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 중에 하나는 멸치볶음이다. 멸치는 통째로 먹는 생선이라서 칼슘과 비타민D 뿐만 아니라 비타민A, 마그네슘, 기타 무기질이 풍부해서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뼈 건강과 두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음식이다. 한국 음식 중 국물이 있는 요리의 맛을 내려면 멸치를 우려내는 것은 기본,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음식의 재료로 쓰이니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멸치의 생태와 일생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떼를 지어 다니며 동물성 플랑크톤을 주 먹이로 삼는 멸치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낮은 층에 속하지만 개체수는 가장 많은 어종이다. 그래서 멸치잡이 배에서 그물을 한번 던지면 한가득 멸치가 잡히기 때문에 “일망타진”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가 보는 멸치는 말린 멸치로 큰 생선에 비해 누렇고 볼품없지만 바다에서 갓잡은 멸치는 비록 아주 작은 체구라도 은빛 찬란하다. 주로 수심 20미터 내외에서 살지만 빛을 좋아하는 본성 탓에 멸치잡이 배의 집어등 불빛에도 그만 유혹되고 만다. 멸치의 입장에서 보면 제 아무리 뼈대있는 물고기라고 해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비루한 삶을 이겨내려고 환한 빛으로 과감히 모여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물에 걸린 셀수없이 많은 멸치들은 그렇게 바다에서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멸치의 제2의 삶이 시작된다. 이제부터가 멸치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물에서 털린 멸치들은 눈부신 햇볕에 바짝 말라 짭조름한 마른 멸치가 된다. 그후에는 뜨거운 불에 삶아지거나 달궈져서 사람으로 치면 인생 쓴맛, 단맛 모두 본 후에 거무스름한 멸치볶음으로 재탄생하여 사람들의 식탁에 올려진다. 어렸을 때에는 왜 멸치볶음의 진미를 몰랐을까? 엄마들은 억지로라도 아이들의 입에 멸치볶음을 넣어주면서 말하곤 했다. “뼈가 튼튼해지려면 멸치를 많이 먹어야 해” 멸치는 본래 뼈대있는 집안의 태생인데 잘게 부서져 사라질 때까지 남의 집 뼈대까지 책임지는 참으로 지조있는 존재라는 걸 멸치 자신이 알았다면 얼마나 스스로 자랑스러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멸치처럼 사는 것이 결코 비루한 삶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멸치와 같은 삶이 아니라 고래나 상어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군림하고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는 현재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시국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멸치처럼 스스로 뼈대있는 존재이면서 국민들의 뼈대를 지켜주는 지도자가 왜 없을까. 자존심도 명예도 나라에 대한 염려도 모두 버리고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뉴스를 보니 저절로 한탄이 나온다. 오늘 저녁상에도 멸치볶음이 보란듯이 놓여있다. 뼈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근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뼈대를 지켜줄 멸치정치인이 너무나도 그리운 저녁이다.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이 화염에 휩싸였다. 불길이 채 꺼지기도 전에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 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로 몰아갔다. 방화 현장에서 네덜란드 출신 공산주의자가 체포되었고, 그는 단독 범행을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이를 믿지 않았다. 나치는 “공산당이 독일을 전복하려 한다”는 주장을 퍼뜨렸고, 독일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이 사건은 나치 독일의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나치당은 의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해 히틀러의 권력 기반이 불안정했다. 히틀러는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공산당을 탄압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사건 다음 날, 히틀러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바이마르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기본권을 정지시키는 국회의사당 방화령을 발효했다.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는 중단되었으며, 수천 명의 공산당원과 반대 세력이 체포되었다. 이후 나치당은 1933년 3월 총선에서 공산당을 배제하고 선거를 치렀으며, 나치당은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했다. 히틀러는 이를 발판으로 의회를 압박해 수권법(전권위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행정부에 의회의 동의 없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으며, 독일 국민은 히틀러가 만들어낸 음모론에 의해 점차 독재 체제에 순응해 갔다. 히틀러가 활용한 핵심은 공포와 불안이었다. 그는 공산당이 언제든지 독일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공포를 조장했고, 독일 국민은 안정을 위해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는 데 동의했다. 이 과정에서 음모론은 단순한 허위 정보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민주주의적 견제와 균형을 무력화하는 도구로 작동했다. 음모론의 위험성은 그것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특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크다. 