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서서 ‘독서와 인생’이라는 이희승 선생의 수필을 깜냥에 열강 했다. 지친 몸 이끌고 가서 ‘덕진호수’ 곁 임자 없는 의자에 궁둥이를 얹었다. 수중(水中) 도서관 서쪽 분수대에서 내뿜는 분수 쇼가 볼품이었다. 호수 주변 나무들은 때 늦은 단풍잎과 노을빛이 조화롭게 선명도를 연출하고 있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오고 가는 젊은이들 모습은 한가한 낭만 그 자체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가 좋았는데… 하고서 노을이 잠기는 호수의 면면을 보고 있자니 한영애 가수의 ‘옛 시인의 노래’가 생각났다. ‘마른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 그대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 우리들 사이엔 아무것도- 얼마 후 한국 『고전해학』에 나오는 ‘희청군성(喜聽裙聲)’의 한 대목이 뒤를 잇는다. 송강 정철과 서애 유성룡이 같이 있다가 막 헤어지려는데 백사 이항복과 월사 이정귀, 일송 심희수가 동석했다. 술이 은근히 취하자 서로 문장에 대한 품격을 나름대로 논하게 되었는데, 먼저 송강이 말했다. “밝은 밤, 밝은 달빛, 다락 위에서 구름을 가리는 거문고 소리가 제일이지. 그러자 심일송이 “만산홍엽인데 바람 앞에 원숭이 우는 소리가 제격일 걸세.”했다. 그에 서애가 또 한마디 거들었던 것. “새벽 창가에 졸음이 밀릴 때는 술독에서 술 거르는 소리가 으뜸일 거야.”… 생각이 여기에 머물게 되니,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났다. 이어서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하고 있으며, 내 인생은 어디쯤인고? 싶었다. 언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이 나이에 이르렀는지 모를 허전한 가슴은 오랜 열망의 결실도 무의미 그 자체 같았다. 더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 무의미함이 유의미임을 짐작하게 되겠지 싶기도 하고. 나이가 고개를 넘으면 어린 시절 어머니로 하여금 젖과 꿀이 흐르던 고향 생각이 난다. 그래서인지 ‘고향 살이 1개월’의 생각이 끼어든다. 고향! 하면 ‘반가운 얼굴, 정(情), 막걸리’로 이어진다. 그리운 얼굴, 정, 막걸리의 삼박자는 인생의 필연 같다. 얼굴과 정이 가슴의 소통이라면, 막걸리는 밥도 아니면서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의 육체적 소통이 된다. 이 소통은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 허전한 마음, 적막한 환경 속에서의 그리운 얼굴이 생각날 때 누구와 막걸리 한 잔 마시게 되면 가슴에는 물줄기가 흐르고 정서적으로는 삶의 연민이 가신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죄 미워할 수 없다는 너그러움이다. ‘삶이 버거울수록 술이 달다,’는 생각일 때가 있다. 그런데 막걸리는 왜 쓰지 않고 속도 쓰리지 않아 안심하고 마실 수 있을까. 농부의 아들로 자랄 때의 일이다. 할머니가 아랫목에 술독을 묻어놓고 시간이 지난 뒤 보면 보글보글 술 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덮개를 열면 술이 익어가면서 보글보글 거품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막걸리는 금방 걸러서 마실 수 있어서 ‘막걸리’라고 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막걸리는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갈러 갈 때 챙겨주는 누룩 섞인 음료수요. 고독한 농부의 와인으로써 농주(農酒)이었다. 그런가 하면 마을에 애경사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애도하고, 축하 하며 자기 집 일 같이 동참했다. 어느 분이 회갑을 맞아 잔치를 하거나 아들이 성공하여 한턱 쏠 때는 그 집 마당에 멍석을 깔고 거창스럽게 술상을 차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둘러앉아 술을 마시면서 단체로 취했다. 그런가 하면 뜻 맞는 사람들끼리 술상의 젓가락을 바이올린의 활(弓) 삼아 젓가락 장단에 노래하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인생이 쓰면 술이 달다는 경험은 청년이 되어 도시라는 곳에서 신발 끈 졸라매며 ‘가난은 죄가 아니다.’는 담력으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갈 때였다. 퇴근길이면 친구와 ‘노을 주(酒) 한잔하자’며 막걸리집을 찾아가 문발을 제치고 들어서곤 했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라도 막걸리만은 친밀감이 느껴져 몇 잔 마시다 보면 - ‘이 풍진 세상…’ 2차 3차로 술집을 바꿔가며 마실 때도 있었다. 그 무렵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는 시가 뜨고 있었다. 예부터 남도 사람들은 북쪽 오랑캐같이 독하게 살지 못했다. 그리고 시골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같이 악착스럽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누구 원망하지 않고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손으로 쓱 입 닦고 열심히 농토를 일구었다. 막걸리는 힘든 사람과 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뭔지 모를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친화력이 있다. 그래서인가 술이 목울대를 적실 때는 단맛이 느껴지는 음식이요. 근심 걱정을 씻어주는 세심주(洗心酒)요. 어머니가 빚은 모주(母酒)로써 가용주(家用酒)라고 불리어져 왔다.
