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9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범도민추진위는 가평군에서 ‘육아·돌봄 자립마을’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 중 하나는 '맘카페를 통해 살펴 본 육아·돌봄의 어려움들'이었고, 발제문에는 1주일간 맘카페의 회원들에게서 받은 가평군에서의 육아의 어려움들이 담겨 있었다. 발제를 한 채선미 대표(가평토종씨드림)는 제기된 내용들을 행정 서비스 부족, 시설 부족, 불공정의 세 범주로 나눠 분류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내용이 어린이를 위한 시설의 부족이었다. 산부인과, 소아과, 소아치과 병(의)원 시설이 없다는 점을 비롯해 인근 화천과 포천에는 있는 지자체 직영 온종일 초등학생 사교육 대체 교육·보육 시설이 필요함을 제안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과 체육공원에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없고, 있어도 가평읍에 집중되는 불균등한 행정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발제자는 자신의 딸을 유·초·중·고 가평군에서 기른 사람으로서 자신이 아이를 기르면서 느꼈던 어려움들, 제기했던 문제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인 사실에 크게 개탄하며 이로 인한 가평군 유소년 인구의 감소를 데이터로 제시했다. 2020년 10월 기준 0세~4세의 인구와 5년 뒤인 2025년 10월의 5세~9세의 인구를 비교하니 총 51명이 줄어 있었다. 아이가 아파도 바로 갈 병원이 없고, 교통편도 여의찮아 골든 타임을 놓칠 위험이 있고, 먼 거리 택시를 타고 가는 교통비도 부담이니 가평군을 떠나는 상황이 생기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이 된다. 발제자는 2024년 기준 가평읍이 유소년 인구가 2.9% 늘어난 것에 비해 다른 5개 면의 유소년 인구가 총 60.51% 줄었다는 점을 제시하며 “가평읍으로의 불균형한 지원은 가평읍으로의 인구 집중을 불러오기보다는 가평군 밖으로의 전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자녀와 함께 그 부모도 전출하고 결국 경제활동인구의 유출로 이어짐을 걱정했다. 이 발제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한 나는 토론문 작성을 위해 자료를 찾다가 마침 12월 16일 개최되는 '경기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 변경안(가평군) 공청회 개최 공고'를 접하게 됐다. 가평군이 올해 3월 접경지역으로 새로 지정되면서 발전종합계획으로 만든 32개 신규사업에 대한 공청회다. 나는 이 사업 중에 앞서 언급한 육아맘의 고충을 해결할 사업이 있는지 살펴봤다. 놀랍게도 32개 신규사업 중 맘카페에서 언급했던 내용은 물론 어린이를 특정해서 계획된 사업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공공의료기관(군립의원)’이 소아과, 소아치과, 산부인과가 운영된다면 다행이지만 아직은 미지수다. 가평군 발전을 위해 이모저모 고려하며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이 사업 목록 속에서 어린이와 육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어린이는 그저 어른에 부속된 존재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경계, 접경은 군사적 접경만이 아니었다. 기존 어른 중심의 경계를 넘지않고 초고령사회이자 인구소멸위기 지역인 가평군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맘카페 회원들에게 16일 열리는 공청회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가능하면 참석도 하라고 제안했다. 아이를 갖고, 낳고, 기르는 것이 가슴 설레고 행복한, 그렇게 생명과 평화의 기운이 넘치는 접경지역 가평군이 되길 기대한다.
지난 주 미국 백악관의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이 공개됐다. 트럼프 2기 정부의 4년 단위 대외전략을 규정한 최고 문서로서, 그에 따라 국방전략(NDS)과 합참 군사전략(NMS) 등 각급 기획문서와 연례 국방예산 등 보고서가 작성된다. 이번 NSS는 2022년 발표된 바이든 정부나 2017년의 트럼프 1기 정부 보고서에 비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가 극도로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NSS에서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원칙으로 국가이익, 힘을 통한 평화, 불간섭주의, 세력균형 등을 열거하고 있고, 대규모 이민의 종식, 자국의 핵심권리 보호, 방위비 분담 및 전환, 경제안보 등을 우선적 과업으로 제시한다. 지역별 전략으로는 중남미 국가에 대해 19세기 먼로독트린의 ‘트럼프 추론’(Trump Corollary)이라면서 국경안보 차원에서 강압 외교를 정당화하고, 유럽에 대해서는 역내 및 대러시아 관계 안정화, 방위책임 제고, 시장 개방 등을 통한 위상 회복을 언급하고 있다. 종래의 NSS가 중국의 경제·군사적 위협과 그에 대한 강력 대응을 강조한 데 비해 이번 대중국 전략은 조금 모호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견제와 재균형(rebalancing)을 강조하지만, 역내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함께 적시함으로써 직접적 대응은 덜 강조하는 분위기다. 군사적으로도 대만해협 불안정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분쟁을 예방하고 일방적 변화를 반대한다고 기술했다. 