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이때면 사람들은 새해에도 건강과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덕담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전에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고 되어있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 정신적 안정감, 가족들과의 사랑, 원만한 대인관계 등의 요소들이 만족할 만큼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정답은 없다. 만족의 크기는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젊은 시절에는 사회적 출세와 물질적 풍요를 가장 중요한 행복의 요소로 간주하고 이를 야심 차게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행복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점차 생각이 변하면서 이보다도 더 중요한 행복의 요소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건강, 마음의 평정, 가족 및 친구들과의 적절한 교류 등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만족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1986년에 펴낸 그의 수필집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소확행(小確幸)’이라는 용어를 처음 등장시켰다. 이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이다. 그가 책에서 묘사한 일상 속의 아주 구체적이고 사소한 순간들이 주는 행복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막 구워낸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가지런히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과 그 깨끗한 면 냄새,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고양이의 온기를 느끼는 것, 운동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이 가져다주는 청량감,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것을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등이다. 참으로 소박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모두 특별히 큰돈을 들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감성이거나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행위들이다. 또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거나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키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를 부러워하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이 불행한 것은 부러움이나 욕심 때문이다. 상대방의 지위와 부, 권력을 부러워하면서 늘 자신을 자책하기에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부자는 권력을, 권력자는 가난하지만 건강하고 화목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다고 하는 다이아몬드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상처투성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진 게 많아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때로는 더 채우지 못해 또 때로는 말 못할 사연으로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행복이란 스스로 처해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것이다. 사실 행복의 요소들은 우리 생활 주변 지천에 널려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잘 인식하지를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 하나하나는 매우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의 욕심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작은 행복 대신 커다란 행운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칫하면 찰나의 행운을 잡기 위해 수많은 행복을 짓밟게 된다. 풀밭이나 들판에 나가보면 사람들은 네잎 클로버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지천에 널려있는 세잎 클로버는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지천에 널려있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가 수많은 세잎 클로버를 짓밟으면서 찾아 헤매는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행운 하나를 찾겠다고 주변의 수많은 행복들을 마구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미국의 어느 노인이 90세가 되던 해 자신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느끼고 배운 45가지의 교훈을 글로 적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참으로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인생은 좋은 것이며 살아갈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모양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나요?
