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 못 먹이는 걸 어떻게 제가 팔 수 있겠어요?” 창원의 한 초밥집(끗집)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잘 운영하던 가게를 문닫고 경양식집으로 업종변경을 선언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오염수 방출로 인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라 봅니다. 문제가 될 것이 당연한데 활어를 다룬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업 이후 최고치 매출을 기록하며 잘 나가던 초밥집은 수족관을 비웠다. “설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느냐?”했던 일이 실제 일어나려 하자 그는 바다를 떠났다. 그의 우려는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일본 후쿠시마현과 미야기현 등 지역 어민조합에 이어서 일본의 최대 어민단체인 전국어업조합연합회가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특별 결의를 채택했다. 반면에 7월 10일, 한국 어업인연합회는 부산역광장에서 ‘우리 수산물 소비촉진 어민호소대회’를 열고 “괴담으로 어민들 죽게 하는 자는 끝까지 응징한다”며 민주당을 향해 석고대죄하라고 성토했다. 세칭 ‘김건희로드’로 불리우는 서울-양평고속도로는 뚜렷한 이유없이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가 집중적으로 땅을 사들인 곳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당연히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 야당이 아니다. 여권은 제기된 의혹을 따져보고 차분히 사실관계를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러나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민주당 책임을 거론하며 뒤집기를 시도하다 여의치 않자 고속도로계획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가짜뉴스 선동을 사과한다면 재추진할 수 있다”고 적반하장 식으로 야당을 겁박했다. 이어 9일 양평군수와 주민들은 민주당사를 항의방문하고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가로막는 민주당의 모든 행위를 중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술집에서 조폭양아치가 난동을 부린다.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고, 자기를 무시했다고 테이블을 뒤엎는다. 웃통을 까고 문신을 드러낸다. ‘나 이런 사람이니 건들지말라’는 이야기다. 이들의 막가파식 폭주는 계산된 광기다. 주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빌드업에 다름아닌 바, 곧 주변 사람들이 나선다. ‘재 성질 알면서 왜 빡치게 만들어 우리까지 피해보게 만드냐’고.. “노선이야 아무러면 어때? 고속도로 뚫리는게 중요한거지..” 애초 6번국도 및 두물머리 일대의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고속도로가 권력핵심의 이권게이트로 비화하자 지역민의 절실함을 판돈 삼아 막장 도박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2023년 장마전선에 뒤덮힌 대한민국, 장대같은 장마비가 상식과 이성을 깡거리 쓸어가고 있다. 오염수방류를 음양으로 지지응원한 한국정부의 행위는 밀쳐두고 일부 어민단체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야당과 시민사회를 응징해야 한단다. 국가기반시설 건설을 하루아침에 백지화시켜도 몽니를 부리는 사람 멱살을 틀어쥐기보다 계획변경을 따진 야당에게 책임지라고 성화다. 이런 억지 도박판 빌드업이 통한다고 여기니 걸핏하면 뽕 맞은 것처럼 테이블을 뒤집어 엎는다. 비판만 할라치면 너도나도 장관직을 걸었다며 “넌 뭐 걸래?” 눈을 부라린다. 정치판이 마약과 도박에 빠진 형국이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일 아침 신문방송, 포털 메인에는 야당도 문제라는 기사가 걸릴 걸 알기 때문이다. 죄다 장마시즌이 어쩌구 연예계 대소사가 저쩌구 하는 기사가 전면에 도배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권과 언론, 모두 마약중독과 도박 후유증이 심각하다.
정치란 무엇일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정치권의 다양한 양상을 보면서 이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국회에서는 정치인들이 많은 법을 발의하고 또 법이 통과되었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내 삶에 보탬이 되는 법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우리 정치가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땅에서 붕 떠 있는 가벼운 정치문화 때문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현실정치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비껴가는 정치를 많이 보게 된다. 정치는 매우 세심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명품이 디테일에 강한 것처럼 정치가 명품이 되려면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나무에 매달린 정치인들의 현수막을 보면서 의미 없는 외침 앞에서 나의 삶, 우리의 삶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를 생각한다. 정치에서 행동과 말의 올바름이 필요하다. 행동과 말의 올바름은 진정성으로부터 나온다. 기득권에 기대는 진정성이 아닌 낮은 삶을 향하는 진정성이다. 우리 삶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기득권 체제 속에서 관행과 잘못된 틀을 깨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늘 든다. 최근 용인에 사는 지인이 경기도에서 예술인 기회소득이 시작된다고 해서 알아보던 중 용인시는 시행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좌절했다. 우리 사회에는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경제적 소득이나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사회적 구조에 놓여 있다. 예술인 기회소득은 예술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예술인들에게 일정 기간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정책이다. 지난 6월 28일 경기도의회 제369회 정례회 제4차 본회의에서 ‘경기도 예술이 기회소득 지급 조례’ 제정안이 통과되어 7월부터 시작됐다. 민선8기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공약으로 도민과의 약속을 이루어냈다. 예술인 기회소득은 도와 시가 5 대 5 비율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경기도뿐만 아니라 31개 시군의 협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31개 시군 중에서 경기지역의 수원, 용인, 성남시는 불참하면서 역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의 삶은 다양하다. 톨스토이 작품 ‘안나 까레니나’의 첫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불행한 가정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와 찰리 채플린의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 구조적 문제를 찾아내 해결하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국민의 삶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잘못된 사회적 불평등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모색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래서 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불행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정치다.
