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상징적인 실루엣을 되찾았다. 2019년 4월 15일, 성당 건물은 끔찍한 화재로 폐허가 됐다. 눈물을 흘리는 파리 시민들과 전 세계의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첨탑이 무너져 천 년 된 지붕 구조의 일부가 사라졌다. 프랑스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수년간의 작업 끝에 노트르담의 지붕과 첨탑은 예전과 똑같이 재건됐다. 기부금으로만 자금을 조달한 이 ‘세기의 프로젝트’에는 약 7억 유로(한화 약 1조 562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또한 250개의 업체와 2,000명의 전문가가 동원됐다. 지난 토요일 노트르담에서는 재개관 기념식이 있었다. 예배와 역사의 장소로 노트르담은 부활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은 영적, 유산적 역할도 되찾았다. 내부는 미니멀한 전례 가구와 새로운 조명으로 레이아웃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화재 당시 손상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복원되고, 17세기부터 제단에 걸려있던 그리스도 성화도 다시 돌아왔다. 노트르담의 재개관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행사로, 정신적, 문화적 쇄신을 상징한다. 65세의 한 신자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신앙, 종교, 유산, 파리의 역사’를 상징하며, 가톨릭 신자들이 대림절을 맞이하여 특히 기대하는 “부흥”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우정회(Société des amis de Notre-Dame) 회장은 이 대성당은 파리와 프랑스 역사의 강력한 상징인 ‘민족의 성전’임을 강조했다. 기념식 행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로 시작됐다. 단지 이 연설은 정교 분리를 위해 대성당 밖에서 이루어졌다. 이어서 로랑 울리히 파리 대주교가 노트르담의 웅장한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두드릴 때마다 노트르담 합창단이 내부에서 시편 121장을 불렀고 세 번째 두드릴 때 바야흐로 대성당 문이 열렸다. 거대한 오르간이 연주되고 엄숙한 테 데움(Te Deum)으로 마무리 됐다. 밤 9시에는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주최하는 쇼가 대성당 앞마당을 환하게 밝혔다.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노래, 춤이 이 역사적인 기념식을 축하했다. 베네수엘라의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남아프리카의 소프라노 프리티 옌데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하고 캐나다 출신의 가루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불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 등 50여 명의 국가 정상, 340명의 프랑스 및 국제 미디어, 4만 명의 시민을 포함한 3000여 명의 방문객이 참석했다. 노트르담 성당 안의 반짝이는 빛에 모든 방문객은 감탄했다. 화재로 성체실에 구멍이 뚫리고 잔해가 쌓여 있던 것과 달리 본당의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깨끗하게 청소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금발의 돌과 대비돼 선명한 색채를 드러냈다. 화재 직후 마크롱 대통령은 대성당을 더욱 아름답게 재건할 것이며, 5년 안에 완공시키겠다고 약속 했다. 불가능할 것 같던 그 약속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켜졌다. 필시 신의 축복이었다. 기념식 다음 날 오전 10시 30분부터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파리 대주교가 주례하는 제대 봉헌식과 첫 공개 미사가 재개됐다. 이 축하 행사에는 프랑스와 전 세계에서 온 약 170명의 주교와 파리 교구 내 106개 본당 사제, 7개 동방정교회 사제들이 참석했다. 앞으로 일주일 간 축제가 벌어진다. 11일 수요일 저녁에는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을 환영하는 행사가 열리고, 다음 날에는 프랑스 해외령 과들루프의 성모 축제가 거행된다. 13일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그리스도의 가시 왕관의 장엄한 귀환이 있고, 17일에는 대성당 합창단이 축하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노트르담의 역사는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일 0시 35분,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국회 본관에 진입하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같은 시각, 수도권에 산재해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전체 297명의 계엄군에 의해 점거당했다. 불과 3시간 전인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함”의 명목으로 대한민국에 44년 만의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방송자막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전체 국민 중 그날 밤을 헌법 제 77조 1항, 계엄 선포의 전제로 명시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믿고 있던 이는 ‘용산’과 관계된 극히 소수의 공무원에 불과했다. 위헌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임기 후반기 첫 민생토론회를 통해 이른바 ‘백종원 1000명’ 육성사업 등을 공언하였던 대통령의 국정인식이 하루만에 국가비상사태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임기 내내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였던 그는 스스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훼손하는 반헌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실정(失政)을 저질렀다. 