음모론은 논리적 검증보다는 감정적 호소를 기반으로 퍼지며, 대중은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치적 불안정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에서 반복되는 현상으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음모론이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다. “외부 세력이 선거 부정 행위를 통해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이는 권력층이 위기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음모론은 권력자에게 강력한 도구다. 그것은 불안을 자극하고,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며, 나아가 권력 집중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장기적으로 사회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독일이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이후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지 못한 채 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갔다는 점은 음모론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사태도 이러한 시도가 반복될 경우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음모론의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언론의 자유와 시민 사회의 감시, 그리고 권력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와 균형이다. 음모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경기도는 물가 안정을 위해 현재 1천410곳인 도내 ‘착한가격업소’를 올해 2천86개로 확대 지정한다고 밝혔다. 착한가격업소는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로 지난 2011년 도입됐다. 업주가 지정 신청을 하면 시·군이 평가해 지정하며, 지정된 업소에는 고객 편의 증진이나 위생 수준 향상을 위한 소모품이 지원되고 ‘착한가격업소’ 표찰이 부착된다. ‘착한가격업소’ 정책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뒤집은 개념이다. 양심적인 업소를 선정해 지원함으로써 불량 업소들의 퇴출과 각성을 유도한다는 개념인데, 이론적으로는 충분한 합리성을 지닌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입된 이래 15년째 유지되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 정밀하게 검증된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착한 가게’라는 맑은 물이 물가 안정에 실질적 순기능을 하도록 세밀히 검증하고 보완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착한가격업소는 외식업, 이·미용업, 세탁업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개인서비스 사업 중 가격, 품질, 위생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선정해 지정한다. 지정 과정은 시장·군수의 모집공고 뒤 희망하는 업주가 신청하면 시·군이 평가해 지정한 뒤 표찰을 교부한다. 지정 신청은 관할시·군 지역경제과에서 받는다. 지난해 12월 기준 경기도의 착한가격업소는 모두 1410개다. 종류별로는 외식업 1087개, 이·미용업 225개, 세탁업 32개, 목욕업 등 기타 66개다. 지방정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착한가격업소로 선정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 수원시는 착한가격업소에 인증 표찰과 종량제 봉투(분기별)를 제공한다. 지난 2023년부터는 지원 금액을 상향 조정해 착한가격업소가 희망하는 품목을 사전에 조사한 후 맞춤형으로 물품을 지급한다. 연간 1회 소독 방역 서비스도 지원한다. 소비자교육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착한가게의 가격은 타 업소에 비해 무려 20∼30%나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품질도 못지않다. 점포 대부분이 지역에서 가격 인상 없이 장기간 장사해온 곳으로서 이용객은 아직 주로 동네 단골손님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은 시기 원자재가격 폭등 등 원가가 미친 듯이 상승하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일부 지역에서 착한가게를 포기하는 업소들도 나온다. 착한가격업소는 지정도 쉽지 않지만, 계속 유지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값도 싸고 맛도 좋은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식당을 운영하는 일이란 ‘네모 난 세모 만들어내기’만큼이나 난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렴한 가격 자체가 소비자에게 주는 부정적인 인식의 벽을 불식하는 일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은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거의 고착된 가치관이다. 착한가격업소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책은 현장에서 그 답을 찾는 게 정석이다. 착한가격업소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싸면서 질 좋고 친절한 업소라고 해도 입소문만으로는 정착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제아무리 착한가격업소라도 소비자들이 알지 못하면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 정부의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마케팅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다. 경기도의 착한가격업소 대폭 확대 방침을 환영한다. 다만 이 정책이 지정업소들이 대책 없이 끌려가는 제도가 돼서는 안 된다. 양(量)은 결코 질(質)을 보장하지 않는다. 착한가격업소 대폭 확대에 즈음하여 경기도는 착한가격업소 정책의 현황을 정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반응과 시장 소비자들의 반응을 심층 분석하여 효과적인 대책을 보완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도 인증 표찰을 붙이고 장사하는 게 조금 더 나아서 떼지 못하고 있는’ 울며 겨자 먹기식 착한가격업소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