한동안 국민을 놀라게 했던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가 가까스로 진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새마을금고의 방만한 경영행태를 비롯해,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비효율 구조에 대한 전면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마을금고는 국민의 일상생활 한복판에서, 특히 서민들의 경제생활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동네 금융기관이다.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건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새마을금고는 창립 이래 60년 동안 자산규모 284조 원, 거래 고객 2262만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전국 1294개 금고 임직원 2만8891명 중 임원만 무려 47%에 이르고, 중앙회장 연봉은 6억5000여만 원, 상근 임원은 5억3000여만 원에 달하는 등 막대한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서민의 상호금융기관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자기 혁신을 미룬 끝에 스스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새마을금고의 출발점은 일반적인 금융기관 설립과는 크게 다르다. 재건국민운동본부의 주도로 1963년 경남 산청·창녕·의령·남해군에서 5개의 협동조합을 설립해 ‘마을금고’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가 1982년에 ‘새마을금고’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것이 금융감독원이 아닌 행정안전부(행안부)의 감독을 받게 된 연원이다. 이번 새마을금고 위기의 배경은 6% 이상 치솟은 연체율 때문이다.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무려 9.63%였다. 연체율 관리 실태도 제대로 밝히지 않아 불신을 초래했고 금융당국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행안부의 감독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 2021년 금융위는 상호금융의 사업자·법인·부동산·건설업 대출을 각각 총대출의 30% 이하로 제한하는 상호금융권의 업종별 여신한도 규정(80~100%)을 제정했지만, 새마을금고는 완화된 규정(예대율 100% 이하)을 적용하고 있다. 2021년부터 시행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도 규제·감독기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새마을금고는 물론 농협·수협·산림조합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금소법은 금융사에 6대 판매규제를 부여하고 소비자에게 청약철회권 및 위법계약 해지권 등을 보장하는 법이다. 이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국회에서는 새마을금고 감독권을 행안부에서 금융당국으로 넘기는 내용의 법안 발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감독권을 바꾸는 문제는 개편 주체인 행안부와 금융위원회 모두가 난색을 보이면서 실제 제도 개편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와 걱정을 보태고 있다. 며칠 전에도 새마을금고 일선 창구에서는 “내 돈 빼달라”는 고객의 요구에 “각서를 써 주겠다”며 해지를 만류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새마을금고의 방만한 운영과 허술한 관리 감독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작은 쥐구멍 하나가 거대한 성벽도 허물 수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관리 감독권부터 정비해야 한다. 조직의 통폐합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방만한 경영도 조직 내외의 힘으로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언제 터질지도 모를 지뢰밭처럼 취약한 새마을금고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마약에 도취돼 오로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면서 국민의 참사마저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한 말이다. 이 언급으로 김 대표는 국회 윤리위에 제소당했다. 민주당의 말들도 만만치 않다. “X를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웨이드 앨리슨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명예교수를 두고 ‘돌팔이 과학자’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석학이,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에 의해 한순간에 돌팔이가 된 것이다. 정치권은 지금 누가 막말을 잘하나를 두고 경쟁에 돌입한 듯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정치권이 막말 경쟁에 돌입하면, 무당층의 수는 늘어나게 마련이고, 이렇게 되면 무당층의 지지를 받기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이런 것을 모를 리 없는 정치권은 도대체 왜 이런 막말 경쟁에 돌입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무당층이 늘어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론조사가 있다. 지난 7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7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3.8%, 표본오차는 95% 신회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안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무당층이 30%에 달했다. 지난 6개월간 한국갤럽 정례 조사에서의 무당층 평균 비율은 27.4%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30%를 돌파했음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막말 경쟁”을 그만둘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양당 지지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힘이 33%, 더불어민주당이 3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일단 두 정당 모두 지지율이 높은 편이 아니다. 또한, 두 정당 간의 지지율 격차도 거의 없다. 이런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어떤 정당도 승리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도층의 지지 확보보다는, 자신들을 “격하게”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확실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고 각 정당은 생각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극적인” 표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하지만 강한 자극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수단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막말은 강성 지지층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겠지만, 이런 막말에 익숙해진 강성 지지층은 더 강한 막말을 원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막말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적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그것이다. 