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이 도성을 나간 숭례문은 오랫동안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 1호였다. 여기서 1호가 국보의 관리 번호일 뿐임에도 가치가 제일 높다는 의미로 읽히면서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많았다. 이에 시달리던 국가유산청은 국보에 붙인 번호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국보다. 1394년 8월 24일 개성에서 서울로의 천도를 결정했고, 9월 1일에 새수도궁궐조성특별위원회(新都宮闕造成都監)를 설치했으며, 9월 9일에 정도전이 궁궐과 종묘를 포함하여 새수도의 도시계획도를 그려 바쳤다. 이때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도 정했을 것인데, 1396년 9월 24일에 여러 성문을 완성한 후 남쪽의 대문을 ‘숭례문’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남쪽의 기준은 정궁인 경복궁인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남대문인 숭례문과 정궁인 경복궁을 잇는 직선의 대로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1394년의 도시계획도에는 그렇게 그려져 있지 않았다. 성 밖에서 숭례문을 통과한 후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길은 서울역-숭례문-서울시청-세종대로사거리-광화문을 잇는 왕복 8차선의 세종대로다. 비록 직선은 아니지만 숭례문에서 경복궁의 광화문을 잇는 최단코스의 길이다. 그런데 세종대로 중 숭례문-서울시청-세종대로사거리 구간은 조선에서는 없었고,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새로 만든 길이다. 1394년의 도시계획도에 그린 남북대로는 숭례문에서 활처럼 휘면서 종각까지 이어진 지금의 남대문로다. 숭례문과 광화문을 직선으로 이으면 거의 정북에 가까운데, 숭례문의 출입문 방향은 동북-서남이다. 왜 이런 방향을 취했을까? 정답은 이거다. ‘숭례문을 들어서도 경복궁을 쳐다보지 마라!’ 숭례문을 지나 활처럼 휘는 남대문로를 따라 종각까지 갔다가 서쪽으로 꺾어서 세종대로사거리에 이르러 북쪽을 바라봐야 임금이 사는 경복궁과 광화문을 처음으로 볼 수 있다. 전통시대 어느 수도에도 이런 간선도로망은 없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간선도로망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풍경에 있다. 조선 후기 가장 오랫동안 정궁의 역할을 했던 창덕궁의 진입로인 돈화문로에서 바라본 풍경은 하늘-보현봉-창덕궁(돈화문)의 거대하고 웅장한 3단계 풍경이다. 조선 전기 정궁의 역할을 했던 궁궐은 정도전이 풍수의 원리에 따라 명당의 위치를 잡아 1395년에 만든 경복궁이고, 그 뒤에는 풍수의 주산과 조산인 북악산(342m)과 보현봉(714m)이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바라보면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광화문)의 3단계 풍경이 거대하고 웅장하다. 그런데 돈화문로에서 경험했듯이 광화문에서 멀어질수록 북악산·보현봉의 모습은 커지고 경복궁(광화문)은 작아지는데,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와서 보면 경복궁(광화문)의 크기가 너무 작다. 그래서 정도전은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광화문)의 3단계 풍경을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처음 볼 수 있도록 남북대로를 숭례문에서 종각 뱡향으로 활처럼 휘도록 계획했다. 숭례문의 방향도 문을 들어선 사람이 시선을 경복궁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동북-서남으로 정했다. ‘경복궁을 쳐다보지 마라’ 이것이 숭례문의 방향에 구현된 풍수도시 서울의 비밀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을 막아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 노동자의 산재 사망자 비율이 증가하는 문제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고령화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나이가 많은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쩔 도리가 없는 추세다. 먹고살기 위해서 현장에 나서는 노년층의 산업안전을 위한 정밀한 대책들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살기 위해 산업전선에 나선 노년에게 일터가 위태로운 죽음길이 돼서는 안 된다. 25일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재작년 산재 사망자 10명 중 6명 이상이 55세 이상 근로자였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보상을 승인한 사망자는 총 2098명으로, 이 가운데 65.8%가 55세 이상 노동자였다. 사망자 중 업무상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827명, 업무상 질병 사망자는 1271명으로 집계됐다. 