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한 노파가 변호사에게 두 가지 유언을 했다. 첫째는 죽게 되면 화장할 것. 두 번째로는 유골은 반드시 뉴욕 맨해튼 최대 번화가에 뿌려줄 것이었다. 의아했던 변호사가 노파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뉴욕 맨해튼입니까?” 노파는 말했다. “쇼핑을 좋아하는 내 딸들이 반드시 일주일에 두 번은 방문해 줄 것 같아서요.”라고. 사람도 나이 들어 동진강 폐선 같이 뻘 속에 처박혀 있는 듯하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관심 밖의 삶으로써 비루먹은 망아지 꼴이 되는가 싶다. 나는 해방둥이 세대로서 스스로의 심장을 펌프질하며 열광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그 힘으로 가정의 안정과 가족들을 건사했다. 열광하는 삶에서 한결같은 삶을 고집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쁠 것 없는 노인세대가 되었다. 미국 노파의 심정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남은 인생의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유머 같은 노파의 이야기가 울음보다 더 서글픈 정서의 현을 건드린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청년의 꼭지점에서는 우정에 대한 철학도 자못 심각했다. ‘대신 죽어줄 친구나 천하를 반분할 수 있는 우정의 도를 저울질하기도 했다. 공무원으로 취직하기 위해서는 신원조회가 필수였다. 그 당시 신원조회서 양식에는 친구 이름을 적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사회적 상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좋은 친구가 될 노력보다 편하게 대해주는 친구가 좋다는 이기심도 컸다. 고향 친구가 좋다는 뿌리의식과 성취의 성향에 따른 길동무가 좋기도 했다. 나에게는 국립대학과 교육계에서 근무하던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안정된 직장에서 세상사 따질 것 없이 살아가는 선한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며 여행 일정도 잡아 함께 떠나 낯선 길 위의 시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내 몸과 정신에는 열정이 넘쳤다. 함께 술을 마실 때, 오늘은 2차 3차 갈지도 모르니 내 몸의 소화기관에 잘 부탁한다고 하면 그런대로 들어주었다. 그 무렵 친구들과 안골에 있는 ‘송아지’라는 음식점을 가끔 들렀다. 젊은 주인은 산을 좋아해 등산을 자주 한다고 했다. 나는 산악연맹 고문이었기에 그와의 대화는 반죽이 맞았다. 여름날 그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다. 말수 적은 친구가 내게 건배사를 하라고 했다. 갑작스러웠다. 머릿속 회전 속도를 죄며 생각해 보아도 멋진 건배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서는 젊은 아가씨가 우리에게 서빙을 하고 있었다. 생각 끝에 몇 가지 건배사에서 콕 찍어다 쓴다는 게 ‘마돈나’이었다. 내가 ‘마돈나’ 하면 함께 ‘마돈나’ 하자고 했다. 이어서 내가 선창을 하고 같이 술잔을 부딪치며 “마돈나”를 크게 외쳤다. 옆에 있던 아가씨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마시고 돈 내고 나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친구들과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날씬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아가씨는 명 건배사라고 하고서 웃음을 날리며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마돈나’라고 하면 미국의 음악가요 배우로서의 마돈나(Madonna)가 떠오른다. 우리 시대의 젊음을 고스란히 껴안아 섹시하게 느껴졌던 여인이다. 그래서 나는 잊어먹지 않고 기회가 오면 마돈나를 선창하곤 한다. 건배사는 ‘하늘 건(乾)’, ‘마를 건’으로서 술잔을 쉽게 비우자는 뜻이다. 조선시대 선비들도 원 샷을 즐겼다고 하는 것을 보면, 술 마시는 분위기도 시원시원한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건배사는 분위기를 모아 주석의 흥을 돋우는 아나운서의 멘트 같은 것으로 자축의 뜻이 크다. 그런데 보통 술자리에서는 그 순간의 기분을 살려 사양하지 말고 즐겁게 마시자는 의미가 우선이다. 그래서일까. 젊은 층에서는 ‘마취제’ (마시고 취하는 게 제일이다)라는 건배사를 많이 쓰고, 중국의 건배사에는 ‘우정이 깊으면 링거 맞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셔’라는 건배사가 있다고 한다. ‘인생이 쓰면 술이 달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가슴 뛰는 즐거움도, 내일 죽어도 오케이 하면서 술 마실 일도, 체력도, 주변사람도 없다. 세상도 사회도 미국의 노파 같이 외롭고 건조할 뿐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친구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술 한 잔 마시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노래하면서, ‘푸른 건배사’로써 힘껏 “마돈나!”를 외치고 싶다. 이 더위에 건배사라도 푸르고 희망찬 기운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6월은 계절의 경계에 선다. 