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6월30일, 독일 수상 히틀러는 나치당의 2인자로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던 에른스트 룀 일파를 회의를 구실로 바트비제 온천에 초대한다. 별다른 의심없이 온천에 모인 룀과 그 동료들은 히틀러의 친위대에 붙잡혀 즉결처분당했다. 훗날 ‘장검의 밤’으로 명명된 이 날의 친위쿠데타는 500명이 넘는 피의 숙청으로 히틀러에게 절대권력을 안겼다. 서슬퍼런 공포정치에 독일민중은 침묵했다. 친위쿠데타는 합법적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헌정을 중단시키는 행위를 일컫는다. 12.3 비상계엄은 가장 전형적인 친위쿠데타이다.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 국회 무력화를 시도했다. 선관위를 침탈해 선거결과를 조작하려 했다. 이참에 자신을 반대하던 정적은 물론 언론과 사법부, 의료계에 여당 대표까지 ‘일거에 제거’하려 했다. 케이블타이로 묶고 두건을 뒤집어 씌운채 방첩사로 끌고 온 그들을 어떻게 처분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12월3일 그들은 대한민국판 ‘장검의 밤’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량은 군대조차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방벽이 되어 ‘위대한 민주시민의 밤’을 만들어 내었다. 이로써 국난극복이 특기인 대한민국의 저력이 또한번 발현되나 했다. 그러나 웬걸, 현실은 소설보다 극적이다. 개연성이나 올바름 따위는 필요없다. 8년전 탄핵정국의 학습효과로 ‘이번에도 보수정권이 탄핵당하면 보수는 영원히 궤멸한다’는 위기감에 보수진영이 총궐기하고 있다. 직무정지 중인 대통령이 파렴치한 결사항전을 선언하자 극우 개신교계가 참전하더니 이제는 “왼쪽은 잘했나”며 문화계까지 광기의 대열에 동참한다. 광장은 극우유투버들의 가짜뉴스와 극단적 선동에 말은 사라지고 짐승들의 울음소리만 가득찼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선동은 지적 수준이 낮은 이들의 감정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탄핵에 찬성하는 모든 사람은 공산당, 중국인이라는 선동에 윤석열이 돌아오면 빨갱이들을 청소해버릴 것이라고 환호한다. 2021년 튀니지의 대통령 사이에드는 정치권의 부패를 척결한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명령통치’에 들어간 그는 유력한 대선후보 3명을 실격 처리하더니 남은 후보마저 14년형을 선고한 끝에 2024년 대선에서 90.7%의 득표율(투표율 28%)로 재선에 성공하며 권위주의체제를 완성한다. 우리가 튀니지를 따르고 있는가? 그가 다시 돌아오면 ‘장검의 밤’이 도래할 것인가? ‘위대한 민주시민의 밤’은 사라질 것인가? 박노해시인의 시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그가 다시 돌아오면〉/계엄의 밤이 도래하겠지/번득이는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의인들과 시위대가 ‘수거’되겠지/광장과 거리엔 피의 강이 흐르고/사라진 가족과 친구를 찾는/언 비명이 하늘을 뒤덮겠지/그가 다시 돌아오면/살림은 얼어붙고 경제는 파탄나겠지/우린 갈수록 후진국으로 추락하겠지/오가는 사람도 드문 스산한 밤거리엔/총소리 군홧발 소리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계엄군이 내 가방을 뒤지고 신상을 털겠지/.../아아 그가 다시 돌아오면/저들이 살아서 돌아오면/버젓이 권좌에 도사린 채/내란을 지속하고 내전을 불지르는 자들/지금, 빛으로 끌어내 처단하지 않는다면/지금, 뿌리째 뽑아내 청산하지 않는다면
12.3 내란 사태의 해결은 시간문제일 뿐, 다만 엄격한 법 적용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반드시 그 결과를 엄벌함으로써 다시는 이 땅에서 문민통치가 훼손되는 일은 없게 하여야 한다. 이직 종결되지는 않았지만 남겨야 할 일이 있다. 12월 3일 한밤중의 거짓말 같은 비상계엄이 발동되자 시민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갔다. 불법적이고 부당한 계엄 선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기구는 오직 국회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회 앞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국회의원을 입장을 막는 군과 경찰을 질타했다. 역사 앞에서 죄인이 되지 말라고. 심지어 어떤 용감한 시민은 돌진하는 군 장갑차 앞을 막아섰다. 마치 1989년의 천안문 사태에서 탱크 앞을 홀로 막아선 이름없는 대학생처럼. 달려온 일반 시민들 덕분에 2시간 48분 만에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은 해제되었다. 12월 22일은 남태령에서 서울 시내로 향하던 농민들의 ‘전봉준 투쟁단’은 경찰 차벽에 막혔다. 돌아가라는 경찰의 경고에 이어서 물대포 등 힘없는 농민들은 진압 직전에 처해 있었다. 그 순간 여의도에 모여 탄핵을 외치던 응원봉 부대(?)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부모세대의 고마움을 느낀 평범한 대학생과 시민들이었다. 거리 때문에, 다음날 출근 때문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핫팩에서부터 따듯한 커피에 어묵 그리고 김밥까지를 선 결재해 주었다. 감동적인 모습은 난방버스의 등장이었다. 동짓달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라며 버스를 통째로 임대해 보내준 것이다, 결국 밤을 새운 농민들에게 다음날 경찰은 차벽을 물리고 시내 진입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태령 대첩이었다.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한남동의 시위에도 어김없이 시민들이 등장했다. 