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후 강제 종결 표결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만 자리를 지키는 상황이 반복되자, 필리버스터 신청 정당의 출석을 일정 수준 의무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민주당 의원은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 표결 방식을 현행 무기명 투표에서 전자투표로 바꾸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표결 소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움직임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인 이유는, 의견이 다른 상대를 설득하고 양보를 이끌어 내며, 동시에 자신도 일정 부분 양보하는 협상의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단순한 효율성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진 중인 필리버스터 관련 개정안은 결국 절차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본래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점을 간과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정당에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부과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이런 문제의식이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결국 압도적 의석을 가진 다수당의 수적(數的) 횡포를 합리화 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를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리버스터의 본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내 소수 정당이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다. 따라서 필리버스터는 소수의 정치적 입장을 제도에 반영하는 핵심 도구이며,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실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점유한 현 상황에서, 필리버스터는 소수 정당에 대한 일종의 '제도적 배려'로 기능하고 있고,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보완하는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표결 절차에 필리버스터 신청 정당의 일정 인원 참여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한다면, 이는 그러한 '제도적 배려'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필리버스터 종결을 막을 수 없고, 민주당의 일방적 행보에 들러리 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표결 참여를 강제하는 것은 필리버스터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투표 불참 시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강제 투표 제도가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는, 투표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정당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강제할 경우, 오히려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여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단순히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칼럼에서 하자 소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시공이나 오시공 하자의 경우가 전체 하자에서 70% 정도에 달한다고 설명드렸습니다. 소위 이러한 ‘사용검사 전 하자’의 경우에는, 설계도면과 달리 '미시공' 또는 '변경시공' 한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에 해당하는 것인데, 실제 아파트 건설과정에서는 다양한 설계도면들이 작성되므로 어떤 도면을 기준으로 하여 하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업승인도면은 사업주체가 주택건설사업계획의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기본설계도서로, 대외적으로 공시되는 것이 아니므로 분양계약의 기준이 되지는 않고, 실제 건축 과정에서는 현장 여건 등을 감안하여 공사 항목 간 대체시공이나 가감시공 등 설계변경이 빈번하게 이루지고 있습니다. 설계변경이 이루어지면 변경된 내용이 모두 반영된 최종설계도서(준공도면)에 의해 사용검사를 받게 됩니다. 아파트 분양계약은 통상 설계변경 가능성을 예정하고 있으며, 수분양자 역시 법령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설계변경이 이루어진 최종설계도서에 따라 아파트가 하자 없이 시공될 것을 신뢰하고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기에, 아파트가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과 다르게 시공되었더라도, 준공도면에 따라 시공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하자로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준공도면이 하자 판단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도면이 '적법한 설계변경 절차를 거친 최종설계도서'여야 합니다. 만약 사업주체가 주택법령 등에서 정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설계변경 승인이나 통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설계를 변경했다면, 그 변경된 준공도면은 하자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변경 전 도면인 착공도면을 기준으로 하자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 공종(설비, 전기, 소방 등)에 대한 준공도면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부득이하게 허가도면(사업승인도면)을 참고하여 하자를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준공내역서는 사용검사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설계도서의 일부로서, 공사 완료 후 소요된 공사비, 자재 수량 등을 기술한 내역서입니다. 이는 건축시방서나 준공도면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우선 적용될 수는 없지만, 준공도면 등에 누락되거나 구체적으로 기재되지 않은 사항을 보충하여 하자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업주체가 분양계약 당시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에 기재된 특정한 시공내역과 방법대로 시공할 것을 수분양자에게 제시하거나 분양광고 등을 통해 별도로 표시하여 분양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켰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사업승인도면이나 착공도면이 하자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하자의 판단에 있어 준공도면이 기준이 된다는 사정을 악용하여 일부 시공사들이 준공도면에서 하자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여 하자가 인정되지 않도록 사전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하자판단의 기준을 유의하여 사전 하자진단과정에서 준공도면을 면밀히 분석하여 실재 인정받을 수 있는 하자의 범위를 가늠하는 것이 성공적인 하자소송을 위한 준비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65세 이상 노인 인구(1024만 명)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다. 