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제정세의 변화를 실감하는 일들이 잦다. 지난 3일 베이징 천안문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30여 개 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망루 중앙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서서 사열을 받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냉전 당시의 북·중·러 동맹을 연상하게 했다. 4일에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연방 수사당국이 조지아주의 현대차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하여 우리 국민 3백여 명 등 475명의 노동자를 체포했다. 합법 비자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지만, 쇠사슬을 채우는 등 비인도적 연행 장면이 공개되고 자국의 필요에 따른 공장 건설임에도 전문 인력에 대한 적법한 입국비자 발급이 극히 어려웠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대내외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모두가 알듯, 외면적 정세 변화는 내면의 큰 변화를 대변한다. 전승절 행사는 그 직전인 8월 31일~9월 1일에 중국 텐진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의 결과와 함께 보아야 한다. 2001년 중·러와 중앙아시아 4개국 간 대화체로 출범한 이 기구는 이제 인도·이란 등 10개 회원국, 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 등 다수 파트너국이 참여하는 대표적 반서방 연대 기구가 됐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안보 위협과 도전에 대한 공동 대응,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위반하는 경제조치 반대 등을 강조한 ‘텐진선언’을 채택하고 회원국간 에너지·신산업 등 경협 강화 등 성과를 거두었다. 시진핑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직접 내기도 했다. 이같은 중국 주도의 노력과 더불어 작년 이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북러관계 결속이 있었기에 북·중·러 반미 연대의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존의 국제무역질서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상호관세를 각국에 요구하고 있다. 또 미국은 전세계 이민자를 받아들이며 발전한 스스로의 역사와 단절하면서, 불법이민 단속과 대규모 투자 유치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대미 상품수출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하려던 국가들은 고관세로 피해를 입고 있고, 대미 투자로 관세 압박에 대처하려던 우리는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장비·기술만 빼내려는 천박한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오늘도 도처에서 전쟁과 무력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러·우전쟁과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군사행동이 계속되고, 얼마 전 인도·파키스탄 충돌도 재발했다. 심각한 위기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일반 국민이다. 우크라이나 국민 1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1천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났다. 가자 사태에서는 팔레스타인 주민 6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전쟁을 피하고 국가안보를 유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도 국민 안전 보호이다. 요즘 경기도 접경지역을 자주 찾는다. 10일 파주의 화석정(花石亭)에서 임진왜란 때 선조의 임진강 도강을 위해 불태워졌던 역사와 함께 당시 백성의 고난을 되새겼다. 애틀란타로 전세기를 띄워 우리 국민을 이송한다는 보도를 접하며, 2021년 아프간 사태 때 군용기를 급파해 현지 협력자를 안전하게 이송하느라 청와대와 외교·국방부가 함께 노심초사했던 ‘미라클작전’이 떠올랐다. 무사 귀국과 원만한 문제 해결을 빈다.
가평군은 올여름 큰 수재를 입었다. 7월19일~20일 쏟아진 극한 폭우에, 이곳저곳에서 산사태가 났고, 계곡과 하천이 범람해 큰 피해를 입었다. 한 생존 주민은 그 날밤 ‘물이 서서 가는 것을 봤다’며 공포의 순간을 전해주기도 했다. 다행히 나의 집과 마을은 무사했지만, 수재 지역의 복구를 돕기 위해 현장에 가서 수재의 참상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종은 도대체 얼마나 더 참화를 겪어야 정신을 차릴까 하는 암담한 질문을 계속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재앙은 아직 내게 닥치지 않았을 뿐이지 국경을 불문하고, 산간과 도시를 불문하고 연례행사처럼 닥치는 재앙이다. 그 재앙의 강도는 세지고, 빈도는 잦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도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은 화석연료 사용을 확대하는 추세고, 그나마 믿었던 EU도 지난 7월 초 당초 계획보다 사실상 완화된 기후 목표를 발표해 환경단체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런 모습들은 인류가 함께 죽을 수는 있어도 지는 것은 못 참는 죽음의 문명 속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런 죽음의 문명 속에서 K-Initiative를 주창하는 우리나라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때마침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pop 그룹 ‘헌트릭스’가 어둠의 악령을 무찌르며 선한 영으로 가득찬 ‘혼문’의 세상을 만드는 K-Initiative의 모습을 보여줬다. 