얼마 전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한 친구의 무례한 태도로 마음이 몹시 상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일을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아 나는 애써 참아 넘겼다. 다음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전화를 했지만 정작 전날 무례한 행동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없이 너스레만 떨었다. “미안해” 이 한마디는 그리도 끄집어내기 힘든 단어였을까? 사과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행위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주 지연되고 회피된다. 우리는 변명을 먼저 떠올리고, 상황을 설명하며, 때로는 상대의 오해라고 퉁 친다. 사과를 미루는 동안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간다. 그렇다면 사과가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성격 문제일까, 아니면 인간 존재의 구조적 문제일까? 사과가 어려운 첫째 이유는 자아의 방어 때문일 것이다. 사과는 단순히 “잘못했다”는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나는 틀릴 수 있는 존재다”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자아 이미지-성실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괜찮은 사람-에 흠집을 낸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처럼, 인간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기보다 합리화와 부인을 먼저 선택한다. 둘째 이유는 사과를 패배로 여기는 문화일 것이다. 우리는 은근히 사과를 지는 것으로 배웠다. 먼저 사과하면 관계의 주도권을 잃고, 도덕적 약자가 되며, 더 많은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헤겔의 ‘인정투쟁’ 개념을 빌리자면, 인간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인정받는 위치에 서고자 한다. 사과는 이 투쟁에서 한 발 밀려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 대신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너도 알잖아!” 같은 말을 선호한다. 이는 책임을 나누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과를 유보하는 우유부단하고 비겁한 행위다. 셋째 이유는 우리가 사과의 의미를 ‘잘못에 대한 심판’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의 본질은 과거 행위의 단죄라기보다 미래를 선택하는 긍정의 행위다. “당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만이 인간행위의 불가역성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사과는 바로 그 용서의 문을 여는 첫 단추다. 과거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도덕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실수를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에 더 크게 자책한다. 그 결과 사과 대신 침묵이나 거리 두기를 선택한다. 이는 무책임하다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도덕적 부담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침묵은 책임을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에게 해석의 부담만 가중시킨다. 사과는 불완전한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존감은 사과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 사과는 자아의 붕괴가 아닌 자아의 확장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과를 너무 큰 일로 받아들여 왔는지도 모른다. 사과는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당신과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약속. 따라서 사과는 패배가 아니라 용기 있고 현명한 선택이다.
경기도 감사위원회가 도 산하 32개 공직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도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소폭이나마 상승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가 만만치 않다. 공직의 청렴도는 국가나 지방정부의 미래를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다. 조금만 방심해도 무참히 무너지는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더 많은 노력과 더 철저한 감시 시스템이 작동돼야 한다. 깨끗한 공직사회만이 국가사회의 진정한 번영을 담보한다. 경기도 감사위원회가 도 산하 32개 공직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도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8.94점(10점 만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8.59점보다 0.35점 소폭 상승한 수치다. 종합청렴도는 행정서비스를 경험한 도민이 평가하는 ‘외부체감도’, 기관 내부직원이 평가하는 ‘내부체감도’, 각 기관의 부패방지 노력을 평가하는 ‘청렴노력도’ 3가지 분야로 평가한 뒤 최고 1등급에서 최하 5등급까지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외부체감도와 내부체감도 평가 설문조사에는 도민 5027명, 기관 소속 직원 2312명이 참여했으며, 신뢰수준은 95%, 허용오차 ±1.31%p(외부), ±1.18%p(내부)다. 평가 결과, 외부체감도는 9.45점으로 전년 대비 0.17점 하락한 반면, 내부체감도는 7.87점으로 전년 대비 0.31점 상승했다. 청렴노력도는 9.18점으로 전년 대비 1.30점 하락했다. 기관별 결과를 살펴보면 1등급은 없고, 2등급은 경기교통공사,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경기도사회서비스원,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경기연구원, 경기테크노파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 차지했다. 