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약 3년 전 분양받은 아파트의 입주를 앞두고 사전점검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에 처음 들어가 보는 날이여서 설레는 마음과 함께 아파트의 사전점검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막연한 걱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사전점검 후기 등을 찾아보면서 사전점검시 유의하여야 하는 부분들이나 하자를 체크하는 방법 등을 챙겼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전점검을 대행해주는 업체도 있어 대행업체를 통해 보다 꼼꼼하게 사전점검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사전점검 후 몇가지 하자를 찾아서 점검표에 상세히 기재를 한 후 제출을 하였고, 입주 전에 이러한 하자들이 모두 처리되어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입주 당일에도 지적한 하자들이 전혀 수선되어 있지 않았고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시행사에 하자 처리를 요청하는 문서를 발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물론 수많은 수분양자들의 하자보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자처리 업무는 더디기만 하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수분양자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갔습니다. 이후 필자는 아파트 하자와 관련된 손해배상 소송들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우리 아파트처럼 하자보수가 원활하게 진행이 되지 않아 소송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행사에서 원활하게 하자보수를 해주지 않아 하자소송을 준비하게 되면 누가 소송을 제기할 것인지를 먼저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가 있습니다. 집합건물법 제9조는 “분양자”와 분양자와의 계약에 따라 건물을 건축한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공자”는 구분소유자에 대하여 담보책임을 진다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들은 하자보수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소유권을 양도한 경우에는 양도인이 하자담보추급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유보하였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수인인 현소유자는 하자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합건물은 다수의 구분소유자들이 있고 공용부분에도 다수의 하자가 존재하여, 하자소송에는 상당한 소송비용이 발생하기에 이러한 소송상의 업무수행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서 실무적으로는 입주자대표회의에 구분소유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양도하는 방식, 즉 채권양도를 하여 입주자대표회의가 소송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입주자대표회의에 채권양도가 되어 하자소송이 진행 중에 구분소유자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양도 당시 하자담보추급권은 양도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보아 양수인에게 하자담보추급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이러한 채권양도를 통해서 구분소유자들의 손해배상채권을 양도받지만 추후 소송을 통해 판결금이 지급이 되면 전유부분에 대한 부분은 구분소유자들에게 지급을 하고, 공용부분에 대한 부분은 공용부분의 하자보수에 사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자소송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채권양도절차를 먼저 진행하여야 하고, 채권양도율이 높을수록 공용부분에 대한 하자보수비를 많이 받을 수 있으므로 하자소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채권양도 준비 과정에서부터 법률전문가들의 조력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선출됐다. 이번 대선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주목할 점은 높은 투표율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79.4%로, 2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높은 투표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분노 투표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 선거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 대선 직전에는 투표율이 높을 경우에는 김문수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 분석의 핵심은 '샤이 보수' 혹은 '셰임 보수'의 존재였다. 이들은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지만, 이들이 투표장에 갈 경우,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만일 샤이 보수나 셰임 보수가 투표장으로 몰려나가 투표율이 높아진 것이라면, 김문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표율이 높아진 이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분노 투표다. 즉,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식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았고, 이런 대통령을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국민의힘에 대한 분노가 투표율을 높였다는 해석이다. 이번 선거에서 또 다른 주목할 점은 각 후보의 득표율이다. 이재명 후보는 49.42%, 김문수 후보는 41.15%를 득표했고, 이준석 후보는 8.34%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이재명 대통령이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대통령이 50%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면, 아마도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진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주목할 점은 이재명 대통령과 김문수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다. 두 사람의 득표율 차이는 8.27%다. 이런 차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득표율 차이가 국민의힘 내부의 권력 구조 변화 가능성 여부를 보여주는 선행 지표이기 때문이다. 만일 두 사람의 득표율 차이가 10%를 넘었다면, 김문수 후보가 계속해서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5% 이내의 차이로 낙선했다면, 김문수 후보는 대통령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막강한 당내 기반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의 차이였다면, 김문수 후보는 당내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8% 정도의 차이라면 매우 애매한 상황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즉, '졌잘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형편없는 성적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국민의힘에서는 이제부터 각 계파 간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 같다. 