트럼피즘(Trumpism)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지만 단지 한 정치인의 스타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이유가 담겨 있다. 트럼피즘은 제도나 법보다 감정과 분노가 앞서는 정치다. 트럼프가 가짜 뉴스를 반복해서 외칠 때마다 흔들린 것은 언론이 아니라, 세상이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기준 그 자체이다. 트럼피즘은 사실보다 감정, 제도보다 충성, 대화보다 확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에 퍼진 불신의 징후다. 비슷한 일이 이미 존재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퍼진 매카시즘(McCarthyism)이 그 예다. 당시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정부 안에 공산주의자가 숨어 있다”라고 주장하며 사회의 불안을 자극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아무 증거 없이 빨갱이로 몰렸다. 할리우드 배우, 작가, 기자, 교수까지 의심받았고, 일자리를 잃거나 평생 낙인이 찍혔다. 매카시즘은 단순한 정치 탄압에서 끝나지 않고 공포가 이성을 이기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 후 미국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남았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두려워했고 다른 의견을 내는 일은 위험한 행동이 되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권리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매카시즘은 제도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하면 위험하다’라는 두려움을 남겼다. 역사는 트럼피즘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매카시즘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이용했다면 트럼피즘은 엘리트와 외국인, 언론에 대한 분노를 이용한다. 매카시즘이 사상의 자유를 마비시켰다면 트럼피즘은 사실의 자유를 마비시킨다.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지만 둘 다 불신과 증오를 이용해 사회를 갈라놓는 방식이 닮았다. 트럼피즘이 퍼지면 사회는 점점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사실 대신 음모론이, 토론 대신 분노가 자리를 차지한다. 선거 결과조차 신념의 문제가 되고 사람들은 ‘누가 옳은가?’보다 ‘누가 내 편인가?’만 따진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편 가르기로 피로해지면 시민들은 정치에 등을 돌리고 그 틈에 권력이 커진다.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 속에서 천천히 약해진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징후가 보인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분노와 혐오가 넘친다. 서로 다른 생각을 대화로 풀기보다 낙인찍기와 조롱으로 끝내는 일이 늘고 있다. 매카시즘이 공포로 민주주의를 병들게 했다면 트럼피즘은 분노로 민주주의를 지치게 만든다. 이는 또한 우리 모두의 언어와 감정이 피로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본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불씨는 바람을 타면 언제든 강을 건널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피즘을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면 그 불은 언젠가 우리 사회의 언어와 감정 속으로 번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나 헌법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믿고 말하는 방식 속에 있다. 그 불씨가 닿기 전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어떤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언어가 정말 우리의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통일교로부터 샤넬 가방 2개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김 씨는 “(건진법사) 전성배 씨로부터 두 차례 가방 선물을 받았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깊이 반성한다. 저의 부족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공직자의 배우자로서 신중히 처신했어야 함에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린 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변호인단 입장문을 통해 금품 수수 사실을 처음 인정했다. 지난 4월 30일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이어진 특검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받은 적 없다”고 강력 부인하다가 6개월이 지나서야 자백을 한 것이다. 그러나 김 여사는 “어떠한 청탁, 대가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라프 목걸이 수수 사실은 명백하게 부인한다”고 밝히면서 자백의 진정성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12일로 예정된 자신의 보석심문과 재판을 염두에 둔 전략일 뿐이라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여론이다. 우선 전성배 씨 등 사건 관련자들의 실토가 이어지자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간 통일교 측 선물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해왔던 전 씨는 재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전후 김 여사 측에 전달한 게 맞다고 진술했고, 실물까지 특검에 제출했다. 전 씨는 “김 여사가 처음엔 선물을 꺼리다가 두 번, 세 번 이어지자 쉽게 받았다”는 진술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관련자의 진술과 증거가 드러나자 모든 사실관계를 전면 부인하는 기존의 전략으로는 재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 여사는 “샤넬 백은 받았으나 대가성은 없다”는 해괴한 주장을 내놓았다. 