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법무부는 지난 2월 12일 ‘교육국제화역량 인증대학 및 유학생 유치·관리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는 대학의 국제화 역량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해 2012년부터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시행해 온 제도다. 유학생 유치 확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 체류 등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각종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한 대학에는 인증 자격을 부여해 사증 발급 절차 간소화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반면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유학생 유치·관리 부실이 확인될 경우 제재를 가하도록 설계된 것이 제도의 핵심이다. 정부의 유학생 유치 정책인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가 처음 시행된 2004년,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25년에는 25만 명을 상회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양적 확대가 가속화되면서 단순한 유치 경쟁을 넘어 안정적이고 책임 있는 관리 체계의 필요성이 커졌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증제가 정착해 왔다. 이번 평가는 제4주기 기본계획 개편 내용을 반영해 대학의 행정적 부담은 완화하되, 부실한 유학생 관리에 대해서는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어 능력 기준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학업 수행 역량을 보다 엄격히 점검하도록 했고, 출입국관리법 위반 대학에 대한 제재 기간을 기존 1년에서 최대 3년까지 확대했다. 또한 전문대학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 평가지표를 마련한 점도 중요한 변화다. 이번 심사에서는 학위과정 181개교, 어학연수과정 123개교가 인증대학으로 지정되었으며, 이 중 39개교가 우수인증대학으로 별도 선정되었다. 교육부가 공개한 사례를 보면, 우수인증대학들은 유학생 선발에서부터 입학·적응, 학업 및 정서 지원, 진로와 취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한성대학교는 유학생 지원의 출발점을 입학 이후가 아니라 입학 이전 준비 단계로 설정하고, 언어교육센터의 어학연수 과정부터 학부·대학원에 이르는 전 과정을 연계하는 전주기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는 예비 입학생을 우선 선발한 뒤 한국어능력시험(TOPIK) 기준을 충족하면 정식 입학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대학교는 비자 전문 강사 초빙을 통해 취업·정주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은 전문적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마련해 유학생의 심리적 안정과 적응을 돕고 있다. 유학생 30만 명 시대를 향해 가는 지금, 이번 교육국제화역량 우수인증 발표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유학생을 단기적 재정 보완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건강한 국제화 생태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한국 대학의 국제화는 이제 단순한 숫자 경쟁을 넘어, 지속 가능한 관리 시스템과 대학 구성원 및 사회 전반의 성숙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병오년 설이 지났다. 2026년, 대한민국이 마주한 시대정신은 단연 불확실성이다. 국제 질서는 거칠게 요동치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 혁명은 산업과 노동의 지형을 근본부터 뒤흔든다. 세대·이념·진영 간 균열과 저출산·초고령·양극화는 공동체의 신뢰 자산을 잠식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의 국정목표나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만으로 국가의 미래를 예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럴수록 주권의 주체인 국민은 멈추지 않고 질문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는 물론 인구·교육·과학·복지, 안보·외교·통일·재외동포, 에너지·산업·노동·이민, 국토·균형발전·부동산과 기후·정보환경·주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며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답을 미리 정해두고 설득에 나서는 정치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질문은 무지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다. 질문이 사라진 공동체는 정체와 퇴보로 향한다. 알면서도 묻고, 이해했다고 여겨도 다시 점검하는 사회만이 불확실성의 강을 건널 수 있다. 2014년 겨울, 히브리대학교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히브리어 집중과정인 울판 관계자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소해 보여도 곧바로 묻는 다른 학생들과 대비된다는 평가였다. 모르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 자체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질문은 정답을 얻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를 단련하는 태도다. 이해되지 않으면 묻고, 의심이 들면 확인하며, 합의가 필요하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이 곧 질문이다. 이때 구성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아는 것은 분명히 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며, 오류가 드러나면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질문이 정교해질수록 질문자와 답변자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동양 고전 예기 학기편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 성장한다는 통찰을 전한다. 논어 공야장편의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不恥下問)”는 구절도 다르지 않다. 질문에는 지위도, 나이도 없다. 끊임없이 서로 묻고 답하는 공동체만이 길을 찾는다. 멈춰 서서 답만 기다리는 순간 길은 막힌다. 