 청년(예비) 창업가를 발굴, 해외에 진출시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첫해는 친환경 바이오소재 생산 기업(기계·소재)을 비롯해 에너지·자원기업, 정보·통신 기업 등 다양한 기업이 선정됐다. 지난해엔 총 12명의 청년 창업가들이 미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국가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인천시가 기업별 맞춤형 컨설팅,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기업당 최대 1억 원의 사업화 자금 지원, 현지 시장조사 및 파트너 발굴·매칭 등 다양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는 등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가시적인 성과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과 베트남에 2건의 해외 법인을 설립했고, 33건의 업무협약(MOU) 등을 체결했으며, 약 201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 57만 7525달러의 해외 수출, 72건의 특허 출원 및 등록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시는 올해도 ‘2025년 청진기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해외 진출 희망 청년 (예비)창업가 25명을 모집한다. 아시아 대륙의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전문 창업기획자와 협약도 체결했다. 전문창업자의 해외 진출 지원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청년 창업자들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1:1 지원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청년들의 다양한 해외 진출 기회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힌다. 특히 단순한 창업지원을 넘어 국제무대에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는 그동안 청년 창업 챌린지 지원, 청년 소셜벤처 육성 및 청년 창업 성장 플러스 지원 등을 실시해 왔다. 아울러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 및 청년창업기업 통합마케팅을 지원하고, 청년 사회가치경영(ESG) 스타트업 발굴 육성 등 청년 창업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관내 9개 대학, 인천테크노파크와 함께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한 ‘대학주도형 청년창업 플랫폼 조성’ 업무협약을 맺고 ‘인천 대학연합 창업아카데미’와 ‘인천 대학 청년창업펀드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수한 대학창업 기업과 대학생 창업동아리 등의 해외진출도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열리는 제2회 인천 대학 연합 창업아카데미는 규모를 13개 대학, 200여 명으로 늘려 지원한다. 창업아카데미 우수 참가팀에겐 상금과 사업화 자금을 지원한다. 인천 대학 청년창업펀드 1·2호도 조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투자를 받기 어려운 창업 초기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돕기 위한 사업이다. 지역 대학, 창업지원기관 등이 청년들이 창업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청진기는 인천 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 중앙정부에서도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사업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원대상이 한정돼 있고 지원기간 역시 너무 짧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만큼 사업이 보다 확대되면 좋겠다.
“고향이란 버리기로 했다 일년에 몇 번 역마당에 서성대기도 했지만 끝내 고향이란 버리기로 했다. 돌을 깨어 오늘을 먹고 내일을 기다릴 뿐 손 끝에 스며드는 한기도 탓하지 않기로 했다. 고향이란 버리기로 했다.” 이 시는 내 친구 윤백이가 알려 준 시다. 그가 고등학교 때 내게 알려준 시인데 아직도 내 머릿속 한쪽 구석 폴더에 안전하게 자리잡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읊어 보는 시다. 그의 시가 아니라 그가 알려준 시다. 이 시의 작가는 그의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그 국어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그 선생님의 시를 공책에 정자체로 베껴놓고 줄줄 외어 자랑하듯 내게 알려주곤 했다. 그는 말 그대로 문학 소년이었다. 당시에 고등학교 2학년부터 이과반과 문과반을 나누었는데 내 친구 윤백이는 문과로 갔지만 가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이과반인 나를 찾아와 또 그렇게 자랑하며 시를 읊어대곤 했다. 그런 그 친구를 나는 무척 좋아했다. 사실 1학년 때 그를 만나 같은 지역의 친구가 되었고 친분이 두터워져 나는 그에게 내가 다니는 성당을 소개했고 그도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하여 내가 대부를 섰고 세례를 받게 하여 내가 그의 대부가 되었다. 대자 대부의 관계는 친구 이상의 관계이고 대부로서 책임감도 생기는 관계이다. 우린 그렇게 우정을 더욱더 쌓아갔고 그가 대학을 갔고 나는 재수를 하게 되어 만남이 뜸해졌고 서로의 관계는 소원하게 되었다. 그는 똑똑한 친구였고 공부도 잘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여자를 만났다고 했고 어느새 미국에 있는 삼촌의 초대로 미국으로 이민도 갔다. 그렇게 그는 열심히 잘 살았다. 아니 내가 그는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퀀텀 점프하여 나는 예수회 입회하여 양성 과정 중에 신학 공부를 하러 미국 버클리로 갔다. 당시 윤백 부부는 딸을 낳아 키웠고 둘 다 로스앤젤레스시 공무원이 되어 있었다. 미국 동포 사회에서 부부가 주류 공무원이 된 이 부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방학이 되어 그가 나를 초대했을 때 나는 너무 기뻐 기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작은 집이었지만 갓난아이와 부부는 열심히 사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점검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나는 천주교 수도사제가 되었고 들려오는 소식으로 그는 미국에서 이혼을 했고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고 들어와 있었다. 그 시점에 한 번 만나 서로의 삶에 대해 나눴는데 글쎄 나이가 나이니 만큼 서로의 생각은 많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했고 대화 중간 중간 언쟁 비슷한 것도 했다. 나의 마지막 대사는 이랬다. “너 조선일보 끊고 머리 속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나 만날 생각하지 말아!” 나는 사제로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나른 미약한 힘이지만 보태려고 애쓰는데 이런 나의 모습을 조롱하며 웃었다. 어디서 그런 무례한 태도가 나오는지 너무 놀랐지만, 이 녀석이 미국에서 이혼하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삶의 무게로 심기가 복잡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중간에 어떤 한 이슈에 대해 조선일보에서 이러저러하게 썼다는 것을 근거로 아주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아~! 이것은 세뇌당한 것이구나~! 그 후 또 시간이 흘러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그는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열심히 땀 흘리며 살고 있다고. 아, 내 대자가 노가다를 뛴다고!!. 나름 대학을 나오고 공부도 잘해 이민을 가서 미국 공무원이 되었던 녀석이 어떻게 노가다를 뛰고 있을까? 그 후 술 취한 소리로 내게 전화를 하곤 했는데 그것도 벌써 5, 6년 전 일이다. 얼마 전 4월 16일이 지났다.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치킨을 시켜 먹던 무뢰배들, 그리고 지난 1월 19일, 서부지법에 난입했던 젊은이들 그리고 지금 노가다를 뛰고 있을 윤백이가 겹쳐 보인다. 거짓 언론에 속아 넘어가 폭삭 망한 이들. 한없이 슬프다. 신발끈~!!
