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계절, 요즘 자주 듣는 말 재승덕박(才勝德薄), ‘재주는 많은데 덕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엔 꾸중이었다. 어른의 저 말씀은 무서웠다. 인격포기의 (최종적) 판단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다른가. ‘사람이, 깊이가 있어야지...’ 하는, 부정적 평가임은 여전하다. 가령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의당 ‘덕이 부족한’ 이는 아웃이다. 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깊이는 좀 부족해도, 재주는 뛰어나니 그나마 써먹을 구석이 있겠지’하는 기분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토사구팽(兔死狗烹)의 요즘 말뜻도 짐작되는 분위기다. 부끄러움 모르는 사람들이 나란히 윗줄에서 요란 떠는 세상, 재주 있어서 인기만 높으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하랴. 재주가 힘(권력 또는 주먹)도 갖췄다면, 이는 진짜 잘나가는 것일까? 우기면, 거짓말도 억지도 진실처럼 언론에 나가는 걸 보면, 세상은 어디로 흐를까? 아서라, 애들 볼라. 다음 시기에 저런 이들 얼마나 꼴사나운 비난의 대상되어 세상을 웃길까? 재승덕박의 원래 말 재승덕(才勝德), 재주(才)가 덕성(德)을 이긴다(勝)면, 막말로 막가는 세상이다. 하릴없이 골로 가리라. 다만 시간의 문제다. 백 살쯤 살면 철들었을 테니 알겠지. 말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고로 주술(呪術)의 뜻 담겼다. ‘말(言)이면 다 말이냐, 말 같아야 말 아니냐’하는 푸념은, 실은 그 주술의 반영이자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는 호통이다. 그런 사람들 언행(言行)은 과연 재주는 있어 보인다. 덕은 없겠다는 말이다. 그 재주의 힘(대개는 검찰 경찰 같은 권력을 지닌)과 경험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자신만만하다. 상대방 또는 세상 상당수는 침묵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침묵파도) 묵언(默言)일 터이지만, 마음에 품는다. 회포(懷抱)는 정(情)만 품는 것이 아니다. 한(限)도 새긴다. 사람에 대한 (이런) 판단 또한 지워지지 않는다. “저 친구, 저렇게 컸나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 저 생각은 하늘의 판결이다. 여태 보지 않았던가. 이 말에 ‘나 아니겠지,’ 하는 이들, 천벌 받을 준비 단단히 하라. 착한 민심 천심을 이길 도술이나 변론(辯論)은 없다.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는 천둥일 터다. 상형문자(象形文字)는 그림으로 만든 글자다. 그 그림에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가 담겼다. 德은 뭘 담았지? 열 길 물속보다 깊은 한 길 사람 (가슴)속이, 德이 담기는 그릇이다. 선악(善惡) 미추(美醜) 진가(眞假) 따위 이분법의 구별을 넘어서는, 동양의 최고 이념이다. 서양(철학)으로 치자면 플라톤의 이데아(idea)와도 비교되리라. 너무 쉬워서 혹 실감하기 어려울까? 한 곳만 바라보는 (정직한) 눈(直 직)과 마음(心 심)이 큰길 네거리(行 행) 한 가운데 놓인 것이 德이다. 갑골문(의 그림)은 더 직설적이다. 直은 눈(目 목)에 (직진)방향표시가 붙었다. 心은 심장(하트)이다. 합쳐서 悳(덕)이다. 정직하게 살되, 바탕은 ‘마음’이라야 한단다. 그 뜻만으로도 좋다. 그러나 한 계단 더 오르자. 그 悳을 3,000년쯤 전의 네거리(行) 한 가운데 놓는다. 德이다. 行의 오른쪽은 생략됐다. 회오리 같은 중생의 삶들 속이나 시장 바닥에서도 낙낙히 통하는 어진 방식이라야, 덕(스러운 것)이다. 칼자루 먼지떨이 쥐고서 진실타령 독점하면, 자칫 적반하장 빚으리. 그대를 털면 먼지 안 날까? 사람을 보라. 사람이 하늘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공직선거가 시작되던 때부터 후보자의 선거운동방법 중 대표적인 것으로 후보자합동연설회가 있었다. 중장년층 이상 세대는 아버지를 따라 혹은 자발적으로 후보자연설을 듣기 위해 학교 운동장으로 갔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후보자합동연설회는 후보자의 연설을 현장에서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후보자와 주민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장이 형성되다 보니 부작용도 꽤 있었다. 경쟁 정당 또는 후보자 간의 기 싸움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 주민들을 상대로 금품이나 음식물 제공 등 매표행위가 이뤄지는 위법 장소가 되기도 했다. TV 등 미디어 매체의 보급률이 높아지고 바쁜 일상이 생활화된 시대변화에 따라 지금은 후보자합동연설회의 역할을 각급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후보자토론회가 대신하게..