그러나 한 걸음 내딛고 질문을 던질 때, 막혀 보이던 길은 다시 열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구호가 아니다. 질문을 생활화하는 문화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존중하고, 데이터와 근거로 검증하며, 시행착오와 실패를 기록해 다음 선택의 자산으로 삼는 열린 시스템 말이다. 질문과 대화를 두려워하는 리더십은 공동체를 분열시키지만, 질문과 대화를 환영하는 리더십은 공동체를 단결시키고 전진시킨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묻고 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며, 무엇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점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회만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널 수 있다. 국가의 운명은 결국 정답을 강요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에서 갈린다.
자동차에 탑재되는 ACC(Adaptive Cruise Control:적응형 순항제어기능) 장치에 대한 맹신이 고속도로 등에서 발생하는 2·3차 사고의 치사율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 비상이다. 운전자들이 ‘운전 보조장치’에 불과한 시스템을 마치 ‘완전자율주행’ 장치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 같은 오신(誤信)은 자동차 회사의 부실한 홍보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맹신을 개선하는 것을 포함한 사고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고속도로 등에서 발생하는 2·3차 사고 가해 차량은 대부분 ACC 기능을 사용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3년(2023~2025년)간 경기남부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110명 중 34명(31%)이 2차 사고로 숨졌다. 한국도로공사 통계에서도 최근 6년간 ACC 사용 중 발생한 고속도로 사고는 31건이며 사망자는 21명으로 집계된다. ACC는 운전자가 설정해 놓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앞차와의 간격까지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기능이다. 앞차가 속도를 줄이면 내 차도 알아서 속도를 줄이고, 앞차가 다시 속도를 내면 내 차도 따라 속도를 낸다. 장거리 운전할 때 피로도 덜고, 졸음운전 위험도 줄여준다고 해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CC는 어디까지나 ‘운전자를 보조하는 장치’라는 사실이다.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센서나 카메라가 인식하는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작동한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나 도로에 떨어진 장애물, 아니면 이미 사고로 멈춰 있는 차량을 ACC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대부분 ACC는 건조한 노면과 평지, 일반적인 중량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비나 눈, 안개와 같은 악천후에는 카메라와 센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젖은 노면에서는 제동 거리가 늘어나 앞차와의 거리 유지가 어려워지며, 탑승자가 많아 차량 무게가 늘어난 경우나 내리막길, 굽잇길에서도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또, 전방 차량의 속도가 현저히 느리거나 정차한 경우와 공사 중이거나 사고 처리 현장에서도 추돌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ACC에 대한 의존은 금물이다. 운전자는 필요시 즉각적으로 운전대 조작과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또한, 기능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확인하고, 주의사항을 숙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찰은 ACC 사고 예방을 위해 도로관리청·소방과 협의해 사고 접수 단계에서부터 본선 대피를 적극 안내하도록 시스템을 보완할 계획이다. 한국도로공사와 합동으로 안내판·현수막·라디오 방송 등을 활용한 ‘비트박스(비상등 켜고, 트렁크 열고, 밖으로 대피, 스마트폰 신고)’ 캠페인도 강화한다. 매월 1회 이상 고속도로 2차 사고 대응 FTX를 실시해 현장 근무자 안전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ACC는 만능이 아니다’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비나 눈, 안개 등으로 센서나 카메라의 인식이 흐려질 수 있는 까닭에 악천후나 야간 운전 시에는 ACC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복잡한 도로나 공사 구간,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이 잦은 곳에서도 ACC가 오작동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ACC 설정 간격을 충분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동차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ACC 기능에 대해서 과도하게 신뢰하도록 잘못된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기능의 한계를 충분히 숙지하지 않고 ‘반자동’ 보조장치를 ‘완전자율주행’ 장치인 양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멈춰 서 있는 차량을 ACC 기능 탑재 차량이 대책 없이 들이받는 심각한 사고에 이렇게 허술하게 대응해서는 안 될 시점이다.
