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중심으로 언론매체 수는 그야말로 확장일로에 있다. 법적으로 등록되거나 허가되지 않은 혹은 그럴 필요가 없는 자칭 언론매체의 증가도 가파르다. 양적으로만 따지면 언론산업은 얼핏 유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사자나 전문가는 물론 시민도 언론산업의 열악함을 잘 안다. 주위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의 인기는 시들하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미디어 전공생은 해마다 줄고 있다. 관련 강의가 폐강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많았던 대학언론도 쇠퇴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다. 언론을 제외하고도 전망 밝은 미디어 영역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선뜻 언론에 자신의 미래를 맡겨보라 청년에게 추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청년이 자발적으로 만든 언론매체는 내게 언제나 응원의 대상이다. 숟가락 하나 올려본다. 작년 4월 창간한 '토끼풀', 최근 여기저기에서 많이 소개된 신문이다. 제호는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토끼풀 신문사’에서 따왔단다. 서울 은평구 6개 중학교의 학생 32명이 만든다. 이들이 직접 기사를 쓰고 편집하며 발행한다. 중학생이 만드는 재기발랄한 학급신문 정도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종이신문도 발행한다. 이들은 창간 이래 청소년의 권리와 복리 증진을 위해 청소년 교통비, 학생회 문제, 특수교육 대상 학생 괴롭힘, 학교 공사, 학생인권조례, 학교 급식실 노동 환경, 대선후보 청소년 공약 등 관련 보도를 했다. 이번 달에 총 20면으로 발간한 종이신문 제18호에는 교육감, 정당 대표, 국회의원 등의 기고가 있다. 은평구의 광고도 실렸다. '토끼풀'은 총 8면이었던 지난달 제17호의 1면을 백지로 발행해 널리 알려졌다. 일부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한다는 이유였다. '미디어스' 기사에서 편집장은 신문을 배포해 온 4개 중학교 중 3곳에서 한 번 이상 배포 금지 처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한 중학교는 기자가 직접 배포한 신문을 압수하고 배포 금지했다고 한다. 한 기자는 다른 중학교에서 배포 전 사전 검사, 기계적 중립과 수정 요구 등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통제와 간섭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백지 사태 이후 광고가 많이 들어오고 후원자가 천 명 정도 된 모양이다. 진보 유튜버의 후원 제안이 있었지만 편집장은 거절했다. 중립을 표방하고 있고, 종속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였다. 그는 언론의 근본 목적이자 존재 이유를 문제 제기라고 했다. '토끼풀' 구성원이 겸연쩍어 할 수 있겠으나, 이들의 언론관은 놀랍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저항도 마다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보도 수준이다. 직접 취재를 기본으로 하는 보도는 기성 언론의 낯을 부끄럽게 한다. 상당량을 차지하는 심층보도 또한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이들 세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통 언론매체인 종이신문을 선택한 것이 신기하다. “앞으로도 '토끼풀'은 여러분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 정론(正論)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18호 20면에 실린 성명의 마지막 문장이다. 자못 비장하다. 또 다른 '토끼풀'이 하나쯤 더 나온다면, 우리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잠시나마 접어둘 수 있겠다.
제86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이달 17일 육군사관학교에서 거행됐다. 순국선열의 날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기념일로 제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올해 기념식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이종찬 광복회장의 요청으로 육사 교정에서 처음 진행했다.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인사, 육사 생도까지 800여 명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육사 교정에는 독립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함께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있다. 2023년 8월에 국방부와 육사가 이 흉상들을 이전하겠다고 했다가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비판이 크게 일었다. 긴 논란 끝에 2025년 5월에야 육사가 모든 흉상을 현 위치에 그대로 두기로 했으니, 이종찬 회장은 육사 교정에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거행함으로써 독립군의 정신은 광복군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국군이 그 뜻을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자 했다.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은 이종찬 광복회장의 조부다. 일제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우당 6형제는 온 가족이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가산과 전답을 급히 처분해 자금을 마련, 1910년 12월에 일가 40여 명은 북풍한설의 지린성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논밭을 사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했다. 명문가 후손으로 유복하고 편안히 살 수 있는 삶을 버리고 막대한 가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치면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6형제 가운데 해방된 조국 땅을 다시 밟은 이는 다섯째 이시영 뿐이었고, 나머지 형제들과 후손들은 타국 땅에서 배고픔과 고초를 겪으며 죽음을 맞았다. 우당의 손자 이종찬 회장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왕의 항복 소식을 들었고, 그해 11월 임정 요인들이 귀국할 때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1960년 육사 제16기로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는데,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그는 안기부장에 임명되었다. 