정치적 상대방을 증오하게 되면, 정치는 사라진다. 정치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가능해지는 존재인데, 상대를 증오한다는 것은,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미 실종됐다. 이제는 국민이 나서 실종된 정치를 찾아야 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것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제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전문가와 국민을 대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발전 방향 수립을 위해 의견을 수렴하였다. 내년으로 다가온 노인 인구 1000만 시대를 목전에 둔 정부는 인구 구조가 고령화됨에 따라 점점 높아지고 있는 노후 안정화 욕구와 가족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해 2012년부터 5년마다 장기요양 기본계획을 수립해 오고 있다. 기본계획(안)은 ‘초고령사회를 빈틈없이 준비하는 장기요양보험’이라는 비전 아래 노인들이 각자 살던 곳에서 충분하고 다양한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장기요양시설을 내 집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한 방안들을 담고 있다. 노인복지와 노인돌봄의 핵심축인 ‘재가요양’과 ‘시설요양’ 서비스의 선진화를 위해서 노후의 생활을 든든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장기요양보험의 보장성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보험제도와 노인 정책 개선과 함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시설(요양원, 요양병원)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관리 방안 마련 또한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역 내 노인의 건강한 삶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요양종사자를 격려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시설요양 체계의 선순환적 발전을 위해서는 시설 운영자의 사회적기업가정신이 요구되며 이는 요양종사자들에게도 필요한 것으로 이를 통해 균형 잡힌 경제적가치와 사회적가치 창출이 가능해진다. 사회적기업가정신은 사회적가치를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 기업가적 원칙과 관행을 이해하고 활용함을 말한다. 사회서비스 제도와 정책을 기반으로 운영자의 지나친 이윤 추구를 지양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요양종사자의 열악한 근무조건 개선과 존엄케어 역량 강화가 더해질 때 정부 정책과 기업 그리고 종사자 모두가 잘 어우러지는 질 좋은 사회서비스가 완성될 것이다. 시설 운영자는 시설 본연의 수익창출과 지속 성장이라는 목표 달성 노력과 함께 문제(존엄케어, 요양서비스 질 저하 이슈 등) 해결을 위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자의 기업가정신 및 역량이다. 당면한 사회서비스 문제에 대한 이해와 조정능력, 시설 운영을 통해 어떤 영향력을 사회서비스 이용자에게 주고자 하는지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재가 요양과 시설 요양 모든 영역에서 요양종사자들의 역할과 책임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운영자가 스마트한 요양종사자 양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을 동행자로 여길 때, 요양종사자들은 시설 운영과 연관된 문제들을 공유하게 되고 운영자와 머리를 맞대고 솔루션들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재가요양 서비스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가정과 주야간 보호시설을 연계한 재가요양 체계 보완과 함께 방문 의료체계 구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의료가 배제된 채로 진행되어온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사업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시군구에서 지역 자율형 통합돌봄 모형으로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케어 사업이 절름발이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의료와 돌봄체계가 잘 융합되도록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합돌봄 사업에서 의료 역할 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정부뿐만 아니라 핵심 이해당사자인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주거·의료·요양·돌봄서비스 체계가 공고히 구축될 것이라 기대한다.
작년 겨울 유난히 추운 주말 야간근무 날이었다. 아이가 고열이 나면서, 경련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현장에 출동했다. 일반 출동의 경우 대개 구급대원들은 출동하면서 환자의 과거력을 파악하며 가상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나 소아 출동의 경우 인근 소아청소년과 진료 가능한 응급실 병상을 확인하는 과정이 더해진다. 이전에는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응급실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대기하는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날도 경련 중인 아이를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느라 한참이 걸렸다. 주변 응급실에 문의했는데 10분 거리에 있는 응급실들은 소아청소년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안 된다고 답했다. 인근에 있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전화해보니 진료는 가능하지만 2~3시간 대기해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지난 6월 중순 모 중앙일간지의 단독보도로 널리 회자된 국정원의 인사파동은 찜찜함과 윤 정부 내내 국정원이 제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던져주었다. 윤 정부 출범 초기 새로운 국정원 지도부가 잡은 방향은 대체로 맞았다. 올해 연말로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됨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고유기능이자 국가 수호의 근간인 대공수사에 박차를 가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고 방향잡기였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을 되살린 것도 가상한 결단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방향설정이 구체화되고 조직에 내재화되기 위해서는 3급 이상 간부들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 출범 초기 인사철학과 인사 방향이 대단히 긴요했지만, 기조실장이 조기에 낙마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데 이어 또다시 인사문제가 불거진..