현실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나의 희망찬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바로 북극항로 열풍이다. 북극항로는 현재 약 4개월(7~10월) 정도 운항이 가능하며, 기술적 문제 등이 해결된다면 2030년경에는 연중 항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북극 항로가 열릴 정도로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우리는 안전할까? ‘극한’, ‘괴물’ 폭우를 넘는 파멸적 폭우가 쏟아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슈퍼태풍이 올 것으로 예측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 기후변화 연구기관인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은 2030년경 부산항이 평균 해수면 보다 낮아져 물에 잠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바로 그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재명 정부는 ‘북극항로 시대 주도 K-해양강국’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외국의 주요 해운사들조차도 환경 보호를 이유로 북극 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판에 대한민국은 ‘북극 항로’의 나팔수로 나선 격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악령을 퍼뜨리는 ‘사자 보이즈’의 모습이 K-Initiative가 가고자 하는 모습인가? 어제(10일) 배포된 경기도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민의 89%가 ‘기후위기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생각’하고, 90%가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는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복된 산재 사망은 미필적 고의 살인”이라 하고, 자살을 “사회적 재난의 관점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한다면 생명 중심의 리더십을 보여줘 국민의 큰 호응을 얻었다. 바로 그런 생명 중심 관점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해 무대응, 느린 대응 또는 온실가스 감축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정책은 인류 공멸로 가는 미필적 고의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올 여름 첫 개장한 '동탄 패밀리풀'이 40일만에 4만3000명의 방문 기록을 세우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가족들의 휴식으로 활기를 띄었다. (경기신문 9월 9일자 12면 11일자 8면 보도) 그러나 계절이 바뀌는 순간, 그 활기는 곧 사라지고 텅 빈 시설만 남았다. 여름철만 지나면 반복되는 이 모습은 주민들로 하여금 “세금으로 지은 시설이 사실상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낳게 한다. 하지만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설을 어떻게 하면 사계절 활용 가능한 시민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겨울철엔 아이스링크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 수영장 구조를 그대로 활용해 바닥에 냉각 장치를 설치하면, 별도의 대형 투자가 없이도 계절형 레포츠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 그리고 수영장 주변을 빛 축제나 겨울 테마파크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단순히 놀고 쉬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상권과 연계된 관광 자원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비수기에는 야외 공연장·전시 공간으로 개방할 수 있다. 지역 예술가나 동호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무대로 제공한다면, 주민 참여와 문화 향유 기회가 확대된다. 이러한 대안들은 모두 화성특례시가 조금만 의지를 가진다면 실현 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행정이 ‘여름철 물놀이 시설’이라는 기존 틀에 갇히지 않고, 사계절을 고려한 운영 전략을 세우는지가 관건이다. 동탄 패밀리풀은 단순한 수영장이 아니라, 주민들이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 이제는 행정이 그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 차례다. [ 경기신문 = 최순철 기자 ]
수사·기속권 독점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왔던 검찰청이 사라진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7일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최대 관심은 검찰청 폐지였고, 예상대로 검찰이 가지고 있는 수사권을 신설되는 중대범죄수사청에 넘기고, 검찰청은 공소청으로 명칭을 바꿔 기소권만 행사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처리될 예정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 9월 검찰청은 폐지된다. 1948년 검찰 조직이 만들어진지 78년 만에 문을 닫게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대한민국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에 대한 조정, 즉 검찰개혁 논의는 수십년 간 이어져 왔다. 