비상계엄 선포로 비상국면이 조성되는 희대의 촌극. 시간과 방법의 문제일 뿐, 그는 조기 퇴진을 목전에 두고 있다. 12월 7일 오후 5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첫 탄핵소추안 표결은 집권여당 의원들의 집단 퇴장으로 인해 자동 폐기되었다. 이미 국민의 힘 지도부는 이번 탄핵 표결에 대한 당론을 불참식 부결로 확정, 본회의 표결 도중 의원총회까지 개최하며 소속 의원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표결을 방해하였다. 전통 있는 공당의 모습이자 헌법기관 108인의 총의라 보기엔 극히 실망스러운 선택이었다.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가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범죄자들조차 이성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였다면 합리성을 갖추었다고 평가한다. 객관적으로 최적의 선택은 아니어도 그들에게 가치있는 선택, 즉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에 기반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추측컨대 2016년 헌정사상 첫 탄핵대통령을 배출했던 그들은 민의를 수렴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개별 헌법기관이 아닌 당리당략적 사고를 감행했다. 자당에 엄습한 모종의 두려움은 제한된 시간과 사고 내에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최적의 결정을 종용하였을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와 책망 속에 상대적 정치 무관여층이었던 2030세대까지도 여의도로 불러내었으니 그것은 악수(惡手)였다. 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K-pop으로 무장한 채 장기전에 임할 채비를 마쳤다. 집권여당이 민의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과 도리를 저버린 채 수세적 당론으로 포장된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형국에서 대중들의 시선은 14일 예정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로 쏠리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의 런닝타임 2시간 21분보다 20분 가량 길었던 비상계엄이 해제된 후 6일 美 경제매체 포브스는 ‘윤 대통령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쏟아졌던 수많은 외신보도 중 가장 뼈아픈 소식이었다. 이미 널뛰는 환율 속에 시중은행은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8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의 성명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확고하게 지킬 것이라 밝혔으나, 그 또한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이름을 올린 1인이다. 국가신용이란 긴 세월 노력과 노력이 포개어져 무형의 실물 가치로 유통된다. 지난 44년이 그러했듯이 이번 계엄사태의 청구서는 국민들과 다음세대가 수십 년에 걸쳐 감당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현 집권여당이 당리당략 처세술로 정세판단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며 거대야당 또한 반대급부만을 누리며 쾌재를 부를 수 없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긴요한 것은 특정 공당의 존속여부나 야당 대표의 대선행보가 아니다. 우리 헌정사에 씻지 못할 자상을 남긴 현 대통령의 직무정지와 조속한 퇴진, 국면수습과 국정 정상화일 것이다. 이는 반복되는 긴급 담화나 약속이 아닌 헌법상 절차와 제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함이 자명하다. 지금은 탄핵의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일본의 20대 청년 하나가 3년(1878~1881) 동안 조선의 무인도를 탐사한다. 다도해 부근에도 수시로 왕래하면서 조사했다. 현해탄도 네 차례나 항해했다. 그는 메이지 정부를 반대하는 인사들과 어울려 군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곧바로 큐슈의 한 정치인이 운영하는 학교에 가서 한문 선생을 하기도 했다. 그 얼마 후, 마음에 맞는 친구와 '근대시문학'(近代詩文學)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여러 해 동안 출판사를 했다. 시도 썼다. 동양사회당(東洋社會黨)을 창당, 평등세상의 꿈을 선포하고 도전했으나, 시대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정당은 해산당하고 두 차례나 옥살이를 했다. 갑신정변의 주인공 김옥균의 후원자이며 동지였다. 이토록 다종다양한 경력은 그를 당대의 석학으로 진화시켜주었다. 중국과 조선에도 자신의 뜻을 전하여,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이른 바, ‘대동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1850~1922)라는 사람이다. 위와 같이 호기심이 강했다. 야심도 컸다. 게다가 똑똑하기도 했다. 그의 책 '대동 합방론'이 나온 것은 1893년이었다. '일본인'이란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낸 것인데, 특히 중국에서 호응이 컸다. 한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1898년 淸나라 말기, 중국 최고의 석학이었던 양계초(梁啓超. 1873~1929)가 서문을 써서 상하이에서 출판했는데 물경 10만 부였다. 요즈음으로 환산하면, 아마 1000만 부쯤 될 것이다. 그 일부가 조선에 들어왔다. 