봄은 자취를 감추고 여름의 숨결이 서서히 일상을 감싼다. 햇살은 짙어지고 공기는 점점 무거워진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자신만의 지혜를 찾아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술이다. 단지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절을 건너는 한 방식으로서의 술. 바로 과하주(過夏酒)다. 과하주는 이름 그대로 ‘여름을 지나기 위한 술’이다. 1418년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며,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주로 5월 무렵 담가 초여름부터 마셨다. 높은 온도에서도 상하지 않도록, 발효주에 증류주인 소주를 더해 보존성을 높였다. 그 풍미는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묵직한 안정을 주었다.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중요한 건 단순한 시원함이 아니라, 어쩌면 그런 ‘깊이’였는지도 모른다. 맛은 한마디로 깊고 조화롭다. 구수한 곡물 향이 먼저 퍼지고, 뒤이어 진한 단맛과 은은한 산미가 느껴진다. 차가움으로 혀를 자극하기보다, 온전한 발효가 주는 풍미로 입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특히 간장이나 된장 같은 짭조름한 장맛과 잘 어울려, 여름철 보리밥이나 찌개류와 곁들이면 더욱 궁합이 좋다. 고문헌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과하주를 지금은 몇몇 양조장에서 전통 방식을 되살려 그 깊은 맛을 이어가고 있다. 느리고 정성스러운 발효가 필요한 술인 만큼, 그 풍미는 현대인의 입맛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빠르게 흘러가는 계절 속에서 잠시 멈추어, 과거의 ‘슬로우 라이프’를 음미하게 해주는 술이다. 대표적인 과하주로는 화양의 ‘풍정사계 하’, 술아원의 ‘경성과하주’, 지시울의 ‘화전일취 백화’, 한통술의 ‘과하주 힙 스칼렛’, 객제의 ‘감탄주’, 국순당의 ‘백세주과하’, 제이앤제이브루어리의 ‘청혼골드’, 노금주가의 ‘일지춘과하주’, 한영석발효연구소의 ‘여해과하주’ 등이 있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햇살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숨 막히는 밤이 계속될 때, 시원한 맥주 대신 서늘하게 식힌 과하주 한 잔을 택해보자. 입술에 닿는 순간, 조선의 여름을 건너던 선인들의 지혜가 고요히 스며든다. 과하주는 단지 마시는 술이 아니라, 계절을 견디는 지혜다.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320원으로 결정됐다. 1만 320원은 올해 최저임금(1만 30원)보다 290원(2.9%) 높은 금액으로서, 내년도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월 노동시간 209시간 기준)은 215만 6880원이다. 이번 최종안은 2008년 이후 17년 만에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합의로 결정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걸핏하면 극한 갈등으로 치닫는 노사문화에 양보와 타협의 미덕이 깊게 퍼지면서 ‘상생 정신’이 폭넓게 발현되는 변화가 나타나길 기대한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노·사·공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 10일 제12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6년도 최저임금을 이같이 의결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근로자위원 중 민주노총 위원 4명이 불참한 가운데 노·사·공 위원 23명의 합의로 결정됐다. 이번 인상률은 1%대였던 올해(1.7%)나 2021년(1.5%)보다는 높지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 중에서는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미 지난 회의 때 공익위원 심의 촉진구간(1.8%∼4.1%)이 제시된 상황에서 이날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로 심의에 들어갔다. 민주노총 위원 4명이 예상보다 낮은 심의 촉진구간에 반발하며 퇴장해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 측 5명만 남았으나, 노사는 9·10차 수정안을 제시하며 격차를 좁혀 나갔다. 10차 수정안에서 노동계는 1만 430원, 경영계는 1만 230원을 제시해 격차는 200원까지 줄었고, 이후 공익위원들의 조율 등에 힘입어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노·사·공 합의를 통한 최저임금 결정은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8번째다. 