이준석 후보 역시 이번 대선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것 같다. 이준석 후보가 획득한 8.34%는 우선 선거 비용 보전을 받을 수 없는 득표율이라는 차원에서 재정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됐다. 또한, 이 정도의 득표율은 제3당이 대통령제 하에서 얼마나 그 존재감을 유지하기 힘든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여러모로 많은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들이 상처로 남을지 아니면 훈장으로 남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그것은 정치권이 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이재명 대통령과 이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 대통령은 1728만 7513표(49.42%)를 얻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41.15%)를 누르고 4일 제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과 12.3 내란에 단호한 평가를 내렸다. 2024년 12월 3일 믿기 어려운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부터부터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일부의 지나친 상상’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계엄령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계엄사령부는 포고령 제1호를 통해 ①국회 및 정당의 정치활동 일체 금지, ②모든 언론과 출판 통제, ③전공의 및 의료인 복귀 거부 시 처단, ④계엄법에 따른 영장 없는 체포, 구금, 압수수색 가능 등의 통제 조치를 선언했다. 국회에는 헬기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중무장한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선거관리위원회에도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야당대표와 여당 전 대표까지 포함된 이른바 ‘처단 대상자’ 명단까지 나돌았다. 계엄을 반대하는 국민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이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됐고, 헌법재판소는 “헌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 공화정에 심각한 위해를 가했다”며 대통령의 파면을 전원일치로 결정했다. ‘찬탄파’와 ‘반탄파’간의 대규모 시위가 연이어 경쟁적으로 열렸고 서울서부지법 난동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과는 거리에서 겨울의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며 내란 반대투쟁을 이어간 국민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윤석열을 보호하려는 내란 세력은 조직적으로 버텼다. 반민주 세력, 이를테면 일부 고위 관료와 친윤 검찰·사법 관계자, 일부 언론, 극우 종교세력은 지속적으로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이번 선거는 혼란스런 정국을 수습하고 미래를 향해가는 대한민국호의 새 선장을 선출한 의미 있는 선거였다. 우리 국민들은 12.3 내란을 겪으면서 지도자를 선택하는 선거가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그 어느 때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12.3 내란사태 이후 그동안 쌓아 놓은 대한민국의 모든 부문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태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국민들의 수준 높은 의식을 알게됐다.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계엄을 온몸으로 막았다. 국회에 나왔던 대부분의 군인들도 이른바 ‘여의도 회군’을 통해 불의에 항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6.3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선거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새벽에 벼락치기로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단일화를 압박한 한덕수 전 총리에 맞선 김문수 후보의 방어전이 눈물겨웠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권자 사이의 갈등도 점차 고조돼갔다. 곳곳에서 선거포스터가 훼손됐고 심지어는 유세 현장에서의 시비로 인해 선거운동원을 자동차로 치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대통령선거가 끝났고 ‘처단 대상자’ 명단에 기록돼 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취임했다. 그런데 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기쁨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다시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당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 수두룩하다. 정치도 그렇지만 안보와 경제, 외교 등 모든 면에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서민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1997년에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보다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하소연이 온 나라에 가득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도 심화됐다. 미 트럼프 정부의 통상압박에도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 저출생과 기후 위기, OECD 최다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는 자살 문제에도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장 나서야할 일들이다. 특히 부탁하건데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란 상황은 절대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6월 4일 새 정부(대통령 이재명)가 시작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 비상계엄’에 대한 탄핵으로 수립된 새 정부는 우선적으로 내란을 종식하여야 한다. 동시에 지난 1987년 이후 드러난 헌정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 대개혁을 추진하여야 한다. 새 정부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지켜야 할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국민주권이다.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이것은 1919년 4월 11일 제정된 상해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로 부터 연원한다. 