일본,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제1 도련선 방어가 중요하지만, 이 역시 한·일 등 동맹국의 방위비부담과 책임 증대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적시했다. 요컨대 이번 NSS는 국내정치적 고려와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트럼프식 외교안보 스타일이 반영된 문서로 평가된다, 올해 내내 진행된 관세전쟁의 결과와 함께 지난 10월 중동 및 ASEAN 순방, 경주 APEC 계기 미중 정상회담 개최 등 외교 노력이 그대로 수록됐다. 또 아직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북한 핵문제나 한미동맹 현대화 등 주요 안보 의제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를 포함한 이슈는 후속 문서나 각급 문건을 통해 구체화될 것이다. 제1 도련선 방위에서의 동맹국 기여가 강조된 NSS 공개 후 한미동맹의 지역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요며칠 일본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해협 발언으로 중일간 분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사실 최근의 한미간 문서에서 이 문제는 원론적으로 다뤄졌다. 한미정상회담 팩트시트에서 양 정상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독려하고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였다.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는 그 중 현상 변경 반대 문구가 빠졌다. 그런데, SCM 공동성명에는 지역안보와 관련해 주목되는 표현이 있다. 즉, 양 장관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한 동맹의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전력 및 태세 수준을 계속 유지할 것임을 재확인하였다는 부분이다. 이는 한미동맹의 오랜 현안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더불어 한미동맹의 지역 역할 확대를 시사할 수 있어 NSS 후속조치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대응이 필요하다.
경기도교육청이 매년 800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 ‘무상교복’ 정책이 제도 미비로 인해 사실상 해외 공장 지원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남아에 대형 생산시설을 둔 특정 외국산 교복업체가 학교 입찰에서 독주하는 동안, 국내 공장은 폐업·구조조정으로 급속히 무너지는 상황이다. 제도 개선을 통해 혈세가 해외로 줄줄 새 나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교육 당국은 국내산·외국산을 구분해 관리할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마땅할 것이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은 2019년 이래 무상교복 정책에 매년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올해는 중·고등학교 신입생 1명당 40만 원을 지원해 총 816억여 원을 투입했다. 그런데 이 세금은 대부분 외국산(인도네시아산) 교복업체의 수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상 교복을 수주한 해당 업체는 올해만 경기도에서 90억 원, 전국에서 18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경기도 기준 2020년과 비교했을 때 125% 증가한 금액으로, 매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무상교복 지원금의 상당수가 인도네시아 의류 공장의 수익으로 직결되는 셈이다. 2017년에 사업을 시작한 외국산 업체가 빠르게 시장을 과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금 유출을 방지하는 경기도교육청의 장치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현재 교복 구매는 교직원·학부모·학생 등으로 구성된 교복선정위원회가 직접 업체와 계약하는 ‘학교주관구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계약 업체를 정할 때 적용하는 경기도교육청의 가이드라인이 국내산과 외국산을 가려낼 변별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원산지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큰 점수를 감점해 입찰에서 배제함으로써 국내산 업체를 보호하는 기준을 둔 교육청은 인천시교육청이 유일하다.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이 같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 모든 지역에서 똑같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2단계 평가는 ‘블라인드 심사’여서 원산지와 업체명을 확인할 수 없다. 전문가가 아닌 교복심사위원회가 국내산과 외국산의 품질 차이를 판별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외국산 업체가 원산지를 대한민국산으로 표시했다가 실제 납품 시점에 인도네시아산으로 바꾸는 ‘원산지 바꿔치기’ 사례도 즐비하다. 결과적으로 단가가 국내산보다 약 30% 저렴한 외국산 업체가 학교 입찰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조인 것이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재’ 산업은 국내산 운용이 일반적이다. 