누구나 최소 20여 년의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잘 사는 것(웰빙) 못지않게 잘 늙는 것(웰에이징), 잘 죽는 일(웰다잉)에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시대가 도래했다. 초고령사회에 1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어가면서 웰다잉은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사회의 주요 정책 테마로 등장해 있다. 중환자의 여명(餘命)을 평안하게 마치도록 돕는,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하기 위한 제도 중의 핵심은 호스피스다. 신체적·정서적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돌봄 서비스를 뜻한다. 지난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호스피스는 수요 대비 공급 부족, 부족한 정책적 지원 등 문제점이 여전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들은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력 존엄사 및 웰다잉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6%는 ‘죽음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하고 싶다’고 답했다. 또 ‘말기 환자가 고통 없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에 무려 93%가 공감을 보이는 등 호스피스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다. 이처럼 높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 호스피스 제도 이용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중앙호스피스센터가 지난 4월 발표한 ‘2024 국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호스피스 병상 수는 1815개에 불과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호스피스 이용이 가능한 질환으로 암·후천성면역결핍증·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만성호흡부전·만성간경화로 국한하고 있다.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호스피스 이용자 2만 4318명 중 비암성 질환 이용 환자는 고작 108명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같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여생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길 원하는 국민이 늘어나면서 호스피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세태의 흐름에 맞게 제도 기반 및 정책적 지원 강화가 절실한 대목이다. 웰다잉은 이제 ‘국민 삶의 질’과 직결돼 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늙는 것’, ‘잘 죽는 것’이 일생의 소중한 과정으로 엄연히 여겨지는 상황이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호스피스의 날’을 맞아 일부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눈에 띈다. 경기 안산시 상록수·단원보건소는 호스피스 인식 개선 캠페인을 전개했다. 아주대학교 권역호스피스센터 안내·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전연명 결정제도 홍보 등을 진행했다. 시흥시는 ‘시흥시 호스피스·완화의료 지원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고, 인천시 서구에서도 ‘서구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이 제정됐다. 웰다잉은 연명의료 여부·장기 기증·장례 방식 등 죽음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 결정권 존중’이 핵심이다. 불필요한 연명치료 대신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등 ‘존엄한 임종’도 중요한 요소다. 죽음 이후 가족의 혼란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리 충분히 대화하고 재산 분배·장례 절차 등을 합의해 두는 ‘가족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종교적·정서적 준비를 통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하는 ‘마음의 준비’ 과정도 포함된다.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삶을 마감하는 과정을 돕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국가사회가 적극적인 자세로 웰다잉을 위한 제도와 정책을 주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죽음은 ‘삶’ 바깥에 있지 않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서 시민단체의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떠올리면 역설적이다. 정부 출범 100일이 넘었지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정부의 혁신과 운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시민사회 내부의 요인이다. 4월 4일 윤석열 퇴진을 주도한 ‘윤석열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4월 17일 국회에서 사회대개혁을 위한 정책대안을 발표한 뒤, 6월 10일 자진 해산을 결의했다. 사회대개혁의 후속 노력이 이어지지 못한 채 해산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월 23일, 각계 시민단체들이 다시 모여 ‘국민주권사회대개혁전국시국회의(전국시국회의)’로 통합을 결의하며 새로운 도약의 뜻을 밝혔다.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사회대개혁”을 다짐한 이 결의는 늦기는 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음으로는 국회 중심의 개혁 드라이브가 한 요인이다. 국회는 내란·김건희·채상병 등 이른바 3대 특검을 중심으로 적폐 청산과 개혁 작업을 주도해 왔다. 지난 9월 26일 국회는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하였다. 이제 정부는 시민사회와 협력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출구를 열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튼튼한 안보 위에서 외교와 통일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통일부가 국내적 차원의 남북관계를, 외교부가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만큼, 두 부처의 역할은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기 위해 안팎에서 동시에 쪼는 ‘즐탁동시(啐啄同時)’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023년 12월 북한이 남북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한 이후 남북관계는 극도로 경색되었다. 