그러므로 민주공화제를 파수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과 같다. ‘12.3 불법 비상계엄’의 위기로 부터 민주공화국을 수호한 것은 국민과 국회이다. 이제는 평상시에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야 한다. 국회의원을 선임하여 국회를 구성하고, 나아가 국민이 직접 법안을 발의(initiative)하고 대표를 소환(recall)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주권정부에 합당하다. 둘째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이다. 이것은 세끼 밥 먹고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헌법 제34조). 가정을 갖고 생활하고 내 집에서 거주하고 자녀를 낳아 교육시키고 직장에 나가 일하고 가족들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일체의 것을 포괄한다. 국부는 증가하지만 빈부격차는 격심하다.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 주거, 교육, 근로의 기본생활에 대한 보장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근로자가 기업이익의 분배에 참여하도록 하여(제헌헌법 제18조) 근로자와 기업의 공존이 요구된다. 근본적으로는 토지보유세의 증액, 토지초과이득의 환수, 주택소유 상한제 등으로 불로소득을 줄이고 사회의 공동체성을 제고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는 한민족이다. 남한과 북한의 국민들은 같은 민족이다. 금년은 남과 북이 분단된지 80년에 이르고, 6.25 전쟁의 정전협정도 72년에 이른다. 윤석열은 남과 북의 전쟁을 유발하면서 비상계엄을 발동하여 외환죄(형법 제92조)를 범하였다. 이제 남북관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 뛰듯 하면 안된다. 이를 위하여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남북정상선언’, 2018년 ‘9.19 군사합의’ 등이 국회의 인준을 거쳐 복원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북한의 합의를 통해 평화적 공존을 제도화해야 한다. 넷째는 지속가능한 사회이다. 출산률 감소로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한때 인구감소가 미덕인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적정 인구가 유지되어야 한다. 가정을 갖고 자녀를 두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길이다. 양성평등이 존중되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새 정부는 신뢰할 만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 환경면에서 지구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탄소발생을 감량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고 생물다양성을 복원하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 이것은 우리 공동체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새로 출범하는 국민주권정부는 진보와 보수에서 벗어나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가치를 파수하며 온 나라와 족속 가운데 존경받고 사랑받는 나라를 굳건하게 세우기를 기원한다.
제21대 대통령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해온 만큼, 그의 당선은 예상된 결과였다. 신임 대통령의 당선에 각계각층에선 벌써부터 변화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주목받은 그의 공약 중 하나는 노동자‧직장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내용이었다. 우선 직장인 공약의 주요 내용은 주 4.5일제 도입 기업 지원, 연차휴가 보장 등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이하로 줄이고, ‘국민휴가 3종 세트’를 추진해 직장인의 재충전을 돕겠다는 것이다. 서민의 삶과 밀착된 주거지원 강화와 통신비 부담 완화, 교통비 절감도 눈에 띈다. 자녀 수에 따른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한도 상향, 초등생 자녀 예체능학원 세액공제 추진 등도 자녀 사교육비 부담을 배려한 생활형 공약이다. 노동자 공약도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노동자 등 비전형노동자의 권리 보호 개선부터, 배달종사자 유상 운송보험 가입 및 안전교육 의무화 등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한 축을 받쳐 온 이들을 위한 내용이 크게 차지한다. 특히 만 60세 정년을 만 65세로 연장하는 안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시급한 해결 과제다. 취업은 어렵고 재취업은 더 더욱 어려운 현실에서 정년 보장과 연장은 고용 안정화를 위한 기본 전제임을 부정할 수 없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공약도 임대료‧인건비 지원과 폐업지원, 범죄안전망 확대, 소상공인 육아휴직 확대 등 거창하진 않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아쉬운 점을 반영하려 노력한 듯하다.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이같은 공약이 단지 ‘약속’에만 그치지 않도록 추진하고 실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함께 직장인과 노동자, 자영업자의 그 중간 어디쯤 있을지 모를, 제2의 인생 설계를 소망하는 이들에게도 보다 많은 관심을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의지나 역량과는 무관하게 사회에서 점점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다. 체력도 충분하고 일할 의지가 강한데도, 나이라는 숫자만으로 기회에서 멀어지는 일이 흔하다. 인생 2막을 준비하려 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부하 직원이 상급자보다 나이가 많으면 불편하다’는 식의 후진적인 조직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커리어 전환이 40~50대에도 활발히 이뤄지는 해외와는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능력과 경험을 더 인정받는 해외 사례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신임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중장년층을 직접 겨냥한 정책은 없지만,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바람을 더하고 싶다. 꼭 중장년층으로 특정하지 않더라도, 뒤늦게 커리어를 바꾸거나 새 도전에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있으면 좋겠다. 진로와 적성은 반드시 젊은 시절에만 찾는 것이 아니며, 은퇴 후 모두가 여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는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와 연결감을 느낀다. 일하는 기쁨이 노는 즐거움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조금 더 다양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 누구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라. 새 정부가 출범한 이 날, 그 길을 함께 열어주길 바란다.