연일 강추위에 눈까지 내렸지만, 시위대는 밤새길 수십일 째였다. 눈 내린 새벽에 은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버텨낸 모습을 보고 우리는 은박지에 싸인 작은 초콜릿 ‘키세스’에 비유해 ‘키세스단’이라고 명명했다.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름다운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국가로부터 단 한 푼도 받지 않았고 아니 받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세금 내서 국가를 지켜온 평범한 국민이다. 그들은 빽도, 힘도 없고 남을 괴롭힐 줄도 모르는 선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행태가 어떠한가? 그렇게 좋아하는 자유를 위해서 반대파를 모조리 적으로 돌려서 체포해 고문하고 심지어는 사살하라는 계획까지 세웠단다. 왕정을 꿈꾸는 자유인가? 정치인 다음은 누구일까. 뻔하다. 언론인과 지식인들일 것이고 그다음은 국민일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일러 민중이라고 표현한다. 서구의 루소도 민중의 시대를 예견해 그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일반의지(General will)에 의해 통치되는 이상사회를 구상했었다. 그동안의 역사는 소수의 엘리트가 장악해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됐을지라도 이제 근대의 주역은 이런 평범한 민중들이다. 동학혁명에서부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도 이들이 있었고, 민주화 과정에서도 이들은 선봉에 서 있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었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제발 나라를 제대로 운영해 달라는 부탁뿐이다. 역사를 만드는 민중의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기도의회 소속 의원이 의정활동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장기간 갑질을 이어왔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논란을 빚고 있다. 해당 의원은 공무원에게 막말은 물론 늦은 밤까지 업무를 강요했고, 이를 못 견딘 한 직원은 사직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해당 의원은 지역구에서마저 비슷한 물의를 일으켜왔다는 소식이다. 경기도 지방자치의 시대착오적인 민낯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정치인들의 자기 점검과 각성,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오석규(민주‧의정부4) 경기도의원은 제11대 도의회 전‧후반기 의정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정책지원관 등 직원들에게 상습적 갑질 행각을 이어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현직 도의회 직원들은 오 의원이 정책지원관에게 새벽까지 업무를 강요하고 막말을 일삼는 등의 갑질 사례를 자주 접했다고 증언했다. 오 의원의 갑질에 과로‧불안 증세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던 정책지원관은 결국 지난해 12월 사직서를 냈다. 오 의원의 업무 강요는 도의회 업무가 몰리는 행정사무감사, 예산안 심사 등 특정 시기가 아닌 시점에도 계속해서 자행됐다고 한다. 직원들이 퇴근한 늦은 밤에 전화를 걸어와 업무지시를 하고는 다음 날 아침까지 완료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직원들에 대한 인격 모독성 막말에다가 교묘하게 정서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지속했다는 피해 증언도 나왔다. 사무실로 찾아와 팀장을 부른 뒤 큰 목소리로 1시간가량이나 특정 직원을 비난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오 의원의 갑질이 꾸준히 이어졌지만, 직원들은 갑질 피해 신고는 엄두도 못 낸 채 냉가슴만 앓아야 했다고 뒤늦게 털어놓았다. 특히 임기제 공무원인 정책지원관은 재계약을 위해서 도의원의 업무평가를 좋게 받아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싫은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석규 의원에 대한 갖은 구설은 지역구에서까지 이어진다. 오 의원은 의정부시가 확보한 경기도 특별조정교부금 5억 원에 대해서 공무원들을 상대로 초갑질 행각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8월 한 근린공원 리모델링 사업과 관련해 의정부시 공무원이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공사를 하고,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휴일에 의정부시 부시장 등을 현장으로 불러 시민들 앞에서 꾸짖으며 모멸감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오 의원은 담당 공무원에게 ‘내가 가져온 예산이니 내 돈’이라며 내 돈을 집행하는데 왜 나한테 보고하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물의가 일자 오 의원은 “의정활동이라는 업무적 범위 내에서 더 잘하려고 했던 마음이었을 뿐”이라며 “업무 범위를 벗어난 사안에 대해 지원 업무를 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의정활동을 하면서 간과했던 부분들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약간 오해가 될 만한 부분들이 많았다”며 갑질 행태를 뒤늦게나마 사실상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갑질의 심리를 ‘열등감을 타인에게 던지는 것’으로 분석한다. 