청탁의 대가로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선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2000만 원짜리 명품백을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주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그런 주장을 믿을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인 윤영호씨가 김 여사 측에 YTN 인수, 캄보디아 개발원조 사업 등에 관한 청탁을 전달했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의 주장이 재판정에서 인정되기는 불가능하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큰 거짓말이 들통나자 일부만 인정하고 또다는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수준은 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6200만 원짜리 그라프 목걸이 수수를 부인하는 김 여사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 김 여사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 당시 착용했다가 논란이 된 반클리프아펠 목걸이도 처음에 “지인에게 빌렸다”고 했다가 진술과 증거가 나오니까 “홍콩에서 산 모조품이다” “엄마에게 빌렸다” 등으로 거짓말을 계속 해왔다. 그마저도 결국 서희건설이 인사 청탁 대가로 목걸이를 건넸다고 자수하는 바람에 거짓말이 들통난 바 있다. 3대 특검 중에서 ‘김건희 특검’발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김 여사의 거짓말에 있다.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고 대통령 영부인 놀이는 하는 과정에 관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김 여사의 거짓말에 동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여사의 릴레이식 거짓말이 들통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여사는 특검에 출석하면서 태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과 같은 등급의 비화폰을 쓰면서 정부 고위 공직자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구속 이후 “가장 어두운 밤에 달빛이 밝게 빛나듯 저의 진실과 마음을 바라보며 이 시간을 견디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일부 극렬지지자들에게 전하는 말이었지만 속속 밝혀지는 그의 거짓말에 극우 세력 조차도 등을 돌린 상황이다. 이제라도 국민들께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진실을 밝히길 바란다. 김 여사가 재판과 국민여론에서 조금이라고 동정을 받고 싶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밝혀지는 진실’보다 ‘밝히는 진실’이어야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APEC이 막을 내렸다. 이번 APEC의 성과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외교는 과정보다 최종 결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잠수함 보유 논의를 진전시킨 점은 주목할 만하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성과 여부는 추후 판단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역시 양국 발표 내용에 차이가 있어 현재 시점에서 평가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회담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 있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선물 교환 과정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다. 정상 간 선물 교환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외교적 메시지를 담는다. 선물에 담긴 상징성은 양국 관계의 맥락과 의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금관이 그의 '꿈'을 상징했듯이, 이번에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한 바둑판 역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는 11년 전 시 주석의 방한 당시 선물한 바둑알에 이은 것으로, 그의 취미를 고려한 맞춤형 선물이자 외교 관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선물을 전달할 당시에 양국 정상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시 주석은 이 대통령에게 샤오미 스마트폰 두 대를 선물했는데, 이는 중국의 첨단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통신보안은 잘 됩니까?"라는 농담을 건넸고, 시 주석은 "뒷문(백도어)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라"며 웃으며 받아쳤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의 농담이 단순한 유머를 넘어 외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기기 및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정보 유출 우려를 간접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실질적 이슈를 위트있게 전달한 발언이었다. 시 주석 역시 이를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외교적 성숙함을 보였다. 