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관련법이 강화됐지만, 현장 실정은 어림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측에 임신 사실을 알리면 권고사직을 요구하는 직장까지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출산 기피 현상으로 세계적인 국가소멸 위기 지적을 받는 나라에서 이게 대체 될 말인가. 미비한 법·제도를 재정비하고 촘촘한 보완책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 10∼17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육아휴직 관련 설문조사 결과는 심각하다.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항목에 응답자 42.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출산 휴가의 사용률은 이보다 약간 높다. ‘출산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란 항목의 응답은 ‘그렇다’가 63.4%, ‘그렇지 않다’가 36.6%였다. 고용 형태별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다. 비정규직의 경우 육아휴직이 자유롭지 않다는 응답이 52.3%, 출산 휴가 사용이 자유롭지 않다는 응답은 46.5%로 정규직보다 모두 15%p 이상 높았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도 힘든 데,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마저도 훨씬 더 높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합리한 것이다. 직장갑질119의 출산·육아 갑질 상담 사례에서는 아직도 육아휴가를 쓰려고 했다가는 사직을 강요당하는 불이익을 받는 문화가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직장갑질119는 최근 1년 동안 신고된 ‘출산·육아 갑질’ 관련 이메일 상담, 제보가 58건이라고 밝혔다.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자 권고사직 처리를 해줄 테니 사직서를 쓰라고 압박해 결국 회사가 만든 사직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례도 전해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고용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2023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5000개 중 육아휴직을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대답한 사업체는 61.4%였다. 5∼9인 규모에서 55.4%, 300인 이상 규모에서는 94.1%였다.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 불가능’이라는 응답은 5∼9인 22.6%, 10∼29인 14.3%로 높았다.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한 실적도 5∼9인은 7.8%, 10∼29인은 10.3%에 그쳤다. 반면 100∼299인은 35.2%, 300인 이상은 55.1%였다. 이용 가능한 평균 육아휴직 기간도 5∼9인에서는 11.8개월이었는데 300인 이상에서는 평균 12.6개월이었다. 육아휴직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들이 아직 이렇게 많은 것은 위반 사실을 신고해도 처벌받는 경우는 고작 6.8%밖에 되지 않으니 굳이 지켜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육아휴직이 끝난 다음 ‘복귀 후 지속 근무한다’는 비율이 71.8%로 가장 많았다. ‘복귀하지 않고 그만둔다’는 비율은 13.2%였다. 다만 5∼9인 사업체의 복귀 비율은 67.4%, 300인 이상은 89.9%로 격차가 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은 여전히 저조하다. 스웨덴·포르투갈·덴마크 등은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의 비중이 40% 이상이고, 룩셈부르크는 50%를 넘는다. 정부가 일·가정 양립 지원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이를 낳자니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고, 직장을 그만두자니 생계가 막막한 현실 속에서 무슨 수로 출산 의지를 제대로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아이를 낳으면 당장 더 들어가야 할 양육비를 감당할 대책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해주겠다는 공약 이전에,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직장인의 현실을 개선하는 게 우선 아닌가. 마음 놓고 낳고, 안심하고 기를 수 있는 나라로 가야 한다.
22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다. 이틀간의 사전 투표가 끝나고 이제 본 투표를 남겨놓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총 13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대통령 선거가 22대인 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두 차례 연임하여 1~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윤보선을 거쳐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무려 5~9대, 다섯 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했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후 최규하가 대통령직에 올랐다. 하지만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 그의 재임은 매우 짧게 끝나고 말았다. 전두환은 11~12대에 걸쳐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했다. 이후 대통령은 모두 단임으로 대통령을 역임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1987년 헌법이 우리나라 대통령제를 5년 단임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노태우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은 박근혜와 윤석열이다. 박근혜는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당하였다. 윤석열은 지난해 일어난 12.3 내란으로 탄핵당하였다.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진실에 의하면 윤석열은 헌법과 법률을 바꿔 영구 집권을 꿈꿨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는 경비계엄 6회와 비상계엄 10회로 총 16번의 계엄이 있었다. 이 중 여수·순천 10.19, 제주 4.3, 한국전쟁과 그리고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계엄은 국가위기상황이 아닌 군부 독재세력의 권력 찬탈이나 유지, 반정부 시위 진압을 위한 수단이다(10.19와 4.3에 대한 논쟁은 이 글에서는 접어두겠다). 이번 12.3 역시 윤석열은 반국가단체에 대항한 체제 수호라 주장하지만,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계엄령을 발동한 대통령은 모두 역사에 독재자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로 봤을 때 압도적 1, 2위는 이재명, 김문수 후보다. 이 글이 게시되는 시점에는 아마도 투표가 한창일 것이다. 다행히 두 후보 모두 당선 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될 당선자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계엄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개헌을 부탁드리고자 한다. 