가장 최근 합의는 2008년 결정된 2009년도 최저임금이 마지막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의결한 내년도 최저임금안은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사용자 측으로 참가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전부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던 노동계는 예상을 벗어난 인상 폭에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로 인해 가장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도 논의기구에서 번번이 제외되는 소상공인연합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상을 최대한 자제했다곤 해도 여전히 누적된 인건비 인상 여파 등으로 한계에 몰려 있는 소상공인 처지에선 부담이 과도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이후 “일자리안정자금 부활, 소상공인 경영 안정 자금 지원 확대 등 다각적인 방안을 실효성 있게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낸 소상공인연합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최저임금은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등 수십 개 법령과 연동된 국가 정책의 주요 기준으로서 그 영향력이 막대하다. 객관적 지표에 근거하고 업종·지역별 여건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틀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은 해묵은 숙제로 그대로 남아 있다. 노사 갈등이 여전히 전방위 갈등 환경의 뿌리 중 하나인 우리 국가사회에서 모처럼 노·사·공 합의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는 것은 가볍지 않은 의미를 남긴다. 결과에 불만이 많은 노동조합 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합의’의 관행을 구축하는 일의 커다란 가치를 더 높게 인식해야 한다. ‘상생’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갈등구조 혁신은 이 시대의 온갖 난제의 해법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계층 집단의 협상에서 ‘양보와 타협’보다도 더 유용한 미덕은 없다. 세상 모든 협상을 전쟁처럼 여겨 ‘전부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극단적 승패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못된 습성부터 바꿔야 한다. 17년 만에 이룬 최저임금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합의 결정을 가벼이 보지 말자.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이던 2019년 시행했던 “청정계곡 복원 사업”을 통해 경기도의 청정계곡을 전 국민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 지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는 가평군의 청정계곡이 있는 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계곡을 생태친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계곡 주변 주민들의 삶의 질도 향상시키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도 피서객들의 무질서한 계곡 이용으로 오염과 눈살 찌푸리는 상황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 비해 자율적으로 생태친화적인 피서를 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큰 변화 중 하나는 계곡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등의 불법 취사를 하기보다는 도시락에 조리된 먹거리를 담아와서 먹고 빈 그릇을 그대로 가져가 쓰레기 발생도 줄이는 피서객들이 늘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가져와서 발생한 쓰레기를 갖고 가는 일들도 늘어났다. 특히 수박 같은 경우는 쓰레기양이 많아서 아예 집에서 먹기 좋게 썰어서 도시락에 담아와 먹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물놀이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난감한 상황이 바로 반려견 수영의 경우다. 국립·도립·군립공원의 경우 '자연공원법'에 의해서 반려견 출입 자체를 제한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반 하천 및 계곡은 명시적인 법규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동물보호법' 제16조(등록대상동물의 관리 등)에 따르면 견주는 외출 시 ‘목줄’ 착용이 의무화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판단해 본다면 사람이 많은 피서지에서 반려견 수영 시 ‘목줄’ 착용을 하지 않으면 법을 위반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목줄을 하고 반려견 수영을 시킨다거나 물놀이를 함께 할 경우는 어떻게 될까? 잘 훈련받은 반려견을 보며 즐거워하는 피서객들도 있지만 반려견의 배설물, 털, 그리고 질병 전파 가능성 등 위생 및 수질 오염 문제로 인해 반려견을 계곡물에 데리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피서객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종종 피서객들끼리 낯을 붉히는 경우가 생긴다. 경기도는 여름 휴가철 하천·계곡의 수질 관리 특히 대장균 수치 등 위생과 관련한 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만약 그 수치가 기준을 초과하면 이용객과 주민의 물놀이는 중단될 수도 있다. 