세금을 들여 자국 내 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복, 군복, 소방복과 같은 공공성을 띤 의상 산업도 이 원칙을 준수한다. 교육부 역시 교복을 공공재로 보고 가격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부터 교복을 의무화한 프랑스가 자국 내에서 생산한 교복만 허용해 일자리 창출 효과를 도모하고 있는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17년 외국산 교복업체가 최저가 낙찰 경쟁에 뛰어들면서부터 기존 국내산 업체들의 매출은 급락했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국내 섬유·봉제 공장 23곳 중 3곳이 폐업했다. 전국 근로자 1641명 중 496명(30%)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기도에서도 52명(31%)이 실직했다. 국내 공장 대다수가 대규모 적자를 떠안고 있으며 폐업 위기에 놓여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해외 상품의 저가공세 쓰나미에 휩쓸려 국내 산업이 초토화되는 상황은 어제오늘의 낭패가 아니다. 적어도 혈세가 투입되는 소비만큼은 국산이 우선권을 갖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하루빨리 허술한 시스템을 촘촘히 정비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이 입는 교복까지 외국산에 점령당하는 모순은 개선돼야 할 것이다. 최소한 ‘무상교복 지원’만이라도 ‘국산’의 자존심을 지키도록 개선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의 중령계급이었다. 비교적 낮은 계급이었지만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나치 수뇌부를 재판한 뉘른베르크 법정에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유태인학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실무 책임자였기에 반드시 심판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점령한 지역마다 수거(?)된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에서 생활하다가 유럽 전역에 있었던 아우슈비츠 같은 유태인수용소로 이송되어 차례대로 가스실에 들어가 학살되었다. 이때 아이히만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가장 적합한 수용소로 그들을 이송하는 열차 시간표를 작성해 유대인에게는 누구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전후 당연히 체포되었어야 할 그는 사라져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15년을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정보력과 끈질김으로 무장한 이스라엘판 국정원이 모사드에 걸려 1960년 체포 납치되어 이스라엘의 전범 재판에 넘겨졌다. 마침 히틀러를 피해 미국에 망명해 연구 생활을 하던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 잡지사 뉴요커에서 법정 취재기를 청탁받고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아이히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렌트는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인 그는 굉장히 험악하고 잔인하게 생겼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법정에 들어온 아이히만은 뜻밖에 너무나 평범하고 왜소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죽이지 않았다며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충실한 공무원이었을 뿐이라며 변명했다. 심지어 자신은 명령에 잘 따른 모범적인 공직자였으므로 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여성 정치철학자인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무죄 주장에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명령에 따르기만 했던 죄가 가장 큰 죄라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주장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은 우리 곁의 누구에게도 평범하게 작동될 수 있다는 이 개념은 지금도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영혼 없는 공직자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아무리 명령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의식도, 생각도 없이 심지어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크나큰 악행임에도 그대로 따른다면 그것은 중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가 지지부진하더니 결국 1년을 넘겼다. 과정에서 우리 사회 소위 엘리트라는 자들의 속성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부하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기는 비굴하기 짝이 없는 내란 수괴와 블랙 아웃되어서 아무런 기억도 안 난다는 전직 총리와 입만 열면 거짓말로 면피하고자 하는 방조 내지는 협조자들이었던 전직 고관들, 악에는 아무 소리도 못 하면서 국회의 권한인 입법으로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시도에는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 사법부의 독립만을 외치는 판사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악에 둔감한 것일까. 