계엄은 국가비상사태시 국가의 존립을 위해 병력을 동원하는 임시조치다.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상황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본연의 목적에 맞게 사용된다면 국가의 존립을 보전할 수 있겠지만, 악용될 경우 국가의 비극이 될 수도 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악용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일이 벌어졌고 윤석열은 탄핵되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헌을 통해 계엄을 제 자리에 돌려 놓아 주시기 바란다. 대통령의 권한이 적절히 제한되어야 할 것이고 계엄의 발동과 해제 절차 역시 다시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2025년 6월 3일이 되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된다. 12.3 불법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혼돈의 역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 헌정 질서를 흔든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탄핵으로 새 대통령 선출이 빨라졌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의 첫걸음이다. 또한 국민이 품격(品格)있는 최고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는 역사적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품격있는 대통령’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일제 국권침탈기에는 목숨을 걸고 항일의병(抗日義兵)과 독립전쟁을 치루었고, 3.1 운동과 8.15 광복을 거쳐, 6.25 한국전쟁과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혁명까지 숱한 고비를 넘어왔다. 그 여정(旅程)의 중심에는 늘 ‘국민’이 있었고, 그 국민이 지켜낸 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이제 새 대통령은 우리 국민과 함께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야 한다. 품격있는 대통령은 무엇보다 ‘통합의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정권이 아닌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야당과 협치를 하여야 한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진영 논리보다 국가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 곳곳의 불평등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계층 간·세대 간·성별 간의 격차를 줄이고, 지방 소외를 해소하고, 누구나 공평하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에게는 일자리와 미래를, 서민들에게는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다. 일제 식민지 잔재의 청산은 단지 과거를 파헤치는 일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identity)을 세우는 일이다. 친일사관에서 벗어나 올바른 역사교육을 정립해야 한다. 아울러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제의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검찰과 사법부 개혁 또한 시급하다. 법과 정의가 특정 권력의 도구로 왜곡되지 않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사법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 더불어 의료개혁, 주변 강대국 간의 외교강화, 문화교류 확대, 소외계층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 민생과 직결된 현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품격’은 말보다 행동과 실천으로 증명된다. ‘품격있는 대통령’이란 국민 앞에 늘 겸손하고 역사 앞에 늘 떳떳한 지도자다. 권위보다 공감을, 권력보다 책임을, 통치보다 섬김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품격있는 대통령이 되려면, 첫째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공감과 통합하려는 자세를 먼저 지녀야 하고, 둘째 불평등한 사회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하려는 책임의식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끝으로 갈등과 분열을 넘어 온 국민이 함께 가는 비전과 미래를 제시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 이상 힘이 강한 자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품격과 통합의 지혜로 국민과 더불어 나아가는 지도자(leader)에 의해 발전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정치의 승패를 넘어, 품격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 진정한 ‘국민의 대통령’이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품격’으로 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선택해야 할 때다.
경기도에서 중학생이 교사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중상을 입히는 엽기적인 교권 침해 사건이 발생해 충격이다. 교사가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교육 당국과 지역사회가 다시는 침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염불’로 증명되고 마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교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진 학교에서 깨우칠 덕목이 도대체 뭐가 더 있나. 더 이상 교단이 붕괴하지 않을 확실한 방안이 창출돼야 할 것이다.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수업 중 한 학생이 야구방망이로 교사를 폭행한 사건에 대해 교육청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피해 교사는 갈비뼈가 골절돼 인근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다른 학생들도 가해 학생이 범행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 학생을 특수상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경찰은 조만간 학생을 불러 정식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가해 학생은 지난달 30일 오전 9시 50분쯤 수원시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받던 중 50대 피해 남성 교사에게 여러 차례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수원교육지원청은 사건 당일 전화로 보고를 받았으며 해당 중학교를 방문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다음 이달 중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고 교권 침해 여부도 확인할 예정이라고 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피해 교사에게 변호사 지원, 상담 서비스 등을 바로 안내했다고 밝혔다. 