고령화 속 노동환경의 안전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모면하기 어려운 통계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산재 사망자는 18세 미만 0명, 18∼24세 16명, 25∼29세 32명, 30∼34세 39명, 35∼39세 69명, 40∼44세 153명, 45∼49세 160명, 50∼54세 248명, 55∼59세 274명, 60세 이상 1107명으로 집계됐다. 60세 이상에서 전체 사망자의 절반을 훌쩍 넘는 등 연령이 올라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법적으로 고령 근로자를 5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산업재해 구조가 사실상 고령 근로자 중심의 위험 구조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재 전체를 봐도 고령 근로자의 비율은 절반이 넘었다. 2024년 산재는 14만2771건 발생했는데, 55세 이상 근로자의 산재가 7만4812건(52.4%)인 것으로 집계됐다. 산재 위험이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피해의 무게가 고령층으로 확실하게 쏠리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고령 노동자의 산재나 산재 사망률이 높은 원인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인구 고령화로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는 추세에 기인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령 근로자의 신체적 취약성이 원인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지원으로 작성된 ‘대한민국 고령 근로자의 업무 관련 치명적 부상의 특징’보고서 역시 ‘노동 인구의 고령화는 감각 기능, 균형 감각, 운동 능력의 저하로 인해 산재 발생률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고령 근로자의 사망 재해는 건설업, 단순노무직, 일용직 등 고위험·불안정 고용 분야에 집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구조의 한계로 인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현장에 고령 근로자들을 아예 투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니 불가피한 노릇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와 같은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고령 친화적 작업환경 개선’과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선제적 관리 필요성’을 제안한다. 구체적 방안으로 고령자 취업자를 대상으로 정기 실태조사와 별도 재해 통계를 산출하고 고령 취업자의 노동능력 평가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같은 노령층이라도 신체적인 능력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본인들 마음 같아서는 평생 일해온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신이 있어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능력 평가를 거쳐 안전성을 사전에 확인하도록 하는 게 맞다. 더욱이 산재 사고는 사고유발자 자신 한 사람만이 아닌 다수의 희생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을 특별히 유념해야 한다. 모든 안전사고는 방심이나 자만심에서 시작된다. 노동부는 올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확보, 이중 위험 경보기 설치 등 고령 근로자 친화적 작업환경 개선 비용을 지원하고, 고령 근로자 다수 고용 업종에 작업관리 가이드라인 등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고령 노동자에 대한 관리체계는 더욱더 정밀하게 디자인돼야 한다.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현상이고, 산업 현장 노동자의 고령화는 필연적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터에 나서는 고령 노동자들의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한 시스템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은 단순한 정치 거물의 퇴장을 넘어, 우리 정치사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지녔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는 언제나 화려한 수사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앞세운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는 때로 고독했고, 자주 오해받았다. 대중의 박수를 받는 쉬운 길보다 국가 운영의 복잡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의 갈등을 구호로 덮지 않았고, 결정하기 어려운 과제를 다음 세대나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단호함은 종종 불편함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국가의 골격을 이루는 제도와 실질적인 변화가 남았다. 