양계초는 이 책을 "공자의 대동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의 찬사가 조선과 중국의 지식인사회를 격동시켰다. 특히 조선의 친일지식인들에게는 그 이상의 경전이 없었다. 동학3대 교주 손병희와 함께 동학운동의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이용구는 '대동합방론'을 읽고 불세례를 받았다. 아들의 이름을 '대동국남'(大東國男)이라고 짓고, "동양제국은 하나로 힘을 합하여 서양에 대항할 아시아 연방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변절했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일진회 총수가 되어 용역사업으로 전국의 의병들을 토벌하는 짓을 벌인다. 당시 고종을 폐위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는 정미7조약(1907년)으로 전국에서 15만 명의 의병이 일어나서 5만 명 이상 죽거나 다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진회의 자위단 병력도 1만명 이상 죽었다. 고종이 일본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궁궐 밖에서 위협시위를 한 것도 일진회였다. 용역비는 300만엔이었다. 요즈음 가치로 환산하면 300억원 정도였다. 일본은 “일이 잘 끝나면 3000만엔도 무슨 문제겠는가”하며 이용구를 악마가 되어 뛰게 만들었다. 다루이는 "조선과 일본은 원래 한 민족이었으니 다시 합쳐서 연방을 만들어야 한다. 국호도 '대동'(大東)으로 하자. 그런 다음 대동국이 중국, 동남아시아와 연방을 이루어 큰 하나가 되어서 서양의 득세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일본이 '왕초'로서 전체를 지배하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하지만, 그 내용은 당대 동양 지식인들의 마음을 뜨겁게 얻었을만큼 설득력이 있었다고 한다. 근사한 이론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본질은 정한론(征韓論)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風臣秀吉. 1537~1598)로부터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8~1877)와 다루이 도키치,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까지, 일본의 수뇌부는 변함없이 우리나라를 일본땅으로 하는 게 꿈이다. 이토 시대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한반도를 따옴표(' ')도 없이 신영토(新領土)라고 쓰거나 말했다. 우리땅을 대륙진출의 다리로 삼으면서, 내지에서 필요로 하는 물산의 공급지로서, 중국이나 러시아와 싸울 때 병력동원과 군수기지로 삼고 싶은 열망은 그들의 DNA가 되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벌어진 초현실적인 '비상계엄' 앞에서 불편하고 화나고 우울하다. 만감이 교차한다. 걱정이 태산이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수 백년 동안 변함없이 추진되어 온 일본의 정한론이다.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라고 지시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며 100만 인파가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 모여들어 추위 속에서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민심은 천심’이란 지극히 옳은 말도 대다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7일 오후 5시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 투표에 들어갔다. 국회 본회의에 탄핵안이 상정된 것은 세 번째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랐다. 결과는 노대통령 ‘부결’, 박대통령 ‘가결’이었다. 이번 탄핵 사유는 ‘헌법이 요구하는 그 어떠한 계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음에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원천 무효인 비상계엄을 발령함으로써, 국민주권주의, 권력분립의 원칙, 군인 등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정당제와 정당 활동의 자유, 언론·출판과 집회·결사 등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300명) 과반의 발의와 재적 3분의 2(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고 명시돼 있다. 표결에는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무소속 의원, 일부 국민의힘 의원이 참여했지만 재석인원 부족으로 ‘불성립’이 됐다. 결국 탄핵안은 개표 절차조차 없이 폐기됐다. 대다수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 ‘국민’을 앞세운 정당인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이날 탄핵안 표결에 앞서 실시된 ‘김건희 특검법’도 부결됐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다시 국회로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김건희특검법)은 총 투표수 300표 중 찬성 198표, 반대 102표로 부결됐다. 