그 때마다 검찰 내부의 반발과 국회로 스며든 정치검찰 출신 정치인들의 집요한 반대로 좌절됐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공론화에 나선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첫 번째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는 검찰권한의 분산을 위해 공수처 설립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으나 하나회 등 다른 개혁과제에 밀리고 검찰 내부의 반발로 결국 포기했다. 김대중 정부는 검찰의 기소독점을 개혁하기 위해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본격적인 검찰개혁을 구상했으나 여론을 얻지 못해 좌절했고 ‘검사동일체’를 폐지하는 수준에서 멈췄다. 보수정권에서도 검찰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인지했으나 검찰조직의 반대에 부딪혀 흔적만 남기는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는 검사의 수사지휘권에 경찰의 재지휘 건의를 보완하는 정도의 검경수사권 미세조정에 머물렀고,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설립하는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는 대검 중수부 폐지와 상설특검 시행 정도의 수준에서 검찰개혁을 다뤘다. 비록 변죽만 울리는 수준이었지만, 검찰 출신 정치인이 대거 입성했던 보수정권 시절에서도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의 폐해는 계속 발생했기 때문에 그나마 검찰개혁의 흔적이라도 남기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본질적인 검찰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검경수사권 일부조정, 공수처 설립, 검찰 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 등을 제도화 했지만,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면서 모든 것이 형해화 되고 역풍에 시달리며 좌절했다. 보수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추진했던 검찰개혁 의제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으로 모두 사라졌다. 검찰의 위상이 최대치로 커졌다. 과거에는 수사·기소독점권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정치권력과 거래를 하며 검찰권력을 유지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으로 검찰권력은 정치권력까지 장악했다. 국무위원과 정보기관은 물론 정부 고위직,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검사들이 장악했다. 당연히 검찰의 비상식적 조직문화가 정부로 스며들었고, 윤 전 대통령은 검찰조직 다루듯 국정을 운영했다. 그러나 폐쇄적인 검찰조직과는 다르게 여러형태로 광범위한 국민참여가 제도화된 정부조직, 검사와는 다르게 법과 국민여론을 두려워하며 존중하는 공직사회 때문에 윤 전 대통령 마음대로 국정을 주무를 수 없었고, 결국 내란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다. 검찰청 폐지는 역설적이게도 검찰권력이 만든 결과다. 김학의 성접대·성폭행 무혐의, 이명박 다스 관련 무혐의, 김건희 주가조작 무혐의,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등 대한민국 검찰 조직이 숱하게 벌인 짓들은 범죄다. 언론이 지켜보는 큰 사건에 대해서도 이 정도인데 언론과 정치권도 모르는 일반사건에서는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권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끔찍한 고통에 빠뜨렸을지 쉽게 예상 가능한 일이다. 검찰청 폐지는 검찰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 1년의 유예기간 동안 정부와 국회는 관련 법안과 시행령들을 꼼꼼히 준비해서 불가역적인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일부 검사들의 말처럼 잘못된 검찰개혁의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향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거스를 수 없는 검찰개혁이 완성되어야 한다. 이를위해 정부와 민주당은 좌절했던 역사적 경험을 무겁게 받아들여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바람이고 대한민국 정상화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내란에 대한 단죄가 늦어지고 있다. 무한 권력을 노렸던 쿠데타 시도가 아직도 법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내란 수괴는 여전히 옥중에서 추악한 항거(?)를 하고 있고 그의 추종 세력은 야당을 장악해 오히려 내란은 여당이 동조했다는 억지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암적 세력의 조직적 저항 때문이지만 정의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사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법부는 헌법을 “공정”이라는 원칙으로 사회의 기준을 세우는 역할을 부여받은 권력이다. 그런데 작금의 사법부는 모두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국회에서 특검이 발의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연일 쏟아지는 특검의 새로운 소식에 새삼 민주주의를 지킨 국민 된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만 연이은 법원의 상식 밖 판결로 그들은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다. 윤석열을 어이없는 핑계로 석방해 준 지귀연 판사가 내란 재판을 주도한다는 것부터, 침대 재판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하세월 하는 재판 과정을 보면서 그 결과가 예견된다면 무리일까. 