이러한 대화는 외교의 본질, 즉, 민감한 사안을 품격 있게 다루는 기술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 감각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해당 발언을 두고 "중국이 문제 삼을 수도 있는 발언을 굳이 했어야 했는가"라며, "괜히 반감을 살 필요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첫째, 외교는 초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외교가 국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제기해야 할 문제를 세련된 방식으로 언급한 것은 비판보다 오히려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둘째, 중국에 정당하게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괜히'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대통령의 발언을 폄하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색하고 특정 우려를 직접 지적하는 것보다, 유머를 통해 우려를 전달하는 방식이 외교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발언은 시의적절했으며, 외교적 센스를 보여준 모범적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APEC을 통해 우리가 보여 줄 것은 다 보여줬다. 이제 실질적 성과가 무엇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조만간 발표될 한미 팩트 시트가 이번 정상회담의 구체적 결실을 보여 줄 것이므로, 그 내용을 토대로 최종 평가를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아파트에 입주하고 몇 년이 경과하면 외벽이나 발코니 쪽에 실금처럼 보이는 균열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균열의 폭이 큰 경우에는 당연히 이를 하자라고 주장할 수 있고, 실제 하자 소송에서 이러한 균열은 하자로 많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0.3mm 미만의 미세한 균열의 경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한 균열에 대하여 시공사 측에서는 "0.3mm 미만의 미세한 균열이고 누수도 없으니 기능상 문제가 없다"라며 표면만 덮는 '표면처리공법'으로 보수하면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특히 최근 아파트 하자 소송에서는 '층간균열'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층간균열은 시공 과정에서 층과 층 사이 접합부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균열을 말합니다. 입주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미관상 결함이 아니라 건물의 내구성과 안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하자'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시공사 측에서는 표면만 덮는 '표면처리공법'으로 보수하면 된다거나 누수를 막는 '방수키'가 시공되어 있으니 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건설감정실무'(2016년 개정판)에서는 '층간균열'을 일반 균열과는 다르게 취급합니다. 해당 지침에서는 층간균열에 대해 '구조부', '비구조부' 또는 '0.3mm 미만', '0.3mm 이상'의 구분을 두지 않고, 모두 '충전식 균열보수공법'(균열 내부에 보수재를 주입하는 방식)을 적용하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이 마련된 배경에는 2005년 발코니 확장 합법화가 있습니다. 발코니가 사실상 거실 공간으로 편입되면서, 외벽 층간균열을 방치할 경우 '외기 유입과 침습으로 인한 누수, 결로, 단열성능 저하와 같은 하자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이에 '건설감정실무'는 '비내력벽(비구조부)이라 하더라도 확장형 발코니나 실제 거실로 사용하는 경우 구조부에 준하는 보수공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하며, '구조적 안전성 보완'을 위해 충전식 공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하급심 판례들도 이러한 기준을 받아들이는 추세입니다. 층간균열은 중요한 하자에 해당하며 미세균열이라도 장기간 방치하면 빗물 침투 등으로 철근이 부식되어 구조체 내구력이 감소할 수 있고, 표면처리공법은 균열이 계속 진행될 위험이 있으며, 방수키가 시공되었더라도 외기 유입, 결로, 단열성능 저하 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어 충전식 보수공법이 필요함을 인정하였습니다(대구지방법원 2023가합202239 판결,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2018가합10700 판결 등).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건설감정실무를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층간 미세균열에 대한 감정의 지침에 대하여도 다시 한번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외벽의 미세한 균열은 단순히 '페인트가 갈라진' 수준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건물의 장기적인 안전성과 내구성에 직결되는 '하자'일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입주민들은 정당한 보수를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대로 기획되고 추진되는 축제에서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지역사회의 결속력과 유대감을 형성,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킨다.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생산·소득·부가가치 유발,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 그 가운데에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이 있다. 2006년 첫 개최된 이래 올해 20회를 맞은 펜타포트는 K록의 상징이자 아시아 대표 록 페스티벌이 됐다. 