정치는 말로 남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교육개혁의 기초를 닦고, 지방분권의 초석을 놓으며, 민주주의를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생애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타협하되 원칙을 팔지 않았고, 유연하되 가벼워지지 않았으며, 강단 있게 행동하되 선동에 기대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빈자리를 향해 질문해야 한다. 정치는 다시 책임의 언어로 돌아갈 수 있는가. 국가의 내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는 여전히 가능한가.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 정책이나 법안이 아니다. 정치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무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다. 그 기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 자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12일, 미국 전쟁부(Departmnet of War)는 미국의 AI 군사 패권을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AI 가속화 전략(AI acceleration strategy)이다. 후방에서 최전방에 이르기까지 AI 도입과 실험을 촉진하여 다른 국가는 넘볼 수 없는, 비대칭적인 군사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AI 가속화 전략은 속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AI를 활용한 새로운 전투 방식을 발견, 테스트, 피드백, 확장하는 전 과정을 빠르게 해치운다. 이를 위해 컴퓨팅 파워, 미군의 군사 작전 데이터,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투자 역량까지 아낌없이 집중한다. 군의 모든 부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인터페이스와 접근 메커니즘을 공개해야 한다. 새로운 AI 기술이 개발되어 군에 도입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연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단축한다. 이 모든 가속화 과정을 방해하는 관료제적 장벽은 ‘식별하고 제거’한다. 전쟁부는 ‘전사의 정신(warrior ethos)’을 가지고 AI 속력전에 임한다는 방침이다. 전사의 정신이라니 거창해 보이지만, 그 내용은 최신의 AI 도입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일 뿐이다. 방해 요소가 있다면 전시에 그러하듯 가차 없이 제거한다. 데이터 공유를 막는 개인정보보호,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을 내세우는 책임 있는 AI와 같은 ‘유토피아적 이상주의’ 등이 속력전의 방해 요소다. 법적 타당성을 따지는 관료제의 관성적 태도 역시 빠질 수 없다. 전시 상황에서 AI의 위험성에 관한 문제 제기는 불필요하다. AI 가속화 전략에서 미국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전쟁이 무엇인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전쟁은 국익을 위한 것이므로, 군은 그저 적을 압도하는 효율적인 살상력을 보유하면 된다. AI 가속화 전략은 전쟁을 내세워 책임 있는 AI 논의를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로 억누른다. AI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쟁의 정의와 책임을 따지는 질문들과의 경합에서 속력은 언제나 승리한다. 전쟁부에게 속력은 곧 승리이기 때문이다. 군을 첨단 무기고 정도로 바라보는 이 관점은 AI를 도입한 전 세계의 전쟁들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이스라엘 군이 AI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민간인 사망자 수가 늘어났다는 보도들은 전장이 어떻게 빅테크 자본의 실험실이 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자지구를 상대로 ‘실험’을 거친 AI 군사 무기는 검증된 살상 무기로서 세계 시장에서 판매된다. AI 가속화 전략은 미국 역시 첨단 살상 무기 실험에 앞장서겠다는 선언이다. 속력을 공공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전쟁부의 논리 속에서 논의와 점검, 숙의의 관행은 무가치할 뿐 아니라 미국의 억지력을 약화하는 부정적 요소가 되어버렸다. AI가 전쟁에서 가져올 산출물, 결과는 안중에 없고 오직 최신 모델의 빠른 투입만이 중요해진다. 혼란스러운 가속주의를 틈타 실리콘밸리는 국가 안보라는 거대한 명분 뒤에 숨어 부를 쌓을 패스트트랙을 손에 넣었다. 가치와 윤리를 속력과 바꾼 이 위태로운 시스템이 오늘날 미국이 선택한 안보의 민낯이다.