특히 윤석열정부 시기 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해 비상계엄 상황을 유도하려 한 정황까지 있었기에 남북관계는 한층 악화되었다. 이러한 정국 속에서, 우리는 과거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문재인 정부 시기의 시민사회 참여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통일국민협약’은 시민참여형 통일정책의 모범적 사례였다. 2019년 1월 통일부는 ‘통일국민협약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전국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였다. 통일부의 요청으로 정당·종교계·시민단체들이 참여한 독립기구 ‘평화·통일 비전 사회적 대화 전국시민회의(통일비전시민회의)’가 결성되어, 2020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상과 실현 방안을 모색하며 평화공존·공동번영·민주적 통일합의의 가치를 도출하였다. 또한 국민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통일정책의 원칙도 세웠다. 비록 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해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경험은 시민이 참여하는 통일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남북 평화를 위한 국민협약은 보다 구체화되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평화·통일 플랫폼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분단지대를 평화지대로 바꾸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접경지역(DMZ)을 중심으로 ‘3통(통신·통행·통상)’의 물꼬를 트는 일은 남북 평화의 현실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분단지대가 남북 화해와 협력의 거점으로 변모한다면, 평화의 담론은 물이 바다를 덮듯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두 번째 커리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정년이 사라지고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무너진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40대 중반 이후의 중장년층에게는 이 변화가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구조조정, 조기퇴직, 산업 재편 등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퇴장'하게 되는 순간, 이들은 다시 한 번 노동시장 문턱에 서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청년 일자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청년 세대를 위한 고용 확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중장년층 역시 대한민국의 경제를 떠받쳐온 주역이다. 지금의 4050 세대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숱한 위기를 온몸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돌아볼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일자리 박람회나 일시적 재취업 프로그램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장년층을 위한 고용정책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 중 하나다. 고령화는 곧 노동력 부족과 직결된다. 중장년층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면, 그 공백은 고스란히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경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중장년 고용 확대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의 경력과 능력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고용 구조로 가는 첫걸음이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단지 ‘나이든 사람들’이 아니다.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며, 새로운 일을 배우고 해내는 데 있어 유연한 사고와 강한 책임감을 지닌 세대다. 이들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중장년 취업박람회에서 만난 한 50대 퇴직자에게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 무조건 버텨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는 중장년에게 퇴사란 곧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일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언제쯤 퇴사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게 될까. 퇴사한 중장년에게 안타까운 시선이 쏠리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퇴직 이후의 삶이 절망이 아닌 도전이 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중장년층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정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인 예산 지원을 넘어서, 이들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고용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하며, 단순히 생계를 잇는 수준이 아닌, 자아실현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세대 간 갈등이 아닌, 세대 간 연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중장년층을 외면한다면, 머지않아 그 자리를 채울 청년 세대 역시 같은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커리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 그 희망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정책이, 사회가 함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고용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해 8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임기 후반기 중점과제 중 하나로 ‘경기기후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후위성은 도시의 기후변화 영향 모니터링과 온실가스 배출량 실측을 위해 고해상도 영상과 수치 정보 등을 제공하는 초소형 인공위성이다. 경기기후위성 발사가 성공하면 지방정부 주도 국내 최초 기후 대응 위성이 된다. 이 위성에는 광학위성 1기, 온실가스 관측위성 2기가 탑재 된다. 