1910년 8월 29일. 조상들은 그날을 왜 망국(亡國)의 상실과 분노, 거대한 슬픔의 날로 규정하지 않고, ‘국치(國恥)의 날’이라고 천명했을까. 그로부터 100년도 훨씬 더 지난 오늘날도 우리는 모두가 그날을 ‘크게 부끄러운 날’로 상기한다. 참으로 특별하지 않은가.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 무너진 가슴을 안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가장이 빈 쌀독을 바라보면서, 그는 가족이 조만간 다 함께 굶어죽을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기 전에, 그보다 더 먼저 그 처지를 부끄러워하였다. 조상들은 그런 족속이었다. 불가사의하지 않은가. 나는 조상들의 그 특별한 마음을 늘 불행 중 ‘다행스러운 자산’이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뿌듯해했다. 강도에게 가진 걸 모두 털린 사내는 우선 목숨이라도 건진 것을 조상의 음덕(陰德)이라 여기고, 정신 차리고 나서 그 상실을 아까워하고 분노하고 두려움에 떨며 걱정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맨 먼저 부끄러워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일제 35년은 이 민족이 그 ‘큰 부끄러움’을 줄이고 또 줄여서 끝내 제로로 만들려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망국의 슬픔을 감당하고 이겨내는 공동체의 정신으로써, 그리고 국권회복의 목표를 위해서도 그 수치심은 강력한 에너지였다. 큰 지혜이기도 했다. 이 민족이 세상에 보여준 고결한 자존감이었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왜놈들과 탐관오리들에게 강탈당하지 않으려고, 새끼들에게 그 모욕적인 신분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수십만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저 북만주로 피난을 떠났다. 그 생계형 이주민들이 훗날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성으로 내놓은 푼돈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으로 쓰이는 과정을 생각하면 언제나 뭉클하고 눈물겹다. 그 조상들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생활을 현저하게 개선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과 아쉬움, 일상적인 불안을 늘 곁에 두고 살면서도 듬직하게 정착했다. 그 억척스런 살림살이와 특유의 생존력으로 살아남은 세월은 훗날 간도를 국권회복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건설하는 위대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특별한 부끄러움은 ‘경술국치’(1910년) 300여 년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낸 출사표에서도 확인된다. “원컨대 한번 죽음으로써 기약하고, 즉시 범의 소굴을 바로 두들겨 요망한 기운을 쓸어내고, 나라의 부끄러움을 만분의 일이나마 씻으려 하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나라가 망하거나 그 조짐이 보일 때 그 특징은 예외 없이 발현된다. 두드러진다. 각종 동식물들의 종(種)이 ‘존재의 위기’에 처하면, 몸의 색깔을 바꾸거나 특정물질을 분비하여 위난(危難)을 돌파하듯이, 우리 민족은 마치 그 자연법칙처럼 ‘부끄러움’을 생존에너지로 치환하여 뛰쳐나갔다. 왜란(倭亂) 때도, 호란(胡亂) 때도, 경술국치 망국 전후 그 지옥의 시간에도 늘 똑같았다. 윗자리에서 군림하며 거들먹거리던 종자들, 심지어 임금까지도 시정잡배들처럼 도망쳤지만, 민초들은 낫과 쇠스랑, 돌팔매와 죽창과 활로 신식무기와 맞서고, 여인들은 치마에 돌맹이와 먹거리를 날랐다. 아들은 총맞아 죽은 어미의 젖을 빨았다. 국난 때마다 조상들이 그렇게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했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철학자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무수오지심 비인야. 無羞惡之心 非人也), 라고 갈파했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惻隱之心), 겸손하고 친절한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지니고 살지 않으면, 그 역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실로 단순명료한 인간론이다. 60대 중반 넘도록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 언제나 존경스러워 본받고 싶은 인사들 소수가 있었다. 그들은 늘 부끄러운 일을 경계했다. 그들과 대칭에 있는 자들의 공통점은 후안무치(厚顔無恥)였다. 특히 돈 앞에서 저열하고 쌍스러웠다. 기자와 정치판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외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천박한 모리배(謀利輩)들이었다. 자존감 높은 족속은 부끄러움과의 싸움에서 가장 질긴 법이다. 그 과정에서 기나긴 시간 동안 크고 작은 고통과 절망의 기억들이 쌓이고 또 쌓인다. 이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공동체는 그렇게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의 선물이다. 목숨을 던져 얻은 고품격이면서 큰 지혜다. 이 미덕을 귀한 가보(家寶)처럼 이어간다면 그것이 이 특별한 민족의 유전자로 내장될 것이다. 12.3 계엄사태 이후, 이 나라 착한 씨알들,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비폭력 저항운동은, 이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먹구름처럼 짙게 드리워진 음울한 시대에 밤하늘에 쏘아올린 조명탄이다. 그 위대한 민초들 앞에서 윤석열 일당, 그 한 줌도 안되는 5류 정치낭인 무리가 보여주는 야비하고 졸렬한 작태는 이 특별한 공동체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지난 글을 통해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의 경우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날 즉, 피상속인의 사망을 안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피상속인의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고를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기 이전에 상속인들이 상속재산인 부동산을 매도, 주식을 매각하거나 예금채권을 찾아 사용하는 등 상속재산에 대하여 처분행위를 하거나, 상속인이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한 후에 상속재산을 은닉 또는 부정소비하거나 고의로 재산목록에 기입하지 않은 때에는 상속인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보게 되므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확실히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속재산을 처분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속인들이 한정승인을 한 경우 상속인들에게는 상속재산의 청산이라는 후속 절차가 남게 됩니다. 