오늘의 우리 시대를 지칭하는 말 가운데 80년을 한결같이 통용되는 것은 '분단시대'란 어휘다. 1945년 광복 이래 남북 분단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까닭에서다. 이를 역사의 문맥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너무 오래되고 익숙하여 별반 감응이 없다. 그래서 문학이고 또 분단문학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주면서, 그것을 나 자신의 문제로 체감하게 하는 데 문학의 힘이 있다. 우리 문학에서 이 대목에 탁월한 성취와 공명(共鳴)을 촉발한 작가가 전상국 선생이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 학교에서 만들던 '문리학총'의 편집 때문이었고, 선배 문인에의 청탁으로 '동포여'라는 콩트를 받으면서였다. 어린 눈에도 참 좋다는 생각, 틀림없이 대 작가가 될 것이란 외람된 생각을 했다. 당시 경희고등학교 교사로 있던 선생은, 일련의 분단소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단번에 동시대의 주요 작가로 떠올랐다.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선생은 만학(晩學)으로 대학원을 왔고 석사과정을 같이 다녔으며 이후 강원대 교수로 갔다. 그 사이에 얽힌 선생과의 추억들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작가로서 한 시대의 중심을 관통한 선생은, 춘천 인근 실레마을에 김유정문학촌을 설립했고 지금은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우리 문학의 천장을 친 그의 분단소설들이 여전히 감동과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 엄중한 과제가 변함없이 민족적 숙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전상국의 소설이 그 발화로부터 시대 현실을 향해 내뿜는 눈길은 사뭇 삼엄하고 날카롭다. 그는 어린 시절에 전쟁을 체험한 화자의 세계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 전쟁이 지금 우리에게 남긴 질긴 상처의 그루터기를 빠른 속도감으로 훑어나간다.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을 그처럼 정확하고 깊이 있게 짚어낸 작가는 드물다. '아베의 가족'이나 '여름의 껍질' 등의 작품이 그에 대한 탁발한 증명이다. 그러나 그의 궁극적 속내는, 그러한 비판과 갈등의 벼랑에 서는 소설의 제작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위기의 강을 넘어 화해의 평원을 바라본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 속 '고향'은 정동적 화해의 바탕이요, 소설 속 모든 균열의 자리는 그것의 치유를 위해 있다. 그의 소설이 생산하는 감동은 마침내 그렇게 부드럽게 감싸는 손길의 다른 이름이다. 어린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상황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그것이 하나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소설적 성과로 확립되기까지, 선생의 삶은 늘 영일이 없었고 심리적인 억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과의 갈등 또는 길항을 나타내는 문제의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분단시대 문학에 한 획을 그은 그 작품들을 면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아서 이제 팔순 중반에 이른 선생의 삶과 문학이, 여전히 작품을 쓰고 있는 현역 작가로서 우리 문학사를 행복하게 하는 더 뜻깊은 소설들을 생산해주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그 작품세계가 이 각박한 분단시대를 넘어서는 길에 선명한 이정표이자 푸른 신호등이 되었으면 한다.
최근 용인반도체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와 용인시민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지난해 12월 26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분량이어서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 기업이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한 사람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었다. ‘용인 반도체 산단의 이전’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발언 이후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지역과 정치권의 갈등, 반도체 관련 업계의 우려도 발생했다. 이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김 장관의 발언은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과 지산지소형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현실성 없는 이전론이 거론되면서 불필요한 혼란이 일었다. 