내란의 최고 협력자였던 한덕수 전 총리의 체포영장을 기각시키니 앞으로 있을 관련 장관들의 영장 청구도 불 보듯 뻔할 것이고, 김건희 재산 불리기에 동원되었던 집사 3인방 역시 범죄의 중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영장이 기각되었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런 판결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재명 대선 후보를 제거하려고 했던 조희대 사법부의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윤의 판단이 옳았고 그의 시대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그들 안중에 국민이 있을 리 없다. 아니 사법 엘리트들이 알아서 하니 국민은 아무 소리 말고 따라만 오라는 것은 아닌지. 법관들이 판결의 핑계로 삼는 법과 양심은 그들만의 법이고, 그들끼리만의 양심일 뿐이다. 그동안 사법부는 모든 감시로부터 예외적인 권력이었기에 아무런 구속도 없고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무한대로 성장한 철옹성이 되어 있었다. 사법권력을 이용해 얼마든지 죄를 감해주거나 더해 줄 수 있고 그 와중에 사법거래로 돈을 벌어도 무풍지대요, 전관예우도 확실했다. 더 이상 오늘의 판사에게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나 법복을 입은 천사였던 김홍섭 판사를 찾기는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므로 국민의 선택에 의한 선출직이 어떠한 임명직보다도 우월한 정치체제이다. 그래서 총리가 되었던 대법원장이든 그 누구도 국민이 선출한 입법권 아래에 있는 것이다. 선출직들의 결정으로 77년 만에 사라지는 검찰청과 방통위를 보라. 이게 민주주의이다. 여당은 최근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국회 법사위에 올렸지만, 통과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위헌 제소를 비롯한 많은 구설수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주권정부’라고 한다면 진짜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거침없이 실현해야 한다. 과거 친일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와 4·19 이후 3.15부정선거 청산을 위한 ‘특별재판부’가 설치된 역사가 있다. 두려워하면 하나도 이룰 수 없다. 작금의 사법부가 대한민국의 앞길을 막는 최대의 적폐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지금 개혁해야 한다. 하루빨리 내란 특별재판부를 설치해 사태를 종식시켜라.
9월4일, 조지아주 현대차, LG배터리공장 건설현장을 헬기가 뜨고 장갑차가 포위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토끼몰이식 노동자 사냥이었다. 공장을 짓고 있던 475명의 한국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체포해 쇠사슬로 굴비 엮듯이 묶어 끌고 갔다. 테러분자들도 아니었고 마약밀매범들도 아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든다며 지들이 공장 지으라고 닥달해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에 보낸 동맹국 기업의 엔지니어들이었다. 이게 다 트럼프의 계획된 쇼였다. 트럼프는 “ICE는 자기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불법체류자들을 쓰지말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뻔뻔스럽게 눙치고 있다. 노림수는 뻔하다. 관세협상과 투자협정을 미국이 원하는대로 도장 찍으라는 협박이다. 일본은 자동차 15%관세를 위해 진작에 도장찍고 항복했다. 투자금 5500억 달러는 일본이 내고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 이건 투자가 아니고 약탈이다. 미국의 약탈은 범세계적이다. 일본에 이어 유럽 7500억 달러를,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인 한국은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퍼붓기로 했단다. 대만도 4000억 달러 플러스 알파 운운하고 있다. 각 나라의 알짜배기 공장이란 공장은 죄다 미국으로 옮겨야 한다. 당장은 억울해도 소용없다. 시장과 안보를 손에 쥔 미국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니 점점 미국은 강도가 되어간다. 상대의 숨통을 틀어쥐고 동맹국을 갈취하는 이런 약탈적 제국주의라니.. 도대체 왜 이럴까? 세계는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시대다. “미국이 독일과 일본을 조기에 통제하지 못해 세계는 큰 댓가를 치어야 했다. 중국을 상대로 똑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스티븐 포브스의 분석처럼 미국의 모든 정책은 중국견제라는 전략적 목표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조차 미국의 자업자득이다. 2001년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 관세를 낮추어 줌으로서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미국 GNP의 64%까지 따라잡았다. 뒤늦게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미국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동맹을 동원해 새 판을 짜고 있다. 이런다고 글로벌 패권의 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문제는 미국이 화투패를 거꾸로 치고 있다는 점이다. 동맹국의 힘을 모아서 대응해도 시원찮을 판에 트럼프는 모든 동맹국을 갈취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쇠사슬로 위대해지겠다고? 필패의 길이다. 결국 트럼프의 선택은 미국의 쇠락을 가속화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 같다. 멸종해가는 공룡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대륙의 공룡을 공수해온들 공룡이 살 수 있는 생태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나? 미국 비위 맞출려다 한국 경제가 죽을 지경이다. 차라리 이럴 때는 시민들이 반미시위라도 벌여야 정부 협상력이 생길텐데... 