갑질은 관계된 모든 이들의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끼친다. 갑질은 사회 전체에 전염되는 특성마저도 지니고 있어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오석규 의원의 도드라진 갑질 사례를 ‘개인의 일탈’이나, 특별한 케이스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좀처럼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 나라 지방자치의 현주소요, 낮은 경기도 지방자치 수준의 민낯일 개연성이 높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도, 시·군을 막론하고 지역 도처에서 ‘의원’이라는 배지를 달고 으스대며 완장질을 일삼는 사례는 부지기수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지방의원들이 순수한 공복 의식으로 무장하고 오직 봉사에 충실한 선진 지방자치로 가는 길을 이제는 열어야 한다. 지역민과 공무원들을 졸(卒)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경기도 지방의원이라면, 도무지 왜 필요한가.
북한군 러시아 참전이 사실일까?. 12일 KBS에서 북한군 2명을 러시아 쿠르스크지역에서 생포했다고 보도했다. 붕대를 감은 얼굴이 공개되었다. 외모가 비슷하지 않아 보인다. 설마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작년 10월 북한군이 쿠르스크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었을 때에 설마 했다. 그런데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더니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한 달 안되는 사이 ‘북한군 한 개 대대 사망, 총 38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죽음이 통계로 기록되는 전쟁판에 북한 군인이 있었다. 북한군은 어째서 러시아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최전방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지뢰를 해체하며 전우의 죽음을 뒤로하고 떠밀려 나가야 하는지. 병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 약속이라도 했는가. 무자비한 드론이 병사를 공격하는 영상을 보는 것으로 충격인데, 그 당사자가 내가 떠나온 내 고향 사람들이라는게 보기가 무척 힘들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병사가, 어느날 명령으로 지형에도 익숙하지 않는 전장으로 왔을 것이다. 만약 참전 사실을 알았다면 ‘난 못가겠소’ 거부라도 해보고 죽어도 덜 억울하지 않겠다. 막판 전쟁이 얼마나 처절한지 병사의 조국에서 모를리 없다. 전쟁으로 가난해진 나라가 전쟁으로 부유해지겠다고 전장에 병사를 보냈다는 역설이다. 요즘 극장가에 영화 ‘하얼빈’이 예매율 1위에 있다. 안중근은 두만강과 러시아를 넘었다. 차거운 얼음이 두텁게 깔려 있는 두만강, 그 위에 안중근은 쓰러져 있다. 안중근은 경계를 품고 있다. 경계를 품은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되고 다시 또 다시 소환된다. 자신을 위함도 있지만, 또한 아울러 모두를 위한 길을 택한 숭고한 정신을 영화에서 읽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었는가. 그리고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유는 죽은 자의 목숨값이라 말한다. 개같은 죽음도 있지만,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죽음도 있다. 무자비한 공격과 폭격에 부나비처럼 끼어든 병사의 목숨은 어느쪽인가. 감히 만세를 웨치고 죽을만한 죽임인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 최전방은 영화촬영하는 세트장이 아니다. 누구를 죽여야 살아남는 게임이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고지전을 보라. 불과 백년도 지나지 않은 가까운 과거 일이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반복하지 말아야하는지 아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과거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기나긴 분단선, 악몽같은 전쟁은 유령처럼 자꾸 살아난다. 그리고 고향을 떠난자. 돌아갈 고향이 없는자. 경계에 서 있는 자들 심장을 자꾸 찌른다. 전쟁은 어째서 일어나며, 전쟁은 왜 꽃다운 목숨을 필요로 하는지. 첨단 기술 덕분으로 살인 무기는 점점 발전한다. 병사를 조준하는 드론에 무슨 청춘이 있으며, 총알에 무슨 이웃과 가족이 있겠는가. 병사여, 조국은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혹여 살아돌아갈 희망이라도 주었는가. 아니면 부귀영화를 약속 받았는가. 살아남아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일이 더 명예롭지 않겠는가.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우리는 만나게 되어있다. 명예도 명분도 없는 전장에서 병사가 죽은들 그것은 통계로 기록될 뿐이다. 얼마나 더 죽어야 이 전쟁이 끝날 것인가. 죽기살기로 싸우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숨막히고 답답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에 모두가 경악했다. 어이없는 날벼락에 ‘진짜야?’ ‘왜?’’를 외친 이들이 많았다. 