대규모 전세사기 범죄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의미 있는 제도로 기대되던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명단 공개가 전세사기 피해를 줄이는데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효성을 높일 방안이 재구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기 피해 위험성은 여전한데 ‘빛 좋은 개살구’가 무슨 소용이냐는 불만이다. 경기신문 취재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지난해 3월 개정된 민간임대주택특별법·주택도시기금법에 따라 지난해 12월 말 악성 임대인 명단을 최초로 공개했다. 해당 명단은 국토교통부의 ‘HUG 안심전세포털’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공개 약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해당 명단에서는 고작 24..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마트료시카는 당당해“는 필자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오늘은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에서 사소한 발견을 해 보자. 한때 나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그 나라의 민속 인형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디자인대학에서 강의를 했을 때 교환학생으로 온 모스크바 출판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여 모아놓은 세계 인형들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 그중 한 학생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마트료시카는 다산과 다복, 부유함과 행운을 가져오는 인형으로 알려져 있다. 마트료시카는 큰 인형 속에 더 작은 인형이, 그 속에는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어서 모두 꺼내면 여러 개의 인형들을 점점 작은 크기로 줄을 세울 수 있다. 아주 단순하지만 인형들을 꺼내어 줄세우는 것은 심심할 때 나에게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현대인의 정신적 불안 이 단순한 놀이를 반복하다보니 이 인형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되었다. 가장 바깥의 나는 겉으로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살고있지만 내 속에는 또다른 내가 상처받고 절망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어서 내 속의 나를 만나기 두려워하고 부정하고 싶어한다. 또는 현재의 나는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하지만 내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나는 맑고 밝고 건강하여 내 속의 나를 만나는 것이 현재의 나를 치유하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맨몸으로 태어나서 아주 약하고 작은 나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월의 옷을 한 겹씩 끼어입으면서 점점 자라고 늙어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어린 나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큰 일을 겪고나면 자신의 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사랑하라 그 아이를 발견하고 따뜻이 품어주면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더 작고 여린 나를 잃지 않고 품어가는 것임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가 어느 날, / 순하고 어린 아기였던 내 웃음이 필요할 때, / 마지막 잎새에 눈물짓는 열세 살의 눈빛이 필요할 때, / 당차게 도전하던 스무 살의 심장이 필요할 때, / 어려움에도 벌떡 일어나는 서른 살의 의지가 필요할 때, / 함께 웃고 울며 타인을 품에 안을 줄 아는 마흔 살의 아량이 필요할 때, / 기꺼이 그때의 나를 꺼내 지금의 나에게 보여주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 바로 그것이였다. 어느 시절이든 후회도 있고 상처도 있었지만 최선의 삶이었고 진심이었던 것은 조금 더 큰 내가 더 어린 나의 그 추억과 기억을 아름답게 보호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내 속의 나를 지금도 나 몰라라 하면 어떤 내가 어떤 아픔으로 웅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내 속의 수많은 나들을 꺼내어 보듬어주면 예전의 상처는 싸매지면서 추억으로 남고, 예전의 자랑은 나를 세우는 자존감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나의 현재 뿐만 아니라 나의 과거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그때 나의 미래가 나의 현재를 책임져 줄 것이다. 마트료시카에서 찾은 내 속의 수많은 나의 발견은 비록 사소하지만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내 속의 모든 나들이 나를 사랑하고 축복하면 험한 세상 속에서도 나는 좀더 당당해지지 않을까?
