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栗谷 李珥. 1536-1584)는 퇴계 이황(1502-1571)과 성리학자로 쌍벽을 이루는 학자였다. 게다가 조선최고의 행정가이고 '언론가'였다. 천재였다.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은 그의 별명이다. 각종 과거시험에서 아홉 차례나 장원을 했기 때문이다. 13세 나이에 진사 초시에 1등으로 합격했다. 29세에 공직을 시작했다. 그 후 49세에 세상뜨기 전까지 그의 업적들은 하나같이 위대하다. 조선을 개혁하기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제안했다. 대동법실시, 10만 양병설 등을 주장하며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에 직을 걸고 일했다. 명종 때(1545-1567) 정계입문했지만, 주로 선조 때(1567-1608) 큰일을 많이 했다. 임금에게 9차례나 사표를 던졌다. 자신의 몸을 갈아넣어 만든 개혁안을 선조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로로 몸이 상하여 요양을 반복해야 했다. 그는 호조(재무), 이조(인사), 병조(병역) 등 세 차례의 판서를 역임했고, 판서가 되기 전에는 대사헌(감사원장) 우찬성(국정상황실장에 가까운 직책) 등 최고 요직을 두루 거쳤다. 율곡은 어느 자리에 가든 개혁정치가로서 임금에게 거침없는 발언을 하며, 나라의 안위와 민생의 수준을 높이는 일에 헌신했다. 공직생활 동안 59회나 상소(上疏)를 했다. 그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그가 쉰 살 되기 전에 작고한 것은 나쁜 임금을 모시며 피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와 과로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임철순(전 한국일보 주필)의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이라는 책을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장관이든 총리든 고위관료들이 최고수반 앞에서 예의바르고 점잖고 과묵한 것이 결코 미덕일 수 없겠다는, 실은 악덕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임금이든 대통령이든 사실상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크고 작은 결점과 약점이 있는 자들인데, 그들의 최종 의사결정은 나라의 존망과 씨알들의 삶의 질은 물론 생사의 문제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준다. 율곡의 정론직필(正論直筆)은 구국안민(救國安民)이 목적이었다. 윤석열은 비민주 전근대 반문명적 인간이다. 생각은 더럽고 흉포했다. 무능 무책임 무도한 자로서, 악마의 리더십을 총칼처럼 휘두르다가 파면되었다. 선조를 많이 닮았다. 그렇게 저열한 왕초 밑에서 뛰는 조폭들은 '곤조'가 비범한 어린 중고생 1진들에게 수시로 코피 터지고 갈비뼈 나가기 일쑤다. 당장, 현직 경제부총리가 돈벌이로 미국국채에 투자하고, 검찰총장은 딸을 좋은 공직에 불법취업시킨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데도 태연하다. 둘만이 아니다. 새 정부의 요직에 앉게 될 사람들은 임금에게 직을 걸고 목숨 걸어 직언했던 율곡의 반의 반이라도 할 수 있기 바란다. 장관된 걸 큰 은혜로 여겨 '깍두기'처럼 굴지 말라. 율곡이 임진왜란 10여년 전 올린 상소문의 한 문장이다. 시공을 초월한 교훈이다. "백성들은 이미 원기(元氣)를 잃었고, 10년 안에 화란(禍亂.재앙)이 일어나면 더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선조의 무능과 무책임, 무방비를 이렇게 직격했다. 율곡은 사표를 던지고 나가서는 대장간을 운영해서 쌀독을 간신히 유지했다. 움막집도 절친 성리학자 성혼(成渾.1535-1598)이 보내준 건자재로 어렵게 지었다. 공직자는 국민세금으로 평생을 호의호식한다. 그 이상 뭣이 더 필요한가. 내가 너무나 순진한가.
한국어 공적 문서는 오랫동안 문체적 관습을 반복했다. 과도한 한자어, 지나치게 긴 복문은 정보의 전달보다 형식의 유지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독자의 이해보다 문서의 권위를, 관계 맺기보다 절차적 안정감을 우선시하는 구조 안에서 글쓰기는 일방적인 통보의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글은 말하는 주체가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는 형식이다. 글의 구조와 문체, 어휘의 선택과 판단의 방식은 그 자체로 세계에 대한 태도이며 공공 글쓰기가 작동하는 윤리적 기반이다. 2024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문은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문도 법률 문서로서의 완성도는 높다. 정제된 논리, 조문과 사실의 정확한 병렬,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강조는 공적 판단의 문서가 지녀야 할 미덕을 충실히 수행한다. 다만 ‘말을 건다’기보다 ‘정리’한다. 문장은 독자를 향해 다가가기보다 정보를 가지런히 배치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관계를 열어두기보다는 서술을 마무리하고 있으며, 말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을 것인지에 대한 고찰보다는 판단을 오류 없이 나열할 책임이 앞선다. 이와 달리 2024년 선고문은 문장 하나하나가 관계를 전제하여 어휘의 강도와 문장 내부의 균형이 조율되어 있다. “피청구인은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어야 합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법리 해석이 아니다. 정치적 태도, 헌법 질서에 대한 해석,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한 문장 안에서 겹쳐 흐르며 어느 하나도 다른 층위를 침범하지 않는다. 복잡한 판단을 한 문장 안에서 정리하면서도 독자의 사고를 통제하지 않는 이 같은 구조는, 글이 참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공 언어의 이상에 다가선다. 전문 용어의 사용 역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 법률 문서에서 개념어와 조항 인용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문장의 온도와 태도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6년 선고문은 많은 조문과 증거 사실을 나열하며 정보의 양 자체로 판단을 구성한다. 