진정으로 이들에게 공적인 마인드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 윤과 같은 한심한 지도자가 있어야 지금까지 누렸던 이권이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이런 악이 평범하게 우리 곁에 있었는지를 알게 되니 갑자기 한국 사회가 무섭고 공포스럽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던 아이히만은 사형제를 부활시킨 이스라엘에서 교수형 뒤 화장되어 지중해에 뿌려졌다. 영원히 쉴 그의 안식처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십여년 전 필자가 철도노조에서 전임자로 일할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거대한 중량물이 고속으로 내달리는 철도현장은 한 해에 20~30명의 순직자가 발생하던 살벌한 현장이었다. 철도노조 산업안전국장을 역임한 2002년 석달 남짓 동안 나는 순직조합원 장례식에 8번이나 찾아가야 했다. 처절했다. 선로를 보수하던 조합원이 열차에 치이고, 열차를 떼고 붙이던 조합원은 끼이고,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철도노조를 100년만에 민주노조로 바꾸고 의욕에 넘쳐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이었으니 가만 있었을리 없다. 서울역사를 검은 천으로 뒤덮고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했다. 그때 철도노조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가 현재 고용노동부를 맡고 있는 김영훈장관이다. 우리는 절절한 심정으로 순직사고에 매달렸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만치 김영훈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산업재해 현장을 찾으며 산재예방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박수를 보낸다. 그가 산업재해 사망사고 만큼은 뚜렷이 감소시켰다는 족적을 남기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갖은 대책을 수립하고 감독을 강화하는데도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는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얼마전 청도역 인근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가 열차에 치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져 철도기관사 출신인 장관의 입장이 오죽 난감했을까 싶다. 최근 산업재해 통계 추이를 보면 전체 사망자수는 2025.9월말 현재 1,73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8명(10.7%) 증가했고 사고사망자수도 67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명(9.4%) 늘어났다. 올해 유난히 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노동부장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절박하게 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역주행하고 있는 통계추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한민국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올해 산업현장의 전체 사망자는 2000명을 넘길 것이 확실하다. 이 정도면 재해가 아니고 전쟁이다.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국제정치학에 미국 미시간대학의 ‘COW(Correlates of War)프로젝트’라고 유명한 데이터가 있다.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COW프로젝트는 전쟁이란 ‘조작적 정의(추상적 개념을 관찰·측정·실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으로 바꿔 놓은 정의)’에 입각해 1816년부터 일어난 국제전의 통계를 모아 만든 자료이다. 모든 군사적 충돌과 분쟁을 전쟁으로 정의할 경우 너무 많은 전쟁사례로 인해 외려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든 ‘전쟁의 조작적 정의’에 의하면 ‘연 평균 전투요원 사망자가 1000명을 넘을 때’ 전쟁으로 정의한다. (COW에 의하면 인류는 1816년부터 2007년까지 총 92회의 전쟁을 치렀다.) 이를 원용하면 대한민국의 산업현장은 매년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르는 격렬한 전장이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산업전사’라 부른다. 내란정국에서 내란범들은 시체를 임시적으로 처리하는 영현백을 수천개나 특별주문 했음이 드러났다. 정치적 반대자를 적군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려 했던 내란범들을 국회 앞에서 막아선 사람들을 나는 ‘민주시민군’이라 부른다. 2025년 대한민국은 이들 전사와 시민군이 지켜내었다. 