경기기후위성이 궤도에 오르면 온실가스(메탄) 배출원과 배출량 식별이 가능하며 홍수, 산불, 산사태 등 기후재난 피해 상황도 알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토지이용 현황도 정밀하게 모니터링 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김 지사의 발표 후 이 계획은 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같은 해 10월 추진 기본계획이 수립됐으며, 올해 2~3월엔 위성 개발·운용 기관을 공모해 선정했다. 7월엔 ‘경기기후위성 1호기(GYEONGGISat-1)’ 개발도 끝났다. 9월 탑재체 항공시험도 마쳤다. 구체적인 발사 일정은 최종 조율 중인데 다음달(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발사할 예정이다. 1호기는 지구 저궤도를 3년간 운행하면서 도 관련 기후·환경 데이터를 수집해 보내준다. 1호기를 포함, 앞으로 총 3기가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발사될 예정이라고 한다. 도의 기대는 크다. 고도화된 기후정책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성이 보내주는 데이터로 도내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을 정밀 감시할 수 있다. 도내 산업단지 등의 메탄 탈루·누출지점 관측 및 발생량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중소기업 등의 탄소 배출량 실측 및 저감방안 마련에도 기여하게 된다. 농업·축산업 분야 기후변화 영향 관측 및 온실가스 배출 모니터링 뿐 아니라 재난·재해 모니터링을 통한 대응도 가능하다. 도는 이를 통해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탄소규제 강화에 대응하면서 도내 중소기업 등의 탄소 배출량 실측 및 저감방안 마련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밝힌다. 도와 시·군의 과학적 기후정책 수립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를 민간과 공유함으로써 도내 기후테크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산업육성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 도의 설명이다. 국제 기후정책 및 산업 교류 증진, 국가 우주산업 정책 협업효과도 예상할 수 있다. 도는 경기기후위성에 대한 도민 관심을 높이기 위해 위성체 내부에 도민 이름을 새기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벤트에 참여한 도민 중 420명을 추첨해 이름을 위성체 내부에 각인했다. 경기도의회도 기후위성 개발과 활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백현종 의원(국민의힘·구리1)이 전국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도 기후위성 개발 및 활용 지원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고, 9월 10일 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는 이 조례안을 원안 의결해 본회의로 넘겼다. 그리고 같은 달 19일 열린 도의회 제386회 임시회에서 조례안이 통과됨으로써 기후위성 개발과 활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사업은 순항하게 됐다. 백의원은 “기후위성은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며 “중앙정부에서 위성 발사·운용은 큰 틀에서만 할 수 있고, 지역적으로는 활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도의 기후위성 사업은 가치가 있다”고 조례 발의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과거 인공지능(AI)이 이렇게 발전할지 누가 알았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위성 사업도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8월21일자 인터넷판 ‘경기도의회, 김동연 지사 역점사업 기후위성 지원사격’) 백의원은 “차기 집행부에서 도지사가 바뀌더라도 계속해 사업이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조례를 발의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옳은 생각이다. 백의원의 말처럼 이 조례는 경기도가 과학 행정을 구현하고 탄소중립 정책을 선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국내 정치권은 끝없는 진영싸움에 빠져 있고,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으며, 언론은 진실보다 이익을 좇는다.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국민은 분노와 불신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해외로는 대미 관세 분쟁, 북한과의 불안한 신뢰, 한국 기술자의 해외 구금 사건 등이 이어진다. 이 모든 난제의 밑바탕에는 ‘진실의 부재’가 있다. 거짓과 왜곡이 자리할 때 사회는 분열되고, 국가는 갈등에 휘말린다. 그 해답은 이미 100년 전 도산 안창호가 외쳤던 ‘무실역행(務實力行)’, “참을 힘써 실천하라”는 가르침 속에 있다. 도산이 말한 ‘무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거짓 없는 진실, 말과 행동이 하나 되는 성실, 삶 속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행동 철학이다. 그는 “진실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실천하지 않을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거짓말, 허황된 약속, 무책임한 행동이 민족을 병들게 한다는 경고였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불신과 갈등의 뿌리 역시 이 ‘무실정신’을 버린 데 있다. 오늘 한국은 문화·기술·경제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성취 뒤에는 ‘진정성 상실’이라는 그림자가 짙다. 겉만 번듯하고 속은 텅 빈 사회, 말뿐인 정치, 신뢰를 잃은 기업, 구호만 남은 교육, 위선에 물든 종교. 진실이 빠진 발전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진실’에서 시작된다. 도산은 ‘진실’과 ‘신뢰’를 민족 번영의 기초로 삼았다. 거짓 없는 마음이 개인의 인격(Personality)을 세우고, 그것이 모여 민족의 도덕을 이룬다고 믿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신뢰받기 위해서도, 내부의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다시 ‘무실역행’의 길을 걸어야 한다. 거짓보다 진실을, 편법보다 성실을,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사회로 바뀔 때 진정한 개혁은 시작된다. ‘무실역행’은 개인 수양(修養)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는 사회철학이다. 이제 우리는 거짓이 만연한 정치, 신뢰를 잃은 경제, 말뿐인 교육, 위선 가득한 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모든 위기의 공통된 해법은 ‘참을 향한 실천’이다. 말보다 행동, 약속보다 실행, 체면보다 양심이 앞설 때 한국사회는 도약할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에 가장 절실한 존재는 ‘정직한 사람’이다. 거짓으로 이익을 취하는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무실역행’은 과거의 교훈이 아니라 오늘의 혁명이다. 진실을 말하고 참을 실천하는 한 사람이 사회를 바꾸고, 그 작은 실천이 국가의 운명을 바꾼다. 도산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한국사회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실역행’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실’ 위에 세워진 ‘신뢰’만이 사회를 개혁하고 국가를 발전시킨다. 결국 한국사회를 지탱할 마지막 키워드이자 우리가 당장 실천해야 할 유일한 혁신의 길은 바로 이 ‘무실역행’이다.
