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송은 누구 보여주려고 하는 소송이다. 재판은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변호사는 고객을 위해 열심히 싸워야 할 뿐 아니라 열심히 싸우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소송은 극이고, 법정은 극장이며, 고객은 관객이다. 모든 극은 관객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고 모든 소송도 누구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재작년 미국 순방에서 “XXX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한 발언을 MBC가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달아 보도했다. 외교부의 정정보도 요구는 언론조정신청으로 시작했으나 조정은 결렬되었다. 정정보도 청구의 소가 법원에서 1년 넘게 계속되다 올해 1월 12일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대통령이 “바이든은 쪽팔려서”라고 한 사실이 없으므로 MBC의 보도는 허위보도라고 법원은 판단했다. MBC가 항소했으니, 소송은 계속될 것이다. 이 판결이 형사고발과 압수수색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언론탄압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있다. 보도 내용이 허위로 판단되어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되었으니, 수사와 기소가 이어지리라는 전망도 있다. 이 판결이 입증책임 전환의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보도 내용을 허위라고 판단하고 있으면서 진실이 무엇인지는 확정하지 않고 있으니 판결이 애초에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있다. 판결문을 읽었으나 옳고 그름을 섣불리 판단하지는 못하겠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판결문도 기록을 보고 나면 곡절은 있다. 막힘없이 명쾌하던 판결문도 기록을 보고 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한다. 다만 나는 외교부와 MBC가 1년 넘게 끌어온 이 소송이 도대체 누구 보여주려고 계속되어 온 소송인가 이것이 궁금하다. 모든 소송은 누구 보여주려고 하는 소송이니 이 소송도 누구 보여주려고 해 온 소송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송은 후발주자들에 추격당하면서 외화벌이에 분투하는 수출 대기업들 보라고 하는 소송은 아니다.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해 밤낮없이 투쟁하는 노조들 보라고 하는 소송도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의 결과 문닫게 되지 않을까 근심하는 소기업들 보라고 하는 소송도 아니다. ‘체험 재해의 현장’에 울타리 없이 내던져진 비정규직 노동자들, 하청 노동자들 보라고 하는 소송도 아니다. 그 위험한 일자리조차 아쉬운 실직자들과 구직자들과 구직 포기자들 보라고 하는 소송도 아니다. 이 소송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느라 바쁜 국민들 보라고 하는 소송은 아니다.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의 부족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보험의 수가(酬價) 결정 방식을 개혁하기로 했다. 또 공공정책수가를 도입, 진료량보다 의료 질과 성과에 따라 달리 보상하는 대안적 지불제도도 추진된다. 보험수가 개선은 필수의료 충족을 위한 필연적 대안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주장돼온 대표적 해결방안이다. 공정한 의료혜택·건보재정 건실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대수술’이 신속히 성공적으로 집행되기를 기대한다. 보건복지부는 4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국내 건보 지불제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보완해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찰·검사·처치 등 개별 의료행위별로 수가를 매겨 지급하는 방식이다. 건보가 매년 병·의원, 약국 등 유형별로 협상해 결정..
내 고향은 시골 농촌이다. 덕분에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정서적으로 복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0여 가구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 때 모든 집과 살림이 불태워진 잿더미 위에서 다시 집을 짓고 살아낸 조상들이었다. 그래도 동산에 달이 뜨면 소쩍새는 구슬프게 울어주었고, 낮에는 넓은 밭 위로 종달새가 소리 높이 울며 하늘로 치솟았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타나듯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구림천이 휘돌아 나가 섬진강’으로 이어졌다. 그런 자연환경 속에서 경쟁을 모르고 시기 질투 없이 먹고사는 일만을 운명으로 알고 살았다. 반면, 문화적 삶과 문명의 정보는 한없이 뒤졌다. 하고 싶은 공부도 못했고 가고 싶은 학교에도 진학할 수 없었다. 청소년 시절 ‘수확한 촌놈’이라고 무시당하기도 했다. 운명적으로 재탄생을 생각하고 어느..