친위 쿠데타에 실패한 그를 탄핵소추 하는 건 상식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7일 1차 표결에선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보이콧으로 탄핵에 실패했다. 1주일 후인 14일 여의도와 전국 주요 도심를 가득 메운 수십만 시민의 힘으로 가까스로 탄핵은 가결됐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관저에서 철옹성을 치고 체포영장에 저항 중이다. 무엇이 이같은 윤 대통령의 몰상식을 이끌고 있을까? 그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계기가 ‘극우 유튜브에 매몰’됐기 때문이란 진단은 설득력이 있다. 유튜브 중독된 대통령은 ‘부정 선거’ 미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계엄선포 전까지 언론다운 언론은 부정 선거란 용어를 기사에 담지 않았다. AI시대 알고리즘의 폐해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탄핵 이후 일부 언론들이 보이고 있는 사이비 행태가 그의 판단을 더 흐리게 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극우 유튜버 고성국이 주필로 있는 아시아투데이란 신문이 1월 3∽4일 한국여론평판연구소에 의뢰한 조사결과를 5일자에 실었다. 일부 언론의 검증없는 인용 보도가 포털 뉴스를 장식했다. 문화일보는 5일 오후 ‘尹지지율 계엄 후 첫 40% 돌파···2030 지지율 40% 근접’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대선 후보 당시 어퍼컷 세리모니 사진도 같이 실었다. 한국경제신문은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해 온 가수 JK김동욱의 인스타그램 사진과 함께 ‘尹 지지율 40% 돌파에···JK김동욱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1월 11일엔 ‘尹지지율 조작설에···김정은 신뢰도 77% · 김어준 조사 재소환’이라는 기사로 아시아투데이 여론조사가 문제없다는 식으로 다뤘다. 다행스러운 건 유력언론들은 이 여론조사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김승련 논설위원은 ‘응답률 기준 강화해야 저질 여론조사 막는다’는 칼럼으로 아시아투데이의 여론조사를 직격했다. 중앙일보는 일요일인 12일 아침 ‘직무정지 尹 지지율이 40%?···여론 호도 여론조사 판친다’는 기사로 아시아투데이 조사를 비롯해 국내 여론조사 기관의 문제를 고발했다.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란 기법이 있다. 품질이나 내용, 서비스 등과는 상관없이 부정적인 이슈를 의도적으로 조성해 구설수에 오르도록 해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방식이다. 대체로 시장에 처음 진출하거나 인지도가 낮은 기업이 사용한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혹(惑)은 마음(心)과 확실하지 않다(或)는 두 글자가 합해진 글자다. 마음(정신)이 어지럽다는 말이다. 그러니 혹세는 세상을 어지럽힌다 말이다. 무(誣)는 말(言)과 속인다(巫)는 뜻을 가진 두 글자가 합해진 글자다. 없는 사실을 가지고 말로 속인다는 뜻이다. 그릇된 이론이나 믿음을 가지고 사람을 속이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사이비 종교 교주나 정치화된 교수, 사이비 언론이 주로 사용한다.
정부가 발표한 실손의료보험 개편안을 두고 의료계와 환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개편안은 실손보험 난도질에만 집중해 혜택이 정말 필요한 환자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마저 대두된다. 실손보험을 매개로 한 과잉 진료 및 필수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실손보험이 의료시스템 붕괴의 주범이라는 극단적 비난만을 의식한 졸속 개편은 안 된다. ‘재벌 보험사 배만 불린다’는 비판을 받는 정부의 개혁안이라니 될 말인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9일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편안을 발표했다. 오남용 우려가 높은 비중증·비급여 치료의 가격과 진료 기준을 건강보험 체계에 맞춰 일원화하고, 비급여와 급여 치료를 섞어서 처방하는 ‘병행 진료’를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관리 급여로 전환해 건강보험 체계로 편입시키고, 본인부담률을 90~95%로 높여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개편안에는 5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질환을 중증과 비중증으로 구분해 비중증 치료의 자기부담률(현행 30%)을 50%로 높이고 5000만 원이었던 보장한도를 1000만 원으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적용 대상은 진료비와 진료량, 가격 편차가 크고, 이용 증가율이 높은 비급여 항목이다. 관리 급여의 구체적 항목은 미확정이지만 비급여 진료비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무릎 주사, 비타민 주사 등 10개 안팎이 포함될 전망이다. 