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이날 까지도 미국과 일본은 워싱턴에서 평화협상을 벌이고 있던 와중이었다. 일본의 남방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자산을 동결하고 석유금수조치를 내리자 이를 둘러싼 협상이 수개월째 진행 중이었다. 결국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결정했다. 노무라 기치사부로 주미일본대사가 대미통첩각서(선전포고문)를 들고 미 국무장관 코델 헐에게 찾아갔을 때가 오후 2시. 이 시각은 하와이 기준으로 8시 50분. 헐 장관이 이미 1시간 전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들은 뒤였다. 잠시 후 제국해군은 ‘기습에 성공하였음’을 알리는 암호 ‘도라 도라 도라(トラトラトラ)’를 타전한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사건은 국제 정치에서 '선전포고 없는 기습'의 대명사로 꼽힌다. 미국은 이를 "비겁하고 야비한 기습"으로 규정했다. 이는 중립을 지키던 미국 여론을 폭발시켜 제2차 세계대전에 전면적으로 참전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26년 2월 6일, 이란과 미국은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서 핵 협상을 가졌다. 2월 25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제네바에서의 회담 재개를 앞두고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미국과의 역사적인 합의가 ‘손에 닿을 거리’에 있다”고 밝혔다. 아라그치는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이란의 입장이 "수정처럼 명확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2월 27일,협상을 중재한 오만의 바드르 알부사이디 외무장관은 “돌파구가 마련되었으며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더 이상 비축하지 않고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완전한 사찰을 받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3시 38분 에어포스원에서 트럼프는 ‘에픽퓨리작전’의 개시를 명령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폭기, 미사일, 드론이 2월 28일 오전 1시 15분 이란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그의 측근, 일가족은 폭사했다. 이란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진주만에서 뭘 배웠을까? 미국의 폭주 앞에 세계가 떨고 있다. 늘 상대를 협박해 협상장으로 불러들이곤 뒤로 기습한다. 방법도 상대국의 최고지도자를 납치하거나 몰살시켜버리는 식으로 악랄하고 야만적이다. 감히 말하건데 세계사적으로 이렇게 비겁하고 야비한 패권국은 없었다. ‘좋게 말할 때 그린란드를 넘기라’고 하더니 쿠바로 들어가는 석유를 차단해서 나라 전체를 정전 상태로 만들고는 “쿠바는 곧 무너질 것”이라며 망발을 서슴치 않는다.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비판하는 스페인 총리를 향해 "앞으로 스페인과 무역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지 않나? 깡패도 이런 깡패가 없다. "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나의 도덕성, 나의 마음이다. 나는 국제법이 필요 없다."고 막나가는 패권국의 대통령. 이란의 핵이 위험하다고? “당신이 더 문제야 이 사람아!” 그리곤 예상보다 이란의 저항이 완강하고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곧 전쟁이 끝날 것이란다. 하메네이만 죽이면 이란 민중이 들고일어나 이란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이란을 단결시켰다. 지상군을 투입할 수도 없고 이란의 무인기 공격에 미군의 피해도 나날이 커진다. 이러니 조만간 트럼프는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고 빠질 기세다. 트럼프에게 묻고 싶다. “도데체 당신은 무슨 정신으로 이 전쟁을 시작했던가? 2월28일 당신이 보낸 미사일로 수업중에 죽어간 샤자레 타예베여학교의 170명 아이들의 목숨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당신은 스스로 전범임을 알고 있는가?”