그 때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여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개편, 초대 원장을 맡았으며 ‘정보는 국력이다’는 그의 뜻을 원훈에 담았다. 제11대부터 연이어 네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와 사무총장도 지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자당 대선후보에 김영삼과 맞대결하게 되자, 불공정 경선이라며 이를 보이콧, 민자당을 탈당했다. 새한국당을 창당한 이후 민주당과 합당하였고, 정계 복귀한 김대중, 동교동계 정치인들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등, 2000년에 정계를 은퇴하기까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오갔다. 그의 자서전 '숲은 고요하지 않다 1, 2'(제2판, 2024)를 읽어보면, 이종찬의 정치 여정은 어떤 인물이나 집단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며 자유롭고자 하였다. 스스로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을 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자 했고, 실수와 한계에도 솔직했다. 격랑과 같은 정치 여정 중에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友堂 정신 때문이었을까?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했을 때도, ‘돈이 없어 육사에 간다는 생각은 말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선조 정신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안되겠느냐’ 하신 부친의 말씀을 역사를 꿰뚫은 友堂 정신으로 가슴에 새겼으리라. 정계 은퇴 후 이종찬 회장은 종로구 자택에 우당 기념관을 만들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로 제7회를 맞은 우당상 시상식 및 장학금 수여식에서 그는 이 행사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정신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友堂 정신을 이어가는 그의 용기가 조국의 미래를 위한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응원한다.
최근에 국민의힘 주변에서는 기대와 절망이 공존하고 있다. 대검의 대장동 재판 항소포기 논란으로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대선 이후 바닥을 헤매고 있는 당 지지율이 조만간 변곡점을 맞을 것이란 기대가 작지 않다. 또한 정부 여당의 부동산 정책 혼선에 대한 시장의 여론도 심상치 않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동안 미뤄왔던 경제단체 면담 등을 추진하며 이재명 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함께 탄식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데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에 머물고 있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최근에는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층보다 지지율이 낮은 조사 결과도 나왔다. 당 내외에서는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지도부의 정치노선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장동혁 대표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변화는커녕 대표 스스로가 소수 극우세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강화하고 있어 당 안팎의 절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장 대표는 최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말해 당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황 전 총리는 극우세력을 대변하며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또한 장 대표는 지난 16일 극우성향의 인사들과 유튜버에 출연해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극우세력과의 연대 가능성도 언급했다. 걱정되는 것은 장 대표의 언행이 단순 말 실수나 착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 대표는 중도층 대신 강성 지지층을 먼저 결집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지도부 협의도 없이 내란 수괴혐의로 구속돼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대표 취임 이후 미뤄오던 면회를 국정감사 기간 중 그것도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점에 윤석열 부부의 석방을 주장해온 김민수 최고위원만 동석한 채 면회를 한 것은 극우 강성 지지층 결집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지난 달에는 제주 4·3을 '공산폭도들에 의한 폭동'으로 왜곡한 영화 ‘건국전쟁2’를 관람한 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은 모두 존중돼야 한다"고 발언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또한 의도적인 메시지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강성 지지층마저 이탈한다면 집권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모습은 대중정당의 길이 아니다. 잘못된 판단이다. 최근에는 보수논객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조차 "(장동혁 대표) 본인은 대표에 당선되기 위한 전술로 '윤 어게인' 세력을 이용한 것 뿐이라고 믿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당선되는 과정에서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는 국민의힘과 척을 지게 됐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윤 어게인' 세력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장 대표 뿐 아니다. 