반면 2024년 선고문의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국정 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적·제도적·사법적 수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 병력을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을 보면, 개념어를 설명하지 않아도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논점이 문장 속에서 흩어지지 않는다. 말이 정확하되 과시하지 않고 전문성을 유지하되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선고문에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지점이 존재한다. 바로 결론을 끝으로 미루는 미괄식 구성이다. 이 방식은 정보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사유의 주도권을 글쓴이에게 남긴다. 공공의 판단이 중요한 문서일수록 글의 방향과 핵심 내용을 문장 앞부분에 제시하는 구성이 독자의 이해와 신뢰를 높인다. 두괄식은 문체의 선택이 아니라 독자가 판단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구성의 윤리다. 독자가 글 앞부분에서 논점과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면 글과 판단 모두에 대한 신뢰는 더욱 강화된다. 오늘날 한국어 글쓰기는 문장의 형식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사실, 그리고 글의 구조 자체가 하나의 태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공 문서의 문장이 권위로 말하지 않고 책임으로 말할 때 독자는, 시민은 참여할 수 있다. 2024헌나8 선고문은 공적 글쓰기가 정제된 형식을 지니면서도 사려 깊고 정직하게 소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민주주의는 말과 글의 나눔이다. 한국어 글쓰기는 이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받아들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으로 시작된 ‘장미 대선’ 정국 속에서 개헌론 바람이 거세다. 맨 앞에서 개헌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치인은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우 의장은 조기 대선에서의 동시투표를 제안했다. 개헌을 통한 낡은 87체제 극복은 이 나라의 해묵은 과제다. 우 의장의 뜻대로 6월 대선 동시투표 실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일단 ‘개헌’은 이제 더 미뤄서는 안 될 국가적 현안이다. 어떻게든 가시화할 필요성이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6일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통령 임기 초에는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까 주저하고, 임기 후반에는 레임덕으로 추진 동력이 사라진다. 이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물꼬를 터야 한다”며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개헌 성사를 위해 국회 각 정당에 개헌투표를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과 ‘국회 헌법개정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이어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재외국민 투표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며 “촉박하지만, 이미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이번에 반드시 개헌하자는 의지만 있으면 시한을 넘기지 않을 수 있고, 논의를 서둘러줄 것을 각 정당에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에선 대선 후보 경선 출마가 예상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김두관 전 의원이 우 의장 제안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당내 정청래, 이인영 의원 등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그동안 관련 언급을 피하던 이재명 대표도 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면서 우 의장의 제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다만 이 대표는 “각 대선 후보들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대선이 끝난 후에 최대한 신속하게 개헌을 그 공약대로 하면 될 것 같다”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우리가 ‘개헌보다 헌정 파괴 심판이 우선’이라고 할 경우 자칫 ‘반개헌 세력’으로 내몰리고, 헌정 파괴 세력이 오히려 적극 개헌 세력이 되는 것”이라며 마냥 반대하기도 만만치 않은 복잡한 사정을 시사했다. 지난 2월 당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꾸리며 개헌론에 불을 지펴온 국민의힘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에 동참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우리 당 인원은 원내대표가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없는 극한대결 정치와 정치 양극화의 질곡이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헌법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대두돼왔다. 지금 체제에는 국가적 위기를 부를 위험이 상존하는 게 사실이다. 권력 구조 개편, 양당 구도를 고착화한 소선거구제는 물론이고 개헌절차법 개정, 경제·사회적 국민 기본권 확대 등 개헌과 입법 과제는 충분히 도출돼 있다. 의지만 모을 수 있다면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이 무리가 아니라는 견해도 상당하다. 정치적 이벤트가 있을 적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해 정치적 유불리 때문에 시끌벅적 요란만 떨다가 무한정 미뤄온 세월이 대체 얼마인가. 개헌 논의만큼은 소아병적인 당리당략의 마수를 멀리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거시적인 안목과 시각으로 철저한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 합의를 창출해내야 한다. 