그동안 전설적인 무대와 음악적 유산을 남겨 ‘대한민국 록 페스티벌의 교과서’라는 이름도 얻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글로벌 축제 지원사업’ 및 ‘2024~2025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국제적 음악 축제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지난 8월 1일부터 3일까지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는 국내외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아티스트 60 팀 가량이 참여해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시작부터 ‘대박’의 조짐이 보였다. 주최 측이 11일 공식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인터파크에서 블라인드 티켓을 판매했는데 순식간에 블라인드 티켓이 전석 매진됐다고 한다.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파이낸셜뉴스와 한국리서치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으로 올해 6~8월 전국 31개 여름축제를 대상으로 한 소비자 만족도 조사 ‘fn 대한민국 축제평가’ 결과,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당당히 종합평가 순위 1위에 올랐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축제 주제 및 내용 공감(1위), 축제 유익성(1위), 지속 개최 희망(1위), 타인추천 의향(1위), 재방문 의향(2위) 등 주요 조사 항목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전국 180개 축제 중 예산 3억 원 이상, 방문객 수 10만 명 이상인 축제를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평가에서 서울·경기권의 ‘한강 페스티벌’(73.5) 등 유명 축제는 물론, 강원권의 ‘강릉국가유산야행’(72.8점), 충청·전라권 ‘한산모시문화제’(72.8점), 경상권 ‘대구치맥페스티벌’(70.5점) 등 각 지역별 1위 축제보다 높은 총점 75.2점을 받았다. 이처럼 호평을 받은 것은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단순히 공연행사에서 벗어나 ‘펜타 슈퍼 루키’ 같은 신예 발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천은 ‘지속 가능한 음악 도시’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더위 등 안전의 철저한 대비와 휴게존 관리 등도 가산점을 받았다. 관람객도 2024년 보다 증가했다. 지난해엔 15만 명이었는데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16만 6000여 명이나 입장했다. 최근 인천관광공사에서 업계 전문가와 자문위원·시와 공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펜타포트 락페스티벌 결과보고회가 열렸다. 주요 성과를 공유하고, 글로벌 행사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관련기사: 경기신문 3일자 인천판 1면, ‘축제로 도시가 살아났다…인천펜타포트, 경제효과 톡톡’) 이날 보고회에서는 KT통신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약 836억 원으로 추산된다는 내용도 발표됐다. 아울러 브리티시 팝의 전설 ‘펄프(Pulp)’의 첫 내한 공연, 공연장안전지원센터의 사전 안전컨설팅 실시, 초대형 텐트형 쿨존 확대 등 폭염 대응 혁신시스템 도입, 20주년 기념 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높은 호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인천펜타포트 음악축제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이 백승국 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등 자문위원들의 평가였다. 이에 고무된 유정복 인천시장은 “앞으로 다양한 축제를 하나의 개념으로 연결하는 ‘엄브렐라형 축제’(우산처럼 하나의 도시 브랜드 아래 여러 개 축제를 함께 엮는 종합 축제)로 발전시켜 경제적·문화적 성과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 축제지만 앞으로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벌,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처럼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선비였던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평생 권세에 굴하지 않고,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간절히 호소한 인물이었다. 그는 천왕봉(天王峯)이 보이는 지리산 자락 덕산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임금에게 올린 여러 상소를 통해 부패한 조정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의 상소에는 시대를 넘어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울림을 주는 ‘경고(警告)’와 ‘충언(忠言)‘이 담겨 있다. 1555년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에서 남명은 “나라의 근본이 이미 무너지고, 하늘의 뜻과 민심이 떠났다”고 한탄했다. 이는 작년 12.3 불법 계엄을 마주했었던 현실과 다르지 않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권력은 국민 위에 군림하며, 사회의 공정은 흔들리고 있다.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집값 앞에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지만, 상류층의 과소비는 더욱 노골적이고, 불법 부동산 투기와 특혜는 끊이질 않는다. 국민의 고통은 깊어가는데, 지도층은 여전히 말뿐인 개혁과 정쟁에 몰두하고 있었던 셈이다. 