현재 피해 교사는 병원 치료 중이어서 사실상 가해 학생과 분리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기지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돌발행동이 아니라 그동안 문제 발생 시 교사 보호보다 사후 처리에 급급하거나 침묵해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폭행 상황 이후에도 피해 교사를 보호하는 체계가 작동하지 않고 피해자가 일일이 요구해야만 움직이는 수동적 대응을 이번에도 겪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으뜸은 단연 ‘교권 침해’다. 최근 교사노동조합연맹이 교사 82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보면 58%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교권 침해 및 과도한 민원’(77.5%)이 압도적이었다. 교권이 바로 서지 않는 학교는 기둥과 대들보에 금이 간 건물과 마찬가지다. 교사가 긍지와 보람으로 가르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교육이 살아나는가. 2018년부터 5년간 전국 학교에 설치된 교보위가 심의한 교권 침해 사례는 1만1617 건이었다. 교사를 상대로 상해·폭행을 가한 사례는 5년간 1133건에 달했다. 현장에서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모욕·명예훼손’은 매년 사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교육계에서는 가해 학생이나 학부모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학생이 야구방망이로 교사를 폭행한 사건은 교단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의 병든 학교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참상이다.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부터 정밀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아내어 어떻게든 고쳐내야 한다. 최소한의 존중심도 없는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된다. 과연 이런 막장 현상이 교육 당국의 힘만 가지고 해결될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가 차지하는 인성교육의 비중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어떤 품성을 지닌 후세들을 키워낼 것인가 하는 과제는 국가사회가 나서서 함께 풀어내야 할 과제다. 학생이 교사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학교라니, 이건 정말 아니다. 비뚤어진 가치관을 교정하고, 망가진 풍토를 일신할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붕괴 상황에 빠진 교단의 권위를 재건할 백방(百方)이 필요하다.
대선을 앞두고 교사 친구들과 선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정당의 후보가 교육 관련 정책이 좋은지, 교사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대화를 나눴다. 가볍게 시작된 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아올랐다. 이야기의 결론은 교사는 투표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투표라도 잘하자는 거였다. 한참을 듣고 있다가 문득, 교사의 ‘정치적 권리’란 무엇인가 생각이 들었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투표할 권리, 피선거권,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은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시민의 권리다. 교사는 그 권리의 상당 부분에서 배제되어 있다. 공무원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현행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선거법」은 교사의 정치적 표현을 매우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치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법 위반이 된다. 문제는, 교사가 왜 그런 제약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 현장에서는 명확한 설명을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중립성이 곧 침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사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만 받고, 동시에 교육정책의 주요 수혜자이자 실행자인 교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정치적 권리란 단지 정당 활동이나 선거 출마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삶과 직결된 정책에 대해 발언하고,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지금 교사들은 학교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 교권, 성과급제, 학급당 학생 수 조정 같은 교육정책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러나 공적인 채널로 의견을 밝히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교사들은 ‘조용히 따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야 한다고 배워왔다.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시민의 권리, 자유,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지만, 자치회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겨보기도 한다. 정작 교사 본인은 그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침묵하고, 배우는 사람은 말하라는 건 모순 그 자체이다. 물론 교사의 정치 활동이 무제한 허용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교실 안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분명히 지켜져야 하며, 아이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발언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교실 밖에서까지 교사의 의견 표명이나 정책 참여가 제한된다면, 이는 단순한 공무원 윤리를 넘어서는 과도한 제약일 수 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단지 교사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침묵은 때로는 교육 현장의 왜곡을 방치하게 만든다. 교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여야 아이들에게도 목소리를 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정책이 논의되는 요즘, 교사도 ‘정책의 객체’가 아니라 ‘시민 교사’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조용히 가르치는 교사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앞장서서 말하는 교사도 필요하다. 더 이상 교사가 학교 안에서 죽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권리 위에서 서 있는 교사를 인정해 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