한편, 경기도장애인체육회, 경기아트센터는 5등급을 받았다. 공직유관단체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거나, 임원 선임에 관여하는 등 공공성이 있는 기관이나 단체로 공무원과 함께 공직자윤리법상에서 정한 규제를 받는다. 위원회는 2015년부터 기관별 청렴 수준을 진단하고 부패 취약 분야를 발굴·개선하기 위해 매년 종합청렴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23년 경기도 공직유관단체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 종합청렴도 점수가 전년보다 0.22점 하락한 8.55점(10점 만점)을 기록해 충격을 던졌었다. 당시 평가 결과, 외부체감도는 8.97점으로 전년 대비 0.47점 하락한 반면, 내부체감도는 7.81점으로 전년 대비 0.31점 상승했다. 청렴노력도는 8.59점으로 전년 대비 0.59점 하락했다. 공직유관단체 내부직원들의 지속적인 반부패 노력으로 내부체감도는 상승한 데 반해 외부체감도와 청렴노력도는 하락한 수치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초 발표된 경기도 산하 31개 공직유관단체의 2024년도 종합청렴도 평가결과, 종합청렴도 점수가 2023년 8.57점보다 0.02점 상승한 8.59점(10점 만점)을 기록해 한시름 덜기는 했다. 평가 결과, 외부체감도는 9.62점으로 전년 대비 0.65점 상승한 반면, 내부체감도는 7.56점으로 전년 대비 0.25점 하락했고, 청렴노력도는 10.48점으로 전년 대비 1.85점 올라갔다. 2024년도 9.62점으로 전년 대비 0.65점 상승했던 외부체감도가 2025년도는 9.45점으로 전년 대비 0.17점 하락한 부분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내·외부를 불문하고 청렴도 체감도가 등락을 반복하는 현상을 굳이 해석하자면 크게 개선되지도 악화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 선진 민주국가들의 경우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국가 공무원은 물론 모든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자들의 청렴도 문제에 관한 신뢰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라는 이슈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공직의 청렴도야말로 그 나라와 지역사회의 번영된 선진 민주주의의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공직사회의 청렴도에 관한 한 경기도민들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경기도를 그린다.
새해가 되면 각종 미디어는 ‘올해 달라지는 정책들’에 주목한다. 2026년부터 새로 시행되거나 지원 대상과 액수가 확대되는 정책을 소개하는 홍보물과 언론 보도가 넘쳐난다. 나의 삶에 도움이 될 새로운 제도들을 꼼꼼히 살피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홍보물 뒤편에는 꼭 변했어야 함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정책들이 있다. 그리고 그 멈춰버린 정책들 때문에 삶의 변화와 회복을 꿈꾸기조차 어려워진 사람들이 있다. 새해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누군가 변하지 않은 정책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나”라는 질문만큼이나 “무엇이 아직 바뀌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더 무겁게 던져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제도이다. 2023년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도입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이 이뤄졌으나,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가혹하다. 2025년을 지나 2026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정작 피해자들이 절실하게 요구했던 변화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비한 제도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마모되고 있음에도, 정책은 여전히 작년에 멈춰 있다.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생계마저 뒤로한 채 실효성 있는 특별법 개정을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특히 2025년 새 정부 출범 이후 제도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당사자들이 요구해 온 과제들은 더욱 절실하다. 실질적 회복을 위한 ‘최소보장 방안’ 도입부터 피해자 인정 요건의 현실화, 외국인을 포함한 지원 사각지대 해소, 피해주택 매입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배드뱅크 도입, 지자체의 피해주택 관리 권한 확대 등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2026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특히 ‘최소보장 방안’은 피해자 간의 회복률 편차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보증금 회수 비율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피해자에게 보증금의 최소 비율을 보전해 주도록 현금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가령 보증금이 1억 원인 피해자가 경매에서 4000만 원만 배당받았다면, 최소 보전 비율(예: 50%)과의 차액인 1000만 원을 추가 지원해 최소한의 주거 자금을 확보해 주는 식이다. 실질적인 피해자가 제도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피해자 인정’ 요건의 개선 또한 시급하다. 