남명 선생이 지적했던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이 없는 정치”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남명은 상소에서 “정치는 사람을 올바르게 쓰는 데 달려 있고, 몸을 닦는 것은 도(道)로써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공직 사회는 권력 유지를 위한 인사와 줄서기로 병들어 있다. 검찰과 법원은 스스로를 법 위의 존재로 여겨, 같은 죄에도 사람에 따라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 남명은 이미 16세기에 “하급 관리의 부패가 나라의 심장을 해친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권력형 비리와 사법권력의 기득권,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불공정한 법 집행이다 남명은 또 “군주의 덕성과 인격수양이 정치의 출발이며, 가장 큰 공부는 ‘경(敬)’이다”라고 했다. 경이란 스스로를 경계하며 올바름을 잃지 않는 태도다. 오늘날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경’이다. 외교에서는 권력자의 논리에 휘둘리고, 경제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 신화에 매달려 서민경제의 디플레이션을 방치한다. 청년들은 일자리와 주거 문제로 절망하고, 노년층은 가난과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이 와중에서 캄보디아 범죄 사기극이 극성을 떨었던 단초가 여기에 있다.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픈 사연들이 또 드러날까 두렵기만 하다.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국민의 삶은 갈수록 불안하다. 1567년 정묘년 선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남명은 “국가의 형세가 엎어질 듯 위태롭다”며 “나라를 살릴 길은 오직 ‘구급(救急)’ 두 글자뿐”이라고 절규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이 ‘구급’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구급이란 단순히 위기를 봉합하는 처방이 아니라, 근본을 바로잡는 개혁의 의지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사법이 공정의 마지막 보루로 서며, 경제가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 그는 “정치의 목적은 왕과 관료의 안위가 아니라 백성의 평안”이라고 했다. 오늘의 민주사회에서 이 말은 “정치는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뜻으로 다시 읽힌다. 500년 전 한 선비의 상소가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그가 염원한 ‘건전한 도덕의 정치’, ‘백성을 위한 정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남명 조식이 외친 “구급”의 경고를 되새길 때다.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정한 ‘경(敬)’의 마음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혼란한 시대를 바로잡고, 우리 사회를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다.
디지털 전환은 노동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일은 더 이상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지 않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이 유연성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불안정의 또 다른 형태였다. 배달 라이더, 크라우드 워커, 프리랜서, 스트리머 등은 고용되지 않았지만 매일 일한다. 이들에게는 계약서도, 명확한 휴식도, 안정적인 보호망도 없다. 그들은 분명히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취급된다. 책임은 지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플랫폼 노동은 기존의 임금노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업무는 작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알고리즘이 이를 자동으로 배분한다. 고객 평점, 응답 속도, 작업 완료율 같은 데이터가 일의 기회를 결정짓는다. 평점 하나로 생계가 흔들리기도 한다. 인간의 판단은 사라지고, 수치와 알고리즘이 노동의 질과 가치를 대신 평가한다. 노동자는 더 이상 상사나 동료와 함께 일하지 않는다. 오직 기계와 시장의 명령에 따라, 보이지 않는 코드 속에서 움직인다. 이 노동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자유롭고 자율적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감시되고 조정되는 시스템 안에 있다. 앱은 노동자의 위치, 행동, 응답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성과를 평가하고 작업을 통제한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관리되는 환경에서, 노동자는 스스로의 존재조차 가시화할 수 없다. 투명해 보이는 시스템 속에서, 정작 인간은 더 깊은 불투명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감시’가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또한 사회적 보호의 그물망 밖에 놓여 있다. 실업급여, 산재보험, 연금 등 전통적 복지제도는 그들의 현실을 포착하지 못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공백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기존의 법과 제도는 더 이상 이 새로운 노동 형태를 규정하거나 보호할 수 없다. 그 결과, 플랫폼 노동은 법적 사각지대에서 성장하며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 물론 모든 플랫폼 노동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적절한 규제와 공정한 협약이 마련된다면, 이는 자율성과 유연성을 갖춘 새로운 일자리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자본이 일방적으로 시스템을 설계하고, 노동자는 그 안에서 데이터와 시간을 공급하는 수동적 존재로 머문다는 점이다. 