2024년 벽두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우선 북한의 최선희 외무상이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면담하고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회담했다. 회담 뒤 라브로프는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조치도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라며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부인치 않았다. 최선희 외무상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정식으로 초청했고 긍정적 답을 얻었다. 예견된 바이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급격한 강화가 불안하다. 이를 감지한 탓인지 1월 25일에는 중국의 쑨웨이둥 부부장(차관)이 급히 북한을 방문했다. 북중 수교 75주년 준비라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에 대한 우려와 북한 달래기가 아닌가 싶다. 미국과 중국의 회담도 있었다. 1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걸쳐서 태국 방콕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회동했다. 형식은 지난해 11월 미·중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지만 내용은 대만 선거결과를 두고 향후 중국식 평화통일을 지지해 달라는 중국의 요구와 북한 도발 예방을 위한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촉구라는 미국의 요구가 주요의제였다. 가장 활발하게 외교활동을 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낮은 지지율이지만 외교관 출신답게 외교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시다 정권이다. 가미카와 요코 외상은 1월 5일부터 18일까지 북유럽과 동유럽을 거쳐서 미국으로 들어갔다. 최종 목적지가 미국인 이유는 4월의 미일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조율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예사롭지 않다. 북유럽과 동유럽에서는 일본의 나토(NATO) 지원을 공언함으로써 러시아 제재에 앞장서는 모습으로 미국의 환심을 사고 있지만, 속셈은 네덜란드의 국제사법재판소에 있었다. 가미카와 외상은 유럽 순방 중 네덜란드에서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관을 인정하는 국가를 늘리자고 제의했다. 관할권이란 국제법의 지배를 인정하자는 것으로 특히 영토 분쟁 중인 국가가 관할권을 인정하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을 수용한다. 즉, 실질적으로 영토를 지배하는 나라는 누가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관할권을 인정하면 반드시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야 한다. 가미카와 외상이 연일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고도의 준비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4월 미일정상회담에서는 동해 표기처럼 독도문제가 거론될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의 4강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건만, 더욱이 한반도 전쟁위기론까지 나오는 판국에 우리는 없다. 러시아는 우리에 강력 경고하고, 미·중·일 어느 나라도 한국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우리 의사가 이렇게 철저히 무시되어도 되는가, 더욱이 북한은 이제부터 남북은 민족관념이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작년의 그 활발한 외교는 말의 성찬(盛饌)이었던가. 설마 우리만 왕따?
우리나라 농촌이 농가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데다가 고령화 등으로 인해 농사지을 사람이 귀하다. 이에 경기도가 올해 농업인력 지원사업에 60억6000만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인력풀 모집·배치,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확대와 교육·관리 지원을 담당할 광역형 농촌인력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안성·평택·양평·파주·화성·포천·연천·김포·여주·용인 등 10개 시군에 농촌인력중개센터와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비를 지원한다. 이 가운데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은 농협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외국인근로자 숙소를 건립해 공동숙식을 제공하며 농작업 대행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농번기 일손 부족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5년부터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시행하..
‘마약과의 전쟁!’ 정말 가능할까? 우리가 살면서 피해야 할 한 가지는 전쟁이다. 그런데 왜 이 무서운 단어를 그리 쉽게 사용하는 걸까? 정부가 표방한 마약과의 전쟁에 경찰은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식 수사를 벌이는 듯하다. ‘걸릴 때까지 끝까지 추적한다!’ 언론은 이에 덩달아 가십성 뉴스로 도배질 한다. 결국 한 배우는 목숨을 끊고 말았다. 참으로 애석하다. 이쯤해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마약과의 전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벌이는 것인가? 이제라도 그 이유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이 전쟁은 필시 마약으로 인간이 병들고 사회가 병들어가니 이를 막아보자고 시작한 게 아니던가. 그런데 왜 본질에서 벗어나 엄벌주의로 자꾸만 치닫는 것일까? 이는 마약광고에도 선명히 나타나 있다. “마약 시작, 인생 끝!”이란다. 광고를 이렇게 1차원적으로 만들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단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 하던 중 엊그제 경기신문 문화면에서 책 하나를 발견했다. ‘청소년 마약에 관한 모든 질문.’ 국내 최초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룬 책이다. 이런 책이 나오길 학수고대했기에 반가웠다. 