박민영 미디어대변인은 지난 12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비례대표인 김예지 의원이 발의했던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비난하면서 “(비례대표에)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서 문제”라며 “김예지 같은 사람은 눈 불편한 거 빼고는 기득권”이라는 등의 선을 넘는 막말을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에 대해 장 대표는 제대로 된 징계조치 없이 ‘구두 경고’만 했다는 것이다. 한국정치 발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강력한 야당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여당에 대한 매서운 견제와 균형감 있는 국정운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힘과 장 대표가 하루빨리 ‘지지층 정치’를 재고하기 바란다.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국민의힘이 괴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강성 지지층을 버려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국민의힘과 장 대표가 망상수준의 윤어게인, 부정선거 음모론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보수를 강력히 재건하길 원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인데도 나는 아직도 때때로 시험을 보는 꿈을 꾼다. 시간에 쫓겨 문제지를 다 풀지 못하거나, 백지의 답안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꿈이다. 깨고 나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보며, 그 꿈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학교를 떠났지만, 여전히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문제지를 풀고 있는 수험생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어른이 되면 시험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시험은 늘 삶의 다른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점수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어떤 지점을 넘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들 앞에서 흔들린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선택을 복잡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에 빠지게 되는 순간도 있다. 기대보다 실망을 안겨주었던 자리가 오히려 자신에게 필요한 기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큰 기대를 품었던 일이 나와 맞지 않는 자리임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놓쳤을 때,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지만, 실은 어느 것도 끝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문을 지나왔다. 한 개의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한 개의 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개 혹은 세 개, 그보다 더 많은 문이 앞에 있었다. 그것은 통과해야 하는 문이기도 했지만, 선택해야 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이 있었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 절망하던 순간이 있었다. 때때로 길을 잘못 든 적이 있었지만, 그 길을 지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엇이 되느냐가 삶의 목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그것은 결국 삶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방식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나 자신으로 남는 일. 그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여러 번 멈추고, 여러 번 길을 잃고, 다시 방향을 바꿀 것이다. 어떤 선택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뒤늦게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때로는 놓쳐 버린 것을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 덕분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문을 두드리고 열어보며 조금씩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러니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도 괜찮다. 그 망설임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열여덟이거나 열아홉인 그대들, 혹여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 앞에 놓여 있는 문은 여러 개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어른들 또한 그렇게 수십 번 멈추고,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절망은 가장 늦게 습득하는 언어이기를, 어떤 문이라도 거침없이 밀고 잡아당기기를, 그리고 열린 곳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수도권 북부 지역, 특히 접경지역은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 27일 이후 지금까지 72년 넘게 국가 안보를 위해 제약을 받아왔다. 중첩된 규제로 인해 주민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오지나 다를 바 없는 환경을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정부는 2011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을 수립했고 2019년엔 이 계획의 일부를 수정했다. 투자실적이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민자 사업들을 과감히 조정하고 사업추진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남북 교류협력 기반조성 ▲생태·평화 관광 활성화 ▲생활 SOC 확충 등 정주여건 개선 ▲균형발전 기반구축 등의 사업이 추가됐고 2030년까지 13조2000 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접경지역을 수도권정비법상 수도권에서 제외해달라는 것이다. 