몇 달 전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선이 성큼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한다. “좋은 정부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가.” 영화 콘클라베에서 로렌스 추기경은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죄로 확신을 꼽는다. 확신이야말로 통합과 관용의 적이라고 하면서 그는 “의심할 수 있는 교황”을 위한 기도를 제안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교황의 자리에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의사결정권자를 대입해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확신하는 대통령보다 의심하는 대통령이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비도덕적 선택을 내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평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윤리적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심적 기술을 동원하는데, 이를 ‘중화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중화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람은 비도덕적 행위를 하면서도 나 자신이야말로 피해자라거나, 사실 어떠한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거나,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거나, 세상이 자신에게 부당한 책임을 전가되고 있다거나, 헌법과 같이 보다 높은 가치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익숙한 말들이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여러 정치인에게서부터 자주 듣는다. 중화의 기술은 비도덕적 의사결정이 유일무이한 선택지였다고 합리화하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선택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돕는다. 양심의 저항이 차단되고 자신의 비도덕적 선택을 도덕적 결정으로 확신하게 되어버렸을 때 도덕성을 회복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자기 확신 속에서 자신은 원대한 가치의 수호자가 되고, 피해자는 얼마든지 원망하고 탓할 수 있는 악마가 된다. 대통령 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은 그를 둘러싼 정보망을 함께 선출하는 일이다.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 개인이더라도, 대통령의 의사결정은 집단의 정보에 근거한다. 비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집단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비도덕적 결정을 합리화한다. 집단의 도덕성을 맹목적으로 믿고, 적대 집단을 악마화하고, 자신들이 만장일치에 도달했다고 믿는다. 어빙 제니스는 이를 ‘집단사고(groupthink) 증상’이라 불렀다. 응집력이 높고 갈등이 드문 집단에서 집단사고 증상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거나 지도자가 일방적 리더십을 보인다면, 집단사고에 빠져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독선적 지도자는 내집단 사람들로 주변을 채워 반대 의견은 멀리한 채 집단사고 증상에 빠지기 마련이다. 요컨대 의심하지 않는 지도자가 집단사고를 자초한다. 그러니 로렌스의 기도는 탁월했던 셈이다. 의심하는 지도자야말로 귀하다.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마치 답을 아는 듯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위험하다. 국민을 섬기는 자가 겪을 가장 고된 일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회의하고 의심하는 일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지도자와 그의 의심을 도울 정부가 구성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의심하는 정부와 길들여 지지 않은 이견이 필요하다.