아직 그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위생과 관련해 예민한 분들은 반려견의 출입에 매우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다. 반려견 수영 막아달라고 계곡지킴이 역할을 하는 주민들에게 요구를 하지만 누구 편을 들기가 어렵다. 독자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다. 인공지능 검색을 해보니 외국도 반려견 수영에 대해서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다고 알려준다. 수질 오염, 다른 이용객과의 마찰을 방지하기 위해 제한하는 곳도 있고, 반려견 전용 수영 구역을 마련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지자체는 자체 조례를 통해 특정 하천이나 계곡의 이용에 대한 규칙을 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 비율이 2024년 기준 26.7%라고 한다. 4가구당 1가구꼴이다. 다양한 반려동물들까지 생각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만약 자신이 기르는 뱀을 계곡물에 수영하게 해준다면? 위생적으로 뱀이 반려견보다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심리적인 거부감은 더 클 것 같다. 지자체마다 관련 조례를 서둘러 만들어야 할 것 같다.
K-Pop 데몬 헌터스의 OST가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 Top 10을 도배하는 것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에스파의 ‘광야’ 컨셉은 옳았다. SM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너무 빨랐던 것이다. 버추얼 아이돌은 먹힌다. 버추얼 아이돌과 사람 아이돌의 시너지의 현실화가 목전이다. 그래서 뉴진스의 퇴장이 새삼 다시 안타깝다. K-컬쳐가 또다시 상승장의 물결을 탔는데, 물이 들어 오고 있는데, 노 저을 사공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버추얼 아티스트의 이점을 ‘휴먼 리스크’가 없다는 점에서 찾는다. 휴먼 리스크 중 상당 부분이 법률 리스크다. 멀게는 동방신기의 해체부터 가깝게는 뉴진스의 가처분까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휴먼 리스크는 결국 법정을 무대로 삼는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가 법정 싸움이다. 우리의 ‘높은 문화의 힘’을 더욱 드높이려면, 법질서의 분쟁 해결 기능이 더 나아져야 한다. 소송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1 아니면 0이 되기 마련이다. 현실의 분쟁이 전적인 선과 전적인 악 사이의 대결인 경우는 거의 없다. 시시한 약자와 시시한 강자의 싸움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도 소송이 시작되면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져야 한다. 법원이 이 문제를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당사자들의 합의를 권하고, 화해를 권고하고, 사건을 조정에 회부한다. 정부도 이 문제를 잘 안다. 그래서 다양한 재판 외 분쟁 해결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사법형 조정 기관과 행정형 조정 기관이 십수 개가 넘는다. 건설, 환경, 방송, 통신, 의료, … 분야도 다양하다. 조정 제도는 실제로 분쟁을 사전에 신속하게 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당사자들의 재판청구권을 존중하여 일방의 의사만으로 조정을 거부할 수 있게 만들더라도 여전히 효과가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분쟁도 소송이 아닌 조정에 의한 분쟁 해결,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패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활로를 찾아 주는 재판 외 분쟁 해결이 국룰로 정착되도록 할 수는 없을까? 아티스트의 잘못이 명백한 사안도 있고, 반대로 기업의 잘못이 명백한 사안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이든 가처분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수년간 소송을 거치면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은 최종 승자에게도 출혈이고, 최종 패자에게는 파멸이며, 산업 전체에는 손실이고, “한류”에 유해하거나 무익하지, 유익하지는 않아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변호사 빼고 모두가 패자다. 인간 아티스트들의 휴먼 리스크, 특히 법률 리스크가 소모적인 소송전으로 현실화되어 거위 배 가르기로 끝나버린다면, 십수 년에 걸친 업계인들의 투자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고, 미래 먹거리의 가능성들도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개인의 인성을 욕하거나 개별 기업의 추태를 욕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의 양성을 고민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언론중재위원회와 유사하게, 엔터테인먼트분쟁중재위원회라도 만들면 어떨까.