어떤 시간은 멀게 느껴지다가도 때로는 바로 눈앞의 장면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30년 전 한의과대학에 합격했던 순간도 그렇다. 향우회 선배의 소개로 고향에서 개원 중이던 대선배를 찾아뵙고 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 선배는 한의학 책을 건네주셨다. “내 동기가 쓴 책이야.”라며 건넨 책 가운데 한 권의 제목은 ‘음양이 뭐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은 설명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서양 과학과 논리에 익숙했던 나에게 음양이라는 개념은 낯설고 막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공부를 이어가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점차 생생한 개념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설명하려 하면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의 낯섦이 떠올라,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음양이라는 말은 해가 비치는 언덕의 밝은 쪽을 양, 그늘진 반대편을 음이라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 밝은 쪽이 생기면 자연히 그늘이 생기듯 이 개념에는 상대성이 담겨 있다. 낮과 밤이 교대로 오고 계절이 순환하듯 자연은 늘 두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주역(周易)’에서는 이를 두고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했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그 끊임없는 변화의 움직임 자체가 곧 대자연의 질서이자 도(道)라는 뜻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조화로운 동적 평형이 유지되는 상태를 건강이라 본다. 최근의 생리학 연구들은 음양을 인체 조절 시스템의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신경-내분비-면역(NEI) 네트워크 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 몸의 뇌와 호르몬, 면역계는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통합된 조절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외부의 위협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 것은 ‘양’의 급격한 항진으로 볼 수 있다. 이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시키지만, 이러한 상태가 장기화되면 면역 기능을 억제하고 만성적인 염증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반대로 충분한 휴식과 이완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의 활성화는 ‘음’의 보충과 회복에 해당한다. 결국 음양의 조화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활동과 휴식, 염증과 항염 반응이 균형을 이루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가는 생리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임상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들은 검사상 뚜렷한 이상이 없는 기능저하 상태를 나타낸다. 피로와 불면, 소화불량, 통증을 호소한다. 오랜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자율신경과 호르몬, 면역 조절의 균형이 흔들린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는 과잉된 양을 덜고 음을 회복한다.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데 그치지 않고 몸이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는 과정이 된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 규칙적인 생활, 호흡과 이완 같은 기본적인 회복 과정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황제내경’에서는 음양을 천지의 도이자 만물을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말한다. 음양은 서로 다른 힘이 균형을 이루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 평형을 보이는 자연의 상태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진정한 건강이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오래된 지혜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오후 12·3 내란 중요임무에 종사하고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한 혐의 등을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판결 직후 이상민은 변호사와 주변 사람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징역7년에 웃음을 보인 그는 이번 재판의 승리자였다. 그의 미소가 증거하듯 지금 대한민국의 내란재판은 표류하고 있다. 같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우인성 부장판사는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자본시장법 위반) 및 무상 여론조사 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창원지법 형사4부 김인택 부장판사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와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세비 반띵'(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마찬가지로 무죄를 때렸다. 내란재판은 아니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오세용 부장판사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뇌물 50억원 은닉(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및 아들 곽병채 씨의 '퇴직금' 명목 50억 원 수수(특가법상 뇌물) 혐의에 대해 각각 공소기각과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곽상도 역시 활짝 웃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재판이 바야흐로 뽑기가 되어가고 있다. 같은 내란주요임무종사자인 한덕수 전총리는 23년 형을 받은 반면 이상민은 7년 형을 받았다. 심지어 이상민은 박성재(전 외교부장관)와 더불어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어떤 판사가 배정되는가에 따라 구속, 불구속이 갈리고 판결은 춤을 춘다. 대한민국 대법원 앞에는 왼손에는 법전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눈을 부릅뜬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에서 사법부의 상징으로 세우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눈을 가린채 왼손에는 칼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지위나 재물 등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치우침 없이 칼같이 단호하게 정의를 실현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디케의 눈가리개를 벗긴 대한민국 사법부는 온갖 기득권카르텔의 눈치와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신이 들고 있는 책은 법전이 아니라 청탁인명부나 뇌물장부일 것이라는 추측도 과장이 아니다.