수도권정비법의 제정 사유는 수도권의 과도한 인구 및 산업 집중을 억제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 개발을 저해하고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를 가속화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지난 9월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을)과 김성원 국회의원(국민의힘,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은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가가 접경지역 농민들의 영농활동을 보장하고 안전을 확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국가가 접경지역 영농활동을 보장·지원하도록 하는 책무를 명시했으며 지뢰 등으로 인한 피해 방지 조치를 국가가 취하도록 하고 군사 활동으로 불가피하게 영농활동을 제한할 경우 최소한의 범위로 그치도록 하는 원칙을 신설했다. 개정안은 지난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됐다. 또 다른 문제점은 미군기지가 이전됨으로써 지역 경제 기반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반환 공여지의 개발 가능성 또한 낮다. 이에 국회에서 주한미군 반환공여지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이재강 의원(더불어민주당, 의정부을)은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과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미군공여지 개발을 총괄하는 정부조직 개발청을 신설하고 미군공여지와 주변지역은 국토부 장관이 우선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검토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박지혜 의원(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 역시 미군공여지를 도로, 공원, 주차장 등 공공목적으로 임시 사용하는 경우 무상사용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병주(더불어민주당, 남양주을) 최고위원도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12일 의정부시 가능동 캠프 레드클라우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발표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미군공여지 개발 방식을 ‘매각’에서 ‘임대’로 전환해 장기간 방치된 미군공여지 개발에 속도를 높이자는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3일자 3면, ‘주한미군 공여지, 임대 통한 개발로 해법 바꿔야’) 주한미군이 나간 뒤 반환된 공여지는 최대 20년 안에 분할상환 방식으로 매입해야 하는데 매입 우선순위는 공여지가 있는 지방정부다. 하지만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방정부는 매입을 못하고 있다. 캠프 레드클라우드의 경우 부지 면적은 83만 6000㎡이며 매입가는 1조 3000억 원에 달한다. 따라서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공여지를 매입이 아닌 최대 99년 장기 임대방식으로 전환하고, 연간 임대료를 재산가의 1/100 수준으로 완화해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공시설 무상사용, 개발제한구역 우선 해제 등의 내용도 있다. 경기북부 주민들은 김 의원의 개정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를 비롯한 경기북부 미군공여지의 개발이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희생엔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그동안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필요하다.
꼬꼬마 한의사 시절, 내가 인턴을 했던 병원은 중풍 전문병원이었다. 급성기 뇌경색·뇌출혈 환자들이 끊임없이 입원했고, 인턴들의 호출기는 하루에도 수십 번 울려댔다. 어느 날 점심 두어 숟갈을 뜨려던 순간, 호출기가 울렸다. ‘왼쪽 대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된 중대뇌동맥 뇌경색 환자가 L-tube를 또 뽑았다는 연락’이었다. 전날에도 두 번 뽑은 분이었다. 병실로 올라가 튜브를 삽입하려 하자, 환자는 마비되지 않은 손으로 튜브를 잡아채 바닥에 내던졌다. 다시 넣으면 또 빼고, 실어증으로 인해 6인실 병동 전체가 울릴 만큼 우우우— 하고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 다섯 번, 여섯 번. 잠시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까지 거부하는데 꼭 넣어야 할까?” 그러나 당시 나는 열정적인 인턴이었다. 병실이 쩌렁쩌렁 울릴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무 힘들지만,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끼어야 좋아질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을 만큼은 살아봐야 하잖아요.....”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한지 5분이 지났을까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몸부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다시 L-tube를 삽입했고 그는 영양섭취가 가능해졌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확신은 질문으로 바뀌었다. 만약 그 환자가 중증 치매였다면? 말기 암으로 고통만 남은 상태였다면? 혹은 그 자리에 내가 누워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최근 ‘죽을 권리’를 다룬 10여 편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많은 논문들은 먼저 “존엄”의 개념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결정만을 존엄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인간의 관계성·취약성·돌봄의 조건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러 연구는 조력죽음이 도입된 사회에서 취약 계층이 오히려 ‘죽어도 된다’는 압력을 받을 위험을 지적한다. 장애인·독거노인·경제적 취약층일수록 “삶의 부담을 타인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의료윤리 연구들은 또 다른 측면을 지적한다. 조력죽음은 환자의 선택 문제를 넘어서, 의사의 역할과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문제라는 것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직업적 본질인 의료인이 죽음을 돕는다는 행위는 개인 윤리와 직업적 양심의 깊은 충돌을 낳는다. 