김 장관의 발언 전에도 용인 국가산단·클로스터를 새만금에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라북도 국회의원과 도의회, 시·군의회, 시민·농민단체 등이 RE100 산단과 연계해 새만금으로 반도체 관련 시설을 분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한 전북지역 국회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 수급과 송전망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새만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맞서 용인지역 정치권과 용인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민주당 용인 국회의원들과 도의원들은 “현실성 없는 이전론이 거론되면서 불필요한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이전 주장을 즉각 중단하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대통령과 총리가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 대통령이 도지사 시절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뚫고 유치한 역작”이라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상 추진하고, 남부권은 재생에너지·인공지능(AI) 기반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립해야한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가 이미 방침으로 정해 결정해 둔 것이라며 “지금 와서 뒤집을 수 있느냐”고 밝혔다. 이전 할 수 없다는 확답이라고 봐도 된다. 그리고 경기도는 그동안 논란의 핵심이었던 전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22일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도로-전력망 공동건설 협력체계 구축 협약’을 맺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반도체 산업은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전제한 뒤 “오늘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전력망을 구축하는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경기신문 23일자 2면, ‘‘도로 하부 지중화’로 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난 해소한다’) 도와 한전이 밝힌 대안은 용인·이천의 27.02km 구간에 새로 건설하는 ‘지방도 318호선’(신설+확장도로)땅 밑으로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도가 이 도로의 상부 포장과 용지확보를 담당하고, 한전은 도로 하부에 전력망을 구축하는 공사를 시행한다. 도는 “도로 건설과 전력망 설치를 ‘동시 추진’하는, ‘길이 이어질 때, 전력도 함께 흐르는’ 국내 첫 모델”이라고 밝힌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운영에 필요한 전기설비 용량은 15GW다. SK하이닉스 주도하는 일반산단 6GW, 삼성전자 주도 국가산단 9GW다. 현재 국가산단 9GW 중 대략 6GW 정도, 일반산단은 3GW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나머지 3GW가 부족하다. 이란 상황에서 도의 계획대로 지방도 318호선 공사가 완료되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가운데 일반산단의 전력망 확보가 가능하다. 사업이 신설도로 지중화 방식으로 추진되면 전력문제가 해소됨은 물론 ▲중복 굴착 ▲교통 혼잡 ▲소음·분진 등의 문제도 줄일 수 있다. 당연히 공사 기간과 예산도 크게 아낄 수 있다. 전력문제를 해결하는 가시적인 방안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길 바란다.
영화계의 큰 별이요, 국민배우라 불린 안성기가 지난 1월 5일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다섯 살 때 아역배우로 데뷔하여 70년간 17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우리나라 3대 영화상인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받아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었으며, 그 외 수상 경력도 너무나 화려하다. 영화계는 특별히 고인이 주연을 내려놓기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모습을 높이 산다. 조연도 흔쾌히 출연했고, 작은 역을 맡아서도 혼신을 다해 연기했다. 앞자리를 내어주고 뒤로 물러서 스스로 내리막길을 갈 때에도 그 길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그였다. 그는 한결같이 후배나 스태프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그들의 필요를 도왔다. 한국 영화계가 어려울 때 스크린 쿼터제 폐지를 위한 영화인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후원자를 자처했으며,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기도 했다. 영화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고 선한 영향력을 보인 그의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후배들의 다짐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영화가 아닌 그의 아들 이야기를 할까 한다. 