경기지역에서 지난 10년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산불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소방 장비와 인력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경기도의 산림구조는 면적 대비 인구밀집도가 높고 도시·주거지가 인접해 있다는 특성 때문에 대응 또한 특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무인 로봇 등 첨단 소방 장비가 가장 필요한 곳도 경기도일 것이다. 소방 당국의 ‘드론 순찰·통합 대응’ 운영에 더하여 첨단 소화 장비 도입이 추진되길 기대한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도내에서 발생한 산불은 총 2천67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산불의 약 22%를 차지하는 규모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다. 경기도는 산림 면적이 전국의 약 8%(51만2천㏊)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주거지 인접 지역에 등산객이나 야외 활동 인구가 많은 점이 산불 발생 빈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요즈음 특히 해빙기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산불 위험도 커지고 있다. 장기간 건조특보가 지속되면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확대될 위험성이 높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산불 예방과 초기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드론 135대를 활용해 주요 산림 지역을 중심으로 하루 두 차례 순찰해 산불 발생 가능성을 사전 점검하고 있다. 또 119종합상황실을 중심으로 산림청 상황 시스템과 연계한 통합 관리 체계를 운영해 산불 관련 신고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산불 대응 전담소방대와 거점 119안전센터를 상시 운영하며 초기 진화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경각심을 높여 더욱 투철한 화재 안전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산불 조심’ 홍보활동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산불은 여차하면 대형 화재로 번질 위험성이 높은 데다가 지형의 특성상 진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근년 동해안 지역에서 연례 행사처럼 발생한 대형 산불의 사례처럼 강풍을 동반하게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큰 재난으로 확대되기 일쑤다. 도시 주택이 산림과 연접한 지역이 많은 경기도 지역에서는 좀 더 특별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산불 진화에는 야간 운용이 가능한 고성능 소방헬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잔불 진화 등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소방 활동이 불가피한 만큼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다목적 산불진화차량, 무인소방로봇 등을 확충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할 것이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그룹이 소방청과 함께 개발해 영상을 공개한 첨단 소방 기술이 관심을 끈다. ‘세이퍼 웨이 홈(A Safer Way Home)’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무인소방로봇 기술은 첨단 무인 모빌리티로 현대차·기아,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그리고 소방청이 협업해 제작한 차세대 화재 대응 솔루션이다. 로봇은 붕괴의 위험이나 고온·폭발·연무·유독가스 등으로 사람이 진입하기 어려운 고위험 재난 현장에 선제 투입되어 골든 타임 확보를 가능케 한다. 공개된 솔루션은 첨단 자율주행 보조시스템, 연기 속에서도 시야를 확보하는 AI 시야 개선 카메라, 어둠 속에서 탈출로를 안내하는 고압 축광 릴호스, 제자리 360도 회전이 가능한 6x6 인휠 모터 시스템 등이었다. 산림청이 지난해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에서 발표한 ‘웨어러블 로봇’ 등 산불 진화 작업의 효율성 제고, 작업자의 안전 확보, 체력 보호를 위한 보조장비도 관심사다. 전국에서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경기도야말로 산불 진화를 위한 첨단 소화 장비들이 과감하게 개발되거나 도입될 필요성이 높다. 조기에 발견해 가장 효과적인 진화 수단들을 신속히 투입하는 것이 관건이다. 산불 재난이 불러오는 엄청난 피해 규모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중요한 투자가 없을 것이다. 산림과 주거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기도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좀 더 특별하고 투철한 대비가 필요한 재난이 아닐까 싶다.
현대의 노동자들은 노동을 권리로 규정하며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지만, 역사 속에서 노동은 결코 권리가 아니었다. 특히 자유 시민에게는 더욱 그랬다. 노동은 농민과 노예가 수행하는 육체적 행위였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계급 구조 속에서 부과된 의무였던 것이다. 산업혁명은 사회 구조를 바꾸는 듯 보였지만, 인간 노동의 본질적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산업 시스템을 유지하는 필수 부속품으로 강화되었을 뿐이다. 한편, 역사 속에는 노동자들이 권리를 위해 싸운 수많은 투쟁이 존재한다. 매년 5월 1일 기념되는 메이데이는 노동자들이 더 나은 임금과 근로 조건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역사적 상징이다.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첫 메이데이 시위는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폭력과 희생을 감수한 사건이었다.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크 운동과 사보타지는 기계화로 인간의 노동이 착취당하는 현실에 저항한 사례로, 기계 파괴와 작업 거부라는 급진적 방식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1987년 대투쟁은 민주주의와 노동권을 동시에 쟁취한 역사적 순간으로, 전국의 노동자들이 단체 행동과 파업, 시위를 통해 사회 변화를 강제했다. 이런 투쟁들은 노동을 권리로 만드는 듯 보였지만, 인간 노동의 본질적 위치를 바꾸지는 못했다.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을 권리로 주장하며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이 소멸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반복적·육체적 노동을 대신하는 현실 속에서, 기존 방식의 노동조합이 그들의 이익을 계속 챙길 수 있을까?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자동화 창고에서 수백 개의 주문을 처리하는 로봇, AI 번역과 영상 제작 소프트웨어, 드론과 로봇이 담당하는 배달과 물류 등은 이미 인간 노동의 필요성을 크게 줄였다. 노동은 더 이상 생계를 보장받기 위한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 기여와 공동체 번영의 척도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미래의 노동권은 고용 안정이나 노동 조건의 보호가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에 기여하고 창의적 역할을 수행할 권리로 전환되어야 한다. 인간은 단순히 노동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술과 공존하며 자신의 역할을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노동조합과 권리 보호 방식은 점차 한계를 드러낼 것이며, 인간의 노동은 효용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 창의적 참여를 실현하는 기회로 바뀌어야 한다. 인간은 단순히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지식, 예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만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결국 미래의 노동권은 “일자리를 보장받는 권리”가 아니라, 기여를 통해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낼 권리다. 인간은 기술과 함께 일하며, 사회적·창조적·공동체적 기여를 통해 노동의 새로운 의미를 정의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21세기 이후 인간과 노동의 본질을 동시에 사유하게 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결국 미래의 노동권은 “일자리를 보장받는 권리”가 아니라, 기여를 통해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낼 권리다. 인간은 기술과 함께 일하며, 사회적·창조적·공동체적 기여를 통해 노동의 새로운 의미를 정의해야 한다.