그런데 광화문에는 아직도 성조기를 흔드는 노친네들과 극우화된 청년들이 트럼프가 항공모함을 끌고와서 이재명 정부를 몰아내주기를 학수고대하는가 하면 미국까지 떼로 몰려가서 대한민국 얼굴에 똥칠하고 있다. 매국노가 따로없다. 어쩌면 미국은 그들을 믿고 저러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지금 내란도 불사하는 극우세력과 약탈적 제국주의라는 내우외환의 위기국면이다. 이러다간 미국보다 우리가 먼저 망할 판이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추석연휴를 3주 정도 앞두고 밥상물가가 크게 올랐다. 벌써부터 차례상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이달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8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농·축·수산물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8%나 올랐다. 통계청의 물가지수 조사 농·축·수산물 품목 78개 중 51개(67.1%) 물가가 지난해보다 상승했다. 곡물은 무려 14.7%나 크게 올랐다. 재고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쌀은 11.0% 올랐는데 이는 19개월 만의 최대 폭이었다. 배추 가격은 한 달 새 4.8% 올라 4개월 만에 오름세를 보였는데 이는 지난해 대비 30% 이상 오른 가격이다. 시금치·브로콜리 등 일부 채소의 경우 한 달 새 무려 50% 이상 상승했다. 감자는 7.6% 상승, 2년 4개월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다. 축산물은 7.1% 뛰었다. 축산물의 가격상승은 도축 마릿수와 수입 물량 감소, 휴가철·급식 수요 증가 등이 원인이었다. 돼지고기(9.4%), 국산 쇠고기(6.0%), 달걀(8.0%) 등이 일제히 올랐다. 주요 어종의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수산물 값도 뛰어 오르고 있다. 가공식품 가격까지 동반상승했다. 밀가루·부침가루 같은 가공식품은 지난해에 비해 두 자릿수 대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빵(6.5%), 커피(14.6%), 햄·베이컨(11.3%), 김치(15.5%) 등 주요 품목에서의 상승폭이 컸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추석 앞두고 치솟는 물가를 우려했다. 유례없는 이상기후로 장바구니 물가가 매우 우려된다면서 “물가 불안이 확대되지 않도록 세심하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성수품을 중심으로 물가 안정 대책을 촘촘히 마련하라면서 유통 구조에 대한 합리적 개혁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바구니 물가가 출렁이는 데는 불합리한 유통 구조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5일 추석 농식품 수급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송미령 장관은 “농업·농촌 분야의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국민 모두가 풍성하고 안전한 추석을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농식품 공급안정에 최선을 다할 뿐 만 아니라 이번 명절이 소비 활성화와 내수경기 회복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력의 결과는 추석 때 밝혀질 것이다. 유통업계 역시 정부의 밥상물가 안정노력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명절 장바구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할인 행사와 기획세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8일자 6면, ‘들썩이는 밥상 물가… 차례상도 가심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채소·과일·축산물 할인전을 확대했다.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편의점 4사는 일제히 추석 선물세트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김, 통조림, 생활용품 등 활용도가 높은 상품과 건강기능식품, 소포장 정육·수산물 등 3만~10만 원대 실속형 상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명절을 앞두고 단기적으로 진행되는 할인 행사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체감 부담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공급 확대와 대규모 할인 지원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물가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9월 물가상승률이 2%대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최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례적인 폭염·폭우로 일부 농수산물은 예년에 비해 수급이 불안하고, 추석 차례용품 가격 급등이 우려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통 구조를 효율화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 지까지 살펴서 ‘다각적인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제물가 상승, 기후위기로 인한 생산 저하 등 극복해야 할 난관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비영리단체인 ‘행복여정문학’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탈북민들이 2021년 만들었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 문학으로 고통을 치유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과 매력 있는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문학 활동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행복여정문학’에서 주최한 제8회 시화전이 9월 8일부터 26일까지 용인시청 1층에 전시된다. 