공복들에게는 무엇인가를 해서 짓는 해악보다도, 제때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짓는 죄가 더 큰 경우가 있다. 지금 개헌이 딱 그 지점이다. 설사 우 의장의 제안대로 6월 대선에서 동시투표가 가능하지 않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최소한 개헌 단행의 시점을 정하여 합의된 공약으로 명토 박는 게 옳다. 지금처럼 소리(小利)에 취하여 나라를 망치는 극한대결의 정치를 미래세대에 또 넘겨줄 참인가. 부뚜막에 놓은 아무리 좋은 소금도 제때에 음식에 집어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우리의 겨울은 과연 봄이 오기는 할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너무 혹독했다. 그러나 봄이 오긴 왔나보다. 겨울을 이겨내고 마른 가지마다 연한 녹색의 새순이 돋아나고 벚꽃 꽃망울이 터지려고 한다. 벤치에 앉아서 아파트 놀이터에 나와서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을 보니 이게 바로 봄이구나 싶다. 한 아이와 엄마가 시소를 타고 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리듬감이 보는 나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시소타는 모습을 한참 보고있자니 아,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헌법처럼 너무나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시소타기를 시작하는 순간 나의 의무는 앞에 앉은 이를 높여주는 것이고, 나의 권리는 앞에 앉은 이로 인하여 내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시소를 재미있게 타려면 대충하지 말고 내 몸무게를 실어 내 있는 힘을 다해서 상대방을 높여줘야 한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들은 남을 높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칭찬할 일이 있을 때에도 그다지 상대방을 높여주지 못한다. 상대방을 높여주었을 때에 나 또한 내 앞의 상대로 인해 높아질 수 있는 것인데. 높이 올랐을 때의 환희, 상쾌함, 짜릿함은 누구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누구나 거기서 머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면 시소타기는 불가능해진다. 높이 올라서도 우리는 욕심의 키를 낮추고 서슴없이 낮아질 줄 아는 나의 여유가 상대방에게 넓은 웃음을 주고 서로의 근심의 무게를 가뿐하게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삶이 있다. 근심의 무게가 다르고 가진 것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 몸무게가 가벼운 아이를 위하여 엄마는 아이 쪽으로 더 가까이 가서 앉아서 몸무게를 맞추고 시소를 타고 있는 모습에서 세상의 약자와 강자가 함께 어울려 재미있게 사는 비결을 발견했다. 바로 강자가 약자 쪽으로, 그러니까 무게중심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지 한탄스러웠다. 언제나 강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굳건히 앉아있고 약자들을 자신의 발밑에 두려고 하니 이 사회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삐그덕거린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시소타기와 같이 밸런스가 중요하다. 상대방이 없으면 나 혼자서 시소를 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너무 어렵다. 내 앞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서 힘과 위치를 조절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나를 상대방에게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다. 한참 재미있게 놀던 아이와 엄마가 시소에서 내려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언젠가 우리의 인생 시소에서 내릴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자신의 힘만 과시하면서 요지부동이었던 이의 인생은 과연 즐겁고 보람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높아지기 참 어려운 세상을, 혼자서는 낮아져도 기쁘지 않은 세상을, 우리가 마주앉은 시작부터 삶의 마지막 자리까지 이렇게 높이며 낮아지며 쿵쿵 쿵덕쿵 기쁨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봄, 그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대한민국, 지금까지 상대를 높이지 못해 언제나 부조화만 보였던 이들도 시소 한번 타보고 인생을 그렇게 재미있고 가치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권일송 시인은 1981년 1월 1일 어느 신문에 '목숨의 노래'라는 시를 발표했다. ‘ㅡ 병든 세월일랑 한 칼에 잘라내어/ 일렁이는 불씨의 아침을 맞는/ 전라도 쟁기꾼들이여…’라고. 그 시를 읽고 남녘의 농부들을 생각했다. ‘쟁기꾼들이여!’라는 시행이 머릿속에 강하게 입력되었다. 나는 농부의 아들 쟁기꾼 자손으로 이 땅에 왔다. 죽는 순간까지도 이 진실과 운명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고 싶지 않았다. 착한 농군(農軍)의 아들이란 자존심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운명의 길에서 몸부림칠지언정 원망 없이 가자고 마음 다잡았다. 그랬는데 내 나이 젊음에서 멀어지다 보니 조금 흔들리고 있다. 세상이 기계화와 경제에 치중되다 보니 쟁기꾼은 가라 경운기가 왔다. 아니 경운기도 꺼져라 트랙터가 왔다. ‘너도 가라 AI가 농사고 뭐고 다 할 것이다’는 세상 속에 갇히고 말았다. 젊어서의 일이다. 사는 게 힘들고 비위가 상하면 전라선 완행열차를 타고 여수 순천 쪽으로 떠났다. 완행열차 안 사람들은 소박하고 순진했다. 잘 살지는 못해도 자기 삶을 원망하지 않았다. 착한 쟁기꾼 후손으로 고단해 보여도 누구를 탓하지 않고 살아가는 백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섬진강 따라 서서히 달려가는 느림보 기차의 걸음은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창 밖 풍경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착하고 복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산이요 강이요 들녘이었다. 