경기도에 있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이 고객사로부터 ESG(기업의 사회·환경적 활동까지 고려하여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업성과지표) 또는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약속하는 글로벌 캠페인) 관련 요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도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지구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RE100 이행은 서둘러야 할 최우선 과제다. 경기도는 물론 각 기초자치단체의 행정력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1월 19일~2월 28일 경기도 소재 RE100 관련 기업 44곳(대기업 28, 중소기업 16)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이 넘는 52.3%(23곳)가 고객사로부터 ESG 또는 RE100 요구를 받았고, 절대다수(98%)가 RE100 이행과 관련한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중소·중견기업의 81.3%가 RE100에 대해 준비 부족(10개)이거나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3개)고 답했다. 대기업도 64%(18개)가 준비 부족이라고 밝혔다. 가장 시급한 사항으로 재생에너지 물량 확보(23.5%), 재생에너지 투자 및 구매를 위한 추가 재원 확보(21.2%), RE100 이행 수단에 대한 정보(17.6%) 등을 언급했다. 유럽연합(EU)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2019년 기준 15.3%, 서유럽 국가로 한정하면 40%에 육박한다. 2021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6.7%에 불과하다. 경기도의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은 도내 소재 글로벌 RE100 기업 58곳 전력 소비량의 12.8%에 그치는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 캠페인인 RE100은 가입 후 1년 안에 이행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성과를 점검받는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60%, 2040년 90%로 올려야 자격이 유지된다. 한국 기업의 가입은 2020년 6곳에서 2년 만에 21곳으로 증가했다. 2022년 들어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KT, LG이노텍 등이 합류했다. 올해 말 RE100 가입을 검토 중인 삼성전자도 해외 사업장부터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들의 RE100 가입이 더딘 이유는 국내 재생에너지의 발전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기업들이 지자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재생에너지 부지발굴과 공급’을 꼽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경기연구원 조사 참여 기업의 79.5%는 RE100을 위한 기업과 지자체 간 협의체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중앙정부의 기조와는 상관없이 경기도와 기초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성은 뚜렷하다. RE100은 이제 거부하면 세계 산업시장에서 도태를 각오해야 하는 절대조건으로 이미 등장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모두 집중해야만 한다. ‘재생에너지 부지발굴과 공급’에 목말라하는 관내 기업들의 여망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는 최선을 다해 부응해야 한다. “이게 뭐지?”하고 눈만 껌벅거리고 어물어물할 때가 아니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2년 전쯤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무대는 세르비아의 군용 무기 고물상이다. ‘니콜라 막수라’라는 한 예술가가, 매주 이곳을 방문해 예술 재료를 찾는다. 고물 무기더미에서 예술재료? 그것도, 가급적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무기들, 또 가급적 전장의 핏자국이 얼룩진(물론 은유다. 살상무기를 선호한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무기들을 고른다. 그 섬뜩한 살인무기들은 이 예술가의 손을 통해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M70소총과 군용 헬멧으로 만든 기타, 바주카포와 군용 가스통으로 만든 첼로, 탱크로 만든 타악기.......등이다. 막수라의 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참전용사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하고 싶습니다.” ‘처치 못해 쌓여있는 무기 고물더미’는 세르비아의 상흔을 말해준다. 그 ‘상흔’이란 유고슬라비아 분열 과정..