제8회 시화전에 표현된 추석의 의미는 고향, 그리움 이별, 아픔 그리고 추억이다. 고향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곳이다. 살았던 곳에 대한 추억이 애틋하기도 하지만 아프기도 하다. 그리고 떠나온 미안한 마음이다. 김혜성 시인은 고향으로 달리는 차들이 밉고 야속하기도 하다. 그래서 추석이 두렵고 싫다. 만약 고향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맨발에 감발하고 가겠다고 김명화 시인은 쓰고 있다. 웃음소리 같기도 눈물 소리 같은 그리운 고향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고향 목소리를 감각하는 차명희 시인의 글은 너무 가까워 더 멀어 보이는 고향이라는 기억의 공간을 지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차명희 시인의 ‘생존’은 짧은 글에 발칙한 상상과 공감을 담아낸다. 김미옥 시인은 고향을 ‘봄이면 백살구 하얀 꽃 피고 무정세월 백두의 정기 품고 흐르는 두만강 기슭 눈에 삼삼 그리운 곳, 이 몸이 타향에서 백골 된다 해도 너는 다 품고 기억하고 있겠지’로 쓰고 있다. 시인에게 고향 회령은 백살구가 유명하고 두만강 기슭은 어린 시절 뛰어놀던 추억이 있다. 그래서 나를 부디 잊지 말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끓여주던 동태탕과 마디진 손끝에서 빛난 가마솔 있는 부뚜막은 아버지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다. 고향이 길주인 조혜리 시인은 바람이 불고 눈이 많이 내리면 고향이 걱정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있을가 그런 생각조차 그리움으로 표현한다. 그리운 동생이 잘 지내고 있을거라 스스로 안부를 묻고 너무 그리워 흘리는 눈물이 바다로 되었다. 함흥이 고향인 김길록 시인은 첫 작품 ‘아침’에서 자고 깨는 순간조차 고향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전한다. 가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웠다는 마음을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에 실어 보낸다. 정하나 시인은 오늘이 어머님 생신인데 갈 수 없고 볼 수 없어 효도 한번 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토한다. 옥수수 국수 사 올거라 말하고 집 나선지 20년이 되어 이제는 머리도 희어지고 돌아가지 못한 죄스러움을 ‘내 아가야!’라는 시에 담고 있다. 박은아 시인은 늘 생선 대가리만 가져가는 고향 엄마들의 아야기를 ‘슬픈 습관’에 담고 있다. 김희숙 시인의 다섯 개 작품과 동시작가를 꿈꾸는 은주아 시인의 작품은 눈여겨 볼만하다. 고향 떠나던 날 사과 꽃이 어깨에 떨어지는 형상은 그림처럼 뇌리에 박힌다. 사십대의 자화상은 생선을 등에 지고 박달령을 넘었을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젖은 지폐로 입술을 흔들었을 유일한 미소가 보인다. 은주아 시인의 ‘진달래는 어느 곳에 있든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피어 있다’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 해보게 한다. 9월 11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용인시청 1층에서 탈북 시인 9명이 참가해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 지난 6월 9일 경향신문은 오광수 민정수석이 차명으로 부동산 관리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발표 하루만이었다. 이 보도로 오 수석은 임명된지 5일만에 낙마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 보도를 ‘이달의 기자상’에 선정했다. 기자협회는 선정 이유로 “이 보도는 단순 의혹 제기를 넘어 실제 낙마로 이어진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제보 없이 발로 뛴 정공법 보도로, 정권 초 언론의 감시 기능이 실질적 결과로 이어진 사례”라고 밝혔다. # JTBC는 9월 2일 ‘오광수 전 수석이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초호화 변호인단에 합류했다’고 통일교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었던 김오수 변호사와 이재명 대통령 사법연수원 동기 강찬우 변호사도 자문 변호사로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강 변호사는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재판의 변호를 맡았다. 보도가 나간 후 오광수, 김오수 변호사는 한 총재 변호인단서 사임했다. 제보를 받아 취재한 기사였지만 법조계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끌어냈다. 언론보도의 정수를 보였다. # ‘코스피 상승률, 세계 1위서 한 달 새 22위로 떨어져’. 조선일보의 8월 14일 B5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 보도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베트남 증시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는데, 한국 코스피 지수는 동력을 상실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국가별 상승률을 그래픽까지 활용했다. 최근 1개월간 10% 이상 상승한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 2.3% 성장한 영국 아래, 마지막으로 0.7% 성장한 한국을 배치했다. 특정 기간을 작위적으로 선정, 억지 순위를 매긴 악의적 보도였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코스피 지수는 3200선을 오르내렸다. 실제로 종가 기준 대선 직전인 5월 31일 2608.42이던 코스피 지수는 이 기사를 작성했던 8월 13일 3224.37로 23.6%가 상승했다. 언론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잘 보여준 기사였다. # 조선일보 사례 하나 더. 9월 4일자 ‘신문은 선생님’ 지면에 기우제 관련 내용을 실었다. 강릉의 극심한 가뭄을 다뤘다. 제목은 “가뭄은 국가 위기···왕은 ‘내 잘못’이라며 반찬도 줄여”였다. 