이러한 상속재산 청산절차는 상속채권자나 유증받은 사람에 대한 채권 또는 수증을 신고할 것을 신문에 공고(한정승인이 있은 날로부터 5일 이내에 2개월의 기간 동안)하고 채권자들에 대한 변제·배당 및 유증의 이행 절차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속재산 청산 절차는 법률전문가의 조력이 없이는 어렵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부당변제가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상속재산보다 채무가 많은 경우에는 사적으로 위와 같은 상속재산청산 절차를 밟아서는 안 되고 법원에 상속재산파산신청을 하여야 합니다. 상속재산파산신청을 하게 되면 법원에서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채무조사, 채권자신고, 배당절차 등을 진행하므로 상속인들의 입장에서는 업무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실제 한정승인 이후에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이 대여금 등의 채무를 변제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민사소송을 상속인들에게 제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민사소송이 제기되더라도 법원은 한정승인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상속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상속인들이 채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상속인들은 소송과정에서 한정승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주장, 입증하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상속이 발생하는 경우 체크하여야 할 사항들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피상속인 사망 전에 한 유언 있다면 유언에 따라 상속재산이 처리되어야 하므로 유언이 민법이 정한 방식에 따라 적법하게 작성된 것인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도 알아두시면 유용할 것입니다.
경기도가 지난 31일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관광단지로 공식 고시했다. 지정된 ‘화성 국제테마파크 관광단지’는 화성시 남양읍 신외리와 문호리 일원(송산그린시티 특별계획구역 8) 285만 4708㎡(약 86만 평)에 조성되는 복합관광단지다. 관광단지가 되면 조성계획 승인과 인·허가를 함께 처리할 수 있어서 기간이 단축되고 취득세 50% 감면 등 혜택도 제공된다. 이에 화성시는 지난 5월 경기도에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관광단지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한 바 있다. 이로써 ‘화성국제테마파크’ 조성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 화성 국제테마파크 사업은 17년 간 공전하다가 최근 재점화됐다. 지난 2007년 최초 추진됐지만 사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유니버설스튜디오코리아(USK)컨소시엄과 수자원공사가 MOU도 체결했다. 포스코, 쌍용건설, KCC건설, STX건설, USKPH,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도 참여했다. 당초 계획은 3조원을 투자, 유니버설 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를 2010년 착공해 2013년 개장한다는 것이었지만 세계금융위기로 무산됐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2019년 신세계프라퍼티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10월 10일 파라마운트사가 화성국제테마파크의 글로벌 브랜드 파트너로 결정됐다는 공식 발표와 함께 화성국제테마파크 글로벌 브랜드 유치 선포식이 화성시청에서 열렸다. 이 자리엔 김동연 경기도지사, 정명근 화성시장,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사장, 마리 막스(Marie Marks) 파라마운트 엔터테인먼트 부문장 등이 참석, 이 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파라마운트사는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이자 콘텐츠 지식재산 보유·배급사다. 미국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파라마운트픽처스, 방송사 CBS, 어린이 전문 케이블 방송 니켈로디언,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 MTV 등 다수의 채널을 지닌 초대형 미디어 기업이다. 이런 파라마운트사가 글로벌 브랜드 파트너로 결정됐으니 화성시의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파라마운트의 브랜드를 활용한다면 아시아 최대 규모 테마파크로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경기도 역시 “파라마운트 브랜드가 활용되는 화성국제테마파크는 그간 미디어로만 만나볼 수 있었던 파라마운트의 환상적인 콘텐츠 세계를 현실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해 즐거움·영감·힐링을 누리는 전례 없는 테마파크, 아시아 대표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도는 개발 단계에서 생산유발효과 약 11조 7175억 원, 운영 단계에서 생산유발효과 약 4조 7144억 원, 취업유발효과 약 4만 9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간 약 2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 유치를 기대하고 있다. 