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그리스 헤로도토스는 저서 ‘역사’에서 BC500년 경 페르시아 캄비세스2세의 재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당시 황실판관이었던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부정한 재판을 거듭했던 모양이다. 시삼네스는 부자가 되어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억울한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를 알게 된 캄비세스2세는 가장 가혹한 형벌인 산사람의 껍질을 벗기는 형벌을 시삼네스에게 내리고 벗긴 가죽을 재판관 의자에 깔도록 명령했다. 덧보태 캄비세스2세는 이 의자에 앉을 새 재판관으로 시삼네스의 아들인 오타네스를 임명했다고 한다. 날마다 아버지의 가죽을 귀감으로 삼아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추상같은 지침이었다. 19일 판결이 예정된 윤석열 재판은 룸살롱접대와 ‘봉숭아학당 재판’으로 유명한 지귀연판사가 맡고 있다. “김영선이 좀 해줘라”라는 대통령의 전화음성도 알아듣지 못하고 증거부족이라며 무죄를 때리는 판사가 즐비한 대한민국 사법부, 이럴 바에는 차라리 모든 재판을 최첨단의 AI에게 맡기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러면 AI시대정신에 부합함과 아울러 최소한 지금보다는 양질의 판결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음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준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는 알베르까뮈의 외침을 다시 새긴다.
국가 경제는 제조업 성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제조업은 국가경쟁력의 핵심 기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처럼 제조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다. 하지만 최근 제조업은 저성장·노동력 부족·기술 경쟁 심화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제조업의 근원은 뿌리산업이다. 한데 중국 뿌리산업의 높은 경쟁력 및 젊은 층의 기피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뿌리 기술’이란 주조(鑄造),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제조업의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공정 기술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을 말한다. "뿌리산업은 이 같은 뿌리 기술을 활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이거나 뿌리 기술에 활용되는 장비 제조업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을 말한다. 기초적인 제조업을 의미한다. KPIC(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서 정의된 뿌리산업으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동차, 조선, 정보통신(IT) 등 국가기간산업인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초산업으로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주요 분야는 제조업이다. 모두가 잘 아는 삼성, 현대그룹, SK, LG, 두산 등의 대기업들도 모회사를 모두 제조업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대기업에서 만드는 완제품들은 모두 기초적인 부품이 필요하다. 이때, 중간 단계의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들이 뿌리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조선·반도체와 같은 기존 국내 주력산업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로봇·에너지·환경 등 미래 신산업의 기술력을 뒷받침하는 기반 산업인 것이다. 문제가 적잖다. 대부분의 강소기업 이상의 회사들은 막대한 매출을 보이며 산업을 선도하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다단계 하청 문제가 있다. 대기업에 납품해도 거의 본전치기하는 경우가 많고, 경기가 변동하면 적자 나는 경우가 있다. 그 탓에 월급도 적고, 근무환경도 좋지 못하다. 정부는 이에 뿌리산업 범위를 10년 만에 전면 개편하고 뿌리 기업을 3만 개에서 9만 개로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뿌리 4.0 경쟁력 강화 마스터플랜’을 확정·발표하기도 했다. 뿌리 소재 범위를 금속을 포함해 플라스틱, 고무, 펄프 등 6개로 늘릴 예정이다. 부품 장비를 만들 때 소재 가공기술인 뿌리 기술은 6개에서 사출·프레스, 3D 프린팅 등 14개로 확대된다. '뿌리산업 진흥법’을 전면 개정, ‘차세대 뿌리산업진흥법’으로 제명을 변경하고 뿌리산업 범위, 뿌리산업 발전위원회 확대, 금융지원 등의 근거를 마련된다. 그러나 상기와 같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뿌리산업은 고생하고 월급은 적고, 앞으로도 적을 그저 그런 직업군이 모인 분류로써 이미지를 탈피하는 게 긴요하다. 마침 인천광역시가 뿌리산업 포럼을 개최해 주목되고 있다. ‘우리는 왜 인천 뿌리산업을 위기라고 불러왔는가’를 주제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천 뿌리산업의 산업 구조와 변화 가능성을 분석해 대안을 제시한 것은 뜻깊다. 또한 ‘청년 뿌리 기업 재직자의 직장 만족과 이직’을 주제로 청년 근로자의 직무 만족도와 이직 요인을 분석하고, 일자리 여건 개선과 인력 유입을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뿌리산업을 단순히 ‘위기 산업’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넘어, 객관적인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산업과 일자리의 가능성을 함께 논의한 자리라는 측면에서 인천형 뿌리산업 육성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대되고 있다. 인천시는 현장 기반 실태조사와 정책 소통을 지속 강화해 지역 뿌리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힘쓰길 당부한다. 나아가 미래지향적 친환경 신사업에서 제조업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타 시·도 또한 제조업은 경쟁력 있는 우리 산업의 뿌리이자 미래 먹거리의 원천임을 재인식할 때다.