가결에 필요한 200표에서 2표가 부족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단체로 퇴장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조속히 돌아와 투표하시라”고 호소했고, 국회 주변에 운집한 100만 인파들도 국민의힘 의원들의 투표를 간절하게 외쳤지만 국민의힘은 귀를 막았다. ‘체포 대상자’ 명단에 들어있던 것으로 알려진 한동훈 대표를 지지하는 20명 안팎의 ‘친한계’ 의원들의 이탈표를 기대했지만 이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상계엄 사태 초기에 친한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탄핵 찬성 움직임이 일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날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제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하자 이를 수용해 탄핵을 반대하는 당론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당에 일임하겠다”는 말을 ‘퇴진 약속’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나 민주당은 탄핵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다. 국민들 탄핵 여론이 더 거세지면 여당 내에서 이탈표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임시국회를 열어 탄핵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내란죄’ 상설특검, 김건희 특검, 해병대원 특검 등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한다. 탄핵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실망감과 분노를 해소할 대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의 탄핵 남발도 결코 죄가 가볍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실인식이 국민들과 다를 수 있을까. 한동훈 대표조차 윤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위헌·위법적’이라고 표현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부역자’, ‘내란동조당’이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힘은 “탄핵보다 더 질서 있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위기를 조속히 수습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민주권과 헌법, 법치의 파괴를 획책한 명백한 반국가 범죄인 비상계엄에 놀란 국민들이 이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교육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혁신은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요인이며, 새로운 시대마다 도입되는 새로운 학습 도구는 학습자가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학습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가상현실(VR)은 가상의 환경을 만들어 사용자가 현실 세계를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헤드셋을 착용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디지털 공간이 현실을 대체하며, 사용자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몰입감은 학습자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영국의 ‘ClassVR’은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를 탐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를 제공해 학생들이 고대 문명의 구조와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 수업으로는 제공하기 어려운 몰입적 경험을 통해 학습자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탐구와 이해의 깊이를 더한다. 이러한 몰입적 학습의 흐름은 혁신적인 예술에 의해서도 시도되고 있다.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re)은 VR과 유사한 원리를 통해 교육적 효과를 창출한다.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이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일부로 참여하며 직접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몰입적 학습(immersive learning)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창의적 사고, 감정적 공감, 비판적 사고를 촉진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펀치드렁크 엔리치먼트(Punchdrunk Enrichment)” 프로그램은 이머시브 연극을 활용해 초중등 학생들에게 스토리텔링 기반의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등장인물로 참여하며 특정 사건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야기의 전개를 바꾸는 과정을 통해 학습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수동적 학습을 넘어, 상호작용과 비판적 사고가 요구되는 활동에 몰입하게 된다. VR과 이머시브 연극은 모두 협업과 감정적 몰입을 강조하며 학습의 사회적 측면을 강화한다. 기술과 예술의 도입을 통해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러한 시도들은 학습자가 단순한 지식 습득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학습자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을 강화하며 미래 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 12월 3일 비상계엄령 사태는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의 계엄령을 마치 VR 기술이나 이머시브 연극으로 체험한 것처럼 느끼게 했다. 중고등학교에서 국사나 근현대사 시간에 5.16 군사정변이나 12.12 군사반란과 같은 사건을 배울 때에는 기본권 제한이나 헌정 파괴 같은 내용이 단순히 지식으로만 받아들여졌다. 아무래도 교과서의 글과 사진, 선생님의 강의로만 접하니 한계가 있었다.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기본권을 제한당하고, 태어날 때부터 공기처럼 함께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는 순간을 직접 겪고 나니 군부 독재 정권의 폭압과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고뇌를 절감했다. 과거와 달리 시민과 국회의 즉각적인 대응과 그에 따른 빠른 계엄령 해제와 같은 차별점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경험과 공감을 통한 이해력과 연대감 형성이 교육과 지식 습득 전반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이번 사태가 역설적으로 알려준 것 같아 조소를 금할 수 없다.