현행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요건 중, 임대인의 기망(사기 의도)을 입증해야 하는 조항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계약 당시 임대인에게 전세사기의 의도가 있었음을 임차인이 증명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명백한 피해 상황임에도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원 제도를 전혀 이용하지 못하는 부당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2026년의 변화된 정책들이 우리 사회에 기대와 활력을 주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신규 제도의 확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정체된 정책을 실효성 있게 개선하는 일이다. 새해의 수많은 변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이 아직 그대로인가?”를 반복해서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6년에는 '새로움'에 가려진 ‘미결된 과제’들이 정책적 우선순위로 다뤄짐으로써, 누구의 삶도 고통에 멈춰 서지 않는 실질적인 정책적 진전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이 도성을 나간 숭례문은 오랫동안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 1호였다. 여기서 1호가 국보의 관리 번호일 뿐임에도 가치가 제일 높다는 의미로 읽히면서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많았다. 이에 시달리던 국가유산청은 국보에 붙인 번호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국보다. 1394년 8월 24일 개성에서 서울로의 천도를 결정했고, 9월 1일에 새수도궁궐조성특별위원회(新都宮闕造成都監)를 설치했으며, 9월 9일에 정도전이 궁궐과 종묘를 포함하여 새수도의 도시계획도를 그려 바쳤다. 이때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도 정했을 것인데, 1396년 9월 24일에 여러 성문을 완성한 후 남쪽의 대문을 ‘숭례문’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남쪽의 기준은 정궁인 경복궁인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남대문인 숭례문과 정궁인 경복궁을 잇는 직선의 대로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1394년의 도시계획도에는 그렇게 그려져 있지 않았다. 성 밖에서 숭례문을 통과한 후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길은 서울역-숭례문-서울시청-세종대로사거리-광화문을 잇는 왕복 8차선의 세종대로다. 비록 직선은 아니지만 숭례문에서 경복궁의 광화문을 잇는 최단코스의 길이다. 그런데 세종대로 중 숭례문-서울시청-세종대로사거리 구간은 조선에서는 없었고,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새로 만든 길이다. 1394년의 도시계획도에 그린 남북대로는 숭례문에서 활처럼 휘면서 종각까지 이어진 지금의 남대문로다. 숭례문과 광화문을 직선으로 이으면 거의 정북에 가까운데, 숭례문의 출입문 방향은 동북-서남이다. 왜 이런 방향을 취했을까? 정답은 이거다. ‘숭례문을 들어서도 경복궁을 쳐다보지 마라!’ 숭례문을 지나 활처럼 휘는 남대문로를 따라 종각까지 갔다가 서쪽으로 꺾어서 세종대로사거리에 이르러 북쪽을 바라봐야 임금이 사는 경복궁과 광화문을 처음으로 볼 수 있다. 전통시대 어느 수도에도 이런 간선도로망은 없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간선도로망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풍경에 있다. 조선 후기 가장 오랫동안 정궁의 역할을 했던 창덕궁의 진입로인 돈화문로에서 바라본 풍경은 하늘-보현봉-창덕궁(돈화문)의 거대하고 웅장한 3단계 풍경이다. 조선 전기 정궁의 역할을 했던 궁궐은 정도전이 풍수의 원리에 따라 명당의 위치를 잡아 1395년에 만든 경복궁이고, 그 뒤에는 풍수의 주산과 조산인 북악산(342m)과 보현봉(714m)이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바라보면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광화문)의 3단계 풍경이 거대하고 웅장하다. 그런데 돈화문로에서 경험했듯이 광화문에서 멀어질수록 북악산·보현봉의 모습은 커지고 경복궁(광화문)은 작아지는데, 세종대로사거리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와서 보면 경복궁(광화문)의 크기가 너무 작다. 그래서 정도전은 하늘-북악산·보현봉-경복궁(광화문)의 3단계 풍경을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처음 볼 수 있도록 남북대로를 숭례문에서 종각 뱡향으로 활처럼 휘도록 계획했다. 숭례문의 방향도 문을 들어선 사람이 시선을 경복궁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동북-서남으로 정했다. ‘경복궁을 쳐다보지 마라’ 이것이 숭례문의 방향에 구현된 풍수도시 서울의 비밀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을 막아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고령 노동자의 산재 사망자 비율이 증가하는 문제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고령화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나이가 많은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어쩔 도리가 없는 추세다. 먹고살기 위해서 현장에 나서는 노년층의 산업안전을 위한 정밀한 대책들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살기 위해 산업전선에 나선 노년에게 일터가 위태로운 죽음길이 돼서는 안 된다. 25일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재작년 산재 사망자 10명 중 6명 이상이 55세 이상 근로자였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보상을 승인한 사망자는 총 2098명으로, 이 가운데 65.8%가 55세 이상 노동자였다. 사망자 중 업무상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827명, 업무상 질병 사망자는 1271명으로 집계됐다. 