한편 법제도를 분석한 논문들은 조력죽음을 안전하게 설계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회복 불가능성’ 판단, 반복적 의사 확인, 남용 위험 등은 완벽히 통제할 수 없으며, 제도화는 곧 사회적 가치의 큰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조력죽음은 허용되지 않고 임종 과정에서의 연명의료 중단만 가능하다. 의사 2명이 회생불가·급속 악화·사망 임박 상태를 확인해야 하며, 불필요한 연명치료만 중단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제도는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한 생명에 무의미한 고통을 더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질문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조건으로 돌아온다. L-tube를 뽑던 그의 마음은, 짐작컨데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최근 연구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도 같다. 죽을 권리를 말하기 전에,사람이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과 돌봄’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죽을 권리에 대한 질문은 답이 미완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은 살 수 있는 권리, 견딜 수 있는 삶의 환경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소사역 앞이 분주합니다. 성모병원 쪽으로 뚫린 굴은 삼 번 출구입니다. 장례식장도 가톨릭대학도 그쪽에 있습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재개발 공사가 한창입니다. 집은 뜯기고 땅은 파였습니다. 재개발 공사로부터 자유로운 건물은 성당뿐입니다. 그래설까요. 그쪽을 향해 굴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에는 늦가을이 만연합니다. 아니, 설익은 초겨울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까요. 일 번 출구 역시 붐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소사지구대 방향인데, 길을 건너면 오십 층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나이 지긋한 동네를 헐어내고 새롭게 지은 젊은 아파트 단지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걸 도시재생이라고 부릅니다. 주거재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당신과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새것이 대접받습니다. 번뜩이고 아찔한 신상일수록 귀한 몸값을 받습니다. 집도 옷도 차도 신상이라야 값을 쳐줍니다. 패션도 기술도 취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묵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게 나와 당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신상이 아닌데도 대접받는 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뿐입니다. 골동품이거나 보석이거나 주식이거나 땅문서가 아니고선 내밀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나섰으니까, 열 시쯤 됐을까요. 도로에 그려진 횡단보도 표시를 보며 길을 건넜습니다. 일 번 출구를 나와 소사지구대 맞은편 방향으로요. 오십 층 아파트가 서 있는 그쪽 말입니다. 깜짝 추위에 머플러로 목을 감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였겠지요. 마주치는 사람들도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맞은편 도로에 서 있는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서 있었는데 신호가 바뀔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글쎄요. “말 좀 물읍시다.”라고 했는지, “길 좀 물읍시다.”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나는 건 내 앞을 가로막은 할아버지의 자전거 앞바퀴뿐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여든도 넘어 보였습니다. 끌고 서 있는 자전거 역시 지긋하게 나이를 먹었고요. 어찌 가야 하느냐고 물은 곳은 전철로 삼십 분쯤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두 정거장 가서 환승도 해야 했고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자전거 타고 갈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고 하면서요. 너무 멀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어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알려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알려드리긴 했지만 발길을 돌리기 힘들었습니다. 덜그럭거리며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무르팍이 내 아버지의 흑백사진 같아서, 기우뚱거리며 나아가는 바퀴 두 개가 추레한 나의 어제와 내일 같아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감추고 멀뚱멀뚱 서 있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자전거가 눈에 밟혔습니다. 생각할수록 사람과 자전거는 닮았습니다. 사람이든 자전거든, 넘어지지 않으려면 쉼 없이 발을 굴러야 합니다. 방향을 정하는 건 핸들이지만 나아가는 힘은 바퀴에서 나오는 것도 같습니다. 결정은 머리가 하지만 몸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바퀴 두 개가 서로를 밀고 당기듯이 사람 또한 누군가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무언가에 기대서 살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어제를 밀어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신뢰에서 나옵니다. 나아가는 방향이 어디든 개의치 않고 기댈 수 있음 또한 그래서일 겁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까. 나는 멈춤 앞에 서서 건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학력 청년 장기 실업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경기 부진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대내외 환경 악화로 인해 고용시장 흐름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졸 신규 취업 희망자들과 경력직을 원하는 대기업의 고용 방향 간의 미스매치 현상도 구조적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의 고용 정책은 변화된 환경에 맞도록 새판짜기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대기업들이 서둘러 투자·고용 약속을 과감히, 선제적으로 이행하는 게 급선무다. 