제주도에는 사철을 대표하는 식물의 색이 있다. 봄에는 유채꽃의 노랑, 여름에는 수국의 분홍, 가을에는 억새의 갈색, 겨울에는 동백의 빨강. 그 중에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보면 시련 속에서 헤치며 절개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동백꽃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꽃이다. 꽃이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 더욱 멋진 꽃이다. 대부분의 꽃들이 팔랑팔랑 꽃잎을 떨어뜨리며 지지만 동백은 꽃송이 째로 뚝 떨어진다. 마치 목이 베어 죽을지언정 절개를 지키겠다는 애국자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동백은 대략 11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2~3월까지 만발하는 겨울 꽃이다. 추운 환경을 이기는 것도 힘든데 이 시기에는 기온이 낮아서 수정을 해주는 나비나 벌들이 없어서 사실 동백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야 맞다. 그런데 나비나 벌 대신 동백의 수정 작업을 돕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바로 동박새이다. 이렇게 새가 수정을 돕는 식물을 조매화라고 한다. 동백꽃은 나비나 벌과 같은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향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동박새가 빨아먹을 만큼 충분한 꿀을 가지고 있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에는 많은 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지만 연초록색 자그마한 동박새는 동백꽃이 필 무렵 돌아온다. 동백꽃 위에 앉아 아기가 엄마 젖을 물듯이 동백꽃의 노란 젖꼭지를 물고 달콤한 꿀을 흡족하게 빨며 추운 겨울과 이른 봄을 살아내는 것을 보면 이들의 공생관계가 참 눈물겹다. 나비도 벌도 없어서 쓸쓸히 세대 보전도 못헸을 동백꽃인데 꿀 먹여 키워준 은혜를 아는 예의바른(?) 동박새가 옮겨준 꽃가루 덕분에 열매를 맺어 삶을 이어가니 말이다. 그런데 동백꽃과 동박새에는 아비와 두 아들에 얽힌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어느 왕과 왕의 동생이 있었는데 왕에게는 후사가 없고, 동생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왕좌를 뻇길까봐 늘 불안해하던 왕은 동생의 아들들을 죽이려고 불러들였다. 이를 눈치챈 동생은 자기 아들들 대신 다른 사람을 들여보냈다. 왕이 그 사실을 알고 대노하여 동생과 아들들을 불러들여 동생에게 칼을 주며 아들들을 직접 죽이라고 했다. 이떄 아들들은 새가 되어 날아갔고 동생은 왕이 준 칼로 자신을 찔러 붉은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한다. 바로 그 자리에 붉은 피를 닮은 동백나무가 자라났고 날아간 두 아들은 동박새가 되어 동백꽃이 필 때마다 찾아온다는 슬픈 전설. 아무리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지만 동백꽃 속에 연한 부리를 박고 꿀을 먹고는 여기저기 폴폴 날아다니면서 동백나무의 생존을 이어가는 동박새를 보면 전설이 사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저 동백꽃과 동박새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눈에 보이는 환경은 부유한 듯 하지만 마음 속은 서로에게 자신을 조금이라도 내어줄 어떤 여유도 없는 각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언제나 상대방과 환경 탓만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환경을 탓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서 생명을 보존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하는 동백꽃과 동박새의 모습을 보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12월 3일 22시 30분경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무엇이든, 대통령의 이런 행위는 많은 국민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국회의원들은 국회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결국 4일 새벽 1시경 대한민국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재석 의원의 100% 찬성으로 가결했다. 같은 날 민주당을 비롯한 야 6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얼마 전까지 정치권에서 주목했던 것은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서 얼마나 많은 이탈표가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이제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과연 국회를 통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주목거리다. 