고령화 속 노동환경의 안전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모면하기 어려운 통계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산재 사망자는 18세 미만 0명, 18∼24세 16명, 25∼29세 32명, 30∼34세 39명, 35∼39세 69명, 40∼44세 153명, 45∼49세 160명, 50∼54세 248명, 55∼59세 274명, 60세 이상 1107명으로 집계됐다. 60세 이상에서 전체 사망자의 절반을 훌쩍 넘는 등 연령이 올라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법적으로 고령 근로자를 5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산업재해 구조가 사실상 고령 근로자 중심의 위험 구조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재 전체를 봐도 고령 근로자의 비율은 절반이 넘었다. 2024년 산재는 14만2771건 발생했는데, 55세 이상 근로자의 산재가 7만4812건(52.4%)인 것으로 집계됐다. 산재 위험이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피해의 무게가 고령층으로 확실하게 쏠리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고령 노동자의 산재나 산재 사망률이 높은 원인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인구 고령화로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는 추세에 기인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령 근로자의 신체적 취약성이 원인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지원으로 작성된 ‘대한민국 고령 근로자의 업무 관련 치명적 부상의 특징’보고서 역시 ‘노동 인구의 고령화는 감각 기능, 균형 감각, 운동 능력의 저하로 인해 산재 발생률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고령 근로자의 사망 재해는 건설업, 단순노무직, 일용직 등 고위험·불안정 고용 분야에 집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구조의 한계로 인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현장에 고령 근로자들을 아예 투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니 불가피한 노릇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와 같은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고령 친화적 작업환경 개선’과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선제적 관리 필요성’을 제안한다. 구체적 방안으로 고령자 취업자를 대상으로 정기 실태조사와 별도 재해 통계를 산출하고 고령 취업자의 노동능력 평가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같은 노령층이라도 신체적인 능력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본인들 마음 같아서는 평생 일해온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신이 있어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능력 평가를 거쳐 안전성을 사전에 확인하도록 하는 게 맞다. 더욱이 산재 사고는 사고유발자 자신 한 사람만이 아닌 다수의 희생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을 특별히 유념해야 한다. 모든 안전사고는 방심이나 자만심에서 시작된다. 노동부는 올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확보, 이중 위험 경보기 설치 등 고령 근로자 친화적 작업환경 개선 비용을 지원하고, 고령 근로자 다수 고용 업종에 작업관리 가이드라인 등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고령 노동자에 대한 관리체계는 더욱더 정밀하게 디자인돼야 한다.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현상이고, 산업 현장 노동자의 고령화는 필연적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터에 나서는 고령 노동자들의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한 시스템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은 단순한 정치 거물의 퇴장을 넘어, 우리 정치사에서 ‘책임’이라는 단어가 지녔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는 언제나 화려한 수사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앞세운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는 때로 고독했고, 자주 오해받았다. 대중의 박수를 받는 쉬운 길보다 국가 운영의 복잡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의 갈등을 구호로 덮지 않았고, 결정하기 어려운 과제를 다음 세대나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단호함은 종종 불편함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국가의 골격을 이루는 제도와 실질적인 변화가 남았다. 정치는 말로 남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교육개혁의 기초를 닦고, 지방분권의 초석을 놓으며, 민주주의를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했던 그의 생애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타협하되 원칙을 팔지 않았고, 유연하되 가벼워지지 않았으며, 강단 있게 행동하되 선동에 기대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긴 빈자리를 향해 질문해야 한다. 정치는 다시 책임의 언어로 돌아갈 수 있는가. 국가의 내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는 여전히 가능한가.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 정책이나 법안이 아니다. 정치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무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다. 