십수 년 전 한 잡지에서 안성기의 둘째 아들 안필립(1991년생)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가 사진을 전공하기 위해 시카고 예술대학을 지원할 때 아버지의 표정을 담은 사진들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했고, 그것으로 3만 달러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는 일화였다. 유명 배우의 표정 사진이면 그 표정을 지은 배우의 공이 더 큰 게 아닌가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 기획과 사진 표현 등은 온전히 사진작가의 능력으로 검증받았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예술성을 표현해 낸 것은 아버지의 배우로서의 능력과 인품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환하게 웃을 때 더 진하게 깊어지는 주름이 인상적인 안성기의 표정은 정말 그 자체가 예술이다. 힘들고 지쳐 아버지를 떠올리고 싶을 때면 그 사진에 담겼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장례식장에서 첫째 아들 안다빈(1988년생)은 30여 년 전 아빠가 준 편지를 읽어 모든 이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편지 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듯하다. 안성기가 두 아들을 일찍이 유학 보낸 건 그들이 누구의 아들로 살기보다 스스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안다빈이 2006년 미국 화단에 등단할 당시, 그는 색약을 극복한 압도적인 묘사력의 화가로 주목받았다.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색약을 극복하고자 그는 색보다 형태와 질감, 빛의 유입에 따라 만들어지는 명암에 집중하는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안다빈의 작품 '휴식(Repose) 2025'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다. 빛을 받아 형체가 드러난 청자 앞으로 약간 두꺼운 나무판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 메모지 같은 하얀 종이가 있는데, 그 위로 일에 몰두하다 잠시 벗어놓은 안경과 검은 가죽끈 시계가 놓였다. 그런데 안경 너머로 종이에 쓴 글씨, ‘아빠,’가 보인다. 그는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따뜻한 기억을 잘 보존하고 싶다, 한동안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작품 속에 담게 될 것 같다고 썼다. 세상 아버지의 마음은 다 한결같을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세대 갈등과 사상 충돌을 그린 소설,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1862)'에서도 아들 바자로프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의 니힐리즘이 삶 전체를 설명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이 진실임을 체감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큰 나무와 같다. 故 안성기 배우의 영면을 빈다.
‘2025년 경기도 사회조사’ 결과 도민의 삶 만족도와 행복감이 함께 상승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도민의 삶 만족도와 행복감은 꾸준히 상승해 모두 평균 6점대를 웃돌아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삶의 걱정 정도가 5.5점으로 과거(2021년 5.1 점·2023년 5.4점)와 비교해 소폭 상승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족과 걱정이 동반 상승하는 난기류를 정밀 분석해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는 20일 ‘2025년 경기도 사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 20일부터 9월 3일까지 도내 3만 1740가구, 15세 이상 도민 5만 99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 조사 결과 도민 삶의 만족도·행복감이 모두 평균 6점대를 웃돌아 전반적인 생활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삶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3점으로서 이는 지난 2021년(5.8점), 2023년(6.2점)과 비교해 소폭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전체 응답자 중 만족(6~10점)이 57.6%, 보통(5점)이 33.7%, 불만족(0~4점)이 8.8%인 것으로 집계됐다. 가구원수별 만족도에서는 1인 가구가 6.1점, 2인 가구가 6.3점, 3인 가구가 6.4점, 4인 가구와 5인 가구 이상이 각각 6.5점으로 조사돼 다세대 가구일수록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채로웠다. 느끼는 행복 정도를 점수로 물은 결과는 평균 6.5점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지난 2021년(6.0점)과 2023년(6.4점)에 비해 소폭 증가한 수치다. 