2026년에는 산업전사도, 시민군도 모두 안전하게 귀가하는 한 해가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지난 달 25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화성 국제테마파크’ 조성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도정 현안을 점검하고 도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민생경제 현장투어’였다. 화성 국제테마파크는 국내 최대 규모 관광·레저 복합단지를 목표로 추진 중인 화성시의 역점사업이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100조 투자유치 목표 달성에 화성 국제테마파크 투자가 화룡점정을 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경기신문 26일자 3면, “100조 투자유치, ‘화성 테마파크’가 화룡점정”)실제로 국제테마파크는 김 지사의 경기도 투자유치 100조+ 달성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김 지사는 정명근 화성시장, 임영록 신세계그룹 사장, 안정호 K-water 그린인프라부문장, 지역주민들과 국제테마파크 부지를 지역주민과 함께 둘러보며 그간의 투자유치 상황을 돌아보고, 지속적인 유치 활동을 다짐했다. 김 지사는 정명근 시장과 주민들에게 “화성특례시 올 때마다 변하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는 덕담을 건넸다. 여기에 더해 국제테마파크까지 들어오면 ”정말 상전벽해가 되는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면서 “(국제테마파크가) 그동안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아 온 파라마운트의 콘텐츠들을 담을 수 있게 돼서 화성시, 경기도를 넘어 국제적인 관광 매력지 역할을 해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전에도 김 지사는 “국제테마파크가 화성과 경기도민이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던 프로젝트”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김 지사, 정 시장,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사장, 마리 막스(Marie Marks) 파라마운트 엔터테인먼트 부문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화성국제테마파크 글로벌 브랜드 유치 선포식이 열린 자리에서다. 김 지사는 이날 화성국제테마파크의 글로벌 브랜드 파트너로 파라마운트사가 결정됐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파라마운트사는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이자 글로벌 콘텐츠 지식재산 보유사다. 김 지사는 “17년 갈증을 이번에 풀었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해안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 개발이 되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지사가 이처럼 화성국제테마파크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이유가 있다. 화성 국제테마파크가 조성되면 총 70조 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11만 개의 고용 창출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기 서해안은 세계적인 관광 메카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화성시민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숙원사업이지만 추진과정에서 어려움이 컸다. 지난 2007년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USK)가 화성국제테마파크에 들어온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두 차례나 무산됐다. 땅값 관련 문제도 있었고 사업자가 계약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김 지사 취임 이후에야 사업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경기도와 화성시, 한국수자원공사가 함께 노력한 결과 파라마운트사가 글로벌 브랜드 파트너로 선정됐다. 지난 10월엔 김 지사가 미국 보스턴에서 마리 막스(Marie Marks) 파라마운트 수석 부문장, 이임용 신세계프라퍼티 CSR상무와 만나 화성국제테마파크의 진행 현황과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화성 국제테마파크 조성 현장에서 화성시, 신세계그룹, K-water와 ‘화성 국제테마파크 지역 일자리 창출 및 상생협력 업무협약’도 맺었다. 협약 내용은 지역일자리,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기업과의 협력관계 내용이 담겨 있다. 경기도와 화성시가 함께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정 시장도 “국제테마파크는 신세계 일이 아니라 우리 화성시의 일”이라면서 2027년 1월이 아니라 2026년 하반기에 착공할 수 있도록 도에서 신속하게 검토해달라고 요청했고 김 지사도 조성 기간을 가능하면 앞당길 수 있도록 경기도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화성국제테마파크가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날을 기다린다.