우연찮은 기회에 다카이치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 233석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의석수(316석)를 차지하며 압승을 거둘 때 도쿄에 체류했다. 날이 많이 흐렸고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폭설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상은 고요했다. 에노시마 기차역 슬램 덩크 관광지에는 푸릇한 한국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다카이치든 자민당이든, 중도당이든, 공명당이든 일본 사람들은 정치에 무심해 보였다. 하루 이틀 머물다 스쳐 가는 사람처럼 일본 국민은 정치는 정치, 민생은 민생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사카에 있는 방송국 TBS 앞에는 공산당 깃발을 꽂은 유세차 위에서 초로의 여성 당원이 목소리를 높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빌보드 팻말에는 부자증세라 쓰여있었다. 도쿄를 안내했던 영화 관계자 지인이 말했다. “들어 보면 일본 공산당 친구들이 가장 정확한 얘기를 해요. 똑똑한 애들은 역시 좌파이긴 해요.” 다카이치가 이겼으니 센카쿠 분쟁 문제니, 쿠릴 열도 반환 문제를 둘러싼 정책이 바뀔 것이다. 성향이 공격적이니만큼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군사력을 강화할 것이다. 자위대 설치와 운용범위에 관한 법률을 바꾸고 무엇보다 평화헌법이란 미명으로 대외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군사법안을 마련할 것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독도 이슈, 그들로서는 다케시마 이슈에 불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나 많은 언론은 다카이치가 거기까지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 보고 있다.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사는 친구는 종종 그의 일본인 친구와 독도-다케시마 문제로 언쟁 아닌 언쟁을 벌인다고 한다. 사실 한일 친구들은 아예 이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꺼내는 것을 극력 피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만약 얘기가 나올 때를 대비해 그가 알려준 대처방안에 무릎을 쳤다. 일본 거주 30년째 한국인은 순수 일본인에게 “너희들은 다케시마 문제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대체로 일본인들은 이 질문에 쭈뼛거리기가 십상인데 거기에 이렇게 답을 던져주면 더 이상 얘기를 이어가지 않게 된다고 한다. “우리? 한국 사람은 독도 문제로 전쟁도 불사할걸? 너희들은 독도를 사이에 놓고 우리와 전쟁을 벌일 수 있어? 감당할 수 있겠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런저런 영화들이 있다. 송원근 감독의 <김복동>(2019)이 대표적이다. 조금 멀게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이 있다. 30년 가까이 적어도 영화는 공정한 역사관, 올바른 여성관을 세우고, 가르쳐 오고, 전파하려 노력해 왔다. 그런데 윤석열 집권 이후 뉴라이트들이 번식하고 번성하면서 위안부 할머니 문제 역시 매춘부라 공격하고 매도하는 천박한 극우들이 판치고 있다. <봉오동 전투>(2019)도 만들고 <밀정>(2016)도 만들며 영화는 독립운동의 가치를 드높이려 했지만 밀정보다 못한 친일주의자들은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려 했고 한국의 독립이 운동의 내적 동인에 의해서라기보다 외세의 지원에 의한 해방이라고 폄하해왔다. 이런 자들은 다카이치의 압승에 축하주를 들고 있을까. 이런 자들은 일본의 재 무장화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그들에게 묻는 말은 똑같은 것이다. 당신들은 독도 문제를 사이에 두고 다카이치 파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전쟁도 불사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몇 편의 영화만이라도 보기를 바란다. 영화에서라도 애국을 배우고 일본의 진위, 실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하고 배우기를 바란다. 이상 일본에서 목격한 자민당 압승의 단상.
1월 30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계획’의 핵심은 ‘학생들이 헌법 가치와 원리를 이해하고 삶과 연계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의 헌법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우리 교육과정에서 헌법교육을 도외시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내 경우를 봐도 초·중·고는 물론 대학 시절에도 헌법을 제대로 본 적 없이 사회에 진출했다. 특별히 대학에서 헌법을 전공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헌법의 한 줄도 볼 기회가 없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다. 2월 10일 <MBC PD수첩 – 통일교와 공모자들> 편에 드러난 가평군의 전·현직 군수, 정치인들의 모습은 그런 탈헌법적 현실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헌법과는 무관한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헌법의 빈틈으로 사이비가 파고들었다. 가평군민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통일교의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군민들의 생업, 여가, 교육 등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물이 스며들 듯 침투한다. 가정, 사랑, 평화 등 보편적이고 희망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건강하고 상식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 와중에 주민들에게 표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은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실천을 하기보다는, 그 현혹된 주민의 환심을 사려는 행태를 보이며, 오히려 주민을 현혹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의 계획 발표 이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청소년 정치 참여 확대라는 순기능보다 자칫 교실이 정치판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심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는 논평을 냈다. 헌법교육 또한 정쟁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근 <시사인>과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이 수도권 30명의 학생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학교에서 정치 이야기를 나눠 본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 비어 있는 정치 토론 환경을 메꾸는 것은 극우적인 정치 밈과 괴담들이었다. 