전쟁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그런데 왜 전쟁을 일삼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열흘 넘게 지속되는 중동전쟁.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자꾸만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지만 이를 이란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상황이 악화돼 가는 동안 무고한 희생자만 천문학적으로 늘어 간다. 고통스럽게 지켜보다 영화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졸 대령(Colonel Joll)과 트럼프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선글라스를 끼고 폼 나는 옷을 입고 말을 탄 제국의 졸 대령. 어느 날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사막의 한 마을에 도착한다. 평화롭던 마을은 곧 쑥대밭이 되고 만다. 제국 사람들의 잔인성은 무고한 원주민을 고문하고 가학하고 마을의 지도자인 치안 판사를 박해한다. 소위 문명인처럼 보이는 그들은 그야말로 야만인 중에 야만인이다. 문명과 야만의 차가 무엇인지 재정의 하게 된다. 야만이란 잔인한 짓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자행하는 것 아니던가? 가죽부츠에 멋진 모자와 망토로 제아무리 외관을 치장한들 짐승처럼 군 다면 그들은 결코 문명인이 될 수 없다. MIGA(이란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란 슬로건으로 포장한 트럼프의 이란 공격 역시 한 치도 다를 게 없다. 이들의 야만성을 결코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스페인 수상 산체스는 이 전쟁에 적극 반대하고, 핀란드 대통령 스투브는 미국이 전통적인 국제법의 틀을 벗어나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르웨이는 “선제공격은 임박한 위협이 있을 때만 합법적이며, 이번 공격은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한다. 그 정도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휘발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다시 불붙을 위기에 처해도 세계 지도자들 대부분은 꿀 먹은 벙어리다. 휘발유 가격은 1배럴당 100달러, 곧 150달러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소비자들과 기업들은 큰 부담과 고통을 감내야 한다. 한편, 석유와 가스 수출국이 된 미국은 국내 공급을 충당하고도 남아 유럽이나 한국 등으로 장사를 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중동의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쟁의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단지 휘발유 가격이 과도하게 인상되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너무 소극적이지만 이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다. 다만 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다. 지난 주 휘발유 1리터당 1680원 정도였지만 이제 2000원을 육박한다. 앞으로도 계속 오르게 될지 모른다. 프랑스의 경우 한 의원이 ‘에너지 가격을 일시적으로 동결’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세계 에너지 생산, 송전 또는 전 세계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국제적 위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료, 천연가스 및 전기 소매가격을 최대 3개월 간 동결하거나 상한선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 궁극적 목적은 특정 대기업들이 위기 상황을 악용하지 못 하게 막음으로써 에너지 위기의 불똥이 소비자에게 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강력한 처방을 마련해 에너지 시장의 변동에 취약한 소비자를 보호해 주기 바란다.