3월에는 교회에서 원로 분을 모시고 안 박사와 윤 회장이 운전하면서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찾아갔다. 평사리의 최참판 댁은 서희와 길상이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곳이다. 영화 ‘토지’는 김수용 감독, 김지미 이순재 김희라 허장강이 출연한 1974년 작품이다. 최참판 댁 외양간에는 큼직한 암소가 있었다. 꼭 실물 같은 암소요 송아지였다. 순하게 생긴 암소가 서서 머리를 디밀고 있는 형상이 보기에 좋았다. 그곳을 지나 뒷길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는데 소 울음소리가 제법 들을 맛이었다. 발길 멈추고 고개 돌려 소 있는 곳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박경리 선생은 박완서 작가가 의과대학 다니던 아들을 잃고 밥도 못 먹고 있을 때 원주로 불러서 ‘밥을 안 먹으면 죽는다’고 입을 쥐어박으며 기어이 밥을 먹도록 했다고 한다. 선생은 1946년 결혼하여 50년, 6·25 사변 때 남편과 사별한 입장이었다. 그런 그는 언젠가 그랬다. ‘아들 낳고 딸 낳고 남편 뒷바라지와 살림에 매달리면서 언제 글을 쓸 수 있겠느냐’고. 홀로 살아가면서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전념했다는 뜻이었다. 2008년 어린이날 돌아가신 그는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로 원주에서 진주여고로 운구차가 이동하는데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조문객 행렬이 당시의 화제 중 화제였다. 사위인 김지하 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한국인의 어머니요 작가로서 문학적 큰 영혼의 소유자이었기에 가능한 일었을 것이다. 딸 김영주는 2008년 6월 15일 '버리고 갈 것 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선생의 유고 시집을 내며, 서문에서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고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면서 남기신 39편의 시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고 했다. 나는 수필문학 강의를 할 때마다 이 시집 속 '옛날의 그 집'이란 시 중 마지막의 “모진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진안군 백운면 신원리 팔공산 ‘데미샘’은 섬진강의 발원지로써 광양만 바다까지 500여 리를 남쪽으로 흐른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살찌우고 있다. 3월의 그날 최참판 댁 옆 박경리 선생 문학관 앞에서 작달막한 체구에 안경을 걸치고 책을 펴 들고 서 있는 그의 동상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문학관에서는 선생의 체취며 영혼을 대하듯 살펴보았다. 점심은 하동읍 신기에서 먹었다. 그때 나는 창 밖 나뭇가지에서 매화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식사가 끝난 뒤 일행은 화개장터로 향했다. 그 순간 바라보던 섬진강은 맑고 여리시 푸르렀다. 강물은 내게 말했다. ‘강은 흘러 바다로 가고, 인생은 마침내 죽음으로 가는 것. 물이 그릇을 따르듯 살라고, 그러나 움트기 직전 나무처럼 온몸으로 밀어 올리는 힘을 잊지 말라고.
사필귀정이다. 헌법재판소가 4일 황당한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전원일치 인용했다. 윤 대통령은 파면됐다. 지난해 12월 3일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전격 선포했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맞았을 때 헌법에 따라 선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적과 교전 상태여서 군사상으로 필요하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만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는 “거대 야당의 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이 마비됐으며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즉 민주당의 입법 독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야당을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으며 국회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라고 규정했다.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했다. 정치인을 체포하고, 국회를 무력화시키겠다는 뜻이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 계엄사 통제 ▲파업, 태업, 집회행위 금지 등이다. ‘처단’ 대상도 있었다. ▲의료현장 이탈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하겠다는 내용이다. 말 안 들으면 의사들도 처단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엄포다. 포고령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해 처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극심한 혼란상황에 빠졌다. 정치는 물론이고 서민 경제는 비상 상황에 처해 있다. 국제 신인도와 국격까지 추락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론이 분열되어 국민들이 탄핵 찬성과 반대를 외치며 대립하게 됐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뛰쳐나왔고 일부는 서로를 향한 원망와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살벌하게 대치했다. 극렬분자들은 법원을 습격해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그동안 독재에 맞서 피 흘리며 이뤄놓은 민주주의가 위협당하는 장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남북 분단에 이어 여야, 동서, 빈부, 노소, 남녀 간의 갈등 등 사회 곳곳에서 분단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대한민국은 역사, 문화, 경제, 안보와 국민 의식 수준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세계 10대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국민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선택했고, 고난의 역사를 극복하며 이룩해 온 민주주의에 대한 드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수많은 대립 속에서도 법과 원칙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비상계엄령 선포로 후퇴했다고 탄식한 바 있다. 