최근 학교 현장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특정 앱을 사용하면 AI가 학생의 학습 수준을 분석하고, 부족한 부분의 맞춤형 문제를 제시한다. 교사는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의 약점을 파악하고,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제시한다. AI가 만들어주는 학습 보고서는 정교하고, 학생 별 진단은 섬세하다. 예전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일이 이제 몇 초 만에 가능해졌다. 교사로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감탄의 순간은 길지 않고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지? 교실에서 학습 관리와 평가, 피드백을 AI가 대신한다면, 교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기술의 도움은 분명 편리하지만, 편리함이 교사의 존재 이유를 희미하게 만들 때가 있다. 척척박사인 AI를 보고 있으면, 교사가 AI로 대체될 확률이 낮은 직업에 속하는 게 맞을까 싶다. 완벽해 보이는 AI는 뭘 못 할까.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 입력된 정보와 패턴 안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낸다. 교실은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 그 이유는 수십 가지일 수 있다.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친구 관계의 갈등이나 가정의 어려움, 자신감 부족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AI는 그 맥락을 모른다. 아이의 눈빛, 표정, 한숨 속에 담긴 사연을 읽어내는 일은 오직 교사만이 할 수 있다. 또, AI는 정답을 잘 찾지만, 함께의 가치를 가르치지는 못한다. 학생이 친구와 다투었을 때, 누가 잘못했는가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이끌어주는 건 교사의 몫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알고리즘은 현실 세계의 도덕을 행동으로 가르칠 수 없고, 공감하는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 무엇보다 AI는 실수하지 않는다. 반대로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 다시 해보겠다는 결심, 용서를 구하는 마음은 인간만의 성장 방식이다. AI가 빠르게 정답을 알려주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 겪을 시행착오를 잃는다. 교육의 본질은 완벽한 정답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실수를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에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은 점차 기술에게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로 보인다. 하지만 교사는 여전히 사람됨을 가르칠 수 있다. AI는 학생의 학습 능력을 측정하지만, 교사는 그 아이가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본다. 교사는 성적이 아니라 마음을 기록하고, 점수가 아닌 가능성을 본다. AI가 할 수 없는 일, 그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다. 아이의 말 속에 숨은 두려움을 읽고, 실패를 감싸주며, 함께 웃는 일. 이 일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교육은 결국 사람의 온기로 완성된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느리게 자란다. 교실이 느린 성장을 품을 수 있다면, AI 시대에도 교육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다만, 사람됨을 만드는 교사의 역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난달 17일 오전 이천시 한 물류센터에서 60대 노동자가 지게차와 충돌해 사망했다. 같은 날 오후에도 부산시의 신축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던 펌프카 압송관(붐대)이 60대 노동자 머리를 때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루 전 인천시 금속 제조 공장에서도 40대 캄보디아 국적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국은 이들 사고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을 적용, 수사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했을 때 안전 관리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기업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처음엔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건설 공사 금액 50억 원 이상인 사업장에 우선 적용됐다가 지난해 1월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일괄 적용됐다. 그럼에도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사고사망자는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2024년 589명이었다. 약간 감소하는 추세라지만 아직도 산업현장의 안전문제는 후진국 수준이다. 17일 국회 환노위 소속 이학영(군포시·민주)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산업재해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건설사는 현대건설(17명)이었고 롯데건설(14명), 대우건설(13명)이 뒤를 이었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DL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의 산재 사망자도 적지 않았다. 포스코이앤씨의 경우 올해 들어서만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건설현장 붕괴 사망 사고, 경남 함양~울산 고속도로 건설현장 기계 끼임 사고 등 5건 사고가 발생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8일자 5면 ‘정부·국회, 중대재해 반복 기업 제재…대형사 CEO 줄소환 전망’) 이에 이재명 정부는 중대재해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전 부처가 힘을 모아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최근 3년간 두 차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건설사가 또다시 중대재해를 일으킬 경우, 아예 등록 말소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법인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 또는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도 부과한다. 