경기남부경찰청은 평택을 중심으로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발·운영하며 전국 9개 성인 게임장을 개설해 범행을 저질러온 조직원들을 무더기로 검거했다. 이들은 지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용해 게임장 개설 비용을 빌려주고, 수익 대부분을 자신이 차지하는 착취 구조로 불법 도박사이트 조직을 운영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이다. 특히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청소년층 도박 확산을 근절하기 위해서도 불법 사이트·계좌 차단과 더불어 상시감시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21일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불법 도박 장소 개설 등의 혐의로 총책을 비롯한 총 19명을 검거해 이 중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22년부터 평택 등 전국 9개소에 회원 1300여 명, 도박입금액 약 155억 원 규모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의자들은 신축 오피스텔과 아파트에 본사 사무실을 구축하고, 단속 정보를 공유하거나 사무실을 수시로 이전하며 경찰 수사를 피해 왔다. 경찰 수사 결과 범인들은 일반적인 성인 게임장과 달리 총책이 개발한 도박사이트를 각 게임장에 연계해 온·오프라인으로 병행하는 신종범죄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러한 방식은 총책에게 모든 수익이 돌아가는 독식 구조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이 수익이 낮을 경우 지역 업주들을 본사로 불러 폭언과 욕설로 압박하며 수익 창출을 극대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계좌 분석 등을 통해 추적에 나섰고, 결국 운영진 및 전국 게임장 업주 등 조직원 전원을 일망타진하는 데 성공했다. 검거된 불법 도박 범죄혐의자들의 범행 상대는 주로 성인들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문제가 가장 심각한 도박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속절없이 빠져들고 있는 청소년 불법 도박 실태다. 일반적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청소년이 사행심에 빠져서 음울한 일상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청소년 불법 도박은 국내·외에서 운영되는 적지 않은 불법 도박 사이트에 의해서 자행된다. 인터넷 이용률과 스마트폰 보유율이 급증하면서 청소년이 온라인 불법 도박에 노출될 가능성도 한결 높아졌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실시한 ‘2024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청소년 1만 3368명 중 4.3%가 도박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2024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도박을 계속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19.1%에 달했다. 끔찍한 것은 도박을 경험한 청소년 8명 중 1명은 불법 대출의 덫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성별로는 남학생(5.8%)이 여학생(2.6%)에 비해 도박 경험률이 높았으며, 교급이 올라갈수록 경험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청소년 응답자 18.5%는 도박을 ‘재미를 얻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인식했다. ‘호기심으로 도박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도 13.8%에 달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적발해낸 불법 도박 사이트 같은 경우도 조금만 방치하면 청소년들에게 파고들어 청춘 파탄을 조장해 애먼 희생을 파생할 개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불법 도박사이트 근절을 위해서는 공급자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들은 “정부가 말하는 사이트 차단이나 폐쇄는 VPN 우회 앱으로 충분히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도박사이트 총책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는 대포 계좌밖에 없으므로, 결국 자금줄인 계좌를 막아 영업 자체를 못하게 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의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을 상시 감시하고 운영자 처벌, 사이트 차단, 범죄수익 환수를 철저히 할 것”이라는 각오를 응원한다. 지속 가능한 정책과 철두철미한 예방조치만이 백해무익한 도박문화를 근절할 수 있다.
“길을 걷는 것조차 불안하다”는 도민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규모 땅꺼짐 사고,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현장 붕괴, 주택가 인도에서의 싱크홀까지. 불과 한 달 사이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지반침하 사고가 잇따랐다. 이는 단발성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이는 땅속 위기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음을 알리는 분명한 경고다. 지반침하를 더 이상 ‘예외적 사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는 지반침하 사고에 대한 사전 예방과 예측 중심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지반침하를 ‘예측가능한 재난’으로 보고 정책과 기술을 결합해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시민이 싱크홀 위험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지역을 지도화함은 물론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훈련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매년 ‘지반침하지역 보고서’를 발간하여 지반침하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영국은 NUAR(국가지하자산등록제)를 통해 지하 인프라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국가차원의 정책적 노력과 기술적 기반의 결합을 통해 예방중심의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경기도민이 딛고 서 있는 경기도의 땅은 안전한가? 최근 7년간(2018~2024년) 경기도에서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는 총 303건. 그중 절반 가까이가 부천·고양·화성시 등의 인구 밀집 도심 지역에서 발생했고, 사고는 주로 우기철과 해빙기, 집중호우 기간에 집중됐다. 주요 원인은 하수관 손상(약 40%)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짐불량과 부실한 굴착공사도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지반침하 사고에 대응할 경기도의 현실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이다. 현행 ‘지하안전법’에 따르면 지하시설물에 대해 연 1회 이상의 지반침하 육안조사와 5년마다 1회 이상의 GPR(지표투과레이더) 탐사를 통한 공동(空洞)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고가의 GPR 장비를 가진 시군은 도 내에 단 한 곳도 없으며, 명확하지 않은 지하시설물의 위치, 관리주체가 다른 지하시설물에 대한 미지로 지하시설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도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4월 15일 제383회 경기도의회 제2차 본회의에서 ‘경기도 지하안전 관리 및 유지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최종 통과됐다. 조례 개정을 통해 그동안 정책적 운영에 그쳤던 ‘경기도 지하안전지킴이 제도’가 명문화되어 제도적 틀을 갖추게 되었으며, 도지사에게 지하개발사업 현장에 대한 점검과 자문 책임이 부여되었다. 또한, 경기도와 시군, 관계기관이 협의체를 구축해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특히 GPR탐사 등의 지반침하 발생에 대한 기술지원도 하도록 했다. 경기도는 이 조례를 기반으로 시군의 수요를 파악해 GPR탐사 장비를 도입하고, ‘경기도 지하시설물 안전관리 협의체’ 운영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으로 칭찬할 만한 신속한 대처다. 지반침하 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래된 하수관, 무리한 굴착공사, 예산의 현실에 가로막혀 손을 놓고 있는 순간들이 누적된 구조적 위기가 싱크홀로, 공동(空洞)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하면 언젠가 반드시 드러난다. 정치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은 이처럼 일상에 숨어 있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일이다. 이번 조례 개정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예방을 제도화하는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식의 ‘사고 이후’가 아닌 ‘사고 이전’의 대응으로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 걸음에 우리 의회가 함께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