지난달 전체 실업자(65만 8000명) 중 장기 실업자 비율은 18.1%였다. 같은 10월 예전 통계와 비교할 경우 1999년 통계 작성 시작 이래 최고 수준이다. 외환위기 여파가 계속되던 1999년 10월(17.7%)보다도 높았다. 통계상 호전되는 듯 보였던 청년층(15~29세) 고용률과 실업률마저 나빠지면서 청년 고용시장의 장기적 침체 우려마저 나온다.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지닌 20∼30대 중 장기 실업자는 3만 5000명으로, 지난해 9월(3만 6000명)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많다. 국가통계포털(KOSIS) 등에 따르면 구직활동을 6개월 이상 했는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는 지난달 기준 11만 9000명으로, 2021년 10월(12만 8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장기 실업자는 코로나19 시절인 2020년 5월∼2021년 12월 계속해서 10만 명에 달했고, 이후 잠시 주춤했다가 지난달 급증했다. 전체 장기 실업자 비율은 지난 4월 9.3%로 한 자릿수였지만, 5월 11.4%로 두 자릿수로 올라선 뒤 6개월 만에 2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지난 고학력 청년층 중 장기 실업자가 급속히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기 실업자와 더불어 구직을 포기한 20, 30대 ‘그냥 쉬었음’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고용 동향을 보면 전체 취업자 수는 2904만 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소폭(19만3000명·0.7%) 늘었으나 내용상 60세 이상의 고령 취업이 주도했다. 30대 ‘그냥 쉬었음’ 인구는 33만 명에 달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대 ‘그냥 쉬었음’ 인구도 40만 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를 찍었다. ‘그냥 쉬었음’ 인구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통계에는 잡히지 않기 때문에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쉬었음’ 청년계층이 줄었음에도 고학력 청년 장기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은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고학력 청년층이 대기업 문을 두드리지만, 정작 대기업은 경력직 채용을 원하는 소위 미스매치 현상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미스매치 현상이 길어지면 청년층 고용 한파가 일시적 취업난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기회 상실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닥쳐오는 대미 3500억 달러 투자에 따른 고용 위축,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청년층 미스매치의 악화를 더 구조적으로 악화시킬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이 같은 변화들은 정책 당국이 급변하는 일자리 환경에 더 이상 소극적인 자세로 대응해서는 안 될 중대한 사유다. 구조적 변화를 읽어 내지 못한 채 단기적 구직난 해소에 급급하다는 세간의 비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좋은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해법이다. 지난 16일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삼성·SK·현대차·LG 등 주요 그룹은 향후 5년간 총 800조 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대기업들의 이 약속은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리고 속도감 있게 이행되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시와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대응만이 청년들을 절박한 실업 지옥에서 구해낼 수 있다.
낙산 공원 가을 단풍이 한창이던 10월의 마지막 날, 한양도성길 성곽 아래 자리한 우리 대학에서는 해외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위한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낯설고도 재미난 한국문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기반으로 한바탕 경연을 펼치는 ‘외국인 한국어 뽐내기 대회’가 열린 것이다. 4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학교 대강당을 가득 채운 채 하루 종일 웃음꽃을 피웠다. 개인 참가자들이 각각 일정한 주제로 발표를 선보이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여타 기관에서도 종종 개최되는 편이지만, 여러 명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주제를 선정하고 대본을 쓰고 외워 연습한 후 팀별로 무대에 올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치는 이런 형식의 말하기 대회는 흔치 않아 자부심을 느끼며 이어가는 우리 기관의 특별 행사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대회는 기획 단계부터 몇 달이 소요되는 데다, 준비 과정 내내 학생들도, 교사들도, 행정팀도 하나같이 품이 많이 들고, 대회 당일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아 다양한 층위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매년 꾸준히 대회를 운영해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덧 13회차를 맞이한 이번 대회에는 해외 자매대학 참가팀에, 뉴욕의 고등학교에서 보내온 축하 영상까지 더해져 대회의 열기와 온기를 한층 더했다. 참가자들을 위한 커피 차와 츄러스 차가 이른 아침부터 캠퍼스에 마련되어 학생들은 음료와 간식을 나누며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유학생들에게는 한국어 발표 능력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점, 또한 서로 다른 국가 및 지역을 배경으로 한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들 사이에 교류의 장을 마련하여 구성원 간 상호 문화 이해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행사다. 