1919년 3·1운동 때 수원지역에서는 격렬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지식인과 학생, 상인, 종교인, 농민, 그리고 사회적으로 천시되던 계급인 기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계층이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서훈이나 표창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남아 있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광복 80년이 되는 해이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자신의 생명과 재산,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은 잊혀 가고 후손들은 여전히 곤궁한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친일 매국노들의 후손은 정·재계, 심지어 학계에서도 주류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조선총독부로부터 받은 친일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전도 벌이고 있다. 송병준은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로 꼽힌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과 내정권 이양을 일본에 넘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에 찬성한 7명의 친일파인 정미칠적(丁未七賊) 중 한명으로 일제 식민지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민족적 배신자다. 그의 증손자가 인천 부평구 미군부대(캠프마켓) 일대 땅 약 13만평(36만 5000㎡)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나 2011년 재판부는 “해당 부동산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송병준이 조선총독부로부터 받은 친일재산에 해당돼 국가 소유라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을사오적 중 한명으로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의 증손은 친일 행위로 형성한 재산을 매각해 해외로 이주했다. 이완용으로부터 물려받은 서울 북아현동 일대 2354㎡(약 712평)의 땅을 팔아 캐나다로 떠난 것이다. 이에 광복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친일 재산을 빼돌리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중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며 수사기관의 수사를 촉구했다. 참담한 일이다. 이제라도 친일무리들이 저지른 악질적 매국매족행위에 대한 상세한 연구와 엄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한 애국지사들의 기록을 찾아내 서훈과 표창 등 포상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수원시가 펼치고 있는 독립운동가 발굴사업을 칭찬한다. 수원시는 2008년 수원박물관 개관 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그들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펼쳤다. 수원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그동안 발굴한 13인의 독립운동가 특별기획전을 수원광교박물관에서 12월까지 열고 있다. 전시회에 소개된 13인의 독립운동가는 수원시가 발굴해 국가서훈을 받은 인물들이다. 기생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했던 김향화(1897~미상)지사는 1919년 3월 29일 수원예기조합원 30여 명과 건강 검사를 받으러 가던 도중 화성행궁을 헐고 지은 수원자혜의원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현장에서 체포돼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비밀결사 조직을 결성하고 상해 임시정부로 건너가려다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한 이선경(1902~1921)지사도 있다. 반제국주의 기사를 기고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유병기(1895~미상), 일제의 수탈로 고통받던 소작농을 돕기 위해 농민조합 활동을 했던 장주문(1906~미상), 세 번의 옥고에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차계영(1913~1946), 노동자와 함께 독립운동에 나선 수원의 두 여성 최경창(1918~미상)과 홍종례(1919~미상)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활동이 소개되고 있으니 반드시 방문하길 권한다. 수원박물관은 최근 김노적(1895.~1963), 이현경(1899.~미상), 문용배(1916.~미상), 윤경의(1893.~미상), 임학수(1923.~미상), 정재억(1910.~미상), 최병두(1925.~미상) 지사 등 총 7명의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을 국가보훈부에 신청했다. “후손이 없거나 증거자료가 부족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인물의 숭고한 희생을 밝힘으로써 후손들에게도 그 정신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수원박물관 관계자의 마음은 우리와 같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세운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은 당초엔 국비 80%, 지방비 20%를 부담하는 구조로 설계됐고, 이에 대해 많은 지방정부들이 재정 부담을 호소했다. 