지난 2016년 이른바 ‘깔창 생리대’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일부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이 비싼 생리대를 사기 힘들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생리대 가격이 비싼 탓이다. 곧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에 정부는 급여 수급자나 법정 차상위계층 청소년 등에 바우처 사업으로 생리대를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의 실집행률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2021년 84.6%, 2022년 65%, 2023년 80.0%밖에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미집행 예산이 타 사업으로 전용됐을까. 깔창 생리대 사건으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 뒤에도 생리대 가격은 계속 올랐다. 여기에 더해 2017년엔 일명 ‘릴리안 사태’도 일어났다. 릴리안을 착용한 후 생리양 감소와 생리주기 변화 등 부작용이 생겼다는 논란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안전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심리에 편승, 일부업체는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적극 나섰다. 경기도는 2021년부터 11~18세 여성 청소년에게 연 1회 생리용품 구매비 16만 8000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통령 출마의사를 밝힌 뒤 여성 청소년의 생리대 구입비용을 지급해 생리대 빈곤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생리대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이 대통령은 공정거래위원회 등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리나라 생리대가 해외보다 39% 더 비싸다면서 말했고, 곧바로 공정위는 국내 주요 생리대 업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지난달 20일 국무회의에서는 정부가 생리대를 위탁 생산해서 일정 대상에게 무상 공급하는 것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생리대 가격 논란이 확대되고 이 대통령이 강한 인하 의지를 보이자 업계도 반응했다. 다이소가 100원 생리대를, 홈플러스가 99원 제품을 출시했다. 대표적인 국내 생리대업체인 유한킴벌리, LG유니참, 깨끗한나라 등도 중저가 제품 확대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생리대 가격이 이렇게 내려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100원 생리대’에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 대통령의 생리대 정책에 제일 먼저 앞장 선 지방정부는 정명근 시장이 이끄는 화성특례시다. 정명근 시장은 이 대통령이 생리대 문제를 지적하자 가장 먼저 실행에 나섰다. 정 시장은 공공형 생리대인 ‘(가칭) 코리요 생리대’를 연내에 제작해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달 12일 생리대 업체들과 소통 간담회를 개최한 데 이어 27일엔 전문 스타트업 ㈜해피문데이를 방문, 화성특례시 특화 브랜드로 구상 중인 공공형 생리대 ‘(가칭) 코리요 생리대’ 제작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김도진 해피문데이 대표는 ‘깔창 생리대’ 사건을 계기로 저렴한 생리용품을 공급하기 위해 회사를 창업한 사람이다. 지난 1월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잡한 유통 단계를 생략하고 유명 연예인 광고 모델료와 과도한 마케팅비를 제거해 시중 프리미엄 제품의 절반 가격에 고품질 유기농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자 기술력을 확보해 해외 로열티와 배당금을 내지 않고, 직접 공장을 돌리면 원가를 최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시장과 김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는 ‘신뢰하고 사용할 수 있는 품질’을 ‘재정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 시장은 “이재명 대통령 정책을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뒷받침 하겠다”면서 민선 8기 임기 내에 ‘코리요 생리대’ 정책을 현실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경기신문 3월 6일자 6면, ‘생리대 걱정 없는 화성특례시 향해 첫걸음’) 화성특례시의 행정적 지원에 해피문데이의 기술력이 함께 한다면 품질과 가격을 모두 만족시키는 공공형 생리대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여성의 건강권과 존엄을 지키는 가치 있는 여정”에 나선 정명근 시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게임업계에서 자회사의 분사는 일상적이다. 엔씨소프트는 2025년 빅파이어게임즈, 루디우스게임즈, 퍼스트파크게임즈, 엔씨큐에이(NC QA), 엔씨아이디에스(NC IDS) 등 5개사를 분사시켰다. 크래프톤은 2024년 인조이스튜디오를, 넥슨은 2024년 민트로켓을 자회사로 전환했다. 게임업계에서 자회사 분사는 계속될 수 있을까? 노란봉투법이 허들이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 즉 개정 노동조합법은 노동쟁의의 범위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도 포함하고 있다. 기존 노동조합법에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은 노동쟁의의 대상이 아니어서 단체교섭이 제한되었고,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쟁의행위의 목적이 불법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회사가 물적분할을 통해 특정 사업부문을 독립된 자회사로 분사하기로 결정한다면, 이것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이어서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의 해석지침은 ‘기업투자, 합병, 분할, 양도 결정 그 자체로는 근로조건에 실질적,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워 단체교섭 대상에 포함되지 않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신설, 합병 등에 따른 고용승계 전후의 사업경영상 결정(정리해고, 배치전환 등)은 단체교섭 대상이 됨’이라고 안내한다. ‘합병, 분할, 매각, 양도 등 기업조직 변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따라 정리해고, 배치전환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노동조합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고용보장 요구 등 근로자 지위 및 근로조건 변동과 관련 있는 사항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음’이라고도 하고 있다. 