특히 이 책의 추천사에 눈이 갔다. “편견은 치유와 변화의 길을 막아선다.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려면 법과 징벌이 아닌 예방과 교육을 통한 긍정으로 시작돼야 한다.” 너무도 공감이 가는 문구다. 마약 문제는 징벌보다 예방과 치료가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 선례가 있다. 1970년대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약물 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이 전쟁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닉슨은 베트남 전쟁 반대 여론과 젊은이들의 불신으로 정권이 휘청거리자 마약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대마초의 악마화는 그의 무능을 가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2021년 4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정론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은 즉각 다음과 같은 논리로 반박했다. “축하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결과가 이미 알려진 전투다. 그것은 패배다. 모든 중독 전문가가 알고 있듯이 억압은 소비를 줄이지 않으며 제품 유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마약 밀매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효과적인 방법은 시장을 규제하고 예방에 중점을 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마크롱은 ‘대마초 벌금’을 부과해 소비자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 중독 전문가들이 알고 있듯이 ‘마약과의 전쟁’은 건강 상황을 악화시킨다. 잠재적인 환자가 범죄자처럼 쫓기면 그들은 도망치거나 숨고 만다.” 결론적으로 한국 정부가 닉슨이나 마크롱처럼 마약과의 전쟁을 정치적 수단이 아닌 국민의 건강을 걱정해 시작했다면 이제라도 방법을 바꾸길 바란다. 마약 조직을 철저히 단속해 소탕하고 징벌보다 예방과 치료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마약 전문가들의 말처럼 억압은 소비를 줄이지 못하고 제품 유통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1948년 제헌 국회 의원 수는 200명이었다. 당시 인구가 2천만 명으로 추정되어 국회의원을 10만 선량(選良)이라고 일컬었다. 단원제 의회인 우리나라 국회의 의원 수는 현재 300명, 2023년 말 기준 인구는 5132만 5329명으로 의원 1인당 약 17만 1000명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뉴질랜드의 단원제 의회뿐만 아니라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캐나다 양원제 하원의 의원 수와 비교해 적은 편이다.(오스트랄리아 하원 의원 수와 비슷함) 1949년 제정된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로 국회의원에게 세비·직무수당·거마비·여비 등을 지급하였다. 현재는 '국회의원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로 수당·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 입법 및 정책개발비, 여비 등을 지급한다. 1981년 국회의원의 보조직원은 비서관·보조원·운전원 3인이었다. 현재는 8인(보좌관 2인, 선임비서관 2인, 비서관 4인)의 보좌직원으로 증가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많은 편이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 등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자율적인 입법·정책 형성력은 저수준에 머물러 있다. 비용 대비 효능이 낮다. 그 원인은 대통령 중심의 국가운영, 여·야 정당의 정쟁 치중, 국회의원의 전문성·도덕성 부족, 여당의 행정부 비호 등이며 그 대부분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불신하는 사유에 해당된다. 국회의원 의정활동의 정량적 평가 대상인 의안 발의에서 본인 대표 입법안을 소속 정당의 당론화 등 의원 다수의 동의를 모아서 실현시키려는 노력 없이 보여주기식 행태를 하고 있다. 다수의 의안이 임기만료 폐기되고 다음 국회에 유사한 많은 의안이 다시 발의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정책 중심의 치열한 의정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국회의원의 직무가 아닌, 국민의 삶과 무관한 정치평론과 의원 개인 언행에 대한 상호 비난, 적대적인 말다툼에 몰두하고 있다. 직업적 국회의원이 정치불신과 국민 갈등을 조장하는 소음 공해의 주역이 되어 자기 비하의 괴이한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직무 수행에 부여된 권한 등의 오용·남용의 결과로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개헌, 검찰·경찰·방송의 정치적 중립, 지방행정체제 개편, 고위공직후보자 인사 검증, 연금 개혁 등등 케케묵은 국가의 많은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오랜 기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비정상의 국회를 정상으로 바꾸기 위해 도돌이 국회의 갱생적 진화가 필요하다. 권력 향유·출세욕 등 금권정치와 정치기술에 사로잡힌 정치 낭인이 아니라 공복(公僕)으로서의 열정과 책임감, 전문성 등 실력, 도덕성을 갖추어 오로지 국민 삶의 향상과 국가이익 증진을 위한 정책 경쟁에 매진하는 정치 지사에게 국민주권을 맡겨야만 한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4년 뒤 경기도 내 어린이집·유치원 10곳 중 3곳이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때 우후죽순 건립돼 과포화 상태를 이뤘던 어린이집·유치원이 수요 감소에 따른 급격한 폐업 도미노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먼저 소멸 위기로 치닫는 셈이다. 지금은 수용할 아동이 없어서 문을 닫지만, 가르치고 키울 공간이 없어서 출산 기피를 더욱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인다. 정밀한 대책이 긴급한 상황이다. 어린이집·유치원 소멸 문제는 육아정책연구를 수행하는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KICCE)의 ‘육아정책포럼’ 최근 호에 실린 ‘저출생시대 어린이집·유치원 인프라 공급 진단’(이재희 연구위원)에서 드러났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저위 추계)를 활용한 결과 어린이집·유치원 취원율과 정원..