그것들은 특히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 이후 본격적으로 유행되었다고 한다. 보수를 참칭한 윤석열 사이비가 역시 헌법의 공백을 파고든 것이다. 헌법을 가르치지 않는 공화국은 모래성과 같다. 우리가 탄핵당할 수준의 대통령을 뽑고, 극우와 팬덤 정치가 득세하는 것이 그 증거다. 민주공화국의 주민들이 교실과 일상에서 사이비보다 헌법을 가깝게 느끼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이 잘 추진되길 바란다. 이번 글로 2023년 12월부터 써 온 ‘촌스러운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23편의 글을 통해 나의 ‘촌스러움’이 기존의 ‘촌스러움’의 의미가 아님을 독자들께서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한다. 한 줄로 질주하던 무리가 뒤를 돌아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면 선두와 꼴찌의 처지가 뒤바뀐다. 도시화, 산업화로 질주하던 무리의 앞에 지역소멸과 기후재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계속 죽음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이제 뒤를 돌아 살림의 발향으로 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 절박한 마음으로 뒤로 돌아가는 담대한 전환을 위해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 가평군수로 출마한다. 대의제 중앙집권이 아닌 직접민주 지역자치의 깃발을 들고 신당을 창당하며 출마한다. 이제 가평군에서 펼쳐지는 촌스러운 이야기를 독자들이 뉴스로 보실 수 있는 실천을 할 것이다. 그동안 나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6·3 지방선거가 불과 110일 남았다. 과거 이 시기에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인재도 발굴하고 국민친화적 정책도 발표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은 낯익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 국민의 힘의 최근 모습을 보면 많이 낯설다. 설 연휴를 앞두고 민생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대외 경제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는데, 국힘은 오로지 ‘누가 누구를 징계하고, 누가 공천권을 쥐느냐’는 권력 투쟁에만 매몰되어 있는 탓이다. 현재 국힘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정치적 내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갈등의 핵심은 당 지도부와 이른바 ‘친한계’ 사이의 전면전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 사태 이후 당내 분열은 봉합되기는커녕 중앙당과 서울시당 간의 ‘징계 전쟁’으로 번졌다. 지난 1월 말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의 ‘전두환 존영 게시’ 발언으로 촉발된 설화(舌禍)는 친한계의 징계 요구로 이어졌고, 이에 맞서 당권파는 배현진 의원의 성명 발표 과정을 문제 삼아 중앙당 윤리위 제소라는 맞불을 놨다. 결국 서울시당은 고 씨에게 ‘탈당 권유’를, 중앙당 윤리위는 배 의원을 소환 조사하는 이른바 ‘징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당의 윤리 기구가 정적 제거를 위한 계파 보복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당의 중심을 잡아야 할 지도부와 수도권 전열을 정비해야 할 서울시당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숙청의 칼날을 휘두르는 모습은 목불인견이다.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가세해 장동혁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며 갈등의 전선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가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의 기초단체장 공천권을 중앙당이 행사하겠다는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면서 폭발한 ‘공천권 사유화’ 논란은 이번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지방분권과 정당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실종된 채 오로지 당권 장악을 위해 공천권을 무기화하려는 장동혁 대표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제1야당 이렇게 내부 권력 쟁탈전에 골몰하는 동안 국민의 삶은 방치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관세협상 비준을 미루고 있다며 25%관세 환원을 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고, 글로벌 반도체 성지인 경기도 도민들은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정 운영의 한 축인 야당이라면 마땅히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통상 전략을 점검하며 정부를 압박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국힘에서는 ‘민생’이나 ‘경제’라는 단어는 계파 간의 비난을 위한 수사(修辭)로만 쓰일 뿐이다. 국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지 수 개월째다. 당 지도부가 반대파를 몰아내는 데만 열을 올린다면, 중도층 이탈은 막을 수 없을뿐더러 보수층의 외면도 피하기 어렵다. 당연히 그 결과는 지방선거 참배로 이어질 것이다. 과거 보수 정당이 오만과 독선에 빠져 공천 갈등을 빚을 때마다 국민이 어떤 심판을 내렸는지 회상해 보기 바란다. 