관리 급여를 적용하면 실손보험이 있어도 환자의 자기 부담률이 급상승해 과잉 진료·치료 유인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의사는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권유하고 환자는 실손보험을 믿고 의료 쇼핑을 남발하는 기이한 공생구조를 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정작 의료계는 “재벌 보험사들의 배만 불릴 것이 너무나 뻔하다”며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자마다 질병의 상황이 다른데 이를 일괄적으로 ‘비중증’으로 묶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며,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입장문을 통해 “비급여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실손보험 제도 개편 방안은 국민의 건강권,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법적 정책이 될 것”이라며 “보장성이 대폭 줄어든 5세대 실손의 경우, 새로 실손보험에 가입하려는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들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실손보험을 믿고 치료해온 환자들은 날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이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재계약이 없는 1세대와 2세대 일부 가입자들은 어떤 방법을 써도 혜택이 축소된 5세대 실손보험으로 자발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법 개정을 통해 강제전환을 추진한다면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고, 위헌 판결이 날 가능성도 높다”고 경고했다. 치료 방법 선택은 기본적으로 의사들의 영역이다. 천차만별인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좀 더 나은 치료법을 선택하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서 시행한다. 정부의 개편안은 환자들 개개인의 형편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결국 돈 있는 환자들만 좋은 치료를 받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런 냉혹한 정책이 어디에 있나. 국가 의료보험 체계가 책임지기 힘든 의료복지 영역을 대신 감당해온 실손보험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국민이 보험사와의 계약으로 건강권을 넓혀온 부분을 일체 무시하는 개편안에는 심각한 하자가 내재한다. 정부의 정책은 다시 다듬어져야 한다. 국민 건강이 증진되기는커녕 형편이 안 되는 환자들에게만 불이익이 가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오는 1월 14일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는 인품과 도덕성이 훌륭한 덕망 있고 능력 있는 분을 체육회장으로 선출해야 한다. 회장을 뽑는 선거인단은 전국에서 무작위로 선출된 약 2300여 명의 체육인들로 구성된다. 그동안 수없이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 온 대한체육회는 어떤 단체인가? 올해가 한국 체육 역사 105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체육은 105년의 역사를 지내면서 국가 발전과 국위선양에 헌신해 온 체육계 지도자들의 사기와 긍지를 살려 줘야 하는데 작금의 체육계 현실은 총체적 난국이다. 매일 같이 보도되는 폭력, 성폭행, 경기단체 비리 등 체육계의 온갖 비판 여론은 체육인들의 마음에 큰 상실감을 줬고 선수들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켰다. 대한체육회는 2019년 심석희 선수 성폭행 사건 이후 수년간 연속적으로 선수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여 대한민국 체육계가 총체적으로 부패하여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엘리트 체육이 체육계의 병폐로 지목되어 큰 물의를 야기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파리올림픽 후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의 용기 있는 반인권적 폭로로 대한체육회가 또다시 부도덕한 문제 집단으로 전락, 총체적으로 무능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축구, 배드민턴협회장 등의 끝없는 오만과 야욕이 대한민국 체육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체육인의 품격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특히 과거에 징역형을 받는 등 도덕성에 큰 흠결이 있는 사람이 체육계를 대표하여 정부와 대립을 일삼고 정부를 규탄하고 갑질과 막말, 비리 등 각종 혐의로 직무 정지와 수사를 받는 등 체육계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대한체육회가 정부와 갈등으로 혼란을 초래하면 그 피해는 모두 체육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대한체육회장이 감독기관인 문체부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계속 투쟁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 것은 대한체육회 105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로서 바람직 한 일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알려진 체육계의 부조리로 인하여 체육계 전체가 최대의 위기에 빠진 상항에서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체육계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통감한다. 