4일 오전 국민의힘은 의원 총회를 열고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내각 총사퇴와 국방장관 해임 그리고 윤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지만, 탈당 문제는 이견이 있어, 현재 한덕수 총리에게 탈당 요구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힘 전체가 반대하고 있다. 이렇듯 탈당은 요구하지만, 탄핵에는 반대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무정부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윤 대통령이 지금 탄핵당할 경우,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권 재창출은 완전히 물 건너 갈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원들 개개인의 정치생명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정당’이라는 라벨을 달고 차기 총선에서 승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친한계는, 일단 윤 대통령을 탈당 시킨 뒤, 여당이 아닌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 뒤에 탄핵에 동참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일단 여당이 아닌 야당의 역할을 하며, 국민 뇌리 속에 ‘국민의힘=윤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희석한 이후에 탄핵에 동참하면, ‘탄핵 당한 대통령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힘 역시 윤 대통령 탄핵을 마냥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헌법학자들에 의하면,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에는 ‘다양한’ 위헌적 요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3권 분립을 정면으로 위반한 내용이 포고령에 포함돼 있고, 비상계엄을 선포할 정도의 ‘상황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윤 대통령이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실은 계엄 선포 과정에서 불법이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대통령이 위법을 저질렀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에, 당장 대통령이 탄핵 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탄핵은 항상 쓸 수 있는 카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민적 분노 지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민 대다수는, 비상계엄 선포가 민주주의 파괴행위라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3일 밤에 시작된 ‘서울의 밤’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루었다는 대한민국의 이미지와 국민의 자부심에, 씻기 어려운 상처가 된 것은 분명하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 초현실적 상황이 발생했다. 45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모든 국민이 경악했고, 세계가 놀랐다. 공포된지 150분 만에 국회가 재석의원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하고, 6시간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일단락 되었지만, 아찔했던 6시간 동안 대한민국이 받은 상처와 전 국민을 짓눌렀던 공포는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12월 3일 밤 대국민담화에서 민주당의 검사,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을 지적하며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의 예산 단독처리를 거론하며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그 자체가 명백히 위헌적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우선 비상계엄의 실질적 요건이 부재하다. 헌법 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엄법 제2조도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계엄의 명분으로 제시한 민주당의 탄핵, 예산 단독처리는 헌법적·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야당의 국회 활동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해석할 여지는 전혀 없다. 대통령의 담화문 어디에도 계엄을 선포할 헌법적 법률적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선포 즉시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도 지키지 않았고, 참모들의 설득으로 계엄 선포 전에 국무회의를 개최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심의도 하지 않았고, 반대 의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군의 국회 난입은 내란행위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4일 새벽 계엄군은 국회에 난입했다. 전투헬기와 장갑차도 등장했다. ‘참수부대’로 알려진 특전사 부대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기 위해 유리창을 깨며 국회 본청에 난입했다. 또 계엄군은 ‘체포대’를 꾸려 우원식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등을 체포하려 했다. 우리 헌법과 형법은 이를 내란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2·12 군사반란 사건 재판에서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 회의 소집을 막으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므로 그 자체가 내란 범죄”라며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한 바 있다. 