김홍규 강릉 시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가뭄대책 질문에 “9월에는 비가 올거라 굳게 믿는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으로 김 시장은 전국민의 조롱 대상이 됐다. 가뭄을 미리 대비했던 이웃 속초시와 극적으로 대비되기도 했다. 강릉이 지역구인 권성동 의원도 지탄 대상이 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외부 필진의 글을 빌어 가뭄 책임을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담았다. 교묘했다. 이런 글이 학생들의 교육용 지면에 활용된 건 부적절했다. # 좋은 기사의 조건은 무엇일까? 근간은 기사를 통한 권력 감시와 사회적 약자 보호다. 보도를 통해 권력자를 낙마시키거나 제도 개혁을 이끌어내면 금상첨화다.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언론 주권자인 국민의 권익을 대변한다. 반면, 나쁜 기사는 가짜뉴스, 조작 기사, 왜곡 보도를 일삼는다. 시민과 언론을 격리시킨다. 유튜브를 통한 가짜뉴스는 사회 안정을 해치는 악성 종양이 됐다. 조작과 왜곡은 일부 전통 미디어가 선도하고 있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언론 독재다.
정부가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반의사불벌죄 폐지 논의를 가정폭력·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에도 확대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다음 뒤늦게 살해·폭행 등 2차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의 중대성과 2차 가해 위험성을 도외시한 반의사불벌죄는 시대에 맞지 않다는 여론이다. 보다 안전한 사회 구축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다음 달 23일부터 시행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더 이상 적용받을 수 없다. 그동안 체불 사업주가 합의나 금전 거래를 명목으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내는 사례가 많아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반의사불벌죄란 형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아니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단순·존속 폭행죄, 과실 상해죄, 단순·존속 협박죄, 명예 훼손죄 등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제도 개선이 가정폭력·스토킹 같은 관계성 범죄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친분을 이용해 합의를 종용하고, 처벌 불원 의사를 빌미로 보복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트폭력은 연인관계라는 특수성에다가 보복 우려 때문에 쉽게 처벌불원 합의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합의 이후에 더 강력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교제폭력 신고 접수 건수는 8만 8394건에 달한다. 지난 2020년 4만 9225건에서 4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신고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과는 달리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3년 기준 교제폭력 가해자 1만 3939명 중 구속된 건 310명(2.2%)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은 교제폭력 관련 법이 미비하거나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제폭력과 관련해 처벌할 수 있는 현행법은 스토킹처벌법인데 반복적인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다가 반의사불벌죄도 문제다. 교제폭력의 특성상 보복의 두려움 등으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7월 29일, 대전 서구 괴정동의 한 주택가에서 발생한 끔찍한 전 연인 살해 사건도 피해 여성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4차례나 112신고를 했으나 끝내 공권력이 보호해주지 못했다. 사건 한 달 전 피해자가 가해 남성의 폭행에도 처벌을 원치 않았고 경찰의 안전조치 권유도 거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5일 화성 동탄에서 발생한 납치살인 사건에서 피해자는 지난해 9월 가해자를 신고했다가 뒤늦게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울산 스토킹 살인미수 사건에서도 검찰이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구속 절차를 포기해 논란이 일었다.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연인 또는 가족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반의사불벌죄 등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적극적인 대처를 하기가 어렵다는 게 허점이다.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격리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섬세한 규정이 필요하다. ‘처벌불원 의사 표시 후 일정 기간 이내에는 철회가 가능하도록 법을 바꾸자’는 의견이나 ‘피해자가 술에 취했거나 충격 상태에서 한 처벌불원 의사 표시는 효력을 유보하고, 최소 24시간 이후에만 의사 표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등 제기된 다양한 청원 의견에 눈길이 간다. 끔찍한 범죄를 당하고도 인정에 이끌리거나 보복이 두려워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다가 더 심각한 피해를 입는 일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최소한,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