정리해고 등이 예상된다면 자회사 신설도 단체교섭 대상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자회사 신설이 있게 된다면 노동조합은 자회사로 고용승계될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보장도 단체교섭 의제로 포함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 입장에서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분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단체교섭에 응하고 고용보장의 규모와 범위, 기간과 조건에 대한 협의 결과를 유리하게 도출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회사 신설 자체를 시간을 두고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다. 게임업계는 업황 자체의 어려움에 더해 AI라는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기업이 불확실성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살려내려면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 불안정도 최소화해야 하지만 지배구조 변경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과 체질 개선을 위해 필요한 지배구조 변경과 그렇지 않은 지배구조 변경이 구분되어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보다 정확한 안목을 가진 것은, 게임산업의 특수성을 알지 못하는 외부인이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들이다. 이미 도입된 노란봉투법은 노사 양측의 시각을 더 잘 종합하고 노사 양자의 공동결정을 촉진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 판교라면 그 성공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왜 잊어먹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도 애타게 갈구했던 순간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갑니다. 신이든 조상이든 무엇이든, 이번만큼은 꼭 들어달라고 빌던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살려달라고, 다른 건 더 바라지도 않겠다고, 딱 한 번만 들어달라고 하늘을 우러르던 나는 더 이상 여기 없습니다. 신이든 조상이든 무엇이든, 갈구했던 대상과의 약속 또한 저버린 지 오래입니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루나 이틀쯤 감사의 마음을 품었을까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착하게 살겠노라 한 달이나 두 달쯤 순한 걸음으로 살았을까요. 생각할수록 나는 참 못난 사람입니다. 계급장처럼 나이만 이마에 새긴 채, 착하지도 순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조선소에서 일할 때도 그랬습니다. 도르래로 들어 올리던 철판이 중심을 잃고 내 등을 덮쳤습니다. 허리가 꺾이고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빌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대학에 다닐 때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만취한 운전자가 모는 승용차는 이번에도 등 뒤를 덮쳤습니다. 앞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친 나는 맥없이 날아갔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빌었습니다. 이렇게 죽는 건 너무 허무합니다. 두 번의 사고 모두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등 뒤를 덮친 철판은 척추를 비켜 갔고, 차에 들이받혀 날아간 곳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밭고랑이었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숱하게 빌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빌어야 할 대상이 나에서 가족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어른이 뭔지도 모르고 아비가 되어버린 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자격 없는 아비다 보니 모든 날이 절박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주저앉을 때마다 나는 빌었습니다. 총기사고 뉴스를 볼 때면 군대에 있는 아들을 떠올리며 빌었고, 코로나로 세상이 초상집이 되었을 때는 호흡기내과 간호사인 딸을 위해 빌었습니다. 다행히 세 아이 모두 탈 없이 홀로 섰습니다. 돌아보면 내 기도와 상관없이 잘 자라 준 아이들입니다. 그것으로 끝일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의 독립과 함께 내가 기도해야 할 일도 끝났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지난달에 희윤이가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우주 너머에서 지구별로 찾아온 첫 손주입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희윤이와 만났습니다. 빨갛게 꼼틀거리는 별이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다음날 희윤이 어미가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갔습니다. 수술 부위에서 생긴 혈전이 폐에 쌓여 위중하다고 하였습니다. 면회가 제한되어 며느리 얼굴도 보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희윤이 어미였습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서도 병원 밖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 아이의 우주는 나의 우주를 품을 만큼 넓구나. 나는 빨갛게 꼼틀거리던 별을 떠올리며 속으로 빌었습니다. 부디, 네 어미처럼만 자라다오. 어쩌면 나는 지금의 이 고마움도 또 잊어버릴 겁니다. 금세 까맣게 망각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당신도 나처럼, 잊어버리며 살아갑니까. 하긴 그래서 당신과 내가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 잊어버리면서도 기도만큼은 끝내 우리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까닭도 그러하고요. 오늘 밤에도 빨갛게 꼼틀거리는 별 하나가 깜빡입니다.