기능을 마비시켜 국회 의결을 막으려고 시도한 것은 심각한 헌정 질서 파괴 행위라는 판례가 이미 20여 년 전에 확립된 것이다. 군 서열을 무시하고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윤국참모총장은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첫 번째 포고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였다. 명백한 위헌이자 위법적 내용이다. 설사 요건이 갖추어져 비상계엄이 선포된다고 해도 헌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킬 수는 없다. 헌법 77조 5항은 국회에 계엄해제권을 부여하고 있고, 계엄법 13조는 ‘계엄 시행 중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비상계엄 하에서도 헌정질서 유지를 위해 국회의 권능을 헌법과 법률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는 위헌이자 위법이다. 이번 윤대통령의 비상계엄 소동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신인도는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주요 외신은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고,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에 이룬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는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와 국회가 대통령발 국가 위기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현명하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국민께 사죄하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이전에 스스로 물러나 국가적 위기를 바로잡고 헌정질서를 바로세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탈출구로 보인다. 씻기 힘든 과오를 저질렀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대통령 아닌가. 국민들은 늦었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윤 대통령의 용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모, 형제 등 가까운 가족이 사망하는 경우 슬픔의 감정을 추스르고 장례 등의 절차를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면 유가족들은 망인의 업무를 처리하여야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더욱이 가까운 가족이라고 하지만 망인이 평소 재산관리나 망인의 채권채무 관계 등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였는데 남편이 평소 재산관리를 전적으로 하였기에 망인이 어느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거래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아내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 사망하는 경우 특히, 배우자나 부모가 사망하는 경우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하는 문제는 상속문제입니다. 상속이란 사망을 원인으로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가 상속인에게 승계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속인들이 상속재산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주민센터에 방문하여 안심상속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하여 피상속인의 재산을 조회하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상속인들은 피상속인의 금융재산, 대출금, 보험, 증권, 부동산, 차량, 미납 세금 등 상속재산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를 통하더라도 망인이 사적으로 친구들이나 지인들로부터 빌린 대여금과 같은 채무에 대하여는 알 수 없으므로 망인의 과거 금융거래내역을 은행에서 발급받아 이를 살펴보고 대여금으로 볼 수 있는 금전거래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피상속인의 재산조회 과정을 통해서 상속재산과 상속채무를 파악하다 보면 상속재산보다 채무가 더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상속인이 그대로 상속을 받게 되면 상속인들은 상속재산보다 더 많은 상속채무를 상속인들의 고유재산으로 갚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통상 상속재산보다 상속채무가 더 많은 것이 명확한 경우에는 상속포기를, 명확하지는 않지만 상속채무가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한정승인을 신청하게 됩니다. 상속포기를 하게 되면 상속인들은 더 이상 상속을 받지 않게 되나, 후순위 상속인에게 상속이 발생하므로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 후순위 상속인들까지 모두 상속포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정승인은 상속재산의 한도에서 상속채무를 갚는 것으로 상속포기와 달리 일단 상속인들에게 상속이 개시되는 것입니다. 