의료대란의 해결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처음에는 부족한 지역의료, 필수의료, 공공의료 인력의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에 의료계가 반대를 하는 모습에 공분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며 의대의 교육 현실이나 의료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2천 명 증원을 무슨 특수부 수사하듯 그림을 그려놓고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듯한 정부의 모습에 공분을 느끼고 있다. 대도시의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빠진 자리를 공중보건의 수백 명을 차출해서 채우려 한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농산어촌 의료공백이 더욱 커질 것은 명약관화다. 의료계와 정부 양측 다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데 정작 가장 큰 명분 중 하나였던 지역의료의 공백은 더욱 커지게 됐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꼴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공중보건의가 차출돼 생긴 의료공백을 전공의들이 의료 농활로 채울 것을 제안한다. 의료대란 와중에 열렸던 서울대 의대 졸업식에서 김정은 학장의 졸업 축사는 사회에 울림을 줬다. “여러분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에 숨어 있는 많은 혜택을 받고 이 자리 서 있다. 지금 의료계는 국민들에게 따가운 질책 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의사가 숭고한 직업이 되려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직업이 아닌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어야 한다” 이 축사는 비단 서울대 의대생에게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고 의료계에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도시화, 중앙집권화, 산업화로 압축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농산어촌의 희생이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지방소멸 위기고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과잉 경쟁과 저출생의 위기다. 이 파국적 패러다임에 의료계도 역시 포함돼 있다. 나는 적지 않은 의대생들이 김정은 학장의 축사에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잠잘 시간도 없이 의료 현장을 지켰던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억울함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전공의 의료 농활을 제안하다. 전공의들이 의료인으로서 진정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지금의 전공의 사직이 개인의 영리를 위한 것만은 아님을 항변하고 싶다면 지금 실천이 필요할 때다.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전공의가 없으면 가동을 멈추는 비정상적인 종합병원의 상황을 국민들은 알게됐다. 이제 의료 농활을 통해서 의료취약지역의 보험수가를 높여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을 만드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다. 잘못된 의료전달시스템에 경종을 울리고, 스스로도 지역의료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며 의료인으로서 다시 마음을 되새기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의료계의 반대로 추진이 안된다고 알려진 전 국민 주치의 제도나 원격진료에 대해서도 열악한 촌의 관점에서 그 필요성을 파악하는 계기를 삼으면 좋겠다. 초고령화 시대,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될 시대의 의료 주역은 바로 지금의 전공의들이다. 누가 뭐래도 전공의들은 대한민국 의료계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들이다. 머지않은 미래 본인들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위한 주체적인 준비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못난, 못된 기성세대들이 벌이고 있는 아수라장에 젊은 의료인들이 함께 어울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 어느 세대보다도 ‘공정’에 예민한 세대로 알고 있다. 밑돌(촌의 공중보건의) 빼서 윗돌(대도시 대학병원 전공의) 고였으니 이제 윗돌이 밑돌 역할을 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겠는가.