응답자 중 65.9%가 ‘행복하다(6~10점)’, 24.6%가 ‘보통이다(5점)’, 9.5%가 ‘행복하지 않다(0~4점)’고 각각 응답했다. 7점대가 16.8%, 8점대가 16.8%로 나타났다. 살고 있는 시·군 만족도는 평균 6.2점으로 집계됐다. 응답자 중 55.3%가 만족, 35.2%가 보통, 9.4%가 불만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거주 시·군에 불만족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교통이 불편해서가 37.3%, 편의시설이 부족해서가 21.7%, 주거시설이 열악해서가 15.3%, 주차시설이 부족해서가 12.0%, 교육환경이 열악해서가 6.7%, 치안 방범이 불안해서가 3.3% 순으로 집계됐다. 조사 결과 행복 정도에 대한 수치와 걱정의 정도에 대한 수치가 동반 상승했다는 점은 놓치지 말아야 할 특이한 대목이다. 도민이 인식하는 걱정의 정도는 5.5점으로 과거(2021년 5.1 점·2023년 5.4점)와 비교해 소폭 상승했다. 이는 행복과 걱정이 삶에 동시에 혼재돼 있음을 보여준다. 걱정의 정도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44.1%가 ‘걱정하지 않는다’고 응답해 가장 많았으나 29.0%가 ‘걱정한다’, 27.1%가 ‘보통’이라고 각각 답했다. 아울러 10년 후 경기지역에 거주할지 묻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가 25.1%, ‘그런 편이다’가 46.9%, ‘보통이다’가 20.8%, ‘그렇지 않은 편이다’가 5.7%, ‘전혀 그렇지 않다’가 1.4%로 각각 조사됐다. 응답자들은 거주지 선택 시 직장·사업 및 취업(32.5%)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병원·할인점·문화센터 등 편의시설(18.2%), 경제적 가치 상승(13.2%), 경제적 여건(12.1%), 교육 여건(8.3%), 공원·녹지 등 자연환경(7.3%), 가족·친인척 및 지인들이 살아서(5.9%), 기타(2.5%)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경기도민의 행복도가 오르는 것은 곧 이 나라 국민의 행복 지수가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하긴 한 데 걱정스럽다’는 건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아니다. 행복을 주는 요소들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행복이 유지될 것인지, 안전한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민들의 이런 엇갈리는 정서를 따로 떼어내어서 정밀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만족도·행복도가 상승하고 있으니 ‘걱정’이 커지고 있는 현상쯤은 무시해도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의 정책은 더 선진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아프리카 언어, 이를테면 탄자니아 등지에서 쓰이는 스와힐리어(Swahili)를 듣고, 그 말의 소리에서 어떤 느낌을 가진다면 그것은 얼마나 유효한 느낌이 될 수 있을까. 생판 모르는 말소리를 듣고 어떻게 그 의미에 다가갈 수 있겠는가. 설령 어떤 느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임의적인 반응에 지나지 않아서, 그 느낌을 일반화하여 공감을 요청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소리가 동물의 모양이나 소리를 나타낼 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프리카 구전 동화를 국내에 알리는 동화책이 나왔을 때, 아프리카 동물들의 움직임과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실제 말 그대로 소개되었는데, 필자의 느낌으로는 상당한 공감이 갔다. 물론 여기에는 코끼리나 사자나 하마나 원숭이 등을 동물원에서 보았던 나의 감각적 경험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스와힐리어에서는 사자의 포효를 ‘응구루마(nguruma)’라고 한다든지, 몸집이 큰 동물이 쿵쿵 발을 구르는 걸 ‘삐가 두무 두무(piga dumu dumu)’라고 한다든지, 원숭이 등이 껑충껑충 뛰는 형용을 ‘꾸루카루카(Kurukaruka)’라는 음성 상징으로 나타내는 것은, 이들 말소리를 따라해 보면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줄루어에서 새 날갯짓 소리를 ‘푸푸(fufufu)’로 표현하는 것도, 동물들이 달리는 모습을 ‘우쿠기짐마(ukugijima)’라고 하는 데서도 느낌상 수긍이 간다. 또 이들 말소리에 문화적 맥락도 작용한다. 즉 동물은 신화와 속담에 자주 등장하며, 움직임과 모양을 묘사하는 말이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예컨대 치타의 빠른 달리기를 묘사하는 말에는 용맹과 힘을 상징하는 느낌이 장착되는 것이다. 탄자니아 한인회장인 김태균 작가가 최근에 쓴 '최초의 낮-아프리카 잠언'은 그가 원주민들과 더불어 오랜 탄자나아 현지 생활에서 섭렵한 아프리카 잠언을 화두로 해서 우를 깊은 명상적 사유로 이끄는 보배스러운 지혜를 내장한 책이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전하려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전통적 지혜는 아프리카의 대자연과 생명들이 살아가는 위대한 생태 섭리에서 생겨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 또한 이런 통찰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잠언을 안내한다. 