올해는 특히 언어교육센터 설립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이를 기념하는 대회로 기획되었던 까닭에 지난 몇 달 내내 몸도 마음도 분주했다.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정부 유학생 유치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이 20여 년 전이니, 우리 대학의 유학생 교육 사업도 한국 정부의 유학생 유치 정책과 역사를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의 성과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와 비전을 조망해 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난 9월 교육부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유학생 수는 25만 3424명으로 지난해보다 21.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8월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에서 선언했던 2027년 30만 명 유치 목표가 조기 달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기도 하다. 유학생의 양적 확장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셈이고, 이제는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제도 정비와 동반 성장을 위한 섬세한 논의들이 필요한 때다. 유치에 초점을 두던 시기를 지나 취업과 정주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마련되고는 있으나, 교육 현장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동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교육의 장으로 들어온 유학생들을 얼마나 품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대학은 여러 각도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안정적 체류와 학업을 위한 관리 및 지원 시스템 구축,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들이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 제공, 뿐만 아니라 교수 및 직원 등 모든 구성원을 위한 상호 문화 이해 교육의 장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시장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고 관객 동원력은 떨어져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른바 종(種) 다양성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계절적인 요인도 무시하지는 못한다. 연말이고, 해를 넘기기 전에 ‘묵은’ 영화들을 밀어내려는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배급을 지원받은 독립영화의 경우 약속된 규정에 따라 해를 넘기기 어려울 작품도 꽤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수작인 작품들,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눈에 띄는 외화들이 많다. 예컨대 대만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미국 션 베이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 대만 영화가 요즘 뜨고 있다. 중국 제작의 블록버스터 '난징사진관'은 중국에서는 8452만 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관객 수가 나오고 있는 작품이다. 30억 위안, 6160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3만 명 선을 가까스로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식 ‘국뽕’이라는 평가, 혹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고 편견이나 오해에 기반한 혐중 정서의 영향을 받는 탓으로도 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 역시 꽤 괜찮은 수작으로 평가된다. 1937년 난징 대학살의 비극을 올바르고, 무엇보다 품위 있게 전달하고 있다. 영화적 재미도 높은 작품이다. 관객 수, 흥행 정도나 양상과 상관없이 '1980 사북'과 같은 다큐멘터리가 극장 한구석을 끈기 있게 차지하려 애쓰는 모습도 유의 깊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런 다큐가 선제적으로 성을 쌓아야 극 영화들이 그 안에서 많이 만들어질 수가 있다. 수작의 다큐는 장편 상업영화로 가는 길목을 만들어 낼 것이다. 힘들더라도 극장의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일본 영화는 현재 두 편이 화제이다. 일본 국내에서만 1200만 관객을 모은 '국보'가 한국 상륙을 준비 중이다. 19일에 전국 개봉한다. '국보'는 가부키 명인에 관한 얘기이고 짐작하겠지만 매우 일본적인 작품이다. 넷플릭스 사무라이 6부작 드라마인 '이쿠사카미' 역시 한동안 전 세계를 휩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전설의 영화 '바람의 검심' 시리즈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큰데 이는 순전히 넷플릭스가 지닌 글로벌 네트워크의 힘이다. 요즘의 일본 영화는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과 '체인소맨: 레제편' 등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북미와 남미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상태이다. 일본 메이저 배급사인 도호는 '국보'의 여세를 몰아 한국 유수 제작사와의 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른바 판을 키우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다양한 작품의 토대가 시장의 규모를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도 협업 구조를 확충하고 있다. 김지운 감독이 '더 홀'을 만들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 테오 제임스가 나오는 미국 자본의 영화이다. 나홍진 감독은 1000억 원짜리 3부작 설이 돌고 있는 '호프'를 완성 중이다. 역시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나온다. 트럼프가 일으킨 무역 전쟁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산업은 더 하다. 개별 단위를 넘어선 국제 협업의 작품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 시장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길이다. 새로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