최중증 발달장애인 가정은 심각한 경제적, 심리적 위기 상황 상황에 처해있다. 급기야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최근 국민들에게 충격을 준 대표적인 참사는 지난 2월 2일 서울시에 거주하는 한 아버지가 10살 뇌병변·발달 중복 장애를 가진 자녀를 숨지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경기도에서도 이런 비극이 잇따라 발생했다. 2022년 3월 수원에서 40대 여성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발달장애인 8살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날 시흥에서도 말기 갑상선암으로 투병 중인 50대 여성이 "딸이 나중에 좋은 집에 환생하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발달장애인 20대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인터넷 장애인신문 에이블뉴스는 지난 1월 1급 자폐성장애인 아들을 38년째 돌보고 있는 70대 지체장애인 권유상 씨의 “대통령님, 발달장애인과 부모들 제발 좀 살려주세요”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권씨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로 산다는 건 지옥보다 더 극심한 고통이라는 건, 이미 발달장애인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거나 동반자살한 사건에서 증명되고 있다.”면서 “장애인 자녀 양육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고, 자녀와 부모가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며 육신이 서서히 죽어가는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을 대통령님께서 살려 주실 것을 간곡히 청원”했다. 이것이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이 겪는 현실이다. 이는 지난 1월 경기도가 발표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경기도는 도내 최중증 발달장애인 1500명을 대상으로 돌봄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최중증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정신적 건강은 ‘심한 수준의 우울감’이 41.0%(580명)나 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중증 발달장애인 보호자 25.9%(366명)가 지난 1년 동안 ‘죽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31명은 실제 극단적 선택 관련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응답자의 73.6%가 공적 돌봄서비스에 불만을 표시했다. 공적 돌봄서비스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이에 경기도가 4월부터 최중증 발달장애인 맞춤돌봄 사업과 가족돌봄 사업을 시작한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맞춤돌봄 사업과 가족돌봄 사업은 경기도에서 실시하는 360도 돌봄 중 하나다. 맞춤돌봄은 도전적 행동이 심한 경우나 2개 이상의 중복 장애가 있거나 혹은 일상생활이나 의사소통, 행동 중 2개 이상 기능이 제한된 사람이 대상이며, 가족돌봄 사업은 복지혜택에서 배제되고 돌봄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가구가 대상이다. 도는 맞춤돌봄 사업 대상자 60명, 가족돌봄 사업 대상자 210가구를 모집한다. 공적으로 돌봐야 할 위기상황에 놓인 최중증 발달장애인과 보호자가 어디 이들 뿐이랴.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돌봄의 울타리 안에 들어 올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예산을 늘리고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완전한 통합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보다 더 전문성 있는 돌봄을 제공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몇 년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저린 통증이 있었다. 병원에 가면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정확한 진단이 없기에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해도 낫지 않는다. 의사도 머리를 갸우뚱했다. 분명히 수치는 내려갔으나 통증은 멈추지 않는다. 다른 원인이 있겠다 싶어 과를 옮기며 진료 받았다. 검사에 CT, MRI, 초음파 등 첨단 장비가 동원되었다. 의사는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받도록 했다. 병원 갈때마다 처방받은 약이 수북히 쌓였다. 약이 싫어질 쯤 심리적인 것이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랫동안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의존했다. 남쪽에서는 최첨단 기계로 검사 하기 때문에 오진이 있을까 싶다. 웬만한 병은 빠르게 진단할 수 있다. 다행히 진단명을 알면 덜 고생하게 된다. 그러나 진단명이 나오지 않으면 여러 과를 팽이처..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와 소음으로 인한 민원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미세먼지·소음 측정기 설치기준을 민간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각종 생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쾌적한 삶에 대한 욕구는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편안한 휴식이 절박한 주민들의 집 주변에 상존하는 무분별한 비산먼지와 소음은 더 통제돼야 한다. 현행 법·규정을 면밀하게 살펴 상황에 맞게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2022년 시·도별 소음·진동 관리시책 추진실적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발생한 소음 민원은 3만 6955건이었으며, 이중 공사소음 관련 민원은 7749건에 달했다. 실제로 주택지 공사장에서는 느닷없이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 문제로 시비가 일어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규정이 있지만 제대로 지키지..