특히 전기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적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분노·갈등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한 유튜버는 ”만약 그게(탄핵 기각) 안 되면 몇몇 죽이고, 분신자살 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계획했고 실현 가능하다” “이미 목숨 걸었고 아깝지 않다”는 말도 덧붙여 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퇴행시킬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격을 훼손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극단적 혼란과 분열을 부추기지 말고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한다. 일부 종교인들의 살기 섞인 선동도 이젠 중단돼야 한다. 지난 3월 5일 7대 종단 대표로 구성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최후의 보루로서 모두는 그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국가적 위기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 국민, 정부, 정치권이 이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4월 4일 오전 11시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한다. 그동안 헌법재판소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온갖 지라시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데, 그 지라시 속 주장들은 대체로 근거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내부에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애초에 민주당은 이번 계엄 사태가 명확하고 간단한 사안이므로 탄핵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였지만, 선고 시점이 4월 4일까지 늦춰진 것을 보면, 헌재 내부에서 뭔가가 있었다고 추론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라시에서 등장하는 ‘5:3 기각설’을 단순한 가짜뉴스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5:3 기각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각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4:4의 의견 분포라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4:4라면 마은혁 후보자가 임명되든 그렇지 않든, 기각은 확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6:2로 탄핵 인용이 확실한 상황이라도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은혁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합류가 인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5:3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서 선고가 내려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경우 마은혁 후보자의 임명 여부가 대통령 탄핵의 가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마은혁 후보자가 임명된다면 5:3은 6:3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윤 대통령의 탄핵은 인용된다. 헌법재판소가 고민했을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일 수 있다. 만약 헌재가 5:3으로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게 되면, 이러한 결정은 위헌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이 마은혁 후보자의 임명을 지연시켜 헌재 결정을 오염시켰다고 주장하며, 해당 헌법재판소 결정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덕수 권한 대행의 위헌적 행위로 인해 발생한 헌재 결정은 무효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논란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헌법재판관들의 이념 성향이 다르더라도, 같은 기관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정치권이 헌재 결정을 두고 ‘정당성’을 문제 삼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사안이다. 이러한 이유로 헌법재판관들은 5:3 구조를 4:4로 만들거나 6:2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재판관 1명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4월 4일 선고 기일이 잡혔다는 것은 5:3 구도가 6:2 또는 4:4로 정리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제 곧 결과가 발표될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이번 사안이 대한민국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지길 바란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탄핵 심판 결과에 대한 승복 여부는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윤 대통령이 승복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서울과 경기지역의 아파트 등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전세값 역시 하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부동산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2년 전보다 전세보증금이 내린 아파트는 38.6%이고 분기별 전세보증금의 하락폭 역시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주거비 부담이 경감되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임대인의 자금 여력에 따라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지는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임대인은 임대차가 종료되면 임차인이 이사를 나갈 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와야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게 됩니다. 