국민 여론이 이렇게 거세게 일고 있는데도 체육계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국민들과 체육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을 선출하여 체육계의 명예를 회복하고 총체적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한 명의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체육계의 자정과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후보단일화를 위해 지금이라도 후보들이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그 이유는 국민들의 80% 이상이 새로운 회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단일화의 핵심은 대한민국 체육계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진정성이다. 단일화를 거절하는 후보는 공익을 버리고 사익을 앞세워 대한민국 체육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체육계를 혁신과 쇄신으로 이끌어 갈 체육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능력 있는 체육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과 정치적 계산을 배제하고 체육인과 국민을 위한 조건 없는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체육인들의 명령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체육 발전의 토대를 이루어 놓은 체육인들과 화합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 대한체육회를 사유화하려는 사람, 체육인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 스포츠를 정치도구로 이용하려는 사람, 체육 행정의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은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반드시 배제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이번 선거가 체육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로에 서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9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80대 남편이 70대 아내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내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남편은 2020년 치매 진단을 받은 아내를 4년간 홀로 돌봐왔다. 그러나 갈수록 아내의 증세가 악화되고 자녀들로부터 적절한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간병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살해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독성분이 있는 약을 먹인 뒤 자신도 음독해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가 독성분 약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목을 졸랐다고 한다. 당시 재판부는 “60여년을 함께한 배우자를 살해한 것으로,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면서도 “다만 남편으로서 피해자를 성실히 부양했고 간호를 도맡아 온 점, 고령으로 심신이 쇠약한 피고인이 피해자를 돌보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이고 자녀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달 12일 대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간병살인’은 오랜 지병 등을 앓는 가족을 병간호하던 보호자가 지쳐 결국 환자를 살해하는 범죄다. 간병살인은 계속되고 있다. 2022년 5월엔 인천 연수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베개 등으로 질식시켜 살해한 60대 여성이 구속됐다. 자신 역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6시간 만에 발견돼 미수에 그쳤다. 이 여성은 중증 장애 딸을 38년간 간병해 왔다. 2023년 1월 인천지법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 여성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처 이유로 “이씨는 딸에게 최선을 다했고,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23년 7월 서울에서는 70대 배우자를 2년여 간 병간호하다 살해한 60대 남성이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 형을 받았다. 10월에는 대구 남구에서 60대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은 1급 뇌 병변 장애가 있었다. 지난 해 1월 대구 달서구에서는 50대 아들이 80대 아버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아버지는 10년간 치매를 앓고 있었다. 장기적인 신체적 질병이 원인인 사례도 있지만 정신적인 문제, 즉 치매나 조현병,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 등 발달장애로 인한 간병살인 사례가 빈번하다. 이들을 돌보는 부모, 자식, 형제자매 등 가족들이 기약 없는 수발에 지쳐 목숨을 빼앗게 되는 것이다. 치매 등 정신성 질환자의 보호자가 간병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간병을 하느라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포기해야 한다. 