김동연 도지사가 화성국제테마파크 글로벌 브랜드 유치 선포식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해안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수긍이 된다. 테마파크를 조성함으로써 도로, 철도 등 인프라를 포함한 서부 개발 비전을 담은 경기서부 SOC 대개발을 성공적으로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막연한 것은 아니다. 화성국제테마파크 조성 사업은 복합 리조트형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총사업비 4조 6000억 원을 투자해 송산면 418만 9000㎡ 부지에 테마파크를 비롯, 호텔과 전문 쇼핑몰, 골프장 등 관광단지를 개발한다. 이 사업에 가장 큰 기대를 하는 곳은 역시 화성시다. 정명근 시장은 “화성시는 혁신적인 미래형 관광단지 산업에 박차를 가해 대한민국 대표 문화중심지로 도약”할 것이라면서 행정 역량을 총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신세계프라퍼티는 물론 경기도와 화성시 모두 과거의 사례를 교훈삼아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치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를 써서 유명해졌다. 모두가 외롭다는 것. 자연도, 하나님도 외롭다는 이 형벌 같은 외로움의 본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명으로서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문제인 것일까?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은 시와 산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언어요 문장일 것이다. 외로움에도 갈래가 있다. 각각 느낌과 고통스러운 우울감이 다르다. 꿈과 사랑을 잃은 젊은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희망이 꺾이어서 주저앉고 싶은 소상인과 농민들, 가족을 잃은 이들의 피맺힌 한 같은 그리움과 외로움- 어떻게 하면 새해에는 외로움이 덜 느껴지는 가운데 살맛 돋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3일, 한밤중에는 윤석열이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다음 날 04시 30분에는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따라서 12월 14일 오후에는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안이 비상계엄령 선포 11일 만에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게 무슨 한밤중의 악몽이었던가. 아니면 국가적인 비상사태에 따른 군인들의 작전 연습이었던가. 이 순간 국가의 명예를 빛내고 문화예술인과 온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준 한강 작가는, 스웨덴의 밤을 빛낸 수상자로서 스톡홀름 노벨 만찬에서 ‘생명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는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나이 선배로서 이 작가에게 한없이 부끄러웠다. 한 여성 작가는 한국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받고 싶어 하고 우러러보는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역시 ‘동방예의지국은 다르다’고 세계적인 지도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는데 작가가 태어난 그 땅에서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뒷수습에 소란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젊은이들과 노조원 그리고 뜻있는 많은 분이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 모여 촛불집회를 하며 “누구는 물러가라”고 추위 속에 외치고 있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금배지를 차보지도 않았고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게 부끄러웠다. 결론은 이 나라에 ‘승⭑두⭑석(승만, 두환, 석ㅇ) 같은 이가 제발 그만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대회의 정조 치세 어록을 보면, 1797년 12월 말 광주 목사 서형수에게 보낸 비밀 편지 내용과 함께 신하에게 안부를 묻는 대목이 있다. “해가 바뀌는 시기가 되자 무엇보다 앞서 초가에 누더기를 입은 백성이 떠오른다. 연말에도 이 지경이니 년 초에는 더 심각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도적 떼가 날뛰는 것도 괴로운데 백성들을 돌보아야 할 아전들이 앞장서 도적 떼와 결탁해서 한 술 더 뜬다.” 고 하는. 백성을 자기 몸과 가족처럼 생각하는 정조의 마음이 눈물겹게 고맙다. 그리고 신하에게 비밀 편지를 보내면서도 본분을 잃지 않고 깎듯 한 점이 과연 대왕답다는 생각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한글을 지으신 세종대왕과 함께 인문학적 사상으로 백성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는 휴머니즘에 가슴 수그러지는 정조 대왕이다 ‘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는 말은 1953년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국민들에게 한 연설 중 일부다. 그리고 그동안 그는 자기 집무실 책상 앞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문구가 새겨진 명패를 두고 일했다. 그런데 이 명패는 우리나라 윤석열 대통령 책상 위에도 있다. 글머리에서 나는 한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시를 말했다. 바꿔 말하면 사람이니까 외롭다는 것이다. 된 사람일수록 외롭고 슬픈 것. 그것을 참고 ‘홀로 움’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조선의 선비정신이요 참된 스승이었다. 한강 작가는 스웨덴의밤 수상식장 그 자리에서 ‘어두운 밤 우리를 잇는 것은 언어’라고 했다. 그리고 ‘문학의 실로 세계를 잇다’라고 평했다. 지금은 2025년 새해다. 새해는 덕담과 세배로 온다. 모든 독자에게 ‘너무 외로워하지 마세요. 외로우니까 가족과 이웃이 있으니까요.’ 하고 인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발 국민(백성)의 힘을 빼는 일과 스트레스 주는 일 없는 가운데,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나무 열매처럼 익어가고 예쁘게 희망을 기다릴 줄 아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것이 2025년 나의 덕담이다.