최근 경기지역에서 금전을 받고 타인의 집이나 재산을 훼손하는 이른바 ‘보복대행’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온라인 메신저와 익명 플랫폼을 통해 의뢰와 실행이 이뤄지는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은 오물 투척, 낙서 등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지만 방치할 경우 끔찍한 ‘무질서 폭력사회’로 가는 길목이 열릴 수 있어 싹을 강력하게 자르는 발본색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텔레그램 등에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사적 보복 대행을 알선하는 게시글들이 쉽게 나타나고 있다. 게시글은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의뢰인의 원한을 풀어주겠다’며 직장 동료 및 지인을 상대로 하는 ‘이미지 타격’, ‘사고 위장 신체 손상’, ‘범죄 혐의 뒤집어씌우기’ 등 각종 범죄 의뢰를 유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을 통한 보복 대행 범죄는 이미 경기지역 곳곳에서 발생, 심각한 경고음을 울리는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화성 동탄에서 돈을 받는 대가로 특정인의 아파트 현관문에 오물을 뿌리고 래커로 낙서를 하는 등 보복성 범행을 저지른 20대가 붙잡혀 검찰에 송치됐다. 피의자는 온라인을 통해 범행을 의뢰받은 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군포에서도 20대 남성이 군포시 한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현관문에 빨간색 래커로 낙서를 하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의 협박 유인물 10여 장을 붙인 혐의로 검거됐다. 혐의자는 텔레그램 등 온라인 채널에서 이른바 ‘흥신소 일거리’를 찾다가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의 지시를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평택에서도 지난해 12월 유사한 과정을 거쳐 피해자의 집 현관문에 된장과 물엿 등을 섞은 이물질을 뿌리고 명예훼손성 유인물을 붙인 혐의로 40대를 구속하고 30대 공범 2명을 불구속 입건한 사건이 뒤늦게 전해졌다. 경찰은 보복대행 범죄가 개인 간 분쟁이나 채무 갈등 등 사적 보복을 대신 수행하는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범죄는 실행자와 의뢰인이 서로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 범행 추적이 쉽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지금처럼 가벼운 범죄에 그치지 않고 주거침입 등 경범죄를 넘어서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사회적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사건에서는 범행 지시자와 실행자 외에도 중개 역할을 하는 인물이 개입하는 등 조직적인 형태를 보이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특히 과거 흥신소나 사설 심부름센터를 통해 이뤄지던 보복 행위가 최근에는 SNS와 메신저 등 온라인 익명성 뒤에 숨어서 쉽게 연결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게 경찰청 관계자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보복 협박 등 ‘보복 범죄’ 혐의를 적용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적 보복을 지시한 윗선을 잡지 못하면서 주거침입, 재물손괴, 명예훼손 혐의에 그치고 있다. 구직에 목마른 청년층 일부가 이를 단순 아르바이트로 인식하고 범행에 가담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낙서 알바’, ‘심부름 일자리’ 등의 이름으로 범행 실행자를 모집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익명성, 사회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해 위장 거래 등 함정수사 대상에 편입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치안 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매우 안전한 국가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온라인 메신저와 익명 플랫폼을 이용한 보복대행 범죄는 여차하면 우리 공동체를 사적 보복이 횡행하는 야만적 사회로 추락시킬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발점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가사회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환경변화로 인식하여 강력히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격언을 상기할 때다.