다만, 실무적으로는 후순위 상속인들까지 일률적으로 상속포기를 하는 것이 힘든 경우 선순위 상속인 중 한명만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 선순위상속인들은 상속포기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의 경우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날 즉, 피상속인의 사망을 안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피상속인의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고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정승인의 경우 신고기간이 도과되더라도 상속인이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하여 상속을 받은 경우에는 채무초과 사실을 안날로부터 3개월 내에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한정승인을 하는 경우 결국 상속재산과 상속채무가 비슷하여 상속받은 부동산의 순재산가치가 거의 없는 경우에도 상속받은 부동산에 대하여 취득세와 양도세, 상속세를 부담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사회적 첫출발은 1996년 곡성군청 건설과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늦가을, 점심시간 뒤 의자에 앉아 햇볕사냥을 즐기고 있는데 군수실 이 양이 앞으로 지나가면서 ‘김 주사님 구두 멋있네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사람은 안 보이고 구두만 멋있어 보이는가요?’하고 응대했다. 그 농담 같은 유머로 우리는 그날 퇴근 뒤 함께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외롭지 않게 객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둘이서 시골에 있는 우리 집을 가기로 하고 가는데 산길을 넘어야 했다. 눈 쌓인 산길 북풍을 정면으로 맞서 돌진하며 힘겹게 걸었다. 동행하던 그녀는 지쳤는지 나에게 노래나 한 곡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맨발의 청춘’을 불렀고 둘이는 웃으며 산을 넘었다. 소설가 이청준의 『눈길』은 눈(眼) 길이 아닌 겨울에 내리는 『눈길』이다. 서울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사는 젊은이가 남쪽 고향을 다니러 왔다 하룻밤만 자고 가는데 세상천지가 온통 눈이었다. 그런 산속의 눈길을 어머니와 아들 둘이 걷고 걸어서 차부(정류소)까지 가서 아들은 서울로 가는 차를 겨우 타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사지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온몸이 마치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어머니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둠 속에 서서 아들이 떠난 찻길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한참 서 있다 보니 찬바람에 정신이 좀 돌아오고 마음은 새삼 허망했다. 거기다 아직도 날은 어둡고… 한식경 차부 안 나무 걸상에 웅크리고 있다 보니 동녘 하늘이 환해오고— 혼잣길 서둘러 올 때는 아들과 둘이서 오던 길을 혼자 가면서 올 때의 그 발자국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는 듯만 싶었다고 했다. 산비둘기가 푸르르 날아올라도 아들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아들 모습이 뛰어나을 것만 같았다는 생각에, 내 자식아 내 자식아, 너 하고 돌아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는구나.… 라고 쓰여 있다. 작가는 ‘어머니가 걸었던 그 하얗던 눈길./ 그 막막하고 서럽던 흰 길을 어찌 세상의 자식들이 다 알았다 할 수 있으랴,/ 자식은 끝내 다 이해하지 못할 그 어머니의 길…, 이라고 굵은 글씨로 박아놓았다. 날씨가 추워지면 세한도(歲寒圖) 생각이 난다.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에서 그린 세한도(23 x 69.2cm)는 1844년 작품으로 국보 180호이다.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와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으로, 한결같은 인격과 지조를 생각나게 하는 명작이다. 흐트러진 정신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세한도정신은 나의 스승 고하(古河) 선생님을 그립게 한다. 따라서 존엄한 작품의 위치를 생각해 보게 된다. 12월은 계절의 끝이다. 한 달 한 달 열두 달의 달력을 떼어내듯 인생의 한 해가 끝나는 달이다. 12월 세한도의 늙은 소나무는 쓰러져가는 오두막집 곁에서 우두커니 서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외로움이라면서 견뎌내는 길 밖에 없다는 체념의 표정으로- 12월이 되면 인생 회전목마 같은 삶 속의 질문이 아프다.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할 길을 잘 찾아왔는가? 무엇하며 살아왔는가? 스스로의 질문에 가슴이 아프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의 공원에는 회전목마를 타면서 탄성을 지르는 어린이들의 즐거운 비명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진다. 나에게도 아들 손자 손목을 잡고 어린이공원으로 가서 함께 회전목마 타면서 즐기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회전목마의 흐느낌을! 타는 사람은 즐겁지만 목마는 힘들고 지쳤다는 것을. 추운 겨울에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가운데 정지된 화면처럼 외로움과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것을. 12월은 회전목마의 외로움을 생각하게 되는 그 시간이다. 인생회전목마를 내려야 할 때를 생각하게도 된다. 나무나 목마가 늙었다고 늙은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흰 빛으로 변해가는 세한도의 소나무는 생명의 추위를 느끼게 하면서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자연이 표정을 바꾸는 데 있어 겨울 풍경의 표정이 좋아 보일 때가 12월이다. 이제는 긍정적인 마음과 ‘웃음은 핵무기보다 강하다.’는 유머정신으로 미래의 희망을 재미있게 꿈꾸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