우리 시절엔 어릴적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봤다. 만화에 빠져 언제 공부하냐고 욕도 먹었다. 당시 어린이잡지로 어깨동무, 새소년이 있었고 어깨동무는 육영재단이 발간한 어린이 과학상식 교양잡지다. 어린애들한테 뭔 교양을 바랬는지 그시절은 어린이의 눈높이보다 어른의 바람이 더 중요한 시대였음이 분명하다. 본격적 만화잡지 보물섬은 같은 육영재단에 의해 1982년 발간되었다. 인식의 변화다. 일본 만화전문잡지의 영향이기도 하고. 인터넷 등장 이후 개벽천지다. 스마트폰은 시간·장소를 불문코 모든걸 쉽게 보게 만들었다. 초기의 인터넷소설이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웹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2013년 1월 네이버가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했다. 웹소설이란 단어가 일반화되었다. 아마 포탈로서의 접근성에 힘입은바 크다. 웹툰·웹소설의 네이밍은 네이버 작품이다. 2000년대 도서대여점은 7-80년대 만화방의 업그레이드 모델이다. 2010년대 웹소설의 독자는 젊은 세대다. 웹소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구르미그린달빛이 KBS2에서 드라마로 방송되면서부터다. 이미 웹소설로 5000만의 누적조회수가 있었기에 드라마화가 이루어진 거지만, 최고시청율 23%를 기록할 정도가 되면서 자연스레 원천IP인 웹소설에 관심이 가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 드라마방송 한달만에 유료결제 5억 원을 돌파하였다. 매니아소설이 대중에게 열리게 된거다. 현재 웹소설의 이용자는 600만 명이 넘는다. 1년간 출판소설책을 사는 사람은 그 절반에 못미칠거다. 웹소설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상업소설과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2013년 100억이던 시장규모가 2020년 6400억, 2022년엔 1조 390억이 되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출판소설시장의 4-5배 규모는 될거다. '재벌집막내아들', '전지적독자시점', '사내맞선'의 공통점이 있다. 웹소설로 인기끌고 웹툰이 만들어진 다음 드라마가 되었다는 점이다. 2018년 '김비서가왜그럴까'가 TVN에서 8.7%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웹소설의 IP가치가 연이어 검증되면서 2021년, 2022년에 웹소설의 드라마화가 본격적 흐름을 탔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마요'가 2021년 jtbc에서 2022년 들어선 '재벌집막내아들'이 jtbc에서 '사내맞선'은 SBS에서 시멘틱에러는 왓챠에서 방송되었다. 이제 웹툰에 이어 웹소설까지 드라마의 원천IP로 자리잡았다. 70-90년대에는 근현대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많이 있었다. 지금처럼 작가군도 풍족치 않았고 원천IP 로 활용할만한 게 없었다. 순수문학과는 결이 다르지만 웹소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소망이 담겨있다. 어쩌면 판타지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웹을 대신했던게 과거엔 신문이다. 신문은 연재소설의 제일 좋은 플랫폼이었다. 연재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대표적인게 최인호의 '별들의고향', '바보들의행진'이다. 웹소설은 로맨스, 판타지, 무협, 미스터리가 주장르다. 난 무협의 애독자다. 장영훈, 북미혼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80-2000년대 금강, 서효원, 야설록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무협의 클리셰가 바뀌었다. 특히 웹소설이 대세가 되면서 문장도 간결해지고 덜 장황해졌다. 이제 대여점에서 빌려볼거면 귀찮아 안본다. 웹에서 편당 100원만 결제하면 볼수있다. 웹소설의 비즈니스모델이다. 독자에겐 편한 접근성을 보장해주고. 난 가끔씩 군자검을 등에 매고 강호를 주유한다. 시민의식 떨어지는 사람을 보면 차마 격공장으로 단전을 파괴하지는 못하지만 혈도를 찍어 팔을 마비시킨다. 곡지혈만 누르면된다. 경고의 의미다. 비록 현실에선 용기없어 상상 속에서만 불의를 다 정리하고 강호의 협과 대의를 바로 잡는 무협의 비질란테다. 웹소설 읽는 재미 은근 짱이다.!!!