2월 28일,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중동의 포화는 우리가 발 딛고 있던 세계를 근저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테헤란 상공을 가르는 정밀 유도 미사일과 이란 최고 지도부의 사망 소식은 수십 년간 국제 사회를 지탱해 온 대화와 타협이라는 외교적 수사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었는지를 폭로한다. 특히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속에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이번 전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배워온 평화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리는 것처럼 느낀다. 이번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인류가 공유해온 낙관주의적, 합리주의적 역사관의 완전한 파산을 의미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반세기 가까이 중동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체제가 일주일 만에 해체 단계에 접어든 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폭력이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임을 증명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했던 ‘역사의 종언’, 즉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은 포화와 함께 전장의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힘이 곧 정의라는 날것의 현실주의이며, 이는 비교적 평화로운 탈냉전기에 태어나 성장한 세대에게 ‘세계의 영구적 불확실성’이라는 실존적 과제를 던진다. 이제 미래는 차곡차곡 계획하고 쌓아 올리는 대상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폭격이 내일 아침 나의 자산과 일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초연결 시대의 위험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전쟁은 역사상 가장 투명하게 실시간 중계되는 동시에 이불 속에서 안전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상흔을 남긴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소식은 전쟁의 참혹함을 콘텐츠로 휘발시킨다. 원하든 원치 않든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폭발 영상과 미사일 이미지 앞에서 감각이 마비된다. 타인의 고통이 데이터와 이미지로 치환되는 광경을 목격하며 느끼는 무력감은, 곧 다가올 경제적 타격을 넘어 우리 세대에 깊은 냉소주의를 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또한 미국이 중동에 전력을 집중하여 발생할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공백은 지금껏 누려온 평화가 당연한 것이 아닌, 막대한 비용과 국제 정치의 흐름에 기댄 신기루였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세계는 우리에게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얼굴을 빌려 외친다. ‘서사시적인(epic) 분노(fury)’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음을, 그리고 그 방향은 폭력으로 느껴질 만큼 현실적임을 선언한다. 저항할 수 없는 이 흐름 아래 개인의 삶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것은 한 국가의 정권뿐만 아니라 그동안 믿어왔던 ‘안전한 세계’라는 환상 그 자체다. 이 시대의 사명은 공포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공포의 근원을 응시하며 변해버린 문법 속에서도 나의 일상을 지탱할 삶의 의미를 확보하는 것이다. 역사는 다시 핏빛 잉크로 쓰이고 있고, 이제 우리는 그 기록의 관찰자이자 작성자로서 어떻게 이 세계를 살아내야 할 것인가를 새로이 사유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2026년 2월 22일,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로 총 10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종합 13위라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제 그 바통을 이어받아 3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동계 패럴림픽이 개최된다. 한국은 5개 종목(알파인스키·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스키·스노보드·휠체어컬링)에 40여 명의 선수단이 출전한다. 한계를 뛰어넘는 드라마는 계속된다. ◇'화이트 올림픽'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 숨겨진 장벽 동계 올림픽은 흔히 '화이트 올림픽(White Olympics)'이라 불린다. 눈과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축제라는 뜻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뼈아픈 지정학적·경제적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동계 스포츠는 하계 종목과 달리 자본과 인프라의 집약체다. 신발 하나면 시작할 수 있는 하계 종목들과 달리, 억 단위를 호가하는 봅슬레이 썰매와 첨단 소재의 스키 장비는 가난한 국가들에게 시작부터 압도적인 비용의 장벽을 세운다. 동계 올림픽이 오랫동안 돈 많은 북반구 국가들의 전유물이라 불렸던 이유다. ◇불모지에서 기적을 일궈낸 개척자들 대한민국은 이 견고한 성벽을 허물어뜨린 국가 중 하나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개막한 제5회 동계올림픽에 'KOREA'라고 적힌 단복을 맞춰 입은 5명의 초미니 선수단이 태극기를 앞세워 개막식에 참가한 이래, 1992년 알베르빌에서 첫 메달을 수상하며, 종합 10위(금2·은1·동1)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 2026 밀라노 대회에서는 17세의 신예 최가온이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한국 스키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그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 2월 14일에는 브라질의 루카스 피녜이로 브라텐이 알파인 스키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는 남미 대륙 전체를 통틀어 사상 첫 메달이자 금메달이었다. "브라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이 사건은 동계 올림픽이 더 이상 특정 인종과 국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전 세계에 선포한 역사적 이정표가 되었다. ◇패럴림픽,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또 하나의 개척지 올림픽이 끝난 뒤 이어지는 동계 패럴림픽은 이 개척자 정신이 더욱 숭고하게 빛나는 무대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장애인 노르딕스키의 간판 김윤지 선수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하계 종목인 수영과 동계 노르딕스키를 병행하는 그녀의 도전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가며 항상 웃는 얼굴로 ‘스마일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인간 정신의 승리를 보여준다. 또한, 각 종목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선발해 새롭게 팀을 꾸린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에 대한 기대도 어느 때보다 크다. 우리 국민이 브라질이나 아프리카 선수들, 그리고 패럴림픽 영웅들의 스토리에 유독 깊은 공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들의 투지에서 결과보다 과정의 숭고함을 중시하는 올림픽의 본질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하고, 신체적 불편함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그들의 투지는 우리 사회에 한계 돌파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리고 그 영웅들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는 날, 우리는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될 것이다. 꿈에는 국경도, 기후도, 신체적 조건도, 그 어떤 색깔의 장벽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