직장이나 학업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은 병원비와 약값, 생활비 등 금전적으로 쪼들리게 된다. 여기에 더해 매끼니 식사수발은 물론 대소변까지도 치워줘야 하는 등 육체·정신적 고통은 형언할 수 없다. 이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간병살인이라는 죄까지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내나 남편, 혹은 부모나 자식 등 가족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이의 생명 역시 존엄하다. 따라서 소중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절대로 합리화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를 향해 가고 있다. 앞으로 치매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간병살인 범죄 역시 늘어날 수 있다. 치매환자를 보살피는 일을 단지 개인의 문제라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간병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과 해당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국가와 사회는 지금도 치매환자와 가족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남의 일’ ‘안타까운 사정’일 뿐이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병이다. 따라서 치매 환자는 내가 될 수 있고, 치매환자를 돌봐야 하는 사람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국가·사회가 버팀목이 돼야 한다. 정책적 개선이 시급하다.
지난주 9일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도널드 트럼프 등 굴지의 정치인들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가난한 땅콩 농부이자 인도주의자, 전 해군 중위로 캐나다의 핵 재앙을 막고 미국 최고 권좌에 올랐던 카터는 이제 이 세상을 영원히 등졌다. 타임지는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은 ‘미국 최고의 전직 대통령’으로 카터를 평가했다. 국제 분쟁의 핵심 중재자이자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의 수호자인 카터는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화해시킨 캠프 데이비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해군에 입대할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가족의 땅콩 사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 4남매의 장남이었던 그의 가장 큰 야망은 "농장에 도움이 되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976 미국 대통령이라는 큰 왕관을 쓸 운명이었다.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미국 정치가 소용돌이 칠 때 그는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 이때 카터는 조지아 주 상원의원을 지냈지만 미국 정계에는 거의 무명이었다. 그런 그가 거물급 정치인 제럴드 포드를 100만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아웃사이더 정치인이었다. 선배 대통령들과는 달리 취임식 날 워싱턴을 자동차로 통과하지 않고 걸어서 왔다. 주간지 뉴스위크의 워싱턴 지국장을 지낸 멜 엘핀은 “카터는 대통령이 보여줘야 할 겸손함을 잘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집권 후 카터는 에너지부와 교육부를 신설하고 행정과 세제를 개혁했고, 교통 부문의 규제를 완화하고 국립공원의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高실업률과 高인플레이션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재임 선거에서 그는 로널드 레이건 토네이도에 휩쓸려 무참히 무너졌다. 그 후 카터는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로 돌아가 ‘원치 않는 새로운, 잠재적으로 공허한 삶’을 살았다. 그는 에모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회고록을 집필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조용한 은퇴 생활을 하기에 아직 젊었다. 1982년 그는 아내 로절린과 함께 카터센터를 설립해 평화와 질병 퇴치, 그리고 희망을 구축하기 위한 일을 시작했다. 그의 재단은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중국 등 약 40개의 선거를 감독했다. 평화의 옹호자인 카터는 1989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서 대표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핵개발을 진정시켰고, 아이티를 방문해 군부가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설득했다. 2002년에는 쿠바를 방문한 최초의 전직 미국 국가 원수로 워싱턴과 아바나 간의 화해를 촉구하는 연설을 진행했다. 많은 사람은 그의 치적에 갈채를 보냈고 2002년 10월 노벨평화위원회는 급기야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카터는 백악관을 떠난 후 진정한 자기만의 브랜드를 개발하고 인류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대통령 재임 4년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았다. 카터의 이런 눈부신 업적은 “우리는 항상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 자신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확신을 잃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상계엄으로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이런 고민을 한 순간이라도 하고 사는지 묻고 싶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처럼 숨어서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왜 철학적 사유가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씁쓸한 신년초다.