그것을 전하는 작가의 어조는 사색적이고 암유적이다. 때로는 경건한 영성의 목소리로 자신의 사유를 전한다. 아프리카 잠언을 계승하고 그것에 초월적 믿음을 부여하는 아프리카인의 목소리와 결을 같이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아프리카 잠언의 현지인 발음을 그대로 소개해 놓았다. 예를 들면 “길을 잃는 것도 길을 배우는 방법이다(Kupotea njia ndio kujua njia/쿠포테아 은지아 온디오 쿠주아 은지아)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스와힐리어의 음절들을 따라서 이 잠언을 소리내어 보았는데,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 음절들의 주름 사이로 배어 있는 아프리카의 지혜들이 손을 내미는 느낌이다. 무언가 생명력 있는 소리로 감득되는 듯하다. 물론 이는 논리적으로 변증 될 수 있는 감득은 아니다. 낯선 언어의 말소리 자체에 대한 음성적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대한 넉넉한 상상력으로 다가간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연말연시 사람들은 새해에 잘 될 거라고 응원했다. 나는 ‘고독이 축복이 될 때까지’라며 방에 흐리게 박혀있었다. 이곳 남한산성 밑 고골에는 하남 교산 3기 신도시 재개발로 주인이 버리고 간 개들이 들개라는 오명을 쓰고 쓰레기를 뒤진다. 빈집에 몸을 숨긴 길고양이들과 남은 몇 집은 서로의 불빛에 의지하고 있다. 멀쩡했던 마을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포클레인에 휩쓸려 전쟁이 지나간 것처럼 참혹하다. 그 틈을 이용한 고물상들은 창틀, 전선, 전등, 정원수, 심지어 축대였던 돌을 뜯어내 돈벌이를 한다. 군락지 소나무 숲은 전기톱 공세로 황량하기 그지없다. 갈 곳을 찾지 못해 남아있는 집을 상대로 LH는 소송을 걸었다고 윽박지른다. ‘선이주 후 철거’를 약속했던 그들, 곳곳에 쇠기둥을 박고 가림막을 설치했다. 뉴스에서나 볼만한 터전을 빼앗기고 자살한 사람들처럼 내가 궁지에 몰릴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 없었다. LH는 마치 이곳의 추억과 기억까지 보상한 양 이사 가라고 압박한다. 이곳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보낸 집주인 아저씨와 노모는 정든 고향을 떠나기 싫어 말라 갔다. 떠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거라는 서류를 받고 주민들은 지난해 난민처럼 이사 갔다. 집주인 노모는 고골을 떠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죽음보다 더한 불이익 있을까. 고양이 발바닥만 한 땅만 있어도 냉이는 꽃을 피운다. 나는 그 땅마저 없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차라리 길고양이와 들개 신세가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주말 독주를 마시고 싶었다. 친한 동생에게 전화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음성을 남겨주십시오’, ‘가족과 있겠지?’ 고아 새도 집을 찾아가는 저녁, 전설에 나오는 붉은여우라도 내려올 같은 칠흑의 밤이다. 주워 온 길고양이 꽃님이, 주인 없는 복만이와 ‘궁남’에게 먹을 것을 주자 꼬리가 모터처럼 돌아간다. 보드카를 잔에 따르고 찬물을 부었다. 집이 추워 얼음은 필요 없다. 술잔은 고요하다. 잠이 들었다. 펄럭거리는 비닐 소리에 새벽에 눈을 떴다. 시베리아 털모자를 쓰고 잠바를 걸치고 마당에 나갔다. 텃밭에 배추가 노르스름한 잎만 남고 뜯어졌다. 속이 안 찬 배추를 봄동 만들려고 그대로 두었었다. ‘세상에 어떤 놈이 배추 서리를 한 거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라니였다. 간혹 마을로 내려온 고라니를 개들이 쫓는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어제 낮에 시멘트 틈에 진돗개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 같으면 달려갔을 것이다. 복수가 차 버려진 진돗개를 병원에 데리고 가고 유기묘를 입양시킨 내게 지인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 일전에 부여에 계신 선생님을 뵈러 갔다. 궁남지 근처 쓰레기 더미에 눈비 맞고 30cm 안 된 쇠사슬에 개가 묶여 있었다. 소유권 따위 따져볼 여유도 없이 그 개를 집으로 데려왔다. 나에게는 법보다 생명이 우선이다. 한때 이 개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았겠지? 개 이름을 ‘궁남’이라고 지었다. 오지랖은 궁남이로 끝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배가 등에 닿은 개와 도로를 가로지르는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던져준다. 추위를 피해 천장으로 숨은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워야, 잠 좀 자자!’고 소리 지른다. 그러나 오늘도 무사한 그들이 한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