그 기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 자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12일, 미국 전쟁부(Departmnet of War)는 미국의 AI 군사 패권을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AI 가속화 전략(AI acceleration strategy)이다. 후방에서 최전방에 이르기까지 AI 도입과 실험을 촉진하여 다른 국가는 넘볼 수 없는, 비대칭적인 군사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AI 가속화 전략은 속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AI를 활용한 새로운 전투 방식을 발견, 테스트, 피드백, 확장하는 전 과정을 빠르게 해치운다. 이를 위해 컴퓨팅 파워, 미군의 군사 작전 데이터, 동맹국과 파트너들의 투자 역량까지 아낌없이 집중한다. 군의 모든 부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인터페이스와 접근 메커니즘을 공개해야 한다. 새로운 AI 기술이 개발되어 군에 도입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연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단축한다. 이 모든 가속화 과정을 방해하는 관료제적 장벽은 ‘식별하고 제거’한다. 전쟁부는 ‘전사의 정신(warrior ethos)’을 가지고 AI 속력전에 임한다는 방침이다. 전사의 정신이라니 거창해 보이지만, 그 내용은 최신의 AI 도입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일 뿐이다. 방해 요소가 있다면 전시에 그러하듯 가차 없이 제거한다. 데이터 공유를 막는 개인정보보호,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을 내세우는 책임 있는 AI와 같은 ‘유토피아적 이상주의’ 등이 속력전의 방해 요소다. 법적 타당성을 따지는 관료제의 관성적 태도 역시 빠질 수 없다. 전시 상황에서 AI의 위험성에 관한 문제 제기는 불필요하다. AI 가속화 전략에서 미국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전쟁이 무엇인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전쟁은 국익을 위한 것이므로, 군은 그저 적을 압도하는 효율적인 살상력을 보유하면 된다. AI 가속화 전략은 전쟁을 내세워 책임 있는 AI 논의를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로 억누른다. AI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쟁의 정의와 책임을 따지는 질문들과의 경합에서 속력은 언제나 승리한다. 전쟁부에게 속력은 곧 승리이기 때문이다. 군을 첨단 무기고 정도로 바라보는 이 관점은 AI를 도입한 전 세계의 전쟁들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이스라엘 군이 AI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민간인 사망자 수가 늘어났다는 보도들은 전장이 어떻게 빅테크 자본의 실험실이 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자지구를 상대로 ‘실험’을 거친 AI 군사 무기는 검증된 살상 무기로서 세계 시장에서 판매된다. AI 가속화 전략은 미국 역시 첨단 살상 무기 실험에 앞장서겠다는 선언이다. 속력을 공공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전쟁부의 논리 속에서 논의와 점검, 숙의의 관행은 무가치할 뿐 아니라 미국의 억지력을 약화하는 부정적 요소가 되어버렸다. AI가 전쟁에서 가져올 산출물, 결과는 안중에 없고 오직 최신 모델의 빠른 투입만이 중요해진다. 혼란스러운 가속주의를 틈타 실리콘밸리는 국가 안보라는 거대한 명분 뒤에 숨어 부를 쌓을 패스트트랙을 손에 넣었다. 가치와 윤리를 속력과 바꾼 이 위태로운 시스템이 오늘날 미국이 선택한 안보의 민낯이다.
오늘의 우리 시대를 지칭하는 말 가운데 80년을 한결같이 통용되는 것은 '분단시대'란 어휘다. 1945년 광복 이래 남북 분단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까닭에서다. 이를 역사의 문맥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너무 오래되고 익숙하여 별반 감응이 없다. 그래서 문학이고 또 분단문학이다. 사람들이 살아온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주면서, 그것을 나 자신의 문제로 체감하게 하는 데 문학의 힘이 있다. 우리 문학에서 이 대목에 탁월한 성취와 공명(共鳴)을 촉발한 작가가 전상국 선생이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 학교에서 만들던 '문리학총'의 편집 때문이었고, 선배 문인에의 청탁으로 '동포여'라는 콩트를 받으면서였다. 어린 눈에도 참 좋다는 생각, 틀림없이 대 작가가 될 것이란 외람된 생각을 했다. 당시 경희고등학교 교사로 있던 선생은, 일련의 분단소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단번에 동시대의 주요 작가로 떠올랐다.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선생은 만학(晩學)으로 대학원을 왔고 석사과정을 같이 다녔으며 이후 강원대 교수로 갔다. 그 사이에 얽힌 선생과의 추억들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작가로서 한 시대의 중심을 관통한 선생은, 춘천 인근 실레마을에 김유정문학촌을 설립했고 지금은 예술원 회원으로 있다. 우리 문학의 천장을 친 그의 분단소설들이 여전히 감동과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 엄중한 과제가 변함없이 민족적 숙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전상국의 소설이 그 발화로부터 시대 현실을 향해 내뿜는 눈길은 사뭇 삼엄하고 날카롭다. 그는 어린 시절에 전쟁을 체험한 화자의 세계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 전쟁이 지금 우리에게 남긴 질긴 상처의 그루터기를 빠른 속도감으로 훑어나간다.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을 그처럼 정확하고 깊이 있게 짚어낸 작가는 드물다. '아베의 가족'이나 '여름의 껍질' 등의 작품이 그에 대한 탁발한 증명이다. 그러나 그의 궁극적 속내는, 그러한 비판과 갈등의 벼랑에 서는 소설의 제작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위기의 강을 넘어 화해의 평원을 바라본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 속 '고향'은 정동적 화해의 바탕이요, 소설 속 모든 균열의 자리는 그것의 치유를 위해 있다. 