따라서 임대차 기간의 만료를 앞두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계획하는 세입자들의 걱정이 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보통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받아서 이사가는 집의 잔금을 치를 계획을 세우는데, 집주인이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다면 세입자에는 곤란한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또는 임대차기간의 50%가 지나기 전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SGI서울보증보험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보증보험에 가입하기 위하여 임대인의 동의가 필요하였지만 이제는 임대인의 동의없이도 가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쉽게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을 하지 않았거나 할 수 없다면, 집주인에게 1개월 전까지 임대차계약을 갱신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가급적 여유 있게 3개월 이전에는 집주인에게 이야기를 하여 보증금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삿날이 다가옴에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못돌려 준다고 하는 경우에는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여야 합니다. 통상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해 확정일자를 받게 되는데, 확정일자는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옮기게 되면 그 효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특히 새로 이사 가는 집의 보증금을 보호하기 위해 확정일자를 받으려면 전입신고가 필수적이므로 이 경우 곤란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럴 때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게 되면 해당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에 임차권과 관련된 사항이 등기가 되어 새로운 주소지에 전입신고를 하더라도 보증금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차권등기명령은 법원에 이를 신청을 하는 별도의 절차가 거쳐야 하기 때문에 통상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만약 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 일단 집에 최소한의 짐을 남겨두고 집주인에게 점유를 넘기지 않은 채 이사를 하고, 이사 간 주소로 전입신고를 하는 것도 잠시 미루어두어야 합니다. 만약 전입신고를 하여 주민등록상의 주소지가 이전되면 기존의 확정일자에 기한 우선변제력이 인정되지 않아 보증금이 보호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임시적인 방법에 불과하므로 보증금의 반환이 지연될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신속하게 임차권등기명령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성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 중 절반이 집행유예에 그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이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2019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공론화됐고, 이후 꾸준히 증가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드러난 피해의 수십 배는 될 것으로 유추되는 이 독버섯 범죄는 반드시, 그리고 신속히 제거돼야 한다. 철저한 예방과 강력 처벌, 유효한 교화대책만이 그 해답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연구 2025년 1호’에 실린 ‘딥페이크 성범죄 실태’ 논문에 따르면 2020년 6월 25일부터 지난해 10월 15일까지 전국 법원의 1심 판결문 152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 159명 중 절반에 가까운 47.17%(75명)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실형은 42.77%(68명), 벌금형은 6.92%(11명)로 집계됐으며, 무죄나 선고 유예는 3.14%(5명)였다. 집행유예 사유로는 ‘초범’(69명)과 ‘동종 전과 없음’이 주로 고려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는 152건 중 98.7%(150건)가 여성으로, 남성 피해자는 단 2건에 그쳤다. 가해자는 총 159명으로, 이 중 15.09%(24명)가 미성년이었다. 지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40.25%(64명)로 가장 많았고, 연예인은 25.78%(41명)였다. 특히 친밀한 관계(전 애인·애인) 피해자는 6.92%(11명), 아동·청소년 연예인은 5.66%(9명)으로 집계됐다. 연예인 피해자는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유포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의 88.68%(141명)는 성폭력처벌법을 적용받았고, 청소년성보호법(44.65%), 정보통신망법(35.22%) 등이 뒤를 이었다. 실형 선고 시 형량은 6개월에서 12년까지 다양했으며, 벌금형은 1000만 원 미만 수준이었다. 