지난 6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은 농림축산식품부 신임 차관에 강형석 농업혁신정책실장을 지명했다. 연합뉴스는 ‘농업·농촌 전 분야 정책 경험이 풍부하고 현상 분석과 대책 수립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대부분 언론은 농식품부의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면서 농업 현장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지속가능한 농산어촌' 구축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할 적임자라는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의 발표 내용도 빼놓지 않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혁신적인 정책통이라고 치켜세웠다. 반년이 지난 12월 8일. 서울신문은 “관가를 뒤흔드는 ‘투서 포비아’···농림차관 경질 뒷말 무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대통령이 3일 전 강 차관을 전격 면직하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시간대별로 추적해 보면, 그 보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한눈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신문은 강 전 차관 면직에 대해 다른 언론보다 다각도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기사는 저널리즘 윈칙을 크게 벗어났다. 무엇보다 기사 내용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관가의 분위기보다는 그가 왜 새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면직됐는지 그 이유를 취재해 보도해야 했다. “구체적인 위반 내용도 없었고, 농식품부 내부에는 강 전 차관의 면직 이유와 관련해 함구령이 떨어졌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위반 내용이 없었는데 면직됐다면 그것 자체로 큰 뉴스다. 함구령은 현 정부가 지향하겠다는 정책 기조와도 크게 다르다. 언론이 추적해야 할 이슈를 찾고서도 방기했다. 두 번째는 취재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추측성 단어나 문장을 남발했다. ‘정부에 따르면’ ‘A국장’ ‘전해졌다’ ‘얘기도 나온다’ ‘추정된다’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경쟁자를 제거할 기회로 인식될 수 있을 것’ 등 거의 모든 문장에서 익명 취재원을 활용하거나 추측성 서술어를 썼다. 소문인지 기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강 전 차관이 윤석열 정부 시절 감찰 대상에 오른 농식품부 A국장의 비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부처 감사실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했다. 강 차관 덕분에 징계 없이 인사이동으로 마무리됐다는 A국장은 누구인지 밝혀야 했다. A국장에 대한 익명 보도가 필요했다면, 어떤 이유인지도 기사에 담아 독자의 양해를 구해야 했다. 또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에 대한 ‘하극상’이 면직의 배경이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차관 임명 이후 업무보고 과정에서 송 장관을 무시했다면 공직기강을 무너뜨린 것이다. 대통령 공약 실천의 적임자 더더욱 아니다. 이 중차대한 내용을 추측성 기사로 다루는 건 무책임했다. 끝으로 정치적 갈등 프레임이다. 관가에서 ‘공개 숙청할 수준의 비위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12·3 비상계엄 가담 공무원 색출 작업과 연관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관가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일부 사실일지라도 이런 보도는 정도가 아니다. 투서로 공직사회가 뒤숭숭할 수 있다. 그러나 내란에 적극 동조한 공직자를 덮어야 할 명분은 되지 못한다. 내란의 밤부터 4월 4일 탄핵일, 6월 3일 새 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그런 대혼란도 극복한 대한민국이다.
기술의 발전은 늘 인간의 노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왔다. 농업 혁명은 사냥꾼을 농부로, 산업 혁명은 장인을 공장 노동자로 변화시켰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는 우리를 또 다른 전환점으로 데려다놓고 있다. 단순 반복적인 작업에서부터 복잡한 인지와 판단 영역까지 AI가 담당하게 되면서, 우리는 ‘노동’ 그 자체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과거에는 시간과 노력, 생산량으로 노동을 측정했지만,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지금, 인간의 가치는 더 이상 단순히 ‘일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사회적 의미는 무엇에 기여하는가에서 비롯된다. 전통적 노동 개념은 ‘몇 시간 일했는가’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라는 기준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러한 기준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반복적 업무와 계산적 판단은 기계가 담당하고, 인간은 그 위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따라서 기여 중심의 패러다임은 노동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시간 단위 임금에서 성과와 영향력 중심의 보상으로, 단순 기술 숙련에서 창의성과 공감 능력, 복합적 문제 해결 역량으로, 업무량에서 기여도와 사회적 영향력으로 평가 기준이 이동하는 것이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영역에서 우리의 진정한 기여가 시작된다. 