기술이 인간을 위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의 설계와 윤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디지털 시대의 노동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구한다. ‘노동자’라는 개념이 해체되고, 고용의 전통적 틀이 무너진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사람의 기여를 인정하고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를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유령처럼 투명해진 노동자를 실재하는 존재로 환대하는 것—그것이 디지털 시대 노동 정의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끌어 가느냐이다. 더 이상 ‘플랫폼’이라는 이름 아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방치할 수 없다. 진정한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삶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인간의 존엄은 노동 속에서 다시 써져야 한다. 플랫폼의 냉정한 논리 속에서도 우리는 따뜻한 사람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전환의 완성이며, 인간을 다시 중심에 세우는 윤리적 선언이다. 결국 미래의 노동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기여’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기술을 바탕으로 노동이 아닌 기여의 사회로 확장되는 길 위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디지털 시대가 향해야 할 방향이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이 폭증하면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핵심기술 유출은 피해기업이 경쟁력을 잃는 것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중대한 부작용을 불러온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급증을 막기 위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사법 체계의 허점을 바로잡고 핵심기술 퇴직자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등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기술자원을 다 잃고 나면 우리나라는 살아나갈 길이 영영 막히고 만다. 경찰청에 따르면 해외 기술 유출 사범 검거 건수는 2022년 12건에서 지난해 27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1년 1건에 불과했던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도 지난해 11건으로 폭증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첨단기술이 표적이다. 최근 삼성 SDI 전기차 배터리 국가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시킨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방위사업 산업기술범죄수사부 조정호 부장검사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국가핵심기술 국외유출 등),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누설 등),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회사 실제 운영자와 삼성SDI 협력사 직원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 또 이들과 공범 관계인 과장, 삼성SDI 출신인 대표이사 등 9명과 코스닥 상장사 회사법인 2곳 관계자 등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2022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가핵심기술 및 영업비밀인 삼성SDI 및 협력사의 전기차 배터리 부품 도면 등을 유출해 사용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과 중국의 이차전지 업체에도 국가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을 누설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고인들이 근무 중 빼돌린 관련 기술자료는 삼성SDI가 10여 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각형 배터리 부품인 알루미늄 케이스 ‘캔’과 뚜껑에 해당하는 ‘캡어셈블리’ 관련 특수기술 자료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첩보를 통해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휴대전화, 전자기기 및 디지털 증거를 확보했고 피고인들이 유출한 기술자료 파일, 대화 내역, 통화 녹음 파일 등을 신속히 분석, 조기에 범행을 밝혀냈다. 이들은 수사 중인 와중에도 유출한 기술을 사용해 중국 배터리 회사와 800억 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혐의자들을 신속하게 구속해 부품이 중국회사에 납품되는 것을 막았다.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도 지난달 16일 LG에너지솔루션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한 피의자 모 씨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피의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이차전지 파우치형 삼원계 배터리 기술을 인도 전기 이륜차 1위 업체 ‘올라(OLA Eletric)’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 중국 난징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2023년 11월 올라로 이직해 기술을 넘겼다. 