경기도가 도내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영안정을 위한 ‘2025년도 중소기업 육성자금’ 규모를 2조 원으로 확정해 발표했다.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날로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보다 규모를 2500억 원을 늘린 것은 적절한 조치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중소기업 진흥’을 외친다. 그러나 속 시원한 정책을 펼치는 정치 행정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도내 중소기업들을 살려내는 효율적인 정책들을 개발해 추진하기를 당부한다. 코로나19 당시 저금리로 빌렸던 대출을 갚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발생한 1개월 이상 중소기업 대출 신규 연체액은 3조162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 작성 이후 분기 기준 최대치다. 1~3분기 합산으로 봤을 때는 2023년 3분기 누적 5조8166억 원보다 무려 49%나 폭증한 8조 683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연체율도 상승세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연체율(0.70%)은 전월 말(0.65%) 대비 0.05% 포인트 올랐다. 전년 동월 말(0.44%) 대비로 보면 0.15% 포인트 급등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5월(2.57%)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보는 상황이어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대내외 어려운 경제환경 변화 등으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육성자금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2022년 이후 중단됐던 기금융자 지원도 재개하기로 했다. ‘운전자금’은 총 1조3000억 원으로서 세부 지원 사항은 ‘경영안정자금 1조800억 원’, ‘특화지원자금 1000억 원’, ‘특별경영자금 1200억 원’ 등이다. 7000억 원 규모인 ‘창업및경쟁력강화자금(창경자금)’은 공장 매입비와 건축비 등 시설자금으로 지원될 예정이다. 이 중 기금융자는 2000억 원 규모로 금리 2.90%(변동금리)로 지원할 예정이며, 기금융자 외 협약 금융기관 협조융자의 이차보전율은 0.3~2.0%p다. 구체적으로, ‘경영안정자금’은 중소기업 지원에 6300억 원, 소상공인 경영안정(창업·경영개선·대환)을 위해 4500억 원을 지원한다. 이 가운데 대환자금은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 방안으로 전년도 500억 원 규모에서 2배 늘린 1000억 원 규모로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을 기존 소상공인 자금뿐 아니라 높은 금리의 일반 시중은행 소상공인 대출 사용자도 포함한 것이 특지징이다. ‘특화지원자금’은 기존 대출이 있는 기업도 지원할 수 있도록 별도 한도로 운용해 기업의 성장 여건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밖에 수출형기업자금 300억 원, 일자리창출기업 200억 원, 신성장혁신기업 자금 300억 원을 투입한다. 특히 올해 신설된 지역균형발전기업 자금 200억 원은 ‘경기도 지역균형발전 지원 조례’에 따라 선정된 시군(포천·양평·여주·동두천·가평·연천) 소재 기업들에 별도 한도로 지원한다. ‘특별경영자금’은 긴급 재난 상황에 대비하는 재해피해자금으로 500억 원, 예비자금으로 600억 원 등을 마련해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긴급한 자금 수요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중소기업은 지역경제의 뿌리와도 같은 존재다. 뿌리가 건강하지 못한 나무가 멀쩡할 수 없듯이 지역 중소기업의 경영 실태는 지역민 삶의 질과 직결된다.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애로는 단지 금융 분야에 한정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아쉬워하고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경영상 난관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새해 들어 각종 악재가 널린 가시밭길 앞에 놓인 경기지역 중소기업들이 앞길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보다 효율적인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구사되길 기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5일 아시아투데이가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에 의뢰해 1월 3일부터 4일까지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ARS 조사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로 집계된 것이다. 해당 여론조사만 여권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6일에 발표된 에너지 경제 신문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1월 2일과 3일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ARS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4.4%를 기록했다. 이런 여론조사의 결과만 놓고 보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대항해, 보수층이 결집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해당 여론조사들이 ARS 조사라는 점이다. ARS 조사는 기계음이 묻는 문항에 답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응답층 대부분은 정치적 고관여층들일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진보·보수 양 진영의 강성 지지층들이 ARS 조사에 적극 응답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ARS 조사는 선거 직전에 그 정확성을 과시할 수 있다. ARS 조사에 응답하는 계층들 대부분이 반드시 투표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해당 조사에서 나온 결과로 선거 결과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 시즌이 아닌 시기에는, 일반적인 여론의 추이를 ARS 조사 결과로 논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들의 결과는, 최소한 강성 보수 유권자들이 응집하고 있음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강경 보수들이 결집하는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이 수시로 꺼내 드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 주장에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대해 대통령은 그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계엄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탄핵에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강성 지지층들이 결집하고 있으니, 또 다른 이유도 찾아야 할 듯하다. 