정부는 2024년 인구통계 분석을 통해 총인구수 5122만 명, 그 가운데 65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102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며 유엔(UN) 기준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음을 알렸다. 주민등록 인구는 최근 5년 동안 매년 11만 명 규모의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출생자 수는 24만 명, ’24년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명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대원 수로 보면 1인 세대(약 1012만 세대 41.97%)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령화 현상의 심화 속에 출산율 저하로 인한 젊은 세대의 인구 감소로 역피라미드형 인구구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정된 자원과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경제는 축소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축소 경제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인구는 늘고 공공비용은 급증함으로써 사회 자체가 초고령화되고 비용 상승만 늘어가는 축소사회가 시작되었고 수년 내에 그에 따른 고통을 체감하는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 한계와 지적 한계를 극복해 왔다. 이제는 AI가 사무업무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일자리를 차지하며 인간을 대체해 가고 있다. 21세기는 규율사회로 사람들은 복종을 강요받고 있으며, 성과 위주 사회 속에서 경영주체이자 성과주체인 현대인들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자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신과의 전쟁을 치르곤 한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사회적 질병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돌봄이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거나 증진하고,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를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봄의 수혜자가 되기를 원하며 돌봄 제공자의 역할 수행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이제 잃어버린 돌봄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지역사회가 돌봄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주민 각자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 지원 또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주민 각자가 돌봄의 책임과 의무의 주체임을 인식함으로써 인격적정서적 건강 훈련과 자기돌봄 훈련을 통해 존엄한 돌봄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최근 들어 스마트 돌봄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정부와 지자체는 고립 위험 가구를 위한 스마트 돌봄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하여 고립 위험 가구와 개인의 안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령화 사회와 돌봄서비스에 필요한 핵심 기술 가운데 헬스케어 기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의료의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기관 방문 부담을 줄이는 원격의료 기술, 심박수, 혈압, 혈당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웨어러블 기기(스마트워치, 스마트 의류 등), 그리고 고령자를 돕는 간병 로봇 및 재활 로봇 기술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스스로를 돌보며 타인까지 돌볼 수 있는 돌봄사회는 선을 지키면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관심과 배려를 필요로 한다. 정부의 보조금과 보험 시스템, 민간의 기술개발과 사업화 역량이 한데 모여 축소사회를 대비하고 주민들이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스마트 돌봄사회가 활짝 열려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