의미 부여와 방향 설정, 연대와 공감, 윤리적 판단과 선택, 그리고 창의적 통합과 혁신은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다. 인간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공동체와 연결되는 기여를 수행한다. 이러한 활동은 경제적 산출물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지만, 사회적 존엄과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기여 중심 사회를 구현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잠재력 계발과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함양해야 하며, 기본소득과 같은 유연한 사회 안전망은 사람들이 생존을 넘어 의미 있는 기여를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사회적 인정, 자기실현 기회 등 다양한 형태의 가치 인정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체계가 갖춰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며, 그 기여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 AI 시대의 노동 현장은 더 이상 통일된 시간과 공간에 묶이지 않는다. 한 개인이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포트폴리오 노동자’로 활동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정체성도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보다 ‘무엇에 기여하고 있는가’로 정의될 것이다. 노동의 범위가 좁아질수록, 인간의 기여는 사회적 의미와 영향력을 중심으로 확장된다. 결국 AI 시대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의 변혁을 의미한다. 우리는 생계를 위한 단순한 노동에서 벗어나,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의미 있는 기여를 수행하는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 기계와 경쟁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기여를 통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다시 중심에 서는 것이다. 노동에서 기여로, 평가 기준과 존재의 의미가 이동하는 이 전환의 순간, 우리는 AI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각자가 독특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가짜 구급차’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가짜 구급차’ 불법 운행은 사설 구급차가 응급환자 이송이 아닌 사적 용도, 출퇴근, 식당 이동 등으로 사이렌과 우선 통행 특례를 남용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서 오랫동안 구설에 올라 있다. 인명의 생사를 다투는 앰뷸런스 제도를 사적인 용도로 오염시키는 것은 악성 행태다. 국민의 신뢰를 좀먹는 ‘가짜 구급차’ 불법 운행 일탈은 이제 완전히 뿌리 뽑을 때가 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번에 민간 구급차업체를 대상으로 벌인 전수 점검 결과, 규정 위반사항 94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구급차는 ‘긴급자동차’에 포함돼 응급한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 우선 통행 등 특례가 적용되고, 사고 시 운전자에 대한 형벌이 감면된다. 속도위반 단속에 적발되더라도 용도를 증명하면 범칙금·과태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급차가 본래의 목적 이외에 편법적으로 운영되는 등의 사례가 있어 구급차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고, 신속한 환자 이송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후 안전치안점검회의 등에서 “허위 앰뷸런스 등이 기초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것을 제대로 계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지적한 바 있다. 복지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7∼9월 147개 민간 이송업체의 구급차 운행 내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 80개 업체가 운행 기록을 누락하는 등 관련 서류를 부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개 업체는 직원 출퇴근 시 구급차를 사용하거나, 1회만 부과해야 하는 기본요금을 3회 부과해 과다 청구하는 등의 사례로 적발됐다. 이러한 중대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관할 지자체가 업무 정지, 고발 등의 조치를 할 예정이다. 특히 앞으로는 구급차 운행 관리 방식이 기존의 ‘서류’ 기반에서 실시간 ‘위치정보시스템(GPS)’ 기반으로 바뀐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GPS 시스템으로 구급차 위치 정보를 실시간 전송받고, 운행 내역을 상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밖에 경찰청과의 구급차 질서 위반 단속·과태료 부과 협력을 강화하고, 민간 업체 인증제 등을 실시해 이송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게 복지부의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2014년 이후 계속 동결된 이송 처치료를 현실화해 기본·추가 요금을 인상하고 야간·휴일 할증과 대기 요금도 신설할 계획이다. 