중대재해 반복 발생 시 영업정지 요청을 할 수 있는 업종은 지금까지 건설업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기, 정보통신, 소방시설공사업까지 포함된다. 제재 강도가 높아졌고 업종범위도 넓힌 것이다. 고용부는 전기공사업법, 정보통신공사업법, 소방시설공사업법 등 소관법과 산업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해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안전 예방을 촉진하는 제재 수단 도입 ▲안전 주체로서 노사의 역할·책무 확립 ▲노동안전 확산을 위한 인프라 확대 ▲안전 사각지대 예방 지원 강화 등이다. 특히 안전 예방을 촉진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도입된다. 영업정지 요청 기준도 바꾸고 사망자 수에 따른 영업정지 기간도 한층 강화시킨다. 아울러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부 장관의 ‘긴급 작업중지 명령제도’도 신설하고, 유해위험 기계 등에 대한 시정조치 명령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건설 공사 기간 연장 사유에 폭염 등 기상재해 등을 추가하는 등 노사 역할·구조적 취약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들어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규모 사업장 등을 대상으로 재정·인력·기술 등을 종합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2조723억 원을 투입, 1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품목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산재왕국이라는 오래된 오명을 벗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엄벌 위주의 정책이 산재 발생을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는 만큼 산업계 의견도 충분히 반영하기 바란다.
이어령 선생이 지병으로 타계한 지 벌써 3년 7개월이 지났다. 향년 88세.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필자는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면서 선생을 처음 만났고, 선생의 문학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썼으며,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는 선생을 고문으로 모셨다. 선생과의 만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3년 4월 '문학수첩' 편집위원으로서 ‘대중문화 인물탐방’ 시리즈 첫 순서로 선생과 함께 한 장장 3시간의 대담이었다. 많은 이들이 선생에 대해 ‘세태를 앞서 읽는 눈과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선언’이 전매특허라고 말한다. 1960년대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출발한 선생의 시대 선언 장정(長征)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역설하면서 서막을 열었다. 1970년대의 ‘신바람 문화’는 군사독재 시대에 민족의 열정을 깨우는 목소리로, 1980년대의 ‘벽을 넘어서’는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초대형 국가 이벤트를 이끌며 지구촌의 화합을, 그리고 1990년대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는 IT강국을 기반으로 한국이 글로벌 정보화 사회의 리더가 되는 길을 제시했다. 2000년대의 ‘디지로그 선언’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명 융합을 주창한 새로운 시각이었고, 2010년대에 이르러 ‘생명자본주의의 주창’은 한국과 세계를 아울러 문명 인식의 새로운 전환점을 열어 보이는 회심작이었다. 일찍이 세익스피어는 백만인의 성격을 지녔다는 수사(修辭)가 있었지만, 선생은 그야말로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누군가가 재미 삼아 세어보니, 그 직함이 무려 십수 개였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대학 교수, 신문 칼럼니스트, 문화부 장관, 문명비평가, 에세이스트, 시인…. 어느 호칭을 사용해 그를 불러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저술은 무려 200권을 넘었다. 그런데 그 저술들이 그냥 책이 아니다. 그의 책들은 그때마다 살아있는 시대의 화두(話頭)가 되었다. 천재성의 필자, 비범한 상상력의 소유자, 겹시각의 황제 등 현란한 수식어들이 그다지 무리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닫혀있는 인식과 세계관의 창을 활짝 열어주는 선각자였다. 기존 문학의 우상을 파괴하고 창의적 시각의 새 길을 열자고 주창했던 그는, 어느결에 그 자신이 하나의 새로운 우상이 되었다. 그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백철·조연현·서정주·김동리 등은 이미 세상에 있지 않지만, 그 또한 후세의 사필(史筆)을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옛 세대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 세대의 그것은 아직 세워지지 못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더 빛난다. 이 양자를 함께 바라보며 우리가 선 지점의 좌표를 깨우치고,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인도하도록 예정된 예인 등대의 불빛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 누가 있어, 이 겨레의 정체성이 어떠하며 왜 어떤 각오로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할지를, 그와 같이 드러내 보일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이어령이다. 1970년대 책 읽는 젊은 대학생들의 가방 속에 꼭 한 권씩 들어 있던 책이 이어령의 에세이였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독일군 병사들의 배낭 속에 꼭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숨어 있었듯이.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이나 ‘아들이여 이 산하를’과 같은 제목, 그리고 ‘저 물레에서 운명의 실이’ 등의 레토릭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어쩌면 지성미 충일한 아고라 광장에 갓 들어선 희랍의 젊은이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에세이들의 결정판이 곧 한국인의 풍토(風土)를 다룬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강과 바다가 수백 개 산골 물줄기의 복종을 받는 이유는, 항상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뒤에 있ᅌᅳᆯ 지라도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며 그들보다 앞에 있ᅌᅳᆯ지라도 그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은, 한 시대의 천재였던 선생을 거울로 하여 오래 되새겨야 할 경계의 말이다. 필자는 선생이 가고 없는 이 허전한 산하, 이 쓸쓸한 문화비평의 마당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아직 생각을 가다듬을 수 없다. 분명한 해답은 그동안 선생이 남겨놓은 언술 속에 충분히 잠복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