피의자가 넘긴 기술은 차세대 고에너지밀도 이차전지 기술의 제조 공법, 원재료 비중, 제조공정 전반에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술은 정부가 지정한 국가핵심기술로, 특별 보안 관리를 요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핵심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 직원들은 매일 기술 유출의 유혹과 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액 연봉으로 유혹해 경쟁업체로 이직을 꼬드기는 헤드헌터뿐만 아니다. 기업 내부 경쟁에서 밀려 ‘먹고 살기 위해’ 금단의 선택을 내리는 엔지니어들도 있다. 더욱이 범죄가 적발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비밀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해 실형을 피해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2배 이상의 고액 연봉, 약한 처벌이 끊임없는 기술 유출의 주된 이유다. 수사 전문가와 보안업계는 특히 ‘내부 경쟁에서 밀린’ 직원들의 기술 유출 유혹 취약성을 지적한다. 피해기업의 보안 정책 강화와 교육만으로는 유출 시도를 막아내기 어렵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강화는 물론 기술자들이 딴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법은 멀고 유혹은 가깝다.
아직도 기후변화를 음모론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같은 자본가다. 반면에 우리 대중은 기후 변화를 피부로 절실히 느낀다. 4계절이 뚜렷하던 한국은 이제 여름과 겨울 두 철로만 나뉘는 나라가 되었다. 지구촌 여기저기는 잦은 가뭄, 홍수, 산불,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위협받고 있다. 카리브해 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달 말 이 섬에 시속 300km의 허리케인 멜리사가 몰아닥쳤다. 가장 높은 5등급의 이 허리케인은 자메이카를 휩쓸고 쿠바로 올라갔다. 이 열대성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로 황량하고 쓸쓸했다. 자메이카 지방정부 장관 데스몬드 맥켄지에 따르면, 멜리사가 지나간 후 53만 명이 넘는 자메이카 주민들이 전기 공급을 받지 못했다. 남서부에 위치한 인구 15만 명의 세인트 엘리자베스 교구는 물에 잠겼다. 자메이카의 곡창고로 불리는 이곳은 피해 규모가 대단했고 한 병원은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중부 세인트 캐서린에서는 리우 코브레 강이 범람하여 강풍이 울타리와 지붕을 무너뜨렸다. 맥켄지 장관은 “멜리사의 피해는 상당하며, 자메이카 전체가 파괴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멜리사는 역대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 중 하나로, 기록이 시작된 이래 자메이카를 강타한 1988년 9월의 ‘길버트’보다 강력했다. 기상학자 케리 에마누엘(Kerry Emanuel)은 이러한 유형의 재난에서 “바람보다 물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고 지적하며 기후 변화의 영향을 일찍이 경고한 바 있다. 기후 변화는 해수 온도를 상승시켜 멜리사의 경우처럼 더 많은 폭풍의 급속한 강화로 이어진다. 앤드류 홀니스(Andrew Holness) 자메이카 총리는 홍수로 인해 악어가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주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홍수로 강, 계곡, 습지의 수위가 상승하자 자연 서식지에서 쫓겨난 악어는 건조한 땅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메이카 보건 당국은 악어 서식지 주변의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메이카의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 개체군 보호를 담당하는 자메이카 국가 환경 계획 기관(NEPA)에 따르면, 카리브해 섬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악어는 아메리카악어이다. 자메이카의 여러 자연 보호 구역과 사파리 공원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가 서식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화석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 연소로 인한 기후 변화가 멜리사의 발생과 강도를 증폭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화석연료 연소로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폭풍은 미래에 더 큰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구는 산업화 이전 시대에 비해 섭씨 1.3도 상승했다고 한다. 이는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의 파괴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해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1.5도에 가까운 수치다. 이런 상황인데도 기후 변화를 음모론이라고 치부하고 팔 장 낀 채 불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강력한 대책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책은 땜빵 질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쇄신이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사회의 소비 모델을 조금 고쳐 쓴다 한들 아무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구시대의 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새롭고 참신한 모델 개발에 힘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