이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전액 국비’로 수정되며 일말의 안도감이 돌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다시 지방정부가 10%를 부담하는 ‘9:1 분담안’으로 뒤집혔다. 과연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처음엔 정부 스스로가 말했다. 지역의 재정 여건을 고려해 전액 국비로 지원하겠다고. 책임 있는 자세, 공약 이행의 의지로 읽혔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다시 지방비 10%를 부담시키는 구조로 후퇴했다. 국회 예결위는 이 결정의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도 않았다. 중앙정부가 지역 여건을 고려하겠다는 것과 달리 정작 국회는 지역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국회의원은 ‘국가 전체’를 위한다는 명분과 함께 각자의 ‘지역 대표성’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국회가 가장 중요한 ‘지역의 재정 현실’을 외면한 채 지방정부에 추가 부담을 안긴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의회 의원들조차 이번 소비쿠폰 정책에 반대하며 전액 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단순한 ‘기부 퍼포먼스’가 아니라 지역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체감하고 있는 시의원으로서의 현실적 판단이다. 시민의 세금이 결국 빚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현금성 소비쿠폰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시의원들마저 우려를 표하고 있는 마당에, 정작 지역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재정건전성’에 대한 고민 없이 이런 구조를 확정지었다는 점은 더욱 뼈아프다. 지역의 목소리를 중앙에 전달하라고 뽑은 사람들인데, 현실은 지역의 고통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 시의원만도 못한 국회라면 그 존재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인천시만 해도 이번 사업으로 인해 수백억 원의 지방비를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이미 빠듯한 살림에 빚을 내서라도 중앙정부의 공약을 뒷받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중앙의 책임을 지방에 전가하고, 지방은 빚을 내 중앙정부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구조, 이것이 과연 ‘공정한 분담’인가? 더 큰 문제는 신뢰다. 정부가 전액 국비로 부담하겠다고 밝히자, 지방정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시 역시 당초 1700억 원 가까운 지방비 부담을 계산하며 지방채 발행까지 검토하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행’이라던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며칠 만에 다시 ‘지방비 분담’이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말 바꾸기도 문제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지방은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에 들어가야 했고, 빚을 내서라도 중앙의 공약을 떠맡아야 할 판이다. 이것이 과연 신뢰 기반의 정책 결정인가? 정책 발표는 빠르고 요란했지만, 정작 책임과 재정 구조는 끝내 불투명했다. ‘속도’와 ‘실용’을 내세웠지만, 현장에선 ‘혼선’과 ‘혼돈’만 남았다. 지방정부가 없는 중앙정부도 없고, 현장을 외면한 공약이란 그저 종잇장에 불과하다. 중앙정부가 정말 국민을 위한다면 그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 빚을 내서 공약을 대신 이행하는 것이 지방의 역할이어선 안 된다. 이런 구조가 반복된다면 지방정부는 점점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여지를 잃게 될 것이다. 재정은 줄고, 정책은 정해져 있고, 선택지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지방자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방의 재정 여건을 안다고 했던 그 말, 책임지겠다는 약속,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다면 적어도 구멍 난 지방 재정을 다시 메울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