나아가 중증 응급환자를 전원(병원을 옮기는 것)하면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정부의 일제 점검에서 적발된 주요 불법 운행실태는 첫째 구급차를 직원 출퇴근, 회식, 식당 이동 등 개인 편의에 활용하는 등 ‘사적 용도 사용’이다. 두 번째는 실제 환자 이송과 관련 없는 운행에 사이렌을 켜고 교통 법규를 우회하는 등 ‘사이렌·우선 통행 특례를 남용한 사례’다. 세 번째는 ‘이송료 과다 청구 및 운행 기록 누락’이다. 네 번째는 ‘허가 지역 외 지역에서 영업행위’를 한 사례다. 그러나 정부의 점검으로 밝혀낸 이번 사례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가짜 구급차’ 운행실태에 비하면 ‘빙산일각(氷山一角)’ 수준일 것이라는 게 일반여론이다. 시간을 다투어 공연장소를 뛰어다녀야 하는 연예인 등이 구급차를 활용하거나, 마약·밀수품 등의 이송에 악용되기도 한다는 풍문은 이미 널리 퍼진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차량 운행 중에 사이렌을 울리는 앰뷸런스가 나타나면 운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차선을 비워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을 감수하고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양보한 미덕이 고작 일부 엇나간 불법행위의 희생양이라면, 이는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최일선에만 존재해야 하는 구급차가 대중의 신뢰를 잃는 것은 심각한 병폐다. ‘가짜 구급차’ 불법 운행은 하루빨리 발본 혁신돼야 한다.
여덟 살일까요, 아홉 살일까요. 책가방을 등에 멘 사내아이가 무인카페 안으로 들어옵니다. 잠시 둘러보더니 자판기에 카드를 밀어 넣습니다. 그러곤 버튼을 눌러 메뉴를 선택합니다. 계산을 마친 자판기가 카드를 뱉어냅니다. 뱉어낸 카드를 아이가 갈무리합니다. 아이의 눈길이 다시 자판기로 향합니다. 갸웃거리는 게 무언가 망설이는 눈치입니다. 주춤주춤, 아이의 손끝이 자판기 어디론가 향합니다. 아마도 얼음이 든 음료가 먹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버튼을 누르자 자판기에서 얼음이 쏟아집니다. 먼저 컵을 놓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걸 아이는 몰랐습니다. 손바닥으로 얼음을 받아 보지만 속수무책입니다. 와르르, 밀려 내려온 얼음 알갱이가 가게 바닥에 나뒹굽니다. 놀란 아이의 표정도 함께 나뒹굽니다. 이런 걸 엎친 데 덮친다고 하는 걸까요. 놀리기라도 하듯, 이번엔 음료수가 얼음 위로 쏟아집니다. 종이컵에 담겨야 할 음료수가 철철 쏟아져 가게 바닥을 흥건히 적십니다. 아이는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갑니다. 아이는 떠났지만, 아이의 모습은 가게 안 CCTV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떠났다고 떠난 게 아니듯, 보인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세상은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움직이는 건 하나인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걸 느끼게 합니다. 이를테면, 계절과 기억과 상처와 흔적 같은 것 말입니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인카페 문이 다시 열립니다. 들어서는 건 도망치듯 떠났던 그 사내아이입니다. 쭈뼛거리는 발걸음으로 들어온 아이는 CCTV를 향해 꾸벅 인사합니다. 그러곤 쥐고 있던 쪽지를 자판기 옆에 두고 가게를 빠져나갑니다. 뒤늦게서야, CCTV 영상을 확인한 주인이 무인카페로 향합니다. 아이가 남긴 쪽지도 궁금하고, 바닥에 흥건한 물기도 닦을 요량입니다. 서둘러 가게에 도착했지만 흥건했던 물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판기 주변도 말끔합니다. 그새 다녀간 또 다른 손님이 어질러진 가게를 치우고 갔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휴지통을 뒤져서 버려진 아이의 쪽지를 찾아냅니다. 물기가 적신 체 꼬깃꼬깃 구겨진 쪽지에는 천 원짜리 한 장과 함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인카페를 처음 와서 모르고 얼음을 쏟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고 치우겠습니다. 작은 돈이지만 도움 되길 바랍니다. 장사 오래오래 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어떤 기분이었기에, 주인은 그 쪽지를 아이가 나온 CCTV 영상과 함께 인터넷에 올렸을까요. 어떤 느낌과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세상 밖으로 소식을 전했을까요.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니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뜻일까요. 아니면, 다리만 만져보고 전체를 상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는 걸까요. 글쎄요. 나무만 보면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거울에 비친 내게 물었습니다. 자세히 볼 욕심에 빌딩 숲에 들었다가, 세상은커녕 사람조차 못 보고 있는 건 아니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