총선 이슈가 블랙홀이 되어 대한민국의 모든 화제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 틈을 잠시간 비집고 들어온 뉴스는 다름 아닌 미국발 ‘김정은 전쟁결심설’이다. 1월 11일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소속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헤커 교수가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Is Kim Jong Un Preparing for War?’ 제하의 칼럼이 발단이었다. 국내 다수의 언론매체가 연쇄적으로 이 칼럼을 전쟁설의 근거로 인용보도하였고 그 파장은 총선을 앞둔 정치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주변사람들까지 내게 ‘진짜 전쟁이 나느냐’고 물어보는 일종의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의 단계로 나아가는듯하다. 지척에 DMZ를 두고서도 경계 너머 북한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일상을 살면서, 태평양 건너에서 쓰여진 칼럼 한편에 요동치는 우리사회의 모습에서 저마다 내재된 분단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또렷이 확인하게 된다. 언론지면을 전쟁위기설이 장식하는 사이, 북한은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 일주일간 동해와 서해로 세차례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위기국면의 한반도에서 조연이 되기를 거부하는 몸짓이다. 국제사회가 직면한 두 개의 전선(러-우·이-하 전쟁)과 경제안보의 진영화 흐름 속에 남북관계는 본격적인 경색국면에 진입하였다. 우리는 조금 더 냉정하게 이러한 전쟁설과 같은 ‘밴드왜건 효과’의 전조현상들에 시선을 고정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언급할 때 사용하던 겹화살괄호였다. 북한 문화어에서 겹화살괄호는 대상 어휘에 대해 강조하거나 특정한 의도를 드러내고자 할 때 종종 쓰인다. 북한은 지난해 7월 10일 이후, 그간 대외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서 사용하던 ‘남조선’ 호칭을 겹화살괄호 속 ‘대한민국’으로 적극 대체하기 시작했다.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였다. 대한민국은 주로 ‘적대국가’(rivalry)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앞뒤 인용부호의 존재는 전문가들의 여러 추측을 양산했다. ‘통일을 추구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남북간의 기존 문법을 전면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중의적 뉘앙스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북한이 인용부호를 던져버렸다. 북한이 날 것의 대한민국을 단독 언급한 것은 지난해 12월 30일이었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론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과는…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발언 형식의 보도가 기점이었다. 이후 북한의 공식매체에서 ‘대한민국’을 에둘렀던 겹화살괄호는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1월 2일 김여정 부부장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같은 고유명사의 방식으로 여러차례 등장하고 있다. 참고로 주변국을 병렬식으로 언급할 때의 관행도 지난 12월 2일부터는 미·남·일에서 미·일·대한민국으로 그 순서를 바꾸었다. 1월 1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의 시정연설에서 김위원장이 언급한 ‘전쟁시 대한민국의 공화국 편입’ 문제는 차기 회의에서 북한의 개헌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관측된 ‘전쟁할 결심’이 부디 억측이었기를 바란다. 적대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의 체계적인 빌드업은 한반도에 어떤 모습의 나비효과로 나타날까? ‘대한민국과 북한’은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을까?
사이비는, 생활에서나 공부에서나, 경계(警戒)하여야 할 대상이다. 사이비종교 사이비기자 등 그 경계의 사례를 보여주는 어휘들이 수두룩하다. 서양문물의 영향 때문에 동아시아 문화의 거대한 상징인 용(龍)을 드래곤(dragon)이라고 번역한 것도 물론 사이비다. 새해 ‘청룡(靑龍)의 해’를 ‘이어 오브 블루 드래곤(Year of Blue Dragon)이라고 쓴 여러 (영문) 매체를 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드래곤(이라는 상상 속 동물)이 없다. 서양에는 龍(이라는 상상 속 동물)이 없다. 어쩌다 언제부터인지 용을 드래곤이라고 번역하고, 시간 지나도 그 번역이 황당하다 생각하는 지적이 없었음이 신기하다. 개는 도그(dog), 계란은 에그(egg)지만 용은 드래곤이 아니다. 그럼 뭔가, 용은 용이고 영자(英字)로 적자면 ’yong’이다. 청룡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