남양주시 생태하천과에 취재를 위해 자료를 요청하며 느낀 것은 ‘아직도 행정을 이렇게 하는 곳이 있구나’이었다. 기자는 전임 시장때 남양주시에서 수백억 원을 들여 수락산 자락에 문화공원을 조성하고, 도서관까지 건립할 계획인 것이 대해 시와 시의회, 주민 등을 취재해 비판적인 여론을 전했다. 이후 진행 상황을 챙기지 못했다가 최근에야 305억 원 사업비의 문화공원은 준공됐고, 203억 원 투입 예정이던 도서관 건립은 취소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에 비판적인 여론을 보도했던 기자로서는 도서관 건립이 취소된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후속 보도를 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남양주시 담당 부서인 생태하천과에 취재 이유 등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도서관 건립 계획에서부터 취소 때까지 상세한 진행 상황과 사업비 등을 요청했다. 며칠이 지난 후 또다시 전화와 다른 경로를 통해 요청하고 방문도 했다. 그런데도 “몇 년 전 서류여서 찾는데 시간이 걸리고 검토도 해야 된다”며 시간을 끌었다. 보름 가량이 지나서야 '청학 아트라이브러리 조성사업'이란 제목의 A4용지 1장이 메일로 달랑 왔다. 이미 공개된 내용인데 무슨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고작 A4용지 1장짜리 보내기를 보름이나 끌었다. 그것도 요청한 내용보다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보내왔다. 기가차서 추가로 요청했더니 '보상비 약 64억원'이란 단어만 더 보태서 다시 보내왔다. 생태하천과를 통해서는 더 이상 취재가 될 수 없다고 판단돼, 정보공개를 청구한 후 14일 만에, 과에 요청한 날부터 따지면 한 달이 지나서야 애초 요청한 자료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부서의 일 처리 과정에 의구심이 들었다. 담당 부서에서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것인지, 아니면 골탕먹이겠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잘못 익힌 늘공의 바르지 않은 행태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출입 기자가 수차례 요청했는데도 이렇게 대하는데 일반 민원인에게는 어떻게 대할까 싶었다. 오죽하면 같은 조직에 있는 동료들도 생태하천과의 이같은 행태에 “속이 터진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미 시가 불과 몇 년 전에 공개적으로 추진해 왔던 사업인데도 ‘이렇게 공개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료는 부실하게 주면서 시간까지 끄는 것은 누구 의중인지도 궁금해졌다. 자신들의 홍보자료는 언론사에 보내면서 언론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사항에는 이같이 비협조적인 것은 무슨 행태인가? 경험으로 보면 업무에 자신이 있고, 떳떳한 늘공들은 기자의 취재에 항상 우호적으로 협조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민 혈세로 보상비 64억 원이 지출된 도서관 부지는 아직껏 공지로 남아 있다. 어떻게 활용하는지 눈 여겨 볼 것이다. 계획 당시 L모 시의원의 “도서관 예정부지 앞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는 완전 특혜”라는 지적이 있었듯이, 무엇을 조성하던 이같은 우려에서도 벗어나야 할 것이다. 특정업소나 외지인 편의 보다 남양주시민이 우선이다. 도서관 건립 계획이 취소된지 2년이 됐다. 혈세 64억 원이 2년간 묶여 있는 셈인데 생태하천과에서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 경기신문 = 이화우 기자 ]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그러나 그의 세력은 정부와 당 어디에서도 소수파에 불과하였다. 대선 기간에 군의 개혁 등 정치개혁을 주장했지만 누구도 그것은 그저 형식적인 입바른 소리로만 여겼다. 그러나 취임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3월 8일 김영삼은 군 개혁을 단행했다.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적으로 해임하면서 군부 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하나회 소속인 대장 7명과 중장 이하 장성 12명 등 명단에 오른 대부분의 장교가 강제 예편되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군 개혁이었다. 김영삼의 개혁 정치는 군부에 머물지 않았다. 취임 이틀 만에 스스로 재산 공개를 하면서 모든 공직자의 재산 공개를 실시해 그동안 무풍지대였던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이 공개되었다. 국민을 경악게 할 수준의 부도덕한 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더 이상 부정한 돈이 자리잡을 수 없게 했고 이름뿐인 지방자치제도 도입과 5공 청산, 역사바로세우기 등 김영삼의 초기 정치개혁은 80% 이상 국민의 지지가 유일한 무기였다. 국민은 비로소 자신의 한 표가 나라를 이렇게 개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었다. 세상을 뒤집어엎는 혁명보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하는 개혁이 어렵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 역사에서 개혁 정치하면 조선 정조대왕 개혁의 성공과 실패가 항상 거론된다. 정조는 기득권 세력을 숙청하기보다는 함께 많은 개혁을 단행했지만 그가 죽자마자 억눌렸던 그들에 의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김영삼의 개혁정치도 초기의 지지율에 취해 이어지질 못하고 스스로 붕괴하고 말았다. 왜 개혁은 실패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 사람이라는 점이다. 