국힘은 지금이라도 소모적인 ‘징계 정치’와 공천권 다툼을 즉각 중단하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당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 책임있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윤어게인 세력이 아니라 합리적인 보수 인사들을 선거의 전면에 내세워 국민과 소통하는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도부는 당내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포용적 리더십을 보여야 하며, 각 계파는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당권파의 세력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삶을 책임질 일꾼을 뽑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제1야당이 민생이라는 본분을 잊고 권력 투쟁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국민이 결정하는 엄중한 심판대에서 자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멸의 길’로 갈 것인지, ‘국민과 동행하는 길’로 갈 것인지 이제 결단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기도는 11일부터 오는 3월 10일까지 도내 8개 시,군을 대상으로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공개모집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모는 단순한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감내해 온 안보 부담과 구조적 제약에 대해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정책적 분기점인 만큼, 이 질문에 앞서 포천은 더 이상 뒤로 밀려나서는 안된다. 포천은 법적으로 수도권에 속해 있으며.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각종 규제는 예외 없이 적용돼 왔다. 그러나 산업 인프라, 인구 유입, 재정 여건, 도시 기능 어느 하나 수도권다운 혜택을 온전히 누려본 적은 없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사격장과 훈련장, 반복되는 소음과 진동, 출입 통제와 토지 이용 제한은 포천 시민의 일상이었다. 국가는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 가능성을 제약해 왔고, 포천은 그 제약을 오랜 시간 감내해 왔다. 이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안보를 위해 희생이 요구되었다면, 그에 대한 보상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같은 접경지역으로 분류되고,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양,파주,김포,양주와 포천의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들 도시는 이미 자족 기능을 갖춘 성장 궤도에 올라섰고, 산업과 인구, 도시 인프라 면에서 포천과는 다른 단계에 도달해 있다. 접경이라는 행정적 분류만으로 모든 지역을 동일선상에 놓고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형평이 아니다. 국가 전략사업은 가장 절실한 곳에 우선 배치되어야 하며, 평화경제특구 역시 그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평화경제특구 지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우리 시가 유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기회발전특구와의 정책적 연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회발전특구는 기업의 이전과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감면, 재정 지원, 규제 특례, 정주 여건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제도로, 우리 시 역시 이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지속적인 준비와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회발전특구와 평화경제특구가 함께 지정된다면, 정책 효과는 단순한 합이 아니라 상호 증폭되는 시너지로 나타날 수 있다. 평화경제특구가 접경지역의 안보,평화,경제를 결합한 국가 전략 공간을 제시하는 제도라면, 기회발전특구는 그 공간 안으로 기업과 자본을 실제로 유입시키는 강력한 실행 장치가 된다. 두 특구가 결합될 경우, 포천은 국가 전략사업의 실증과 사업화, 산업 집적과 일자리 창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접경지역 정책이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포천은 이미 군사,안보 인프라가 도시 전반에 내재된 지역이다. 이를 규제의 대상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과 안보 기술, 드론·로봇, 재난·안전 분야 등 첨단 산업의 실증과 제조, 인력 양성이 집적되는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 평화경제특구의 정책적 틀과 기회발전특구의 투자 유인책이 함께 작동한다면, 접경지역의 구조적 한계를 기회로 전환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포천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수도권 과밀 해소와 접경지역 안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합리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경기도는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선정 이후, 그 결과를 토대로 '경기도 평화경제특구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구용역은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접경지역이 실제로 겪어온 제약과 희생, 그리고 각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어떻게 정책 패키지로 묶어 투자와 일자리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가 되어야 한다. 특히 포천은 수도권 규제와 안보 제약이 중첩된 지역인 만큼, 이 현실이 초기 단계부터 충실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평화경제특구의 실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필자는 포천시의회 의장으로서, 평화경제특구 유치를 위한 노력에 어떠한 역할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고, 정책적 논의와 공론화가 요구된다면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집행부 역시 이번 공모 대응을 단순한 형식적 신청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평화경제특구와 기회발전특구의 연계를 포함해, 포천이 무엇을 할 수 있고 국가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략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포천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평화경제특구는 먼 미래의 구상이 아니라, 지금 반드시 잡아야 할 현재의 기회다. 국가가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을 제약해 왔다면, 이제 국가는 정책으로 그 책임을 응답해야 한다. 끝으로 그 응답은 선언이 아니라 지정이 되어야 하며, 평화와 기회가 결합될 도시, 포천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답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