지난 2019년 ‘N번방 사건’ 직후 우리 국가사회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엄청난 후유증과 함께 백가쟁명식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목사방 사건’ 등 새로운 형태로 범죄행위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AI와 생성형 챗봇(ChatGPT 등)의 발전으로 딥페이크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다. 전문가만이 가능했던 영상 합성 기술이 이제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하나로도 쉽게 구현된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682명 중 10대 이상이 무려 80%에 달했다. 청소년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단순한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경우가 많다. 신속한 피해물 삭제와 법적 대응을 선도할 정부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의 운영을 내실화하는 작업부터 단행해야 한다. 관련 예산이 삭감, 감소, 동결된 상태라는 건 중대한 문제다.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도 디성센터를 설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만큼 각 지자체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수사기관의 전문성 강화, 관련 법률 개정 등도 병행돼야 한다.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및 교화를 강화하는 일 또한 대단히 중요한 개선책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폐해가 너무나 참혹하다. 피해자들은 평생 씻지 못할 수치심과 억울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는 명백한 범죄이며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깨우치는 일이 시급하다. 아이들의 범죄라고 사법부가 느슨하게 대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엄중히 되돌아볼 일이다. 장난으로 던진 돌이라도 개구리가 잘못 맞으면 죽는다.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엇나가는 아이들이 바른길을 찾도록 해주어야 한다.
얼마 전 서울시가 40대의 취업 지원을 위한 ‘40대 직업캠프 취업과정’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시는 40대 직업캠프를 “N잡과 취‧창업을 고민하는 40대 서울시민을 위한 직업전환 유망분야 직업교육훈련을 지원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40대부터 시작되는 부양 부담과 조기 퇴직, 노후 준비 등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시가 국내 최초로 맞춤 정책 지원을 시작한다는 야심찬 설명도 덧붙였다. 일단 내용은 차지하더라도, 40대를 지원한다는 것 자체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솔직히 대한민국 40대는 어쩜 이리 운이 없나 싶을 정도로 정부의 혜택을 요리조리 빗겨간 비운의 세대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은 학창시절 급식이 없었다.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는 어머니들은 빠듯한 살림에 두 세명 자녀의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치열한 아침을 보내야 했다. 그들이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첫 발을 내밀 때엔 우리나라에 IMF 사태라는 혹한기가 들이닥쳤다. 거의 매일 두 집 건너 한 집당 아버지들의 실업 소식이 들렸다. 실직한 아버지를 둔 자녀는 대학 입학을 포기하기도 했다. 지금은 국가장학금 제도라는 든든한 학비 지원 시스템이 있지만, 당시엔 그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이따금씩 두 명 이상의 대학생이 있는 집에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거나 두 명이 번갈아가며 휴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자금 대출이 있었지만 이자는 비쌌다. 지금은 1%대의 저금리이지만 당시는 대략 7%에 달했던 걸로 기억한다. 혹여 학자금 대출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업에도 지장이 있었다. 그런 힘든 시절을 보내고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중심 세대가 된 40대는 지금도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고 있다. 퇴직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평생 직장은 사라졌다. 만 39세 이하까지는 ‘청년’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정부 지원이 있지만, 얄궂게도 40대에겐 그런 혜택이 없다. 따지고 보면 40대나 청년 세대나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그 몇 년의 시간 차가 두 세대를 너무나 멀리 갈라놓았다. 40대들 사이에선 ‘세금은 제일 많이 내지만 지원은 전무한 불행한 세대’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동생들과의 차별도 서러운데, ‘중장년 지원’ 정책에서도 40대는 외면받고 있다. 요즘은 그나마 40대가 해당하는 정책들도 간혹 보이지만, 아직까지 중장년층 지원의 중심은 50대다. 동생에게도 형님에게도 모두 밀린 40대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디에 의지를 해야할지 막막할 뿐이다. 40대가 힘겹다는 사실은 최근 통계청의 한 조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일자리 행정통계 임금근로자 부채 조사’ 결과, 2023년 말 기준 임금근로자의 평균 대출은 5150만원이었고, 연령별로는 40대의 대출이 779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이 청년층인 30대(6979만원), 장년층인 50대(5993만원) 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서울시의 정책은 40대의 설움을 알아봐준 것 같아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이 일을 계기로 정부가 40대의 어려움을 좀더 세심히 살피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