우리 정치가 한없이 국민을 실망시킨 원인은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운영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정조와 김영삼의 개혁정치도 혼자 하는 개혁, 비선그룹의 전횡 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 국민적 지지가 60%를 넘고 있다. 정말 기대 이상이다. 전임자와 비교되는 일하는 지도자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만 노파심에 이재명 정부 개혁의 핵심이라고 하는 검찰개혁을 우려한다. 그동안 검찰은 표적 수사와 선택적 수사, 제 식구 감싸기와 봐주기 수사의 상징이었다. 대통령이 대표적인 피해자이지만 그동안 패가망신한 국민을 생각하면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기구가 대한민국의 검찰이다. 그런데 검찰개혁의 대상자들이 처벌이 아닌 영전을 하고 있다. 검찰도 공무원이므로 임명권자에 충성한다는 안이한 생각이라면 글쎄다. 정조도 김영삼 정권도 모두 기득 세력과 함께 시작했지만 한결같이 배신한 자들도 그들이었다. 지금 우리는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을 하는 순간이기에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가 구치소로 돌아갔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줄곧 “윤어게인(YOON AGAIN)”을 외친 지지자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공허하여라. 망상의 연대여~ 새정부가 출범한 후 엉망진창이던 나라가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 순간이 바로 어젯밤 윤석열의 재구속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제 전용면적 세평 남짓한 공간에서 독거노인이 되어 남은 평생을 보내게 되리라. 여름징역은 곱이다. 자업자득이요 사필귀정이다. 생각해보라.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자가 비상대권까지 갖겠다고 일으킨 내란! 조선조였다면 사직을 어지럽힌 죄로 삼족을 멸했을 대역죄인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내란 우두머리와 잔당들을 어떻게 징치하는가에 달려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내란범을 두둔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40%에 달한다. 기득권계층과 특정지역, 특정종교에 편중된 이들이 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앞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3년동안 30년을 퇴보해 나라가 폐허처럼 거덜났다. 도대체 얼마나 거덜났을까? 윤석열은 취임도 하기 전부터 나라의 기둥뿌리를 뽑아냈다. “청와대에는 죽어도 안들어 간다”며 용산에 들이부은 돈이 얼마나 될까?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 기준 총 3250억 원 이상이 집행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합참 이전, 미군기지 대체부지, 군 경비부대 이전 등 간접비용까지 더하면 1조 원을 넘어선다는 주장도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실패에 들어간 돈지랄도 가관이다. 119대29의 참패에 쓰인 돈이 공식적으로 5744억 원, 윤석열이 유치명목으로 해외순방에 쓴 돈은 뺀 금액이다. 표 한장에 198억이 든 셈이다. 파행으로 끝나 국제망신을 시켰던 잼버리에 투입된 예산이 1170억 원이었다. 대왕고래프로젝트라고 석유가 나온다는 사기질에 1263억 원을 포항앞바다에 떠내려 보냈다. 이런 손실은 우크라이나 퍼주기에 비하면 소박하다. 윤석열은 우크라 재건사업에 520억불(66조) 더하기 3억불 추가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155mm 포탄 50만발을 지원하겠다 했다. 이것만 해도 수조원 어치다. 경제관념이라곤 없는 윤석열은 부자감세 정책으로 84조의 세수결손을 초래했다. 밑빠진 독은 환율방어에 들어간 돈이었다. 비상계엄 이후 1486원까지 찍은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마구 달러를 팔아치웠다. 2024년 한해동안 환율방어에 쓴 돈만 112억 달러, 25년 1분기에도 27억 달러를 써서 외환보유고는 4046억 달러로 5년만에 최저 수준이 되었다. 큼직한 것만 대충 더해도 150조를 훌쩍 뛰어넘는 나랏돈이 사라졌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이재명 정부 민생지원금 30조는 애교수준이다. 멀쩡한 민방위복을 모두 새로 바꾸지를 않나? ‘한국의 이멜다’란 별명에 어울리게 500만 원 짜리 캣타워에 2000만 원 짜리 ‘히노키 욕조’, 개수영장, 해외순방 때 명품싹쓸이 등 3년 동안 김건희씨 대통령놀이에 들어간 영수증 없는 돈들을 모두 합하면 얼마나 될까? 이렇게 곳간을 탕진하니 국가 R&D예산이 남아날 리 없었다. 어떻하나? 생각하면 국민들 속만 쓰릴 뿐, 괴물을 만든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해야지. 그나마 3년으로 막았으니 선방했다. 대한민국 잘했다. 이참에 내란공범 정당, 내란동조 사법부, 내란부추긴 언론 등 역사의 추물들을 세트로 잘 정리하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든든한 반석을 놓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는다. 그를 잊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