그의 소설이 생산하는 감동은 마침내 그렇게 부드럽게 감싸는 손길의 다른 이름이다. 어린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상황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그것이 하나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소설적 성과로 확립되기까지, 선생의 삶은 늘 영일이 없었고 심리적인 억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과의 갈등 또는 길항을 나타내는 문제의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분단시대 문학에 한 획을 그은 그 작품들을 면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아서 이제 팔순 중반에 이른 선생의 삶과 문학이, 여전히 작품을 쓰고 있는 현역 작가로서 우리 문학사를 행복하게 하는 더 뜻깊은 소설들을 생산해주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그 작품세계가 이 각박한 분단시대를 넘어서는 길에 선명한 이정표이자 푸른 신호등이 되었으면 한다.
최근 용인반도체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와 용인시민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지난해 12월 26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분량이어서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 기업이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한 사람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었다. ‘용인 반도체 산단의 이전’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발언 이후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지역과 정치권의 갈등, 반도체 관련 업계의 우려도 발생했다. 이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김 장관의 발언은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과 지산지소형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현실성 없는 이전론이 거론되면서 불필요한 혼란이 일었다. 김 장관의 발언 전에도 용인 국가산단·클로스터를 새만금에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라북도 국회의원과 도의회, 시·군의회, 시민·농민단체 등이 RE100 산단과 연계해 새만금으로 반도체 관련 시설을 분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한 전북지역 국회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 수급과 송전망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새만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맞서 용인지역 정치권과 용인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민주당 용인 국회의원들과 도의원들은 “현실성 없는 이전론이 거론되면서 불필요한 혼란을 키우고 있다”며 이전 주장을 즉각 중단하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대통령과 총리가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 대통령이 도지사 시절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뚫고 유치한 역작”이라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상 추진하고, 남부권은 재생에너지·인공지능(AI) 기반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립해야한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가 이미 방침으로 정해 결정해 둔 것이라며 “지금 와서 뒤집을 수 있느냐”고 밝혔다. 이전 할 수 없다는 확답이라고 봐도 된다. 그리고 경기도는 그동안 논란의 핵심이었던 전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22일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도로-전력망 공동건설 협력체계 구축 협약’을 맺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반도체 산업은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전제한 뒤 “오늘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전력망을 구축하는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경기신문 23일자 2면, ‘‘도로 하부 지중화’로 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난 해소한다’) 도와 한전이 밝힌 대안은 용인·이천의 27.02km 구간에 새로 건설하는 ‘지방도 318호선’(신설+확장도로)땅 밑으로 전력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도가 이 도로의 상부 포장과 용지확보를 담당하고, 한전은 도로 하부에 전력망을 구축하는 공사를 시행한다. 도는 “도로 건설과 전력망 설치를 ‘동시 추진’하는, ‘길이 이어질 때, 전력도 함께 흐르는’ 국내 첫 모델”이라고 밝힌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운영에 필요한 전기설비 용량은 15GW다. SK하이닉스 주도하는 일반산단 6GW, 삼성전자 주도 국가산단 9GW다. 현재 국가산단 9GW 중 대략 6GW 정도, 일반산단은 3GW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나머지 3GW가 부족하다. 이란 상황에서 도의 계획대로 지방도 318호선 공사가 완료되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가운데 일반산단의 전력망 확보가 가능하다. 사업이 신설도로 지중화 방식으로 추진되면 전력문제가 해소됨은 물론 ▲중복 굴착 ▲교통 혼잡 ▲소음·분진 등의 문제도 줄일 수 있다. 당연히 공사 기간과 예산도 크게 아낄 수 있다. 전력문제를 해결하는 가시적인 방안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