100년 전, 일제 치하, 경상도 진주에 국채보상운동, 3.1 만세 운동, 학교설립, 백정 해방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젊고 의로운 인물이 있었다. 백촌 강상호(1887년생) 선생이다. 국채보상운동 경남 책임을 맡았을 때, 스물 한 살이었다. 진주공립보통학교(진주초)의 학무위원이 된 건 스물 아홉. 그 무렵, 긴 가뭄과 대홍수가 지역사회를 초토화시켰다. 이웃들은 쌀독이 비어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백촌은 양친과 함께 곳간을 열었다. 그리고 동네의 가가호호에 부과되는 호세ㅡ주민세와 유사한ㅡ10년치를 대신 냈다. 거금이었다. 서른 살이었다. 4-50대 중견인사들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나 할 수 있는 일들을 그 나이에 농부들 벼 베듯 해낸 거다. 훗날 주민들이 백촌의 자당을 기려서 시덕불망비(施德不忘碑)를 세웠다. '베풀어주신 은혜 잊지 않겠다'는 착하고 아름다운 합창이다. "부족한 곳 누추한 마을 복전을 돌보아 농사짓게 해주시고, 천금을 바르게 쓰시어 많은 집이 돈을 얻으니 그 혜택이 산과 바다와 같으매 은덕이 높고 넓음을 돌에 새겨 잊지 않고 백세에 전하리라 1917년 가좌리 주민 일동" *복전(福田:복을 거두는 밭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가난한 사람들, 또는 그들의 밭을 가리킴)" 질풍노도의 10대 소년에게 스승은 이 훌륭한 부모였다. 그 덕에 상호는 조선팔도에서 보기드문 품격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삶을 이미 100년 전에 온몸 온맘으로 실천한 지행일치의 선각자가 된 것이다. 3.1만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들불처럼 번질 때도 당연히 주도하였고 지독한 옥고를 치렀다. 석방되자마자 일신학교 설립과 동아일보 창간에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신간회에도 핵심으로 관여했다. 그는 이 특별한 이력들의 연장선에서 일생일대의 혁명적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인권운동사의 굵은 획을 그었다. 이름하여, '형평사 운동'이다. '저울(衡)처럼 평등하고 공평한(平) 세상(社)'의 창립을 주도했다. 선생은 어느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마을청년들이 백정의 아들에게 개를 잡으라고 시켰는데, 이를 완강하게 거부한 그 젊은이를 때려죽인 것이다. 백촌은 그 사건을 계기로 백정해방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분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겉으로는 모두 평등해졌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저 맞아죽은 청년이 증거 아닌가. 1923년 4월 25일. 형평사 창립일. 금년이 100주년이다. 해방후 이승만이 아니라, 품위있는 정치세력이 건국의 주체가 되었다면, 세계 인권운동사에 길이 빛날 이 날은 국경일이 되었을 것이다. 백촌은 이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에 가슴, 머리, 시간, 관계, 재산을 다 던졌다. 단기간에 40만 명의 백정들이 뭉쳤다. 이에 가족을 비롯하여 그간 다정하게 지내던 지인들 대부분이 백촌을 공격했다. 심지어 부친도 반대했다. 가까운 지인들조차 백촌에게 '新백정'이라며 대들었다.혁명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렵고 편치 않은 것이다. 역사는 그 저항을 뚫고 나가는 소수에 의하여 진보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0년만에 창업정신에서 너무나 흉하게 벗어났다. 일제가 혁명을 돈싸움으로 배후조정한 것이다. 그는 손을 뗐다. 백촌의 재산은 마침내 작은 오두막집 하나뿐이었다. 그는 부총리였던 인촌 김성수에게 "산속에 들어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다"고 썼다.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둘이 만났을 때는 인촌도 시한부 생명이었다. 백촌이 세상 떴을 때(1957년 11월 12일. 71세), 미망인은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끼니꺼리도 남겨놓지 않고 먼저 죽으면 우리 새끼들하고 어떻게 살란 말입니꺼?", 원망하며 땅을 치고 통곡했다. 피울음이었다. 장남이 중학은 간신히 마쳤으나 고교진학은 형편이 안되어 포기하고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진주농고를 다닌 것은 실로 다행이었다. 구국영웅의 후손들은 왜 이렇게 예외 없이 남루한가. 법칙처럼... 백촌은 '진주에서 역대 가장 큰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비석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훗날 익명의 독지가가 비석을 세워주었다. 논개사당과 함께 진주의 자부심인 형평탑은 시민사회가 모금하여 세워졌다. 가장 큰 후원자는 역시 '어른 김장하' 선생이셨다. 나는 과연 그 품격인생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살아낼 수 있을까. 그게 내 삶의 목표다. 아무쪼록, 형평운동의 21세기 버전ㅡ남녀ㆍ빈부ㆍ학력ㆍ지역ㆍ외국인 노동자ㆍ성소수자 차별 등의 극복을 위한 다양한 운동ㅡ이 100년 전 그 위대한 정신을 뿌리 삼아 역사에 남는 성과를 내기 바란다. 그날이 진짜 해방절이다.