전공의 파업에 이어 의대교수들이 집단으로 사직하겠단다. 파국조짐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간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아나운서가 의료대란 소식을 전하며 흥분할수록 위기감이 들기는 커녕 한마디로 “놀고들 있네~”싶은 생각이 솟구친다. 왜 그럴까? 사태의 본질은 명분을 건 투쟁이 아니라 밥그릇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은 결국 밥그릇싸움이다. 그러나 그 싸움들은 사뭇 다르다. 건설노동자 양회동씨는 2023년 노동절에 온몸에 불을 붙였다. 10월에는 임금체불을 규탄하고 완전월급제를 요구하며 227일 동안 1인시위를 이어오던 택시노동자 방영환씨가 다시 불덩이가 되었다. 그들은 삶의 벼랑 끝에서 버티고 버티다 노동자들의 빈 밥그릇을 지키려 불타올랐다. 의료분쟁은 밥그릇싸움 중에서 가장 추악한 기득권 분쟁이다. 본시 지켜야 할 것들이 가득한 기득권분쟁은 쪽박은 절대 깨트리지 않는 법, 의사들은 가득찬 밥그릇을 지키려하고 정권은 총선 밥그릇에 표를 채우고자 한다. 원래 기득권을 함께 누리던 동맹군들이다. 쪽박을 깨면서까지 싸울 이유가 없다. 하여 뉴스의 톤이 가팔라질수록 내게는 ‘이제 국면전환의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강해질 뿐이다. 의사들은 의대증원을 일정 수용하며 각종 보상이익을 지키고,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명분을 쥐면 윈윈인 판이다. 언제 어떤 모양새로 봉합할 것인지, 한동훈씨가 언제 해결사로 등판할 것인지 등만 지켜볼 뿐이다. 오히려 이 해외토픽감의 기괴한 밥그릇싸움에 떠밀려 정작 비어가는 국민들과 대한민국 밥그릇에는 쳐다보는 뉴스가 없는 지경이니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작년 한해 부자감세로 65조의 재정적자를 기록한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민생토론회라는 명목으로 대통령이 전국을 돌아가며 천조가 넘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부산경남에서만 50조가 넘는 보따리를 던지더니 울산에서는 비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도 풀겠단다. 예정된 고속도로마저 장모님 땅으로 꺾어버린 대통령이다. 당연히 “장모님이 지방 그린벨트 땅을 엄청나게 구입하신 모양이다”는 세간의 입방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12일 국무회의에서 “2030년까지 자연 보호지역을 전 국토의 30%로 늘리고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밝혔던 것은 기억에도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곤 있을까?’하는 의문이 2년을 이어오고 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누군가의 밥그릇은 넘칠 터이고 또 누군가는 살던 자리에서 쫓겨나 쪽박마저 빼앗길 것이다.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이처럼 전국을 순회하며 선심성공약을 남발하는 사례가 전무후무한 행위임을 알고나 있을까? 도데체 뒷감당을 어떻게 할려고 하는지 그의 밥그릇이 걱정될 지경이다. 대한민국이 위기를 넘어 벼랑 끝에 매달린 클리프행어가 되었다는 안팎의 비관어린 전망이 가득하다. 경제는 대형건설사 연쇄부도가 걱정될만치 폭망에 가까운 내리막길이다. 서민들은 생활고에 허리띠 빈 구멍이 남아나지 않는데 정부와 기득권은 총선을 전후한 계산기만 두들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남은 3년은 너무 길다”는 얘기가 길거리에 울려퍼진다. 국민들이 밥그릇을 지키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공평하게 나눠주는 식권은 오로지 투표용지 뿐이다. 더 이상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결정을 내리고,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기득권자들이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의사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총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