아마도 강성 보수층 결집의 또 다른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는 당연히 이재명 대표다. 그런데 강성 보수층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시선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 시기를 어떻게든 늦추거나, 아니면, 윤 대통령을 지켜내 이재명 대표가 대권을 거머쥐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쨌든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은,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즉, ‘국민의 보편적 지지’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착각하면, 국민의힘은, 지역 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처한 지금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럴수록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합리적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에 의한 ‘독재’를 추구하다가 ‘주술’에 의한 정치로 종지부를 찍었다. 검찰독재와 주술정치의 부적절한 만남은 ‘12.3 비상계엄’이란 사생아를 출산하였다. 윤석열은 어떻게 주술정치를 불러들였는가? 주술은 종교와 달리 목표가 합리적이지 않고 수단은 윤리적이지 않다. 주술은 자기 개인과 가족의 이익을 추구하므로, 종교와 달리 사회 공공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주술이 개인 차원에서 머문다면 굳이 나무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공적인 차원에 나타난다면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게 된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정부가 그 예가 되었다. 2018년 소가죽을 벗기는 굿판에 윤석열 부부의 이름이 연등에 올려졌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하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가 손바닥에 ‘王(왕)’자를 써서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은 크게 실소했다. 2022년 3월 9일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3일만에 청와대를 버리고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였을 때 국민들은 비로소 심상치 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배후엔 영부인 김건희가 있었다. “나는 영적인 사람이고 도사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김건희가 말할 때 건진법사와 천공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후에 자칭 ‘지리산도사’ 라고 하는 명태균이 모든 것을 폭로하였을 때 모든 악폐의 근원이 김건희로 부터 비롯되는 것임이 밝혀졌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부인(최O영)도 무속에 심취하여 김건희와 밀착하였다고 한다. 정치적 위기에 처한 윤석열 대통령은 국면전환을 위해 불법 ‘12.3 비상계엄’을 공포하였다. 그러나 국회는 즉각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하여 계엄은 즉시 해제되었다. 계엄을 모의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도 서울 근교에 ‘점집’을 차린 ‘안산보살’인 것으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술의 포로가 되어 과대망상으로 국정을 전횡하다가 불법계엄으로 종언을 맞이하였다. 윤석열정부의 무속정치 주변에는 기독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윤석열을 전면에서 옹호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그가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하였을 때 세상은 그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치부하였다. 그가 비상계엄을 가리켜 “윤대통령은 ‘거룩한 사고'를 친 것…” 이라고 옹호할 때 세상은 기독교가 내란범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한국의 많은 대형교회들은 뉴라이트에 함께 무속정치를 자행하는 윤석열을 비호한다. 재임중 3차례 가진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기독교 지도자들은 ‘공의’을 말하면서 무속정치를 자행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질책하지 않았다. 2024년 10월 27일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반대하여 광화문에 백만명의 기독교인이 모인 바 있지만, 윤석열의 무속정치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동조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왕상 9:7)가 될 것이다. 일제시기에 신사참배를 한 한국기독교가 광복이후 맞이한 남북분단으로 금년 80년에 이르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제 무속정치와 확실하게 결별하고 공의와 정의로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뉴라이트를 떠나 민족의 정체성과 생존을 위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